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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난뜰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x-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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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도포는 조선시대(1392-1910) 중기부터 선비들이 입었던 외투입니다만, 일반 백성들도 제사나 특별한 행사 때 입었습니다. 다른 의복 위에 걸쳐 입는 옷입니다. 학창의 고려시대(918-1392)와 조선시대(1392-1910) 선비들의 옷으로 숭고함과 고아함을 상징하는 스타일입니다. 심의(深衣) 선비들이 한가한 시간에 입던 옷으로 옷을 보면서 느꼈던 소감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심(深)은 깊이 사색한다는 의미입니다. 학창의와 마찬가지로 심의는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뜻이 강합니다.
마고자는 원래 만주인들의 의복으로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대원군이 만주에 은둔 후 이 옷을 입고 돌아오고 나서부터 일반화되었습니다. 겨울 보온용으로 애용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사치스러운 옷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직녕포 이 모포같은 옷은 고려시대(918-1392)에 처음 하층 관료들이 주로 입었으며 조선시대(1392-1910) 때는 일반 백성들도 입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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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복 여성들의 저고리 는 남자들의 저고리에 비해 디자인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초창기의 저고리는 엉덩이까지 내려와 허리에서 묶었습니다. 조선시대(1392-1910) 후기에 와서는 겨드랑이까지 내려왔으며 가슴을 가리기 위해 앞면은 좀 더 길게 했습니다. 깃에 동정을 달아 여성의 목을 돋보이게 했으며 남성용 저고리처럼 가슴 앞에서 나비 모양으로 묶었습니다. 치마는 펼치면 사각형이고 입으면 통 모양이 되며 윗 부분에 주름이 잡혀 있습니다. 긴 띠가 달려있어 가슴 위로 묶으면 가슴 아래 신체의 전 부분을 완전히 가려주는데 유교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입니다. 남자들의 통 넓은 바지처럼 물결치는 듯한 치마는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편한 자세였던 쪼그려 앉기에 매우 편안했습니다.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날씨가 추울 때 치마저고리 위에 걸쳐 입는 옷입니다. 원래는 정부관료나 왕족의 평상복이었지만 일반인들도 특별한 날에 입기 시작했습니다 |
갓저고리 갓저고리는 통상의 저고리보다 약간 큽니다. 또한 보온을 위해서 안쪽에 토끼털을 대었으며 바깥쪽은 비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장옷 조선시대1392-1910) 후기 양가집 여성들이 집밖을 나갈 때 얼굴과 상체를 가리기 위해 입었던 옷으로 하층계급에서 입었던 쓰개치마와 동일한 용도입니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은 꽤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쓰개치마 조선시대(1392-1910) 여성들은 바깥출입을 할 때마다 이 망토 같은 옷을 걸쳤습니다. 치마와 유사하게 생겼지만 치마보다 약 30CM 정도 짧으며 폭이 좁은 편입니다. 계절에 따라 2단으로 하기도하고 면을 덧대기도 했습니다. 흰색 깃은 남자를 마주치면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의 치마 저고리 안에 여러 가지 내의를 입었습니다. 속치마는 한복을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여 한복 고유의 멋을 내는데 필수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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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직분의 사람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비싸고 고급스런 옷을 입었습니다. 특정한 형태나 색상의 의복은 왕족들만 입을 수 있었으며 정부 직급체계별로 상징물이 있었습니다.(주: 한국의 군주는 당시의 중국과의 관계의 정도에 따라 황제 혹은 왕으로 불렀습니다. 중국의 궁중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 군주라 할 지라도 황제로 칭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므로 중국의 영향력이 직접적인 상황에서는 각 국의 군주들이 스스로를 왕으로 낮추어 불러야 했습니다.) 상징 조선시대(1392-1910)에는 의복을 입은 사람의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을 옷단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용은 왕후를, 불사조는 여왕을 의미했으며, 공주와 빈들은 꽃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었습니다. 고위 관료들은 구름이나 학이 들어간 의상을 입었고, 황금색은 대부분의 한국 역사 내내 왕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활옷 고려시대(918-1392)와 조선시대(1392-1910)의 공주들이 예복으로 입었던 옷입니다. 장수, 행운, 부귀 등을 상징하는 10가지의 동식물 형상을 진홍색 실로 수놓았습니다. 귀족들은 활옷을 혼례식에서 신부 외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활옷은 워낙 비싸 일반인들은 활옷 대신 녹원삼을 입었습니다.
조선시대(1392-1910)에는, 왕족이나 고위 관료부인, 상류층 여성들은 예복으로 원삼을 입었습니다. 색상과 가슴, 어깨, 뒷부분의 장식으로 입은 사람의 계급을 나타내었습니다. |
황원삼 (왕후가 입었음) |
홍원삼 (왕비가 입었음) |
녹원삼 (공주들이 입었음) |
개성원삼 (개성의 귀족들이 입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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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당의는 여왕, 공주, 고위관료 부인의 소규모행사 시의 예복이었으며 양반들 사회에서는 부인들이 대사를 치를 때 입었습니다. 왕족들은 별도로 황금 치장을 하였습니다. 면복과 적의 면복(冕服)은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곤복(袞服)을 입는 것인데, 면복은 군왕의 표식으로 삼았던 것이며, 왕이 종묘(宗廟) 사직(社稷) 등에 제사를 지내고, 정조(正朝), 동지(冬至), 조회(朝會), 수책(受冊), 납비(納妃) 등에 착용하는 제복(祭服) 및 대례복(大禮服)입니다. 적의는 왕비의 최고 예복으로 왕과 함께 종묘를 참배하거나 외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는 등 특별히 큰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입었습니다. 적의(翟衣)는 이 옷에 꿩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철릭 철릭은 조선시대(1392-1910) 초기부터 왕 이하 백관들의 관복의 밑받침 옷이었습니다. 황포(黃袍) 조선시대(1392-1910) 후기 왕이 입었던 평상복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이 거세어 한국의 왕들은 황색 의상을 입지 못했고 대신 홍룡포(紅龍袍)를 입었습니다만, 1897년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고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황포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앵삼(鶯衫) 앵삼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과거 급제시와 관례 때의 예복으로 연두색 겉감에 황색 안을 넣고 깃, 도련, 소매 끝에 검은 선을 두른 단령포로 사모, 각대, 목화와 함께 착용하였습니다. 과거 급제 시에는 왕이 내려준 어사화를 꽂고 삼일휴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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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백성들은 특별한 행사나 명절을 제외하고는 흰옷을 입었습니다. 혼례복은 밝고 흥겨웠으며, 장례복은 엄숙하고 부드러우며 명절이나 즐거운 날에는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었습니다. |
이 의상들은 조선시대 (1392-1910) 여성들의 공식 행사복입니다. 혼례복 결혼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일생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이므로 혼례식은 매우 공식적이고 화려한 행사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따라서 신랑 신부의 의상도 매우 밝고 화려하게 변모했으며, 의상 외에 신랑은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신부는 혼례식 중반까지 베일로 얼굴을 가렸으며 머리에 긴 비녀를 꼽았습니다.(추가 정보를 위해서는 문화 특집의 전통 혼례편을 보십시오). 왼쪽의 의상은 예비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함을 가져갈 때 예비신부가 입었던 옷입니다. 함은 원래 옷을 짓는데 사용하는 홍색비단과 청색 비단을 넣은 상자로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함에는 신부 가족들에 대한 여러 가지 선물도 들어 있는데, 침구류, 돈, 숯, 음식 등이었습니다. 신부집에서는 함을 지고 온 사람들에게 음식과 여비 조로 약간의 돈을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이 잘못 전해져 신랑과 그의 친구들이 함 값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여 하루 밤 술값으로 탕진하는 사례가 생겨나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기도 합니다. 현대의 혼례복은 예전의 전통혼례복에 비해 옅은 색상으로 보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순수 전통 혼례복이라 하기보다는, 전통혼례복의 현대식 개량복입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신랑신부는 서양식을 선호하여 서양의 신랑신부처럼 신랑은 턱시도나 신사복을 입고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입습니다. |
첫댓글 용어가 참 어려운것이 많네요 ^^ 너무 이름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