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클라라 울고 있었나요? 당신 눈물 한 방울마다 내가 키스해 줄게요. 그러면 다시 마음이 밝아지겠지요. 그리고 또 재미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클라라. 신혼의 두 사람이 츠비카우에서 보낼 최초의 여름을 생각하면 돈 새상이 장미꽃으로 뒤덮인 낙원처럼 황홀해집니다. 그 속에서 새색시와 신랑이 팔짱을 끼고 열심히 일하고 한껏 즐기는 행복을 그려 보아요. -로베르트 슈만-
어제 당신의 황홀한 환상곡을 받고 나는 너무 기뻐서 병이 날 뻔했습니다. 나는 창가로 끌려가서 그대로 아름다운 봄 속에 몸을 던지고 한아름 꽃을 품 안에 껴안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환상곡을 읽으면서 찬란한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의 클라라-
위의 글들은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가 서로를 위해 쓴 편지중의 한 내용이다. 내가 '슈만'과 '클라라'라는 이름이 고리로 묽여 있음을 발견한것은 대학시절 초기의 일이다. 예전 천리안에 가입해 있을때 클래식 동호회의 이름에 슈만과 클라라의 이름이 나란히 있는것을 처음 보았고 그때 첨으로 슈만의 아내 이름이 '클라라'인것을 알았다. 그러나 슈만과 클라라의 이름이 음악사에 길이 남을만큼의 대 로맨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그저 슈만의 아내이름은 클라라인것 만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왜 한 작곡가(아주 훌륭한 작곡가 이기는 하지만)의 아내에 대해 그리도 열광하고 그 로맨스를 격찬하는지 어리둥절했다. 슈만과 클라라라는 이름은 어느사이 나의 기억 속에 묻혔고 다시 그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된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전공(작곡) 스승과 자주 알콜이든 음료(named Beer)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스승님이 자주 가시는 집근처의 까페(술집)의 이름이 '슈만과 클라라'였다.(여기서 첨으로 데킬라를 마셨다. 그것도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그 커다란 병을 한병사서 말이다.) 슈만과 클라라의 이름은 다시 한번 나의 가슴속에 각인되었고 도저히 그 이름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인지 가끔씩가는 서점에서 우연히 '슈만과 클라라'라고 큼직하게 이름 쓰여진 책을 발견했다.(우석 출판사) 책에 담겨진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음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이 부부의 사랑은 너무도 순수하고 감동적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작곡가 슈만, 그는 무리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의 근육이 파열하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이것을 작곡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로 알고 그 핸디캡을 훌륭하게 이겨낸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 당시 작곡자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했기에 그의 사건은 그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주었을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 클라라는 언제나 그의 손이되어 그의 아름다운 곡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가 이 책에서 새롭게 안 사실은 클라라가 당대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 슈만에게 너무도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못하는 작곡가와 훌륭한 피아니스트 아내,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외눈박이 물고기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혼자서는 살수없어 항상 둘이 붙어다닌다는 그 물고기.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이로인해 더욱 빛나는지도 모른다. 슈만은 그의 피아노 스승 '비크'에게서 피아니스트로의 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클라라는 겨우 10살을 넘었을 때였다. 클라라는 어렸을때부터 아버지 비크로 부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알파벳을 배우기 전부터 악보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열성적인 아버지인가? 하지만 그녀의 어린시절부터의 엄격한 음악교육은 슈만 부인이 되어서 그를 돕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초기에는 그의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쳐 법정에까지 가는 사태를 초래하지만 끝내 이겨내고 둘을 결혼을 하게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클라라에게 보내는 슈만의 편지를 가로채기도 하고 슈만과 결혼하면 그녀의 재산을 빼앗겠다는 협박을 하기도한다. (음악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조금 치사한 아버지다) 둘의 삶은 바로 두 음악가, 작곡가와 연주가의 결합이다. 한획을 긋고있는 두 위대한 음악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살아간다는 것은 음악사에 있어서 유래를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다. 음악사의 이야기에서 이런류의 사랑은 얼마가지 않아서 파경을 맞이하는 예가 많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더욱 빛이나는 것이다. '슈만과 클라라' 이 두사람의 사랑은 그들의 개인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이 가지는 (베토벤이 그의 교향곡 '힙창'부르짖으려 한) 사랑과 화합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것이다. 요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만 뛰어나도 다른 사람과의 타협을 멸시한다. 분명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뚜렷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진정 예술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것이다. '벼는 읽을 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옛말이 있지않는가. 뛰어날수록 머리를 숙이고 남의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아량을 가졌으면한다. 그렇다고 나의 음악적 주관에 흠집이 가는것은 결코 아닐것이다. 언제나 옳고 그름은 시간이 판별해 주지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