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면(延草面)
서기756년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16년 거제 3현중 아주현(鵝洲縣) 죽토부곡(竹에討部曲)에 속하였고 원종(元宗) 12년(1271) 왜구의침범으로 주민 모두가 거창현(居昌縣)에 속하는 가조현(加助縣)으로 피난 갔다가 세종(世宗) 4년(1422) 태평성대(太平聖代)로 본래의 죽토부곡으로 돌아왔다.
세종(世宗) 14년(1432) 거제현(巨濟縣)을 사등성(沙等成)에서 고현성(古縣成)으로 옮기고 관하(菅下)에 7면을 둘 때 연초면이라 하고 권농관(權農官)이 집정(執政) 하였으며 영조(英祖) 45년(1765) 방리(坊里) 개편때 이물도(利勿島지금의 이수도),외포(外浦), 덕포(德浦), 이곡(梨谷지금의이목), 죽토(竹土), 문암(門岩), 명동(椧洞), 한해(汗海지금의 한내), 오비(烏飛), 다공(茶貢),연사(烟沙), 송정(松亭) 등 12방(坊)이 되었고 고종(高宗) 26년(1889) 리제개편(里制改編)때 한내(汗內), 대오(大烏), 소오(小烏), 연사(烟沙), 죽토(竹土), 관암(冠岩), 죽전(竹田), 다공(茶貢), 덕치(德峙), 문암(문岩), 이목(梨木), 천곡(泉谷), 상송(上松), 하송(下松), 명상(椧上), 명하(椧下), 외포(外浦), 덕상(德上)등 19리가 되었다.
1895년 칙령(勅令) 제98호에 의하여 한내, 대오, 소오, 연사, 죽토, 관암, 죽전, 다공, 덕치, 문암, 이목, 이남, 명상, 명하, 상송, 하송, 천곡, 주령등 18리로 개편되었으며.
1914년 6월 1일 도령(道令) 제 20호에 법정동리령(法定洞里令)에 의하여 한내,오비, 연사, 죽토, 다공, 덕치, 이목, 명동,천곡, 송정등 10리를 관할하는 면소재지를 죽토리에 두고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42년 5월 1일 일제시대때 부락구제(部落區制) 실시로 한내, 한곡, 오비, 소오비, 연사, 연중, 효촌, 임전, 죽전, 관암, 죽토, 다공, 중리, 덕치, 명상, 명하, 천곡, 이목, 이남, 상송, 하송, 등 21개 마을에서 1970년 이후 신우성(오비 신우성APT), 중촌(中村), 야부(冶釜), 연행(烟行), 봉송(峯松)이 분리되어 26개 행정리(行政里)가 되었다.
연초면은 거제시의 동북쪽 중앙에 위치하고 권농(權農)의 지대로 연초라 하였으며 연사의 이름을 따랐다는 설도있다. 1979년 이목땜을 준공하여 저수면적 22만평에 저수량 470만M/T으로 1일1만 6천M/T을 거제시민과 조선공단 용수로 공급하며 한내, 오비 조선기자제 공단의 건설과 고현과 옥포의 중간지역으로 교통의 중심지로(고속버스터비널, 화물터미널 예정지 확정) 발전 할 것이다.
첫댓글 조은정보 무지감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