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콩콩이의 일기(日記)
- 은유시인 -
방금 콩콩이를 데리고 근처로 산책을 다녀왔다. 밤도 깊고 일대가 칠흑같이 어둡지만 사무실 바로 곁에 ‘유림아파트’란 비교적 큰 규모의 아파트단지로 내려서는 가파른 계단이 있어 그 계단만 내려갔다 올라와도 숨이 턱에 닿는다. 아마 백 계단이 넘을 듯싶다.
사무실이 좀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래도 바로 앞쪽이 6차선 대로이고 목줄을 하지 않고 데리고 나갔기에 천방지축 날뛰는 녀석인지라 언제 질주하는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할지 몰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아직 조막만한 놈이 달리는 자동차에 깔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운전하면서 도로에서 숱한 동물들의 주검을 목격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대부분 고양이들이 사고를 많이 당하고 그 다음으론 쥐, 덩치 작은 야생동물이며 개는 아주 드물게 사고를 당한다. 고양이의 경우 자동차가 달려와도 피하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오히려 자동차를 노려보다가 압사를 당하는가 보다. 개들의 주검은 거의 목격되지 않는데 아마 개들이 고양이나 여타 동물들보다 훨씬 영리하여 달리는 자동차를 냉큼 피하기 때문이리라.
난 10여 년 동안 직접 운전하고 다녔어도 어쩌다 차에 치여 납작해진 동물의 사체 위를 지나칠 때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쥐새끼 한 마리, 개구리 한 마리 치어본 적이 없다. 비록 동물의 주검일지라도 그 납작하게 짓눌린 참혹한 주검을 목격했을 때에는 여간 께름칙한 게 아니다. 그래서 콩콩이를 데리고 나갈 때에는 녀석으로부터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데, 녀석도 내 발만 쫓아다니며 물어뜯으려하기 때문에 발에 자꾸 밟히게 되어 나 딴엔 자그마한 놈을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가며 발을 떼어놓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긴 녀석은 사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발만 쫓는 것이 어쩌다 곁을 마주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쪽 사람 발꿈치에 따라붙어 뒤쫓아 가서 떼어내는 데도 애를 먹게 된다.
▲ 위 사진은 콩콩이가 내게 온지 사나흘쯤 되었을 땐가?
양말 한 짝을 쓱싹 도려내어 그럴듯한 옷을 만들어 입혔다.
양말 발가락부위는 모자로 둔갑했고...
콩콩이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두 달 조금 지난 잡종견 암캉아지이다. 다 자라봐야 중간 크기의 개에도 못 미치는 그야말로 땅개이며 몸뚱이는 흰 털 바탕에 검은 털이 목 위로 머리 전체와 엉덩이 부분, 그리고 등판 양쪽으로 조막만 하게 박힌 얼룩바둑이다. 얼굴은 검은 털로 덮여있고 눈도 검어 눈알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검은 벨벳에 까만 원형단추를 박아놓은 듯하다. 그리고 앙증맞게도 뾰족한 주둥이 끝은 희고 코만 까맣다.
빤히 쳐다보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노라면 조금은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머리를 약간 갸웃거리는 것을 보면, 오히려 녀석이 나를 관찰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녀석은 낙동강 건너 강서 쪽에 위치한 ‘강서해수랜드’라는 대형찜질방 사장 댁에서 키우던 개가 낳은 세 마리의 새끼 가운데 한 마리이다. 데려올 당시에는 낳은 지 보름을 갓 지난 어린 강아지로 한 마리는 동네 애들이 장난친다고 못 쓰는 냉장고 속에 넣어놓고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탓에 맛이 좀 갔다 하였고, ‘두 마리 중 얼굴 꺼먼 놈을 가져가라’하여 녀석을 데려온 것이다. 그때가 늦은 저녁때라 어두컴컴한 구석의 개집으로 다가가니 어미와 두 마리의 새끼가 반기듯 쫄레쫄레 다가오며 꼬리를 바지런히 쳐대는 것이었다. 녀석 말고 나머지 새끼 한 놈은 얼굴이 온통 희고 깨끗해 보여 녀석보다 더 예뻐 보였다. 녀석은 어미 곁을 떠나는 순간은 물론, 그 이후도 어미나 제 남매들은 생각조차 안 나는지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을 피워댔다.
녀석은 아직까지 똥오줌을 못 가리고 온 바닥을 헤매며 구석구석 안 싸질러놓는 데가 없다. 누군가가 똥오줌을 가리게 하는 데엔 바닥에 신문지를 잔뜩 깔아놓고 점차 신문지 깔아놓는 면적을 줄여나가다 보면 신문지 위에서만 깔기게 된다고 하여 그리도 해봤지만, 오히려 신문지를 물어뜯고 헤집어놓아 주변이 온통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오줌 싸놓은 것을 닦은 휴지나 똥 덩이를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녀석의 코를 몇 번씩이나 그곳에 박아봤어도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녀석은 데려온 첫날부터 침대 위에서 나와 함께 잠자기를 고집했다. 침대시트에 똥오줌을 쌀까봐 겁도 났지만 버릇 나빠질까봐 아무리 떼어놓고 자려해도 두 시간 넘게 계속해서 울부짖는 바람에 한편으론 애처롭고 또 한편으론 시끄러워서 침대 위로 끌어올려놨는데, 그 이후부턴 침대 위가 제 잠자리인양 아무리 밀쳐내도 기어 올라오는 덴 막을 재주가 없었다.
내게 온지 둘째 날이던가 두 번쯤 침대시트에다 홍건이 오줌을 싸놓은 이래로 처음 며칠 동안은 잠자는 동안에도 번뜻 일어나서 온 침대를 더듬어보기까지 했었다. 오줌보다는 똥을 싸놨을 경우 온 침대가 똥 범벅이 될까 그게 더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 한 가지를 덜어주려 함인지, 아니면 제 잠자는 곳이란 것을 어찌 알고 있는지 그 후론 꼭 침대를 내려가서 볼 일을 보곤 다시 침대로 기어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제 입에 닿는 위치에는 물건들을 못 놔둔다. 담배며 화장지며 양말이며 닥치는 대로 씹어대고 뜯어대어 못쓰게 만든다. 어느 땐 침대 밑에서 열나게 와이셔츠를 물어뜯는 걸 발견하고 뺏으려드니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아예 나오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양복바지며 속옷이며 옷가지들을 나름대로 녀석이 닿지 않게 챙겼어도 어떻게 끄집어내었는지 물고 다니는 것을 뺏는다고 실랑이 벌이기도 여러 번이었다.
침대 위에 드리워진 모기장도 몇 군덴가 구멍이 뚫려있고, 멀쩡한 등산화 한 짝도 코 부분이 험하게 물어 뜯겨있고 바닥에 놓인 슬리퍼나 신고 다니던 슬리퍼조차 잠시라도 벗고 있으면 어느 샌가 없어져 어느 구석에서 열나게 씹히는 것이다. 베개며 방석이며 단골로 물어뜯는 것은 아예 물어뜯게 놔둘만했으나 그 비싼 소파 밑동부분의 레자 일부는 허옇게 벗겨져있고 응접실 소파 밑에 깔려있는 값비싼 초대형카펫은 두 귀퉁이가 이미 너덜거린다. 녀석은 잠시라도 조용하거나 눈에 띄지 않으면 꼭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녀석은 무는 게 주특기인지 발가락이든 손가락이든 물기 좋은 부분은 잠시도 놔두지 않고 집요하게 물어대는 것이다. 그리고 이빨이 바늘처럼 예리해서 발가락을 물릴 경우 정신마저 아득해진다. 녀석 때문에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손과 발은 꼭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자는 잠버릇까지 고치게 되었다. 다행히 녀석은 같은 돌출물임에도 불구하고 귀나 코 따위는 물어뜯지 않고 대신 머리털을 물어뜯는데 가뜩이나 머리꼭지에 숱이 없는 머리가 그나마도 남아날까 걱정도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털이 엉겨 붙어 머리를 감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발밑으로 달려와 발가락을 깨물고 해서 아예 의자 위에 양반자세로 앉아 발을 무릎 밑에 묻어서 감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발을 할퀴고 물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계속 낑낑대며 무릎 위로 뛰어오르려 해서 도무지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난 녀석을 왼손으로 안고 오른손만으로 컴퓨터를 다루는데 녀석은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왼쪽 팔뚝과 팔목 부분은 녀석에게 그간 물린 이빨자국으로 마치 피부병에 걸린 사람처럼 울퉁불퉁해졌다.
엊그제 무게를 달아보니 3킬로가 조금 넘는다. 한 손으로 들기엔 제법 묵직해졌다. 그리고 볼기짝이며 목 줄기며 뱃구레며 오동통하니 살집이 있었다. 한 달여 전에 데리고 왔을 땐 1킬로밖에 안 되었고 등산배낭 옆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갈 만큼 몸집도 작았다. 누구 말마따나 잘 먹여선지 ‘1인분짜리가 3인분짜리로’ 튼실하게 살쪄있는 것이다. 하긴 사료는 전혀 입에 대려 하지 않고 꼭 내가 먹는 것만 뺏어먹으려 했다.
닭고기나 돼지고기, 생선 등은 육질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녀석이 못 먹는 게 없는 듯싶다. 콩나물이든 두부든 라면이든 못 먹는 것이 없고 내가 입을 조금이라도 오물거리면 꼬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내 입에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 점프, 점프만 거듭해대는 것이다. 그래서 사다놓은 사료는 젖혀두고 생선에 밥을 넣고 죽처럼 고아서 먹이고 방금 배불리 먹였어도 입만 오물거리면 뺏어먹으려 안달인 것은 여전하다.
제 어미가 그리도 영리하다했는데 요놈도 두 달 갓 넘은 요량 치면 하는 짓이 보통은 아닌 듯하다. 잠시라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30분 넘게 반갑다며 그리 난리법석을 피운다.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입맞춤하려하고 품에 안기려 다리 틈새를 파고든다.
어느새 양말과 바지를 갈아입으려하면 ‘또 나가려는가 보다.’라고 눈치를 채는지 양말과 바지를 물어뜯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옷을 못 입게 방해하며 난리를 피운다. 그래서 녀석을 골려주려고 몇 번인가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려봤다. 현관문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애칭유리가 끼워져 있어 녀석의 동태를 살필 수가 있었다. 녀석은 아무리 두드려도 숨어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콩콩아!’라고 자그맣게 불렀는데도 그걸 알아듣고는 쏜살같이 현관 쪽으로 달려 나오며 낑낑대는 것이다.
‘네가 세상을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무서운 소리에 겁부터 낼 줄 아니? 참 희한한 놈이로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래저래 녀석을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였다. 녀석 때문에 하루 종일 녀석이 싸질러놓은 똥오줌 치우랴 어질러놓은 것을 따라다니며 청소하랴……. 무슨 일이든 하려면 귀찮게 굴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리고 온갖 것을 물어뜯어 재산상의 피해도 제법 크다. 그러나 고 귀여운 녀석을 혼내가며 억지로 길을 들이려는 생각은 없다.
‘자라면서 저절로 깨닫게 되겠지, 어미가 여간 영리한 놈이 아니라 하지 않던가.’
지금 녀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내 무릎 위에서 곤하게 자고 있다. 마치 길들여진 순한 양처럼…….
“콩콩아~ 사랑해!”
- 끝 -
2003/10/2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