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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ie-group 원문보기 글쓴이: dhk!!

< 달리, 나르시스의 변모, 1937 >
아울러 달걀 역시 쉽게 깨질 수 있는 허망한 환상을 상징하는 것이고, 달걀에게 수선화가 개화한 것은, 나르키소스의 자기애가 실은 자기 환상에 불과하며 곧 자기기만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지독한 나르키소스였던 달리 역시 자기애가 자기 파괴를 이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은 아닐까.

<Nicolas Poussin, Echo and Narcissus, 1628 - 1630
Oil on canvas, 29 1/8 x 39 1/4 inches (74 x 100 cm)
Musee du Louvre, Paris, France>

<John William Waterhouse,Echo and Narcissus, c.1903, oil on canvas,
Walker Art Gallery at Liverpool >
<william waterhouse, 나르키소스>
<Francesco Curradi, 샘가의 나르키소스>
윤동주의 시를 보면 이를 잘 확인하게 된다. 이 시는 나르키소스가 물에 자신을 비춘 것처럼 물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작품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조용훈의 <에로스와 타나토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