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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
20세기 기독교의 전환점을 가져온 운동의 하나가 바로 오순절 성령운동이다. 오순절 성령운동은 오늘날의 교회의 영적인 무기력과 침체에 대해 초대교회의 부흥을 재현시키고자 하는 영적인 대각성운동이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주로 오순절 교단에 국한된 운동이었지만 점차로 여러 교파의 관심을 얻게 되었고, 성령운동의 중요성을 인식시킴으로써 오늘날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보급되고 있으며 세계의 기독교 선교신학을 주도하고 있다.
1. 오순절 성령운동의 성격
1) 오순절 운동의 정의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이란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근거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이신 성령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영적 운동(Spiritual 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오순절 운동은 한마디로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순절 운동은 초대교회의 부흥을 오늘에 재현시키고자 하는 영적 대 각성 운동으로서 20세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교회가 등한히 하기 쉬웠던 영적 부흥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해 주고 있다.
2)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특징
첫째, 오순절 신학은 성경에 최고 권위를 둔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전 복음(All the Bible)을 믿는다. 예를 들면, 성경에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났으므로 오늘날도 언제 어디서나 기적이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오순절 교회들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이로 말미암아 신유의 체험을 한다. 이같이 오순절 신학은 성경의 개념을 실제로 체험함으로써 성경의 계시와 역사적 체험의 연속성의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
둘째, 오순절 신학은 성령세례(Baptism in the Holy Spirit), 즉 성령 안에 잠기는 체험을 강조한다.
오순절 신학은 죄인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오는 구원의 세례 (고전 12:3)와 성령세례를 구별한다. 이 운동의 신학적 기초는 성령세례가 중생의 체험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며, 중생과 구별되는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셋째, 오순절 신학은 세계 선교의 대위임명령을 중요시하여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이루어 나가는 데 있으며,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 오순절 신학의 이 같은 선교관은 현대 선교의 실천적인 면에 공헌하고 있으며, 이에 입각한 오순절 계통 교회의 선교는 급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넷째, 오순절 신학은 전인 구원의 신학(Holistic Theology)이다.
오순절 신학이 주장하고 있는 “체험되는 성령”은 성령의 역사가 단순히 영혼구원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육체와 구체적인 생활에까지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인적인 구원을 무시한 채 영혼만을 구원하는 사역, 또는 영적 황홀경에만 머물러 육체적 치료와 인간 생활의 발전과 변화를 무시하는 것 등은 오순절 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2.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
1) 현대 오순절 운동의 성립 배경
미국을 비롯한 유럽을 뒤덮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해 생기는 회의감으로 신앙의 열정이 식고 성경의 권위에 의심이 생기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 보다는 사회개혁을 위한 교육이 강조되면서 영적인 침체기를 맞고 있을 때, 성경의 축자영감과 복음적인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신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생겨난 것이다.
(1) 웨슬레주의의 공헌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는 중생(또는 칭의) 이후 ‘은혜의 두 번째 사역’(The second work of grace)을 강조했는데, 이는 오순절 성령운동이 중생 이후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웨슬레주의가 최초로 회심(중생 또는 칭의) 이후의 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오순절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2) 챨스 피니(Charles Finney)의 부흥운동
챨스 피니를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 및 성결운동에서는 구원 이후 다가오는 삶의 변화와 체험을 강조하였다. 이는 죄의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증거하고 섬기기 위한 능력이 부여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제 2의 축복 체험은 19세기 말 성결 운동과 경건 운동에서 ‘성령 세례’라고 불리게 되었다.
(3) 신유운동
성결운동 내의 신유운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었으므로 신유의 권능이 오늘날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4) 복고주의의 영향
복고주의의 영향으로 신약시대 교회에 나타났던 기적과 권능의 회복에 대해 갈망하게 되었다. 즉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이른 비 성령 강림과 같이 마지막 시대에 늦은 비 성령이 임하기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2)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의 발전
(1) 토페카(Topeka) 부흥운동
토페카 부흥운동 이전에도 미약하나마 오순절 성령운동이 미국에서 전개되었다. 그러한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은 토페카 부흥운동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 토페카 부흥운동은 팔함(Parham)이 세운 벧엘 성서학교에서 일어났다.
1900년 가을 학기 종강이 가까웠을 때 팔함은 학생들에게 회개, 칭의, 헌신, 성화, 치유에 대한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3일간의 부흥회를 마치면서 “성령 세례 받은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 연구의 주목적은 세례의 참된 성경적 증거를 발견함으로 현대 성경교사들의 주장으로 인한 혼돈 대신 참 증거를 얻고자 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물었을 때 모두가 “방언”이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성령께서 임하실 때 방언을 했다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네 가지의 사례들로부터 추론해 낸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성령세례를 간구하게 되었다.
1900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로 모인 40명의 학생들과 70명의 성도들은 밤을 새우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가 시작되는 1901년 1월 1일 아그네스 오즈만(Agnes N. Ozman)양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팔함에게 안수를 요청했다. 그리고 팔함이 손을 얹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세례를 받았고,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도행전적인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계속 기도했는데 12명의 학생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말하였고, 함께 참석했던 사람들은 학생들의 머리 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있었음을 직접 목격했다고 전한다.
팔함과 그의 제자들은 그들이 받은 성령세례를 모든 크리스천들이 받아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성경을 중심적으로 연구한 신학교에서 확신을 가진 신학생들이 성경에 근거하여 기도함으로 성령세례 받은 첫 번째 증거가 방언이라고 하였다는 것은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오순절 운동은 감정적이 아닌 성경에 신학적인 기초를 둔 운동이요, 초대 교회로 돌아가고 성령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이다.
(2) 아주사(Azusa) 부흥운동
팔함의 제자인 시무어(William J. Seymour)가 로스앤젤리스에서 일으킨 아주사 부흥은 태동기에 있는 오순절 운동을 세계적인 운동으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했다. 1906년 4월 9일 시무어는 로스앤젤레스의 노스보니브래 거리(North Bonnie Brae Street) 24번지에 있는 한 침례 교인의 가정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사도행전 2장 4절을 펴고 성령세례의 표적이 방언이라고 말했다. 그 때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7명)이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장소를 아주사 거리의 한 건물로 옮겼다.
그 후 ‘아주사 거리 선교회’(Azusa Street Mission)가 조직되고 이 집회는 계속해서 열기를 더해 갔으며, 이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령 운동을 일으켜, 이 부흥은 마침내 미국 전역에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대단한 불길을 일으켰다.
토페카 부흥운동이 정통 오순절 운동의 기초라고 한다면 이 아주사 거리의 부흥운동은 이러한 정통 오순절 운동의 공식적인 기초를 놓은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오순절 운동은 1906년에는 캐나다로, 1907년에는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유럽으로 건너갔다. 당시 1891년에서 1907년까지 영국에서는 성결운동이 있었는데, 이 운동의 토양은 케스윅(Keswick) 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1907년에는 중국으로, 1913년에는 아프리카, 중남미, 멕시코, 일본 등지로 퍼져 나갔으며, 1914년에는 현재 오순절 교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조직되었다.
3) 현대 오순절 운동의 종류
(1) 정통적 오순절 운동
정통적 오순절 운동은 대개 20세기 초에 결성된 오순절 교단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정통적 오순절 운동에 속한 교회들은 모든 예배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로 성령의 은사들의 나타남을 환영한다.
이 정통적 오순절 운동에 속한 교단들은 대부분이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외적 증거로 보고 있다. 이 그룹에 속한 하나님의 성회는 “신자의 성령 안에서의 세례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함이 첫 육체적 표적으로 증거된다. 이 경우에 방언 말함은 방언의 은사와 본질에 있어서는 같으나(고전 12:4-8,28), 목적과 사용에 있어서는 다르다”고 본다.
정통적 오순절 운동에 속한 신유 사역자로서 두드러지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오스본(T.L. Osborne), 케네스 해긴(Kenneth E. Hagin), 모리스 세룰로(Morris Cerullo) 등이다.
(2) 신오순절 운동(Neo-Pentecostal Movement)
신오순절 운동은 다른 말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성령세례 받은 증거를 방언으로 못 박지 않고 다른 은사들을 체험해도 성령세례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운동은 1960년 4월 3일 성공회 신부인 데니스 베네트(Dennis Bennett)가 자신이 시무하는 밴 누이스 성공회(Van Nuys Episcopal Church)에서 “성령이 나의 입술을 사로잡아 방언과 새로운 형식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찬양과 감사의 말을 했다”고 강단에서 고백함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그 교회 교인들 중에 이미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성령충만을 체험한 교인들은 오순절 체험이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험임을 강조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신오순절 운동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의 참여 범위는 범 교단적이요, 국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속한 사역자로는 베네트와 샌포드(Agnes Sanford)를 들 수 있으며, 대표적인 신학자는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이다.
(3) 가톨릭 은사운동
이 운동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은사운동이다. 이 운동은 몇 명의 가톨릭계 교수들과 학생들이 뒤케인(Duquesne)과 노틀담(Notre-Dame) 대학에서 함께 모여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함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모임에서 오순절 은사들이 나타났고, 그 후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오순절 운동의 지도자인 에드워드 오커너(Edward D. Oconner)는 그 때를 “이 사건을 초대교회에서나 일고 있는 것 같은 은사적 활동의 나타남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들 중 대부분이 방언 은사를 받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the power of exor- cism)을 받았다. 이 체험의 결과로 하나의 작은 기도 모임이 형성되었다”고 회상했다.
가톨릭의 신유 사역자로는 프랜시스 맥너트(Francis MacNutt) 신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4)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운동
이 운동의 명칭은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에 의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는 이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제 3의 물결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역사의 제 1물결은 20세기 초반의 오순절 운동을 통하여 시작되었다. 제 2의 물결은 50년대에 주요 교단들 간에 일어났던 카리스마 운동이다. 이 두 운동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의 제 3의 물결이 복음주의자들과 다른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오순절 교단이나 카리스마 교인들이 체험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카리스마나 오순절 교인이 되지 않고도 그러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20세기를 거의 다 지나가면서 무언가 새로운 물결 속에 다시금 들어와 있는 것이다.”
3.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성립과 발전
1)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성립
‘말씀과 증인’이라는 오순절 잡지 1913년 12월 20일자 기사에 “1914년 4월 2일에 모든 오순절 성도들이 핫 스프링스(아칸서스 주)에서 한 번 모임을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 실렸는데, 첫째, 교리적 분열 방지, 둘째, 목적 달성까지 단합에 힘쓸 것,셋째, 적은 돈을 모아 큰 사업(외국 선교) 전개, 넷째, 결성된 교단 유지를 위하여 헌법을 제정,다섯째, 신앙 통합을 위하여 훈련소(신학교)를 세우겠다는 창립취지를 밝혔다.
1914년 4월 2일이 되자 22개주와 해외 선교사들 약 300명 이상이 핫 스프링스 중심가 200번지 올드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에 모였다. 이때 128명의 교역자와 선교사가 등록하였다. 4월 2일부터 3일 간 설교, 기도와 친교의 시간을 가지므로 분위기는 갈수록 좋아졌고, 회의는 4월 6일에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단의 공식 명칭을 ‘하나님의 성회’(Asse- mblies of God)로 정했으며, 벨(E. N. Bell)이 발행하는 ‘말씀과 증인’(Word and Witness)과 훌라워(J. Roswell Flower)가 발행하는 ‘크리스챤 복음’ (Christian Evangel)이 공식적인 교단지로 인정되었으며, 당시 개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10개의 오순절 성경 학교들 중 2개교가 인정되었다. 이렇게 1914년 4월 12일 모든 회의는 끝나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성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2) 미국 하나님의 성회 시련기(1914-1916)
하나님의 성회가 발족한 후 성장 속도가 빨라지자 교단지를 인쇄하는 시설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행정상의 문제들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의장인 벨과 총무인 훌라워에 의해 제 2차 총회가 시카고에서 1914년 11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되었다.
제 2차 총회는 35개 주와 카나다 및 여섯 나라에서 522명이 등록했으며 콜린스(Arch P. Collins)가 의장이 되었고, 훌라워(Flower)가 총무로 재선되었으며, 오퍼맨(D. C. O. Opperman)이 부의장, 로렌스(B. F. Lawrece)가 부총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초대 의장인 벨이 “오직 예수 운동”(Jesus Only Move- ment)에 착석하며 교단의 정기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또 이 영향으로 많은 목사들이 교단을 떠나는 등 여러 문제가 계속 발생하므로 1915년 긴급회의를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삼위일체’의 입장을 밝혔고, 총무인 훌라워는 성경과 교리를 연구한 후 “오직 예수 운동”을 고대 이단의 부활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많은 목사들이 탈퇴하였고, 하나님의 성회는 큰 회오리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폭풍우를 수습하고자 총무인 훌라워는 상임 위원들을 만나 1916년 10월에 총회를 개최할 것을 결정했고, 총회 때 의장 콜린스와 부의장 오퍼맨이 불참하였으므로 총무 자격으로 훌라워가 그 모임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 총회에서 의장에 웰치(J. W. Welch), 부의장에 셀(W. G. Schell), 총무에 훌라워, 부총무에 로렌스가 선임되었으며, 회의 결과 삼위일체 신자들이 승리하였다.
이 회의의 효과를 살펴보면, 그동안 교단 신조가 없어 교리적 혼란이 야기되었던 것을 통감하고 교단 신조를 제정했다는 것에 있다. 교단 신조를 제정하는 그 기초 작업 과정에서, 방언이 성령세례의 유력한 증거라는 내용 등을 담은 ‘근본 진리의 선언’이 통과되었고, 다음과 같은 5개 항의 교단 신조를 채택하였다.
첫째, 삼위일체 신앙(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의 하나님 을 믿음)
둘째, 은혜와 자유 의지(알미니우스의 교리)
셋째, 침례와 성만찬의 성례전 집행
넷째, 점진적 성화에 의한 도덕적 완성
다섯째, 전천년왕국설(그리스도 재림이 그리스도와 성도의 천년 왕국이 오기 전에 있으리라는 교리)
이 교리의 선언으로 586명이던 목회자가 429명으로 줄었으나, 그 후 목회자들이 ‘오직 예수 운동’의 주관적인 감정주의로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초대 의장이었던 벨을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이 되돌아 왔고, 하나님의 성회는 교리적 혼란에서 점차 회복되었던 것이다.
3) 미국 하나님의 성회 안정기(1916-1941)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오직 예수 운동’의 위기를 벗어나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안정기를 가져오게 된 것은 첫째, 교리적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며, 둘째, 선교정책이 명백해졌고, 셋째, 출판과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⑴ 교리적 문제 해결
1916년에 채택한 ‘근본 진리의 선언’에 있는 ‘성령세례의 증거’를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 교리적인 쟁점이 되었다가 해결되었다.
⑵ 선교정책
해외 선교에 불타있는 총회원들의 헌신적인 선교 헌금과 선교사 파송으로 하나님의 성회는 더욱 발전하고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1916년부터 해마다 많은 액수의 선교 헌금이 들어왔으며, 파송된 선교사가 1914년에는 15명이었던 것이 1918년에는 73명으로 늘어나 14개국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또한 1925년에는 “선교국”이 설립되었고, 1927년 젊은 영국 선교사인 퍼킨(Noel Perkin)이 선교국 총무로 임명되면서 1959년 은퇴 전까지 선교의 확장에 큰 공헌을 했다.
⑶ 출판 및 교육 사업
총회의 두 교단지 즉 ‘말씀과 증인’(Word and Witness)과 ‘크리스천 복음’(Christian Evangel)은공식적인 주간복음지 ‘위클리 이반젤’ (Weekly Evangel)로 통합되었고, 성령세례 증거의 논쟁 후에 오순절 특성에 맞는 이름 ‘오순절적 복음’(Pentecostal Evan- gel)지로 개명하여, 오순절 체험의 생생한 간증들, 오순절 신학 등이 실려 각지에 보내짐으로써 교단 안정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회 주일학교 인쇄물이 1927년에 연간 8백만 부를 찍어내게 되었고, 신학교도 처음 공인된 2개의 신학교 외에 여러 곳에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출판과 교육 사업의 확장으로 하나님의 성회의 안정과 발전은 더욱 촉진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노력으로 인하여 총회원은 1917년에 429명에서 573명, 1918년에 819명의 회원으로 늘어났고, 1918년 봄에는 총회 본부를 미주리 주 스피링필드로 옮겼으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4)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성장기(1941-현재)
1940년부터는 전통적인 교회들과 오순절 교회 사이의 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복음주의 교회들과 오순절 교회들의 연합이 이루어져 세계 선교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성결 교회에서는 오순절주의를 광적이라고 비난했으며 성령세례 교리는 비성경적인 것으로 이는 성경을 악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근본주의자들은 오순절주의를 ‘감정주의’라고 비난했을 뿐 아니라 방언은 초대교회 때에만 있었다는 세대주의의 해석 입장을 내세워 방언과 신유는 비성서적이라고 비난해 왔었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들은 1920년에서 1936년까지 무려 2백만 명의 교인(전 교인 수의 8%)를 잃어버린 반면, 같은 기간 동안 하나님의 성회는 208.7%가 증가하고,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는 98.8%가 증가한 것에 대해 그들은 자신들의 교인을 빼앗겼다는 강박 관념으로 핍박을 가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회는 타교단과 대립하기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선교함으로서 서서히 그 진실을 인정받게 되었고, 1942년부터는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Ⅱ 한국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
1. 한국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미국의 작은 도시인 토페카에서 발원한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은 미국이 선교하는 지역마다 급속히 확산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성령운동은 미국의 오순절 성령운동과는 직접적인 연관 없이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는 한국의 성도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한국의 성령운동은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정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국가의 위기로 인한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뜨거운 신앙과 함께 태동되었다.
1) 성령운동의 발원과 전개
(1) 제1의 부흥물결(1903년)
한국의 성령운동은 1903년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 의해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에서 출발되었다. 그해 겨울 한국을 잠시 다녀가던 스웨덴의 프란스 목사와 미국 남감리교 중국 주재 여선교사 화이트(M C. White) 여사는 원산에서 하디 목사를 비롯한 선교사들과 함께 기도와 성경 연구를 위해 한 주일을 지낸 일이 있었다.
이 때 캐나다인으로서 남감리교 선교부에서 일하던 하디 목사는 강원도에서 몇 년 동안 힘써 일해도 결실이 없음으로 인하여 고민하다가, 이 모임에 참석하여 기도하던 중 자신의 선교사업의 실패가 체험적 신앙의 전달이 아닌 지식의 전달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가 회개하고 성경을 읽던 중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는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아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자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먼저 자기 집의 요리사에게, 그 다음 선교사들에게, 그리고 한국 교인들 앞에 나아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을 들은 한국 교인들은 모두 성령의 체험을 갈망하게 되었다.
(2) 제2의 부흥물결(1905-1906년)
제2의 부흥물결은 2년 동안 한국을 휩쓸었는데,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 이길함(Graham Lee) 목사를 선두로 열린 한국인 제직들을 위한 특별사경회가 부흥 운동의 열기를 가속화시켰다. 이때에 있었던 성경공부는 요한일서를 중심으로 한 공부였다. 선교사들은 망국의 설움 속에 있던 교인들에게 영적인 위안과 하늘의 소망을 일깨워 주기 위해 계속적으로 사경회를 이끌어 나갔으며 이로 인해 원산을 중심으로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기 시작했다.
또한 목포에서도 1906년 초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교회마다 교인들로 가득 찼다.
(3) 제3의 부흥물결(1907년)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는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주축을 이뤄 낮에는 사경회로 성경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흥전도회를 가졌는데 이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이때 모인 1,500여 명의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열망하며 기도에 힘썼다.그리고 성회의 막바지에 이른 14일, 블레어(W. N. Blair) 목사가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을 읽고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지체들’이라는 설교를 한 다음부터 부흥의 역사와 함께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블레어 목사는 그때의 집회의 광경이 오순절날 성령강림의 현상을 방불했다고 말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강한 바람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다고 말했다. 부흥회 기간 동안 나타난 회개의 역사는 개인 내면의 죄 뿐 아니라 이웃 사회에 끼친 피해에 대해 깊은 뉘우침과 용서를 비는 실천적 회개운동과 함께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성령강림의 신앙체험은 여성과 학생들에게 확산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승덕학교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300여 명의 학생들이 죄를 뉘우치고 통회자복 하였으며 다시 감리교의 학생들에게도 성령의 불길이 번져갔다.
이듬해 봄에는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사경회를 열어 성령의 도를 가르쳤는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서울 지방의 교회들이 대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불안했던 정세로 말미암아 정신적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교회에 대한 정신적인 봉사의 열을 불러 일으켰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 교회임을 깨닫게 되어 뜻 있는 청년들과 사상이 바로 된 자들이 교회로 운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시일 내에 한국의 성령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 부흥의 결과
부흥운동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을 통해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과 정신이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당시 교회는 불안한 시국 속에서 기독교의 힘을 의지하여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동기, 또 민족 운동에 교회의 조직을 이용하려는 정치적인 동기들이 유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를 통한 죄의 회개와 구원의 확신은 개인의 신앙 정결화를 가져왔고 한국교회와 교인의 도덕성과 경건성의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체험함으로 인하여 한국인 성도들과 선교사들 간의 상호이해가 크게 증진되었다. 그리고 성경공부와 기도중심의 대부흥운동은 이후 복음주의적인 한국교회의 정형을 이루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열심은 교세확장으로 연결되어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2) 한국교회의 재건기
8·15 해방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전국의 교회는 재건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역사의 시련은 계속되어 일제 말기 신사참배 강요의 굴복여부로 인한 신앙의 내적 시비 문제로 한국 교회는 분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발발한 6·25 전쟁은 한국 교회 최대의 수난과 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의 재건 사업은 이어져 나갔다.
(1) 한국 교회의 재건과 혼란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후 기독교의 중심은 북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평양과 선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재건 운동이 38선 분단으로 인한 남북교회의 단절과 공산당의 탄압으로 인해 교역자 대부분이 검거되고 교회당은 정치 계몽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성도들은 처형을 당하거나 강제 노역에 처하는 등 교회는 말살(抹殺)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남한의 교회들은 각 교파들을 중심으로 재건과 복구를 서둘렀다. 장로교는 1942년 해체되었던 31회 총회를 계승해 1946년에 제32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성결교회도 교단 명칭을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로 정하고 신학교를 재건하고 폐간되었던 ‘활천’을 복간했으며, 헌법을 개정하여 의회 제도를 채택하였다. 이외에도 침례교와 감리교 구세군 등도 쓰러졌던 교단을 다시 일으켜 활동을 재개하였다.
(2) 성령운동의 양상
해방 후의 성령운동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점점 조직화되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인물로는 일제시대부터 활동했던 이성봉 목사를 비롯해 박용묵 목사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도 용문산의 나운몽 장로가 기도원 운동을 전개했으나 문제점도 있었다. 그리고 잘못된 신앙형태로 박태선의 전도관과 문선명의 통일교 등이 성도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이 시기에 순복음 신앙이 움트기 시작했다. 순복음 신앙 운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50년대로 이 신앙 운동은 미국 오순절 교단 또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 운동은 한국 오순절 운동의 선두주자인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서 더욱 발전되었고 심화되어 확산되었다.
3) 한국교회의 확장기
6·25 전쟁을 겪은 민중의 심정 속에는 비난과 허탈감, 자포자기와 살벌한 의식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로 인해 극단적인 신비주의 신앙 또는 일시적 위안, 신앙의 이질화 현상. 무속화의 물결이 한국교회를 도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안정된 부흥과 놀라운 양적 성장을 보이며 확장했다. 일제의 핍박과 참혹한 전란의 체험을 통해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각 교파간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또 선교에 있어서도 1965년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주제 아래 열린 복음화운동을 비롯해 73 빌리그래함 대전도집회, 74 엑스폴로 대회, 77 민족 성회, 80 세계 복음화 대회, 84 선교 100주년 대성회 등 굵직한 대회를 치르면서 한국교회는 놀랍게 부흥되었다. 이 대성회 동안에는 그동안 분열을 거듭해 오던 한국교회가 모두 교파의 담을 헐고 서로 협조했는데, 이러한 대성회가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이는 성령운동만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으며, 교회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한편 1970년대 개교회로서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교회는 바로 조용기 목사가 담임하는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개인전도, 문서 전도, 방송 전도 등을 통하여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성령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2. 한국 하나님의 성회의 성립과 발전
한국 하나님의 성회는 오순절 교회의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오순절 교단의 설립은 일본에서 하나님의 성회를 접했던 박성산 목사와 배부근 목사의 귀국과 함께 미국 하나님의 성회 동양 선교부장인 오스굳(Osgood) 목사가 내한하여 한국 선교를 계획하게 되면서 이루어졌다.
1) 조선 오순절 교회의 설립
(1) 럼시 선교사의 내한
한국에서 오순절 신앙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1928년 럼시(Mary C. Rumsey) 선교사가 한국에 오면서부터였다. 럼시 선교사는 한국에 오순절의 메시지를 전파해 준 최초의 선교사였다. 1907년 로스앤젤리스에서 있었던 부흥회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방언의 은사를 체험한 그녀는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선교사의 꿈을 품게 되었다.
이후 이를 위해 기도하던 중 같은 교회 성도인 덴버드의 지원을 받아 한국 선교의 열망을 이루게 되었다. 럼시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할 당시 한국은 3·1 운동을 치루고 난 후로 한국교회가 수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디 선교사가 시무하던 시병원에 여장을 푼 럼시 선교사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후 구세군 조선본영을 찾았는데, 여기에서 일하던 청년 허 홍을 만나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럼시 선교사는 시병원을 선교본부로 삼고 오순절 신앙을 전파하였고, 럼시 선교사에 의해 성경공부를 한 허 홍은 성령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오순절 신앙은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며, 병 고침을 받는 것을 강조”하는 체험적인 신앙을 전하였다. 그리고 럼시 선교사와 허 홍에 의해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인 서빙고 교회가 설립되었다.
(2) 서빙고 교회
서빙고 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한 사람은 일본에서 오순절 체험을 한 박성산 목사였다. 그는 방언, 신유, 권능의 세 가지 세례를 받아야 오순절 신앙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기존의 교회는 “오순절 교회는 이단이다”라고 공격하면서 방언을 ‘광언’이며 ‘망언’이라고 비난하였다. 이 때 그들에 의해 ‘방언파’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순절파’, ‘방언파’, ‘성령파’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 들어야 할 지당한 명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조선 오순절 교회의 성장
(1) 교회의 성장
박성산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서빙고 교회는 그의 뜨거운 설교와 신자들의 열성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장년 1백 명에 이를 만큼 성장하였다. 한편 미국 오순절 교회 소속의 팔선(T. M. Parsons) 선교사는 박성산 목사보다 1년 늦게 일본 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배부근과 함께 사직 공원 앞에 그리스도 교회의 건물을 임대해서 ‘수창동 교회’를 세웠다. 또한 지금의 북아현동 근처에 ‘연희장 오순절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교회는 허 홍 목사가 담임했었다.
그 뒤 허 목사는 럼시 선교사와 ‘흑석동 집회소‘를 세웠으며, 박성산 목사는 연신내 장에 ‘연소 교회’를 세웠다.
(2) 최초의 목사 안수식
1938년 10월 5일에는 조선 오순절 교회 최초의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 이때 안수를 받은 사람은 허 홍, 박성산, 배부근 등 3명이었다. 안수위원은 영국 오순절 교회 감독 카타 목사와 메레디드 목사 등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 5인이었으며, 장소는 정동 시병원에 위치한 조선 오순절 교회 선교 본부였다. 1938년 무렵 조선 오순절 교회는 가장 번성했으며, 그 이후로는 점점 쇠퇴하였다.
3) 조선 오순절 교회의 수난
(1) 선교사들의 강제 출국
1930년대에 들어서자 일제는 침략정책을 노골화하면서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켰으며, 이와 함께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숭실학교의 맥큔 교장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강제출국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조선 오순절 교회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1937년 2월 10일에는 이 땅에 오순절 신앙을 전하러 왔던 럼시 선교사가 강제 출국을 당했다.
(2) 흩어지는 오순절 교회
이런 와중에 오순절 교단의 포교 관리 책임자이던 허 홍 목사는 중병에 걸려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으며, 배부근 목사가 담임하던 수창동 교회는 선교사들이 떠난 후 임대료를 지불할 길이 없고 일제의 탄압이 거세져 결국 문을 닫았고, 서빙고 교회 역시 일제의 강압에 밀려 문을 닫게 되었다.
4) 조선 오순절 교회의 재건
(1) 일본에서 설립된 한인 오순절 교회
1933년 봄, 일본 대판(大阪)에서 재일 교포들에 의해 한인 오순절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 교회는 곽봉조 목사에 의해 세워졌다. 이 대판 오순절 교회는 개척 1, 2년 만에 200여 명의 신자를 갖는 교회로 급성장 하였다. 이 대판교회로부터 은혜를 체험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된 사람 중에는 윤성덕, 박귀임, 김성환, 김길윤 등이 있다.
(2) 오순절 교회의 재건활동
해방이 되자 한국 기독교계는 이제껏 잠잤던 일들을 정리하고 혁신하며 재건하는데 바쁘고 혼란한 날들을 보냈다. 그런데 교역자 수가 적고 생계유지하기에 바빴던 오순절 교회는 깊은 잠에 취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서울 지역에 이러한 침체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 때, 전남 지방에서 오순절 신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박귀임을 중심으로 오순절 신앙 동지들이 모여 설립한 순천 교회는 나날이 부흥되어 1949년 봄에는 장년 200명, 주일학교 150명의 신자가 모였다. 교회가 나날이 부흥되자, 대판 이꼬마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장로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던 박헌근 장로가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박헌근 전도사가 부임한 후 순천 오순절 교회는 장년 300명이 출석하는 큰 교회로 성장했으나, 6·25 사변이 발발하여 공산군이 순천을 장악했고 박 전도사는 모진 고문 속에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 오순절 신앙이 전해지기 시작한지 20여 년이 된 1950년 9월 말경에 한국 오순절 교회 최초의 순교자를 냈던 것이다.
목포에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하던 김성환 목사는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아 1948년 늦여름에 창립 예배를 드렸으며, 같은 해 윤성덕 목사도 전남 광산군 효지면 진월리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와 같이 배부근, 허홍, 박성산 목사 등이 서울을 토대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했다면, 전라도에서는 박귀임 전도사가 순천과 광주에서, 김성환 목사는 목포와 무안군 일대에서, 그리고 윤성덕 목사는 광산에서 오순절 신앙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5) 대한 기독교 오순절 교회의 탄생
1950년 4월 9일에 열린 제 1회 대한 기독교 오순절 대회에는 박성산, 윤성덕, 허홍, 김성환 목사 등과 박헌근 전도사, 박귀임 전도사 등의 교역자를 비롯하여 약 200여 명의 신자들이 모였다. 그러나 이 대회는 연합 부흥회와 같은 성격의 모임이었을 뿐 교단 조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다만 이 대회가 미약하나마 ‘조선 오순절 교회’에서 ‘대한 기독교 오순절 교회’로 옮겨간 공식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과, 이 대회로 인하여 제 2회, 3회 대회가 개최되어 1953년 4월 8일에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가 결성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1)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설립
(1) 조직 경위
6·25 전쟁으로 미국 종군 목사인 엘라우드(Ellowed) 목사가 입국, 그의 노력으로 1953년 여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 동양 선교부장인 오스굳(Osgood)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15일에 정식으로 미국 하나님의 성회 선교사로 채스넛(Arthur B. Chesnut) 목사가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한국 하나님의 성회와 미국 하나님의 성회가 서로 연결된 것이다.
(2) 교단의 명칭
1953년 봄이 되면서 교단 조직의 준비가 거의 완결되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웠던 문제는 창립 총회시 교단 명칭을 한국어로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것이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도 교단 명칭을 ‘Assemblies of God’으로 결정하기까지 문제가 많았었다.
‘Assemblies of God’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하나님의 성회’인데 그 번역에 있어서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Assemblies’는 ‘회합, 집회, 대회, 모임’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나 교회의 명칭으로 ‘○○협회’ 또는 ‘○○집회’라 하기에는 부적절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Assemblies’를 ‘Church’와 같이 보아 교회로 번역하기에도 문제가 있어 결국 ‘Holy Assemblies’의 뜻으로 ‘성회’(聖會)라고 하였다. ‘God’에 있어서도 ‘신’(神)이나 ‘하나님’ 등 여러 가지로 번역이 가능했으나 ‘하나님’이 가장 좋다고 함으로써 교단의 정식 명칭은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가 된 것이다. 영어로는 ‘Korea Assemblies of God’이며, 한국에서는 ‘순복음교회’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3) 교단의 결성
1953년 4월 8일 열린 하나님의 성회 결성 총회에서는 채스넛 목사가 사회를 맡았고 허홍 목사가 통역하였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채스넛, 허홍, 박성산, 곽봉조, 배부근, 윤성덕, 박귀임 등 교역자 7인과 방청인 4인을 합해 모두 11명이었다.
이 첫 총회에서 토의된 사항은 교단 창립에 관한 제반사항으로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헌장이 제정 가결되었고, 헌장에 의해 총리로 채스넛 목사가 선출되었다. 그리고 교역자 양성을 위하여 신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교장에 채스넛 목사가, 학감에 허홍 목사가 내정되었다.
2)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발전
1960년대와 더불어 1970년대는 한국의 하나님의 성회가 크게 성장한 시기였다. 1960년대가 한국에서 하나님의 성회의 국내적으로 발전한 시기라고 한다면 1970년대는 국제적으로 도약한 시기요, 발전기였다. 이처럼 한국 하나님의 성회가 국제적으로 기반을 갖게 된 것은 교단 전체가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발전과 세계 선교의 강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Ⅲ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그 출발은 폐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위기를 넘긴 청년 조용기와 사업의 실패로 방황하던 최자실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역사였고, 이들의 눈물과 헌신을 통하여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교회가 서게 된 것이다.
1.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역사
1) 깨밭 위에 세워진 대조동 천막교회(1958∼1961)
(1) 교회의 창립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탄생은 1958년 5월 18일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했던 최자실 전도사의 집 마루에서 가정예배의 형태로 드린 예배가 그 효시(嚆矢)였다. 첫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 그리고 최 전도사의 세 자녀인 성혜, 성수, 성광이와 밭일을 하다 비를 피하려고 온 할머니 한 분이 고작이었다.
(2) 교회의 부흥
교회가 시작되고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의 피땀어린 기도와 헌신의 결실로 인해 성도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여 50여 명에 이르자 최 전도사의 집 마루가 좁아 예배드리는데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듬해 봄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는 집 앞 마당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바닥에 깔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2)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1961∼1972)
(1) 제 2의 교회개척
서대문으로 교회가 이전한 지 3년째인 1964년에는 교인 수가 3천 명에 이르렀으며, 이 때 세계적인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된 구역이 조직되었다. 어느 날 오후 시간에 조용기 목사는 거의 2시간에 걸쳐서 수백 명의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다가 극도로 피곤하여 마룻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1주일간 요양하는 동안 의사로부터 직업을 바꾸어 보라는 충고까지 받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조 목사는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어나가고 있었는데 출애굽기 18장 18절을 읽다가 그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 말씀은 순복음교회의 미래를 걸머지는 지침이 되었다. 다음 주일 조 목사는 교회의 모든 제직들을 불러서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이 모임에서 구역(區域)조직이 탄생하였다.
(2) 여의도 성전의 기공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의 교세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5천, 6천, 7천으로 부흥을 거듭하여 1968년에는 8천명에 이르러 3부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래도 좌석이 없어서 늦게 온 성도들은 주차장 마당에 비닐을 깔고 앉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당회에서는 교회를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대지를 물색하였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그 때 마침 어느 장로가 여의도를 추천했다. 당시 여의도는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모래섬으로 겨우 윤중제만이 완성된 허허벌판이었다. 장차 개발계획이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직 다리도 완성되지 않았던 때였다.
성전 건축 공사를 시작한 후 불어 닥친 오일 쇼크와 달러 하락으로 인해 건축자재의 값은 엄청나게 오르고 교회의 헌금은 줄어들었다. 오일 쇼크로 교회의 부채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교역자들의 사례비조차도 제때에 지불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조용기 목사 자신과 그 가족, 그리고 교역자들과 성도들에게 견디기 힘든 어려운 시련이었다.
냉천동 집을 처분해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온수도 엘리베이터도 운행되지 않는 교회 옆 아파트로 입주한 조용기 목사는 지붕도 씌우지 못한 교회 건물의 녹슨 쇠기둥을 붙들고 울며 부르짖었다. 그는 “주님, 차라리 이 교회가 내 머리 위에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하며 생명을 내어놓는 기도를 드렸다. 어떤 날은 비가 온 뒤에 가마니 한 장을 깔고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성전 건축에는 사단의 훼방도 극심했다. 건축비 조달 문제는 물론 건축 기술상의 문제 등등, 몰려드는 역경에 조 목사는 결사적으로 대처했다. 다행히 그의 불퇴진의 믿음과 피땀의 기도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공사는 조금씩 진행되어 갔다.
3) 세계에 우뚝 선 교회(1973∼1982)
(1) 여의도 성전의 준공
1969년 시작된 여의도의 성전 건축은 1973년 8월 19일 마침내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이때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옮겨 온 성도들은 모두 8천여 명이었다. 그리고 1973년 9월 23일 여의도 성전의 헌당 예배가 드려졌다.
교회는 74년 1월부터 매 주일 성찬예식을 실시했으며, 5월에는 해외 선교대회를 실시해 해외선교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한편 77년 1월에는 세계선교센터(현 제1교육관)를 건립했으며, 7월에는 교회창립 20주년을 기념해 기념관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81년에는 세계선교센터(현 제2교육관)를 건립해 오늘날 세계선교의 선봉장으로서의 확실한 자리 매김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교회는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여의도로 교회가 이전된 이후 매년 1만 명 이상의 새로운 성도들이 교회에 등록을 했으며, 급기야 1979년 교회 창립 20여 년 만에 10만 성도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2.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
1) 순복음의 의미
순복음(Full Gospel)이라는 어휘는 새로운 복음이나 이론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성경 말씀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요 복음이지만 그러나 그 말씀을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리가 하나의 이론이나 신화로 둔갑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순복음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본래의 의미대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명제 속에서 탄생되었다.
순복음은 영어 ‘Full Gospel’의 번역이다. ‘Full Gospel’은 ‘충만한 복음’으로 신본주의에 입각하여 성경 전체의 내용을 그대로(Fully) 다(Totally) 믿고 받아들이는 오순절의 성령 충만의 복음을 내용으로 한다.
순복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충만케 하는 복음인 것이다. 더 나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케 함으로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인생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죽어 가는 자를 살리고, 진리를 깨우쳐 줌으로써 참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복음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결과로 주어진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으로부터의 치료와 생활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모두 포함하는 전인적인 구원의 복음을 강조하는 순수한 복음주의 신앙을 의미한다.
2) 순복음 운동의 기반
순복음 운동은 오순절적인 성령 운동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순복음 운동은 단순히 입으로만 외치는 성령 운동이 아닌,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삶 가운데서 함께 일하시는 운동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성경 중심적인 운동
순복음 운동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성경 말씀을 정확무오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임을 믿는다. 특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 불변의 진리의 말씀이며, 오늘날도 그 약속의 말씀 그대로 역사하시고 또 성취됨을 확신하는 것이다.
(2) 하나님 중심의 운동
순복음 운동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절대 은총에 의한 구원을 믿는 운동이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나 의식이나 노력은 전혀 무익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으로써만 구원받게 됨을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을 가지고 우주를 섭리하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을 철저히 강조한다.
(3) 복음적인 신앙 운동
순복음운동은 복음적이다. 복음적이란 말은 순복음운동이 종교 개혁적인 기반에서 출발하였고, 더 깊게는 사도 교회의 신앙 곧 십자가의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신득의(以信得義)를 주장하였는데, 순복음운동도 이 점에 있어서 종교 개혁자들과 일치한다. 인간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4) 사도 교회적 운동
순복음운동은 사도 시대의 교회를 닮고자 노력하는 운동이다(행 2:41-47). 그렇기 때문에 사도 교회에 나타난 현상 그대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기를 힘쓰며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쓴다. 나아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믿고 바라며 간구한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며 많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복을 나누어 주기를 힘쓴다.
(5) 성령 중심의 운동
순복음운동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는 운동이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개인의 신앙 성장이나 교회 부흥의 역사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도 개개인은 신앙생활의 첫출발부터 천국에 이를 때까지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며, 모든 성도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3) 순복음의 7대 신앙적 기초
(1) 갈보리 십자가 신앙
순복음 신앙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로부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와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순복음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중생의 복음, 곧 갈보리 십자가의 신앙이다.
(2) 오순절 성령 충만 신앙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행 1:4-5)을 받기 위해 오직 기도에 힘쓴 결과,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능력으로 예루살렘 시가지로부터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처럼 순복음의 신앙은 바로 이러한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의 신앙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재현시키고자 하는 신앙이다. 즉 무기력한 신앙을 생동감 넘치고 생활화된 신앙으로 바꾸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도적 신앙을 갖는 것이 그 목적이다.
(3)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예수님의 지상 명령은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막 16:15). 이 엄위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가능하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예수님의 산 증인이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거듭나고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은 성도는 자연스럽게 그가 체험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4) 좋으신 하나님 신앙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죄와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만민들에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셨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빠져 신음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일찍이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창 1:26-30)를 받고, 아브라함의 복(창 12:1-3)을 누리며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순복음의 신앙인은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캄캄할지라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을 굳게 믿음으로써 담대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5)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살펴보면 그 중 3분의 2가 치료의 사역이다. 또한 성경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함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선포하셨다(출 15:26). 또한 이사야 53장을 보면 하나님의 고난의 종이 이루신 죄의 대속과 질병의 대속에 대한 용어가 같이 쓰이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질병과 더 나아가 질병으로 인해 다가오는 슬픔까지도 모두 대속하셨다(사 53:4,5,11,12). 질병의 치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간구해야 할 은총이다.
순복음 신앙은 오늘날에도 살아 계셔서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다.
(6)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은 물론이고 구약 성경에도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렘 46:10; 단 7:13; 욜 2:1; 미 4:6). 예수님 자신도 재림을 약속하셨으며(요 14:18), 천사들도 예수님의 승천시 제자들에게 재림을 증거하였다(행 1:11).
재림의 때와 시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막 13:3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여 분명히 인류 역사의 한 정점에 이 땅에 다시 오시며, 그리하여 인류 역사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순복음의 신앙은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신천 신지와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주를 섬기고자 하는 종말론적 신앙이다.
(7) 나누어 주는 신앙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신앙이다.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신앙은 요단강의 생명수를 받기만 하고 나눠 줄 줄을 몰라 죽어 버린 사해와 같이 생명력 없는 신앙이 된다. 순복음 신앙인은 항상 맑은 물이 넘치고 생명력으로 가득찬 갈릴리 바다와 같이 하나님의 복을 끊임없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생명력 있는 복의 열매를 맺기에 힘쓰고 있다.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나아가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신앙이다.
4) 오중복음
순복음이란 새로운 복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순복음의 기반이 되는 것이 오중복음이다. 오중복음이란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의 중요한 다섯 가지 주제이다. 이 다섯 가지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결국 신앙생활의 전 과정을 설명해 주는 핵심 주제가 되는 것이다.
(1) 중생의 복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악을 십자가의 고난으로 대속하시고 누구든지 우리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 곧 ‘중생’인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제 2의 출생, 곧 영적 출생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구원의 은총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성령의 인치심과 인도하심으로 성결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 성령충만의 복음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깊은 신앙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머리로만 알고 심령 깊숙이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행 19:2).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권능을 얻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며(행 1:8),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만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생활 가운데 나타난다. 나아가서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할 때,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행하게 되므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3) 신유의 복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씀하신다(사 53: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병 뿐 아니라 육신의 병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니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고 말씀하심으로, 신유 사역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4) 축복의 복음
성경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속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고후 8:9; 갈 3:13,14).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그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며 충성된 생활을 할 때, 가난과 저주에서 놓여나 다시 그들의 생활 속에 풍성한 복을 받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의 삶의 살아가게 하신다.
(5) 재림의 복음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소망한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이 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고 역사적 책임 의식을 소유한 건실한 시민이 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이 존재하는 것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며(살전 4:16,17), 7년 혼인 잔치와 천년왕국 시대를 지낸 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영화로운 삶을 살 것을 믿어야 한다(계 21:1, 22:5).
5) 삼중축복
(1) 삼중축복의 의미
순복음 신앙에 있어서 오중복음이 신앙의 이론(theory)과 교리(doctrine)라고 하면, 이 이론과 교리를 실천하는 실제(prac- tice)와 적용(application)이 곧 삼중축복이다. 삼중축복은 요한삼서 1장 2절의 말씀 곧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의 말씀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삼중축복은 오중복음의 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바 오중복음의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재림의 복음은 영혼의 복(영혼이 잘 됨 같이)의 기반이 되며, 축복의 복음은 형통의 복(범사에 잘 되며)의 기반이 되고, 그리고 신유의 복음은 건강의 복(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의 기반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삼중축복은 오중복음의 실천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2) 삼중축복의 내용
① 영적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간은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수되었던 관계가 청산되고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을 때 우리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다 청산되었고, 마치 한 번도 죄 짓지 않은 사람처럼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법적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지식을 깨닫게 되고(고전 2:9, 10),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② 육체적 축복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에게 육체적 죽음이 다가왔으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몸에 붙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파괴시키는 질병에 대해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고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사 살려주는 영이 되었으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그 육체가 부활할 생명의 씨앗을 얻게 된다(고전 15:42-45).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어도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살전 4:16, 17).
③ 환경적 축복
예수님을 믿으면 미움, 불안과 초조, 공포와 절망, 좌절과 죽음, 죄책, 정죄 등의 모든 가시들이 제거된다. 또한 마음과 삶 속에 평화의 강물이 흐르는 그리스도의 복이 주어지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의 환경적 가난의 대속에 대하여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하심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후 8:9)고 기록하였고, 저주의 대속에 대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고 기록하고 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저주를 짊어지시고 피흘리심으로 저주의 세력을 멸하신 것이다.
(3) 요한삼서 1장 2절에 대한 이해
혹자는 요한삼서 2절의 말씀을 단순히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개인 인사말이므로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그러나 요한삼서가 담고 있는 진리를 가이오에게만 제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 말씀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과거 2천 년 전에 있었던 ‘닫혀진 책’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에게 ‘열려져 있는 책’인 것이다.
① 사랑하는 자여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우선 “사랑하는 자여”라고 전제하였다. 우리는 미움을 받는 자가 아니고 사랑 받는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삼중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모셔 들인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② 네 영혼이 잘 됨같이
인간은 영혼이 잘 되고 나면, 타락하고 죄악된 성격을 개조하고 변화시켜 풍성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생활의 모든 근원이 영혼에 있으므로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의 순서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본업이 되고 세상 삶은 부업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올바른 순서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부차적인 것이 되고 세상의 삶이 본업이 된 신자들이 너무나 많다. 이렇게 우선순위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생활 속에 부조리가 다가오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혼이 잘 되기를 힘써야 한다.
③ 범사에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간구한다는 것’은 심령이 잘 됨같이 육체가 사는데 필요한 모든 노력의 결과도 좋게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매사에 성실하게 일함으로 사업이 잘 되어서 윤택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많이 드리고, 이웃에게 많이 나누어 주는 생활하기를 기도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면 하나님의 복이 우리와 같이 있기 때문에 범사에도 잘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믿고 기도하며 나갈 때 우리의 생활 속에 복이 더하여지는 것이다.
④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강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을 고침 받아야 한다. 따라서 병 고침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질병이 인간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고통이요, 죽음의 전 단계라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병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치료하셔서 건강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삼분의 이는 병고치는 사역이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마다 병든 자를 치료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분명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4,15)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유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치료자이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질병의 결박에서 놓여날 수 있다.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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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 최 선길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