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봉달이’ 이봉주의 얘기 같지만 아니다. 마라톤 일본기록 겸 아시아기록(2시간6분16초) 보유자인 다카오카 도시나리. 그는 이봉주(10월11일)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생일은 9월24일로 보름 정도 이르다. 동갑내기인 둘은 나란히 모국의 최고기록을 지닌 베테랑 선수로 공교롭게도 올해 3월 마라톤 인생을 접는 대회에 일주일 간격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고 했던가? 다카오카는 도쿄국제마라톤(3월22일)에 출전해 35km지점에서 왼쪽 장딴지 통증을 호소하며 레이스를 중단했다. 아직도 5000m(13분13초40), 10000m(27분35초09)에 마라톤까지 3종목 일본 기록 보유자이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 10000m에선 7위에 입상했던 일본 중장거리와 마라톤의 간판 스타였다. 하지만 그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마라톤 인생에서 처음 중도에 기권한 것이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를 이렇게 오래도록 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슬럼프 때 팬이 보내준 편지에 적힌 “꿈꾸는 것은 이룰 수 있다”는 글귀였다.
다카오카보다 꼭 1주일 앞서 이봉주가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하는 공식 마라톤경기에 출전했다. 베를린 세계선수권 대표선발전까지 겸한 2009 서울국제마라톤이었지만, 이미 지난해 국가대표에선 은퇴했기에 우승이나 순위 따윈 그에겐 더 이상 목표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순조롭게 매듭짓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이번에도 자신과의 싸움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생애 40번째 뛰는 것인데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봉주는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10분대는 뛰어야 할텐데...”라고 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체력 회복속도가 전과 같지 않았다. 몸이 따라주질 못하니 연습량이 부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시간16분46초, 14위의 기록이었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완주가 목표였는데, 이 정도라도 뛰었으니 너무 다행이다.” 그의 마지막 마라톤 도전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14위에게 쏠리는 매스컴의 관심은 우승자를 당혹스럽게 했다. 우승자가 마흔의 나이에, 마흔 번 풀코스를 완주했다면 카메라 플래시는 이봉주의 곁을 떠나 우승자에게 향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