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게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경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샀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1:1-4)
♠ 신앙 없는 사람은 힘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며 다스리는 것을 당연시하며, 폭력이나 거짓이 동원되어도 그리 놀라지 않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 계시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이 시작하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덩 사람이 눈을 뜬 것과 같습니다.
♠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신앙은 인과응보의 신앙으로서,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착한 일을 한 사람은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오히려 잘될 때, 기존의 신앙공식이 통째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오늘날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기독교도 좋고, 희생도 좋고, 찬송도 좋 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렇게 힘 없는 진리보 다는 차라리 힘 있는 악이 낫지 않습니까? 이 고민이 풀리지 않으니까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 다.
그 당시의 상황
♠ 하박국의 절망에 찬 기도는 그가 예언하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유 다의 마지막 등불 요시야가 죽고 완전히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당하기 전에 앗수르에게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사야의 말대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 요시야는 유다의 마지막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얼토당토않 은 일로 죽고 말았습니다.
♠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불의를 지적해도 요동조차 않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질문하고 또 질문합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1:1)
♠ ‘묵시로 받은 경고’란 환상 가운데서 보거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 그들이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들을 붙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 하박국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것도 마음을 다해서 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경고’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허공에 외치는 공허한 이론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몸 부림치는 백성들에게 선포되는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하박국 당시의 상황과 아주 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배가 어 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 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아무리 기도해 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다고 하소연합니다.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
여호와여 내게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1:2상)
♠ ‘어느 때까지리이까?’라는 말을 보면, 그가 상당히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부르짖어 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 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전 혀 풍성하지 않을 때, 하늘은 쇠가 되고 땅은 놋이 된다는 구약성경의 표현처럼 아무리 부르 짖어도 변화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어서, 지금 형편이 아무리 여러워도 미래의 비전만 보 이면 견뎌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 비전도 제시해 주지 않으실 때, 몇 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일 때,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차라리 굶 어 죽었으면 좋겠는데 굶어 죽게 하시지도 않으면서 솥과 솥뚜껑 사이에 꽉 끼어 있는 듯 숨 막히게 살게 하실 때, 하박국처럼 ‘어느 때까지리이까?’하는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 기도하기가 왜 어렵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보면서 말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말 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눈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격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 다. 그리고 큰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 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 하나님도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한지 다 알면서도 방치해 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 리의가 교만하고 거역하는 기질들을 수술 받고 변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교만은 그만큼 지독한 것입니다. 이렇게 솥단지 안에 가두어 놓고 달구도 또 달구어도 아주 조금밖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조금 캐낸 것도 믿음으로 여기시고 서둘러 상처를 덮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기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에 하나 님의 뜻으로 확신했던 것들 중에 나의 주관적인 확신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우리는 그럴 처 지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 아무리 어두움의 때요 환난의 때라 해도 기도의 응답만 지연될 뿐, 기도가 아주 응답되지 않 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하박국의 의문
♠ 하박국서의 특징은 선지자가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의 일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내용으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2 하)
♠ ‘강포다!’, ‘불법이다!’라고 외치며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의로운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1:3)
♠ 선지자가 ‘강포다!’, ‘불법이다!’라고 외치면 무슨 변화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선지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누구라도 그들을 구출해 주려 나서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하박국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의문에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의문을 극복한 사람은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더 뜨겁고 통찰력 있는 신앙, 미래를 내다보는 신앙을 갖게 되지만,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신앙을 버리든 지 속물 그리스도인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 악을 허용하시면서 악한 세력이 약한 자들을 비참하게 망치도록 내버 려 두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 하나님은 억장이 무너지는 불의,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일들을 통해 우리 속에 있는 죄덩어 리를 보여 주십니다.
♠ 하나님은 “아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에게 너희의 모든 것을 맡겨서 죄를 치료받 아야 풍성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런 가벼운 처방으로는 너희 불행이 해결되지 않는다” 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 복음 외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그것을 믿어야 합니 다.
♠ ‘오늘 이 병든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열쇠는 나에게 있다. 우리 가정, 우리 학교, 우리 직장 의 문제를 해결한 열쇠는 나에게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원리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경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샀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1:4)
♠ 이스라엘에는 율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시라는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들을 색출해 내서 율 법대로 심판하시면 사람들이 감히 죄를 짓겠느냐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도 법을 엄격하게 시행하지 않아서 부정부패가 만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 법으로 범죄를 약간 저지하거나 그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죄의 문제 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 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사람 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박국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 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비추어서 그리스도 의 십자가를 붙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율법을 더 엄격하게 시행하셨다면 유다 백성들은 죄를 감추는 기술만 더 늘었을 것 입니다.
♠ 놀랍게도 율법이 존중되는 것은 유대교 안에서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행할 의지와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복음 안에서 더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고통들은 전부 표면적인 증상으로서, 그 뿌리는 좀더 근본적인 데 있습 니다.
♠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증상만 논하는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유다 사 회는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으면서도 그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 아무리 사람이 악해도 예수님은 그 악인을 꺾는 프로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 가 오셔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움의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십시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의 십자가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나약하게 만들었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뚫고 독수리가 날 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올라갈 수 있도록 담대한 믿음의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