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물으니 다음 마을까지는
또다시 1백 리 황무지 길이라 한다
돌아보니 길은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걷다보니 길은 끊겼다가 다시 나타난다
사람 사는 마을 그 어디를 가도
늘 들을 수 있는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골목길에서 노파는 손자 업고 흐뭇해하고
동구 밖에다 어미는 자식 묻으며 슬피 운다
나의 길은 하지만 마을로 나 있지 않다
영원의 法을 찾아 부르튼 발 앞으로 옮기면
서역의 하늘 끝은 늘 입다문 지평선
가도 가도 인가의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지만
어서 가자 밤을 도와 저 투루판 분지까지
넘어온 톈산산맥보다 더 아스라한 길을
오늘도 부지런히 걸어가야 하는 것은
내가 나서야 길이 비로소 길이기 때문.
혜초의 시간
----투루판에서 둔황까지
또다시 황사바람이 불어와 눈 비빈다
이 모진 바람 언제부터 불어왔을까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
바위가 돌이 되듯 세월 부서지고
돌이 모래가 되듯 시간 쌓였으리
둔황 막고굴 속에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
그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 눈물 없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황 벽의 그림을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
둔황 가는 길 다리 아파 밤하늘 우러르니
캄캄한 저 하늘에 가물가물한 별빛 하나
고개 끄덕이며 내 가슴에 불 밝힌다.
* 신라의 승려 혜초(704∼787)가 불교의 발상지 인도 순례에 오른 것은 723년이었다.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725년에 인도에 도착한 혜초는 동부 인도에서 서북 인도를 돌아 중앙아시아 드넓은 땅을 편 력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729년에 당나라로 돌아왔다. 그가 여행하 면서 쓴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에 의해 중국 둔황 석굴에서 발견되었는데, 8세기경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해 쓴 세계 유일의 기록문이라고 한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1
----경남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영취산 통도사에서
우리는 모두 빛으로부터 왔으니
밝은 곳으로 가자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이 어둠의 세계,
한 명 예외가 없는 맹인의 나라에서
웃고 술 마시고 화간하고 강간하고
남 속이기를 밥먹듯이 하고 하하
사람의 무리가 무고한 사람을 죽여도
둘러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천수 누리지 못하고 간 사람의 수가
저 별의 숫자와 맞먹을 게다
벌받지 않은 죄악의 수가
저 별의 숫자와 맞먹을 게다
그러니…… 가자!
……강을 건너, 또 하나의 산맥을 慈藏은 넘었다
굵은 장대비 속에서, 칠흑의 어둠을 열사흘 헤쳐
당나라의 오지 청량산에 도착하고서도 열흘 뒤
자장은 마침내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
신라…… 참 멀리서도 왔구려
이것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니 갖고 가
불법을 전하시오 단 하나인 진리를
자장은 기쁨에 몸 떨며
그 法身佛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 귀국하면 이 진신사리를 모실
절을 반드시 세우리……*
통도사에 와서 별을 본다
여기는 적막한 밤의 보궁 앞
마지막 문인 不二門을 지나도
三身佛圖를 모신 大光明殿을 지나도
언젠가 나타난다는 미륵불이 봉안된 龍華殿을 지나도
부처의 일생을 그렸다는 八相圖가 봉안된 靈山殿을 지나도
가섭존자가 미륵불에게 바친 발우 모양을 조각한 奉鉢塔을 지나도
번뇌는 여전하다 안 된다
불사리 계단인 金剛戒壇까지 왔으나
육욕은 여전하다 안 된다
부처가 寂滅의 낙을 누리고 있는 이 보궁 앞에서도
망상은 여전하다 안 된다
안 된다고 무수히 다짐하여도
반야의 지혜는 저 별들보다 멀리 있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내는 별들은
깨달은 것이 있어 춤추고 있는지
나와 남을 변화시키는 춤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춤
춤을 통해 거듭나는 저 무수한 별 아래
우리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내 출생의 순간을 지켜본 뭇 별이여
내 임종의 순간을 지켜보고서 증언하여 다오
너희들은 무엇을 향해 그렇게 쉴새없이
춤추며 빛 뿌리며 달려가고 있느냐
이 캄캄한 혼돈의 땅에서
저 완벽한 질서의 하늘을 보니
세상의 시간은 아직도 미명이로다
그러니…… 가자!
무한을 향해 열려 있는 저 하늘의 마음을 향해.
* {三國遺事}에 나오는 내용을 변용함.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2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中臺에서
길은 보이지 않지만
상원사에서 서북쪽을 향해 걷는다
눈발 퍼붓는 겨울 오대산
발에는 아이젠 손에는 하켄
천지에 가득한 눈, 눈발
눈사람이 되어
獅子庵 머리맡에 자리한
적멸보궁에 이르렀을 때
눈은 순식간에 그치고
하늘에 그려지는 천구좌표
별이 저렇게 많은 만큼이나
참 많은 주검이 떨어졌으리 구룡폭포에서
참 많은 목숨이 거두어졌으리 아미산성에서*
사리탑마저 없는 적멸보궁
불사리는 어디에 있을까
달이 떠오르자 마애불탑이 나타나 웃고 서 있다
불사리의 위치는 알 필요가 없다고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수백 수천 광년의 거리를 달려와
너를 만나서 별이 된
이름 모를 사람들이 다 부처라고
김 뿜어내는 내 입을 쳐다보며 말하고 있는 듯
겨울 오대산에 눈이 내려 쌓이니
죽어 있던 것들 일제히 소생하고
죽어가던 것들 낱낱이 회복한다
고사목마다 눈꽃이 피어나고
오백 년 묵은 전나무들이 기지개를 켠다
적멸보궁 앞으로 무진장 모여드는 별 별
별별 사람이 다 생전에 보았을 저 별들이
질서를 지켜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살아 있어 저 별들을 볼 수 있구나
마애불탑 앞에 서서 나도 웃어본다
길은 조금도 보이지 않지만.
* 오대산 구룡폭포 부근의 아미산성은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전을 벌이 던 싸움터였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3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에서
진달래와 산벚꽃을 보며 설악산을 오른다
천연의 폭포를 지나 인공의 로프를 잡는다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지나
구곡담계곡을 거쳐 다다른 鳳頂庵
자장은 왜 이렇게 높은 곳에다
진신사리를 봉안했을까
해발 1,244미터의 이곳은 아직도 겨울
밤바람에 눈꽃이 꽃가루처럼 흩뿌려진다
적멸보궁에 또다시 밤이 온다
사리탑이 지키는 봉정암의 밤
춥다, 떨면서 바라본 저 하늘에서
모든 번뇌의 불씨를 꺼뜨리기 위하여
점점이 별이 떠오른다
流轉의 불씨, 幻滅의 불꽃을
죄 꺼뜨리기 위하여
별의 수를 헤아리지 않고
돈을 헤아리는 동안에
늘어나는 새치의 수
세 치 혀끝으로 저질러온
綺語의 죄를 내 누구에게 빌어야 하나
나이 들수록 오히려 늘어나는
탐욕과 번뇌
오늘 밤의 바람은
무지하게도, 무자비하게도
탐욕으로 달아오른 내 몸과
번뇌로 들끓는 내 마음 향해
불어제친다 불어 고개 못 들게 한다
이 밤을 오래 기억해야 하리
還滅의 별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냄으로써
본연의 마음자리 그 고요함 속으로
나를 되돌리려 하고 있으나
나는 正覺에 못 이르는 한 마리 짐승
온몸을 떨면서
하늘 향해 손을 내밀어본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4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에서
세계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나와 동시대를 살다 가는 모든 타인은
외따로 떨어져 죽어가는 존재일까
아닐 게다, 이 불가해하고 불가사의한
뗄래야 뗄 수 없는 우주망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게다
움직임으로써 에너지로써
질량으로써 광속의 제곱으로써
E = mc²
내 육신은 소립자의 우주
우리는 그렇지, 그래서 모두 불안정하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지은
법흥사의 적멸보궁에도 불상은 없다
慈藏이 사자 등에 진신사리를 싣고 왔다는 돌함과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있을 뿐
부처가 남긴 사리들도
분자와 원자와 핵으로 되어 있어
수천 년을 움직이고 있을까*
내 목숨의 생명현상이 끝나도
분자와 원자와 핵으로 남아
수천 년을 아니, 수천만 년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될까
믿기 어렵구나 나의 윤회를
법흥사 적멸보궁 앞에서 윤회하는
무수한 저 실체를
팽팽히,
중력으로 맞서면서도 팽창하는 저들
빠르게,
더욱 빠르게 열린 우주를 향하는 저들
저들이 팽창만을 거듭하다 차갑게 죽어감을**
믿을 수 없구나
저 모든 별의 최후를
나의 자유로 태어나지 않은 이 세계에서
별을 보면서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지
여전히 불안정하게 헤매거나
줄기차게 불안에 떠는 내 앞에
또 하나의 별똥별이
빗금 긋고 죽어가면서 가르쳐준다
삶이야 너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
죽음도 너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
그러니 적멸의 경지에도 들 수 있으리
적멸보궁 앞에서는 法悅도 있으리
몇 천만 년 전이었을까
빛의 사신을 지구로 보낸
천체의 심장은 알고 있었으리라
낱낱의 항성도 알고 있었으리라
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자유
그 빛나는 思惟의 자유를.
* "量子論에 의하면 물질은 결코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운동의 상 태에 있다. 거시적으로는 우리 주위의 물질적 대상들은 부동이며 활 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생명이 없는 돌이나 금속을 확대 해서 보았을 때는 그것들은 활성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 ----Fritjof Capra, The Tao of Physics,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 상}, 이성범·김용정 역(범양사, 1987, 9판), 228∼229쪽.
** 우주는 팽창만을 계속하다 어느 시점부터 식어갈 것이라는 게 오늘 날 대부분의 천문학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5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에서
내 얼굴로 쏟아지는 향기로운 반달
빛을 받아 마시며
사리재를 넘었다
고한에서 정암사까지 3킬로미터의 밤길을
달빛과 별빛 저 하늘의
밝은 화음에 눈 맞추고 귀 기울이며
기운차게 걸었다
저마다 다른 색깔의 빛을 보내는
수많은 별, 태어나고 죽어간
생명체인 별떨기의 즙을 받아 마시면서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 있는
수백 년 묵은 고목 禪杖檀은
옛 모습 그대로 손상됨이 없으나
선덕여왕이 자장에게 하사했다는
金 袈裟는 도난당해 없다고 한다 그것 참,
천의봉 자락이 뻗어내리다 멈춘 자리에
진신사리를 모신 水瑪瑙塔은
옛 모습 그대로 손상됨이 없으나
차고 맑은 경내 연못에서 살아온
열목어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것 참,
닦아내도 닦아내도 솟구치는 탐욕이라니
버려도 버려도 달라붙는 집착이라니
둥근 보리수 잎들이 황갈색으로 물드는
정암사의 밤
돌담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적멸보궁 앞에서
다시 하늘을 본다 구름이 몰려오는가
汚濁의 내 눈에
별빛이 차츰 흐려진다
시야 가득 출렁여 오는 저 하늘 너머를
내 생시에 볼 수 없을지라도
眞如를 아는 이들이 있어 무리 이루리라
이 절터 산언덕에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부처가 화엄경을 설한 그 옛날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에 있던 적멸도량이
찬연히 그려진다
그날의 밤하늘에서 빛났던 별들이
오늘도 무리 지어 내 머리 위로 몰려와
맑은 목소리로 설법하고 있으니
고맙구나 고마워, 나는 또다시
저 장엄한 음향의 밤하늘에다
시린 넋을 띄워 보낼 수 있다.
혜성가
----삼화지도*의 혼백에게
귀가 길에 혜성을 보았다네
4200년 만에 다시 왔다는
헤일-밥 혜성을 맨눈으로
저 별이 태어난 날과
내가 태어난 날의 간격을
자네들은 아는가
나는 모르네
자네들이 태어난 해와
내가 태어난 해의 간격을
나 알 수 없네
혜성 관측사상 가장 밝다는
헤일-밥 혜성의 수명을
자네들은 아는가
내 짐작도 못하네
자네들이 살았던 날과
내가 살고 있는 날의 간격을
나 알 수 없네
지금 혜성은
북서쪽 지평으로 날아가고 있다네
그날 자네들이 본 그 혜성도
저렇게 푸른 꼬리를 끌며
태양계를 방랑하고 있던가
새 별의 태어남이
방랑의 시작인지 끝인지
나 알 수 없네
우주에서 떠도는
혜성의 수를 자네들은 아는가
나는 모르네
영하 200도라는 혜성의 온도가
얼마나 차가운지
그렇게 차가워도 별이 될 수 있는지
나 알 수 없네
제기랄, 알 수 없네
헤일-밥 혜성이 언제 다시 올지
그 언젠가 다시 오기나 올지
우주는 단지 淸淨無碍한
華嚴의 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일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내 아무것도 모르리라는 것
그것을 알고 있다네…… 아주 쬐끔.
* {三國遺事}에는 신라 진평왕 때 융천사가 지은 향가 [彗星歌]의 유례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기록에 등장하는 세 화랑 居烈 郞·實處郞·寶同郞을 가리켜 三花之徒라고 한다.
도솔가
그들은 동쪽으로 움직여갔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 중앙아시아의 황사 바람을 뚫고 고비사막 장백산맥을 넘어 빛이 닿는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말에서 내렸다
그곳은 반도였다 삼면이 바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오곡이 무르익으리라 하늘과 땅이 아무런 경계도 없고 밝은 그 누리에 사람이 저 닮은 사람을 낳아 나라가 서고
다스려야 했다 하늘과 똑같은 세상을 펼치고자 했다 그들은 암흑과 광명도 구분이 없이 살더니 사람의 삶과 하늘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믿더니 노래와 춤을 즐기더니
바람은 늘 바깥에서 불어온다
그 누군가 돌아와 묻힌 바람받이 언덕에
시든 풀잎은 그냥 시든 채로 내버려두라
부는 대로 흐르는 대로 이 바람 저 물결을 내버려두라
때가 되면 절로 피고 때가 되면 절로 지고 황토
씨 뿌리지 않아도 그냥 꽃은 피어날지니
그러나, 시대는 가혹하다 산 자가 살 수 없는 시대
그들은 점차 함께 일하지도 함께 나누지도 않게 되었다
어지러워라 처처에 원성이 쌓여 末法의 시대로다
스스로 땀 흘리며 가장 높은 산에 오르면
내다버림으로써 하나를 더 얻을 줄 모르는 저
얽매임과 억누름의 구름장도 발밑인 것을
법이 자연을 다스릴 수는 없는 법
다시 왕조가 바뀌고 편을 나누니 땅이 나뉘고
서로 탐하고 성내니 오호 말법의 시대로다
눈보라 속 세상이 오래 혼곤하도다 마침내
신념의 불씨마저 꺼뜨린 이 겨울의 언 땅 언 하늘
반은 땅에 묻혔으되 반은 하늘 우러르는 장승과 미륵상이 수세기를 꿈꾸었다 언젠가 버려진 저것들이 경상 전라 함흥 평안 경기 황해 강원 제주의 골짜기마다 일어선다면
착한 말로 오가는 뜻이 같아 서로 기쁘고 서로 아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 높은 것들 아래로 내려와 아름다운 나라 낮은 것을 위로 올려 무궁히 평화로울 나라
그날엔 한겨울에 꽃이 피리라…… 오늘 이에 散花 불러 돋아 보내신 꽃아 너는 곧은 마음에 명을 받들어 彌勒座主를 모셔라…… 꽃은 그냥 피어나도, 스스로 땀 흘리며 씨 뿌리는 그들.
* 마지막 연, 월명사의 향가 [도솔가]는 金俊榮 선생의 해석.
범 패
----朴松庵 님께
이리로 오게
태평소도 자바라도 태징도
이 도량에 와 잡가락을 올리게
천년을 넘게 내려온 소리*
흐으아에 흐흘 가
십 년에 익혀
오십 년을 공들이니
이제는 조금 맑아진 듯
좀더 깊어진 듯
열아홉에 산에 와 머리 깎은 후
뜻도 모른 채 따라 부른 홋소리가
침묵하는 저 산을 깨울 수 있음을
깨닫는 데 한 생이 걸렸으나
나는 아직도 迷를 못 벗었으니
이리로 오게
짓소리에 사심이 들어 있는지
이 도량에 와 가르쳐주게
길게 끌면서 굴곡 이루게
한없이 되풀이하면서 그윽하게
산을 향한 소리가 소리를 낳지
내 마음이 네 마음을 닦지
조부님 죄 씻자고 애비가 머리 깎아**
애비의 만류에도 내가 머리 깎아
소리로 번뇌 다스린 이 산에서
내가 부른 회심곡에
몇 겁의 시간이 실려 있을까
다 부처께 귀의하기 위한
아니, 부처가 되기 위한 정진이었네
나무극락도사아미타불
다 나를 버리고 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네
길게 끌면서 사흘 낮밤
한없이 되풀이하면서 101번의 절차
홋소리에서 시작해 짓소리로 끝낼 터이니
와서들 듣게.
* 梵唄는 신라 흥덕왕 2년(830년) 당에 유학했던 眞鑑國師에 의해 들어 왔다고 한다.
** 박송암의 조부는 친일 정치가 박영효로,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하여 내무대신을 지냈으나 아들은 평생토록 찾지 않 았다. 송암의 조모는 갑신정변으로 귀양 가던 도중 갑곶진 나루터에 서 자살하였다.
법고춤
북채를 모아쥐면 내 깨달을 수 있을까
소리 깨어 세상 타악 트이는 이치를
한 소리에 귀 열어 두 소리에 마음 열어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뭇 중생이여
들리거든 다 와서 듣거라 내 두들기는 북소리
쿵다닥 쿵 앞에서 이어온 것들 뒤로 전하리
쿵 쿵 쿵다닥 뒤로 처진 것들 앞으로 이끌리
탁 옆 치면 쌍자궁 쿵 북 돌려치면 금우궁이 보이고
첫마디와 끝마디가 결국은 이어진다 뭇 생명이여
우리는 얽혀 있고, 얽혀서 구르는 이 사바 세계
내 북소리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지 못하여도
두들기다 두들기다보면 깨달을 날이 올까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오만가지 괴로움
줄줄이 풀리어 도도히 흐른다면…… 면벽한 칠흑의 밤도
견딜 수 있겠지, 견딜 수 있겠지, 견딜 수는 없었다
절로 신명에 몰려 점점 강하게
스스로를 굽어보며 점점 약하게
내 살과 넋 공양하여 불타와 하나가 되고
온 세계를 안아 추스르는 큰 팔 벌림 마침내 북 으르기
마음으로 다스리는 우주는 또 얼마나 자그마한 것인지.
<시인 연보>
1960년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출생
1975년 김천 성의중학교 졸업, 같은 해 대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
1979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1981년 시 [집짓기]로 {시문학} 전국대학 문예작품 공모에 당선
1984년 시 [畵家 뭉크와 함께]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87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제1시집 {사랑의 탐구}(문학과지성사)
1988년 쌍용그룹 홍보실에 입사
중편소설 [雪山]으로 1천만원 상금 KBS 방송문학상 수상
1989년 소설 [備忘錄]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제2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나남출판사)
1991년 제3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세계사)
상기 시집으로 문예진흥원 제정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수상
1992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기 시작
1993년 제4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세계사)
상기 시집으로 총동문회 제정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수상
1994년 제5시집 {박수를 찾아서}(고려원)
1995년 제6시집 {생명에서 물건으로}(문학과지성사)
쌍용그룹을 7년 5개월 만에 퇴사
1996년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서일전문대 문예창작학과 출강
1997년 시론집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문예출판사)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좋은날)
서울여대, 숙명여대 출강
1998년 산문집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엔터)
인천재능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시선집 {젊은 별에게}(좋은날)
199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부임
시론집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새미)
2000년 편저 {한국현대 대표시선}(이진출판사)
시론집 {한국 현대시 비판}(월인)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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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유한근, ['사라짐'과 '나타남'의 역동적 이미지], {현대문학} 5월호
1987년 황동규, [튼튼한 집짓기], {사랑의 탐구} 해설, 문학과지성사
진형준, [한 젊은 시인의 자아들, 그 찢김], {한국문학} 12월호
이숭원, [유희 혹은 절망], {현대문학} 9월호
1988년 남송우, [세 젊은 시인의 통과제의가 남긴 징후들], {세계의 문학} 봄호
정효구, [80년대 후반의 젊은 시인들], {시와 젊음}, 문학과비평사
1989년 조남현, [인간다운 삶에의 목마름], {우리들의 유토피아} 해설, 나남출판사
하재봉, [태양의 열쇠―상황시], {현대시학} 7월호
유한근, [80년대 중반기의 시현장], {문학의 모방과 모반}, 육영문화사
1991년 김준오, [시성과 문법성], {시론}, 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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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90년대 작가들―{사랑의 탐구} 이승하], {한국일보}(7. 28)
박혜경, [기성세대 父性 권위에 도전], {조선일보}(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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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고통의 祭儀],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해설, 세계사
김혜순, [갇힌 여성성의 비밀한 세계], {현대시사상} 가을호
윤성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현대시세계} 가을호
1992년 오양호, [신세대, 그 지적 분광], {문학정신} 5월호
송희복, [선험적 비극의 인간조건―이승하론], {한국문학} 9·10월호
김주연, [이태수·이승하씨의 근작들], {중앙일보}(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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