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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기소와 동시에 수사기록 일체가 법원으로 이송되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형사소송절차가 시행된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그러한 관행은 공판절차의 형해화, 법관의 예단형성, 증거능력 없는 서류에 의한 심증형성, 조서재판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오다가 참여정부의 사법개혁 바람을 타고 법원이 공판중심주의를 핵심 화두로 삼아 그 전제로 공소장일본주의를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일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증거분리제출제도는 제도의 취지와 관계없이 그 시행 과정 중 형성된 관행에 의해 피고인의 방어권에 상당한 지장을 주게 된 면이 있다. 증거분리제출제도의 시행 초기 검찰은 증거를 피고인의 유죄입증을 위한 증거만으로 엄격히 해석함으로써 피해자와 피고인 간에 이루어진 합의서나 피고인이 피해변제를 위해 공탁을 한 뒤 수사기관에 제출한 공탁서조차도 증거서류에 첨부하지 않았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하는 것은 검사가 증거로 제출하고자 하는 증거목록이지 수사과정에서 습득한 모든 서류나 물건 등을 기재한 수사목록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이나 변호인이 받아볼 수 있는 증거목록에는 합의서나 공탁서가 기재되어 있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자칫 접견과정에서 합의나 공탁이 있었는지를 확인치 못한다면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검찰의 관행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까지도 수집할 의무가 있는 검사의 객관의무에 비추어본다면 매우 부당한 관행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행히 최근 합의서나 공탁서는 증거목록에 첨부되어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하나 아직도 완전히 정착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합의서나 공탁서가 이러하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진술한 참고인의 진술조서를 검찰이 적극적으로 제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합의서나 공탁서 또는 검사가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참고인진술조서, 기타 증거 등의 존재 자체를 확인하는 방법은 법에 마련해 두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1항에는 피고인 변호인이 검사에게 수사기록 목록에 대한 열람등사신청을 할 수 있으며 수사목록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없도록 제266조의3 제5항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사건에서 검찰의 주장을 들어보면 검찰이 조서제출을 거부하는 해당 경찰관들을 변호인 측이 직접 증인으로 신청하여 심문하면 되는 것인데 왜 검찰 측에서 증거로 제출하지도 않은 조서를 달라고 하느냐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검찰이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반박할 때 피의자신문조서를 통해 수사 초기의 진술과 다르다는 점을 가지고 공략하 듯이 변호인도 참고인의 법정진술에 대해 신빙성을 공격하려면 수사초기에 어떠한 진술을 하였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은 명백하다. 더구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일부의 조서만 증거로 제출되었다면 다른 조서에는 다른 취지의 진술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모든 조서를 보고 검토를 해야 법정에서 해당 증인을 효과있게 신문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위증죄는 입증하기 어렵다. 검찰이 위증으로 기소하는 사건의 대부분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법정진술이 다른 경우다. 검찰 측 증인을 변호인이 법정에서 신문을 하면서 초기 진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도 모른 채 최종적인 입장만 확인하는 신문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법원의 위증 경고도 증인에게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제를 갖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공개되지 않은 참고인 진술조서가 마치 인질처럼 심리적 강제를 일으켜 법원의 권위보다는 검찰의 수사 기소권에 자발적 복종을 하여 검사의 구미에 맞는 진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비록 검찰이 그것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한 우리 현행 사법제도와 관행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인이나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아낼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가사 유리한 증인을 찾아내 법정에 세운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미리 밝히지 않은 증인이라 하여 은연 중 신빙성에 회의를 갖는 것을 자주 목도한다. 더구나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유리한 증인이건 불리한 증인이건 간에 증인을 법정 증언 전에 접촉한다면 어떠한 내용의 이야기를 할지에 관계없이 만남 자체만으로 검찰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던 경험이 있는 자들은 차라리 기소 전에 모든 유리한 증인과 증거를 검사에게 공개하여 조사를 받게 하고 불기소처분의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함을 잘 알고 있다. 만일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소가 되었는데 검사가 피고인이 스스로 제출한 유리한 증거나 유리한 증인에 대한 조서는 유죄입증에 필요한 조서, 증거가 아니라며 제출하지 않고 법원의 제출명령에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현재 법에는 증거분리제출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피고인의 방어권 위축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태를 보면 법의 미흡함과 해석의 모호함 등이 겹쳐져 큰 갈등이 야기된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은 제1항에서 피고인, 변호인의 열람등사신청권을, 제2항에서는 검찰의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 용산사건에서 검찰은 제2항의 거부권을 근거로 (언론보도에 의하면)‘사생활보호, 명예훼손의 우려’를 들어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서류에 대해 열람등사하도록 해달라는 변호인의 신청을 거부하였다. 그러할 경우 피고인, 변호인은 266조의4 제1항에 의해 법원에 공개명령을 신청할 수 있고 법원은 제2항에 의거 검사에게 지체 없이 공개할 것을 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가 지체 없이 제출하지 않을 때 이에 대한 제재수단으로는 제4항에 해당 증인 및 서류 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다라고만 규정되어 있다. 용산사건에 비추어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거부 사태를 살펴보면 검찰의 법률 해석이 옳은 것인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법률을 해석할 때 문리적 해석, 체계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이 사용된다고 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검찰의 해석이 이러한 해석방법과 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보면 검찰이 용산사건에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사생활보호, 명예훼손우려’라고 한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2항은 ‘검사는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사유 등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있어 사생활보호라든가 명예훼손우려는 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다. 이를 열거적 규정으로 볼 것이냐, 예시적 규정으로 볼 것이냐라는 해석상의 문제가 남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가사 예시적 규정으로 본다 하더라도 과연 ‘사생활보호나 명예훼손의 우려’가 법에 규정한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들과 대등한 정도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법에 명시한 예시는 의미없는 단순 나열이 아니라 명시되지 않은 사유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형벌로써 사형까지도 규정해 둔 우리 형벌체계 내에서 추상적인 ‘사생활보호, 명예훼손우려’가 국가안보, 증인보호 필요성, 증거인멸 염려와 대등한 수준이어서 피고인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어권보장에 앞서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법원이 검사에게 공개명령을 내리기 전에 검사의 공개거부가 타당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검사에게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고(제266조의4 제3항) 필요할 경우에 법원은 해당서류 등의 제시를 검사에게 요구할 수 있고 피고인 및 이해관계인을 심문할 수 있다(같은 조 제4항). 위 조항을 보면 검사의 공개거부가 타당한 것인지 최종적 판단권이 법원에게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 문제는 검사가 의견을 제시할 때 구체적으로 사정을 서면으로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두로 간단히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안된다라든가, 사생활보호를 위해 안된다라고 진술하고 법원의 해당서류 제출요구에도 응하지 않게 되면 법원은 판단이 불가능하고 최종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직권으로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한(용산사건 재판부가 변호인의 이 요청을 신청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함으로써 법원과 변호인과의 갈등이 촉발되었다), 결국 공개명령을 발하고 공개명령에 불응시 증거신청을 허용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나 검사가 해당 증거를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로 제출할 예정에 있지만 시기적으로 일찍 제출될 경우 증거인멸우려라든가, 관련 사건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던 경우에는 이러한 조치가 의미있는 것이 되지만 애초에 피고인의 범행입증 증거로 제출하지 않을 예정이었다면 검찰 측에 어떠한 불이익도 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법률에 구체적인 사유를 정하고 그 사유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법원이 판단하도록 한 법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형해화되고 오로지 검찰의 자유의지에 공개여부가 달려있게 된다. 셋째, 용산사건에서 검사는 미공개 수사기록에는 피고인의 방어권행사에 유리한 점이 없으며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변호인이 이 기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넷째, 검찰은 해당 법조문에 검찰은 법원의 공개명령에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고 하나 과연 그러한 지 의문이다. 소송법 제266조의3 제1항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다음 서류등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하여 피고인 변호인의 신청권을, 같은 조 제2항에는 ‘검사는 ......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여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 위 조문을 보면 피고인 변호인의 신청에 대해 검사가 ‘거부’할 수있는 권한은 분명하다. 검사의 거부에 대해 피고인 변호인은 소송법 제266조의4 제1항에 의해 법원에 열람등사 허용신청을 할 수 있고 법원은 제2항에 의해 열람등사 허용을 명할 수 있다. 법원의 명령에 대해 제5항을 보면, ‘검사는 제2항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에 관한 법원의 결정을 지체 없이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해당 증인 및 서류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5항은 ‘법원의 명령에 대해 거부하거나 지체없이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라고 규정한 것이 아니라 ‘지체없이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제2항에서는 ‘거부’라는 명시적 용어를 사용하였음에도 5항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체없이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해당 증인 및 서류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다라는 규정에서 방점이 찍힐 곳은 ‘지체없이’라는 곳이며 그 의미는 지체 없이 제출하라, 이유 없이 늦게 제출하는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 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고 거부권이 포함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만일 검찰의 해석대로 법원의 공개명령에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규정된 것이라고 해석된다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법의 적용에 대한 해석권을 실질적으로 검찰에게 주는 불합리함이 발생되어 합리적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검찰의 이러한 해석은 법률제정 당시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검찰이 발간한 ‘개정 형사소송법 해설’에는 해당 법조문에 대해 아무런 해설이 덧붙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용산사건을 계기로 일각에서 법원의 공개명령에 대해서 거부하는 경우 실질적인 제재가 가능하도록 법 규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소기각 사유로 삼아 직접적 제재를 가하자는 의견도 있고 공판절차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여 간접적으로 강제하자는 의견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볼합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강제가 이루어지도록 개정되어야 하겠지만 개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검사는 공익의 수호자이다. 전국의 수많은 검사들이 사익을 희생해 가며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낸다. 그러나 무엇이 공익인지를 판단하고 선언하는 주체는 법원이다. 법원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범죄와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검찰의 입장에서 볼 때 실정을 모르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더라도 이를 존중할 때만이 사법제도는 기능을 발휘한다. 사법부의 권위가 바로 서야만 국민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며 법원은 갈등의 순환고리로써가 아니라 갈등해소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법조삼륜은 상호 긴장관계에 있고 건전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나 사법제도가 갈등해소의 최종적인 장이 될 수 있도록 제도목표달성에 협력해야한다. 국민이 사법제도 자체에 불신을 갖지 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