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치과에서 정기검진의 일환으로 검사를 하였다.
입을 벌리고 누위 있으면 치과의사가 치아와 잇몸을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해준다.
가끔은 혼잣말처럼 “관리상태가 좋아요” “지난번 코팅한 것이 마모 되었네요”하다가 “요즘은 뭐하세요?” “주무시는가 아무 말씀을 안 하시네”라고 하기도 한다.
내가 이 치과와 인연을 맺은 것이 1990년 가을이니 오래된 인연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90년 가을 어느날 나는 양치를 하여도 개운한 느낌이 없어 대구 동성로에 있는 불특정의 치과를 찾아갔었다.
치과는 2층에 있었고 중년의 여자 치과의사와 젊은 여자 치과의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젊은 여자 치과의사에게 배정되어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충치가 있다며 나에게 의논 한마디 없이 다섯 개의 치아를 끌어내고선 금으로 떼울 것인지 아말감으로 떼울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였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금으로 하면 견고하여 오래 보장된다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지만 당시 박봉에 만만치 않는 금액도 부담스러웠지만 소통하지 않고 일을 벌린 것에 대한 불편함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충치로 손샹된 이를 치료하고 떼우느라 여러 차례 병원을 내왕하며
친절하고 꼼꼼하게 환자를 살피는 모습에 불편하였던 마음도 봄날 눈이 녹아 내리는 것처럼 내마음에서 사라졌었다.
그 뒤에 점검을 받으러 치과에 갔다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밑에서 당시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장님이 올라오고 계셨다.
내가 방송통신대학 법학과 재학중에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인사를 드렸더니 3층이 거주하는 집이고 중년의 치과의사님이 부인이라고 하셨다. 두분이 내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그 뒤에는 더욱 더 배려하여 주시었다.
세월이 흘러 치과는 중구 동성로에서 수성구 코오롱 공장터로 이사하였고 중년의 치과의사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쓰러진 교수님도 몇 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시었다.
이제는 30년이 넘어가는 세월을 가족 모두의 치과로 정하여 다니고 있다.
처음 만날 당시 젊은 여자 치과의사님은 중년의 치과의사 선생님 맏아들과 결혼, 지금은 두 분이 운영하고 계신다.
함께 늙어가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나의 치아를 관리해 줄까? 생각에 잠겨본다.
언젠가는 우리도 헤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여기에서 편안하게 관리된 우리 가족들의 치아는 어디에 맡겨야 할까?
늙어간다는 것은 단골이 줄어드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밤 사이에 눈이 소복하게 내린 장독대처럼 인생의 마음 가득히 소리없이 고독이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시 한 구절“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는 말같이 되어 가는 것인가 보다.
오늘 이제는 중년의 나이를 지나가는 치과의사에게 입을 크게 벌리고 누위 생각에 잠겨본다.
“당신이 오래 오래 건강하여 지금처럼 관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끝.
함께하는 시낭송 회원님들과도 오래 오래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담아 이글을 올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