南雲書塾敎材
命理學의 實戰臨床(上)
영원한
자유를찾아서
南雲 金地洪 著
사주는 못 풀어서 틀리는 법이지 잘 풀면 속이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진로나 곤경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 혹은 신에게나마 의지하게 되고 도움을 바라게 되며, 아니면 왜 이렇게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지 않은지 궁금하게 되어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간사가 그렇게 호락호락 자기의 운전식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가정을 하면 정말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고, 산다는 자체가 무의미 할 수밖에 없고 희망이란 단어는 필요 없을 것이다. 어쩌면 榮枯盛衰(영고성쇠)란 말이 존재 하는 것이 당연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그래도 순탄하고 진행되는 운세가 富貴功名으로 치닫는다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소망일 것이다. 허나 만물이 生 할 때 벌써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興味津津(흥미진진)하여 여기 匿名彼鑑定人(익명피감정인)들의.......................
南雲書塾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주는 못 풀어서 틀리는 법이지 잘 풀면 속이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진로나 하는 일이 곤경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 혹은 신에게나마 의지하게 되고 도움을 바라게 되며, 아니면 왜 이렇게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지 않은지 궁금하게 되어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간사가 그렇게 호락호락 자기의 운전식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가정을 하면 정말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고, 산다는 자체가 무의미 할 수밖에 없고 희망이란 단어는 필요 없을 것이다. 어쩌면 榮枯盛衰(영고성쇠)란 말이 존재 하는 것이 당연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그래도 순탄하고 진행되는 운세가 富貴功名(부귀공명)으로 치닫는다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소망일 것이다. 허나 만물이 生 할 때 벌써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興味津津(흥미진진)하여 여기 匿名彼鑑定人(익명피감정인)들의 사주를 현재 까지 확인된, 또 그렇게 진행된 사주를 선별하여 학우들에게 조금이라고 명리학의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책 한 권에 이어 시리즈로 해부하여 볼 계획이다.
丙戌年 立冬節 書塾에서
내가 산으로 간 까닭은 산삼이라도 있는가 싶어 갔으나 산삼 잎도 보지 못했다.
어느 때 한 번 나타나니 아예 돌았다고 하더라.
산삼이 보이지 않으니 물론 잎도 못 보았다. 언젠가는 나오겠지.
지금 누군가가 당신은 왜 토굴만 찾느냐 고 물어보면 “그냥” 이라고 밖에 다른 말은 없다.
선문답 같지만, 특별한 철학도 없고, 목적도 없고, 욕심도 귀찮으며, 방향도 없고 의욕도 없으니, 다 있는 가정도, 집사람도, 자식도 팽개치고 산으로 달아났고, 산에서 혼자 있으니 그냥 좋다는 말이다. 산삼이야 나오든 말든...
산삼 캐러 간다는 말을 부모한테만 했을 뿐 아무 에게도 한 적은 없다.
그 해가 아마 1972년도 이니 내가 있었던 곳이 지금 살고 있는 남부지방과는 달리 한 겨울에 구름만 조금이라도 하늘에 보이면 눈발이 금세 흩날리곤 했던 곳이 경기도 임진강 부근 이였으니 속칭 “외상구름 없다.” 라고 했다. 서울과는 거리가 버스 편으로 1시간 거리였던 것 같다.
그날이 국민의 의무를 마감 하는 날이었으니 군 복부 끝마치는 날 이였다.
살을 에는 차가운 날이니 12월 3일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바람이 불어 닥쳤다, 군에서 3년 간 산에 익숙한 터라 집에 오니 시골이라 하지만 반촌이기에 썩 마음이 붙지 않았다. 그 때 부터 방랑 행각이 부모님도 몰래 아무 대책 없이 걸인 인 냥, 방랑자 인 냥, 운수납자인 냥, 방향도, 목표도 없이 그냥 山만 돌아 다녔던 것이 몸에 베였던 모양이다.
남들이 다 하는 취직도 생각 없고, 그렇다고 농사도 반 일꾼이고 특별히 하는 것도 없고, 그러니 부모님의 속을 꽤 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금은 공직에서 퇴임 하여 집에 있는 친구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에 팔자에도 없는 공무원생활이 시작 되었으니 지금도 생각하면 그 중요한 시기에 지금과는 전혀 엉뚱한 직장 생활을 해 본 유일한 경험이다. 지금도 그분을 가끔 생각하곤 하는데 친구의 부친이며,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부모님만큼 따뜻하게 보살핌이 있었기에 지금도 잊지를 않는다. 물론 그 친구는 모르리라.
그때가 1973년 5월 지금의 집사람인 그 사람을 만났으므로 자식이 3명이나 있었나 보다.
한 4년간이 말단 공무원 생활이었으니 그 때가 집사람은 돈은 궁해도 마음은 지금과 같이 편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지금은 같이 살지 않고 떨어져 별거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과, 애를 먹이지 않으니 그저 편하리라 생각이 든다. 돈하고 관계없는 행동만 하니 눈에 가시가 되었으니 항상 불평이고 다른 남편 비교나 하고 나는 힘이 들었다. 내 잘못은 잊은 채 “차라리 날아 버리자” 란 생각만 가지고 살았으니 얼마나 우매한 생각인지 지금은 우습기 까지 하다. 그래도 백 번 잘했다 싶고 전혀 후회는 없다. 그전에는 산에 갔다, 집에 왔다, 간헐적인 방랑이지만 이번에는 영원히 짐을 챙겨 떠나다.
물론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이 생활을 찾아 가지 못하였으리라 여긴다. 어린것들은 그 때가 대학입학. 고등학교, 중학생 이었으니 많이 힘이 들었으리라, 구차한 변명이 무슨 소용 있으랴, 자식들이 장성해 있는 이 마당에 그 사람도 나도 하염없는 눈물이 왜 없었겠나 싶다.
1980년부터 하릴없이 지리산. 계룡산. 주왕산. 천태산, 영취산, 가지산, 천왕산.... 등 인근 산을 돌아다니곤 한 것이 영원히 산만 돌게 만들었다. 1988년 까지는 어떤 목표가 있었지만 8년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으니, 부평초 신세가 이때부터다. 가정은 대주가 집에 자주 없으니 구심점이 없는 것과 같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원활한 것도 아니고, 집에는 있기 싫고 그러니 산병이라도 들은 것인가 보다, 지금도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자문을 해 봐도 나도 모른다. 특별한 것도 없고, 세상이 첫째 싫고, 돈이 싫고, 두 번 세 번 물어도 “그냥” 이란 말 밖에 없다.
처음 정착한 곳이 고성에 있는 玉泉寺라고 하는 公刹(공찰)이다. 사월 초파일이라 고성군수가 오고 그야말로 野壇法席(야단법석)이다. 가진 돈도 없고 한 달 밥 먹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없으나 팔만 원 정도의 숙식비를 주어야 내가 책 읽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위 숙식비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다.
일 년이 지나고 그곳에 같이 있던 어느 학생하고 의논이 되었고, 오라고 하기에 그 절로 옮겨야 될 형편이 되었다. 김해 神魚山(신어산)에 있는 어느 조그만 암자인데 그 곳에는 숙식비는 필요 없고 작품만 해 내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그곳으로 짐을 꾸려서 집사람하고 같이 짐을 옮겼고,
한 달 정도만 있다가 집에 들어 갈 테니 하고 甘言(감언)으로 회유책을 써서 안심을 시켜 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때부터 영원히 집에 가지 않는 기틀이 되었다. 너무 죄를 지었기에 할 말이 없다.
생과부를 만들어 놓고 엉뚱한 짓만 하는 사람이 곧 돌아 올 것이다. 하였으니 믿고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 하면 지금은 惻隱之心(측은지심)마저 든다. 어찌하랴 세월은 흘렀고 물은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상당히 나쁜 사람이 되었다.
김해에 도착하여 몇 개월 정도 흘렀으니 이 곳 절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 졌고 안정을 찾으니 머리도 맑고 제자들도 하나 둘 가르치니 지날 만 했다. 그런데 스님의 狂氣가 간혹 나온다. 마치 婢僕들인 냥 제법 고함도 치고 작품이 며칠 내 완성이 안 되면 밥도 먹는데 상당히 불편하였다. 그러면 일만 하는 머슴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 자꾸 저러면 내가 또 떠나야지, 작품을 하여 자기는 어느 신도에게 그냥 맡겨 음성적인 거출 형태를 취하는지, 전혀 나는 알 길이 없는데, 또 알 필요도 없고 해서 그냥 꾹 눌러 있었다. 그런데 한 날은 좀 심한 말을 하는 것이다. 화가 많이 났다.
작품 하는 사람이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안 될 때도 있고 하는데 그날 완성이 안 되면 고함까지 지르니 여기서 살 곳이 못 되었다. 멱살을 쥐고 법당아래에 내려가서 몇 대 쥐어박고 짐 꾸리러가니 벌써 신고를 했고, 경찰관 도착하여 간단한 훈방으로 끝나는가 보다 했더니 . 부르면 또 오라는 것이다. 사건은 쉽게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뒤에 알고 보니 진단이 나오지 않아서 훈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자기가 참고 고소 취하가 아니라는 것을 그 절에 있는 일하는 처사에게 들은 後日譚(후일담)이다.
대판 싸운 이후 짐 보따리를 싸서 무거운 절 떠나라고 할 필요 없이 다음으로 간 곳이 어느 조그마한 庵子(암자)인데, 같이 갔던 그 학생하고 둘이서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거기 가서 이틀 있으니 어느 청년 한 사람이 공부를 하러 왔는데 그 분이 현재 양산시민신문 사장 김명관씨 이었으니 그때 인연이 되었다. 지금은 그 절이 있는지 없는지? 양산 웅상읍 삼호리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 곳에 가서 또 작품 해 주고 공짜 밥을 얻어먹고 책 읽을 시간을 준다고 하기에 개인전도 한 번 열어준 기억이 있다. 그 곳에는 앞에 스님 보다 한 술 더 떠서 o o 탕 수육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長服(장복)을 하는 스타일이니 有口無言(유구무언)이다. 물론 함께 기거하는 나와 학생들에게 들켰으니 말이다. 그것은 음식이라 나그네가 가타부타 할 수 없지만 내가 거하는 방에 내방객이 찾아오면 샘을 자주 내는 것이 화근이 되기도 하고 어느 가을 날 새벽 쯤 인가 까무러치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공부하는 학생, 行者(행자)들 그리고 병으로 수양중인 처사들 모두7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시에 우르르 뛰어나가 보니 이게 무슨 변고 인고, 글쎄 간질병에 시달리는 30대의 어느 보살이 수양 겸 공양주(밥하는 사람) 역할을 자청하고 보수는 받지 않는 조건으로 부처님 시봉을 들기로 주지스님과 약속을 하고 몇 달 째 시봉을 들고 있던 중 야밤에 강제추행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니 그 불쌍한 보살을 범할 찰나였다.
이 驚天動地(경천동지)할 일이 아닌가.
우스운 것은 부랴부랴 수습은 되고, 이튿날 아침 어제 저녁 놀라서 나온 모든 사람(방을 쓰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이 절을 새로 수리를 한다고 전부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참 지지리도 복 없는 자신을 원망하면서 乞人인 냥, 또 봇짐을 챙겨서 출발하는데, 행자 두 명도 나를 따라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한 행자는 스무 여섯 살이고 한 행자는 열여섯 살이니 두 사람이야 먹여 살릴 수 있으나, 그렇지만 행자들은 절 소속이 아닌가.
안 된다고 하니 莫無可奈(막무가내)다. 그때부터 행자를 데리고 다녔다. 간 곳이 청송의 일월스님 옆에서, 또 포항 반야암, 무려 스무 여 곳의 유명산을 찾아가면 암자에는 내가 본 그런 산사가 아니고 무슨 소굴 인 듯하다. 그래서 아예 지리산 실상사 앞 봉우리 쪽으로 가서 내가 임금이 되는 토굴생활이 시작 되다. 백성 없는 임금이니 누가 알아 줄 리는 없으나 그야말로 천국이다.
나는 조그마할 예닐곱 살 때부터 스님을 그렇게 좋아 했는데, 그 스님들은 일반 중생들보다도 한 수 아래다. 초발심자경문에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부처님은 탐하지 않고 자비를 가르치지 않았는가. 경문과 목탁하고는 거리가 먼 그 분들과 잦은 마찰마저 생겼고 스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때가 제일 힘이 들었다. 중이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스님은 절대자 이고 성현이고 어릴 때 생각으로 스님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 줄만 알았는데 내가 만난 스님들은 하나 같이 삿된 행동은 다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성스럽게, 거룩하게만 보았던 것이 나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이고 卑下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참스님은 있을 것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스님의 법명이 眞星(진성 -진짜 스타)이니 참 스님이란 말인가? 내가 만나본 스님은 하나같이 꼭 같으니 이상하다. 내가 그렇게 보는 걸까?
이조를 개국할 때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弄(농)을 할 때의 어느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난다.
이성계 曰
“대사! 우리가 이렇게 바늘 실 같이 지나면서 오늘은 ”하라“를 하고 농담도 해 봅시다 그려”
이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천부당만부당 한 말씀이외다. 앞으로 지존의 자리에 계실 분을...”
이성계는 오늘은 농담도 하고 붕우지간 같이 해 보았으면 하고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상감. 상감 진절머리가 나서이고, 다른 사람도 아닌 국사격의 무학이야 말로 믿는 고승이니 그럴 만도 하였다.
“정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한 마디 하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전하.”
이성계曰,
“당신의 앉아 있는 자태가 꼭 똥 누는 개 같소이다. 내가 말을 먼저 했으니 이번에는 당신이 할 차례요.“
하고 무학을 다그치니 차마 왕을 어찌 마주 보며 弄을 하겠는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이성계는 버럭 화를 내며,
“왕의 말을 농으로 받아 들였단 말인가?”
할 수 없이 무학이 한 마디 하는데,
“상감의 그 용태는 꼭 부처님 같으옵니다.”
거짓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전해 오는 野史인 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니,
역시 개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것인가 보다.
내가 그러니 스님도 그렇게 보여서가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볼 때가 너무나 많다. 근 이십년 중에 10년은 山寺(산사)에서 10년은 토굴에서 혼자 살았으니 내가 주인 격이다.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지금은 신발도 두 켤레고 옷도 서너 벌 되고 책도 있고, 아직까지 쌀도 5 되 정도는 되니 부자가 눈 아래 보인다. 그리고 돈도 서 너 푼 있고 라면이 한 반 박스 되고 숟가락 젓가락 종제기 몇 개 있으니 이 세상에 나올 때 보다 큰 재산이다. 정말이지 그 때는 내 앞에 펼쳐지는 수 백 만 평의 땅은 내 생전에는 처분하지 않을 터 이니 어쨌든 내 땅이다. 수백 만평 땅에다가 먹을 것 있으니 이 보다 부자가 어디 있나. 나와 봐라. 등기만 안 되었을 뿐이다. 누구는 땅을 가져가나 이렇게 혼자 중얼 거리면서 내가 좋아하는 詩句도 절로 떠오른다. 휘파람으로 노래도 불러보았다. 대금만 불 줄 알았으면 퍼질고 앉아서 산조라도 한 번 했을 것이다.
고려충신 김재현의 詩 중에
世事紛紛是與非 세사분분시여비
十年塵土汚人衣 십년진토오인의
落花啼鳥春風裏 낙화제조춘풍리
何處靑山獨掩扉 하처청산독엄비
세상사가 하도 시끄러워
십년동안 속세에서 옷에 때만 묻혔네.
꽃 지고 새소리 지저귀는 봄바람 속에
어느 곳 청산에서 사립문 닫고 혼자 살꼬.
그 때가 크리스마스 전 날이니 寒氣(한기)에 몸서리친다는 표현이 제일 맞을 성 싶다. 지리산은 매우 춥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대간이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태백준령의 그 장엄한 자태에 말문이 닫힌다. 찬바람이 관자노리에 부닥칠 때면 두 손은 저절로 볼 전체를 감싸지만 내가 가는 곳은 어디 인고, 가다가 그것마저 잊어버린다. 추위도 잠시 잊고 靈山(영산)에 빨려 들어간다. 정신을 수습 하고나니 얼마나 추웠든지 수염 끝에 초롱이 맺힌다. 대덕의 사리인 냥 영롱히도 빛난다. 입김이 수염 끝에 맺힌 結晶(결정)이다. 이곳이 穴인가? 반풍수 집구석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차라리 반풍수가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닌가.
그런데, 반풍수인데 結晶(결정)의 穴(혈)이 엉뚱한 곳에 맺혀 반풍수인 나도 알 것 같다. 아마도 맞는 성 싶다. 그렇기에 이렇게 재수도 없고 필요 없는 돈도 날리고 하는 것으로 보아 명당은 죽어도 아니다.
풍수에는 要逆(요역)을 취하니 左靑龍 右白虎(좌청룡 우백호)에 案山(안산)과 朝山(조산)이 너무 잘 形色을 갖추었으니 穴은 틀림없이 수염 끝에 맺었고 龍穴砂水(용혈사수)가 순서인데 來水(내수)와 去水(거수)가 문제로다.
古書(고서)에 산은 본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잡고 있어 陰에 속하여 혈을 잡을 때에는 逆(역)으로 움직이는 곳에 기묘한 穴이 있고, 水는 본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는 물체이니 반대로 가만히 머무르는 곳에 奇妙(기묘)함이 있다. <山本靜 妙在動處, 水本動 奇在靜處>(산본정 묘재동처, 수본동 기재정처)라고 했는데 장풍은 하지 못하나, 혈은 틀림없이 맺을 곳에 맺는다.
과일나무의 원줄기나 큰 가지에는 열매가 잘 맺지 않는 법인데 만약 열매가 맺혀도 양분의 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 탐스럽지 못한 보잘것없는 과일이 열리고 만다. 나무에서 과일이나 열매를 풍수지리에서는 穴이라고 한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땅에서도 幹龍(간룡)이나 大地龍(대지룡) 같은 곳에서는 혈이 잘 맺혀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 結穴은 보통 小地龍(소지룡)에서 많이 이루어지며 小山(소산)이나 野山(야산) 끝에 많이 맺힌다.
두 손을 볼에 쥐고 그냥 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방금 넘어 지는 퇴비저장고이다. 아무튼 寺庵(사암)의 보기 싫은 그분들 속의 보일러 놓은 따뜻한 방 보다. 여기사 진나라 시황의 아방궁보다 더 좋다.
헌 가마니 조각을 이리 저리 엮어 문 앞에 달고 한 나절을 바람 막는 작업을 다 하니 허기가 진다. 가져간 코펠에다 김치도 없는 라면을 먹어도 이 맛은 의상과 원효의 당나라 길에 해골물맛이 이렇게 좋으랴.
잘도 넘어 간다. 바람에 개 눈 감춘건지 개 눈에 바람 감춘건지 어떻든 라면을 금방 없애버렸다.
양지쪽의 온기는 큰 산이라고 없나? 오목한 곳을 찾아 조금 있으니 한 겨울에도 졸음이 온다. 오는 졸음을 참으면서 우선 바람은 막았지만 내 보금자리를 만들어야지. 하면서 벽을 둘러보니 산 속에 먹을 것도 없는데 무슨 쥐구멍은 이렇게 많이 있는지, 그곳으로 바람이 많이 들어온다.
개울에 물을 떠서 흙과 이겨서 발라야 되겠기에 밑의 개울에 물을 담으러 가니 이 무슨 빙판 인고? 돌로 쳐서 물을 떠느니 윗 개울에서 물을 선회시키리라. 생각하며 올라갔는데 물은 없고 바위 속으로 들어간 흔적의 얼음만 있다. 지금은 생각하면 그 때는 곧 죽을 것만 같은 심정이고 싸서 고생만 한다고 생각했고, 집에 들어갈까? 별 생각을 했다. 처자식 두고 이 무슨 해괴한 작태만 저질러나. 정신이 조금 이상하다고 남들은 생각하고도 여유가 있다. 내가 인정을 하니 더더욱 떠돌이로 살아 왔는가 보다. 마음을 고쳐먹고, 대충 보수를 하고 아래 부락에 가서 이장을 찾으니 이장은 그 곳에는 주인허락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주인한테 알아보아 말을 잘 해 준다고 하니 고마웠다. 처음부터 계산을 잘 못한 것 같았다. 먼저 말씀을 드린 다음 허락을 받고 하는 건데 잘 못이다. 그러나 다행이다. 직접 자기가 말씀을 드린다고 하니 나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다. 올라 와서 조금 기다리니 이 무슨 靑天霹靂(청천벽력)인고.
경찰관이 왜 오는지?
주인의 허락을 받고 온다는 사람이 인근 지서(파출소)에 연락을 하여 거동이상자로 신고를 할 양으로, 우선 안심시키느라고 말 잘해 준다고 한 모양이다. 괘씸했다. 환희에 들떠 있던 기분은 어디로 갔나?
참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경찰관 왈,
“신분증 좀 봅시다.”
주민등록증은 원래부터 없었고 있더라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성품인지라
“집에 두고 안 가져 왔는데요.”라고 했다.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지금도 혼자서 미친 사람 인 냥 破顔大笑(파안대소)를 할 때가 가끔 있다.
“집이 없는 것 같은데 집이 어디요” 할 때
“여기가 우리 집이요”
“그러면 왜 신고가 들어 왔습니까?”
“신고하는 사람이 나쁘지 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이게 어찌 당신 집입니까?”
“내가 살면 내 집이지요.”
“언제부터 살았소.”
“몇 시간 되었소.”
‘이 분이 이상한 사람이 맞구먼!“
하기사 行色이 옷은 寺庵(사암)으로 돌아다녔고 집에 나올 때도 작업복 한 벌이였는데 나중에는 참선복만 몇 벌 가져 다녔는데 옷을 손을 보지 않아 갈기갈기 찢어져 깁지도 않고 때가 묻은 상태이며 세수는 언제 했는지 기억에 없고 머리는 허리 까지 내려오고 수염은 제 멋대로 이니 그야 말로 신고대상이다. 이때가 1993년 12월 24일이니 얼마나 추웠으면 말이 나오다 꼬리가 없어졌다. 얼버무릴 수밖에... 춥다고 이양반이 물러서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분명히 내 사물이 있고 수리한 흔적도 있으니 집이 있는 것인데 내 집이 아니라고 하니, 더더욱 못 믿겠다는 표현을 한다. 물론 내 집은 아니다. 이맘때면 항상 경찰관들은 수고를 많이 한다. 연말연시가 아닌가.
범죄인 수색차원의 起訴中止者(기소중지자), 혹은 살인자, 사기범죄, 소탕업무에 고달플 것이다. 협조를 하자.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었으니 마음대로 해라. 잠깐 묘책을 짜내어도 별 수 없다.
않으면 무전기를 가져와서 확인을 하면 될 텐데, 귀찮게 8킬로 정도를 내려가야 전북남원시 관할파출소에 가자고 할 터 이니 참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전 같으면 멱살 잡고 들어서 계곡에 아마 처박았을 것이다.
일본서 김대중 납치사건 나던 73년도 새벽 1시경 제사 지내고 올 때 불심검문 경찰관 두 명이 이☓☓ 밤에 어디 돌아다니나 하고 무조건 수갑을 꺼내서 겁주던 경관 두 명을 논에 오토바이와 같이 처박은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날 새벽 5시에 경찰서 수사과에서 긴급체포당해 한 나절을 맞은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맞아 죽는 것은 별로 겁 안내는 이유다. 나를 때린 그 경찰관들은 아마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 것이다.
옆으로 얘기가 흘렀다.
그래서 오토바이 뒤에 타고 소재지 파출소에 가서야 조회확인 후에 나올 수 있었는데 한 나절을 한참 지났는데 읍에서 실상사 쪽은 버스가 자주 없기 때문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버스 편으로 토굴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렸고 천황산 언저리 하늘에는 황강이 펼쳐졌고 황포돛배 떠가는 듯 새털구름이 황혼에 비치어 눈이 부시다.
내일은 토굴로 가서 바닥도 만들고 벽지는 아니라도 신문지는 발라야 돌로 흙과 같이 쌓은 담의 공기구멍을 막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아래 마을로 가서 방 한 칸 빌려 잠을 잘려니 또 돈을 달라고 한다. 하기야 여기라고 국립공원구역이 아닐 리 없다. 돈에 너무 찌들려 있는 세상이기에 심산유곡은 오염이 안 된 줄 알았지만 여기는 한 술 더 떤다. 남은 路資(노자)는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몸에 비리 털듯이 다 털어 버려야 편할 것 같다. 줄려고 하니 줘야 한다.
한 겨울에 노숙은 바로 不祿之客(불록지객)이 된다. 우리 같은 幽客(유객)은 여름은 그야 말로 천국 이지만 겨울은 지옥이다. 여름은 눕는 곳이 방이다. 누가 잠은 골라서 자야 한다고 했던가? 편한 소리일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저 쪽 산정에서 태양은 黎明(여명)을 앞세우고 오나보다. 卯時(묘시)는 寅時(인시) 보다 늦은데도 陰陽(음양)의 循環度(순환도)에 의해 一時的(일시적)인 어두움이 있으나 여명을 가지고 오기에 어느새 동을 틔운다.
산허리를 돌아 부락을 지나고 토굴로 올라가니 해가 불끈 솟아 올라온다. 장엄하다 못해 거룩한 느낌마저 든다. 이 기운은 몸의 심장을 돌아 천지 도수가 순환을 하듯이 혈관을 따라 뇌를 돌고 또 다리를 감고 돌아 드디어 입을 통해 나가고 들어오고 한다. 우리 몸도 소우주이다. 오장과 육부는 오대양 육대주를 뜻하니 어느 하나 우리 신체 어느 부분 어느 성분 하나 하나가 오행에 배치됨이 없으니, 인체도 소우주라 하여 대우주 공간에 存하므로 대자연의 다스림을, 즉 지배를 받고 순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자연의 숭고함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산다. 우리가 二分만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할 때 어떻게 되겠는가?
간혹 나는 대자연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껴 질 때가 있다.
곧장 돌아와서 흙을 퍼 모으고 물도 준비하고 옆에 모닥불도 피워놓으니 그런대로 살만 하다. 억세게 싸서 하는 일이라 재미가 절로 있다. 보통 사람들이 돈을 줄 테니 이렇게 해보라고, 하면 오늘 같이 명절인 크리스마스 인데 촌 같으면 공휴일이라 시골이면 겨울이니 농한기에다가 옆 집 돌이도 부르고 앞 집 친구 석이도 불러서 장작불 지펴 놓고 구들막이 뜨겁도록 불을 넣었으면 닭이나 한 마리 잡아서 고스톱이나 치고 소주 한 잔을 마시면 꿀맛을 방불케 하겠고, 오늘 같은 진눈개비 흩날리는 때에는 울타리 마다 틀림없이 참새도 있을 터이니 틀을 놓아 참새나 잡아서 구워 먹지 뭣 하러 고생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저 그냥 좋다.
무슨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가진 냥, 또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듯, 무작정 사회에 대한 편견과 부조리, 꼴 보기 싫은 사회상, 내 스스로의 위치, 그리고 내 안사람에 대한 불편, 형제간들의 不睦(불목), 안사람의 고부간의 葛藤(갈등), 이 모든 것이 끝에 가서는 작용을 했지만, 기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변명이겠고, 아무튼 혼자 있고 싶고 내 하고픈 것을 하는데 전혀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현실도피에의 숙명적인 방랑이라고 굳이 해명 하노라면 해명이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문제가 될 바 아니다. 그저 영원한 자유인이고 싶다. 다만 자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제 돈도 몇 푼 남지 않았고 걱정이다. 걸릴 것 없이 두루 방랑을 해도 너무 먼 길을 그냥 걸어가면 되나, 내 욕구를 채우고 나면 반드시 돈을 달라니 없는 돈을 줄 수도 없고 안줄 수도 없어서 몇 푼 남겨놓고 사정하여 조금만 주니 쾌히 만족 해 한다. 주인이 고맙다.
忽然(홀연) 蘭皐(난고) 김병연(김삿갓)의 詩가 생각난다.
艱飮野店(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천리행장부일가
餘錢七葉尙云多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낭중계이심심재
野店斜陽見酒何 야점사양견주하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엽전 일곱 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자탄 하면서 읊은 이 詩(시)는 한 野店(야점)을 지나면서 얼마나 술이 먹고 싶기에 이 詩(시)를 지었겠나?
쓸데는 써야한다. 아끼다가 잃어버릴 것도 같다. 없으면 본전이다.
이렇게 방랑을 하면서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을 받고 파출소에 갔다 왔다 한 것이 무려 20회는 족히 되었으리라.
지금은 안정된 토굴이 경주 산내에 있건만 제자들 강의에 한 번씩만 오가다 하니 마음은 항상 토굴에 머문다. 몇 개월씩 파묻혀 있다가 제사 때나 혹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한 번씩 고향에 나타나 부모님과 친했던 옛날 어른들을 만나서 인사라도 한 것이, 어찌도 그리 소문은 빨리 나는지....
母親曰(모친왈)
“전에 볼 때는 정신이상은 이상인데 약간 돌았는데, 지금은 수염과 머리를 늘어뜨리고 나타나니 완전히 돌았다고 하더라. 정신 좀 차려라.”
속으로
“나만 안돌면 되지...? ”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한심하기 그지없다.
1. 다른 사람이 하나만 하지 왜 이것저것 하느냐고 물으면
별 달리 하는 것도 없는데 그런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하기야 돈 되는 것은 한 개도 안 한다는 질책조의 말일 것이다. 끝까지 계속 하고 있을 따름이지 손을 놓고 또 다른 것을 손을 데고 한 것은 없다.
서예는 5세부터 할머니와 같이 그냥 한 것이 잘 쓰든 못 쓰든 여태까지 하는 것이고 漢詩(한시)를 한 것은 25년 전에 어떤 님의 시를 접하다 보니 그 내용에 매료되어 그야 말로 뿅 갈 정도로 감명을 받은 시가 석주 권필의 시집과 손곡 이달(난설헌과 허균의 가정에서 시를 가르치는 스승)의 시집을 읽고서 이다. 이후로 唐詩(당시). 金笠詩(김립시). 등 닥치는 대로 읽었으니 詩에 푹 빠졌다고나 할까. 그 내용을 화선지에 옮기니 더욱 재미가 있어서 作詩에 눈을 떠서 한국한시연구회 총사령관이신 霖溪(림계) 김범수 선생님을 만나서 작시를 지도 받았으니 지금 부터 근 20개 星霜(성상)이 넘었다. 이 분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다른 것 한 것 없이 외길로 오직 漢詩(한시)와 한문번역, 족보편집, 문집류간행 等 한문학 쪽에만 머물고 지금도 전과 같으신 분이다. 이 분은 아직도 내 일이라면 하던 일도 제쳐두고 자상하게 돌보아 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文人畵(문인화)는 서예를 하다보면 다 들 할 수 있는 것이고, 易學은 17세정도 부터 공부 했으니 오래 되기는 하나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 다고 본다. 왜냐 하면 무슨 학문이 시간이 갈수록 모르겠는지 이상하게시리 자꾸 어려워지는 게 역학인가 싶고, 풍수지리학은 역학 속에 포함은 되지만 하도 광범위하여 아직 까지 반풍수 집 망하기 십상이고, 그러니 과목으로 따지면 다 보태어서 5과목 정도 되며 이 전부다 동양학에 속하니 하나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가. 漢詩(한시)는 왜 좋아서 했나?
라고 물으면, 우선 한시를 한 번 읊으면서 그 사람의 내재된 사상을 대충이나마 읽을 수가 있다. 처음 배울 때는 譯本(역본)이 없으면 어려웠지만 웬만큼 익숙해지면 漢字語(한자어)를 보는 순간 作者(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지었나를 감지 할 수 있다. 맞든지 안 맞든지 나름대로 상상을 하다보면 그 사람과 혼의 交感(교감)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入金剛(입금강) 金 笠(김 립)
綠靑碧路入雲中 녹청벽로입운중
樓使能詩客住笻 누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雪瀑 용조화함비설폭
劒精神削揷天峰 검정신삭삽천봉
仙禽白幾千年鶴 선금백기수년학
澗樹靑三百丈松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腦 승부지오춘수뇌
忽無心打日邊鐘 홀무심타일변종
*봄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펼쳐진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은 봉우리는 칼로 신통하게 깎았네.
속세 떠난 흰 학은 몇 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 종을 치고 있구나.
豪俠(호협)한 氣象(기상)이 보이는 것이 漢詩(한시)의 매력은 앞에서도 言及(언급)했다시피 直譯(직역)이든 意譯(의역)이든 譯者(역자), 즉 읽는 사람의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 우리 현대시와는 사뭇 다른 것이고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자의 의도야 어떻든 읊는 사람의 自性(자성)에 맡겨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이다.
위의 시를 달리 解(해) 한다면,
푸른 산길을 밟고 구름 속을 들어가니
정자가 詩客(시객)의 대 지팡이를 능히 머무르게 하도다.
용의 조화가 눈 날리는 폭포를 포함시켰고,
劍(검)의 정신은 하늘 높이 솟은 봉우리를 깎았도다.
두루미의 흰 터럭은 펴 천년을 묵은 백학이요
산골 물가의 소나무는 삼백 자가 넘는 청송이더라.
중은 봄에 취한 내 꿈을 모르고
홀연 무심히 정오의 종을 치더라.
또
푸른 암벽 길로 구름 속 드노라니
누각은 날 반겨 지팡일 멈추라 하네,
용의 조화는 눈 폭포를 머금어 날고
칼의 정기는 일천 봉우리를 깎아 꽂았다.
신선새 허여세니 몇 천 년 학이뇨?
바위나무 푸르니 삼백 길 솔이로다.
중은 내 봄잠 곤한 줄 모르고서
홀연 무심코 햇가의 종을 치네,
자! 이것을 보아도 읊는 자의 자성에 맡기지 않았나?
혹은 후려치다가, 안았다가, 내팽개치다가, 달래다가, 밀쳐내어도 보고 한시에서만 유독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멋이 있으나, 현대시에서는 문맥 하나하나를 한글로 표기 하였으니 어찌 감히 타인으로 하여금 정정케 할 수 있겠는고.
우리는 그 옛날 우리 선인들의, 그 다정다감한 가슴속에 무시로 피어오르던 문학적 정서와 무엇에 의해서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강한 욕구와 충동으로 애타하던 정황을 상상해 본다.
한국에 한시의 대가로서 유명한 유일무이한 석학 손종섭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선인들은 본의 아니게, 또는 하는 수 없이 우리의 사상 감정을 한자에다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우리 한문학 유산이 소외당하게 되는 근본 이유인 한자의 국적에 대하여 새삼스럽기는 하나 잠시 짚고 넘어가면 그것은 한자가 원래 중국 태생이기는 하나, 그것이 널리 동양 각국으로 전해지면서 가는 곳마다 동화되어 그 민족 語韻(어운)으로 歸化(귀화)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子音(자음)만 하더라도 일본, 동남아가 다르다. 제각기 자기의 바탕으로 소화하기에 直譯(직역)말고 意譯(의역)은 기본만 유지하면 독자로 하여금 너무나 감칠맛이 나는 것이 바로 한시이다. 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라고 했다.
나. 毛筆(모필)은 어째서 좋아하나?
여기서 나는 서예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중국은 書法(서법)이라고 하고 일본은 書道(서도)라고 하기에 한국은 書藝(서예)라고 할 수 밖에 더 있는가? 라고 어느 학자는 그렇게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서도가 일제 잔존이다. 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日本이 한국을 강점하던 훨씬 앞에 우리는 서도라고 했다. 어느 몰상식한 사람이 서예라고 했는지는 모르나 藝(예)란, 풀초가 머리에 있어서 “심다”라는 말로 풀이하면 된다. 무엇을 심느냐 말이다. 서예란 재주를 가리킴이니 기능으로 더 가깝게 있고 기능은 熟練(숙련)이 말하고 재주는 특별히 타고난 사람이 좀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글 쓰는 재주가 있다. 어딘가 모르게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공부하는 것도 재주인가? 조금의 타고난 선천적인 소질은 필요 하겠지만 노력이 수반되어야 결실이 올 것이고 우리는 결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한다. 그 결실이 성공이라고 할 때 서예를 해서 입선, 특선, 대상을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나는 부정이다. 그러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게끔 작품을 수출을 하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개인으로 보아서도 수입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의 경지를 향하면 절대 商術(상술)이 필요 없다. 가령 태권도 자체는 道이지만 有名人(유명인), 즉 길을 아는 사람이 브라질로 가서 다시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道人(도인), 다시 말하여 길을 아는 사람은 有名(유명)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道를 얻기 위한 정진이 선행되는 것이 진정한 書道人(서도인)의 길이다. 라고 하여 在野作家(재야작가)든가 아니든 혹은 집에서 자기를 위한 수행에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족할 따름이다. 道는 自己精進(자기정진)의 길이지 入選(입선)과 商魂(상혼)을 우선시하면 技藝(기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書道(서도)가 맞는 말이다.
다. 易學(역학)은 무슨 재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잘 받아 보지는 않았는데, 철학원이란 간판이 있으니 직업인인줄 다들 알 것이다. 겉치레만 해 놓고 안 본다는 것도 뭐 하고 해서 곧 철거 시킬 예정인데, 제자중의 어느 한 사람이 사비를 들여서 나도 없는 사이에 감정이라도 해서 집세라도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고 해서 붙여 놓았다. 고맙다는 말만 했지 썩 마음이 내키지 않다. 사주쟁이로 가는 것이 죽는 것 보다 하기 싫어 易學自體(역학자체)만 窮究(궁구)할 뿐, 토굴에서 나와서 書塾(서숙)에 있을 때는 안에서 문 걸어 잠그는 것이 日課(일과) 중의 한 부분이다.
공자의 말에 韋編三絶(위편삼절)이란 말이 있다. 책 묶는 “가죽 끈이 세 번 떨어질 때까지 易典(역전)을 읽었으나 通達(통달)치 못한 고로 내가 죽어서 주나라 문왕을 어떻게 쳐다볼고.” 라는 말이 있다. 天地度數(천지도수)가 그렇게 호락호락 될 바에야 누구든 달려 들 것이다. 그러나 역학의 범위가 하도 廣範圍(광범위)하여 손을 데었다가 떼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자면 잠깐이면 끝이 날 것이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더 묘연하고 아리송하니 자꾸 도깨비한테 홀리는 기분이지만, 深奧(심오)한 哲理(철리)를 한 개 이해를 했을 때는 땅에서 하늘로 나는 것 같이 슈퍼멘 같은 착각을 불러 온다. 이 매력을 느껴보지 않는 사람이면 모른다. 모든 學文이 다 그렇겠지만 지극히 과학적인데서 매력에 더 빠진다. 고 할 수 있다.
요즈음의 나의 일과는 이십년 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과 일과가 틀린다.
그래서 갑자기 고치기가 어렵다. 어쩌다 늦게 까지 어느 분과 어울릴 때면 그 이튿날은 많이 힘이 든다.
기상시간이 밤 12-1시이니 다른 사람 잘 때 나는 깨어야 하고 깨지 않으려고 해도 눈이 그냥 떨어진다. 눈을 뜨고 나면 불을 켜고 대낮 같은 일상의 시작이 되다.
2시간 정도 있으면 胃(위)가 활동을 하는지 배가 고파서 아침밥을 새벽3시 정도 되어서 먹어야 하며, 다시 말하면 새벽 1시부터 아침 먹는 시간 1시간을 빼고는 아침 9시 까지 남이 써놓은 책을 읽는 것이 오전 일과인데 사실은 하루 일을 책 읽는 것에 투자를 하는 샘이 된다. 읽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려 강의 중에 봉변 안 당하려고 자구책인 샘이다.
점심은 10시경 먹고 자유시간이 오후 4시 까지 이며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6시에 취침하면 늦어도 6시 반쯤 숙면에 들어서 자정 정도 되어서 깨니 5-6시간은 충분히 잘 수 있으며 조금 모자라면 이튿날 틀림없이 보충을 시킨다. 이러하니 이 八字가 얼마나 좋나 싶다.
조선조 때 송도삼절의 기인 서경덕 선생님의 詩에,
讀書當日志經綸(독서당일지경륜) 글을 읽을 때 큰 뜻을 품으니
歲暮還甘顔氏貧(세모환감안씨빈) 가난의 쓰라림도 달게 받아진다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부귀는 더러운 것 손 데기 어렵다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신) 산과 물은 임자가 없으니 포근하네.
採山釣水堪充腹(채산조수감충복) 나물 캐고 고기 낚아 배 채워 살고
咏月吟風足暢神(영월음풍족창신) 咏月吟風(음월음풍)에 정신을 씻어 본다.
學到不疑知快活(학도불의지쾌활) 이제 마음이 터여 즐겁기만 하니
免敎虛作百年人(면교허작백년인) 헛된 인생살이를 면한 듯싶다.
解(해) - 큰 뜻을 품고 학문에 골몰하고 있으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도 가난을 달게 알고 지내 왔다. 富貴(부귀)라는 것은 시기와 질투가 따르기 마련이라, 나는 거기에는 전연 뜻이 없고 자연 속에 묻혀 거리낌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때로 산에 올라가서 나물도 뜯고 때로는 냇가에 가서 고기를 잡아서 먹기도 하고 달밤이면 달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바람을 쏘이면 정신이 상쾌해진다. 이렇게 살면서 책 읽다 드디어 나를 깨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헛된 인생살이를 면한 듯싶어 더욱 보람을 느끼고 있다.
註
顔氏(안씨) - 공자의 제자 顔淵(안연)을 말하는데 안연은 무척 가난하게 살았음.
林泉無禁(임천무금) - 자연은 보아도 禁(금)할 사람이 없다는 뜻. 「赤壁賦(적벽부)의 <取之無禁(취지무금)>하고 <用之不渴(용지불갈)>에서 나온 말임.
堪 - 견딜 감
이 작품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책을 읽는 선비의 심회를 읊었다.
1-2행
원문에는 '안씨빈(顔氏貧)'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안빈낙도'라고 의역하였다. 안씨는 자(字)가 자연(子淵)이어서 안 연(顔淵)이라고도 부르며 공자의 수제자였다. 그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도를 즐기고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읊은 것이다.
3-4행
부귀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즐기는 생활을 나타낸 것이다.
5-6행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족자락(自足自樂)하는 생활을 보여 주고 있다.
7-8행
원문의 ' 백년인(百年人)'은 보통 사람의 일생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명성이나 학문이 자기의 일생에만 국한되고 마는 사람을 百年人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자는 학문하여 도통(道通)의 경지에 이르러 격물치지(格物致知)하게 되었음을 은근히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年代 : 중종 때
* 作者 : 서경덕(徐敬德)
* 形式 : 칠언 율시(七言律詩)
* 押韻 : 평성 '眞'의 운통인 綸, 貧, 身, 神, 人
* 主題 : 학문하는 자세
라. 무슨 재미로 살아가느냐?
고 한다면 靑出於藍(청출어람)만 생각하고 살아간다.
이 말은 전국 시대의 유학자(儒學者)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글〈勸學篇(권학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靑取之於藍(청취지어람)>
쪽빛보다 더 푸르고 <而靑於藍(이청어람)>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氷水爲之(빙수위지)>
물보다도 더 차다 <而寒於水(이한어수)>
쪽[藍]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말.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지해서는 안 되며 청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
제자가 406명(입회원서) 정도이나 쓸 만한 제자가 몇 명 안 되어 항시 가슴 아프다.
처음에는 어떤 목적 없이 대책 없이 그냥 산이 좋아서 돌아다닌다. 여기서 “돌아다닌다.” 란 말은 어떠한 목적이나 대책이 없이 그냥 浮萍草처럼 쏘다닌다. 라고 해야 맞다. 그런데 낸들 어찌 무작정 쓸데없이 쏘다닐까?
돈이 있어야 정착을 하지 조선팔도 다 다녀도 나는 송곳하나 꼽을 땅 없다.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역시 없다. 없으니 겁날 것이 더더욱 없고 없으니 이 이상 더 망할 것도 없다.
어느 곳을 가든지 산에도 주인이 다 있더라. 어느 날은 신고를 당하여 파출소에 호출을 당해 출두를 하고, 어느 날은 주인에게 쫓겨나고, 어떤 때는 산화경방요원의 철거명령이 떨어지고 그래서 겨울에는 이사를 자주 하는 편이다. 내가 居할 곳 즉, 두 평만 허락이 되면 되겠으나 두 평을 살 이유도 없고, 물론 살 돈도 없다. 몇 천 평 지주가 두 평을 팔지도 않을 것이고, 굳이 사지 않아도 몇 십 만 평이 내 땅이다. 라고 하면 富者인 것을, 없는 돈에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들키면 쫓겨 다니기가 일쑤다.
지리산 그 광활한 굽이굽이 골짜기 마다. 무슨 기도처, 무슨 道人, 무슨 도인들이 은거하는 곳이 그렇게 많은지 이산 저산 도인만 집합을 시키면 패잔병이나 빨치산 소탕은 무전기만 하나씩 지급하면 전부 무공훈장(?) 받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원래 도인, 도사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자칭 도사라고 형색이 내하고 비슷하게 다니는데, 왜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멋지게 지은 집이 다 있더라. 물끄러미 쳐다보며 팔자한탄을 하고 부러워 한 적이 한 두 번은 넘었으리라. 그러나 현실이 별 볼일 없으니 누구를 탓 하랴!
국립공원내에는 산화경방요원이 산불 낸다고 당연히 철거를 지시 한다. 십분 이면 철수준비완료가 되니 쉽기도 하다. 거추장스런 짐은 아예 없애고 다니니 간편하게 行裝(행장)을 갖춰야 한다. 다 떨어진 차도 한 대 있고, 5-6인용 텐트를 가지고 있으니 나 말고 네댓 명은 더 있어도 되니 여유가 있어 내한테는 호텔이다. 단. 밤바람을 막기 위해, 그리고 눈의 중량을 버티기 위해 텐트위에 나무와 마른 풀을 베어서 덮어주는 것이 건물 축조라면 築造(축조)고 上樑(상량)은 반드시 하고 산신에게 차리는 것은 없어도 내가 이곳에 왔노라고 묵념으로 신고는 꼭 하는 편이다.
한겨울이라도 텐트 속은 모닥불도 피울 수 있어 아늑하고, 밤에는 닭털침랑에 들어가면 새소리, 물소리, 짐승 우는 소리, 그야말로 오케스트라의 열린 음악회를 천 날 만 날 하니 桃源境이다. 들키면 눈을 피해서 또 다른 곳에 설치를 하고, 또 들키면 또 옮기고 하다보면 하루에 세 번 정도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분이 지금도 근무를 하는지 관리사무소에서는 애물단지로 소문이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못할 노릇이다. 지금은 장기적으로 주인 합의하에 있는 토굴이니 십 일 년 째 옮기는 일 없이 이제는 편한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가는 곳 마다 意氣投合(의기투합)하는 사람이 있었고, 있을 터를 마련해 줄려고 하는 학우들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무소유가 좋더라. 신세를 지면 항상 굽혀야 되고, 항상 미안하고, 큰소리도 한 번 치지도 못하고, 숙여 살 바에야 집에 들어가겠다!
공부를 할 때도 굳이 제자가 아니라 서로 같이 궁구하고 논하고 하였기에, 그 사람이 나보다 日就月將(일취월장)할 때면 그 기분이란 無重力(무중력)일 때의 기분과 같다. 武陵桃源(무릉도원)이 무슨 곳이며 仙境(선경)이 따로 없다. 덩실덩실 내 어깨가 더 올라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좋다. 이 맛을 알면 필설로는 형언하지 못할 묘한 맛이 있다. 가르치는 것만큼 좋을 때가 없다. 여기에 아마 중독이 되었나 보다.
가령 作詩(작시)하는 대는 犯罪(범죄)란 것이 있는데 平仄聲(평측성)에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 글자나 넣어서는 범죄에 해당 된다. 반칙이란 말이다. 즉 蜂腰鶴膝(봉요학설)이란 七言絶句(칠언절구)의 어느 句에 높은字(仄聲측성). 낮은字(平聲평성)가 있다고 하면 仄仄仄平仄仄平(측측측평측측평)의 7자 중에 세 번째 字에 평자를 넣으면 좋은 詩가 되지 못하여 仄字(측자)를 揷入(삽입) 하였다고 하면, 詩가 너무 아름다우나 (측자를 넣어도 괜찮음) 가운에 平字(평자)가 혼자 있으니 벌의 허리마냥 잘록하게 들어갔으므로 봉요학설이 되었으므로 즉 孤平(고평)에(平字가 외롭게 혼자 있다.)해당 되어 失格(실격)이다. (세 번째 글자는 높은 字나 낮은 字나 아무 자나 넣어도 무방하나 반칙에 해당 된다는 뜻임).
이 글자 한 字를 나보다 더 내용이 좋은 字를 제자가 揷入을 했을 때는 피가 搖動(요동) 칠 정도로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내고 기쁘다. 이런 재미를 말한다.
隱逸林中無榮辱 은일임중무영욕
道義路上無炎凉 도의노상무염량
숨어서 사는 숲속에는
영화로움과 욕됨도 없으며
도의의 길에는
덥거나 추위가 없다. -菜根覃 後集(채근담 후집)에서-
여태까지 유리걸식을 하며 나돌아 다니다 한 번씩 제사 때 들러서 고향에 오면 도움을 받았던 친구와 지인들이 생각나 여기에 소개하면, 십 수 년 전 산사에서부터 고락을 같이 하며 지금도 자주 찾아와서 조언과 도움을 주시는 양산시민신문 사장이신 김명관 님과, 병원에 전시장을 마련하여 무려 한 달간이나 사용 하게 해 주신 양산 박냇과 원장님이신 박종건 선생님과 지금도 대우자동차 이사장으로 계시는 묵천 최양두님, 양산시청에 근무 하시는 김남탁님, 제일부동산 조정인님, 그리고 여림선생내외분과, 작년 6월 25일 사주학의이해를 출판 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송업봉 회장님과, 최영인 사장님, 그리고 김해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시는 이문구 원장님, 석포 하태옥 선생님과 여러 학우들, 토굴생활 할 때 음양으로 도와주신 보건지소장으로 근무하시는 김경화 소장님과, 혜촌선생님, 그리고 이종석님 내외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많은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한 가지 일에 매진하였으므로, 그리고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이렇게 대책 없는(?) 영원한 자유인이 되었을까.....?
아직까지 부단히도 보살펴 주시는 청봉, 옥전선생 내외분, 이번 양산시내 큰 평수의 강의실을 일 년간 조건 없이 내어주시면서 후학에 정진을 부탁하시는 정암 박문원 선생님께 이 지면을 통해 재삼 감사함을 잊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재까지 나는 일기를 빠지지 않고 몇 십 년을 써온 때문에 이 기록이 있어서 일기장을 더듬고, 行脚(행각)중에 기억에 남는 분의 명조확인이 가능하고, 또 현재의 운로가 확인이 가능한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익명) 감정한 이후에 특기할 만하고 후학의 연구에 가일층 도움이 될 수 있는 명조를 발췌하여 명리학의 실전임상이란 책을 上中下 시리즈로 간행할 작정을 하여 산문형식으로 읽을 때 지겹지 않게 써 보았으나 글재주가 없는 관계로 읽는 분들이 지루할까봐 걱정을 하면서 序券인 上卷을 내는 바이다.
1. 자식 잃고 신랑별거
평지 같으면 아직 땅거미도 오지 않을 시간인 한여름의 저녁 일곱 시 경이면 칠월 장마가 오락가락 하여 안개가 산허리를 감고 있으니 법당 앞에 등촉불이 존다. 천 날 만날 하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겹다. 밥만 축을 내는 오늘도 하루가 가니 분명 내일은 올 것이다. 해발 천 미터가 넘으니 여기도 꽤 높기에 안개가 없어질 날이 거의 없다. 특히 여름이니 모기떼는 발광을 하고 여기 저기 풀벌레 소리는 요란해도 인적은 없다. 이런 곳에 있으면 심사가 쓰리는 것인지 아픈 것인지는 몰라도 서늘해지는 때가 하루에 몇 번씩은 있다. 이것이 아마 산병인가 보다. 이 맛에 자꾸 신들린 사람처럼 또 찾고 하는 모양이다. 이 맛이 진미 인가 모르는 사람은 정신병 환자라고 할 만 하다. 해 떨어지고 물안개 산으로 오르니 신선인양 선방에 앉아 앞에 읊었던 시를 다시 한 번 암송해 본다. 선현들의 시 한 수를 암송하면 청량제가 된다.
世事紛紛是如非 十年塵土汚人衣 落花鳥啼啼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
세상이 시시비비 하도 시끄러워
속세에서 십 년 동안 내 옷에 때만 묻혔구나.
꽃 지고 새소리 들리는 봄바람 속,
어느 청산에서 사립문 닫고 혼자 살거나.
혼자서 자연과 벗하며 대화하고 시끄러운 세상에 뭐하려고 죽이며 살리며 아귀다툼을 하면서 원망하고 터지고 찢어지면서 죽여라 살려라 할 것인고 그곳에서 내 몸만 병들어 가는 데 청산이야 원래 사람 없는 곳이기에 그 속에서의 봄날은 꽃이 피고지고 청산의 바람소리와 새소리는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의 앙상블이 되거늘 심심하면 자연과 벗하고 배고프면 나물과 천렵이 있고, 심심하면 책 읽어 풍요로우니 어느 청산에서 문 닫고 혼자 있었으면 하는 詩가 생각나서 읊조리면 마음이 한결 잔잔해 진다.
그길로 소원대로 왔으니 이만큼 더 좋을 수야 어디 있겠는가? 아래가 長江(양즈강) 만큼이나 긴 洛東大幹이니 분명 지열에 안개 되어 이 산에 허리를 감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 산의 암자는 울창한 수림도 많지만 정상까지 악산이라 책을 한 짐 지고 중간에 올라가다 몇 번을 쉬어야 당도 할 수 있다. 단번에 올라가는 장사는 보지 못했으니 그냥 산을 타고가면 남보다 못 할 것도 없지만 짐을 지고 올라가는 것은 급경사이기에 더더욱 힘이 든다. 오늘이 며칠이나 되었는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친구 지인들이 있었기에 소개를 받아 산 아래는 대낮 같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어둠이 깔리고 그야말로 안개 속에 등촉불이 십 미터만 떨어 져도 불빛은 조는 듯 하고 법당 뒤의 숲은 칠흑 같이 온통 검정 칠이다.
어디서 선생님!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린다.
“누구십니까?”
“아무게입니다.”
“이 늦은데 어떻게 가시려고 오시나요?”
“동네에는 밝은데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둡나요.”
“산이라서 그렇지요, 방으로 드시지요.”
기억은 나는데 누구인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누구인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기억해 줄 때 그렇게 반가워하는데 도대체 기억이 없다.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도무지 기억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작년에 옥천사에서 만난 아무게입니다.”
“아하! 내가 미쳐도 많이 미쳤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옥천사에서 나와 조용한 암자를 하나 얻어 달라고 부탁을 하여 그 분을 따라 이 암자 저 암자를 소개 시켜주던 그 분이 아닌가. 어찌나 미안했든지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시간은 벌써 저녁 여덟시를 넘고 있었다.
“궁금한 것 몇 가지 물어보고 내려가서 식사를 같이 합시다.”
하도 바쁘게 재촉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고 감정에 들어갔다.
坤命
壬癸乙乙 壬辛庚己戊丁丙
戌未酉酉 辰卯寅丑子亥戌
七六五四三二
十十十十十十十
酉月에 癸水 日主를 論하기 전에 水의 性質부터 공부를 해 보면 春月의 水는 寅은 病이고 卯에는 死가 되며 辰은 墓가 되어 弱하게 되는 것이다. 特히 水는 陰氣가 申에서 生하고 子에 旺함을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 秋冬의 때에는 그 氣運이 分聚하면 흩어지지 않으므로 北은 항상 엉겨 있다가 春에 이르러 陽氣가 上昇하고 陰氣는 下降하므로 雨露가 이미 이루어져 水가 生發하여 이것이 “水勢의象”이니 聖家들이 活水는 卯에서 生하여 좋은 것으로 하고 晴하면 春水는 흐르고 雨가 오면 汪洋(넓을 왕)을 이루어 넘쳐흐른다. 正月生者는 水에는 寒氣가 있으니 火를 보면 이것은 풀리어 富貴하며 金이 相助함을 容納하고 夏人은 가장 아름답고 木을 만나되 火가 없으면 水冷 木寒하여 生意가 있지 않아서 土를 만나면 水를 剋하여 貧寒을 主하고 土制 金生하면 衣食이 豊膽(풍담)한 것이다. 二三月의 水는 끝없이 넓게 흐를 때라 土를 보면 堤防이 있는 것이니 낮이면 富貴하고 밤이면 移動하며 흐른다. 穀雨後에 生한 者는 惑은 陰邪하거나 病疾이 있고, 대개 土를 휘저어 水가 濁해 지는 때문이다. 火를 봐도 水가 濁해지는 때문이다. 火를 보면 水火가 서로 刑하여 爭訟을 免할길이 없고 金을 만나면 水生하니 넘쳐서 無情하다. 夏節人은 干支에 土를 얻은 者는 허물이 없으나 木을 보매 泄하면 能히 思惠를 베풀고 春人이 二月中旬에 生한 者는 木氣가 正旺하여 그 元氣를 盜賊질하니 風病이 생기고 金을 얻어 도우면 患은 없다. 夏水는 令을 잃으니 火를 만나면 말라버리니 晴함을 꺼리고 비를 기뻐하는 것이다. 初夏에는 水가 오히려 泛溢(범일-넘치다)하여 土를 얻으면 흐르지 못하여 福氣가 깊으나 但 火와 同行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대개 火가 盛하면 土가 燥하며 水가 마른다.
夏人의 干支에 金水가 없는 者는 病오로 죽고 水를 만나면 이름이 나아가는 利를 얻으며 萬若 金이 生하면 도리어 孤克을 主하니 대개 夏令의 金은 衰하고 母가 弱하여 生子가 不能하며 따라서 도리어 母를 傷하는 것이다. 秋人이 當하면 吉하다. 五六月의 水는 바로 萬物을 滋助할 수 있어 土와 同行함을 기뻐하나 生時에 다시 陰雨를 당한 者는 文章으로 富貴할 것이고 火를 보면 水가 마름을 嫌疑하며 輕한 者는 疾病을 앓고 重한 者는 夭한다. 水를 얻어 건너면 凶한 가운데 도리어 吉하고 木을 보면 역시 富貴를 主하며 豪傑이다. 春人은 그 眞氣를 泄하면 아름답지 못하고 金을 만나면 氣가 弱하고 無力하면 水가 可하지 못하니 이런 例로서 母가 밝음을 論하면 도리어 孤克함을 主한다. 干支에 金水가 있는者는 吉하다. 運은 金水를 기뻐하고 火鄕은 가장 꺼린다. 水가 秋令을 얻어 生하니 正水 淸秀한 때이라 晴하면 淸澈함이 끝이 없고 비가 오면 水가 混濁해진다. 七月의 水는 바로 萬物을 結實하게 滋助할 수 있고 火와 함께 同行하지 않으면 마땅하지 못하다. 夏節火가 많은 자는 貧하고 依託할 곳 없어 夭死한다. 金은 母가 되어 適當히 밝으면 그 時에는 子母가 相生이 하여 文章이 淸貴하고 土가 와서 함께하면 禍를 化하여 祥瑞로움이 되며 木이 만약 聯合하여 行하면 역시 貴顯함을 當한다.
八月九月의 水는 令星을 만나면 福壽를 헤아릴 수 없고 同하면 功名이 炬赫(횃불 거) 木을 보면 마침내 流泄 當하여 먼저는 이루어도 뒤에는 敗함을 免지 못할 것이고 火가 만약 同垣(담 원)하면 恩惠가 되고 金이 힘을 잃어도 治民服衆의 德이 있으나 疾病과 刑傷은 면치 못할 것이다. 土를 보면 비록 凶하나 凶이 되지 않음은 秋令金은 難을 化하여 福으로 하기 때문이다.
夏人은 干支에 土가 많은 者는 亦是 困滯하나 西北運은 利롭고 東南운 失宜한다. 冬月司令의 水는 寒氣가 嚴하게 엉기는 때이라서 비를 만나면 얼음 얼고 晴하면 凍釋하므로 冬三月에는 모두 火를 갖춤을 기뻐하고 火가 있어 따뜻하면 富貴가 比할 데 없다. 金을 보면 子母가 相生하니 夏人은 金紫玉堂의 貴가 있고 冬人 金寒水冷하면 비록 相生이나 貧寒하며 火가 同行을 얻으면 吉이 되고 土金을 만나면 骨肉蔘商이요 冬人은 堤防의 힘을 입어 泛溢의 患을 없앤다. 木을 만나면 水가 寒하고 木은 凍하니 모두 生하는 뜻이 없어 貧夭가 疑心할 바 없고 夏人은 火가 많은 者는 富壽하고 木土가 同垣하면 殺을 制하여 도리어 吉하고 丑月生者는 貴가 顯達하며 南方運을 기뻐하고 東方運은 다음으로 기뻐한다고 三命通會에서는 밝힌다.
본론에 들어가서 이 四柱는 癸日主가 酉月에 태어나 陰氣를 바라보며 陽氣의 退氣라 모든 생물이 겨울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日主 癸水는 陰中에서도 陰에 속하고 天干中 가장 弱한 氣勢를 가지고 있으므로 凝固. 結氷. 寒冷하다. 비록 雨露水이지만 地支에 亥子가 있다면 江河가 된다. 柱中에 水旺地가 없다면 身弱하니 地支에 戌未를 깔고 있어 그렇지 않다. 癸水옆에 乙木을 年月 天干에 두고 있어 食神이 되니 옷과 밥이 스스로 생길 것 같으나 濕木이 되어 끝내는 水木이 凝結이라 期待키 어려우니 食神도 食神나름이다. 癸水가 壬水를 만나면 身弱에는 다소의 所得이 있으나 戌中戊土 正官은 財官의 庫로서 一擧兩得이나 다만 水氣가 流塞되고 濁水되며 썩은 물로 大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未戌燥土로서 도움이 안 되나 다행히 酉金이 年月에 버티고 있으니 너무나 깨끗한 물이 되어 융통성이 없는 것이 흠이다.
戌中戊土는 日主癸水와 合을 하여서, 三十九歲 偏官運에 기품 있는 남자와 눈이 맞아 본남편과 이혼을 하려고 그렇게도 애를 쓰도 官星日主합은 천생연분이라 지지고 볶아도 해로는 할 것이나 애라! 홧김에 서방질이라도 할까보다 별거한지 삼십년이 되어도 합방한 번 안했으니 남이라도 한 참 남이다. 乙木천간이 자식성인 食神이니 印星의 힘이 그렇게도 강했던지 乙木의 印星酉金이 自坐가 年月이라 絶地에 속했으니 사주에 子息은 죽어서 끊어진 형국이니 과연 자식 데리고 친정 가면 병들어 온다고 시아버지 “아이 데리고 친정 가지마라”가 빈말이 아닌 것이다. 과연 六十二歲 辛卯大運에 내 운이 기박하니 天冲地冲 雪上加霜으로 우연히 늦여름 칠월에 지리산 놀러 가서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不歸의 몸이 되었도다. 이래서 자식 잃고, 그나마 용신이 戌中戊土가 日主와 합이 되어 火局이 되어서 조그만 食堂을 運營해 사는 데는 별로 아쉬울 것은 없으나 夫星入墓라 남같이 살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酉酉 自刑이라 家庭에 不和는 이틀이 멀다하고 衝突이 있으니 四柱八字 어찌 속일 것인가. 運이 火土로 흘렀다면 南便 덕은 있겠다만 四柱構成 完璧해도 오는 대운 어쩔 건가. 이것이 人生인데 남은 운이 별로 없으니 이 世上은 근심걱정 하다 六十 大運 辛卯年에 용신 冲剋하니 몸조심을 많이 하라. 그 때를 지켜보라.
내 마음도 편치 않고, 듣는 본인도 편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주를 보는 법은 나쁜 것만 얘기 하면 되는가. 그 사람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피 감정인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충분이 조심과 경계의 말은 잊지 않고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운은 절대로 전진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하며. 최소한도로 후퇴는 해도 투자는 안 된다고 하면 된다. 신규사업도 하지마라. 닥치는 운명이야 막지 못하나 대운을 미리 알면 나아가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생명은 在天이지만, 거지는 면할 수가 있다. 얻어먹을 장소는 확보하란 말이다. 투자하여 빚내고 못 갚아 달아나면 오는 인심도 괘심해서. 빌어먹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天干地支 돌고 도니 年運으로라도 용신 운을 찾아서 易理救世하면 된다.
시간은 벌써 밤 열 시가 다 되었다.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니 기가 막힌다.
나는 절간이라 일찍 저녁을 먹었지만, 손님은 밥도 굶었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있는지라 칠흑같이 어두우나 솔숲 사이로 비춰드는 한 줄기 달빛과 전등을 가지고 아래 주차장 까지 모셔다 드리고 올라오니 숨이 날숨들숨 한다. 이따금 들려오는 산에서만 울어대는 布穀鳥 (포곡조)소리에 밤은 깊어 간다.
.(이 고객은 지금이 六十二歲이니 1993년도 8월 여름 김해 어느 산사에 있을 때의 나이가 四十代 중반이 넘었으니 지금 편집을 해 보면서 과연 운명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흐를 것이다.)
2. 가정파탄에 자기마저 不祿之客(불록지객)이 되다.
이 세상에서 악덕이라고 하면 우리들은 하나 같이 남을 현혹해 돈을 빌려주고 高利(고리)를 챙기는 사람도 악덕 중에 악덕이다. 그러나 칼을 들고 강도짓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니니 먹고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인들 못하랴, 그러나 그 분들이 끝까지 잘 풀려 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 당시 이니 지금부터 십 수 년 전이니 그 때가 정확히 癸酉年(계유년) 한여름이니 선방에서 종일 杜門不出(두문불출)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 번 씩 밖에 나가 맑은 솔바람도 씌고 들어오면 한결 기분이 상쾌하다. 이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점심공양을 하고 나무그늘 밑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새 아래 주차장 까지 다리에 힘도 올릴 겸 혼자 내려갔다 올 양으로 내려갔다. 산길이야 바위 틈새로 길이 있을 수도 있고 乙字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거의 다 내려가서 다시 올라 오려고 하는데 말 좀 물어봅시다. 하면서 어느 남자분이 말을 하는 것 같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면서 보니 그리 큰 몸집도 아니고 자그마한 정말로 착하고 선한 사람 같았다. 그 옆에는 부인인 듯 사십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고 남편은 辛巳生(신사생)이니 오십 한두 살 정도가 정확하리라.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혹시 절에서 오느냐고 묻는다. 行色이 선복을 입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있겠는가?
“누구십니까?”
“우리는 아래 동네에 사는데 등산과 산책 겸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 인자하게도 생긴 사람이었다.
“우리 애가 중학생인데 이 절에서 방학이라 공부하는 아무개인데 같이 계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이 되면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학원문화가 그렇게 지금과 같이 우후죽순처럼 많은 것이 아니고 주로 산사나 고시원 독서실을 많이 이용할 시절이다.
면식이 옛날부터 잘 아는 사람마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갑자기 친해졌다. 아파트 호실을 가르쳐 주면서 어느 날 몇 시에 자기 집 아들의 생일이라 식사를 같이 하자면서 초청을 하기에 쾌히 승낙을 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약속시간을 맞춰서 집을 방문한 이후로 그 분은 마치 식구가 새로 생긴 듯이 형제간과도 같이 나를 잘 보살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연락을 자주 하곤 한다. 이북이 고향이라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세상에 착한 사람이 壽(수)도 못하고 非命(비명)에 세상을 하직하고 남은 식솔들이 죽을 고생을 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남을 속이며 공갈과 사기사건에 감방을 자기 집 드나들듯이 하면서도 부를 축적하면서 자식들은 호의호식시키고 자기는 무죄로 석방하는 정치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 분들은 功名까지도 얻는 수가 있으니 세상 고르지 않아도 한 참 안 고르다. 착한 사람의 사주를 한 번 살펴보자.
乾命
庚丙甲辛 丁戊己庚辛壬癸
寅辰午巳 亥子丑寅卯辰巳
七六五四三二
十十十十十十十
이 四柱는 丙火가 午月生이니 무척 乾燥하여 財星 庚辛金이 있고 辰中 癸水가 없었다면 强烈之火로 焦土化 될 뻔한 사주이다. 辰中에 癸水가 있다고는 하나 時支에 寅木은 목마른 여름에 나무인들 渴症이 왜 없겠으며, 年月에 巳午는 天干丙火에 通根하니 雨露水야 있건마는 하늘에 구름 없이 장간에 꼭꼭 숨어 있으니 이것이 그림의 떡이며, 마른 땅에 먼지만 날리는 형국이라 用神不得力이다. 사주 原局에 用神字가 健在하면 좋으련만. 이 四柱는 調喉를 보나 抑扶로 보나 힘이 있으나 없으나 癸水가 用神이라. 寅中의 甲木印星은 天干에 透出되었으나 冲하여 전혀 도움 없으니 失父母로 외로운 幼兒期를 지냈으며 그나마 대운이 金水로 흘렀다면 사는 데는 酷寒은 없으련만, 天涯의 孤兒로서 轉傳하다 四十이 다 되어 結婚을 하였으니 子息은 늦게 두었으나 子息星이 用神이라 男妹의 義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추명가 子息편에 正偏官이 吉神該當 子息德을 자랑하나 正 偏官이 忌神 해당 子息德이 그리 없다.(지금은 某대학 博士課程, 딸은 日本에 留學하여 旅行社通譯 가이드로 活動중임) 行運이 하필이면 木火之鄕으로 行했던고? 그나마 처의 적극적인 보살핌아래 요즈음 말로 嬰鷄婦人얻어 호강 받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도 내 四柱가 薄한데 삼베적삼 免하던날 비단옷 다 못 입고 黃泉 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己丑大運 用神剋에 어찌 無事하리오 心臟痲痺로 非命에 이승을 磨勘하였으니 哀痛한 平生이다. 우리는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月令이 提網이라 모든 基準이 月支가 左右하니 짚고 넘어 가야 함이다. 天干地支의 生死關係가 重要하거늘, 本人의 編著 四柱學의 理解에 天干地支의 相互關係를 다시 한 번 引用하여 공부하고자 한다. 丙火는 太陽. 光線. 紫外線. 赤外線. 放射線.이 該當하니 强烈之火요 爐治之火라고도 한다. 그리고 死火며, 旺火로서 이 불은 나무가 죽어서 發하는 숯불과 같아 頑金丈鐵도 녹여서 기구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濕木을 만나더라도 火熄되지 않고 壬癸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능히 火生土로서 造化를 이룰 수 있으나 虛火가 되면 丁火만도 못하니 頑金丈鐵은 고사하고 軟弱한 金銀 珠玉도 녹일 수 없는 特性이 있다. 丙火가 甲木을 만나면 源流가 튼튼하여 천지를 모두 밝히고도 남음이 있으나, 이것은 甲木寅木을 동반하고 있을 때만 국한 된다. 그리고 丙火의 盜氣處인 己土를 甲己로 合去하고 또 戊土를 木剋土로 除去하여 中和를 얻게 하며 偏官七殺인 壬水를 만나더라도 水生木 木生火로 殺印相生케 하니 한없이 기쁜 것이다. 그러나 만약 丙火가 旺하여 있으면 倒食으로서 病을 이루고 있으니 큰일 난 四柱이다. 그러나 藥이 있어 대운으로 치달으면 오히려 貴格이됨은 물론이다. 丙火가 辰土를 만나면 帶宮이지만 濕土가 되어 丙火도 모르게 弱化되고 있으며 官庫요 正官癸水와 正印乙木이 藏蓄되어 있다고는 하나 合局으로 變化하기 전에는 用하기가 어려워 이것을 두고 그림의 떡에 不過하다는 것이다. 丙火日主에 巳火를 만나면 官宮으로서 自己 자리를 찾아 행세를 하게 되니 능히 生土하고 剋金할 수 있으며, 旺한 水라 하더라도 겁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침은 불가한 것이니 銘心해야 한다.
丙火가 午火를 만나면 旺宮으로, 比劫이며, 仲夏요, 正午로서 火氣가 極에 달하고 있어 자만할까 염려되니 항시 謙遜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丙火가 未土를 만나면 衰宮이요 傷官으로서 泄氣되어 衰하여지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未土는 微溫之土로서 未中丁火와 乙木이 있고 또 六月節 여름으로서 火氣의 氣運이 아직 식지 않고 發하고 있는 때이라 능히 着根하여 火로서 자기의 任務를 行勢할 수 있으므로 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旺한 火氣에 木火의 勢力이 만만치 않은데 어찌 金寒水冷을 찾지 않으리오. 運마져 强烈之火를 도우니 夭死 안 한 것만 다행이라고 본다. 절친한 사이라 歲歲年年 만나서 그렇게도 절친한 사이련만 亡子의 屍身앞에 눈물이 앞을 가리니 착잡한 심정 금할 길이 없다.
3. 사법관의 사주는 별도로 있다.
내가 丙子年(병자년) 죽을 고생을 하면서 遊離乞食(유리걸식)하며 토굴로만 전전할 때 그 때가 만물이 황금들녘으로 풍요로울 가을철인가 궁색하기도 하지만 인생일대 최악의 빚보증에 시달리다 어느 토굴을 하나 정해 놓고 빚 갚는 생각만 하고 다녔더니 계절의 감각도 느끼지 못할 때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 듯 해가 바뀌어 설날이 돌아온다. 칠흑같이 어두운 밖은 이따금 저 넘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警笛(경적)소리만 있고 밖은 온통 들판과 옆이 산이라 그것도 공동묘지옆이라 이승과 저승의 육신들의 중간에 내가 있는 느낌이니 묘한 감정이 있다.
정확히 정축년 설날 이틀 후 쯤 되었으니 강산이 한 번 변했나 보다. 손님을 맞아 감정을 하는데,
시골생활이라 곱게 늙지는 못해도 사람이 깨끗한 느낌은 주는 초로의 한 할머니 인데 그 분이 생년월일시를 불러 주고는 대뜸 하는 소리가 그 사람 무엇 하는 사람이냐고 불쑥 묻는다. 특히 경상도 사람이야 남자건 여자건 어투가 그러하니 탓할 바는 못 되어도 썩 기분은 좋지 않았다. 왈,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으니 감정을 조금만 해 본 사람은 그런 눈치는 있다. 속으로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가 귀신들린 사람도 아닌데 사주를 아직 뽑지도 않고 만세력을 뒤적이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보니 내심 경상도 말로 뿔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래도 토굴까지 오신 손님을 화도 내지 못하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지요”
같이 온 고객을 먼저 사주를 뽑는 중에 있었다. 나는 감정인이 오면 동행을 한 사람들은, 피 감정인을 전부 망라하여 사주를 구성해 놓고 차례대로 보는 습관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 十餘名 정도 되니 그렇게 하는 것이 시간을 좀 단축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밖은 설날 끝이고 시골에는 농한기 인지라, 또 정초였으니 일년신수겸 더러 철학관이나 易學(역학)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너무 재촉 하지 마십시오. 순서대로 다 감정해 드리리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조용했다.
그런데 고객 중 한 분이
“우리는 먼저 하지 않아도 되니 제일 먼저 해 드리세요.”
하기에 먼저 감정을 했다. 즉시 사주를 뽑는 중 기분이 묘했다. 사주의 年月은 濕(습)하고 日時는 매우 건조한 水火가 서로 相濟(상제)되고 있지 않은가.
乾命
甲丙己辛 壬癸甲乙丙丁戊
午午亥丑 辰巳午未申酉戌
六五四三二十
六六六六六六六
이 四柱는 丙火가 亥月冷陰期라 丑中癸水의 性質이 己土에 着根하니 辛金 亦是 陰金이라 辛金 財星이 없었다면 通關이 分明하다. 自坐丙火의 午火는 그야말로 旺火인지라 앞의 사주와 같이 뜨겁기가 極에 달했으나 水旺節 火의 退氣라 强變爲弱이 되었다. 이럴 때는 己土食傷보다는 弱한 水氣를 補해 주는 辛金을 用함이 절대로 效果的이다. 食傷生財하여 財生官殺하며 丙火를 剋하니 奇妙한 配合이며 이를 두고 아름답다고 한다. 金을 用하는 四柱는 대부분 法官四柱가 많음은 익히 알고 있는 터라, 庚辛金을 用을 함이니 대뜸 나도 强盜아니면 크게 된다. 고 하려다, 차마 그 말은 못하겠고 틀림없이 칼로 예리하게 내리치는 四柱라고 하니 疑訝해 하는지라 혹시 醫師나 檢事, 判事가 되면 좋겠는데 대학을 나왔으면 試驗이나 한 번 쳐 보시지요. 하니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는 同行人이 司法硏修院에 있다고 하니 할머니가 입에 미소를 띤다. 財星이 用神이라 官星을 財生官하니 妻가 美貌이며 子息 또 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出世街道를 進行함에 무리가 없는 四柱이나 後半期에 用神剋하는 운이 오니 辯護士로 빠지는 것이 오히려 運의 흐름에 足하겠다고 하고 이후 소식을 들어보니 과연 國家機關에 근무하지 않고 바로 辯護士 開業을 하였다고 하니 이것도 自己가 運을 타고 나지 않았으면 거꾸로 國家機關에 勤務하여 惑 賂物罪에 連累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감정을 끝내고 식은 밥 찬물에 한 덩어리 말아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몇 숟갈에 개 눈에 바람 감추듯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간 이파리가 삼발 사발 떨린다. 이럴 때는 장작불을 지펴서 이불 속에 들어 누워있으면 좀 낳을 성 싶으나 신세타령만 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곧장 차를 몰고 경주 토굴로 향발했다. 그기는 산이라서 울타리도 되어 있어서 독서를 해도 재미가 절로 나건만 여기는 빚쟁이 주위에 있어야 안심을 하기에 할 수 없다. 열심히 되는대로 갚아 나가면 결국은 줄어들겠지 하고 생각하니 정축년이 그 무서운 국제 통화기금에서 관리 대상이니 그것이 IMF인줄 꿈에도 몰랐으니 이때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빗자루로 쓸듯이 부도가 자주 났으니 과연 그때의 무서움이 몸서리쳐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이나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틀림없이 산적이 되었거나 아니면 사대부 집에 태어나서 호의호식을 하며 살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자 현실이 중요 하니 남의 돈은 갚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한 번 내가 써보지도 않았으니 원통할 따름이다. 빚내어 쓰고 안 갚으면 사기가 아닌가? 남의 재물은 예사로 보고 거지를 만들고 달아나는 사람은 오죽해서 그렇겠나. 틀림없이 지금도 사기행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대신 갚아야 하니 원통하다. 갚을 돈이 있으면 무슨 문제가 되랴. 돈이 없으니 문제가 된다. 대 지주가 되었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반상의 계급이 있었던 사대부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으리라.
중국에서는 고대사회에 그 신분층이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민 등 5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중 천자와 제후는 황제 및 왕을 뜻하여 이들 군주를 제외하면 대부와 사가 지배계급이었으며, 피지배자인 서민과 구분되는 계층이었다. 통일국가인 한(漢)나라에 이르러 사와 서민의 구별은 없어졌으나 새로이 관리와 백성이라는 구별이 생기고, 관리의 지위가 세습화하자 사족(士族)이라 불리어 육조(六朝)를 중심으로 한 귀족정치시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송(宋)나라 때부터는 세습귀족(世襲貴族)이 몰락하고 대신 과거(科擧)에 의한 관료계급이 형성되어 이들을 사대부·독서인(讀書人)이라 불렀다. 이 사대부사회에서는 학문과 더불어 고아(高雅)한 취미가 숭상되어 그들이 여기(餘技)로서 그리는 그림은 사대부화(士大夫畵:文人畵)라 지칭하여 직업화가의 그림보다 높이 평가하였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송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때 귀족 외의 높은 벼슬아치나 문벌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였고, 그 가문을 사대부 집안, 그 가족을 사족이라 해서 일반인과 구별하였다. 고려 말에 정치 정상에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낸 사대부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로 현·전직의 관리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지식계급을 지칭하게 되었다.
사대부는 유교에 바탕을 둔 예의를 생활의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를 엄히 규제·절제하였고, 국가에서도 법률적으로 이들의 몸가짐을 규제하여 經國大典(경국대전)에서는 "사대부는 그 처가 사망한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재혼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사대부의 가족은 법률로서도 보호하고 국가적 관심을 보여, 경국대전에는 사대부의 딸로서 30세에 가까워도 빈곤해서 출가시키지 못하면 나라에서 혼자(婚資)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사대부 집안 부녀자의 몸가짐은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까다로워,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잡혀갔다 돌아온 속환사녀(贖還士女)에 대해서는 순절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은 사대부집 여인의 도리가 아니라 해서 많은 이혼사례가 생겨 정치·사회 문제화하였다. 관계상(官階上)으로는 從四品(종사품) 이상 정일품까지를 大夫로 규정하고 있으나, 사에 대한 구별은 별도로 없다. 조선 후기의 李重換 擇里志(이중환 택리지)에서
"사대부는 혹은 농·공·상의 업을 할 수 있어도 농·공·상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사대부의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까닭에 사대부를 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후세에 이르러 자연적인 추세로서 신분의 차별이 생겨난 동기라 할 수 있겠다."라고 사대부를 풀이하고 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는 것만 해도 요즈음은 벌써 출세를 했고 다음은 과거급제만 하면 보장이 되나 지금은 권력을 잡아도 금전에 눈이 어두워 권력, 주먹, 황금의 세 주역들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놀음을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없이 엎어져 있는 사람이야 모를 일이다. 신경도 써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얘기가 빗나갔다. 오늘 분명히 궁금했고, 그 궁금한 실마리를 풀어보면, 이 지구상에 팔자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두고 볼 때 앞에서와 같이 신분에서 차이가 나도 사주는 변치 않으니, 가령 국민소득이 낮은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과 부자나라인 미국에서 태어난 사주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빌게이츠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다고 가정을 해 볼 때 바뀌어도 사주대로 간다는 것이다. 빌게이츠도 아프리카에서는 별 볼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命理學(명리학)이다. 이남에서 태어난 어느 특정인이 제도와 사회가 다른 以北 땅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제도는 남쪽으로 바뀌어 지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동을 하거나, 좋은 사주인 경우 고관은 될지언정 제도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득도 以南(이남)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아서 별 것을 상상하기도 했다.
註
이중환 택리지
본관 여주. 자 휘조(輝祖). 호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17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이 되었다. 평소부터 睦虎龍(목호룡)과 친하게 지내던 중 1722년(경종 2) 辛壬士禍(신임사화) 때 말을 빌려 주어 병조좌랑이 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목호룡의 일당으로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절도(絶島)로 귀양 갔다가 1727년 풀려났다. 이익(李瀷)의 實事求是(실사구시)의 학풍을 이어받아 1730년까지 전국을 방랑하면서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하여 실학사상에 큰 공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擇里志:八域志(택리지:팔역지)가 있다.
4. 平生을 살아봐야 남의 눈에 눈물 내는 사주
二月달 봄바람이라고는 하지만 산골의 눈은 아직 殘雪(잔설)로 남아 골짝바람에 휩싸여 매서운 寒氣(한기)를 데리고 온다. 지난겨울에 깔려 있던 낙엽마다 오솔길 모퉁이 마다 낙엽을 쓸어 아래까지 쓸어 온다. 엄동설한이 따로 없다. 이 추운 날 인기척이 있어 이 깊은 골짜기에 누군가 오나싶어 밖을 내다보니 두 사람 같은데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 정도 되는 부부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누추한 곳이나마 찾아온 고객이라고 생각하니 어서 안으로 모셔야 되겠기에 들라고 하고 자리를 잡아 주었다. 상당히 憔悴(초췌)해 보였다. 무슨 걱정이 있는지?
乾命
己壬戊乙 辛壬癸甲乙丙丁
酉戌寅未 未申酉戌亥子丑
六五四三二十
九九九九九九九
壬日主에 寅月이라고는 하나 아직 찬 기운이 많다. 그렇지만 陽地에 풀 섶을 뒤지면 새싹이 올라오고 있으니 대자연의 숭고함에 어찌 인간이 되나 안 되나 할 것인가? 年日에 火氣는 있어나 아직 숨어 있는 이른 봄이라 따뜻하게 調節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生成原理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결실을 맺고 겨울이면 지하에 깊이 묻혀 있다가 봄에는 다시 새싹이 돋아나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데 식물이나 동물이나 똑 같이 날 때는 나고 죽을 때는 죽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다. 이와 같이 태어나는 시기로 설정하여 볼 때 陰陽五行 四象原理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正月 二月에는 木旺節이라 반드시 金을 써야 되나 四柱에 火氣가 透出되지 아니하여 따뜻한 불이나, 흙으로서 감싸주어야 하는 사주이다. 그런데 藏干에 暗藏되어 있는 火氣가 天干에 없으니 숨어 있는 火氣는 숨어 있을 따름이다. 고로 이 四柱는 財星이 寒微한 까닭이고, 官星으로 身弱한 몸이 어찌 돈을 들고 갈 힘이나 있겠는가. 身弱에 미미한 財星이라 詐欺犯이 많다. 官星이 太過하니 한탕주의가 아닌가. 한탕주의가 잘 되는 것 이 세상에 절대 없다. 도박꾼이 한탕주의가 아닌가. 그 분들 출세하기 힘 드는 것 三尺童子도 다 안다. 財星暗藏이니 떳떳한 糟糠之妻 꿈도 꾸지마라. 前妻子息 다섯 명에 하나같이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 하니 官星太過이기 때문이라.
차마 말은 하지 못하여 부부라도 감정할 때면 일대 일 相談이라고 하여 남자를 밖으로 나가게 하였고 상세한 질문에 그 여자 분은 거짓 없이 말을 해 달라고 했다. 만약 맞는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면 내가 감정을 잘 못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주가 틀려서 정확한 상담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더니 과연 맞았든지 눈물을 흘리는 자태가 측은하기 까지 하였다.
이 여자는 가다 오다 만난 사람이고, 전처와는 이혼이고, 아이는 삼남 삼녀인데 자기는 지금 만나서 아이는 없고 전처자식인데 전부 가출 남자애들은 감방에 있다고 하니 官星太過不及 無子가 틀림없음이다. 다만 사업자금 대어달라고 하기에 어디서 한 번 물어보고..... 하면서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親庭媤家(친정시가) 다 망하고 敗家亡身(패가망신) 하지 않으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인연을 맺지 마시오.”
고 하니 벌써 알고 지낸지가 삼년이 넘는다고 하며 현재까지 상상하지 못할 돈을 갖다 바쳤단다. 하도 불쌍하여 감정료도 받지 않고 보냈더니, 그 고마움에 간혹 전화로 지금도 통화를 하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산다고 소문은 듣는다고 한다. 하나가 새로운 것은 사기전과 십 삼 범 이라니 가히 사주에 보면 戌中 辛金이 年干 食傷과 相沖이니 權謀術數 巧妙하고, 戌中 財星墓地이니 一攫千金 돈 벌어도 한 방에 휴지조각 될 사주이다, 기대할 대운도 여의치 않으니 당신은 혼자 사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하였더니 살짝 웃는다. 하나가 아쉬운 것은 이 여자의 사주가 어떠한지를 보지 못했음이 아쉽다.
5. 黃泉가는 男便四柱 틀림없이 따로 있다.
경북청송 토굴 생활할 때 그 때가 십 수 년 전이며 한 여름이다. 팔월중순 경인데 토굴이 주왕산 某 사찰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그 웅대함이 그야말로 지리산으로 착각 할 정도로 장엄하다. 그 골짜기에 오래 살지는 못하고 몇 개월을 지내면서, 간혹 심히 더울 때면 아래로 내려와 사찰경내를 돌아보며 그늘에 책 한 권 들고 앉으면 삼매경이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여름이면 지금은 하도 가 본지가 오래 되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때는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너무도 시원해서 주왕산을 찾는 사람이 많고, 유명한 약수터가 많아서 년중 무휴일 정도다. 겨울이면 등산로가 너무 좋아 사람들이 삼삼오오 건강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여름철만 되면 시원한 계곡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야말로 명승 중에 명승지다.
그날도 잡목사이 그늘진 곳에 도원경을 헤매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나무 잎이 많으므로 그늘이 좋아서 그런지 산행 온 사람 세 분 정도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장소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나도 가만히 있다. 도저히 시끄러워 다른 곳으로 옮겨야 되겠기에 일어서니,
“우리가 방해가 되어서 갑니까?”
“아니요”
하면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이 음식 같이 듭시다”
하기에 하필 배도 출출한 시간이어서 잘 되었다. 저녁은 잊어도 되겠구나 하고 앉았다. 김밥과 통닭을 사와서 먹을 판 이였다. 행색이 우스운 꼴을 하고 있었으니 범상케 보지 않았으리라.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일어서는데 기분 나쁜 말을 한다.
“배가 많이 고파서 그렇게 먹는 것 같아 보이는데 더 더시지요.”
하기야 배가 많이 고팠지만 그렇게도 걸인 같이 보였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세상에 그네들은 측은하여 한 말이 내한테는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전 같으면 무슨 말을 내가 했을까? 없는 주제에 얻어먹을 복도 생겼으니 이 또한 귀인을 만났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꼭 도인 같아 보이는데 혹시 뭐 좀 아시면 한 번 물어봐도 되나요?”
수염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묻는 사람이 내가 사십대 갓 넘었으니 그분은 내 보다 두 살 적으니 삼십대 후반 정도 부인이다. 나머지 두 분도 그 또래 정도로 보인다.
내가 도사란 말을 자주 듣는데 어느 분은 그 소리를 그렇게 좋아 하는데 나는 지금 까지도 도사란 말은 별로가 아니고 전혀 좋아 하지 않는다. 그네들은 도술을 부리는 높은 사람으로 격상을 시켜서 하는 말인 것 같으니 겉으로 표는 내지 못하나 아무튼 듣기 싫은 말이다. 도사. 道人이란 말은 어느 한 길을 선택하여 초지일관하여 家(가)를 이룬 사람을 말 하는 것이고 그래서 儒道(유도), 柔道(유도), 跆拳道(태권도), 茶道(다도), 道術(도술). 書道(서도) 등이고, 道術(도술)은 도를 닦아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는 요술이나 술법인데, 이 분들이 말하는 도사란 後者(후자)를 말 하는 것이 틀림없으니 사실은 조화를 부리지 못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더 잘 알면서 도술 부리는 사람으로 격상을 시켜 말해주니 좋을 것이지만 조롱 섞인 면이 있기에 무조건 싫어한다.
“내 자리를 침범 했으니 일진광풍을 일으키는 도술을 부려서 당신들을 보내려고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음식을 얻어먹고 가만히 있는 평범한 사람이니 제발 도사란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을 하니 까르르 웃는다.
불편한 관계의 분위기는 해소 되었다. 내 한 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저 한 번 봐 주세요”
“밑도 끝도 없이 뭣을 보라고요?”
틀림없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고 그때만 해도 검은 흑발 이였으니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수염은 가슴을 덮었으니 도사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속은 텅텅 비어 있지만 어떻든 자기네들한테는 신기한 존재가 되었으니 음식 값은 해야 하겠다고 생년월일시를 물었고, 감정을 하였고 알아듣게 말씀을 해 드렸더니 그 이후로 인연이 닿아서 친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내한테는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坤命
乙壬癸壬 丙丁戊己庚辛壬
巳申卯辰 申酉戌亥子丑寅
六五四三二十
七七七七七七七
壬水가 卯月에 出生했으니 仲春之節 萬物이 生動하는 木氣 旺盛한 달이라 水氣 充滿한데 自坐 申金의 生을 받으니 初春에 水旺하니 太過不及이 이래서 妙味가 있다. 過하면 못 미치는 것과 진배가 없다 하였으니, 火土를 써서 制해야 되니 巳中戊土를 用하여야 할 것 같다. 戊土透出이 없다 하나 時支에 巳火가 干頭에 着根하여 千萬多幸이다. 이게 어찌된 것인가. 水局에 刑殺을 더하니 돈 때문에 경찰서 들락날락할 사주이다. 며칠 있다. 그 분은 경상도사람인데 이 먼 곳까지 왔다. 적중하였기에 다시 온 것이 아닌가? 그 때 주의 깊게 한 말이 기억이 나는데, 사별한 이후에 어느 분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과 살고 있는지가 몇 년 되었고 딸도 하나 생겼고, 그런대로 琴瑟도 있다고 했다. 사주가 夫星入墓라 잘은 몰라도 혹시 남편의 건강을 체크 하라고 일렀다. 그 이후 사는 것은 그런대로 살았으나 재작년 乙酉年 乙木이 用神剋이며 卯酉冲으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돌아가셨을 정도로 악운의 연속이었으니 어찌 사주팔자 속이랴! 問喪을 직접 갔다 와서 느끼는 바가 있었고, 인명은 在天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사주도 재천인가? 하고 인생무상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이 夫星入墓를 이해를 잘 못하는 학도들이 있는바, 어떤 학자는 官星入墓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이다. 구성 원리를 보면
* 甲乙日生이 柱中에 辛丑이 있을 때
* 丙丁日生이 柱中에 壬辰이 있을 때
* 戊己日生이 柱中에 乙未가 있을 때
* 庚辛日生이 柱中에 丙戌이 있을 때
* 壬癸日生이 柱中에 戊辰이 있을 때인데 모두 官星이 墓宮에 들어 있는 四柱(夫星入墓)이며, 戊戌도 또한 같다. 墓는 五行에 따라 정하는데 이 때, 金木水火土의 陰陽을 구분하지 않는다. 즉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女子사주에 明暗夫集이란 말이 있는데 나오고 숨고 하는 星이 교집이 되어 있으면 여자는 이 남자 저 남자 어지러운데 만나는 사람마다 묘지에 들어가는 것도 人力으로 어쩔 것인가.
여기서 유의할 사항이 있는데 공부를 좀 했다 하는 사람도 정리가 잘 안 되는 것이 이것인데 甲乙日生이 辛丑, 丙丁日生이 壬辰, 과 같이 꼭 墓위에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官殺이 干頭에 나타나있지 않더라고 官殺의 墓만 있으면 해당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例
庚甲辛甲
午寅丑子
이 경우는 甲木日生으로 夫星인 辛金이 丑入墓하고 있다. 또 庚金偏官이 있다 하나 午火 殺地하여 그 偏官도 傷하였으므로 남편을 사별하고, 개가해도 또 다시 喪夫를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재혼하나 다시 남편과 이별 또는 死別하게 되는 八字의 四柱이다.
6. 이 사주가 아까운 사주니라.
포항에서 산사 생활을 청산하고 雲水衲子(운수납자)인냥 떠돌았으니 영락없는 乞人(걸인)이다. 동편에 떠는 해는 희망이나 주지마는 서편에 지는 해를 보노라면 어느 곳에서 하루를 묵어야 되니 그야 말로 걱정이다. 산이라고 찾아보나 살 길이 막막하고 막일을 해서라도 좀 돈을 모아서 토굴이라도 차지하려고 생각을 해 보았으나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그런 뜻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경전이라도 읽어야지 하면서 산을 찾았는데 산에도 먹어야 살겠더라. 산에는 먹을 것이 있을 줄 알고 먹지 않아도 살 것 같아서 산만 찾았더니 배가 고플 때는 내려다보이는 것이 산 아래다.
그기에 간 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걸인이 소원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줄은 배고프니 모르겠는데, 배부르니 고플 때 생각 잊어지더라. 혼자서 걸음을 얼마나 걸었느냐고 물으면 쓸데없는 걸음만 걸었더라.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어차피 한 세상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살려고, 먹으려고, 권력을 잡으려고, 이기려고, 쟁탈전이다. 싸우면 승자와 패자가 틀림없이 가려 질 텐데, 이기는 자가 거의가 다 사기만 치고 공갈만 치니, 이것도 이기는 것일까? 세상이 보기 싫다. 이 이상 걸인이 더 걸인은 안 될 것이다. 라고 상상을 해 보니 천지가 환 하다. 지금의 행색이 비록 누추하나 남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으니, 너무 편하고 호의호식은 아니더라도 연명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고 이보다 더 못살지는 않겠지. 이런 헛생각을 하고 다녔으니 과연 대책 없는 사람이다. 남쪽에 구름 한 점 있더니 북쪽으로 바람이 불었으니 북쪽으로 갈 것이고,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갈 것이니 그야말로 南雲을 만들었으니 절묘한 雅號(아호)다. 어느 날 남쪽으로 불었으니 남쪽 지방에서 어느 여인을 만났는데 친구의 소개로 왔다고 하면서 만났다. 무슨 일인고 하니 물론 감정을 하러 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친구의 소개라고만 하고 한참을 있었더니 친한 친구인지라. 다시 한 번 고맙노라고 하면서 쳐다보니 깨끗하고 맑은 올해 사십 육세의 중년 부인 이였다. 그 해가 甲戌年 어느 봄날 이였으니 양력으로는 四月 十五日 辛未日(신미일)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온 누리에는 초록빛 들녘이 되었으리라.
사람도 깨끗하고, 학식도 있어 보이는데 어찌하여 궁금한 것이라도 있는지, 답답한 일이 없으면 아예 이런 곳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중산층이 철학관을 잘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사주 자주 보는 사람치고 잘 나가는 사람 없더라. 라는 말을 곧잘 하고, 감정을 자주 한다고 고쳐지지 않으며,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주 보는 것을 말린다. 사주가 좋으면 볼 때마다 희망이고 듣기 좋아서인지 몰라도, 사주가 어디 그렇기나 한가? 잔소리는 그만 하고 아까운 중년부인의 사주나 한 번 보자. 어찌하여 아까운 사주인지?
坤命
戊辛甲己 壬辛庚己戊丁丙乙
子丑戌丑 午巳辰卯寅丑子亥
七六五四三二十
一一一一一一一一
辛金이 戌月에 出生하였다. 九月秋金에 土가 厚하면 木을 使用하고, 壬水로 泄氣하여야 한다.
珠玉이 아무리 좋은 寶玉을 만들려고 하나, 주옥도 꿰어야 보배다. 土가 너무 넘치면 埋藏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月支 天干에 甲木이 있어 土의 氣運을 制御하니 病中에 藥神을 찾았으니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我身이 辛金인지라 印星의 氣運이 너무 剛健하여 土金으로 從할 수밖에 없다. 두꺼운 印星에 어찌 父母德 있으리오. 추명가에도 “印重四柱 子息福은 기대할 것 못되더라.” 라고 적고 있다. 사주에 子息星이 合되어서 化土하였으니 그나마도 나중에는 엄마 찾아 三萬里도 찾아오니 걱정 할 것 전혀 없다. 四柱중에 厚土重疊 하는 四柱 賤한 乞人 절대로 없다. 平生 사는 데는 걱정 없는 大格인 四柱이다. 土는 만물의 生長處요, 만물을 藏蓄시키는 庫藏이기 때문이다. 辛金이 氣勢를 올렸으니 軍人. 法官. 醫師. 警察로서 한 平生을 누렸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軍人이면 將星이요, 法官이면 長官이고, 醫師며는 病院長이 틀림없다.
이 분의 사주를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서 사주는 잘 맞지 않고 환경과 노력이 關鍵이라는 말을 累累히 한 기억이 있다.
비록 女性이지만, 二十代에 看護將校로 入隊하여 結婚을 하였으면 그 자리에 계속 勤務를 할 것이지 누구의 挽留로 陸軍大尉로 除隊를 하여 國家機關 病院 所長으로 勤務하다. 離婚하고 獨房留客이 되었으니 土金으로 從하는 사주 甲木 官星이 忌神이니 百年偕老 어려우니 이혼이 상책이다.
애처롭고 안타깝다. 大運이 木火之鄕으로 進行 하였으니 이 어찌 運命의 장난이 아닌가? 戌中에 丁火 偏官星이 男便이나, 忌神임을 어찌하랴. 月支戌土 하였으니 男便星이 墓宮이라 再婚 三婚 몇 번 해도 내 男便은 절대 없는 四柱이다. 山川大川 찾아가서 心身닦고 공부하여 선녀같이 살아가면, 큰 學者가 될 사주다. 지금도 만나기만 한다면 허리 굽혀 공부 하소. 하련만...... 어느 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합천 해인사에 있다 외국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국내에 있다고는 하나 연락이 닿지 않아 만날 길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당시 역학에 많은 관심과 예술에도 능히 소질을 갖춘 터라, 역학공부를 정확히 하였다면 틀림없이 논리성 있는 석학이 되었으리라, 명석한 두뇌는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나서 이분의 기억을 더듬으면 하도 긍정이고 순박하여 물과 같은 사람이다.
老子의 上善若水가 생각이 난다. 상선약수란? 最上의 善은 물과 같다. 이 세상 만물 중에서 가장 道와 닮은 것이 바로 물이다. 물은 부드럽고 약하며, 남과 다투지 않고, 자신을 낮춘다. 물을 닮은 사람! 그는 참으로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不爭 處衆人之所惡 故 機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 無尤
상선약수 구선리만물부쟁 처중인지소오 고 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 무우
解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道에 가깝다. 거처함은 땅을 잘하고, 마음은 깊음을 잘하고, 사귐은 어짐을 잘하고, 말은 믿음을 잘하고, 정치는 다스림을 잘하고, 일은 뛰어남을 잘하고, 움직임은 때맞음을, 잘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않으니 고로 허물이 없다. 다시 말하면,
가장 훌륭한 善을 가진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어째서 최상의 선을 지니는가? 물은 만물을 길러 주고 윤택하게 하지만 만물과 서로 다툴 줄 모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낮고 더러운 곳에 기꺼이 자리한다. 참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의 모습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윗자리에 앉고자 하나 물은 홀로 아랫자리에 앉으며, 모두들 높은 곳에 있고자 하나 물은 홀로 낮은 곳에 있는 것이다. 모두들 편안하고 쉬운 곳에 있고자 하지만 물은 홀로 험하고 어려운 곳에 있다. 모두들 깨끗한 곳에 있고자 하지만, 물은 홀로 더러운 곳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물이 자리하는 곳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이니 누구와 다투겠는가? 허물은 남과 다투기 때문에 생겨난다. 다투지 않는다면 아무런 허물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물은 최상의 선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老子(노자)는 물이 道와 가깝다고 말한다. 이처럼 물의 작용은 도의 작용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도는 무형하나 물은 유형하다. 때문에 道와 같다고 하지 않고 도와 가깝다고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 사람됨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말을 아주 하기를 아끼는 사람이라 말 많은 것에 恨(한)이 맺혀 그런가? 아무튼 욕심도 없고 흐르는 물 데로 사는 아까운 人才(인재)의 사주이다. 지금도 아마 물같이 흐르면서 세상을 觀照(관조)하며, 淸純(청순)하게 살고 있으리라 사료된다.
7. 남편 죽도록 기도한 사주
사는 곳이 산골이라 토굴까지 도착 하려면 동구를 지나 항상 마을을 지나가야 한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터라 반듯이 논둑이나 밭둑을 혹은 마을 옆 산길을 거쳐서 간다. 초봄이라 마른 풀 속에서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온다. 겨우내 잠들다 봄볕이 따사로워 기지개를 켜고 두터운 흙을 밀치고 얼굴을 내민다.
만물의 생동은 봄에서부터 시작이니 한여름의 무성함을 뽐내기도 전에 어느 듯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고 그 가지는 忍冬草 마냥 눈보라를 이기고 또 봄을 맞는다. 명리학의 十二運星(십이운성)을 보더라도 生하여 목욕을 하고 기저귀를 차서 성장하여 관록을 먹고 판서가 되니 그 다음이 영의정 정도가 된다. 그 이상은 임금이라 임금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그이상은 꿈도 꾸지 못하여 쇠퇴하고 병들어 죽으니 묘지로 간다. 묘지에서 모든 개체는 분열이 되어 흩어지고 결국은 끊어져서 다시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잉태하니 다음은 열 달 동안 배속에서 양성되어 또다시 생하는 과정이 열 두 과정이라서 십이운성 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물은 대 우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인간도 이 숭엄한 우주 앞에 그냥 숙연해 질 수 밖에 더 있겠는가.
갑술년 초봄 토굴에서 어느 보살의 부탁으로 포항 어느 암자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몇 개월 지낼 때다. 이곳은 평야도 아니고 산골도 아닌 아주 낮은 야산으로 쌓여져 있어 따뜻한 봄볕이 드는 것 같으나 독립가옥 몇 채씩 흩어져 있는 마을이라 봄이라야 바람이 좀 불 때면 몹시 춥다. 주지보살에게 누구이냐고 물었고 그랬더니 저 사람도 남편이 빨리 안 죽어서 큰일이다. 라고 대답하기에 하도 충격적인 기억이 있어서 여기에 적어본다. 새벽기도를 하러 오는 어느 보살 한 분이 며칠째 정성껏 기도를 하는 것을 본다. 하기야 남편 죽으라고 기도를 하랴마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이른 봄이라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는 꼭두새벽이어서 공양을 하는 방에 몸을 녹이기 위해 주인 보살과 같이 얘기를 하는 중 행자와 나는 아침공양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더니 주인보살이 묻는다.
“스님! 이 보살 한 번 감정해 주세요.” 하면서 내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또,
“남편이 안 죽어서 탈입니다.”
하도 어이없는 말에
“그러면 남편 죽어라고 기도 하러 오시나요.”
이렇게 말을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기도를 해서 죽을 것 같으면 계속 기도를 하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나 남편 흉을 보아도 나는 여자를 먼저 나무라는 성질인데, 죽는 기도도 불사하겠다는 말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요즈음은 책도 뒤지기 싫고 괜히 스트레스만 받는 요즈음 싸울 상대가 없어 근질근질 하던 차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훔쳐보았더니 꽤나 미모의 아름다운 한 삼십대 중반의 여자였다.
“예쁜 사람이 마음도 예뻐야지 죽는 기도를 하면 죽나요. 그러면 더 오래 살 것이며, 혹시 당신이 저 세상으로 갈지 모르지요,”
“나는 죽으면 안 되지요. 자식은 누가 키웁니까?”
“자식한테 아버지 죽으면 되느냐고 물어보시지요.”
“자식들도 아버지 죽도록 바랍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있나 어쩌다 이런 부인을 만난 그 남편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니 그 분이 불쌍하기 그지없다. 가정에서 修身齊家(수신제가)는 가장의 책임이고 그 책임을 지지 못할 때 그에 따른 식솔들은 무척 고생을 하며 오히려 죽기만을 바라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 나 혼자 잠깐 생각을 해 본다. 사돈이 남의 말 하는 것 같아 내가 오히려 기가 죽는다. 죄를 지었으니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조선사람 다 이런 말해도 나는 수신제가란 말을 못할 것 아닌가.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어느새 아침공양을 마쳤다. 아무튼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도 나는 이런 말을 여러 사람이 있으면 자주 한다. 가정에서 일어난 시어머니. 남편, 자식의 흉을 보는 사람은 욕을 먹는 사람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틀림없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심한 행위를 해도 교육적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남한테 남편허물, 자식허물을 얘기 하지 않는다. 싸움 자체가 상대성이 있기 때문이며 같지 않을 때는 소리가 절대로 나지 않는 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다. 자기의 잣대로 맞추어서 옳고 그럼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위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며, 그기에 동조를 하는 사람은 역시 같은 사람이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열을 내어서 말하는 사람은 싱거운 생각이 들어서 그칠 것이기에 옆에서 듣는 사람도 동조하고 한 술 더 떠서 같이 험담을 하다보면 자기도 같은 사람이 칠 팔 할은 되는 것이기에 듣지 말고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그런 말은 여기서 하지마라고 일침을 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집에서 가출을 하였으니 그 걱정은 없는데, 돌아다니다 고생만 하다가 죽으라는 기도를 우리 집에서도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남의 일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궁금하기도 하여 만세력을 놓고 사주를 풀어보기로 작정하고 자리를 잡았고, 그 분도 앞에 앉으라고 하니 공손하다. 사주를 구성하여 놓고 감정을 하니,
坤命
庚丁甲壬 丁戊己庚辛壬癸
子丑辰寅 酉戌亥子丑寅卯
六五四三二十一
一一一一一一
丁火가 三月季春에 生하니 琪花瑤草가 제때를 만났다. 불행히도 辰中癸水는 丁火하고는 因緣이 안되는지 相冲으로 傷하였다. 묘하게도 官殺混雜인데, 合去하고나니 壬水가 남았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辰中 癸水가 있으니 明暗夫集이다. 여자 사주에 이격을 놓은 자는 明夫, 暗夫가 交集되어 있다는 뜻이며 본남편과 해로를 못하고 여러 번 재가하여 夫君을 섬긴다는 격이다. 그래서 여자가 이격에 놓이면 여러 번 재혼하지 않으면 간부와 정을 맺었다는 것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이 된다. 만약 이 격과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는 오히려 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我身과 相沖이니 이 무슨 變故인고, 弱한 사주가 분명하다. 당연히 木火東南之鄕으로 흘러야 하나, 西北之鄕으로
흘러가니 모두 다 내 팔자 한탄 하고 살아야 한다. 남편 덕은 지독히도 없다. 살만하면 남편이 墓地에 가는 판국이라, 내 노력으로 살아야 한다. 과연 三十大運에 子辰水局 用神剋火하니 편편 간암으로 저승으로 갔고 후일담이지만 남편 살아 있을 때 벌써 남편구실을 하지 못했던지 옆집의 어느 유부남과 情分이 삼이웃이 다 알 정도로 공공연히 밀애를 속삭였으니 동네에서도 내어 놓고 숙덕공론이 旣定化(기정화) 되었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신랑 병석에 두고 남의 남자와 정분을 나누니 불쌍하게도 그 남자 부인이 알고 나서 이혼의 파경까지 갔으니 결과적으로 남편은 사망하고 그 집 부인은 저절로 친정에 갔으니 손대지 않고 일사천리로 새 산림을 차렸으니 그들로 보아서는 오히려 기쁜 일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가정을 꾸몄으니 한 집에 자식이 삼 명 씩이라 두 집을 합하여서 어린아이 여섯과 내외지간 합하니 여덟 명이 되므로 많이도 벌어야 공부를 시킬 것인데 십년 전이니 지금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지금 생각해도 병석에서 빨리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끼 있는 여자를 감시감독은 의처증과 같으니 부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괴롭혔는지 죽어라고 기도까지 하랴. 그렇다고 애정행각을 안할 수 도 없고 신랑 쳐다보니 말기 癌(암)이 어찌 산다고 기약을 하리오, 그렇다고 젊은 청춘을 불태울 수도 없고, 남편 시봉을 드니 말이라고 하는 말이 어느 놈 만나고 오느냐고 욱박지르고, 한 집안에서 시아버지 없는 집에 시어미까지 합세하여 며느리를 다그치니 세상만사 될 대로 되라. 애라 모르겠다. 시간만 있으면 은밀히 만나기도 하고 청춘사업에 착수하여 남편 죽고 새살림을 차렸으나 남의 자식까지 키워야 하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오는 운도 답답하니 평생 고생만 하다가 저승 갈 운명이로다.
8. 명당이란 있는가?
봄바람이 산들거리는 초봄이지만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는 초봄이다. 매화는 만개 했고, 양지쪽에는 진달래가 차가움을 무릎서고 쏘옥 꽃망울이 맺힌다. 여기는 평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은 산중도 아닌 야산 정도 되는 곳에 자리 잡은 한적한 어느 암자인데 아침부터 스님은 어디가 급히 바쁜지 차를 몰고 휭 가버린다.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 전화라도 오면 전해주고 할 터인데 그냥 가버리니 많이 바쁜 모양이다. 하기야 스님은 부처의 제자이니 모르는 중생이야 그냥 그렇게 볼 수밖에 더 있겠는가? 무슨 말을 해 봐야 간섭한다고 거리로 내 몰릴 수밖에 다른 수도 없다. 그래도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같이 멍하니 처다만 보니 시대가 좋은 탓에 기구에 앉아 조작만 하니 그냥 가 버린다. 과학문명 시대를 실감케 할 따름이다.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덕 이절에 스님은 길어야 일 년 대부분은 그 안에 절을 팔고 사고 주지스님이 바뀐다는 전에 있던 공양주 보살의 말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이 터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오는 스님마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그렇잖아도 무슨 까닭이 있으면 파고 들어가는 성질이라 내심 궁금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꽂이에 장풍득수를 찾아보았다. 내가 본다고 문리를 터득한 것도 아니고 하여 어려운 문자만 나열이 되어 있고 또 짧은 실력으로 되지도 않은 이론 전개만 해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알아야 맞는 말인지 그런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인데 그것 자체도 모르니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무엇이 장풍득수인지 풍수지리란 무엇인지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내가 이럴 때가 제일 광기가 나는 답답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어 보아야 맞는지 안 맞는지를 모르니 말이다. 이럴 때가 스승의 가르침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풍수란 단순히 地官(지관)정도로만 알아서 묘지를 쓸 때 풍수를 부른다. 는 정도 밖에는 지식이 없었으니 도대체 어떠한 학문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궁금증은 더해 갔다. 내가 풍수지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 지금부터 십 육 년 전이니 그 때 읽은 것을 여기에 나열 하고자 한다. 비교적 후일 본격적으로 책을 뒤지다 보니 이론에 근접한 면이 크므로,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공부를 한답시고 거드름을 피웠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또 더더욱 그 때 풍수지리가 무엇인지를 눈뜨게 한 계기가 되어 읽었던 책을 그대로 인용하여 이해에 도움이 있으면 하여 소개를 한다.
풍수지리를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바로 산과 물의 배합을 보는 학문으로 葬乘生起(장승생기)와 地理要逆(지리요역)이란 두 구절로 함축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공간과 산천에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무한한 氣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 氣는 때에 따라서 한곳에 모이기도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 살아 움직이는 氣를 生氣라 하는데 이를 또 에너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에너지는 눈에 보이거나 만져 볼 수도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힘을 나타낸다. 전기도 일종의 氣로 이는 인간이 감지할 수 없지만 陰極(음극). 陽極(양극)이 서로 합치면 열이나 힘을 낸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는 天氣(천기)가 있고 땅에는 地氣(지기)가 있고 大氣(대기)중에는 靈氣(영기) 즉 空氣(공기)가 있다. 이 生氣(생기)는 산의 모양과 물의 흐름과 바람에 따라 한 곳에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풍수지리란 바로 이 氣(기)가 한곳에 모이는 좋은 곳에 墓(묘)를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古書(고서)에
산천은 비록 靈(영)은 있지만 주인이 없고
屍骨(시골:송장)은 魂은 없지만 주인이 있다.
산천의 그런 靈氣(영기)를 빌어다가 시골에 정기를 불어 넣으면 자손을 돕는 陰功(음공)이 된다.
이렇게 옛 선인들은 죽어 말 못하는 송장이 그 자손에게는 음덕을 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葬乘生氣(장승생기)라는 말이 된다. 이를 쉽게 풀면, 장사를 잘 지내면 생기를 타는 것이니 生하고 生하므로 끊이지 아니한다.(葬乘生氣 生生不息) 이 말은 <사람은 입이 있어 말을 하다 보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땅은 입이 없어, 말은 못하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라는 萬古不變(만고불변)의 名言(명언)과도 一脈相通(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땅에다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땅은 우리에게 대가를 주지만, 땅을 소홀히 대하면 수확을 제대로 거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풍수지리가 생긴 이래 우리 선조들은 明堂(명당)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또한 우리도 역시 明堂(명당)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좋은 곳에 장사를 지내면 자기가 잘되고 자손이 잘된다는데 만약 돈이 있다면 수 만 금을 들여 明堂을 찾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李朝時代(이조시대)에 訟事(송사)를 보면 8할 이상이 山事(산사) 즉 묘지의 싸움이라는 기록이 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조시대는 이 풍수이론이 사람들의 골수에 박혀 자기 선친의 산소보다 더 좋은 명당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에 혹하여 자기 선조의 묘를 대여섯 번씩까지도 이장했던 것이다. 또 이장을 하여 자기 당대나 자손들이 발복한 것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수없이 들었으므로 그런 명당을 찾는다는 것은 그들에게서는 급선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조시대의 송사의 대부분이 산에 관한 분쟁이었던 것이라고 한다. “죽은 송장이 땅속에 들어가 생기를 받는다고 하여 그 생기가 자손에게 직접 영향을 준다는 데 대해서는 이해가 잘 안되나.....?
宋나라 때의 대학자 程顥(정호)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의 호를 明道(명도)라 한다. 그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屍骨, 즉 부모, 조상, 그의 자손은 同根(동근)이며, 同類(동류)이므로 同氣(동기)를 받는다.> 이 말은, 송장과 그 자손은 같은 피를 받고 태어난 같은 혈통인, 즉 같은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생가이나, 습관, 사상이 비슷한 동류여서 같은 뇌의 파장 즉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 같은 氣 즉 同氣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생기는 에너지이므로 生起가 있는 곳에는 熱(열)이 있고 열이 있는 곳에는 전류가 나타나며 전류는 파동을 일으킨다. 이는 진동, 즉 파장이요, 파장은 주파수가 같은 유전인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屍骨(시골:송장)이 평안하면 자손도 평안하고 그쪽이 위태하면 이쪽도 위태하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의학에 의하면 같은 혈통을 받은 부모형제자매 사이에는 뇌에서 나오는 파장 즉 주파수가 같다고 하는데 사람은 죽어 비록 숨은 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묘지에서 생기를 받는다면 송장의 주파수와 자손의 주파수가 같으므로 그 자손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연결이 되어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는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친척 중의 어떤 사람이 나타나 데리러 왔다는 꿈을 많이 꾼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장수하는 집안과 단명 하는 집안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송장이 생기를 받는다고 보는 이유는 풍수지리라는 이론이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이다.
송나라 때 孫이 귀한 집안에 張氏(장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5대를 계속 독자로 내려왔는데 그 사람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자기 代에 와서 손이 끊어지는가 하고 勞心焦思(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가 40이 훨씬 넘어서야 아들을 하나 낳아 愛之重之(애지중지) 기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 장씨 에게는 의식이 풍족했고, 심성 또한 착해 동네 사람한테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았다. 장씨는 자기 아들이 십 칠 팔세 쯤 되었을 때 자기가 죽으면 장사지낼 묘지를 미리 잡아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흔히 있는 일인 것이다. 그 가묘는 인근 고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地師(지사)에게 거금을 주고 잡은 吉所(길소)였다. 그런데 장씨가 60세 쯤 됐을 때 그만 그 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래서 자기가 죽으면 들어가려고 置標(치표)해 놓은 假墓(가묘)에 자기 아들을 장사 지냈다. 장씨는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어 버렸으니 조상에게 속죄하는 뜻에서, 또는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죽어서 원통하고 분해서, 자기 아들 묘 앞 성묘하는 곳에서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눈물로 보내며 살았다. 3년이 지났을 때 장씨의 얼굴은 주름살이 없어지고 기력이 솟아났다. 뿐만 아니라 다시 정력이 왕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3년 동안 생기가 모이는 묘 앞에서 매일 생기를 받고 살았으므로 다시 기력을 찾아 젊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어 3형제를 두었다고 하는데 모두 출세했다고 전한다.
지리는 逆(역)을 요한다는 말은 장사를 지낼 때 관이 들어가는 제일 중요하고 길한 지점을 혈이라 칭하는데 이 혈을 잡는 방법으로는 逆을 취한다는 말이다. 逆이란 거스른다는 뜻이니 반대로 찾으라는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山本靜 妙在動處, 水本動 奇在靜處(산본정 묘재동처, 수본동 기재정처)> 이 문구만 터득하면 풍수지리의 반 정도는 통달했을 정도로 깊이 있는 말이다. 즉 逆으로 길지, 즉 穴(혈)을 잡으라는 뜻이다. 수천 년 동안 비전되어 온 이 풍수지리는 동양 전통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학문으로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심오하여 위로는 천체로부터, 아래로는 지구에 이르는 모든 공간까지 포함되는 자연을 관찰하는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 공간과 산천에 있는 땅을 우리 인간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는 학문 중의 하나가 바로 풍수지리인 것이다. 이 풍수지리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어떤 장소에 어떤 건축 재료를 써서 어떤 구조로 집을 지으면 바람도 잘 막아 주고 햇빛도 최대한도로 받을 수 있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도 가장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으며 사람이 살기에 가장 편한 집터를 잡고 농지를 이용하는 데에도 제일 편리하고 좋은 곳을 찾는 陽宅法(양택법)과
둘째. 산천이 수려한 곳에 좋은 묘 자리를 잡는 陰宅法(음택법)이 있다. 음택에서 생기가 제일 많이 모이는 핵심이 되는 곳이 棺(관)이 들어가는 지점인데 이를 穴이라 한다. 陰宅은 바로 이 穴을 찾는 방법인데 이 穴을 잡는 방법에는 산과 물의 생긴 형태를 보고 혈을 찾는 形勢論(형세론)과 다른 하나는 음양오행에 의하여 길흉을 알아내는 理氣論(이기론)이 있다.
1. 形勢論(형세론)
이는 산이 생긴 형태를 보고 묘지의 길흉을 판단하는 方法으로 이에는 龍(용). 穴(혈). 砂(사). 水(수)와 명당이 있는데, 용혈사수를 풍수지리의 四果(사과)라 하며 여기에다 명당을 포함하여 五果라 한다.
가.龍(용)
龍이란 말은 산맥을 지칭하는 말이다. 왜 산맥을 가리켜 龍이라 하는가 하면 산의 흐름은 변화가 무쌍하여 밟아 보지 않고서는 알기가 곤란하다. 높이 솟았다가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치는가 하면 남쪽으로 가다가 어느새 서쪽으로 급히 길을 바꾸기도 한다. 때로는 들 가운데 숨었다가 다시 엉뚱한 곳에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강을 건너 다시 나타나기도 하여 산은 변화가 아주 심하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에서 날기도 하고 숨기도 하여 조화를 무궁무진하게 부리는 변화무쌍한 동물이 바로 龍인데, 산맥도 용처럼 변화가 심하다. 그래서 풍수지리에서는 산맥을 龍이라 비유하여 부르고 있는 것이다.
큰 산줄기를 우리는 산맥이라 부르고, 풍수지리에서는 幹龍(간룡)이라 한다. 태백산맥처럼 큰 산맥을 大幹龍(대간룡)이라 부르고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 차령산맥 같은 것은 小幹龍(소간룡)이라 한다. 이 소간룡에서 다시 굵은 가지로 뻗어 나가는데 이를 地枝龍(지지룡)이라 하며 여기에서 다시 가느다랗게 뻗은 가지를 소지룡이라 한다. 풍수지리에서는 龍 즉 산맥을 과일나무와 곧잘 비교한다.(前述)
龍이란 기복이 심하고 좌우로 꾸불꾸불 힘차게 움직이며, 산 전체가 두툼하여 살찐 것처럼 보이고 양질의 흙. 수목 등으로 우거져 아름다운 산을 吉龍(길룡)이라 한다. 기복도 없이 밋밋하고 곧게 흐른다거나, 돌산이거나, 혹은 흙도 없고 뾰족하여 각이 지거나 破碎(파쇄)한 산은 凶龍(흉룡)이라 한다. 凶龍이 되면 혈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하여도 진짜의 혈이 아니고 假穴(가혈)이 되기 쉽다. 이런 곳을 잘못 알고 묘를 쓴다면 그 子孫은 孫이 끊어진다든지 빈한하게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용에서 아름다운 혈을 맺고 참된 용에서 참된 혈을 맺는다는 것이 풍수지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이다. 龍은 범위가 너무 길고 높고 광활하여 보기가 힘들다. 용을 보는 법은 물 즉 水로 판단을 하는데 용이 가는 길에는 반드시 양쪽으로 물이 따르게 되어 있고, 물이 合하는 곳이 바로 용이 끝나는 곳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의 말씀에, <용을 보고자 하면 먼저 물을 관찰하라.>라는 名句가 있다. 산은 근본이 움직이지 않는 성질이 있으니 動處(동처) 즉 마디나 갑자기 변화된 곳에서 穴을 잡으라는 말이다. 또 물은 근본이 움직이는 것이므로 안정된 물이 좋다는 뜻으로, 저수지와 같이 고여 있는 물이 흐르는 물보다 더 좋다는 말이다.
穴은 큰 산 근처에서는 산의 맨 끝 쪽에 맺히고 야산에는 산의 꼭대기에 맺히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큰 산 근처는 바람이 무섭기 때문에 바람을 피하여 산 끝에 생기가 모이고 들녘의 야산에는 바람보다는 水의 침해가 무서우므로 높은 곳인 꼭대기에 생기가 모이기 때문이다.
용이 내려가다가 혈이 맺히기 전에 뒤로 마디가 한 개 내지 두세 개 있다. 이를 총칭하여 入首(입수)라 하며 이곳이 혈의 길흉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端正秀麗(단정수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비록 천리를 달려온 용이라 해도 入首 一節(입수일절)이 너무 나약하거나 세력이 없고 直長(직장)이 되거나 산란하다면 後龍(후룡)이 아무리 좋더라도 흉한 것이다.
용의 길흉을 보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되나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산의 앞쪽과 뒤쪽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전면은 寬平(관평)하고 溫厚(온후)하며 안정감이 드는 곳이 좋고, 후면은 粗惡(조악)하고 急缺(급결)하고 無情(무정)해야 吉하다고 본다.
山은 생긴 모양을 보고 五行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 五星이라 한다.
木火土金水를 오행이라 하는데 산도 이 오행으로 표현 할 수 있다. 火는 산봉우리가 삼각형처럼 뾰족한 것을 말하며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생긴 것이 특징이다.
木은 火山에 약간 살이 붙은 형태인데 각이 지고 곧은 산을 말하고, 金은 鐘(종)을 엎어 놓은 것처럼 둥근 맛을 주는 산이며, 水는 파도치는 물결처럼 曲(곡)과 節(절)이 있고, 土는 직사각형을 연상케 하는 각이 지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木山과 金山은 구분하기가 힘든데 木山은 金山보다 훨씬 높고 곧다. 金山이 木山보다 더 둥근 맛을 준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木星 火星 土星 金星 水星
산도 오행의 상생, 상극과 마찬가지로 상생을 좋아하고 상극을 싫어한다. 예를 들자면 火山 밑에 水山이 있다거나 木山 밑에 土山이 있는 등 相剋을 꺼리며 木山밑에 水山이나 火山이 있어 서로 상생해 주면 좋은 것이다. 풍수지리에서 제일 싫어하는 산이 있는데 곧은 산인 木山과 끝이 뾰족한 火山이다. 이 木山이나 火山 바로 아래에는 혈이 거의 없다는 말과 같다. 만약 木山이나 火山아래 혈을 잡으려면 산을 고쳐서 土山이나 金山으로 변환시켜 쓸 수 있지만 그 功力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힘든 일이다.
나. 穴(혈)
혈이란 문자 그대로구멍이란 뜻인데 보통 구멍이 아니라 산천의 생기가 한 곳에 모이는, 사람 하나 정도 빠듯하게 누울 정도인 棺槨(관곽)을 묻는 지점을 말한다. 鍼術(함술)에도 혈이 있는데 이곳에 침을 놓아야만 아픈 곳이 치료 되는 키포인트가 되는 지점이다. 풍수에서도 마찬가지로 좌우로 조금 이동하고 보아도 그럴듯하다면 그것은 혈이 아니고 菩薩面(보살면)이라 하는데 이는 좋은 吉地가 아니다. 혈의 구분은 크게 네 개로 나누어 窩穴(와혈). 鉗穴(겸혈). 乳穴(유혈). 突穴(돌혈)이 있다.
1) 窩穴(와혈)
이는 움막처럼 움푹 하게 들어간 穴로, 외형으로는 陰穴(음혈)에 속하나 理(이)로서는 陽穴(양혈)로 쓰인다. 와혈은 깊은 산속에 많이 있다. 이에는 아주 깊은 深窩(심와), 낮은 淺窩(천와), 좁은 穴인 狹窩(협와), 넓은 闊窩(활와)가 있다.
2)鉗穴(겸혈)
앉아서 양다리를 동그랗게 벌린 상태의 혈을 말하는데 鉗(감)자는 소나 개의 목에 씌우는 사슬을 말하나. 이는 산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많다. 외형으로는 음혈이나 理로는 양혈이 된다. 평지나 고산에 모두 있다.
3)乳穴(유혈)
사람의 인체를 보면 양팔 사이 가슴 위에 유방이 달렸듯이 혈의 양 옆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평지나 고산에 있다.
太祖山(뒤의 제일 높은 산)
祖 小祖山(主山)
宗
玄武頂
外 外
白 內 內 靑 入首
白 靑 穴星
虎 虎 龍 龍
水口 來水
去水 案山(穴의 앞에 있는 낮고가까운 山)
朝山(멀고 높은 山)
다. 砂
穴 주위에 배열되어 있는 모든 산을 총칭하여 砂(사)라 하는데 이 砂가 秀麗光彩(수려광채)하면 길하지만, 험악하거나 穴 을 둘러 싸 감지 않고 달아나면 흉하다. 四砂(사사)란 左靑龍(좌청룡), 右白虎(우백호), 前朱雀(전주작), 後玄武(후현무)를 말하는데, 이 모두 穴의 바람이나, 水浸(수침)의 피해가 닿지 않도록 호위하는 산들이다. 그러나 砂(사)가 穴(혈)보다 너무 높거나 강력하다면 主人을 무시하고 멸시한다 하여 좋지 않다. 이런 때에는 아들보다 딸 쪽으로 더 발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혈 앞에 있는 산 중에서 가장 가깝고 낮은 산을 案山(안산)이라 한다. 이 案山(안산)은 귀인이 책상에 걸터앉아서 政務(정무)를 논하는 것과 같이 有德(유덕)함을 보는 산으로 청룡이나 백호와 함께 이어져 있으면 吉地 중의 길지이다. 案山이 너무 멀면 흉하고 너무 가까워도 자손이 우둔하여 못쓴다고 한다.
혈의 앞에 보이는 산 중에 멀리 높이 솟은 사을 朝山(조산)이라 하는데 이 朝山(조산)은 겹겹이 많을수록 좋다. 이는 나에게 도움을 주는 귀인이 된다.
砂중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양쪽 산을 水口砂(수구사)라고 하는데 물이 나가는 쪽에 가로막는 산이 없이 넓게 횅하니 뚫려 있으면 아주 흉하여 극빈하게 된다는 것이다.
혈이 있고 없음은 水口 쪽에 달려 있다는 말로, 물이 나가는 쪽을 겹겹이 돌산으로 험악하게 막아 물이 곧게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水口의 막혀질 정도에 따라 길흉은 물론 大地인가 小地인가가 결정된다.
古書에 보면
물이 나가는 水口를 한 겹으로 막아 물이 못 흐르게 하면 그의 자손은 그 동네의 논밭을 모두 사들인다. (下砂臂逆收盡 子孫買盡世間田-하사비역수진, 자손매진세간전: 팔 臂)라고 씌여 있어, 下砂( 즉 水口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
이 水口山에는 華表山(화표면), 捍門(막을 한), 北辰(북진), 羅星(나산)이 있다. 華表(화표)란 水口, 즉 냇물의 양쪽에 기이한 봉우리가 정연하게 서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華表가 있으면 大穴(대혈)이 있다 한다.
捍門(한문)이란 수구의 水口의 양쪽에 두 개의 산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한문이 있으면 대길하다.
北辰(북진)은 水口에 거대한 바위가 기이한 형상으로 서 있는 것을 말하는데 極貴(극귀)한 혈이 北辰(북진) 안쪽에 있다고 한다.
羅星(나성)은 수구의 입구에 돌이나 산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나성 안쪽에 혈이 있으면 대길하다.
官星(관성)은 案山(안산) 너머로 쭉 뻗어 나간 산을 말하는데 너무 멀리 뻗어 나간 것은 불가하며 적당히 뾰족하게 뻗어 나간 것이라면 大官職(대관직)을 얻게 된다.
鬼星(귀성)은 穴星(혈성)뒤를 받쳐 주는 산이다. 너무 강력하면 해롭다고 하는데 直龍(직룡)은 鬼星(귀성)이 없고 橫龍(횡룡)일 때 귀성이 있는데 鬼星(귀성)이 있어야 大穴(대혈)이 있다
또 사람이 사는 주위 산 砂(사)의 美惡(미악)에 따라 사람도 결정된다고 한다.
살고 있는 집 주의의 산이 수려하면 사람도 수복을 누리고 砂가 살날하면 사람도 방탕하며, 砂가 粗惡(조악)하면 殺傷(살상)을 좋아하고, 砂가 평온하면 사람도 충신이 많고, 砂가 아름다우면 미인과 인물이 많이 나고, 砂가 등을 돌리면 사람이 사기성이 많고, 산이 偏側(편측)하면 아첨하는 사람이 많이 난다고 古書에 적혀 있다.
라. 水
물은 풍수지리에서 용과 더불어 음양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水 의 태도에 따라 용의 행방과 혈의 유무와 혈의 대소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은 본래 움직이는 물체니 지리에서는 逆은 치하여 靜함을 吉로 친다. 그래서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之玄屈曲(지현굴곡), 즉 갈 之자나 검을 玄자처럼 구불구불하게 흘러와서 산소 앞에 모여 주고 나가며, 들어오는 물도 똑바로 穴을 바라보지 않으며 성급하게 흘러 소리를 내며 흐르지 않고 혈 앞이나 옆을 반쯤 감싸고돌면 유정하여 大吉水(대길수)라 한다.
水는 龍의 穴脈(혈맥)으로 外氣(외기)라 하며 兩水(양수) 가운데에는 반드시 산이 있는데, 陽水가 만나는 곳이 龍이 끝나는 곳이다. 水가 飛走(비주)하면 생기가 흩어지고, 水가 모이면 龍이 끝나 氣가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지리학에서는,<산은 人丁을 관리하고 물은 재물을
리한다.>고 한다.
古書에
제일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물이 빤히 나가는 것이 보이는 곳에 묘를 쓰지 말라, 묘를 쓰고 서 있는 사이에 가계가 망하게 되는 것을 본다.
第一莫下去水地 立見退家計也(제일막하거수지 입견퇴가계야) 이렇게 씌여 있고 또,
물이 갈之자나 검을 玄자처럼 구부구비 흘러 나간다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종적을 묻지 말라.
水流之玄 莫問踪蹟(수류지현 막문종적) 라고 씌어 있다. 이 물은 吉水이니 묻지 말라는 뜻이다. 물이 구불구불하게 흘러 나가면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묘지를 감싸고도는 물은 抱水라 하여 길수이며, 여기에다 之玄屈曲(지현굴곡)을 겸하면 最吉水(최길수)라는 말이다. 다음에 혈 주위에 있는 샘에 대하여 설명해 보면,
가장 아름다운 물을 嘉泉(가천)이라고 하는데 우선 물맛이 달고 향기가 있으며 맑고 사시사철 물의 양이 변하지 않는 샘물이 이것이다.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경사가 있고 장수하며 이 嘉泉 주위에는 혈이 있다.
또 醴泉(예천)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샘물은 단맛이 나는 것으로 吉泉이라고 한다.
또, 싱겁고 비린내가 나는 물, 혹은 혼탁하여 먹을 수 없는 물, 쓸개 액처럼 누런색을 띤 푸르뎅뎅한 물, 색깔이 붉은 물, 떫은맛이 나는 물 등의 주위에 있는 혈은 쓸 만한 것이 없다.
瀑布水(폭포수)처럼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 바위틈에서 위로 솟아나는 물, 또는 온천 등은 흉한 샘으로 주위에는 혈이 없다는 것이다.
마. 명당
명당이란 원래 天子가 사는 집이라는 뜻인데 向明하여야 治할 수 있고 百官(백관)들을 모아 政論(정론)할 수 있는 곳이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함은 穴 앞의 평평한 땅을 말하는 데 크게 나누어 小明堂(소명당), 內明堂(내명당), 外明堂(외명당)으로 나눈다.
小明堂은 太極暈水(태극훈수)가 합하는 곳이라 했으니 묘소 앞의 성묘 하는 곳을 말한다. 이곳은 조아도 상관없다.
내명당은 청룡. 백호와 案山(안산)의 안은 모두 해당되며 穴에서 정위치라야 吉하며,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평해야 한다.
외명당은 案山(안산)너머 朝山(조산)안에 있는 산은 모두 해당되는데 매우 넓고 광활한 지역을 말한다.
古書의 말씀에 內明堂은 좁아서 氣를 모아 주어야 吉하고 外明堂은 넓어야 좋다.
內明堂團聚 外明堂寬展(내명당단취 외명당관전)
고 했다. 무릇 명당이라 하면 귀인이 병사를 사열하는 곳이라 하여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서는 안 된다.
또 명당에 따라서 사람도 나는데, 지나치게 좁은 명당은 어리석고 우둔하고 성격이 난폭한 자손이 나고, 너무 넓으면 자손이 허장성세가 심하고 용두사미적으로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내명당은 약간 좁은 듯해야 길하다고 한다. 古書에 보면,
<손을 뻗쳐서 닿을 만한 案山(안산)이 있으면 금전이 數萬貫(수만관)이다.
하였으니 내명당은 적당히 좁아야 좋다는 말이다.
이제까지는 龍과 穴의 종류, 砂, 水, 明堂에 대하여 논했다. 그러면 穴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반드시 주위의 여러 가지 징후나 조건 등을 보아서 穴을 잡는데 이를 穴證(혈증)이라 한다.
바. 穴證(혈증)
1) 朝山穴證法(조산혈증법)
조혈증법이란 朝山(조산)이 아름다운 쪽으로 穴이 붙는다는 뜻으로 古書에,
穴은 자기보다 못한 자와는 벗하지 않는다.
穴毋友不知己者(혈모우부지기자)
고 했으니, 이 말은 朝山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2) 明堂穴證法(명당혈증법)
명당이 똑바른 곳으로 혈이 맺는다는 말이다. 만약 명당이 기울면 가짜가 많기 때문이다.
3) 水勢證穴法(수세혈증법)
물이 혈을 안고 도는 쪽이나, 물이 모이는 쪽으로 혈이 있다는 말이다. 혈은 陰이요, 水는 陽이니 서로 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4) 樂山證穴(낙산증혈)
樂山(낙산)이라 함은 穴 뒤에 穴을 도와주는 산을 말하는데 樂山證穴은 주로 橫龍(횡룡)에서 볼 수 있는데 主山 즉 穴이 맺힌 산이 높지 않거나 한쪽으로 어긋나면 主山너머로 主山보다 높은 특이한 산인 樂山이 있어야 하는데 이 樂山이 있는 쪽으로 穴이 있다는 뜻이다.
5) 龍虎證穴(용호증혈)
穴을 양쪽에서 감싸고 있는 靑龍이나 白虎가 다정한 쪽으로 穴이 생긴다는 말이다.
6) 纏護證穴(전호증혈)
전호라 함은 貴人을 보호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주위에 있는 산 중에서 穴을 호위하는 가장 아름다운 산이 많이 있는 쪽으로 穴이 있다는 말이다.
7) 脣氈證穴(모전증혈:털로짠 모직물 전)
순전이란 혈 앞의 小明堂 밑으로 판판한 요나 방석자리 같은 곳을 말한다. 龍이 結穴(결혈)을 하면 반드시 순전에 餘氣(여기)가 남아 있다고 하여 순전이 없으면 結穴이 안 된다는 것이다. 穴도 순전이 있는 쪽으로 맺힌다.
8)天心十道證穴(천심십도증혈)
四方의 산의 세력이 서로 비슷하면 穴은 그 중앙에 結作한다는 뜻이다.
2. 理氣論(이기론)
이제까지는 산과 물의 형태를 보고 形勢論(형세론)으로 吉凶을 판단했다. 다음에는 음양오행을 보고 穴, 즉 墓地(묘지)의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인 이기론이다.
풍수지리 하면 陽宅과 陰宅을 말함이며, 理氣하면 이 모든 法度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 풍수지리는 河圖洛書(하도락서)로부터 시작하여 음양오행에다가 바탕을 두고 발전해 왔다.
古書에 보면,
군자는 神의공격을 받더라도 능히 벗어나 天命까지도 고칠 수 있으며 이치로써 생기를 완전히 탈 수 있게 하고 쇠퇴한 것을 왕성하게 바꿀 수 있으며 재앙을 고쳐 福이 되게 功이 神에게 있다면 빼앗아 내개로 오게 할 수 있고 명령이 하늘에 있다면 고쳐서 내게로 돌릴 수 있다고 하였다.
君子奪神功改天命 全乘生氣之理 衷變爲旺 易禍爲福 功在神奪之自我 明在賤改之自我(군자탈신공개천명 전승생기지리 이변위왕 이화위복 공재신탈지자아 명재천개지자아)
이는 이기를 잘하면 吉凶禍福도 내 마음대로 고쳐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기론은 주로 葬法(장법)인데, 葬法이란 묘를 쓰는데 음양오행에 맞도록 가장 합리적으로 쓰는 방법을 말한다. 이 장법에는 여러 學說이 많으나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론이 楊救貧(양구빈)의 十二倒丈法(십이도장법)과 요금정의 十六葬法(십육장법)이 있다. 이 장법을 필히 사용하는 이유는 殺을 피하고 吉을 取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古書에 보면,
天地도 전능할 수 없고 聖人도 완전함이 없다.
天地無全能 聖賢無全功(천지무전능 성현무전공)
이라는 말이 있다. 溶血(용혈)에서도 역시 완전함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葬法을 써서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은 취하여 인력으로 고칠 것은 고쳐서 사용하면 福地(복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는 기본이 되는 四象葬法(사상장법)이 있다.
가. 四象葬法(사상장법)
첫째로 用盖法(용개법)이 있다. 이 법은 모든 흉이 되는 살을 제압하는 방법이며,
둘째 用撞法(용당법)은 모든 殺을 묻어버리는 方法이다.
셋째 用衣法(용의법)은 모든 殺을 피하여 묘를 쓰는 방법이다.
넷째 用粘法(용점법)은 脫殺法(탈살법)으로, 殺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나. 羅經(나경)
각종 神殺(신살)을 알기 이해서는 羅經이라는 기구가 필요하다. 이 羅經은 차고 다닌다는 쇠(옛날에는 자침을 쇠라 하였음)라 하여 佩鐵(패철), 또는 지남철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羅經이 옳은 말이다.
나경은 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지남철에다가 각종 殺을 도표로 표시하여 보기 쉽게 만든 것으로 地官(지관)들이 사용하는 필수적인 기구이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에서 나경이 없었다면 캄캄한 장님처럼 24방위는커녕 음양도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고 길흉화복과 旺相休囚(왕상휴수)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나경은 중국의 황제시대부터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 나경이라고 이름을 짓게 된 동기는 包羅萬象(포라만상)에서 羅 자를 취하고 經綸天地(경륜천지)에서 經자를 취하여 羅經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羅經은 子가 正北이고 午 자가 正南이므로 方向을 알아볼 때는 羅經의 子午선에 맞추면 된다.
제1층은 黃泉殺(황천살)을 보는 층인데 坐山(좌산)으로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본다.
제2층은 四路黃泉殺(사로황천살) 또는 八曜殺(팔요살)이라 하기도 하는데 방향으로 水의 來去를 본다.
제3층은 雙山五行(쌍산오행) 또는 三合으로, 龍의 旺相休囚(왕상휴수)를 알고자 할 때 사용된다.
제4층은 地盤正針(지반정침)으로 來龍(래룡)과 坐向(좌향)을 볼 때 사용한다. 地盤正針은 龍의 氣運(기운) 받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제5층은 穿山 (뚫을 천) 72룡으로 來龍의 생사를 파악하는데 사용하며 透地(수지) 60龍과 음양 관계인 地紀(지기)에 해당된다.
제6층은 人盤中針(인반중침)으로 산천 分野(분야)를 측정하고 砂를 보는 데 사용하며 人盤中針(인반중침)으로 현재살고 있는 사람의 영고성쇠를 알 수 있다.
제7층은 透地60龍으로, 용에서 穴로 氣가 들어오는 여부를 보는 것이다.
제8층은 天盤縫針(천반봉침)으로, 물의 來往을 측정하며 坐向을 잡을 때 地盤正針과 함께 사용한다. 이 天盤縫針은 坐向과 음양배합을 본다.
제9층은 一百二十分金인데 生氣脈(생기맥)의 旺相을 보는 것이다.
다. 殺
理氣論(이기론)을 배우는 중요한 원인은 羅經(나경)으로 각종 殺의 길흉여부를 보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사용하는 殺은 삼백여 종이 있으나 여기서는 앚 중요한 몇 가지 殺만 예기하면
1) 戊己殺(무기살)
이 살은 나경의 제 5층인 천산 72룡과 7층인 투지육십용(透地六十龍)으로 길흉을 보는 것이다.
戊己殺을 보는 방법은 우선 羅經을 過峽(과협)에서 正北의 방위에 맞추어 놓는다. 過峽(과협)은 穴이 맺은 바로 그 入首의 바로 뒤를 보면 음폭 패인 장소를 말하는데 이곳을 結咽處(결인처) 또는 束氣脈(속기맥)이라 한다.
과협에서 나경으로 산 위를 보면 龍이 어느 方向으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龍이 다음 표의 戊子旬(무자순)으로 들어오면 戊己殺이라 大凶하여 그곳은 묘를 쓸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甲子旬, 戊子旬,壬子旬은 凶하고, 丙子旬, 庚子旬에 들어 있는 五行에는 묘를 쓸 수 있다.
첫댓글 남운 나는 자네의 무모하리만치 돌발적인 생각과 행동을 사랑한다네, 내잣대로 비추어볼때 자네는 공부가 많이 되어있는 훌륭한 학자라고 감히 말할수있다네 그기다가 꾸밈없는 말과 행동 그리고 행태 .소박한 그마음 까지도 ....남운 친구이지만 무한한 존경심과 찬사를 보냅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종말아! 요즈음은 그래도 천사다. 치환이가 옆에서 얼마나 챙기는지 아나? 내 입장에서 격려를 많이 한다. 못 이긴척 하고 그 따사로움을 느끼니 사람 다 됐다.그렇잖았으면 벌써 산으로 올라갔다. 적응이 안되니 말이다. 아뭏든 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