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재앙(再災殃)의 기술
이 혜 경*
1.
재난을 어떻게 예술로 전환하는가?
오늘날은 그 과정이 자동적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한다? 1년 이내에 런던의 어느 극장에서 상연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 암살된다? 책 또는 영화 또는 영화화된 책 또는 책으로 된 영화가 나온다. 전쟁? 소설가들이 몰려든다.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 시인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①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 물론 이번의 재난도 이해해야 한다. ②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상상해야 하고, 따라서 상상 예술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③이 사건, 즉 이 재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최소한일망정 그것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 즉 이 대자연의 광적인 행위, 이 광란의 순간이 왜 발생했는가? 자, 적어도 이 재난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결국, <예술을 위해> 재난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알기로 ④그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삭발을 했다. 그는 누구도 만날 수 없도록 삭발을 하고, 화실에 처박혔다가 ⑤그의 걸작을 끝내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것이 사실의 전모인가?
위 글에서 ④그 사람은 루앙 출신의 프랑스 화가 Jean Louis André Théodore Géricault이다. 1791년에 태어나 1824년에 숨을 거뒀으니 요절한 셈이다. 흔히들 이 제리코를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화가로 낭만주의 회화의 창시자라 일컫는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그의 생애나 화풍보다는 그가 그린 한 점의 그림에 머무른다. ⑤그의 걸작은 1819년경에 그려져 루브르의 한 벽면에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The Raft of the Medusa이다. 캔버스에 유채를 사용해 세로 491cm, 가로 716cm의 대작으로 제작된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의 영향과 미켈란젤로의 영향으로 웅대한 스케일의 역동적인 그림을 그렸던 제리코의 대표작이다. 치밀한 인체들의 포즈들과 절망 속에서 수평선 멀리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리다 환호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그림은 파도와 뗏목의 흔들림, 구름의 번지는 모습, 근육의 다양한 표현이 세세히 수용되어 제리코의 치밀한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시체 수용소에 가서 시체를 스케치하기도 했으며 마음을 다지기 위해 삭발을 하고 화실에 처박혔다. 화면을 지배하는 비극적인 상황은 제리코의 낭만적 상상력에 의해 더욱 고조된다.
그렇다면 어떤 일, 도대체 어떤 사건이 이 걸작을 탄생하게끔 했을까? ③이 사건은 1816년 6월 17일, 프리깃함, 코르벳함, 플루트선 그리고 브릭형 쌍돛배 한 척으로 이루어진 모두 네 척의 배에 나누어 365명을 승선시키고 엑스 섬에서 출항했던 프랑스의 원정대로부터 비롯된다. 목적지는 세네갈이었다. 하지만 그 중 프리깃함이 암초에 부딪혀 ‘매우 맑은 날씨에 고요한 바다에서 좌초’(이 책, 164쪽)된다. 배에 탔던 149명은 급히 만든 뗏목에 오른다. 12일간의 표류 끝에 범선 아르고호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생존자는 15명뿐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극도의 기아와 정신착란 때문에 인육을 먹는 끔찍한 사태까지 일으키게 된다. 제리코는 뗏목 위의 생존자들이 파도 사이의 구조선을 보고 미칠 듯 기뻐하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죽은 자나 죽기 직전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들의 축 늘어진 몸에서 시작해 미친 듯이 헝겊을 흔드는 흑인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군상에 이르기까지 이 그림은 그 이전의 화가들이 취급하지 않던 인간의 극한 상황을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2.
②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상상해야 한다.
그것의 ‘이해’와 ‘상상’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여기서 줄리언 반스는『10½장으로 쓴 세계역사』의 전부를 직접 ③이 사건에서 취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사건에 기인한 재앙에 기초한 ‘그림’에 기대어 소설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 의할 때 이 소설은 사건의 단순한 기술된 복원이며, 오래된 회화의 해설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재앙을 다시 해석한, 즉 재해석한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이 지니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재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모습은 인위적인 힘에 의해서도, 눈앞에 펼쳐진 자연적인 재해로도, 또 설명될 수 없는-이해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섭리에 의해서도 발현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형태의 재앙은 곧 인간에 의해 체화되면서 그 궁극적인 실체를 등장시킨다. 만약, 그러한 재앙에 인간이 직접적으로 개입된다면 바로 그에 맞닥뜨린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시원적 행태의 전형으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상태에 놓여 최후로 발현된 그들의 실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시도된다. 따라서 재앙을 맞으매 제 1차적인 반응으로 등장하는 ‘두려움’을 해석할 때도 더욱 완곡하고 완화된 새로운 심리학의 이론을 빌린다. 가령, 두려움은 대체로 실제 위험에 의해 나타나는 정상적인 반응을 수반하는 불쾌한 느낌으로 정의하는 것이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진화심리학에서의 이러한 두려움은 일반적으로 실제 위험에 비해 강도가 너무 큰 공포증(phobia)과는 구별되며,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두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두려움은 개체가 위험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인 진화과정의 산물이고, 명백한 생존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이는 현재 존재하거나 임박한 위험을 인지함으로써 유발되는 감정이자, 적절한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사람들을 긴장시킴으로써 자연조건 하에서 오래 생존할 수 있도록 하고, 위험에 직면했을 때 즉각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하며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적과 투쟁하고 주의를 기울여 운전하거나 낙하산에서 안전하게 강하하거나 또는 시험을 잘 준비하고, 혹평하는 청중 앞에서 말을 잘 하도록 하며, 등산할 때 안전발판을 착용토록 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두려움에 빚진 인간은 어떤 경우 위험에 대한 신호로서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그런데 공포는 인간이 가진 생존기능으로 작용해서 위험자원을 처리하도록 한다. 역설적으로 공포는 두려움이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처한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근원에 자리잡은 ‘두려움’의 직관적 성질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더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인간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제 사회가 다함께 직접적으로 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른바 ‘인간안보’에 관한 관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주권에 기초한 이 개념에 의하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공포와 궁핍에서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한다. 즉 인간안보는 경제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적절한 수준의 삶의 질, 그리고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보장을 뜻하는 것으로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 필요(basic needs)가 충족되는 것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견고한 평화와 안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인권, 자유, 법치주의, 사회적 형평성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그것’을 위해 그것을 ‘이해’하고 ‘상상’하면서 그것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더 큰 하나의 사건에서 그보다 작은 사건들을 끌어들여 바로 그 사건을 이해하고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해와 상상은 그 밑바탕에 가라앉은 긍정적인 침전물만을 추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림’처럼 들여다보는 것이다.
뗏목은 잘 만들어졌고, 보트에 탈 사람들의 자리도 배정되었고, 식량도 준비되었다. 새벽이 되자 선창에는 물이 2미터 70센티미터까지 차 올랐고, 펌프는 가동되지 않아서 배를 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잘 짜여진 계획에 금방 무질서가 판을 쳤다. 자리 배정이 무시되었고, 식량은 부주의하게 다루어져 그냥 잊고 떠나거나 물 속에 빠졌다. (165쪽).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각자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달리 해석했다. 프랑스에서 흔히 보이는 종류의 하얀 나비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 나타나 퍼드덕거리다가 돛에 앉았다. 굶주림에 미친 어떤 자들에게는 이것도 한입 먹거리가 되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이 거의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머리 위에 나비가 찾아와 경쾌하게 움직이는 것은 지독한 조롱으로 보였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단순한 나비가 하나의 징후, 노아의 비둘기처럼 하얀 하늘의 사자로 보였다. 신의 어떤 심부름꾼을 인정치 않는 회의적인 사람들까지도 나비는 마른땅에서 먼 거리를 날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희망을 가졌다. (171쪽).
‘그러나 마른 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반란이 있었고(167쪽), 정신 착란증은 불행한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었으며(168쪽), 사람 고기를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우는 사람들에, 인육을 조리해서 먹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싱싱한 인육의 공급도 필요했다(169쪽). 극심한 절망감이 지배하는 가운데 격론을 벌이고 나서 건강한 열 다섯 명 사이에서 합의된 것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 병든 동지들은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170쪽).
그들은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길을 떠나 법치를 구가하려 했고(가령, 보트에 탈 사람들의 자리 배정 같은), 형평을 생각했지만(결국 그로 인해 희생될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은 도외시 된 채) 재앙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잔인한 희생 뒤에 마지막 15명의 생존자들은 혹시 밧줄이나 나무를 자를 필요가 있을지 몰라 사브르 군도 하나만을 남기고 모든 무기를 물 속에 던져 버렸고,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마지막 생존자들의 옳은 선택이 되었다. 육군 사관 한 사람이 레몬 하나를 발견해서 순전히 자기 몫으로 챙기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격렬한 요구를 받고서 얻은 것은 자신의 이기적 행동이 얼마나 위험했는가 하는 순간의 안도뿐이었다. 발견된 30쪽의 마늘로 더 많은 분쟁이 생기는 바람에 모든 무기를 버리지 않았다면 다시 한 번 피를 흘렸을 것이다.
재앙은 곳곳에서 출몰했다. 소설은 그렇다. 그렇다면 제리코가 그린 것은? 이 답을 위해서 그가 그리지 않은 것을 보자.
ⅰ. 메두사호가 좌초되는 모습
ⅱ. 예인 밧줄을 팽개치고 뗏목을 포기했던 순간
ⅲ. 밤사이의 반란
ⅳ. 불가피했던 인육식
ⅴ. 자기 방위적 대량 살육
ⅵ. 나비의 출현
ⅶ. 허리, 또는 장딴지, 또는 발목까지 물이 차 올랐던 생존자들의 모습
ⅷ. 실제 구조 순간
바꾸어 말하면, 그의 첫 번째 관심은 ⅰ) 정치적, ⅱ) 상징적, ⅲ) 연극적, ⅳ) 충격적, ⅴ) 전율적, ⅵ) 감상적, ⅶ) 사실 기록적 또는 ⅷ) 직접적인 그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177쪽).
이렇게 재난은 예술화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재난을 줄이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재난을 풀어놓은 것이고, 확대시키는 것이고, 설명하는 것이다. 재난은 예술이 되었다. 결국 그것이 재난의 존재 이유이다(192쪽). 재앙은 그려졌고, 그려진 재앙은 기술되었고, 기술된 재앙은 이야기가 되었다. 적어도 작품 속에서 재앙은 해석되었고, 그 인과의 과정은 살피지 않았다. 정작 기록됨으로 말미암아(이 소설) 재앙은 사실로, 직접적으로 유발된 인간 행동의 촉진제로 기능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는 개인주권, 혹은 생존 가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히려 이를 잃게 만드는 연이은 도미노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시대는 그랬다.
3.
다시 소설의 윤곽을 훑어보자.『10½장으로 쓴 세계역사』는 줄리언 반스의 가장 두드러진 매직 리얼리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46년에 태어난 줄리언 반스는 1980년에 첫 소설『메트로랜드』를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10권의 장편소설, 각각 2권의 단편집과 수상집, 그리고 아내의 성을 차용한 필명 단 카바나그로 발표한 4권의 추리소설을 쓴 영국의 현역 작가이다.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소설들과 단편들은 무엇보다도 사실과 공상의 퓨전 - 매직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포스트모던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9년에 출판된 이후 그 형식상의 창의성 때문에 높은 평가와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삽입장”까지 모두 11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순전한 허구는 2장과, 4장, 10장뿐이고, 나머지는 -지나치게 단정적이기는 하지만 - 에세이 또는 예술 평론이다.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 이 소설은 각 장이 어느 면에서는 독립적으로 기술되어 그 명칭이 무색할 정도지만,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돋보이게 만드는 면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1인칭과 3인칭, 게다가 동물 내레이터를 혼용하고 스타일도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비롯 패러디, 서간체, 여담, 논술 등 다양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각 장마다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어 주요 인물이 없고, 따라서 하나의 목소리가 없으며 모든 새로운 장이 앞의 장 또는 뒤의 장과 분명한 연관 없이 새로운 장소와 시간을 설정하고 있어서 하나의 플롯은 물론 이중의 플롯도 없다. 따라서 스토리 자체가 없는 셈이다. 물론 이미 앞선 논의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글의 텍스트는 제5장「난파」에만 집중된다. 그렇다고 이 독립된 별개의 장이 이 같은 특성을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난파」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 부분은 앞에서 기술한 19세기 초 서아프리카 해안 대서양에서 있었던 프랑스 함대 <메두사호>의 난파사건에 대한 기술이고, 뒷부분은 난파 장면에 대한 프랑스의 화가 제리코의 그림 “난파 장면”에 대한 분석과 약사이다.
전자에서는 1816년 메두사호의 난파를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후자에서는 1819년에 완성된 일반적으로 <메두사호의 뗏목>으로 알려져 있는 제리코의 위대한 그림 “난파 장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스는 이 글의 모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재난을 어떻게 예술로 전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속해서 아주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제리코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반스는 화가 제리코가 필요에 따라 사실의 세부를 왜곡하고, “인생에의 충실”을 “예술에의 충실”로 대치하고 있음을 규명하고 있다.
그림은 1819년에 완성되었다.
프랑스 파리의 살롱 미술전시회 3일 전, 1819년 8월 28일 루이 18세가 그 그림을 살펴보고 그 화가에게 말한 것을,『모니퇴르 위니베르셀』지는 <작품을 평가함과 동시에 화가를 격려하는 멋들어진 말씀 중의 하나>라고 칭했다. 왕은 <제리코 씨, 당신의 난파 그림은 참사가 아닌 것이 분명하오>라고 말했다.
시작은 사실적이었다. 화가는 사비니와 코레아르의 기록을 읽고, 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 사건에 대한 관련 서류들을 모았다. 메두사호에서 살아남은 목수를 찾아내어, 진짜 뗏목의 축소모형을 만들도록 했다. 모형 위에 생존자들을 나타내는 밀랍 인형을 배치했다. (……) 완성된 그림에는 식별이 가능한 사비니, 코레아르 그리고 목수의 초상들이 들어가 있다(이와 같이 자신들의 고통 재현에 직접 모델로 앉아 있는 것에 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176쪽).
이 같은 기술은 “예술에의 충실”을 위한 인생에의 충실을 담보하는 듯한 사실의 채집에 비중을 두는 작가의 두려운 고충이며, 비록 반스의 “보고서” 같은 인상을 풍겨주지만 이는 곧 반스의 제리코에 대한 또 다른 헌사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인생이 없듯이 영원한 예술(작품)이 없다는 어쩌면 비틀린 듯한 이러한 역설적 헌사는 오히려 재앙의 속성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은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을 비껴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이었고, 상징적이었고, 연극적이었지만 직접적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자신들의 고통 재현에 직접 모델로 앉아있는 느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의 전편에 우화하고 있듯이 이것은 노아로부터 시작된다. 즉, 홍수의 기간이 훨씬 더 길었음에도 밤낮 40일로 축소한 일이라든가, 방주가 사실은 선단이었지만 불과 300큐빗밖에 안 되는 한 척의 배로 축소된 것도 “예술에의 충실”을 위해 “인생에의 충실”을 버린 것이다. 고래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요나의 신화가 사실이 되듯 <난파>의 사실은 신화로 바뀐다. ‘세월이 가면 이야기는 용해되어 하나의 형태, 색깔, 느낌이 되고 만다.’(186쪽). 그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림은 역사의 닻에서 빠져나갔다. 이 그림은 이제 <메두사호의 뗏목>이 아님은 물론 “난파 장면”도 아니다. 우리는 그 운명의 배에서 벌어진 엄청난 불행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우리는 도저히 그 수난자들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우리가 되어 버린다.’(192쪽). 결국 이렇게 재난은 예술이 된다. 어쩌면 이것이 재난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허구화하고 역사는 허구적 신화 창조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4.
그럼, 그는 무엇을 그렸나? 그가 그렸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상의 눈으로 들여다보자. 우리는 프랑스 해군의 역사를 모른 채「난파 장면」을 음미한다. 우리는 수평선 위의 작은 배에 환호하는 뗏목 위의 생존자들을 본다(우리는 멀리 있는 구조선에 나비를 그렸을 경우의 크기보다 더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첫 추측은 이 그림이 구조하러 오는 배를 목격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부분적으로 행복한 결말을 끊임없이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의 어떤 의식 수준에서는 다음 질문, 즉 뗏목 위의 사람들이 구조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알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81~182쪽, 밑줄은 인용자).
작가는 현실을 넘어선 하나의 신화, 인간의 바람,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작품을 위해 각색했다. 나아가 사건의 토대가 되며 시대적 설정에 부여된, 그러면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현재의 기술로서의 역사 또한 바로 그 사실을 각색한 하나의 허구라고 잇는다. 여기에는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보이지만 어쩌면 이는 그동안의 편력을 반증하는 하나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재앙을 소재로 이미 표현된 하나의 예술 작품을, 흥미롭게도 그러한 재앙을 재기술하고, 이어서 전혀 다른 시대의(그것도 ‘역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전혀 다른 장르의 표현물을 재해석한 이러한 시도는 재재앙(再災殃)의 담론(談論)이라 부를 만 하다. 재앙의 겹침이나 재앙의 직접적 현출이 아니라 1차적 재앙의 해석물에 대한 2차적 해석이자 그 해석에 바탕을 둔 원 재앙의 재해석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재앙 체험은 집단적이고 격렬한 반응을 낳았다는 점에서 “재난의 해석학”을 필요로 한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지진과 가뭄, 메뚜기 등의 재난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야훼의 무서운 심판으로 재해석되었다. 16세기를 전후한 (……) 천재지변과 전염병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은 악마의 사주를 받은 마녀에 대한 광기 어린 사냥으로 나타났다. (……) 재앙의 경험이 회개와 주술의 강화로 내연하거나, 희생양을 찾아 외파했지만, 근대 이전 시기의 재앙에 대한 주된 반응은 종교적이라는 데서 공통적이다.’
이 소설 또한 어느 면에서는 이러한 면을 답습한다. 전체적으로 보이는 성서적 우화가 그러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5장「난파」에서도 이러한 면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제리코의 그림, <난파 장면>에서만큼은 애써 그러한 반응을 취하지 않으려고 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난파 장면>에 대한 세 가지 반응 :
a) 살롱의 비평가들은 그 그림이 관련된 사건은 잘 알 수 있지만, 희생자들의 국적, 그 비극이 일어난 곳의 하늘, 그 모든 것이 일어난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내적 증거가 없다고 불평했다. 물론, 이것이 문제였다.
b) 1855년 들라크루아는 거의 40년 전에 메두사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것이 내게 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화실을 나왔을 때 나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생 제르망 교외 맨 끝의 플랑슈 거리까지 미친 사람처럼 계속 달렸다.”
c) 제리코는 임종의 자리에서 그 그림을 언급한 어떤 사람에 응답하여 말했다. “Bah, une vignette(흥, 하나의 소품 삽화야)!” (194~195쪽).
재앙은 피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표현된 재앙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①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연극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감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서 충격적이고 전율적으로 받아들이되 ‘격렬한 반응’ 속에서 때로는 회개의 내연으로, 그리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외파로 극복해야 한다. 물론,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여운의 언덕 위에서 자리 잡은 예술의 속성까지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이제 반스의 견해를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이제 저기에 그림이 있다. 뗏목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잡아 변형시키고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해서, 거창하고 무게 실린 이미지로 바뀌었다가, 그 다음 니스칠을 하고, 액자에 넣고, 유리를 끼워 유명한 화랑에 변함없이 항상 걸려서, 우리의 인간 조건을 조명하고 있다. 저것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자, 아니다. 사람들은 죽고, 뗏목은 썩고, 예술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
문학, 문명의 공존을 위한 힘
- 안정효의 『하얀 전쟁』을 중심으로
이 대 영*
Ⅰ. 이념의 충돌과 문명의 공존
인문학의 화두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재앙담론(災殃談論)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세계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환경오염과 그 재앙, 인종, 종파 간의 분쟁과 내적 결절이 극단화 내지 장기화 되고 있음에 따른 지구촌 사람들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생각에 동조하여 문명의 다원주의를 종식시키고 단일문명국가를 세워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서구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유럽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이 동맹을 맺을 악몽의 현실 또는 미래의 흐름에 동참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2001년 미국 뉴욕에서의 9. 11 테러와 뒤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인가 아니면 문명의 충돌인가?
헌팅턴이 갈래지은 문명과, 그 정체성 마련을 위한 ‘자리 찾기’의 결론에 따르면 한국의 문명은 유교문명권인 중국문명에 통합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지구화’ 시대로 명명되는 최근의 국제정세는 세계의 여러 문명들이 언제든지 연합되거나 점진적으로 통합될 잠재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각 문명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 유지를 위한 ‘자리 찾기’의 노력에 의해 그 시기가 유보되거나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민족적 전통성을 지니는 즉, 고도로 조직된 문명들이 새로운 문명이나 그 질서에 동질화되거나 일체화 된 문명적 성격으로 통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때 그때의 국제정서와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에너지의 잠재성에 따르는 비교우위에 의해 그 특성을 드러내거나 변화의 속도를 조절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재앙담론’을 이야기 할 때, 헌팅턴을 먼저 언급하게 되는 것은 그가 동서진영 간의 냉전종식 이후에, 향후 세계정세의 변화를 해석하는 ‘틀’로 ‘문명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세계평화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라고 보고 그 해결 방안으로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를 강조한 것이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이다.
이후, 헌팅턴의 문명에 대한 개념과 분류 그리고 그 방법론에 관한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이론가가 바로 『문명의 공존』을 저술한 하랄트 뮐러(Harald Müller)이다. 그는 헌팅턴이 ‘문명’을 행위를 가리키는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그 개념을 독일의 전통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종교가 결정적인 척도가 되는 가치체계로 축소시켰다고 비판한다. 문명을 정의함에 기술의 발전단계, 경제방식, 통치체계, 사회구조, 법체계, 가치체계 등을 포함시켜야 했다는 주장이다. 문명은 물질적 특성을 갖지 않으며 정치 행위가 아니기에 문명의 충돌은 은유에 불과할 뿐 가능한 정치현실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뮐러의 주장은 지구화 시대에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국제관계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전쟁’ 또는 ‘전쟁문학’을 논하는 화두에서 ‘문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전쟁이 문명의 충돌 또는 이데올로기 충돌의 극한적 표출양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극한상황을 주제화하고 있는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하랄트 뮐러식 ‘문명’의 요소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전쟁은 이념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충돌로 볼 수 있을까? 또한, 전쟁은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며 문명의 변화에 그 주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Ⅱ. 하얀 전쟁, 주체성의 혼란
우리가 월남전을 연상할 때면 뇌리 속에 방기했던 몇 개의 색채감각을 불러 모아야 한다.
고엽제의 백색가루와 핏빛으로 물든 밀림, 흑인병사들의 하얀 치아와 광택어린 검은 얼굴과 같은 색채들 말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감각을 불러 모아 영상 또는 활자를 통해 일그러진 휴머니즘을 재건하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밀림 속에 누워 있는 젊은 영혼들을 부활시키기에는 덧없는 몸짓 또는 진실의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전쟁으로 인한 존재들의 균열과 죽은 영혼을 위무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은 문명의 충돌이 아닌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인간적 노력이었기에 격려를 보낼만하다.
전쟁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영토, 경제, 종교, 인종, 이데올로기, 통치자의 탐욕 등이 그것이다. 전쟁은 일상성을 전복시키는 혼돈의 반복 그 자체이다. 일상성의 단절 및 파괴는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 하고 이는 곧 문명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는 안정효의『하얀 전쟁』을 통하여 일상성의 단절로 끝없이 흔들리는 주체들의 일탈을 목격한다. 그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치유불능의 창백한 몸부림이기까지 하다.
1. 이념의 충돌
월남전은 물론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언급하기 이전에 발생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이념이 충돌한 전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듯 월남전 또한 그 요인에 대해 설명하기가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기원전 3C로부터 시작된 중국에 의한 천 여 년의 통치, 1884년 프랑스 식민지령에 의한 100 여 년의 속박, 1945년 일본의 식민통치까지 경험해야 했던 월남은 어의 그대로 지난한 역사를 간직한 국가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9월, 호지명(胡志明)에 의해 월남민주공화국이 건국되었음에도 월남은 여전히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었다. 이에 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호지명의 독립운동은 동서진영의 냉전을 야기 시켜 결국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리전의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8년간의 전쟁 중에 12만여 명의 사망자와 300~400만여 명의 부상자를 낸 비극의 밀림 속으로 우리 또한 햇빛 찬란한‘자유’를 외치며 전사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유 속에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애국이라는 용어에 헌납하고 철저히 국가와 사회로부터 타자화 된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전형인이 바로 『하얀 전쟁』의 등장인물들이다.
『하얀 전쟁』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중 이념과 권력이라는 감시의 틀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스럽게 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월남인과 파월군인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의식, 이념의 허구성, 독재정권의 국민기만 행위, 국가 또는 개인의 월남참전 목적, 인권유린 행태, 미국에 대한 비판 등이 작중인물의 발화를 통해 제재 없이 언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 전쟁』은 3부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다. 즉, 전쟁과 도시라는 부제가 붙은 1부는 과거와 현실의 시간적 교차 구성으로 전후 참전용사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월남전이 종식된 후 서울로 돌아 온 ‘나’와 변진수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여기에서의 ‘나’란 작가 자신일수도 있고 소설의 주동인물일 수도 있다. 월남참전 작가라는 사전 지식은 독자의 기대지평에 존재하는 현실성과 진실성을 제고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기에 ‘나’는 작가와 동질화 된다. 월남전에 자원입대한 작중인물들의 동기는 이념이나 문명의 충돌과 같은 고상하고 철학적인 사색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어떤 인간일까? 전쟁에서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약간의 영웅심리가 가미된 이런 호기심 때문>에 ‘나’는 파월 복무를 지원했다. 관념이 지배받던 시절에 ‘나’는 전쟁이란 것이 상반되는 두 사상이나 이념이 양쪽에 서서 벌이는 성스러운 투쟁이라 생각했다. 전쟁이란 욕망의 숭고하고 심오한 표현이며, 그 투쟁은 비극과 불행을 낳기는 해도 찬란한 승리와 이상의 실현을 위한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채무겸 상병은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 대학의 등록금을 마련하려 밀림을 선택했다. 김재오 상병은 월남전에 참여해 1년만 고생하면 돈을 모아 제대하여 귀향할 욕심으로 지원했다. 파월명령을 받으려 여덟 장의 혈서를 준비하는 필사적인 행동까지 보였다.
그러나 전쟁터란 자신의 운명과 생명에 대해 알 권리를 박탈당한 유형지이며, 부상병이 내는 짐승 같은 신음소리와 피를 보고 상어처럼 복수의 광증이 폭발하는 심리로 가득 찬 비극의 장소일 뿐이었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와 영광 따위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들이 침몰해 버리고, 설명은 할 수 있어도 용서는 안 되는 행위들이 발생한 과정만이 영혼의 커다란 얼룩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제1부, p.211) 전장은 썩어버린 자아가 흑색의 미래를 보며 전율하는 증오의 땅임을 체득하는 공간일 뿐이다.
전쟁의 무의미성을 자각한 채무겸 상병은 전쟁에서의 병사의 죽음을 보고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어느 나라를 위해서? 모리배들이 판치고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위해 서로 쿠테타경쟁을 벌이는 부패한 베트남을 위해서? 미국이 캄란만을 99년 동안 군사 기지로 쓰고 싶어하는 베트남 땅을 지키기 위해서? 전략적인 필요성 때문에 한국의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미국이 월남을 돕는다고 해서 저 병사들도 역시 월남의 군사독재를 돕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 때문이었나? 애국심? 애국심이란 무엇인가?(제2부, p.276)
참전에 대한 이유와 의의에 대해 존재가 회의할 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의식이 극한점에 이르렀을 때 ‘절망’에 이르게 된다. 키에르케고르의 언술대로, 그 절망이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에 채무겸 상병은 대열을 이탈하여 밀림 속으로 잠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전 중 베트콩이 버리고 간 아내와 두 아이들과 같이 찍은 젊은 월남인 사진을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그는 무엇을 위해, 어떤 필연성 때문에, 어떤 이상과 허상을 추구하려고 이 깊은 정글 속에서 숨어서 살았고, 얼마나 여러 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내의 따뜻한 젖가슴과 아이들의 미소를 생각했을까? 이 세상의 어떤 이념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식과, 사랑과, 인간성을 희생시켜도 좋을 만큼 숭고하다는 말인가?(제1부, p.247)
과거와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조차 없는 전장의 현실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그리워하는 것은 적이나 아군이나 인지상정의 정서물이다.
그렇다면 정작 전쟁의 당사자인 월남인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작가는 낫 띠엔 노인의 발화를 통하여 월남인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우린 이 땅에서, 우리들의 땅에서 외국인들 때문에 너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그들하고, 당신들하고 일체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프랑스와 중국과 영국은 우리들의 비옥한 땅을 탐내어 이 나라를 짓밟았고,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가 1945년 17도선을 사이에 두고 나라가 둘로 갈라진 처지이기는 했어도 평화가 찾아오려나 어설픈 기대를 가져 봤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질적인 정치이념이 남북에서 대결을 하게 되니까 또 다시 싸움이 불붙게 되었어요. 호치민이 1951년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 국경을 넘어 쳐내려오자, 한국의 전쟁과 인도지나 사태가 연결되어 전쟁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미국은 1952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던 터였으므로,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된 겁니다“(제1부, pp.97~98)
월남인들이 바라 본 외국인은 모두 조국을 지배하러 온 이방인들이다. 중국과 프랑스, 영국, 일본이 모두 그러하였기에 참전한 한국인 또한 예외일 수가 없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라는 자문 속에 애국심에 대한 개념이 정립될 수 없다. 그러기에 국가 간의 이데올르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목전에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동물적 본능과 적대의식만이 자리할 뿐이다.
그러나 월남전이 되었건 한국전이 되었건 간에 분명, 과거의 전쟁은 이념의 충돌에 의한 것이었다. 그 이념의 충돌이 과연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는 역사적 평가 작업을 통하여 준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2. 거대 담론과 조직의 횡포
전쟁은 전략과 전술에 의해 운용되는 국가 간의 무력충돌이다. 여기에는 전투력은 물론 경제력과 정치력 등이 총동원되는 다양한 힘겨루기 양상을 띤다. 전쟁이 발발하면 피아간에 그 명분 또는 사건의 합리화를 위해 고도의 심리전과 홍보전을 전개한다. 이에, 우리는 한 때 지식이 어떻게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와 결탁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합법화 시켜 나가며 담론의 힘을 행사해 나갔는가에 주목한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복합적인 힘을 창조하는 행위가 ‘글쓰기’이며, 이 복합적인 힘들의 권력투쟁의 장소를 ‘텍스트’로 보았던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의 이론에 영향 받은 바 크다. 이러한 사고는 이념의 대립이 첨예했던, 또는 권력의 담론(discourse)이 당대의 일반담론을 지배해나갔던 1950년대 한국의 전쟁문학을 고찰하는데 유용하기도 하다.
작가는『하얀 전쟁』을 통해 월남전을 주도했던 당시 위정자들의 지배담론 행위를 비판한다. 여기서 지배담론이란 전쟁 수행목적을 위한 일체의 의도적 담론행위, 즉 진실을 왜곡하는 담론행위를 말한다.
무겸과 수만 명의 다른 병사들을 이곳 싸움터로 보낸 박정희 정부는 언론과 다른 인쇄매체에게 한국군이 승승장구한다는 얘기만 보도하도록 허락하여 국민을 기만함으로써 안심시키고, 한국군 파월에 대한 지식층의 용병론이 대두되자 모든 비판을 금지시켜 병사들이 여기에서 정말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게 했다.(제2부, p.152)
신문이나 월남 통신란에는 이번 전투에서 베트콩을 5백 80명이나 사살했다는 제목이 시커먼 고딕활자로 두드러졌다. 아군도 2백 명이 죽었다는 내용은 어느 신문에도 없었다.(제1부, p.167)
‘지배담론’은 혼돈의 시대에 통용된다. 정체성을 상실한 사회, 주체성의 자리 찾기에 시간을 요구하는 사회, ‘타자화’가 범람하는 무질서 속에서의 지배담론은 곧 ‘권력’이며 존재를 위협하고 쇄뇌시키는 ‘힘’이다. 그러기에 타자화 된 존재는 현실직시 능력을 상실한다. 많은 이들이 승전보에 기뻐하지만 전쟁의 이유가 무엇인지, 연이어지는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은 끝나지 않는지, 희생자의 수는 얼마이며 그들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휴머니즘적 사유에 무감각하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무의미성이기도 하다. 이에 소설의 주인공인 한기주는 “우리들은 영광의 창조를 위해 진실을 잃었다”고 자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냉정함과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부의 지배담론을 통한 국민기만 행위는 지속된다.
국방부는 고엽제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정글의 열대병’이라 진실을 호도하고 종전된 지 20년이 지나 전사자 통계를 밝힌다. 이에 한기주는 월남전에 참가했던 병사들을 ‘나라에서 내버린 사람들’이라 자조하게 되는 것이다.
Ⅲ. 자기소외와 주체성의 자리 찾기
전쟁은 개인과 조직의 ‘일상성’을 박탈하는 가장 극적인 예이다. 코지크(Karel Kosik)의 정의에 따르면 ‘일상성’이란 “인간이 기계적인 본능에 따라 친숙한 느낌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규칙적인 리듬을 가진 세계” 이다. 반복의 가능성을 지닌 일상성은 개인적 삶의 진행을 지배하는 시간의 조직이며 리듬이다. 이러한 일상성을 강제적으로 단절시키는 전쟁은 종전 후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참전 군인들은 일상성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의 혼란과 자기소외 양상을 경험한다.
한번 전쟁을 겪은 사람에게는 그 전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성숙이 시작되는 시기에 의식의 밑바닥으로 스며드는 전쟁터에서의 경험, 감각을 마비시키는 그런 경험은 깨어나면 홀가분하게 없어지는 악몽과는 같지 않다. 인간의 과거란 잇몸에 낀 찐득거리는 더러움이나 마찬가지로 불쾌하고 끈질기다. 과거는 현재를 파먹고 덮어 버리는 침전물이다. 그래서 과거에 겪은 전쟁은 현재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다. 전쟁에 때문에 타의해 의해 파괴된 영혼은 십 년이 지나도 본디 상태로 재생되지 못하는 까닭에서이다.(제1부, p.32)
『하얀 전쟁』에서, 변진수와 한기주 같은 이들이 극심한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바다낚시 후 귀가하여 받은 변진수의 전화는 과거와 현재, 도시와 밀림, 군대와 사회라는 이중적 경계를 허문다. 허물어졌다기 보다는 참전 후유증으로 무디어진 현실감각이 과거를 지향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 출판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기주는 회사원들로부터 소외되어 판매기획 촉진부장으로 발령이 난 후 다음과 같이 자신을 진단 한다.
전화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않고 인간의 목소리가 전혀 찾아들지 않는 밀폐 공간, 협실 공포증, 변진수는 만장굴에 들어갔더니 무서웠다고 했다. 밤에 누가 아무도 모르게 이 방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면? 늘 엉뚱한 곳에서, 남의 땅에서만 살아온 나, 누구더러 점심을 먹으러 같이 나가자고 말을 붙이기도 거북해서 요즈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이 방에 앉아 혼자 먹는다. 혹시 누가 들어와서 보고는 판기촉 부장이 째째하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혼자 먹더라고 소문을 퍼뜨릴까 삽시간에 후루룩 먹어 치우고는 창문을 열어 놓고 논바닥의 참새를 쫓듯 두 팔을 휘저어 반찬 냄새를 몰아내고.(제1부, p.285)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생활은 의식의 칩거현상을 야기하고 그를 더욱 고립시킨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한없는 과거의 비단실로 미이라처럼 칭칭 몸을 감고 가사상태의 정체된 삶을 이어가는 누에고치’라 자조한다.
한기주가 느끼는 ‘너무나 응집된 자아의식’, ‘철갑으로 차단된 자아’의 형성요인은 역시 전쟁이다. 심지어 그는 참전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조차 할 수 없다. 그의 아내가 한기주에게 이혼을 제안한 이유는 성생활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는 무수한 배선장치가 있는 사람’처럼 아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일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한기주에게 부부관계나 사회조직원 간의 유대를 위한 노력이란 무겁고 거추장스런 짐이 될 뿐이다. 그러기에 한기주 자신조차도 ‘일상인이 아닌 특이한 존재로 되어버린 나’라고 생각한다.
한기주 일병이 경험하고 있는 참전의 후유증은 더욱 심각하다.
이상하게도 그 무렵에 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베트콩이고, 집안이나 극장 창고에 있는 모든 물건에 베트콩의 부비트랩이 장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난 페인트 깡통이나 붓이나 각목을 잘못 만지면 쾅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곤 했어요. 어두컴컴한 골목이나 사람이 붐비는 장터 같은 곳에 가면 누군가 뒤에서 나한테 살그머니 접근해 등 뒤에서 칼로 찌를 것 같았고요.(제1부, p.379)
귀국 후 변진수 일병은 일상성을 되찾는데 실패한다. 피해망상증과 편집증,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는가 하면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쌓여있다. ‘나’는 결국 영혼의 유형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변진수의 끝없는 형벌을 종식시키기 위해 그를 사살한다. 이러한 전쟁의 후유증은 국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월남인들이 겪는 일상성의 파괴현상과 조직의 폭력성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던 인물들처럼, 월남에서는 혁명가들만이 모든 것을 독점하여 새로운 유산자로 등장하여 신흥 귀족계급이 되었다. 반면, 월남군 대령 출신인 어떤 사람은 수용소에서 8년 동안 복역을 하고 나와서도 국가에서 일자리를 주지 않아 이발사를 하고 있으며, 남쪽 정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 또한 이발사나 운전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샹’은 한국군 부대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있다. 이는 경제적인 차별대우를 통해 조직력을 약화시키려는 국책에 의한 것이다. 또한 라이 따이한과 그의 어머니들 또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글 속에서 은신하다 월남인처럼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채무겸 상병은 오랜 동안 자신의 본래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언어의 세월을 한 세대 뛰어넘어 조국을 의식하고 있으며,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전쟁의 ‘적’은 전투에 참가한 적군이 아니다. “적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적이라고 오인해서 죽이려고 싸우게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 이었고, “동족을 갈라놓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그 전쟁의 지휘권으로부터 생겨나는 권력을 누리려했던 위정자들, 안보논리의 가면을 쓰고 독재 잔치를 벌였던 군사 정치가들” 이었다. 이들은 자기소외로부터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참전군인들 또는 전쟁 피해자들의 눈물나는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모르는 냉혈인간들이다. 그러기에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Ⅳ. 나아가기
중동에서 여러 비보들이 날아들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은 연일 레바논에 포격을 퍼붓고 있어 제2의 중동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라는 헌팅턴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는 문명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각 문명에서 ‘동질적 요소'를 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과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공습을 지켜보면서, 테러에 대한 보복이 전쟁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또한 근래 국가간의 분쟁이 이데올르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문명간의 충돌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게 한다. 그러나 문명이 되었건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되었건 간에 분쟁의 이면에는 위정자와 정치군인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에 가담했던 존재들은 그 후유증으로 일상성을 박탈당하고 자기소외를 경험하고 있음도 보아왔다.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최신식 무기에 두려워하고 희생을 당하는 ‘문명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보라는 근대적 종교에 쇄뇌 되어 또 다른 진보를 꿈꾸는 중이다. 왜냐하면 문명에 대한 개안과 진보는 우리를 굶주림으로부터 안식을 주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일고 있는 ‘인류의 진화는 정말 진보의 역사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진지한 성찰을 요하게 된다. 그리고 가치관, 제도, 관행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문명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다는 헌팅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게 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문명과 문명이 공존할 수 있는 대안사회에 대한 모색은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쟁은 지속되고 새로운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하얀 전쟁』의 한진수 병장이나 죽은 변진수 일병을 찾아가야 그 대답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테러의 공포와 ‘맥도널드화’된 일상
― 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을 읽고
김 화 선*
1. 테러의 기억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동시다발적 테러는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면서 우리 모두를 불안과 혼돈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대통령은 ‘테러는 미국적 가치, 즉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였고 세계경제는 급격한 불황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상징이라 할 만한 세계무역센터의 붕괴와 미 국방부 펜타곤의 피습은 월러스틴의 언급대로 “장기적으로 진행될 투쟁의” 일화였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가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9․11 테러를 기점으로 그야말로 장기적인 투쟁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사건과 사고, 그보다 충격과 피해가 큰 대형참사와 자연재해 등과 맞물리면서 우리의 삶을 공포와 불안의 검은 수렁으로 끌고 갔으며, 그리하여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그야말로 ‘안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주장하는 ‘위험 사회’나 볼프강 소프스키의 ‘안전’의 원리가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상황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테러나 재앙의 문제가 단순히 현대적 삶에, 우리의 일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9․11테러가 장기적 투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면 문제는 일상에 침투한 테러의 공포가 서구적 근대화와 치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있을 터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이 『창작과 비평』 2005년 여름호에 발표된 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다.
김경욱의 단편소설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은 테러의 공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문제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우리의 삶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는 테러의 공포와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가 기필코 사수해야할 삶의 가치들을 말하고 있다. 이 글은 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재앙의 문제 이면에 감추어진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 맥도널드, ‘맥도널드화’를 향한 테러의 시작
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은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로 흘러들어간 형제에 의해 만들어져 120여 개국에서 3만개가 넘는 매장을 거느리게” 된 맥도널드 매장을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사수’하려는 직원들과 매니저의 좌충우돌 사건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맥도널드 매장에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된 스무 살의 여대생 ‘나’는 자본주의의 ‘신화’라 할 수 있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테러의 공포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우연히 발견된 괴 전단지는 자본주의의 ‘신화’로 인정받는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널드의 한 매장에 테러의 공포를 유포시킨다. 매장의 직원들이 처음 발견한 괴 전단지는 빗물에 젖어 “잉크가 번져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글자가 많았고 통째로 뭉개진 글자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곧 다시 발견된 전단지는 매장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우리의 요구
1. 제3세계 미성년자를 착취하지 마라.
2. 환경파괴를 즉각 중단하라.
3. 아동들의 건강을 해치지 마라.
이상의 요구를 묵살할 시에는 응분의 대가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 제3세계 해방전선
상상도 하지 못한 괴 전단지의 주체인 ‘제3세계 해방전선’은 매니저에 의해 불법테러단체로 규정되고 맥도널드 매장을 비상경계 태세로 전환시킨다.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처음 전단지를 두고 낱말 맞추기 퍼즐 게임을 즐기던 매장의 아르바이트생들의 태도도 온전한 전단지가 다시 발견되면서 급변한다.
테러라니. 그 자리에서 아연실색한 것은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나 영화에서나 보던 불타는 차량, 화염에 휩싸인 채 폭삭 주저앉는 건물, 구급차에 실려가는 부상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햄버거빵을 데우다가 쇠고기 패티를 굽다가 감자를 튀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계산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공격당한다는 상상은 즐겁지 않았다. 확정되지 않은 위협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욱 위협적이었다. 테러야말로 맥도널드 정신에 역행하는, 전혀 맥도널드화되지 않은 행동양식이 아닐 수 없었다.(205면)
매장의 직원들에게 테러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테러라는 단어 가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하는 것이지만, ‘나’를 포함한 맥도널드 매장의 직원들에게는 테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성을 지닌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제3세계 해방전선’이라는 단체가 실재하느냐의 여부는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밀려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예측불가능한 테러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온갖 사건, 사고를 현실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제3세계 해방전선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위험이 다시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테러야말로 “맥도널드화 되지 않은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맥도널드화 된 행동양식이란 무엇인가. 아래의 예문은 ‘맥도널드화’의 의미를 말해주는 동시에 “버거킹과 파자헛”도 아니고 “피트니스쎈터와 스타벅스”도 아닌, 왜 하필 맥도널드 매장이 테러의 공격 지점이 되고 있는가를 암시하고 있다.
뉴욕에서도 뻬이징에서도 모스끄바에서도 이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하루에만 전 세계에서 4천3백만 명이 드나드는 이 패스트푸드점의 영업 준비는 인종과 언어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단일한 과정으로 ‘표준화’되었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성별과 나이와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고객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균일한 맛의 햄버거를 먹고 역시 성별과 나이와 계급과 신분에 상관없이 뒤처리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했다. 햄버거를 먹고 나면 빌 게이츠도 실업자인 아버지도 스스로 쓰레기를 처리해야만 한다. 맥도널드의 상징인 황금아치 아래서 이런저런 ‘차이’는 무의미해져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기꺼이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다. (201면)
맥도널드는 자본주의와 근대주의가 결합된 삶의 양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페스트푸드점이다. 모든 차이를 지우고 “기꺼이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는 맥도널드 매장은 햄버거 하나로 모든 인종과 언어, 종교를 뛰어넘는다. 이미 전지구인의 입맛까지 점령해버린 표준화의 위력은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빛나는 황금아치를 보편적 미각의 상징으로 세운다.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는 ‘맥도널드화’란 근대화, 표준화의 원리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맥도널드 매장에 다가온 테러의 위협은 자본주의와 근대적 삶의 가치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묘한 역설이 숨어있다. 일명 쌍둥이 빌딩으로 통칭되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테러의 표적이 되었던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자본주의적 평등원리를 내세운 맥도널드 매장이 또 다른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는 문학적 현실은 작가에 의해 치밀하게 고안된 장치임에 틀림없는데, 맥도널드의 힘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 “위험마저도 맥도널드화”시키는 괴력을 발휘한다. 표준화, 규격화, 획일화의 원리가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하지만 매장의 직원들은 “맥도널드화 되지 않은 위협 앞에서 현저히 맥도널드화 되어”감으로써 그 위협마저도 예측가능한 일상의 현실로 만들고자 한다. 이런 맥도널드화 된 상황에서 “‘나’라는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었고 ‘우리’는 자신에게 부여됨 임무를 군말없이 감당해야 하는” 맥도널드화 된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소위 맥도널드화 되지 못한, 맥도널드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대의 삶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맥도널드화’된 삶의 비극
작가는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에서 맥도널드화 된 삶의 모습을 세 가지 층위에서 말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널드의 한국 매장에서 발생한 테러와 관련된 스토리가 그 하나라면, 아버지의 실직으로 시작된 가족의 맥도널드화가 두 번째이고. 주인공 ‘나’와 남자친구의 맥도널드화 된 연애 스토리가 세 번째 층위를 이루며 각각의 삶의 양태가 교묘히 연결되어 있다. 세 스토리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맥도널드의 황금아치에 가려진 그림자를 들춰내며 맥도널드화 된 삶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면 1) ‘맥도널드화’ 된 가족의 비극
그 무렵 맥도널드화 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우리집에서의 의사소통은 몇마디 말로 가능해졌다. 각자 자신의 현재를 추스르고 미래를 도모하기에 지친 나머지,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밥은?” “됐다.” 이런 식이었다. 맥도널드의 고객들이 그러하듯 아버지도 나도 자기의 끼니는 스스로 장만해 먹고 알아서 치워야 했다. 모든 가사노동은 특정한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각자의 필요와 처리능력에 맞게 분산되어 ‘효율적’으로 수행되었다. 엄마가 늘 쎄일즈 중이었기 때문인데 이런 광경은 아버지가 실직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7면)
장면 2) ‘맥도널드화’ 된 연애의 비극
남자친구의 대답은 언제나 ‘예측가능’했다. 데이트라고 해봐야 분식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비디오방이나 노래방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니 데이트 비용의 총액은 예외없이 2만원 안팎으로 ‘계산가능’했다. 게다가 자기는 시험준비로 일분일초가 아까우니 내가 만나러 오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참아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실직은 나의 직업관마저 바꿔놓아서 명예나 부보다는 안정이 최고라고 여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디오방이나 노래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내 몸을 더듬는 ‘자동화’된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스킨쉽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 자신의 억압된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데 골몰하는 남자친구의 태도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처음에는 불쾌했고 나중에는 절망스러웠다. (208면)
생산비 절감을 이유로 회사가 중국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나’의 아버지는 실직을 하게 된다. “실직과 동시에 평생의 운이 다한 것처럼 아버지의 삶은 내리막의 연속”이었고 “남동생은 고등학교 졸업장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입대해야 했고 엄마는 함께 꽃구경 단풍구경 다니던 친구들에게 정수기를 팔러 다녀야 했으며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199-200면) “그 ‘구조’라는 것”이 야기한 실직은 ‘나’의 가족 구조를 변화시켰고 입대한 남동생을 제외한 ‘나’의 가족은 급속히 맥도널드화 된다. 장면 1에서 말하고 있는 의사소통의 단절과 ‘효율적’인 가사분담은 결국 가족구성원을 맥도널드 매장의 고객으로 환치시키고, 가족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가족에게 남아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각자가 책임져야할 현실뿐이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며 고시원에 처박혀 있던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는 장면 2가 제시하고 있듯 언제나 정해진 코스를 밟는다.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예측 가능한 데이트는 결국 “남자친구의 성욕마저도 맥도널드화”시키고,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연애의 감정도 맥도널드식으로 코드화 된 성욕 앞에서 낭만성을 상실하고 철저히 현실화되는 또다른 비극이 탄생한다.
장면 1, 2는 “10밀리미터 두께로 다져진 쇠고기 패티”와 “17밀리미터 두께로 구워진 빵과 7.08그램의 양파와 14그램짜리 치즈와 냉동된 상태로 태평양을 건너온 양상추 한 장”으로 조립된 햄버거로 상징되는 맥도널드의 전지구화에 발맞추어 인간관계 역시 예측가능한 맥도널드화의 경로를 밟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일상은 우리 모두가 추측 가능하듯, 절망이 넘쳐나는 비극의 눈물로 얼룩져 있다.
4. 테러의 우스꽝스러움, 혹은 진지함
매니저와 크루들이 계획한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테러를 향한 예측할 수 없는 공포가 뜻밖의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희극적 상황으로 역전되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한국의 맥도널드 매장에서 언제든 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사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말하고 있다.
외국인은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포장지를 벗기고 햄버거빵을 들춰보았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외마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노 비프(No beef)! 오 마이 갓(Oh my God)!”
… (중간 생략) …
그 다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언어로 무슨 말인가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쏟아내면서 갑자기 륙쌕을 내려놓고 지퍼를 여는 것이었다. 그의 손길은 다급했다. 그때였다. 매장 전체가 뭔가에 떠밀리듯 진저리를 쳤다. 바로 옆으로 열차가 고속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건물이 진동했다. 빈 의자가 부르르 떨며 자리를 맴돌았고 탁자 위에 있던 종이컵이 넘어져 음료수가 쏟아졌다.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매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수당을 받은 우리는 매장을 버릴 수 없었다. 크루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집어들고 외국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 소화기, 빗자루 심지어 햄버거도 들려 있었다.
“맥도널드를 지켜라!”
매니저의 외침은 급박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S의 가스총에서 가스가 분사되는가 싶던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모든 종말은 그렇게 찾아오는 듯했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의 등짝을 감당할 수 없는 소란의 중심으로 매몰차게 떠밀며. (212-213면)
예문은 “제3세계 해방전선이 자행한 맥도널드 매장 습격의 연대기”를 기록한 전단지가 발견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발생한 사건을 담고 있다. 외국계 컴퓨터회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인도인이 사전을 꺼내려는 행동을 오해한 직원들이 가스총을 분사하면서 테러로 오인된 상황은 종료된다. 긴박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오해였다는 것. 그보다 더 기막힌 사실은 “매장에서 발생한 흔들림의 원인은 테러가 아니라 지진이었다”는 것이다. 테러를 예측하고 있던 맥도널드 매장에 불쑥 찾아온 것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지진의 흔들림이었고, 그 와중에 평범한 외국인의 햄버거 주문은 테러리스트의 작전 개시로 오인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는 맥도널드를 사수하려는 매니저와 크루들의 일상을 치밀하게 보여주면서 역으로 그 사수의 과업이 얼마나 불가능한가를 말하고 있다. 사실 지진과 힌두교도의 등장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경우의 수가 아니었는가.
하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예측이 불가능한 테러를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논리와 그러한 상황을 역으로 비트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설정에 있다. 맥도널드화 된 삶의 논리에 불쑥 끼어드는 예외의 상황은 맥도널드를 사수하려는 강제된 욕망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그림자를 전경화시킨다. 여기서 비로소 “왜 하필 우리인가”라는 ‘나’의 “전혀 맥도널드적이지 않는” 의문이 가능할 수 있다. 인도인을 테러리스트로 착각하고 동료가 쏜 가스총을 맞고 병원에 입원한 ‘나’는 그제서야 맥도널드 매장의 매니저나 크루들이 아닌 개별적인 ‘나’들이 모여 있는 ‘우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맥도널드적이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테러 공포증에 걸린 미국의 호들갑에 덩달아 과민반응을 보이는 우리 모두의 태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비꼬는 작가의 태도는 ‘나’가 던지는 질문 속에서 진지한 무게를 얻고 있다. 맥도널드적인 것과 맥도널드적이지 않은 것의 대립 속에서 작가의 시선은 소외된 무수한 ‘나’를 향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돌아보는 ‘나’의 시선은 맥도널드화 된 코드를 벗어나 소외된 개인을 호명하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사수하기 어려운 삶의 가치들
우리가 테러의 공포로부터, 혹은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는 갖가지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온전히 사수해야만 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은 “안락한 미래와 교환될 수 있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스무 살 여대생의 작전 일지이다. 그녀가 사수하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거추장스럽기도 했던 순결과 있으면 성가시고 없으면 아쉬운 가정과 하나쯤 사라진다 해도 표도 나지 않을 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가치’ 즉 자신의 ‘몸값’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몸값을 평가받고 흥정하기 위해서는 이왕이면 순결한 몸과 번듯한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모가 출중하지도 않고 재산도 없는데다 학벌도 신통치 않은” ‘나’가 사수하려는 몇 개의 목록 이면에는 이미 철저히 맥도널드화 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경욱의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은 맥도널드 매장을 사수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마저 맥도널드화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테러에 대한 불안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평양의 맥도널드 매장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보도적 서술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잠재해있는 테러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는 ‘나’의 논평적 요약 ―소설의 두 번째 단락― 은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의 절실한 사투 속에 담긴 욕망의 깊은 뿌리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에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맥도널드화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든 삶의 논리이자 생존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맥도널드화 되지 않으려는 욕망은 어쩌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맥도널드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맥도널드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기 바랍니다. 맥도널드 가족이 된 이상 여러분은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맥도널드화(化)해야 합니다.”(201-202면)라는 매니저의 요구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작가는 ‘여러분’으로 호명된 ‘우리’를 이루는 개개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당연시되는 지금의 현실을 문제 삼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맥도널드화 된 인간이 되지 말고 현실을 재구성하는 ‘나쁜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삶의 가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일상화된 테러의 공포 이면에 숨은 자본주의의 권력을 넘어서려는 우리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