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에는 알제리전쟁과 지식인들의 비판 의식이 왜 의미 있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그 다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의 120년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19세기의 군사적 침공과 정복 후에 강요된 프랑스식 법제, 경제적 수탈, 문화적 종교적 억압에 관해 법규와 제도 여러 지방의 사례를 들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문화와 정치, 이성적 능력이 미친 영향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압델 카데르(Abdel El Kader)가 지도한 19세기의 무력 항쟁 후에 나타나는 민족 정당들, 1930년대의 이슬람 쇄신 운동을 설명한다. 이어서 알제리전쟁의 발단과 경과를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1부에서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전쟁 비판과 직접적인 행동을 다룰 것이다. 반식민주의 입장을 먼저 제시했던 가톨릭의 『에스프리』에 실린 기사들을 분석하고 고문이라는 반 인륜행위를 어떤 논리로 왜 비판하는가를 볼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시기에 “식민주의는 체제”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고 단호한 반식민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사르트르와 대조되는 레이몽 아롱 역시 식민 지배를 용인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였음을 살필 것이다. 나아가 FLN 요원인 여성이 프랑스 공수부대에 의해 고문 받은 사실에 항의하는 자밀라 부파차 수호위를 본다. 철학자 프랑시스 장송(Francis Jeanson)은 말로 그치는 반식민주의 태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장송은 FLN을 직접 돕기로 하였고 수십 명, 또는 그 이상이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알제리 민족해방 대원들의 이동과 숙박, 연락을 지원하고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거둬들이는 전쟁 자금의 운반을 책임졌다. 이들 비판적 지식인들을 우려하고 혐오하는 프랑스 사회의 일면도 충분히 삽입하여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를 대비해 볼 것이다.
2부 알제리 편은 먼저 『엘 무자히드』로 시작한다. 전쟁기 내내 외지에서 격주로 발행되었던 이 신문은 전쟁의 목적을 위한 기관지이지만 단순한 선전물이 아니었다. 앞면에 작은 흑백 삽화를 하나 넣었을 뿐 사진과 선전 그림 없던 이 신문의 논조는 냉정했고 어휘는 세련미를 보였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필자와 논설진은 모두 익명이었는데 우리는 대표적으로 몇 개의 논설을 골라 소개, 해석하는 것으로 식민지 해방 전쟁이 지적 전투였던 점을 제시하려 한다. 지식인 정치가이었던 페르하트 압베스는 흔히 온건, 개량주의자로 평가되지만 결국 FLN에 가담하였고 대외적으로 전쟁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쟁의 실질적 주인공이 아니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배척을 받았다. 압베스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지는 독립 후 알제리의 현실에 다시금 비판적이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압베스의 임정수반으로서 사유와 현실적 외교 역량을 알고자 하고 FLN과의 소원한 관계에 주목한다. 아울러 민족 전쟁이지만 민족을 대의로 하면 무엇이든 옳은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물루드 페라운의 『일기 Journal』로 전쟁기의 내분과 암투, 민족을 위한 전쟁이건만 민족을 사납게 대하는 어두운 양상을 볼 것이다. 페라운은 소설 『빈자(貧者)』의 자식으로 알려진 작가이며 신문 잡지에 많은 글을 썼고 직업은 교사였다. 마지막으로 젊은 대학생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비판력을 검토할 것이지만 이 문제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 분야를 말해주는 정확한 문건이 무엇인가는 앞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페르비예의 연구, 알제리 역사가이면서 파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오마르 카를리에의 연구를 참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