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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속신앙 : 솟대
강현구 (광주광역시 문화재전문위원)
1. 서
鳶飛魚躍
: 가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솟대는 단군신화 속의 신단수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발상을 해본다.
물론 솟대의 발생을 이른바 우주나무와 하늘새의 결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정설이다. 우주나무는 우주층의 교통로로서 우주의 중심인데 이 때 각 우주층을 왕래하는 使者로서 새가 등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나무에 새를 앉히는 것은 결국 우주 중심의 역할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농경문 청동기와 조식간두 그리고 장대투겁 등에서 청동기 시대의 솟대신앙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솟대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들을 살펴보고 솟대와 유사한 당과 번
그리고 당간지주와 괘불대 지주, 신의 통로인 신간, 영등대 등을 얘기하고자한다.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의 짐대 만들 나무는 산에서 베어 올 때
반드시 조그마한 내라도 건너야만 효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리가 물새여서 물을 건넌 곳의 나무라야 한다는 인식 때문인데 이러한 이다.
화순 동복면 상가수리 짐대제 / 곡성 목사동면 수곡리 도장마을 웃말 아랫말 솟대
영광군 군서면? 돌짐대 / 해남군 솟대 / 정읍시 목욕리 솟대 / 남원 만복사 인근 솟대 / 부안읍 돌짐대 / 내요리 / 구례 문척의 영등대 /함평 나산면 나산마을 동섬
5.18 입구 나무솟대 / 광주호 나무솟대 / 담양읍 다리 위 대나무 솟대 / 운보의 집 도자기 솟대 / 담양군 무등산 뒤편 도자기 집 솟대 / 서천 한산모시전시관 솟대
2. 솟대의 기원과 명칭
그동안 논의 되어온 솟대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유래 그리고 그 기원과 명칭을 고찰해 보기 전에
국내의 인문학 사전 속의 솟대 항목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가. 각종 사전 속의 솟대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솟대 :
신앙의 대상으로 세우는 長竿. 지역이나 목적에 따라 소줏대 ․ 표줏대 ․ 솔대 ․ 거릿대 ․ 수살목 ․ 서낭대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형태도 다양하여 일시적인것이나 영구적인것, 가정이나 개인 신앙의 대상에서 촌락 또는 지역을 위한 것이 있다. 최근 까지 흔히 민간에서 세우던 솟대는 기원적으로 <삼국지> 馬韓傳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손진태는 <소도고>에서 소도는 별읍이 아니라 大木이며, 이것이 신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솟대’라고 하였다. 시라도리(白鳥庫吉)는 솟대가 神木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라 하였다. 즉 처음에는 생목을 잘라서 신간으로 삼았으나 차츰 나뭇가지를 버리고 장대만을 신간으로 삼게 되었으리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신간숭배 민속은 한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습속이다. 특히 , 만주의 신간과 유사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간은 아무 곳에나 세우는 것은 아니고 종교적 ․ 신앙적으로 성스러운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마한전에 나오는 別邑이라는 聖域에 세웠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개 서낭당과 같은 동제당에 장승이나 신목 ․ 신당등과 복합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이를 대별하면 다음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인의 가정에서 임시적으로 경축이나 기도 할 때에 세우는 이름없는 신간이고,
둘째는 촌락의 입구나 경계 그리고 성역에 항시적으로 세우는
속칭 솟대 ․ 거릿대 ․ 수살목이라는 신간이고,
셋째는 과거에 급제한 자가 자기집 앞이나 조상의 산소에 세우는 속칭 華柱 라는 것이다.
제1 유형은 대개 풍년을 빌기 위하여 정월에 세우는 것으로, 흔히 ‘볏가릿대(禾竿)’ 라 불리는 것과 바람신(風神)을 모시는 의미에서 부엌에 신간을 세워두었다가 신의 승천함과 동시에 없애는 ‘영동할머니’의 신체인 신간이다. (필자 조사자료 :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화정마을의 영등대 사례 : 속설에 의하면 2월 초하루에 비가 오면 며느리가 오는 것이고, 바람이 불면 딸과 함께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죽마리에서는 영등 할머니를 모시는 날을 ‘손오르는 날’이라 하여 세 번(4일, 11일, 18일)에 걸쳐 오른다고 하는데 비해, 화정 마을에서는 1일, 9일, 14일, 19일에 제를 지내는 차이가 있고, 20일에 영등 할멈이 하늘로 오르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
2월 1일 아침에 사립 안팎에 황토를 놓고, 대나무를 꺾어와 색실과 청 ․ 백 ․ 적색의 헝겊과 창호지를 대나무에 메단 영등대를 부엌의 살강에 꽂아놓고 살강 밑 황토 흙 위에는 보리밥 한 그릇, 물 한 그릇, 나물을 차려 시루떡, 고기 등과 함께 올려 둔다. 매일 아침 물을 떠 놓고 비손을 하는데 ‘영등 할머니 많이 잡수시고 우리 자손들 아무 탈 없게 해 주시고 일 년 열두 달 재수 대통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빈다. 영등대는 20일 아침 대문 안에 꽂아 영등할머니 모시는 의례를 끝낸다. 영등 할머니에게 드리는 시루떡이나 나물은 간도 못보고 입에도 절대 대지 않는다. 만약에 이 제물을 먹으면 죽거나 입이 부르튼다고 믿는다. 실제로 금정댁(화정마을 김정님,85세) 개가 살강 밑의 보리를 뜯어먹더니 오봉 정사 옆 벚나무 아래에서 죽었다고 한다. ) 조지훈은, 주곡마을에서 서낭대를 세우는데 섣달 보름에서 정월보름까지 한 달 동안이나 세우는 풍속이 있다고 소개하였다. 영동신을 모실 때 세우는 신간과 비슷한 마을의 솟대라 할 수 있다.
제2 유형은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관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세우는 것이다. 일단 세운 다음에는 영구성을 가지는 것으로 썩어서 쓰러지면 새로운 것을 세운다. 세울 때에는 물론이고 마을에서는 매년 동제를 지낸다. 이는 마을 수호신의 하나이고 마을을 수호하여주는 신체이기도 하며, 또 성역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3 유형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자기의 과시와 가문의 행운을 빌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다. 이를 화주라고 하는데 때로는 돌기둥으로 만들어 세우기 때문에 화주라 하지만, 이것을 솟대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형태를 보면 農旗 모양으로 꿩 털이나 볏짚을 꼳기에 장삭하고 헝겊을 둘러 만든 것이거나, 꼭대기에 용을 그리거나 새겨서 붉은 칠을 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은 긴 장대 꼭대기에 세 갈래로 된 나뭇가지 위에 세 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것 등이다. 이 새를 鳳 ․ 물오리라고 하지만 일정한 새의 종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라고 하며, 그래서 신간을 鳥竿이라고도 한다. 이것과 달리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조각하지 않고, 다만 대나무 가지나 긴 장대 또는 소나무 가지를 가지고 서낭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솟대가 수호신의 상징이라는 점과 성역의 상징 또는 경계나 이정표 표시등의 기능이 있는 것은 장승과 마찬가지이다. (최길성)
<브리태니커 사전>의 솟대 :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의 신앙 대상물.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홀로 세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장승 ․ 선돌 ․ 탑 ․ 신목 등과 함께 세우기도 한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 ․ 기러기 ․ 갈매기 ․ 따오기 ․ 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솟대 신앙은 물을 상징하는 물새들을 장대 위에 세움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보장하는 마을 신의 하나로 삼았다. 풍수지리설과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퍼짐에 따라서 行舟形 솟대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원하는 華柱臺로 분화 발전되었다.
솟대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분포는 만주 ․ 몽골 ․ 시베리아 ․ 일본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이다. 이는 솟대가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신앙물임을 알려준다.
솟대는 형태를 기준으로 솟대 ․ 짐대 ․ 돛대 ․ 설대 ․ 새대 ․ 장승대 등으로 구분되고, 기능을 기준으로 수살 ․ 추악대 ․ 진목 ․ 소줏대 ․ 표줏대 ․ 효대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동제와 관련해서는 당산 ․ 진도배기 ․ 별신대 ․ 성황대, 세워진 위치에 따라서는 거릿대 ․ 갯대, 의인화를 기준으로해서는 거릿대장군님 ․ 대장군님 ․ 당산할머니 ․ 당산할아버지 ․ 진또배기 서낭님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모두 神竿으로서의 기능과 성격을 갖는다.
<한국문화 상징사전>의 솟대 :
신화 :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 통로> 솟대는 형태상 지상에서 천상을 향해 높이 솟았기 때문에, 지상의 온갖 소원을 천상의 신들에게 전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올때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를 이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단수, 곧 솟대가 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이용되는 통로를 상징한다.
<신앙의 대상, 사원> : 삼한 시대에는 마을마다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소도(蘇塗)가 있었다. 그 소도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겼다고 한다. 솟대가 소도로 기록된 곳도 있는데, 여기서 솟대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역(神域을) 상징한다. 또, 삼한 시대 사람들이 소도를 세운 것은 불교에서 절을 세운 것과 뜻이 같다고 했다. 이때의 솟대는 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호원)
<수호자, 사자> 한편, 장대 위에 한 쌍의 새가 얹혀진 솟대를 鳥竿이라고도 한다. 동명왕 신화에, 알로 태어난 주몽(동명왕)이 금와왕에게 버려졌을 때, 짐승이 그를 피해 가고, 뭇 새들이 날개로 감싸주었다. 이 신화에서는 새가 신성한 자의 수호자를 상징함을 볼 수 있다. 또, 부여에서 도망치던 주몽이 도중에 비둘기로부터 보리씨를 전해 받았다. 이 비둘기는 주몽 어머니 유화 부인이 보낸 새로서, 이 때의 새는 사자를 상징한다. 이밖에, 신라에 있어서 석탈해 신화에 나오는 까치나 김알지 신화에 등장하는 닭은 신성한 자의 출현을 알리는 영조 또는 영매를 상징한다. 이 새들은 솟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의 상징성과 서로 통한다. (박호원)
무속 ․ 신화 : <수호> 첫째로, 솟대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마을의 경계신으로서 액이나 살, 또는 잡귀의 침입을 막는 수호신적 존재이다. 둘째로, 풍수지리적인 비보물로서 지리적 형국에 따라 보허, 진압, 살막이, 화재막이 등의 기능을 한다. 이것은 고려 이후에 첨가된 듯하다. 셋째로, 풍농과 풍어, 행운과 방재 등 축원의 대상으로서 신앙시된다. 이러한 솟대의 신앙적 기능 중에서 주기능은 마을의 안녕과 수호로서, 이것이 원래 이래의 본기능이다. 솟대는 긴 나무 장대 위에 새의 조형물을 얹어 놓은 신앙 대상물이다. 장대를 쇠로 대신한 경우가 강원도 일부에서 보인다. 호남에서는 석간 솟대가 많이 보이는데, 이는 후세의 풍수 지리적인 비보물과 관련된다. 장대 위에 놓이는 새는 기러기나, 까마귀, 따오기도 있어 일정하지 않으나, 대부분 오리이다. 많은 새 중에서 하필이면 오리인 데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다만, 오리는 천상과 지상 및 수중을 연결하는 영매로서의 상징성을 지닌 동물이다. 시베리아 지역의 조간에서도 오리가 앉고, 신라와 가야의 동물형 토기 중에 오리형이 많은 것도 관심거리이다. 이와 같은 솟대는 솟대 홀로 세워지기도 하나, 장승, 선돌, 돌무더기탑 등과 함께 세워지기도 한다. 장승과 함께 세워질 때에는 마을로 더 들어간 입구에 서서 마을의 수호신 또는 경계신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동네 수호의 주신은 서낭신, 산신, 당산신 등 洞祭神이다. 솟대와 장승은 동제와 더불어 복합 문화를 이룬다. 따라서, 제사 역시 동제날에 동제신을 위한 제사가 중심이 되고, 장승제나 솟대제는 동제의 일부로 그 전훗날에 거행된다. 대부분은 동신제 전에 장승과 솟대를 새로 세우고 제사를 지낸 후, 자정 무렵에 주된 동신제를 올린다. 물론, 솟대만 있을 때에는 독자적으로 솟대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다. (장주근)
풍습 : <수호> 솟대는 마을의 수호신 또는 경계신으로 모셔지는 외에,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농경문 청동기에 보이는 풍농 기원성,통일 신라 후에 나타난 불교의 당간과의 습합 등도 그 예이다. 또, 고려 시대에는 풍수 지리적인 비보물,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과거 급제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과거 급제의 기념물 또는 효자 출생지의 표지물로 풍속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양반층에서의 관념적인 변화이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솟대 신앙 풍속을 유지해 왔다.
<영물> 솟대의 기원에 대하여, 삼국지 위서 東夷傳 등에 보이는 蘇塗는 솟대의 한자 표기이고, 솟대는 바로 소도의 유습이라는 견해가 오늘날 강하게 나타났다. 그 후, 문헌적, 역사적 연구가 다각도로 전개되던 중에 솟대와 소도는 별개의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솟대에는 예외 없이 장대 위에 새가 놓이는데, 소도의 기록에는 새에 관한 언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퉁구스계를 비롯한 북방 민족의 鳥竿과 木刻神像 자료와 우리 나라의 솟대와 장승을 비교하여 솟대의 원류를 찾으려는 비교 민속학적 연구도 있었다. 또, 중국의 옛 문헌에서는 소도에 대한 새의 기록이 없는 데 비하여, 나무 위에 새가 있는 그림이 보이는 농경문 청동기 등의 자료를 활용하면서 솟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노력도 했다. 솟대의 연구는, 시대적으로 청동기 시대(기원전 1000~기원전 300)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신앙 심리적인 기원에서 보면, 새는 지상과 하늘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영물로 숭배되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로 변화된다든지, 새에 인도되어 저승으로 간다는 식의 초월의식이 세계 도처에 산재한다. 우리 나라 청동기 시대의 새 모양의 유물(대전지역 출토)과 삼국시대의 새와 관련된 부장품은, 새를 현세와 내세의 매개자로, 죽은 자의 영혼을 운반하는 중계자 또는 안내자로 생각되어 행한 풍습 소산이다. 그런데 솟대와 그 위의 새는 시베리아, 몽골, 만주 등지의 鳥竿과 흐름이 같다. 여기서는 神竿으로 조간(鳥竿)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서낭당에서 볼 수 있는 돌무더기 오보(Obo)와 장승류의 목각 신상이 함께 어울려 세워지거나 각기 떨어져 세워져, 우리의 장승, 서낭당, 솟대의 원류로 보이는 점에 대하여도 논의되어 왔다. 이처럼 동북아시아에서의 집단의 수호를 기원하는 내용은 우리와 비슷하다. (장주근)
도상 : (천신에의 기원) : 솟대는 형태상 장대와 새의 두 요소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솟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도상은 시기적으로 청동기시대에까지 소급된다.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농경문 청동기의 문양에는, 한 사람이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모습과 나뭇가지 위에 2마리의 새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가 주로 儀式用으로 사용되었음을 미루어 볼 때, 이 농경문 청동기도 의식에서 사용했을 呪具로 짐작된다. 이런 점에서 이 농경문의 새는 사제자의 기원을 천신에게 전하는 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도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고분에서 출토되는 鳥形物들은 당시의 내세관과 함께 영조사상을 암시한다.
(신의 통로, 성역 표지) : 새를 떠받친 장대만해도 지상과 천상의 통로로서, 신의 이승으로의 강림처로서 신이 머무르는 곳을 상징한다. 또 장대는 신이 머무르는 신성한 곳임을 드러내어 聖과 俗의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표로서의 의미와 함께 숭앙되고 있다.(박호원)
<전남향토문화백과사전>의 솟대 :
: 소도(蘇塗)에 관한 기록은 국내의 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 <통전> 등에 보이는데, 이 가운데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는 삼한 시대의 신앙 ․ 의례 ․ 정치 ․ 사회상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 국읍(國邑)에서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고 이를 천군(天君)이라 하였다. 이들 여러 나라에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를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기는데 도망자라도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았다.”
(十月農功畢亦復如之 信鬼神國邑各立一人 主祭天神名之天君 又諸國各有別邑名之爲蘇塗立大木懸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 이 기록을 보면, 소도는 농경 의식과 종교 제례를 주관한 천군에 의해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 지역으로 별읍을 바로 성역으로 인식하고 읍락의 경계표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소도가, 현재의 민속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수호 화재예방 그리고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돌기둥이나 긴 장대 위에 오리나 까마귀를 앉혀 마을 입구에 장승과 함께 세우는 솟대(화순군 동복면 상가수리)와, 행주형(行舟形) 지세의 마을에 배의 돛대를 나타내는 긴 대를 세우는 당간이나 짐대(나주시, 담양읍) 또 과거 급제를 기념하기 위해 급제자의 문 앞이나 선산에 세우는 화주대(華柱臺) 또는 솔대(함평군 나산면 나산 마을의 소나무로 조성한 동섬)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호남 지방은 남한 지역의 35%에 이르는 수많은 솟대가 밀집된 양상을 띠어 솟대 신앙의 중심지로 보인다. 국내의 솟대 신앙은 장대 위에 새가 새겨진 농경문 청동기와 조식간두(鳥飾竿頭) 그리고 청동기 의기로서 솟대의 변형으로 보이는 장대투겁 등에서 청동기 시대의 솟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강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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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솟대의 기원과 명칭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며 더 자세한 내용을 공부하여야 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