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3때까지 충무로에 살았다. 그래서 영화관 앞을 지나다닐 기회가 아주 많았다. 하지만 정작 들어가 본적은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때는 학교에 가려면 대한극장 앞을 지나가야 했다. 가끔은 아침부터 영화표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나는 신기하게 생각하곤 했다. '저 안에서 도대체 뭐가 하길래...' 생각하며. 처음엔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이 나중엔 '나도 영화관 안에 한 번 들어가 봤으면...' 하는 바램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때 내게 영화관에 가 볼 기회가 생겼다. 대한극장으로 막내 이모의 손을 잡고 영화 '구니스'를 보러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나와 열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때 이모는 방학이면 내 탐구 생활도 도와주고, 독후감의 맞춤법도 고쳐 주고, 남자 친구 만나러 갈 때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애 엄마가 되어 있지만. 영화관 안에는 우리집의 방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훨씬 큰 스크린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큰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영화 '구니스'는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구니스' 보다도 나를 매료시킨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짜리의 시선을 온통 스크린에서 꼼짝 못하도록 만든 것. 바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예고편이었다. 그 예고편으로 본 영화가 '백야'이다. 어떤 까만 아저씨가 나와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뒷 배경으로 두 남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내게는 이모가 사준 팝콘도 안중에 없었다. 그때는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Say you say me를 '세이유 세이미' 라고 적어놓고 가사를 한글로 받아 적으며 외우곤 했다. 물론 아주 형편없는 발음으로 말이다.
2. 엄마와 '킬링 필드'
충무로에 살았기 때문인지 우리 부모님은 가끔은 대한극장으로 두 분이서 오붓하게 영화를 보러 가시곤 했다. 아마 초등학교 오학년때쯤 이었을 거다. 텔레비젼의 명화극장에서 '킬링 필드'가 하던 날. 엄마는 내게 그 영화를 꼭 보라고 하셨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라면서. 분명 이 영화도 아빠와 두 분이서 오붓하게 보고 오신 영화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엄마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혼자 보셨을리는 없고 아빠와 같이 보신 것일 게다. 처녀 시절 엄마는 영화를 좋아하는 아빠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그 시절의 아빠는 휴일이면 엄마 손을 꼭 잡고 영화관에 데려가시곤 했단다. 그 무렵 우리집엔 비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텔레비젼에서 영화가 할 때면 열심히 보곤 했다. 사실 '킬링 필드'는 아직 초등학생인 내게는 좀 지루했다. 하지만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사실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나 배우의 이름 같은 것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확실히 기억난다. 용서를 비는 한 남자에게 다른 남자가 용서할 것이 없다며 부둥켜 안는 장면, 그리고 Say you say me 이후 나를 전율시킨 Imagine의 멜로디도.
3. 윤승이와 '적과의 동침'
윤승이와 나는 중2때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되었고 같은 집에 살았다. 그 집은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나는 2층에 살았고 윤승이는 1층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같이 등교하고 오후에 같이 하교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같은 집에 살다 보니 밤늦게 까지 윤승이네 집에서 놀아도 부모님이 걱정하실 일이 별로 없었고, 방학이면 우리는 거의 붙어 지내다 시피 했다. 나는 수업이 일찍 끝나는 금요일이면 종종 윤승이와 같이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보곤 했는데, 그 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비디오 가게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인지를 신중히 고르고 있었다. 그러다 고르게 된 것이 '적과의 동침'. 카운터에 '적과의 동침' 테잎을 내미는 우리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물으셨다. "학생들 몇 학년이야?" "2학년 인데요" "고2 정도면 봐도 되겠네" "......?" 조숙해 보이는 윤승이 때문에 아주머니는 중2인 우리를 고2로 착각하신 거였다. 하여튼 우리는 윤승이네 집에서 우리가 빌려온 비디오 테잎을 보기 시작했다. 마침 윤승이 어머님도 계셔서 같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배드신이 나오자 윤승이 어머님은 벌떡 일어나셨다. "얘, 이건 너희들이 보기엔 너무 야하다..." 하시며, 입고 계신 월남치마를 펼쳐 우리들이 못 보도록 앞을 가로 막으셨다. 우리도 알건 웬만큼 다 아는데... 그래도 윤승이 어머님은 순진한 우리들이 보기엔 너무 야한 장면이라며 한사코 못보게 하셨다. 하지만 그날 오후 늦게 윤승이 어머님이 시장에 가신 뒤에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4. 중3 같은 반 친구들과 '와일드 오키드 2'
부모님이 시골에 가시고 혼자 집을 보게된 중3 가을의 어느 토요일. 나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집에서 같이 잘 수 있는지.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우리집에 모이게 된 친구들은 모두 네 명. 우리는 밤새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를 궁리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그 중 우리 모두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야한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보자는 것이었다. 한참 성에 호기심이 많은 나이였던 우리는 누가 어떻게 비디오 테잎을 빌려올 것인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요즘처럼 단속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생 정도로만 보이면 연소자 관람불가를 빌려다 볼 수 있었다. 가장 조숙해 보이는 친구 두 명이 엄마의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고는 비디오 가게에 갔다. 우리는 과연 비디오 가게에 간 친구들이 성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테잎을 빌려올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그 친구들을 기다렸다. 조금 뒤 두 명의 친구가 돌아왔고 테잎을 빌려왔다. 가급적이면 제목이 원초적인 것으로, 케이스의 사진이 야한 것으로, 그리고 케이스 뒷면의 줄거리를 읽고 고심하여 빌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와일드 오키드 2' 였다. 우리는 모두 기대에 부풀어 그 영화를 봤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하지만 영화가 끝난후 공통적인 우리의 의견은 너무 멋있다는 것이었다. 기대한 만큼 야하진 않았지만 케스트에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보며 우리 모두는 한동안 필통에 그의 이름을 적어놓고 다녔다.
5. 성은이와 '구름속의 산책'
성은이는 내 고등학교 단짝이었다. 고2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성은이와 '구름속의 산책'을 보러 갔다. 그 당시 나는 키아누 리브스를 좋아하고 있던 터라, 영화가 끝난 후 성은이에게 한 번 더 보자고 제의를 했다. 성은이는 좋다고 했다. 영화를 두 번째 보던 도중 나는 옆에 있는 성은이가 너무 조용하다 싶어 보았더니 성은이는 자고 있었다. 얼마나 지루했으면 저렇게 잘까 싶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착한 성은이는 내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꾹 참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3 수능이 끝난 후 성은이로 부터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게 되었다며 꼭 들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랑의 스튜디오처럼 남학생과 여학생을 미팅시켜 주는 코너에 나가게 된 것인데, 그 날 상대편 남학생이 자기는 '구름속의 산책'을 인상깊게 봤는데 혹시 봤느냐고 성은이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자 성은이가 말하길 "저 작년에 친구와 영화관에서 봤는데요. 너무 좋아서 두 번 봤어요..."
6. 은형이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 은형이네 집에서 오랫만에 하룻밤 같이 보내게 되었다. 은형이 방에는 내가 생일 때 선물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포스터 판넬이 붙어 있는데, 수중 장면인 그 포스터는 불을 켜고 보면 흐리멍텅해 보이지만 불을 끄고 보면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은형이는 그 포스터를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은형이 방의 창문은 '지독한 사랑'에서 두 주인공이 도피해 가서 둘만의 살림방을 차리는 그 방의 창문과 닮았다. 저녁을 먹고 은형이가 "비디오 볼까?" 라고 물었고 우리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빌려왔다. 프란체스카가 그토록 원하는 킨케이드에게 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우는 장면에서는 은형이와 나, 둘 다 휴지를 옆에 갖다 놓고 펑펑 울었다. 그들의 이루지 못한 22년간의 사랑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은형인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이루어진 거라 했다. "꼭 같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은형이가 말했다. 그렇게 밤새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새벽에 같이 화장실을 갔다. 은형이네 집은 수원인데, 화장실은 마당 구석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다. 화장실이란 말보다 변소란 말이 더 잘 어울릴... 내가 먼저 들어가고 은형이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은형이가 들어가고 내가 문 앞에 서 있고. 화장실 지붕 위에 무성히 자란 호박, 또 그 위의 별,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줄. 고3때 독서실에서 밤 샌다고 하고는 종종 은형이네 집에서 자곤 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화장실 안에 있는 은형이에게 말했다. "은형아, 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책으로 읽었어?" "응..." "거기 내가 아주 좋아하는 글귀가 있거든" "뭔데?"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와 헤어진 뒤에 한 말이야... '나는 마음에 먼지를 안은 채 살고 있소'..."
7. 상기와 '8월의 크리스마스'
상기는 대학 와서 알게된 아주 괜찮은 녀석이다. 나와 상기는 이성을 뛰어 넘은 친구 사이다. 만약 편의점에 갔다가 계산하는 여자가 마음에 들면 보통의 남자들은 "시간 있어요?" 라고 물어 볼텐데, 상기는 "많이 팔려요?" 라고 묻는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수줍음이 많은 아이다. 재작년 여름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해서 하루종일 팥빙수 먹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던 상기, 그런 상기는 작년 1월에 군대를 갔고 이번 2월에 상병 휴가를 나왔다가 나와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종로 3가에서 만났고 우리가 예매한 영화 시작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뭐 먹으러 갈까?" 하며 상기가 앞장을 섰고 우리는 인사동을 돌아다니다가 간판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갔다. "정현아, 너 술 마실래?" 의자에 앉자마자 상기가 말했다. "대낮부터? 너 나한테 할 말 있구나" 우리는 소주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상기에게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상병 휴가를 나오자마자 그녀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했다는 것이다. 소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화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우리는 인사동에서 종로 3가까지 뛰었고 술기운으로 얼굴이 빨개져 영화를 보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술을 먹고 본 첫 영화가 되었다. 나는 마지막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다림이가 정원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사진관에 걸린 자기 사진을 보고 피식 웃는 장면에 가슴이 저렸다.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상기에게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냐고 물으니까 "응, 난 '아저씬 왜 나만 보면 웃어요?' 하고 심은하가 물으니까 한석규가 그래도 대답 않고 그냥 웃잖아. 그 장면이 제일 좋았어" 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