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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민민주주의연대 : 노란셔츠 (상편)
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 : PAD
○ 명 칭
1. 영문 : The 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 (PAD: [태국]국민민주주의연대)
- 태국어 : พันธมิตรประชาชนเพื่อประชาธิปไตย (판타밋 빠차촌 프어 빠차팁 타이)
2. 영문 : The National Liberation Alliance (민족해방연대)
- 태국어 : กลุ่มพันธมิตรกู้ชาติ (끄롬 판타믓 꾸찻)
3. 영문 : The Yellow Shirts (เสื้อเหลือง: 스아 르앙) - 노란 셔츠
- 단순히 "노란 색"이란 의미의 "시 르앙"이란 말도 사용됨. |
개 요
태국의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었던 탁신 친나왓(ทักษิณ ชินวัตร, 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에 반대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체였다. 탁신이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PAD는 그를 총리직에서 축출하기 위한 시위에 나서면서, "1인1표제 민주주의"(one person, one vote democracy) 종식을 주창했다.(주1) 그 지도자들로는 미디어계의 거물 손티 림텅꾼(สนธิ ลิ้มทองกุล, Sondhi Limthongkul), 예비역 육군 소장 짬렁 시므앙(จำลอง ศรีเมือง, Chamlong Srimuang) 등이 포함된다.
PAD는 "2005-2006년 태국 정치위기"에서 주요한 역할자였고, "2008년 정치위기"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PAD의 구성원들은 중상류층의 방콕 시민들과 남부지방 출신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태국 군대의 보수적 엘리트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민주당"(พรรคประชาธิปัตย์, 팍 프라차티팟)의 일부 지도자들과 국영기업 노동조합 간부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주2)(주3) 군사정권이 "2006년 쿠테타"를 일으켜 선거로 선출된 탁신 정부가 전복시킨지 이틀 후, PAD는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됐다며 자진해산했였다.(주4) 하지만 2007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사막 순타라웻(สมัคร สุนทรเวช, Samak Sundaravej) 총리가 이끈 친-탁신계 신당 "국민의 힘 당"(People's Power Party: PPP)이 승리하자, PAD는 다시금 재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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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초, 정부청사 주위를 둘러싼 PAD 시위대의 모습. |
2008년 5월 PAD는 가두시위에 나서 사막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청사를 점거했다. 또한 PDA의 또다른 시위대는 푸켓(Phuket)과 까비(Krabi, 끄라비), 핫 야이(Hat Yai)의 공항을 무단 점거하면서 주요 국도 및 고속도로까지 차단했다. 국영기업체의 노동조합은 전국의 철도운행을 정지했고, 반-PAD 지지자들에 대해 전기와 수도 공급까지 차단하겠다는 위협을 가했다.(주5)(주6) 또한 PAD의 무장조직인 "스리위자야의 전사들"(Srivichai Warriors)은 "국영 TV 방송국"을 접수했을뿐만 아니라 몇몇 정부 부처 건물들도 장악했다.(주7)(주8)(주9)(주10) 게다가 PAD 지지자들과 반-PAD 지지자들 사이에 폭력사태도 발생하여 수십명이 부상했고, 반-PAD 지지자 한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다.(주11) 한편 PAD 지지자들 중 부유층들은 사막 내각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은행예금을 인출해 "뱅크런"(bank run)을 유발시키겠다는 위협을 하기도 했다.(주12)
PAD의 시위는 군부가 임명한 "헌법재판소"(Constitutional Court)가 사막 총리에 대하여, 총리 재임 중 "TV 요리 쇼"를 진행한 것이 "공직자 겸직 위반"이라며 유죄판결을 내리자 더욱 고조되었다. PAD의 무장조직은 의사당을 포위하였고, 사막 총리의 후임자인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탁신의 매제) 신임 총리의 국회 정책연설을 저지하고자 철조망 바리케이트도 설치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켰다. 이들 중 일부는 총과 폭발물로 무장하고 있었고, 해산과정에서 수백명이 부상하고 한 명이 사망했다.(주13) 한편 연립여당 중 하나인 "찻타이당"(พรรคชาติไทย, Chart Thai Party) 중앙당사 앞에서 PAD 지도자 한 사람이 자신의 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폭발물이 터져 숨지기도 했다.(주14)(주15)(주16)(주17) 이후 PAD는 공식적으로 비폭력 투쟁 중단을 선언하고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주18)(주19) PAD는 군부 쿠테타 유도하고자, 다시금 11월부터 의회의 주요 회의를 무산시키는 바리케이트를 쳤고, 정부 버스들을 탈취해 "돈 무앙 공항"(Don Muang Airport)의 정부 사무소도 장악했다. 이후 이들은 "수완나품 국제공항"(Suvarnabhumi International Airport)마저 점거했다.(주20)(주21)(주22)
한편 치앙마이(Chiang Mai: 탁신의 고향임)에서는 "붉은셔츠"(UDD) 멤버들이 60대 노인을 차에서 끌어내려 총으로 사살하기도 했다.(주23) PAD 역시 동부 해안지대의 항구들을 포위하겠다고 위협했다.(주24) 2008년 12월 2일 태국 헌법재판소가 부정선거 혐의로 "국민의 힘 당"(PPP)에 대한 해산명령과 더불어, 그 지도자들에 대해 정치활동 금지 판결을 내리고서야 PAD의 점거와 시위가 중단되었다. 또한 육군 참모총장 아누퐁 파오찐다(อนุพงษ์ เผ่าจินดา, Anuphong Phaochinda) 대장은 PPP의 여러 국회의원들에 압력을 행사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게 한 후, 아피싯 웻차치와(อภิสิทธิ์ เวชชาชีวะ, Abhisit Vejjajiva) 의원을 총리로 선출토록 했다.(주25) 또한 PAD 공동의장들 중 한 명인 까싯 삐롬야(Kasit Piromya)가 외교부장관으로 취임했다.
PAD는 탁신 친나왓 정부는 물론, 탁신의 대리인 역할을 한 사막 순타라웻과 솜차이 웡사왓 총리의 내각에 대해서도 사퇴를 주장했다. 하지만 손티 림텅꾼의 경우 솜차이 총리를 사막 총리의 대안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주26) 하지만 사막 총리가 물러난 후에도 PAD는 솜차이가 탁신의 매제란 이유로 시위중단을 거부했다.(주27) 점거의 절정에서 PAD는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총리는 아피싯 뿐이라고 주장했다.(주28) PAD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캄논 싯티사만(Khamnoon Sitthisamarn)은 아피싯의 총리 취임이 "PAD의 참다운 승리"이며 "아누퐁 스타일의 쿠테타"라 말하기도 했다.(주29)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PAD 및 그들의 주장에 대해 "그들 스스로 파시스트(fascist)라고 주장하진 않지만, 파시스트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주30) PAD는 태국에서 대중 민주주의는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의원들을 국왕이 임명하는 헌법개정을 제안했다.(주31)(주32) 이들은 탁신의 "대중적 경제정책"(populist economic policies) 및 정치권력 분권화 시도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왕당파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PAD는 푸미폰 아둔야뎃(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Bhumibol Adulyadej) 국왕을 자신들의 투쟁 속에 정기적으로 끌어들이면서, 반대파들에 대해서는 국왕에 대한 반역자들이라 비난한다.(주33)(주34)(주35) 또한 이들은 군부 및 태국의 전통적인 엘리트들에 대해 정치에 더욱 깊숙히 개입할 것도 주장한다.(주36)
(주1) http://www.nytimes.com/2008/09/12/world/asia/12thai.html?fta=y
(주2) IHT, Protesters face police in Thailand, 2008-8-28.
(주3) Asian Times, Thai protests turn nasty, 2008-8-27.
(주4) People's Daily, Anti-Thaksin alliance dissolved, 2006-9-21.
(주5) Associated Press, Strike by Thai anti-government forces falls flat, 2008-9-3.
(주6) Bangkok Post, Airports still shut, trains not running.
(주7) The Irrawaddy, PAD Protesters, Police in Tense Standoff, 2008-8-27.
(주8) CNN, Thai judges issue warrants to arrest protesters, 2008-8-27.
(주9) The Nation, Tolerance winning the day at Government House - for now, 2008-8-29.
(주10) CNN, Thai judges issue warrants to arrest protest leaders on the request of the police, which were later nullified by the higher courts, 2008-8-27.
(주11) The Star, Thailand democracy at risk, 2008-9-3.
(주12) The Straits Times, I won't quit: Samak, 2008-8-31.
(주13) Nation, Angkhana killed by tear gas canister explosion: Pornthip.
(주14) AFP, One dead, hundreds injured in Thai anti-government protests, 2008-10-7.
(주15) New York Times, Thai Protesters Trap Legislators, 2008-10-8.
(주16) AP, Blood on Thai streets as political crisis worsens, 2008-10-7.
(주17) The Nation, Following a full day of attacks by the police force which resulted in many injuries, some protesters responded to the police attacks with bottles and sticks: police, 2008-10-8.
(주18) Matichon, ตร.ถูก"รถชน"บอกเสียใจยันทำหน้าที่โดยไร้อาวุธ ผบ.ตร.พร้อมให้คนกลางสอบเหตุปะทะ ยันตชด.ฝึกมาอย่างดี.
(주19) Thai protest leaders vow revenge after deadly clashes, 2008-10-7.
(주20) Reuters, Thai protesters storm airport control tower, 2008-11-26.
(주21) AFP, http://www.google.com/hostednews/afp/article/ALeqM5hGVXtxYudgtTWJRXywyzD_SY 2VZQ, 2006-11-26.
(주22) Time, Thailand's Political Crisis Becomes a Global One, 2008-11-26.
(주23) CNN, Thailand in crisis as violence spreads north, 2006-11-26.
(주24) The Nation, Tension may worsen with pro-govt rally, 2008-11-30.
(주25) The Telegraph, Thai army to 'help voters love' the government, 2008-12-18.
(주26) Bangkok Post, Sondhi gives first hint of compromise, 2008-9-3.
(주27) The Nation, PAD proposes "People Revolution Government", 2008-9-15.
(주28) Bloomberg, Oxford Graduate Abhisit Elected in Thai Power Shift, 2008-12-19.
(주29) The Nation, Question loom over new Prime Minister's legitimacy, 2008-12-17.
(주30) Asian Human Rights Committee, THAILAND: Watershed moment for democracy and rule of law, 2008-11-26.
(주31) IHT, On 5th day of Thai protests, a carnival atmosphere, 2008-8-30.
(주32) BBC, Rifts behind Thailand's political crisis, 2008-8-27.
(주33) ABC, Thai PM threatens protestors over slogans, 2008-8-5.
(주34) Al Jazeera, Thai PM: 'I will never resign', 2008-8-31.
(주35) The Financial Times, Protesters besiege Thai state buildings, 2008-8-27.
(주36) AFP Thai PM consults king over escalating protests, 2008-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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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방콕 시내를 행진 중인 PAD 시위대의 모습. |
1. PAD 지도부의 탄생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그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손티 림텅꾼이 진행하는 TV 정치 토크쇼 "므앙타이 라이삽다"(Muang Thai Rai Sapda: 주간 태국)를 통해 그 주장들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왔다. 그의 프로그램이 MCOT의 "채널9"에서 빠지게 되자, 이후 손티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한 웹캐스팅 쇼를 시작했다. 논쟁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그의 논조는 자연스레 반정부적 태도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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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집회장에서 연설 중인 손티 림텅꾼. |
PAD는 탁신 일가가 소유했던 "친 코퍼레이션"(Shin Corp)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에 처분한 직후인, 2006년 2월 8일에 공식 출범했다.(주37) PAD는 이 주식거래를 불법적인 이권에 대한 증거라고 보았다.(주38) 이때 출범한 PAD의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다음과 같다.
- 손티 림텅꾼(Sondhi Limthongkul): 언론계의 거물.
- 짬렁 시므앙(Chamlong Srimuang): 예비역 육군 소장.
- 피폽 통차이(Phiphob Thongchai): 활동가.
- 솜삭 꼬사이숙(Somsak Kosaisuuk): 국영기업 노조지도자.
- 솜끼얏 퐁파이분(Somkeit Pongpaibul): 대학 강사 겸 사회운동가.(주39)
이러한 5인의 중앙위원과 별도로, 10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있다.
- 삐따야 웡꾼(Pitaya Wongkul)
- 레와디 빠센짜로엔숙(Rewadee Prasertcharoensuuk)
- 로사나 토시따꾼(Rosana Tositrakul)
- 차이왓 신두웡(Chaiwat Sindhuwong)
- 삐다 띠아수완(Preeda Tiasuwan)
- 시리차이 마인감(Sirichai Maingam)
- 수윗 왓누(Suwit Watnuu)
- 꼬차완 차이야붓(Kochawan Chaiyabut)
- 위라뽄 소빠(Weerapol Sopa)
- 오우위차이 와따(Ouychai Wata)
그밖에 지도자 중에는 캄눈 싯티사만(Khamnoon Sitthisaman)과 대중 민주주의 운동 지도자 수리야사 까따실라(Suriyasai Katasila)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손디 소유 회사의 이전 및 현재의 부하직원들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러한 이들로는 빤텝 쁘어뽕반(Panthep Puapongbhant), 삼란 롯뻿(Samran Rodpetch), 꿈눈 시디사만(Kumnuun Sidhisamann), 사로차 뽄누돔삭(Sarocha Pornudomsak), 안찰리 빠이리락(Anchalee Paireerak), 유타용 림렌와띠(Yuthayong Limlertwatee), 똔뽕 세와딴(Torpong Sewatarm)이 있다.
2. PAD의 지지자들
초창기 PAD의 지지자들은 주로 방콕의 중상류층 시민들이었다. 여기에는 <방콕포스트>(Bangkok Post)가 "귀족층 제트족"(Blue Blood Jet Set)이라 부른 저명한 사교계 명사들도 포함되었고, 약간 하급의 왕족들도 참가했다. 이후 PAD는 공무원과 국영기업 노조, 도시 중산층, 보수적 불교계, 남부지방의 주민들 및 엘리트 계층으로 그 지지기반을 확대해나갔다.

(사진) 2007년 1월 7일 PDA 집회에 나타난 멈라차웡 폼찻 사왓디왓(Mom Ratchawong Phromchat Sawatdiwat, ม.ร.ว. พร้อมฉัตร สวัสดิวัฒน์: 좌)과 벤차완 까창넷(Benchawan Krachangnet, เบญจวรรณ กระจ่างเนตร: 우). 폼찻왓 사왓디왓은 찬깐마네(Chankanmanee, พระเจ้าวรวงศ์เธอพระองค์เจ้าจันทรกานต์มณี: บริพัตร) 왕자 및 멈짜오 오라춘치사누 사왓디왓(Mom Chao Orachunchisanu Sawatdiwat)의 며느리이고, 벤차완은 여배우 까탈리야 믓또시(Kathaleeya McIntosh)의 시어머니이다.
불교계의 PAD 지지층으로는 산띠 아속(สันติอโศก, Santi Asoke) 종단 및 과거 탁신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한 짬렁 시므앙이 이끄는 이 종단의 "호법군"(Dharma Army: "진리의 군대"란 의미), 그리고 루앙따 마하부와(หลวงตามหาบัว, Luangta Mahabua) 스님의 추종자들, 마하니까야 종단 출신의 솜뎃 푸타짠(สมเด็จพุฒาจารย์, Somdet Phutthacharn) 스님을 태국 승왕(Sangharaja, พระสังฆราช) 대행으로 임명한 데 반대하는 담마윳띠까 니까야(Dhammayuttika Nikaya) 종단이 있다.(주40)
한편 "태국 추밀원"(Privy Council of Thailand, สภาองคมนตรีไทย: 국왕자문기구) 의장 쁘렘 띠나술라논(เปรม ติณสูลานนท์, Prem Tinsulanonda) 예비역 대장의 측근인 빠톰뽕 께손숙(Pathompong Kesornsuk) 장군은 정복 차림으로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동료 장성들에게 이 흐름에 동참하라고 권유키도 했다.(주41)(주42) 한편 군부는 정부청사와 돈무앙공항, 그리고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PAD 시위대를 해산시키라는 정부의 명령을 종종 무시하곤 했다. 육군 참모총장 아누퐁 파오찐다 대장은 PAD측에 대해 공항에서 철수하라고 하면서도, 정부에 대해서도 수차에 걸쳐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PAD 지지자들이 입는 노란 셔츠는 태국 왕실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탁신 전 총리의 국왕에 대한 공개적인 반역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푸미폰 국왕은 이러한 소요사태와 PAD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시리낏(Sirikit) 왕후가 시위 중 사망한 PAD 여성 지지자의 장례에 참석하여, 그녀가 "착한 소녀"였고 "군주와 국가의 수호자"였다고 발언했다.(주43) 푸미폰 국왕의 장녀 시린톤(Sirindhorn, 시린돈) 공주는 "PAD가 국왕을 대신해 행동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후 "그들은 스스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첨언했다.(주44)
한편 PAD의 많은 멤버들은 과거 손티 림텅꾼으로부터 거액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주40) The Bangkok Post, "Monastic feud could lead to a schism", 2005-3-5.
(주41) Bangkok Post, Inquiry ordered into general at PAD rally, 2008-7-12.
(주42) Prachatai, Bail still denied for lèse majesté detainee after 24 days, 2008-8-16.
(주43) The Nation, Queen attends slain protester's cremation, 2008-10-14.
(주44) The Economist, Fuelling the pyre, 2008-10-16. |
3. PAD의 이념
3.1. 정치적 제안들
PAD는 부정부패 없는 정치, 법치와 정의의 증진을 주장하며 정치인과 공무원의 부정부패에 반대한다. 이들은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면서, 자신들이 보기에 군주의 지위를 변화시키려 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반대한다. 하지만 선거로 선출된 정권을 전복시킨 2006년 쿠테타 이틀 후에, 이들이 자신들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며 자진해산했다는 점을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주4)

(사진) PAD 시위대 진압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노골적으로 탁신 및 사막 내각 사퇴를 종용했던 아누퐁 태국 육군 참모총장. 현재도 재임 중이다.
손티 림텅꾼은 선거제도가 끊임없이 부패하고 대중주의적 성향을 가진 정권을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주45) PAD는 이러한 문제점을 완화시키기 위해 "새 정치"(New Politics)란 이념을 제시하고, 2009년 6월 2일에 "새정치당"(New Politics Party[NPP], พรรคการเมืองใหม่ ก.ม.ม.[Karn Muang Mai: KMM)이란 정당을 창당했다.
PAD는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여, 그 지도자들 대부분이 지지하고 일부 조항들은 쿠테타 후에 만들어진 <2007년 헌법> 초안에 적용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의원의 70%를 전문 직능군에 따라 임명하고, 30%만 선출제로 한다는 것이었다.(주31)(주32) 그러나 2008년 9월 21일, PAD는 국회의원 100%를 선출직으로 한다는 안으로 선회했는데, 이 안은 50%는 지역구로 선출하고 나머지 50%는 직능비례대표로 선출한다는 것이었다.(주46)(주47)(주48)
3.2. 민족주의
PAD는 종종 "민족주의자들"(nationalists)로 묘사되기도 하며, 태국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한다.(주49) 따라서 이들은 사막 총리 내각이 쁘레아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캄보디아의 영토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토록 외교적 지원을 한 결정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했다. PAD는 탁신이 이러한 협정을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고 보고, "국민의 힘 당"(CPP)도 이러한 행동에 공조한 것이라 비난했다.(주50) 이들은 또한 캄보디아에 투자한 투자가들도 철수할 것을 주장하고, 40개에 달하는 태국-캄보디아 국경검문소들도 폐쇄할 것도 요구했다. 또한 태국에서 캄보디아의 프놈펜과 시엠립으로 가는 항공노선의 중지, 국경 근처의 태국 영토 꺼꿋(Koh Kut)에 진행중인 항만공사의 중지, 양국간 영유권 주장이 겹치는 해역을 관리하는 공동위원회도 철폐하고 태국측 해양지도에 따른 일방적 선언을 할 것 등을 주장했다.(주51)
3.3. 정부구조에 관한 제안
태국을 경제발전 상위국으로 도약시키려 한 탁신의 입장과는 달리, 손티는 반-물질주의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합리적 사회"(reasonable society)를 주장했다. 이것은 가능한 한 소비자들의 부채를 줄이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자동차 혹은 세탁기"를 소유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키자는 것이다. PAD는 외국인 투자에도 제한을 두자는 입장이고, 국영기업의 민영화에도 반대한다. 이들은 대체로 태국에 대한 외국인투자에 대해 회의적이다. 손티는 한 인터뷰에서 "태국을 자유무역과 소비지향적 사회로 만들지 말라"고 주장했다.(주45)
탁신과 소막은 "2중 트랙"(dual-track) 경제정책을 통해 시골지역 및 농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세계경제에 참여를 확대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의료혜택과 같은 대중주의적 정책도 함께 결합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PAD는 강경한 통화주의(Monetarism)를 고수한다. 이들은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이자율을 높이자고 주장하며, 공공복지예산 및 초대형건설계획(mega-projects)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주52)
3.4. 국왕 개입의 요청

(사진) 2006년 6월 9일 거행된 행사에서 모습을 나타낸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후의 모습 [출처: AP]
2006년 2월 24일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탁신 총리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국회를 해산했다. 그후 그는 2006년 4월 2일 총선을 예고했다. 2006년 3월, PAD는 국왕이 개입하여 탁신을 권좌에서 축출해줄 것을 요청했다.(주53) PAD는 이러한 국왕 개입 요청이 정치적 위기극복을 위한 평화적 수단 중 하나일뿐이라 해명했지만, 이 제안은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푸미폰 국왕은 2006년 4월 26일 연설을 통해 이러한 제안을 거부했다. 당시 그는 "어명을 통해 임명한 총리가 비민주적이라 한다면, 과인의 부덕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것은 불합리한 일"이라 말했다.(주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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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훈센 총리가 아무래도 이번에 큰 배팅을 한 것 같네여... 얼마 전에는 지금 태국의 제1야당이고 친-탁신계인 "프어 타이"(PPP의 후신) 정당에, 예비역 군장성들이 대거 입당했는데, 훈센 씨가 이 흐름에 편승해 태국 정치에 개입하려는 것 같습니다. 잘하면 베트남이 최대 20만 이상의 군대를 보내서 캄보디아에서 한 일을, 훈 센 씨는 말 몇 마디랑 카지노 1-2개 내주고 그보다는 못하겠지만 태국에서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잘못되면... 모... 크게 손해볼 일도 없을 것 같군요....
어지럽네요. 단어들도 생소하고,인명들도 생소하고, 하여튼 큰 흐름은 알겠습니다.
일단 탁신 총리 관련 내용은 더 이상 여기다 댓글을 안 달고, 탁신 관련 정보를 우선 "[분석] 탁신의 캄보디아 망명을 제안한 훈 센의 목적 (로이터 2009-10-22)" 게시물 댓글로 모두 옮기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 게시물의 댓글들을 확인해 주십시요.
이 게시물과 관련해서만 언급한다면, 우리가 어렵더라도 태국 정치의 큰 줄기는 알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캄보디아 정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웃국가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태국이나 베트남이 인구 및 국토면적, 경제력 등에서 캄보디아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규모 면에서 대국들이기 때문에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캄보디아만 들여다 보다보면, 바로 그러한 객관적 사실을 가끔씩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령 캄보디아 인구는 1300만이지만 태국 인구는 6천만이 넘고, 일인당 소득도 통계마다 최소 2.5배 이상~ 최대 10배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또 현재 베트남에 대해서는 친-베트남 정책으로 별 주목을 할만한 긴장이 조성되지 않고 있지만, 태국과는 여러 면에서 직접적 마찰이 발생하고 있고, 동시에 기반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태국 투자가들의 규모가 상당히 커 보입니다. 우선은 더더욱 태국에 대해 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태국에 관한 정보는 한국어권이나 영어권이나 양적으로는 넘쳐나는데, 한국어권의 경우 캄보디아에 관한 것보다는 상황이 낫습니다만, 깊이가 부족해서 심도있는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더군요. 당분간 몇몇 주요 항목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권에서 태국에 관한 정보는 이미 신뢰할만한 수준에서 상당한 양이 축적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노란셔츠들에 대해 왕당파, 민족주의자, 군부 및 경찰세력 지지자 정도로만 이해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이들이 가진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을 보다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고, 기존에 잘 몰랐던 태국 남부 지방 사람들의 지지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2가지를 함축 합니다. 하나는 탁신의 고향이 치앙마이임을 생각한다면 노란셔츠-빨간셔츠 대결 구도에 이념은 물론이고 태국 중/남부 - 북부/북동부 사이의 지역갈등 구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동시에 민족주의인 이들이 비교적 이슬람이 많이 사는 남부지방의 지지를 얻은 것은 남부지방이 그만큼 상대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령 푸켓 같은 관광지들부터, 고무 농장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는 점 등 말이죠. 하여간 앞으로 조금 더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상편에서 개인적으로 갖게 드는 느낌은 푸미폰 국왕.... 글세요... 참.. 참... 은근히 교활하고도 노련한 늙은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양반이 살 날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만일 그가 사망하면, 노란셔츠들의 지주가 없다는 점도 한계입니다. 위에서 장녀인 시린돈 공주 이야기가 나왔는데, 국민들 정서는 독신인 그녀가 여왕이 됐으면 하지만, 또 난봉꾼인 장남이 만일 그러면 둘러없겠다고 공언해서
장남의 아들, 즉 손자(현재6~8세)가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도 말합니다만, 하여간 푸미폰 공의 사망이 태국 민족주의 진영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태국 민족주의자들을 보고 있자니, 캄보디아의 훈 센 권위주의 정권보다도 먼 시간을 두고보 보자면, 더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되네여... 권위주의 정권이야 몇 십년 후에라도 둘러엎으면 되지만, 이거 국왕과 민족주의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야말로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 같은건데, 태국이 어떤 면에서 더 가능성이 안 보이네여.... 비록 지금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그나마 가장 민주적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보편적 정치의식 면에서는 어쩌면 캄보디아가 더 높을지
지난번 (8월 14-16일) 잠시 태국에가서 느낀건데 워낙 캄보디아와 인구나 모 경제성장이나 모든 것으로 상대가 안되는데 쁘레아뷔히어 사원을 가지고 싸운 다는 건 태국에서 찔러보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못먹는 감,,,밎져봐야 별로 밎지지 않는..모 이런거,,,그리고 국민들의 왕에대한 맹신이 참 무섭더군여. 왕비의 생일이(8월12일)지난지 몇일 안돼서 그런지 왕궁 앞의 거리를 왕비의 사진으로 입간판이라고 그러나요?....참 엄청나게 거리를 꾸몄더군요...왕에대해 미친인간들처럼 느껴지는,,,. 왕의 절대권력이 한눈에 보이는 듯,,참 씁쓸했답니다. 그 돈을 빈민들의 한 끼 허기라도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에..
일단 태국족을 연구하다 보니 쁘레아위히어 사원을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네요. 생각보다 양국 정부에서 국제적 공조도 좀 깊숙하게 취한 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그 태국정부가 이 노란셔츠들이 미워한 정부인지라... 일이 점점 꼬이고 있는거죠.. 일단 국제사법재판소 판결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만 놓고보면, 분명히 국제법상 캄보디아 영토입니다만, 일이 참 많이 꼬여 있어서리... 그리고 태국 국민들이 국왕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신앙심이랄까 아니면 무슨 히틀러에 대한 열광 비슷한 분위기... 이것..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광신적인 사람들하고는 이성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참.. 갑갑함을 느낍니다.... 그나저나 위의 사진에 나오는 왕족 아줌마들, 참 우리가 가진 왕족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셔주는구만요~ ^ ^ 딱 1980년대 강남 복부인들 스탈~ ^ ^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언제든 제트기 타고 뉴욕으로 쇼핑갈 수 있는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집에는 벤츠 3~5대 있을거고... 스쿰빗의 백화점에 가서 하루 20만밧 정도 쇼핑도 가능한 경제력들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싶네여.. 첨에 방콕으로 해서 왔는데... 스쿰빗의 백화점들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들을 보면, 다양성이나 레벨에서 한국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 않아 보이더군요...
아 그리고 록카에님, 사실 쁘레아위히어가 평화로와 지면 관광객들 대부분이 태국쪽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태국측도 이익이 만만찮습니다. 노란셔츠들이 명분만 앞세워 소란을 피워그렇죠.. 아마도 사막 정권에서 캄보디아의 유네스코 등재를 배후에서 지원했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