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레모 가요제 (산레모 음악제. Sanremo Music Festival) 이태리 음악인 Canzone(칸초네)라고 하면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나폴리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이탈리아 음악 변천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 민요와 마찬가지로 나폴리에도 그들의 민요가 있었는데 이를 Napolet
ana(나폴레따나)라고 부른다. 나폴레따나가 깐쪼네의 전체를 대표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폴레따나는 이탈리아 깐쪼네의 맥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O Sole Mio(오, 솔레 미오), Santa Lucia(산타 루치아), Funiculi, Funicula(후니쿨 리, 후니쿨라)가 바로 이런 곡들이 나폴리 지방의 민요다. 가사도 이탈리아어가 아닌 나폴리어였다. 지중해의 항구도시 나폴리는 주변 여러 나라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노래를 사랑하고 즐기던 나폴리 사람들은 여럿이 그룹을 지어서 노래 자랑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노래 대회로 이어 졌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콩쿨이란 단어가 나폴리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말은 바로 나폴리 변두리 Piedigrotta(삐에디그로따)라는 곳에서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에 생긴 이탈리아의 첫 가요제였다.
이 나폴리 가요제의 맥을 이은 것이 산레모 가요제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 산레모는 서쪽으로는 프랑스 국경에서 부터 동쪽
으로는 이탈리아의 중부 토스카나 지방까지 아주 큰 해안선을 그리며 이어져 있는데 1년 내내 꽃이 피는 꽃의 도시이다. 산레모가 시를 홍보할 목적으로 1951년부터 가요제를 개최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대회였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서 이제는 이탈리아의 자랑거리이자 가요제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작은 항구 도시를 홍보 하고자 그리고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나폴리를 최대의 관광 지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대회가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가요제가 된 것이다. 산레모 가요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는 1958년에 최우수곡으로 뽑힌 《볼라레》
가 세계적으로 히트함으로써 국제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 산레모 가요제 초기에는 한 가수가 여러 곡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 노래를 두 가수가 부른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한 노래를 두명의 가수가 부르는 형식은 이태리어로 한가수가 부르고 다른 가수는 공동 출전으로 다른 나라 언어로 부른 형식이었다. 외국 가수들이 경쟁부문에 참여한 해도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호세 펠리치아노, 로베르토 카를로스, 루이스 미구엘, 안드레아 보첼리 등의 가수가 입상자 명단에 당당히 올라 있다. 최근의 산레모 가요제는 5일에 걸쳐 진행된다. 기성부분인 Campioni (혹은 Big), 신인부분인 Giovani(혹은 Nuovi Protagonisti) 그리고 초청 가수 Superospiti Internazionali 3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페스티발로 발전했다. 산레모 가요제에서 Vincitori(빈치또리) 즉, 우승자들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는 가수들은 기성부문 1,2,3위 그리고 신인부문1위 뿐이다. 빈치또리에 오르게되면 1년간의 인기와 부를 보장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이태리에서는 최고의 가수로 인정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레코드회사의 로비와 심사 비리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는 이외에도 텔레비젼 시청자들의 투표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 Canzonis
sima(깐쪼니씨마)라는 가요제가 있고, 이탈리아 내 큰 도시를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Cantagiro(깐따지로), 신인가요제 Castrocaro(까스뜨로까로), 연말에 그해의 최고 인기 가수와 노래를 뽑는 Estivalbar(페스티발바) 등 수많은 가요제가 펼쳐진다.
산레모 가요제는 올해가 70회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5년이 지나도록 관광업이 회복되지 않자 산레모의 똑똑한 지도층들이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사흘 동안 가요제를 열기로 한 게 산레모 가요제의 출발이었다. 1951년 막을 올린 가요제는 처음엔 라디오로 이탈리아에만 중계됐으나 1955년 TV 중계가 시작되고 마지막 날 결선이 인접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에까지 생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 노래를 이탈리아 가수들이 부르도록 한 규정도 얼마 후 외국인들이 자기네 말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바뀌어 인기는 더 높아졌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많은 가수
들이 원곡으로, 번안곡으로 그 노래들을 불렀다. 1970년대에는 소위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던 한 통기타 가수가 라디오에서 “죽기 전에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하는 게 꿈”이라고 말 하던 게 기억난다. 그도 늙고 우리도 늙었다. 하지만 그때 그 노래들은 여전히 젊다. 지중해가 그런 것처럼. (아주경제 정승호 논술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