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長水君) 황을고(黃乙古)
장수황씨(長水黃氏) 관향조(貫鄕祖)
장수황씨(長水黃氏)는 도시조 황낙공의 둘째아들 장수군(長水君) 황을고 (黃乙古) 관향조(貫鄕祖의 후손이다 .시조는 황경(黃瓊)으로 신라때 시중(侍中)을 지냈다.신유보(辛酉譜)에 그의 배위(配位)가 신라 경순왕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의 생존 연대는 신라말에서 고려초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뒤의 소목(昭穆) 곧 시조 이하 18대 까지의 계대가 분명치 않아 고려말의 인물로 증 좌참찬경연겸판이조사(贈左參贊經筵兼判吏曹事)에 증직된 황석부(黃石富)를 기세조(起世祖)로 세계를 잇고있다.황석부는 조선 세종조의 명신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 (黃喜)의 증조이다. 장수황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 세종조의 명신(名臣)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 (黃喜)와 무민공(武愍公)) 동북현감,충청도 병마절도사 황진(黃進)이다.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黃喜)선생께서 고려말 1390년( 공양왕2)~1449(세종31)에 개성에서 출생 했으며 고려 공양왕(1390~1392) 성균관 학관,조선태조(1392~1405)세자 우정자, 태종(1405~1422)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병조,예조,호조,이조,공조판서등을 역임, 세종(1422~1449)예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까지 59년간 4명의 임금을 보필하고 영의정에서 87세에 은퇴하여 청백리 황희 정승은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삼아 90세 귀천한 최 장수 정승이다
무민공(武愍公)황진(黃進)장군은 1550년~1593년 남원 출신으로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 (黃喜)의 5대손 이다.(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당시 동북현감,충청도 병마절도사, 황진(黃進)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태함으로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을 장식한 전적지이다.이치 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 꼽히고 있다.왜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다.이소식을 들은 황진장군은 남원진에서 급히 전주로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로 달려가 싸우다가 한때 부상도 입었으나 마침내 적을 대파하니 적의 시체가 수십리에 즐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이로써 왜적은 전주 침공의 야욕을 버리게 되었다.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 (黃喜) 존영(尊影)
경기도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방촌선생 영당내 소장)
익성공(翼成公) 방촌(尨 村)기념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방촌선생 경모재 입구 전경
방촌(尨村)영당(影堂)과 재실 경모재(景慕齋)
경 모 재(景 慕 齋)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黃喜) 동상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 127(방촌 황희선생 유적지 내)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방촌 공원 내
산양서원(山陽書院)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1리
앙 지 대 (仰 止 臺)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 127
앙지대는 반구정 바로 윗쪽에 방촌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들이 건립했다.
반 구 정 (伴 鷗 亭)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반구정은 익성공 (翼成公) 방촌 (尨村) 황희(黃喜)선생께서 고려말 1390년( 공양왕2)~1449년
(세종31) 에 고려 공양왕(1390~1392) 성균관 학관,조선태조(1392~1405)세자 우정자, 태종(1405~1422)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병조,예조,호조,이조,공조판서등을 역임, 세종(1422~1449)예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까지 59년간 4명의 임금을 보필하고 영의정에서 87세에 은퇴한 청백리 황희 정승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삼아 90세 귀천시 까지 지낸 곳으로 임진강 하류의 절경 지역에 세워진 정자다
무민공 황진(黃進) 장군 존영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장수황씨 문중 소장 (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당시 동북현감 황진(黃進)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태함으로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을 장식한 전적지이다.이치 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 꼽히고 있다.왜장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다.이소식을 들은 황진장군은 남원진에서 급히 전주로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아치로 달려가 싸우다가 한때 부상도 입었으나 마침내 적을 대파하니 적의 시체가 수십리에 즐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이로써 왜적은 전주 침공의 야욕을 버리게 되어
었다.
충 효 사 (忠 孝祠 )
전북 진안군 백운면 노천리
창 렬 사(彰烈 祠)
경남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촉석정 충단비(矗石旌忠壇碑)
경남 진주시 본성동
정 충 사 (旌 忠 祠)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무민공 황진 장군의 사당
전북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
무민공 황진장군 이치대첩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문정공(文貞公) 황정욱 (黃廷彧) 존영(尊影)
경기도 파주시 문정공 종손 도하씨 소장
문정공 황정욱의 신도 비각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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