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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 하늘의 신령한 복
엡 1:3-6
[SNS 컬럼, 인생이란 이런 것] 젊어서는 인생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 들면 ‘화살처럼 달리는 백마를 문 틈으로 얼핏 본 것처럼 인생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한번 밖에 살지 못 합니다. 한번 밖에 살수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에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최선을 다해 살고 지금이 생애의 최고의 순간인 듯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 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 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뎌내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히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줄까요? …바로 우리 자신 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까? 이 사람처럼 우리 자신이 이런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런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았지만 참된 행복은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습니다.
[존 번연] 영국의 작가인 ‘존 번연’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복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종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금년 한 해는 ‘지경이 넓혀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개구리와 꽃] 어느 집 정원에 예쁘게 핀 ‘꽃’들에게 주인이 물도 주고 다듬어 주는 모습을 본 ‘개구리’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꽃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주인이 물도 주고, 잘 보살펴 주니 참 행복하겠다. 나는 목이 말라도 물을 주는 사람도 없고, 뱀이 나를 잡아먹으려 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가끔은 사람들이 나를 잡아먹으려 해서 어디를 가나 항상 두려움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러자 꽃이 말합니다. ‘그것은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우리는 너처럼 발이 없어서 목이 말라도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해, 또 아이들이 정원에 들어와 밟으면 밟혀야 되고, 꺾으면 꺾여야 해, 하지만 너는 발이 있어 목이 마르면 물을 찾아가 먹을 수도 있고, 위험이 닥치면 도망도 갈 수 있잖니?’ 이 말은 들은 개구리가 자기에게는 꽃들에게 없는 ‘다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헤아리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복을 헤아리며 부러워하다가 자신의 복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었다면 ‘어떤 복을 받았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또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를 잘 모르면 ‘예수 믿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이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이 땅의 복’과는 구별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신령한 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부터 14절까지’ 한글 성경에서는 여러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원문을 보면 바울은 이 ‘신령한 복’이 너무나 커서 ‘쉼표, 마침표’도 없이 한 문장으로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 202개 단어’로 성경에서 가장 ‘긴 문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너무나 감격해서 찬송이 터지니 거침없이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령한’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뉴마티코스’는 ‘성령께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신령한 복’이란 ‘성령께 속한 복’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복은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땅의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인위적인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복’이며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격스러워서 문장을 끊을 수 없을 만큼 감격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렸습니까? 하늘의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감격해서 찬송하고 있는 ‘하늘의 신령한 복’이 어떤 복인지 살펴보고, 이 ‘하늘의 신령한 복’이 흘러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들어가며
[히티 그린] 미국 역사상 ‘최대의 구두쇠’라고 알려진 ‘히티 그린’이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 분은 1916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할머니의 ‘통장’에 ‘1억불’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 때 1억불이면 도대체 얼마입니까? 그런데도 이 할머니는 평생 ‘차가운 오트밀’만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데우는데 드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가 얼마나 구두쇠인가 하면 ‘아들’이 다리가 아파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도 그냥 두면 혹시나 나을까 하고 병원 가기를 미루는 바람에 결국에는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일 억불’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할머니처럼 부자이면서도 극빈자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행복하게 사시겠습니까?
[SNS 인생 최고의 복] 일본에서 70대 대상으로 ‘노후를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남성 69퍼센트’는 ‘반드시 아내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고, ‘여성 66퍼센트’는 ‘절대 남편과 안 보낸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내가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는 ‘인복’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사 갈 때 남편 놓고 갈까 봐 이불짐 위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남자 정년] 최근 들어 ‘한국 남자들의 심리적 정년’을 조사했더니 ‘37.5세’라고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첫 직장에서 마흔 살까지 다니기도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노년까지 돈 걱정 안하고 살수 있을까?’라고 합니다. ‘돈’이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복 한자] ‘복(福)’자 한자를 보아도 ‘보일 시(示)’ 변에 ‘한 일(一)자, 입 구(口)자, 그리고 밭 전(田)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식구가 먹고 살 밭을 보는 것이 바로 복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건강의 복, 재물의 복, 자식들이 잘 되는 복, 명예의 복’들도 귀한 복이지만 이런 복들은 ‘영원한 복’이 아니라 ‘잠시 잠깐의 복’이고 ‘실체적인 복’이 아니라 ‘그림자 복’입니다.
영원하고도 참된 진짜 복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신령한 복’입니다. 이 복은 ‘하늘에 속한 복’이며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와 성령을 통해서 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주권적’이고도 ‘일방적’인 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이 ‘하늘에 속한 복’이고 ‘신령한 복’이어서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당장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으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하늘 나라에서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 비결’을 배워서 금년에는 ‘신령한 복’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3절]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입니까?
[마5:45]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악인과 선인’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 은총’입니다. ‘돈, 명예, 건강’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인들에게도 공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28:1]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장 1절부너 14절까지’ 보면 우리가 세상에 받고 싶은 거의 모든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숫자’와 ‘소유하고 있는 땅의 넓이’와 ‘자식들의 숫자’, 그리고 ‘육신의 건강’등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옛 언약의 축복, 구약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네게 명령한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복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런 임시적이며, 외양적인 것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복은 바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령한 복’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입니다. 바로 ‘구원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에게만’ 내리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유일하고 특별한 복’입니다.
[4절]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 중에 ‘첫 번째 축복’은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선택 받을 만한 ‘가치’가 있거나 ‘행위’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결정된 것입니다.
우리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사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말씀에 복종하며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아니라 옛 언약 아래 있는 ‘이 땅의 복’을 여전히 좇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으로 행복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늘의 복
[카터 대통령]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이들이 ‘하버드 랜드크리프 대학’에서 강연을 끝내고 질문을 받을 때, 한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잉꼬 부부가 되었느냐?’고 묻자 카터가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결혼에서는 사랑이 30%이고 나머지 70%는 용서였습니다.’
그러자 아내 로잘린이 일어나서 카터의 대답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결혼에서 사랑은 10%이었고, 90%는 용서였습니다.’ 이 말을 하자 모든 이들이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행복의 조건’은 ‘용서’에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 사함’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죄로 인해 관계가 가로 막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므로 죄가 있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휘장이 찢어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공군장성] 어느 장로님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공군 장성’이었다가 퇴역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실에 들어서자 그 친구가 다짜고짜 소리를 치더랍니다
‘야! 빨리 가서 먹고 죽는 약 가져와. 나 장군이야. 그런데 똥 오줌도 못 가리고 이렇게 기저귀 차고 누워있어서 되겠어? 먹고 죽는 약 가져와!’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죽을 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죽음 직전에 깨달은 한 가지] 미국 애플사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 5일에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죽음 직전에 깨달은 한 가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점’에 도달했었다. 그러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 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쉬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비뚤어진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바로 나같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의 감성’을 모두의 마음 속에 넣어 주셨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의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이며 그것은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아무리 성공해서 마지막에는 결정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 용서를 받아 구원을 받았는가? 아니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막]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서 죽을 것 같아 사람들이 머물던 흔적을 찾아 마실 물이 있을까 뒤졌습니다. 그랬더니 ‘가죽 주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기대를 갖고 열어보니 ‘보석’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무 것도 아니잖아!’ 죽는 순간에 이르면 보석,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속죄함을 받은 것입니다. 천국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무디] ‘D.L. 무디’가 ‘62세’때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평균 나이가 ‘58세’쯤 되니까 꽤 많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신문에 ‘무디가 늙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실은 무디를 칭찬하는 기사였지만 무디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주일날 무디가 설교하러 단에 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 보셨죠. 나를 보고 늙었다고 썼습니다. 여러분 제가 늙었습니까?’ 그랬더니 교인들이 가만히 있어요 진짜 늙었거든요.
‘내가 이제 겨우 62세인데 곧 죽을 사람으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100살을 살 거예요’ 교인들이 다 고개를 푹 숙였어요. '노망이 들었나.' ‘아니요 나는 천 년을 살 거요. 만년을 살 거예요. 나는 10만년을 살 거예요. 10만년에 10만년을 살아 나는 영원히 영생하며 살 것입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아멘!’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축복으로 받은 ‘영생’은 이 땅에 살아가게 될 ‘80년, 100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땅에 80년 세월이라는 것은 한 순간 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복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지만 그 복이 귀한 것을 모르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르면 그 엄청난 복을 ‘세상의 것’과 바꾸게 됩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에서 ‘개그우먼 이수지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샘해밍턴의 두 아들이 화동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화동으로 참석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개그맨 ‘남희석’씨가 ‘샘 해밍턴 둘째 아이인 벤틀리’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를 주었습니다. 아빠가 오만 원을 달라고 하자 벤틀리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과자를 주면서 ‘오만 원짜리와 바꾸자’고 하자 벤틀리가 바로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벤틀리’는 ‘오만 원’의 가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지만 그 복이 복인 줄 모르면 ‘세상 것’과 금방 바꾸어 버리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받고도 모르면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 즉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기업의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절]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찬송’과 ‘기도’입니다.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령한 복’을 받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는 데서 나오는 ‘감격’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할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 분의 하신 일’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그저 감정이 격해져서 찬양하는 것은 ‘찬양’이 아니라 ‘노래’입니다.
[호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는지 알지 못하고 예배하고 찬양하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지경’이 넓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찬송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해 주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하신 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하신 일’입니다. 이 일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일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찬송’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 감격스러운 찬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고, 그 계획된 일을 ‘수행’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을 사람으로 보내시고 그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믿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일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오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찬송을 받고 싶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제1문]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세워 놓으신 질서 아래에서 그 분을 ‘찬송’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찬송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삶에서 ‘찬양’이 메마르고 힘이 없다면 내 신앙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불만이 생기고 찬양이 사라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내가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요구하다가’ 실망하고 찬양이 끊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속한 ‘성품’을 가지고, 하늘에 속한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면 나도 모르게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은 찬송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찬송한다’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복’을 알고 나니 감사하고 찬송 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롬8:32]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의 신령한 복’을 예수 안에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감사와 찬송’ 밖에 안 나옵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찬송으로 성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찬송하라
[시골 은행] ‘시골의 작은 은행’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어느 분이 급히 송금할 일이 있어 시골 은행에 들렀다가 목격한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은행 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창구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할매, 비밀번호 뭐라요?’ 그러자 할머니는 아주 아주 가는 목소리로 ‘비.둘.기’라고 말했습니다. 매우 황당해 하며 여직원이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할매요, 비밀번호 말 안 하면 돈 못 찾는다 아잉교... 비밀번호 말 하이소!’ 그러자 살짝 입을 가리신 할머니는 한 번 더 ‘비.둘.기’라고 했습니다. 인내에 한계를 보인 여직원은 ‘할매요, 바쁜데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와 이라능교? 퍼뜩 비밀번호 대이소!’라고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그제야 할머니가 비밀번호를 말하는데 온 은행 직원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비밀번호는 바로 ‘9999’였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여는 비밀번호는 무엇입니까?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Praise the LORD.’로 번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세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찬송하며 사는 삶,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하] ‘요한 세바스챤 바흐’는 수많은 작곡가나 연주가들에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러나 바흐 당시에는 그의 위대한 음악에 열광하며 환호한 것도 아니고 그의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학계가 인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도 충분치 않아서 일평생 그를 따라다닌 것은 ‘세상의 무관심’과 ‘예술가로서의 고독’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에 모든 열정을 바쳤음에도 ‘돈도 명예도 인기도’ 보상되지 않고 사람들은 ‘무관심’했고 주위의 시선은 냉담했는데 바흐는 어떻게 깊고 위대한 음악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고 많은 학자들이 뛰어들어 연구했는데 그의 음악 인생을 이끈 ‘힘의 원동력’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악보들 속에서 발견된 바흐 친필 약자들을 보게 된 연구자들은 깊은 감동 속에 그 열쇠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언제나 악보의 첫머리에 ‘J. J. (Jesus Juva, 예수님 도와주소서)’라고 글씨를 쓴 뒤 작곡을 시작했으며, 악보의 마지막에는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라고 적으며 작곡을 마쳤습니다.
바흐는 곡을 시작하기 전 늘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곡을 마치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연구자들은 다시 악보를 뒤지기 시작해 ‘건반악기의 악보 첫 장’마다 'I.N.J' 가 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I.N.J'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즉 ‘In Nominee Jesu, in the name of jesus’라는 이니셜을 발견해냈습니다.
바흐는 성경의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써 내려가듯 모든 곡을 작곡할 때마다 예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며 성령의 감동으로 초인적인 작곡들을 할 수 있었으며, 그의 마르지 않는 독창성과 영감의 근원은 ‘음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흘러온 것이었다. 그래서 작곡가 ‘로시니’는’바흐는 바로 신의 기적’이라고 고백했고, 바흐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기를 간절히 원하며 작곡을 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낮추고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의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그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그래서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바흐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음성을 그리고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헨델] 해마다 성탄절이면 ‘헨델의 메시아’가 이곳 저곳에서 울려 퍼집니다. 부활절에 적합한 음악 작품이 성탄절에 널리 애창, 애청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시아'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진한 감동을 줍니까? 역시 헨델의 악보 끝에 쓴 ‘SDG(Soli Deo Gloria장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라는 글귀에 나타납니다.
구원 복음의 위대성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곡했음을 밝혔습니다. 특히 메시아를 작곡할 때는 더욱 성령 충만 가운데서 작곡했는데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할렐루야’를 작곡할 때는 ‘천국 환영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찬송하는 것’은 놀라운 기적을 가져옵니다. 찬송이 ‘입술과 마음에 불을 붙이고’ 성령께서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찬송의 파워는 신앙의 파워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기쁨을 모르고 지냅니까? ‘환경’이 우리를 찬송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이 찬송할 수 있습니까? ‘내가 복을 받은 자구나!’ 확신이 생긴 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은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으로부터 ‘찬송’이 흘러나옵니까? ‘하늘의 신령한 복’이 가슴에 넘쳐서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든 마음으로부터 찬송이 터져 나오십니까?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세상의 박자’에 이끌려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에 이끌려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상의 노래를 영혼으로 부르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보이는 세상의 복’을 쫓고 살았다면 금년에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성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억울하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은 그 바라보는 목표와 달리는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 분을 찬양하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적인 축복과 기쁨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올 한 해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