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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전설
- 근대 바이올린의 계보도
1. 바이올린의 역사
전설적인 명 바이올리니스트들 -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밀스타인, 느뵈...
현악기 군은 발현 악기와 찰현 악기 그리고 건반 악기로 나뉜다. 바이올린은 찰현악기에 속한다. 발현 악기는 기타나 하프와 같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서 소리를 내지만 찰현 악기는 활로 줄을 그어 소리를 낸다는 데 차이가 있다. 리라 같은 고악기에서 엿보이듯 처음에는 나무로 된 공명통에 줄을 매어 손으로 뜯어 사용하던 것이 점차 활을 쓰게 되면서 음량을 확대하고 음의 지속성도 길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올린이 고안된 것은 이탈리아에서였다. 다른 악기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크고 다양한 음색으로 인해 금새 이탈리아 기악음악을 주도하게 된다. 이어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명기들이 제작되면서 바이올린은 류트나 비올족을 넘어 바로크 현악의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바로크 바이올린은 현대 바이올린에 비해 넥의 길이가 짧고 두터웠다. 음역이 지금만큼 높지 않았기에 지판도 짧고 활도 짧았다. 가볍고 경쾌하며 테크니컬한 음악을 연주하는 이탈리아식 활은 가볍고 탄력이 있었으며, 내성적이며 화음을 중시하는 독일식 활은 보다 느슨한 활털을 사용했다. 거트현을 써서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소리를 냈고, 연주 방식도 지금처럼 턱 밑에 괴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올려놓고 연주했다. 크레모나의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과다니니 가계는 당대 최고의 현악 제조 장인들을 내놓았다. 이들이 만든 현악기는 지금도 모방할 수 없다.
2. 근대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
음악사에 나타난 최고의 바이올린 스타는 단연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였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거의 독학이나 다름없이 성장하여 특별한 후학도 양성하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기에 특별한 계보를 따지기 힘들다. 코렐리, 비발디 등에서 시작한 바이올린 연주의 흐름은 조반니 바티스타 비오티(1755-1824)에서 한 정점을 보여준다. 비오티는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그 덕택에 프랑스는 근대 현악 연주사의 종가집이 될 수 있었다. 비오티가 길러낸 제자들 중에는 바이요, 로드, 픽시스, 로베레슈티 등이 있는데 이 중 바이요는 프랑스 악파의 수장이 되는 모랭, 카페 등을 길러냈다. 로드는 베를린에서 독일 바이올리니스트를 길러내는가 하면 헝가리 바이올린의 선구자인 뵘을 길러냈는데 이 줄기는 러시아 악파의 대부인 레오폴트 아우어에게도 연결된다. 만하임 출신의 픽시스는 프라하 음악원 교수가 되어 요제프 수크로 내려오는 보헤미아 바이올린 음악의 선구자가 되었다. 로베레슈티는 베리오-비외탕-이자이-뒤보아-그뤼미오-뒤메이로 이어지는 벨기에 악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외젠 이자이(1858-1932)의 영향은 컸다. 그는 요제프 긴골트나 나탄 밀스타인 같은 제자를 길러냈다. 또한 루마니아 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조르주 에네스쿠 (1881~1955)는 작곡가이기 전에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예후디 메뉴인을 비롯하여 크리스티앙 페라스, 이브리 기틀리스, 아르튀르 그뤼미오, 이다 헨델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국립음악원 교수이던 랑베르 마사르(1811-1892)가 있었다. 그는 프리츠 크라이슬러를 포함하여 사라사테, 비에냐프스키, 마르시크같은 제자를 두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1875-1962)는 <사랑의 기쁨> 같은 곡을 더없이 아름다운 비브라토로 실어냈다. 마르시크는 20세기 초반 바이올린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칼 플레쉬, 자크 티보, 조르주 에네스쿠 등을 길러냈다. 칼 플레쉬(1873-1944)가 근대적 바이올린 기법을 정착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지네트 느뵈, 이다 헨델 등을 배출했는가하면, 자크 티보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로서 수많은 연주회를 가지면서 SP 시대 명반들을 내놓았다. 티보의 ‘비할 데 없는 우아함’은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는 지노 프란체스카티, 헨릭 셰링에게도 연결된다.
티보의 우아함에 가장 근접한 연주자를 들라며 오히려 벨기에의 아르튀르 그뤼미오를 들 수 있다. ‘20세기가 낳은 마지막 궁정연주자’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그뤼미오의 연주는 로코코적인 서정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모차르트 연주에선 가히 최고라 불러도 좋았다. 또 한명 이 시대의 프랑스에서 특별히 언급해야 할 연주자로는 지네트 느뵈가 있다. 유성처럼 연소해버린 놀라운 여성 연주자였다.
이 시대의 프랑스에는 이반 갈라미언(1903-1981)이라는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갈라미언은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줄리어드 음대에 적을 두고 러시아와 프랑스의 장점을 용해시킨 합리적이고 자발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이른바 ‘줄리어드 학파’의 대부라 해도 좋을 그의 문하에서 핀커스 주커만, 이츠하크 펄만, 제이미 라레도, 정경화, 강동석같은 현재의 명연주자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 악파의 형성에는 이 외에 이자이 계열인 루이스 퍼싱어의 영향도 크다. 그는 예후디 메뉴인을 신동으로 길러낸 장본인이었고, 루지에로 리치를 지도했으며, 현대 미국 음악계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아이작 스턴을 교육했다. 미국의 힘은 점점 커져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미국이, 특히 아이작 스턴을 위시한 ‘유태인 마피아’들이 바이올린계의 전면에 포진한다.
비록 근대 바이올린 역사의 선구적 역할은 프랑스가 맡았지만, 20세기 바이올린 연주계의 가장 큰 힘은 러시아에 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 시절의 레오폴트 아우어(1845-1930)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이른바 ‘러시아 악파’를 형성했다. 아우어적 연주, 즉 활과 현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음과 강렬한 비브라토, 초월적인 기교와 압도적인 스케일의 표현력을 아울러 갖춘 이 러시아 군단에는 ‘바이올린의 황제’ 야사 하이페츠를 위시하여 지적인 깊이를 보여준 나탄 밀스타인, 관능적인 비브라토 음색으로 유명했던 미샤 엘만을 비롯하여 토샤 샤이델, 예프렘 짐발리스트 등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 직후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악파의 형성에 기여했다.
아우어의 제자 중에 표토르 스토랴르스키(1871-1944)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오데사 음악원 교수이던 그는 아우어 식의 강렬한 보잉에다 프랑스-벨기에의 따스한 정감을 절충하여 보다 깊은 내면의 표현을 끄집어냈다. 그 제자가 하이페츠와 쌍벽을 이루었던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였다. 또한 그 후배격인 레오니드 코간은 불꽃처럼 작열하는 검투사풍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3. 살아 있는 거장들
살바토레 아카르도, 이츠하크 펄만, 기돈 크레머,
현역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 살바토레 아카르도 (Salvatore Accardo, 1941- )처럼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기교를 보여준 이를 찾기는 힘들다. 아카르도는 13세에 파가니니 카프리스로 독주회를 가졌고 1958년 17세의 나이에 파가니니 콩쿨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눈부신 테크닉과 밝은 선율미를 자랑하는 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처음으로 녹음했고, 아카르도 콰르텟으로, 이 무지치 합주단의 3대 리더로서도 활약했다. 지난 2014년에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로 내한 독주회를 가지면서 아직도 그의 바이올린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츠하크 펄만 (Itzhak Perlman, 1945- )은 4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불편해졌다. 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0세 때 이스라엘 방송 관현악단과 협연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1958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배운 후 아이작 스턴과 함께 미국-유태인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노래하는 듯 따뜻한 음색과 섬세한 소리로 감동을 준다. 클레츠머 밴드와의 공연, 팝 가수들과의 협연 등 크로스오버적인 활동도 많으며, 영화 <쉰들러 리스트> <게이샤의 추억> 등의 음악도 맡았다.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념연주를 맡기도 했으며 아직도 연주회를 열고 있다.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 1948- )는 동유럽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했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3위, 몬트리올 콩쿠르 2위에 이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이라는 화려한 경력으로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파가니니의 환생”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강한 테크닉에다 실험성을 동시에 갖춘 그는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현대 음악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펼쳐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들을 바이올린 곡으로 연주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칠순이 넘었지만 그의 소리는 여전히 예리하다.
이름 | 출생년도 | 국적 | 스승 | 주요경력 | 한줄 평 |
살바토레 아카르도 | 1941 | 이탈리아 | 이본느 아스트뤽, 나탄 밀스타인 | 1958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 기교란 이런 것! |
이츠하크 펄만 | 1945 | 이스라엘 (유태계 미국인) | 이반 갈라미언, 도로시 딜레이 | 1964 레벤트리트 콩쿠르 우승 | 물결같은 노래 소리 |
기돈 크레머 | 1947 | 라트비아 (독일계 유태인) |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1969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1970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 비발디에서 피아졸라까지 |
정경화 | 1948 | 한국 | 이반 갈라미언 | 1967 레벤트리트 콩쿠르 공동 우승 | 막강 집중력, 예민하고 강력한 톤 |
나이절 케네디 | 1956 | 영국 | 예후디 메뉴인, 도로시 딜레이 | 비발디 <사계>로 플래티넘 앨범 | 과감한 용기와 자유로움 |
빅토리아 뮬로바 | 1959 | 러시아 | 레오니드 코간 | 1980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1982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 이지적, 냉철한 연주 |
4. 우리 시대의 명인들
1963년생인 안네 소피 무터(1963-)는 1974년 11세의 나이로 독일 청소년 콩쿠르에 우승한 후 카라얀의 사랑을 독차지한 독일 바이올린계의 상징이었다. 비발디부터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손대지 않은 레퍼토리가 드물 정도였다. 유태인이 대부분이던 유럽 바이올린계에서 순수 게르만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란 점은 확실한 상품 가치가 있었다. 2002년에는 무려 34세나 차이나는 앙드레 프레빈과의 (두번째) 결혼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선이 가늘지만 나름의 서정미를 잘 살린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크 페터 침머만(1965-) 역시 독일 청소년 콩쿠르를 통해 나타난 바이올리니스트다. 아르튀르 그뤼미오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톤 컬러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작 스턴이 세상을 떠나고 이차크 펄만이 황혼을 맞은 미국 음악계에서 조슈아 벨(1967-)의 위치는 대단하다. 그래미상의 단골 수상자이며, <레드 바이올린> <라벤더의 여인> <뮤직 오브 하트> 등 영화음악에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연주자이며, 크로스오버적인 활동에도 능하다.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나움버그 콩쿠르에 빛나는 그리스의 레오니다스 카바코스(1967-)는 한국 연주회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BIS> 레이블에서 발매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잘 알려졌으며,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지휘자를 맡기도 했다.
길 샤함(1971-), 바딤 레핀(1971-), 막심 벤게로프(1974-)는 거의 같은 시기에 세계 무대에 떠올랐다. 길 샤함이 줄리어드 음대 특유의 매끄러우면서도 부드러운 색깔을 보여준다면 레핀에게선 벨기에-러시안적 기품을, 벤게로프에게선 유태계-러시아적인 깊은 표현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몰도바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진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1977~)도 강렬한 연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현대음악에 많은 레퍼토리르 보유하고 있다.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 그와 비슷한 비교를 하자면 네덜란드의 야니네 얀센(1978-), 미국의 힐러리 한(1979-), 독일의 율리아 피셔(1983-)를 같이 놓고 비교할 수 있다. 전형적인 음악 가정 출신인 야니네 얀센은 특별한 수상 경력 없이 곧바로 세계 무대에 떠오른 실력자다. 여성 연주자로선 보기 드물 정도로 선이 굵고 호쾌한 연주 스타일 때문에 전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반대로 미국의 힐러린 한은 “얼음 공주”라 불릴 정도로 냉정을 유지하며 정교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음악 분야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다재다능하기로 말하자면 율리아 피셔를 첫 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1995년 메뉴힌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안네 소피 무터 이후 최고의 독일계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로 떠올랐고 바흐부터 펜데레츠키에 이르는 수많은 공연과 레코딩을 소화해냈다. 2008년에는 피아노 연주자로 데뷔하여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음반까지 레코딩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외에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독일의 다비드 가렛(1980-)은 크로스오버 공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으며, 2004년 BBC 올해의 영 아티스트로 부상한 니콜라 베네데티(1987-)는 영국이 자랑하는 차세대 기대주로 얄려져 있다. 이 틈에서 대만 출신의 레이 첸(1989-)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일본 연주자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