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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 바람, 풍광 3가지를 원 없이 경험한, 미시령-마등령 전투 [대간 46]
1. 일자: 2014. 5. 24 (토)
2. 장소: 미시령-백담사
3. 행로/시간
[미시령(02:35, 767m, 황철봉 4.15km) -> 울산바위 갈림(03:25, 1066m) -> (너덜, 03:45-04:15) -> 1319봉(04:20) -> (너덜) -> 황철봉(04:56, 1389m, 마등령 4.35km) -> 전망대(05:10-18) -> (너덜/숲길) -> 저항령/절골갈림(05:49, 1106m) -> (너덜, 06:00-06:17) ->
저항봉/1250봉(06:18) -> (조식 06:30-54) -> (세존봉) -> (너덜, 08:10-22) -> 마등봉(08:23-50, 1320m) ->
(설악동 갈림) -> 마등령 삼거리(09:05, 1260m)
-> 오세암(09:55-10:05) -> 만경대(10:20-30) -> 영시암(11:35) –> 백담사(12:30), 10시간 / 무박
8.5km(9.1km)]
< 대간 46구간 산행을 준비하며 >
갑자기 코스가 바꿨다. 전조는 있었다. 산거북님과 춘삼님이 미시령-마등령 답사를 간다 하고, 대장님도 46구간을 연장하여 공룡능선을 넘어 천불동으로 내려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주말이 지나고 나니, 카페 게시판에 37구간(댓재-백봉령)과 46구간(미시령-백담사)의 일자를 변경한다는 공고가 게시되었다. 혼란스럽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나 보다. ㅋㅋ
낯설다. 황철봉, 저항령, 세존봉. 북한 어딘가에 있는 봉우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만큼 감이 안 오는 이름들이다. 그나마 코스의 들/날머리는 익숙한 곳이라 다행이다. 거리 8.5km에 예상 소요시간 6시간 30분, 이만하면 길의 상태는 짐작이 간다. 평균 시속 1.3km, 경험해 보지 못한 최상급 난이도의 코스다. 이유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포의 너덜겅, 정신이 번쩍 든다.
길을 가늠해 본다. 해발 767미터 미시령에서 1389미터 황철봉까지 4.15km 3시간, 너른너덜지대를 지나고, 비고(比高) 622미터를 치고 올라야 한다. 황철봉-마등령은 4.35km, 또 너덜이 있고 체력이 저하되니 속도가 더뎌 시간은 3시간 30분을 예상한다. 이후 마등령-백담사 하산 길이 비교적 완만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대간의 임자를 단단히 만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간 출정식부터 윤대장님은 ‘황철봉’을 걱정했던 것 같다. 주된 이유는 대간꾼의 적 ‘설악산 국공단’때문이다. 국공단은 황철봉 일원에는 눈잣나무, 측백나무 등의 보호수종과 희귀 야생동물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 금지가 불가피 하다 주장한다. 그들이 올 여름을 벼르고 있다 한다. 대간 불법 산행을 근절하고자 미시령에 더 높은 출입금지 펜스를 설치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것이 일자 변경의 이유라 여겨진다. 법을 어기는 행위는 옳지 않으나, ‘대간 종주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설 때는 조심스럽게, 흔적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ㅎㅎ
< 희망사항 >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일전에 경험했던 엄청난 암괴의 서북능선 귀때기청보다도 심한 다수의 너덜겅은 분명 두려운 존재다. 반면 황철봉과 세존봉에서 바라보는 새벽 공룡능선과 울산바위의 풍광과 마등령 오세암/만경대 새 길에 대한 기대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등산은 그 행위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산을 올라 너덜을 넘고 정상을 밟았다고 승리의 대가는 있을 수 없다. 박수를 치는 관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올라간 사람의 마음속의 충만함과 다른 어떠한 것에도 비할 바 없이 커다랗게 마음을 채우는 기쁨과 보람이 그 대가라고나 할까? 국내에서 가장 험하다는 산 길을 오를 준비를 하다 보니 산을 오르는 행위의 근본을 생각해 보게 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원초적이고 중독적인 오르내림의 행위, 그 속에 나를 보낸다. 등산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생각을 지우는 행위라 했다. 또 나를 버리자.
낯설고 힘겨운 일에 맞닥치게 되면 막연하게 나마, ‘지금이 참 중요하다. 이 순간을 잘 넘기면(이 일을 잘 끝마치고 나면) 난, 훨씬 더 앞서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을 목전에 둘 때 떠오르곤 하는 단상이며, 스스로 다짐하며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다. 4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10번이 넘는 무박 대간 종주. 이 ‘무식한 행위’도 이젠 중반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과 다음 댓재-백봉령 산행을 마치고 나면, 나는 저 만큼 앞에 가는 산꾼이 되어 있으리라.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을 꾸며 금요일 자정의 복정을 기다린다.
< 미시령 가는 길에 >
모처럼 교대가 아닌 복정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덕분에 교대 출발 시 보다 집에서 40분 정도 더 여유를 가졌다. 작은 여유에 행복했다. 무려 10명의 288이 함께 탑승했다. 우리 말고도 3대의 28버스가 설악산으로 향한다. 오늘은 설악에서 산지기님이 계 타는 날이다. ㅎㅎ
아사모님과 산천사님이 돈만 내 놓고 불참했다. 함께 하기 어려운 상황인가 보다. 아쉽다. 홀로 시간 내어 대간 종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내가 졸라서 참가한다 해 놓고 아까운 돈만 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내설악 휴게소에서 배낭을 차로 옮겨 싣는다. 혹시나 미시령에서 지키고 있을 국공단에 대비하고자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이기로 한다.
< 미시령에서 황철봉 >
2시 35분, 한때는 인파로 붐비던 미시령 옛길은 정적만이 감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정신 없이 산으로 올라 붙는다. 보강공사로 철조망이 걷어진 상태로 들머리 접근은 용이했다. 마치 누가 뒤쫓아 오기하도 하는 듯 모두 민첩하게 행동한다. 새벽 숲을 깨워 놓았더니 성난 물 것들이 얼굴로 달려 든다. 잡목을 헤치고 길을 이어가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다. 온몸에 나무가 감긴다. 문뜩 ‘이 새벽에 왜 이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일단 걷자! 또 이렇게 새로운 대간 길을 경험한다.
20여분 잡목들과 사투를 벌이다 제대로 된 대간 길에 들어섰다. 하늘에는 하현달이 떠 있다. 좌측 멀리 속초 인근의 불빛이 반짝인다. 산에서 보는 도시의 야경은 언제나 포근하다.
고도는 완만하게 나마 계속 상승한다. 300미터 정도의 비고를 이겨야 첫 이정, 울산바위 갈림에 도착할 것이다. 30분 정도 걷다 작은 공터에서 정열을 정비한다. 국공단 단속에서 자유로울 거리다. 심적 여유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르막과 평지 길이 반복되더니,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일행들이 멈추어 선다. 울산바위 갈림이다. 좌측 금줄을 넘어가면 울산바위까지 길이 이어진단다. 일탈님과 대장님이 나보러 갔다 오라고 농을 한다. 후미를 기다리며 쉬어 간다. 첫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모두의 얼굴과 말에 여유가 묻어난다. 3시 25분, 예상보다 10분 정도 빠르다.
평지 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경사로가 나타난다. 간간이 돌이 보인다. 아직은 너덜이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288말고 이 새벽에 길을 걷는 이들이 또 있다. ‘나홀로산악회’소속 남녀 10여명이 우리보다 앞서서 걷고 있다. 경상도 말씨를 쓴다. 행보가 우리보다 빠를 듯하다.
단짝 느루님이 경기 교육감 선거 유세 참여로 혼자가 된 청한님과 채왕님과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걷는다. 채왕님이 운악산에 대해 물어온다. 아는 바를 설명해 주었다. 채왕님은 당분간 근교 산에 재미를 붙일 모양이다.
시계를 본다. 3시 45분, 드디어 너덜이 시작된다. 때마침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산행 전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몹시 위험한 뾰족한 너덜겅 위에 강도 7의 바람이 분다. 서 있어도 몸이 날라갈 것 같은데 어둠 속, 바위에서 길을 찾기란 여간 힘겹지 않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휘청휘청 네 발로 간신히 길을 이어간다. 높낮이가 다른 너덜 때문에 평소 안 쓰던 허벅지가 근육까지 이용하니 다리가 더욱 묵직해진다. 정신 없이 너덜을 올랐다. 끝이 없다. 한 30분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돌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너덜, 너덜겅의 준말로 많은 돌들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생성 원인은 산사태의 결과란 설도 있고, 큰 암괴가 머금은 수분이 해빙기에 녹으며 마치 얼음을 바늘로 칠 때 쫙 갈라져 나가는 경우처럼 뾰족하고 독특한 구조물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경이로운 자연현상의 결과임에는 틀림없다. 국내 최대 면적의 너덜지대를 난 지금 걷고 있다. 바람이라도 잔잔해 지기를 기대해 보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너덜과 바람과 사투를 벌인 끝에 작은 공터에 도착했다. 바로 위가 1319봉이다. 바람을 피해 안부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큰 고비 하나를 넘었다.
1319봉 하산 길도 너덜 길이다. 다만 거리가 오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다행이다. 때 맞추어 여명이 밝아온다. 아침이 오는 소리는 검푸른 빛의 변화로도 감지된다. 어둠이 푸름으로 변해가다 붉은빛이 느껴진다. 5시 전에 어둠이 걷힌 듯하다. 황철봉을 앞 두고 다시 너덜이 시작된다. 역시 첫 번째 것보다 심하지 않고 무엇보다 앞이 보이니 덜 위험하다.
< 황철봉에서 >
4시 56분, 황철봉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40분 정도 이른 행보다. 막, 잠에서 깨어난 봉우리가 첫 손님을 맞는다. 근사한 봉우리를 기대했는데 나뭇가지 위에 철제 팻말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다. 실망스럽다. 그래도 풍부해진 빛 덕분에 여유롭게 길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기분이 곧 좋아진다.
< 황철봉에서 마등령 삼거리 >
여명의 푸른 빛에 흰 기운이 강해진다. 황철봉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 멋진 바위 전망대가 있다. 선두는 앞서 가고 후미 일부가 전망대에 섰다. 설악의 능선들이 도열해 ‘아침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대청과 서북능선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앞으로 무수히 많은 산봉우리들이 제각각 위용을 뽐낸다.
< 황철봉에서 >
288들을 세우고 가야 할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측으로부터 너덜과1250봉에서 시작되는 암봉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 너머로 공룡능선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7-8분 황철봉에서의 새벽 풍경을 만끽했다. 바람은 많이 잦아들었다.
내리막 너덜이 시작된다. 끝이 내려다 보이는 것으로 보아 길지는 않다. 확실히 빛이 있어 위험한 느낌은 많이 줄었다.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조심 또 조심한다. 내려오며 바라보니 반대편 1250봉 밑 너덜이 선명하다. 저길 어찌 가나 하는 근심 어린 생각이 인다. 산에서는 걱정 또 걱정이다. 미지의 불확실한 존재로 접근할 때 느끼는 불안은 인간의 본성이다. 걱정하지 않고 준비 없이 미지에 접근했던 마음 편한 인간은 사멸하여 유전자를 퍼뜨리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너덜이 지나고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해진다. 유박사님과 함께 걷다가 이내 혼자가 된다. 호젓한 숲 길을 홀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항령이 곧 나타났다. 너덜 지역에 어울리지 않은 널찍한 평지 공터다. 부근에 절골로 하산하는 길도 보인다. 이곳만 보아서는 앞으로 이어질 너덜겅의 정체는 전혀 예상치 못할 만큼 평온함이 느껴진다. 몰 한 모금 마시고 전열을 정비한다.
다시 이어지는 너덜겅, 울퉁불퉁한 암괴가 많기도 많다. 서서히 오르다 보니 이 행위에도 요령이 생긴다. 편편한 돌을 골라 계단 오르듯이 걸으면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내 뾰족 돌을 만나 허둥지둥…. 요령보다는 우직함이 정답이다. 길다. 동기들의 얼굴에도 힘겨움이 묻어있다.
너덜은 생각보다 길었다. 6시에 시작했는데 1250봉에 올라서자 6시 17분이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넷님이 무릎 뒤쪽이 불편하다 한다. 갈 길이 멀었는데 걱정이다. 천천히 가야겠다.
1250봉 부근은 암릉지대다. 여기서 능선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서야 대간 길이 이어진다.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희미한 소로를 따라 간다. 한참을 내려섰다 올라야 마등령으로 이어지나 보다.
6시 30분 무렵 본대와 합류했다. 아침 식당이 차려진다.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랜다. 20여명이 앉을 너른 터가 없어 3그룹으로 흩어져 식사를 했다. 아침 햇살이 점점 강해진다. 서둘러 새벽 길을 걸어 다행이다.
식사 후 걷는 길은 대세 오르막에다 내리막도 간간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암릉 능선 이다. 밥이 에너지를 보충해 주어 크게 어렵지 않고 대간을 즐기며 걷는다. 간간이 전망대가 나타나 걸음을 잠시 멈춘다. 새벽 지나치고 온 울산바위의 모습도 아스라하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제각기 모습을 뽐낸다. 모두가 설악이라는 이름 하에 모여있다. 빛이 바위의 모습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변하는 조망이 근사하다. 세존봉은 어딘지도 모르게 지나쳐 버렸다, 아마도 우회한 듯하다.
< 마등령 전 전망대에서 >
마등봉 밑 숲에서 잠시 쉬어 간다. 햇살이 강렬한 마등봉을 피해 이곳에서 후미를 기다렸다 함께 올라갈 작정이다. 이내 중간 그룹이 속속 도착한다. 걷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겐 마등봉 정상이 어른거리나 보다. 어서 올라 가자고 한다. 성질들 하고는 ㅋㅋ.
한동안 잔 돌이 깔린 돌 길이 이어지더니 이내 너덜이 나타난다. 이번 너덜은 암괴가 아니라 잘게 부서진 돌 무더기다. 빤히 보이는 비탈이지만 막상 걸어보니 10분 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는 찬란한 설악의 아침 햇살을 그대로 머금은 마등령/봉이 있었다. 황철봉과는 다르게 봉우리 자체가 전망대다. 사위가 일망무제다. 새벽을 뚫고 산에 온 보람을 이곳에서 찾는다. 오늘 풍광 중 단언컨대 베스트다.
대청과 중청이 부드러운 U자형 형상을 만들며 우뚝 서 있고, 그 좌측으로 화채능선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광활한 서북능선이 귀때기청을 지나 안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선명하다. 그 앞으로는 공룡능선, 1275봉이 예의 독특한 형상으로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범봉 암릉도 당당히 모습을 드려낸다. 용아장성은 살짝 머리만 내밀고 있다. 마등령은 분명 설악 최고의 전망대다. 설악 주 능선을 이리 선명하게 볼 수 있다니 꿈만 같다. 언젠가 오를 화채능선에 눈 도장을 진하게 찍어둔다. 내 다시 돌아오리라 설악아!
후미를 기다리며 288들의 개인 사진을 찍어준다. 빛이 좋아 내 초라한 사진 찍기 실력을 보완해 주리라 믿는다. 서북능선을 배경으로 ‘노란 두건’을 쓴 형제, 대장님과 산거북님의 모습을 담았다. 288의 상징인 노란 손수건을 쓰고 활짝 웃는 모습이 오늘의 베스트 인물 사진이다. 행복한 순간들이 한동안 이어진다.
< 마등령에서 >
1차 단체사진을 찍고도 후미는 아직 감감이다. 제대로 된 단체사진을 위해 한참을 더 기다렸다. 일탈님이 등장하고
공식 사진을 찍는다. 이럴 때 내 카메라는 보조다. ㅎㅎ
그간 세이브해 두었던 시간은 마등령에서 풍광 감상과 후미를 기다리며 다 써 버렸다. 이제야 출발 전 예상했던 시간과 얼추 맞아 떨어진다. 9시가 다 되어 마등령 삼거리로 출발한다.
< 마등령에 선 288 >
< 설악의 파노라마 >
< 마등령 삼거리에서 백담사 >
마등령을 지나 하산하는 기분은 왠지 파장 분위기다. 대간은 왔던 길을 잠시 뒤돌아 나오다 좌측으로 이어진다. 혼자 왔다면 분명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만큼 직진하는 등로가 선명하게 나 있다.
공룡이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온통 울퉁불퉁 암괴투성이다. 마등봉 출발 7분 만에 설악동 갈림에 닿았다. 금줄이 보여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혹 국공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삼거리는 산객들로 붐빈다. 다시 7분 정도 걷자 오세암 갈림이 나타났다. 이로써 오늘 대간 길은 끝이 났다. 6시간 30분의 장정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훗날 이 길은 ‘너덜, 바람, 풍광 3가지를 원 없이 경험한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오세암까지는 1.4km 거리다. 설악동 하산 길보다는 쉽다 하여 만만히 보고 걷는데,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것이지 역시 만만치 않게 길고 험했다. 특히 마지막 400미터 구간은 몹시 지겨웠다. 그래도 처녀 길을 걷는 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천천히 풍광을 즐기며 하산했다.
< 만경대에서 >
만경대, 오세암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로 출입금지 구역 안에 있다. 입구에 배낭을 벗어두고 봉우리를 오른다. 근방 갈 것 같았는데 한참 걸린다. 대장님이 한 말씀 하신다. “이쁜 것들은 얼굴 값 한다니까!” 올라 보니 이 말이 실감난다. 먼저 오르는 길이 생각 외로 길고 험했다. 첫 번째 얼굴 값이다. 바위로 된 정상에서의 풍광은 황홀했다. 아찔한 암릉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왜 산소리님이 만경대에 꼭 오르라 했는지 알겠다. 두 번째 얼굴 값이다.
이곳에서 다시 단체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좋은 풍광을 너무 많이 보아 눈이 과부하 상태가 되었다. 만경대는 애써 오를만한 곳이었다.
영시암 하산 길, 채왕님과 청한님과 다시 일행이 되었다. 팔팔님까지 함께 한다. 커다란 구상나무 기둥을 두 팔로 안아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오랜 산행 후에 몸은 지쳐도 함께 하는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영시암이다. 점심공양 하는 이들과 절집은 분주하다. 연이어 3km가 넘는 백담사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 돈도니님은 맨 발로 걷는다. 젊어서 인지, 건강해서 인지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12시 30분 무렵 백담사에 도착했다. 속세에 도착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백담 계곡 좁은 길을 요령 있게 나아 간다. 올 초 1시간 30분 동안 걸어간 도로를 10분만에 주파한다. 세상에는 늘 급행이 존재하나 보다. ㅋㅋ
< 에필로그 >
또 한번의 원초적이고 중독적인 오르내림의 행위가 끝났다. 산행 후 귀가하면 새로운 패턴의 산과의 뒤풀이가 시작된다. 우선 샤워를 하고 컴퓨터를 켜고 사진을 정리한다. 구간별 도착/출발시간과 구간별 소요시간도 이때 함께 확인한다. 잘못 나온 사진을 지우고, 28산악클럽 카페에 올린 사진을 엄선하고, 사이즈를 줄여 새로운 파일을 만들고, 휴대폰으로 가져 갈 사진을 정리하고 나면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내 사진을 공유하고 동기들의 사진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 즐겁다.
그러고는 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9시 전후에 든 잠은 새벽 3시 정도면 깬다. 더 자야 하는데 대개 한번 깨면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에 지나온 행로를 머리로 정리하다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산행일기를 쓴다. 아침을 먹고 산행기를 대충 마무리한다. 그러고는 잠을 보충한다.
오후에 산행일기의 오탈자를 점검하고 기록을 보관한다. 이런 행위는 이제 습관이 되어 그리 힘들지 않다. 오히려 즐거운 의식이 되어간다. 이 즐거운 일상이 아주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늘 바래본다.
< 46구간 산행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