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동(桃源洞)
도원동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장천리(長川里)와 독각려(獨脚里)에 속해있던 곳이다.
장친리와 독각리는 지금의 미추홀구 숭의동 지역이 중심이었는데, 1914년 일본인들이 이 두 곳에서 일부씩을 떼어 붙여 도산정(桃山町)이라는 동네를 새로 만들었다.
‘도산(桃山)’은 ‘복숭아〈山〉 산(山)’이라는 한자의 뜻 그대로 복숭아밭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1933년 일본인들이 펴낸 「인천부사(仁川府史)」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도산°兆山)이라는 명칭은 이 산 기슭에서 농업을 하던 중야(仲野)씨가 복승아 과수원을 개척한 일로 인해서 생긴 것이다. 산책을 하기에 적당한 데가 없었던 인천에서는 이 과수원이 생기자마자 지팡이를 짚고 이 지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간편한 휴양지가 되었다. …(중략)… 도산과 덕생원(德生院:현재 인천중앙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 일대의 논밭은 현재 인천부(仁川府) 소유지가 돼있으나 원래는 국유지로 일본 사과가 재배되었다.”
이를 통해 ‘도산’이 복승아밭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그 주변에 다른 과수원들도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동네의 복승아 밭은 꽤나 넓었던 것 같은데, 그 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없어져 버렸다.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갈 곳이 없던 사람들이 계속 이곳으로 모여들어 밭을 없애고 대신 살 곳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원동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일본식 이름 도산정(桃山町)을 광복 뒤인 1946년에 새로 고쳐 만든 이름이다. 고쳤다고는 하지만 ‘복승아 산’이라는 뜻의 ‘도산(桃山)’이나 ‘복승아의 근원’ 이라는 뜻의 ‘도원⑾‘源)’이나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도원’은 원래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생긴 말이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작은 강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처음 보는 복숭아나무 숲에 들어서게 되었다. 숲에는 향기로운 꽃과 풀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신기하게 여긴 어부가 숲의 끝까지 가자 강이 시작되는 곳에 산이 나오고,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 좁은 통로를 따라 가보니 환하게 트인 곳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집들이 가지런하고, 비옥한 밭과 아름다운 연못, 나무들이 있었다. 거기서 사람들이 즐겁게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한 사람이 어부를 보고는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어부는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어부를 집으로 초대해 술과 좋은 음식을 대접했고, 주변 다른 마을 사람들도 찾아왔다. 그들은 “우리 조상들
이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온 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부는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며 잘 대접을 받고 헤어졌는데 누군가가 “바깥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부는 돌아오는 길에 곳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 고을 태수(太守)를 찾아가 겪은 일을 모두 말했다. 이에 태수는 곧 사람들을 보내 어부가 갔던 곳을 찾게 했다. 그러나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
이 이야기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이를 줄인 ‘도원(桃源)’이라는 말이 생겼다. 도연명뿐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과 후세(後世) 사람들이 그린, 신선(神仙)들이나 살 만한 이상향(理想鄕)을 뜻한다.
따라서 이 ‘도원’이 이 동네의 새로운 이름으로 붙을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광복이 된 뒤에 ‘도산정’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쓸 수는 없으니까 이와는 조금 다르게, 듣기 좋게 만든 이름이 도원일 것이다.
대구광역시 달서구에도 똑같은 한자를 쓰는 도원동이 있는데, 산골에 있는 이곳은 무릉도원처럼 정말로 경치가 아름다워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인천의 도원동은 이전에 이곳에 있던 복숭아밭 때문에 생긴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1994년7월 이곳에 문을 연 경인전철 역사(驛舍)도 ‘도원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도원역은 1897년 3월22일 경인철도 기공식이 열렸던 곳인 옛 우각리(牛角里)에 세운 것으로, 지금 역사 한편에는 이에 대한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런 사연들을 고려했다면 이 역사의 이름은 ‘도원역’보다는 ‘우각역’이나 ‘쇠뿔고개역’이라 붙이는 것이 한결 좋았을 것이다. 일본식 이름 ‘도산정’의 티를 벗어버리지 못한 ‘도원’을 굳이 거듭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중 우각(牛角)은 이 동네의 원 이름인 쇠뿔고개의 ‘쇠뿔’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이보다 훨씬 정감 있고, 뜻도 분명하게 ‘쇠뿔고개역’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가장 좋았을 것 같다. 쇠불고개는 지금의 도왼역사 바로 옆, 인천세무서가 있는 언덕 일대를 가리킨다. (→ ‘쇠뿔고개’에 대해서는 동구 ‘금곡동’ 편 참고)
늦었다고 할 이유가 없으니 마음만 있다면 이제라도 그 이름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