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월 월요일, 1교시 수업이 없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오르는 계단에서 허벅지 다리가 아려온다. 지리산의 후유증일까, 추억일까?
지리산은 대학 다닐 때 1984년도에 진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와 올라가보고, 직장 생활하면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또 절반은 자신이 없어서 오르지 못하고 20년을 넘겼다. 지리산이 몇 미터더라.... 1915m,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남한에서는 높은 산이다. 사실 걱정이 좀 된다. 동네 산은 두루 섭렵을 했다지만(?), 사실 지리산은 아직 자신이 없다. 지난 여름방학 때, 운동부족으로 체중도 약간 늘은 편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국민정부가 한, 가장 잘한 정책이라는 토요 휴무제를 믿어본다. 다음날이 일요일이니 좀 무리한들 어떠랴...
지리산 등반을 위해서 미리 9월2일 토요일 오후에 비음산을 올라봤다. 우리학교 신 선생님이 비음산에 오르는 가장 험한 코스라며 소개를 한다. 역시 만만치 않다. 산은 오른다고 올랐지만, 역시 아무산이나 만만한 산이 없다. 이런 코스를 3배-4배나 높이 오르려 하니 걱정이 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등교를 자전거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등반일(9월 9일)에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걱정을 많이 했다. 여선생님도 계시고, 틀림없이 등반 초보자도 계실 텐데, 비가 오면 걷기가 무척 힘들다, 바지가 비에 젖어 감기기 시작하면 다리는 천근만근일 것이다. 하지만 가기로 결정한 것, 날씨가 좋기만을 기도했었는데, 다행이 출발시간에는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아침 6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문성고등학교 허 선생님이 김밥 땜에 좀 늦은데다, 출발장소에 도착해서는 자동차 키를 어디 두었는지 몰라서... ㅎㅎㅎ... 바쁜 맘이겠지만 허 선생님도 나이는 들은 모양이다. 하기야 나도 아침에 나설 때, 어제 저녁, 차 키를 어디 두었는지 몰라, 두리번거린 적이 한두번 아니지 않나... ㅋㅋㅋ... 출발이 6시30분이다. 참여하시기로 했던 28명이 모두 모였다.
중산리에 8시30분에 도착했는데, 대형버스는 매표소까지 올라가지 못한단다. 올라가면 과태료50만원이라고 붉은 글씨로 위협한다. 선생님이 무슨 힘이 있나, 애이!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겠지,,, 선생님 본분으로 돌아가, 어험! 이렇게 써 보자, “우리 선생님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있어 이 규정을 지켜줄 것인가!!!” 선생님들을 모시고 매표소까지 10여분을 걸어올라 갔다. 오늘 산사랑 등반은 여선생님 14분, 남선생님 14분이다, 무슨 짝 맞춘 적도 없는데, 어째 커플 등반대인 것 같다. 오늘 산행에는 원어민교사(대산초등학교)도 계신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인데 보기에는 나보다 원숙(?)해 보인다. 덩치는 꽉 짜여 지셨는데, 인격(?)이 풍만하시다. 맥주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산행대장 박 선생님께서 어제 저녁 약주를 하셨단다. 마음속으로 대군을 이끌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지만, 문성고에 허 선생님을 믿어본다. 거의 산악구조대 수준이지 않는가... 일단 9시에 매표소를 떠났다. 평소 걸음걸이보다는 좀 늦게 간다고 생각했는데도 뒤에서는 계속 반보를 요구한다. 뒤쪽은 자꾸 처지는 모양이다. 칼바위를 9시40분에 지난다. 지나고서 바로 장터목산장 쪽을 향했다. 그 길이 법계사 쪽 보다 나을 것이라는 산행대장의 판단이다. 그런데 원어민교사 크리스 선생님이 힘들어 한단다, 산행대장이 남아서 같이 가겠단다. 그리고 복장불량(?)한 여선생님 두 분도 계곡에서 쉬겠단다. 그래서 23명이 장터목산장으로 올라갔다,
칼바위에서 장터목산장으로 오르는 도중 너덜에서 참으로 우연한 인연인지, 20여년 전에 지리산에 함께 왔던 친구를 만났다. 지금 창원에서 건축설계사를 하고 있는데, 가끔 만나긴 해도 지리산에서 이렇게 우연히 다시 만난 게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20여 년 전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려 해본다. 일주일 전에, 그 친구는 스트레스성 위장병으로 일주일 입원했단다. 건축경기는 좋지 않은데, 직원들 봉급주랴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도저히 집에 누어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밤에 차를 타고 와서 새벽3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단다. 그것도 혼자서. 참으로 용기가 좋다. 일행이 있어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건강하라는 말만 남기고 산행을 재촉했다.
오르는 길은 산사의 뒤뜰을 거니는 듯하다. 개울물이 바위에 부딪쳐 나는 소리, 그 외의 소리는 없다. 물소리에 모든 소리는 묻혀 들었고, 그 지겹던 여름의 매미소리는 아예 없다. 정말 고느적히 안개 낀 새벽 산사를 산보하는 느낌이다. 재작년 해인사에서 산사음악회에 참가했을 때, 새벽예불을 마치고 참선할 때의 공기가 이런 공기였던 것 같다. 비가 오려다 말은 날씨라 그런지, 산행의 열기를 식혀주는 시원하고 상쾌한 물먹은 공기가 너무 좋다.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산을 올라갈수록 쳐지는 선생님들이 생겨난다. 창원여고의 황 선생님은 문성의 허 선생님과 보조를 맞춘다. 남고등학교의 이 선생님도 문성고의 길 선생님과 보조를 맞춘다. 알고 보니, 길 선생님은 정병산을 아예 뛰어올라갔다, 뛰어 내려오신단다. 이번 산행에 산악구조대(?)가 많아 다행스럽다. 개인적으로 길 선생님의 체력이 부럽다. 같은 남자지만 이렇게 천차만별이다.
처녀선생님들이 여럿 오셨는데, 그 중에서도 명곡고의 남 선생님과, 봉림중의 최 선생님이 정말 잘 걷는다. 그런데, 등산은 관록인 모양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웅남초등의 전 선생님과, 명곡초등의 이 선생님이 장터목까지 무리 없이 올라가신다. 그 다음으로 신월초등의 신 선생님도 정말 잘 걸으신다. 설악산도 무박으로 다녀오셨단다. 그 노하우를 우리 산사랑에 투여해주시면 고맙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보고등학교의 단결력은 대단하다, 네 분이 참여하셨는데, 음식은 십인분이다. 사립학교라 그런지, 꼭 친구들이 산행을 하는 것 같다. 너무 정겹게 걸으시고, 이야기 하신다. 그 무거운 짐을 지시고서도 잘 오른다. 그리고 땀으로 옮긴 그 음식을 나누어주신다. 너무 살겹다. 특히 이 선생님의 배 깍는 솜씨는 신기에 가깝다. 나는 과일을 그렇게 빨리 깍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장터목 오르기 1km전이 가장 문제다. 가파르다. 이 길을 오르는 나도 허벅지에 느낌이 온다. 등산 초심자 선생님들은 무아지경인지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힘든 다리를 그냥 옮기시는 것 같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샘의 물이 쨀쨀거린다. 인내심을 발휘하여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물을 갖고 갔지만, 장터목 샘물을 먹어보고 싶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을 넘긴다. 산장 근처에는 화장실 냄새가 심하고 바람도 심하다. 원래 이렇게 냄새가 나는 곳인지, 공기정화시설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행은 다시 샘쪽으로 내려와서 식사를 했다.
출발하려고 하는데 일행을 다 가늠할 수가 없다. 그냥 출발시킨다. 모두 무탈하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장터목에서 또 한사람의 지인을 만났다. 고성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친구다. 같은 학교 선생님과 둘이서 지리산 종주를 한단다. 토요일, 벽소령까지 가고, 그 다음날 화엄사로 내려간단다. 대단하다. 나도 작년에 지리산 종주를 계획해놓고 실시하지는 못했다. 내년 봄에는 꼭 한 번 해봐야겠다. 지리산에 와서 이렇게 지인들을 만난다니, 내 스스로 신기하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가는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앞서가던 문성 길 선생님이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간다. 문성 박 선생님이 다리에 쥐가 나는데 쉽게 해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박 선생님도 등산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인데...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세월이 사람을 그렇게 슬프게 하는 것 같다. 나도 곧 저 나이가 될텐데... 오늘 산행에는 문성 길 선생님이 보배다. 내려가서 막걸리라도 사드려야겠다.
통천문을 지나자 산 아래가 보인다. 바람이 빨라서 구름이 이리저리 휘둘린다. 먼저 선 구름은 옅게 휘몰려 산등성을 지나가고 뒤 따르는 짙은 구름 덩어리가 산자락의 시야를 다 가려버린다. 그 모습이 너무 상큼하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 산 아래로 눈이 간다.
길 선생님이 박 선생님과 보조를 맞추니 남고의 이 선생님이 혼자 힘들다. 이 선생님과 보조를 맞춘다. 산행은 원래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야 덜 피곤하다.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언제 도착했는지,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게 된다. 이 선생님과 이런 저런 신변잡기를 이야기한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정말 같은 직업이라서 그런지, 공유되는 부분도 많고, 서로 이야기 건네기가 편하다. 이렇게 편하게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천왕봉이 눈앞이다. 천왕봉을 바라보는데 내 뒤에 있던 등산객이 밟은 바위가 삐걱 거리는 바람에 넘어지려 한다. 내가 겨우 부축을 했다. 역시 산은 만만히 여겨서는 안 된다. 운이 나빴으면 헬기 뜰 뻔 했다.
천왕봉에 오르니 대부분 선생님이 다 와 계신다. 시각은 2시를 넘긴다. 그런데 명곡초의 이 선생님이 안 보이신다. 나이도 제일 많으신 분인데, 걱정이 된다. 먼저 내려가셨나? 천왕봉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봉림중 최 선생님에게서 삶아 온 밤도 얻어먹고 하산을 재촉한다.
하산을 하면서 우리 산행대장의 특유의 안목이 높이 보인다. 장터목 길은 계곡길이어서 바위가 물기에 젖어 매우 미끄러웠다. 그런데 법계사로의 하산 길은 능선 길이라 말라있다. 전혀 미끄럽지가 않다. 역시 산행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선생님을 먼저 보내고, 남고의 이 선생님과 내가 보조를 맞춘다. 남고등학교와 남중학교의 학교 일상을 들으니, 참 재미있고, 느끼는 바도 많다. 이 선생님과 나는 동과목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 중학교에는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여 일주일에 학부모 2시간, 선생님 2시간씩 배치해두고 있단다. 나름대로 지역사회를 아우르고, 교사의 교육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부럽고, 소담스럽다. 법계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이 멀다. 역시 지리산은 가볍게 산행할 산은 아니다.
저녁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한다. 가면서 식당에 들리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관광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지리산 기사식당에 저녁밥을 준비하게 했다. 칼바위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먼저 도착한 선생님들이 우왕좌왕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느끼기에도 축지법하는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많지 않은 사람들을 자꾸 뒤로 밀쳐내는 듯 뛰어 내려왔다. 다행이 우리학교 신 선생님이 저 앞에 보인다. 자기가 가장 빨리 내려왔다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
남선생님들은 넉넉한 막걸리 한 사발에, 여선생님은 맥주 한잔으로 산행의 여독을 풀어본다. 아! 되돌아 본 지리산 자락에는 내가 올라갔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도 아름다웠고, 모두들 마음도 넉넉하였다. 하산한 시간은 5시
2006년 9월 11일 아침 안병철 올림.
첫댓글 안선생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소감문도 탁월하게 잘 쓰셨네요. 몸이 좋지 않은 탓인지,아침에 먹은 항생제 덕분인지 지리산의 열기가 온 몸에서 느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끝까지 대군을 이끄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