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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평 】
타자화 된 제주, 잠들 수 없는 섬
- 현기영 소설론 -
이 대 영*
Ⅰ. 문학과 역사
‘문학’과 ‘역사’의 상관성 내지 변별성의 문제는 늘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또한, 역사는 실증성을 중시하고 소설은 허구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역사와 역사소설이 상보적인 관계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것도 관심이 되어왔다. 과거 또는 역사에서 소재를 얻은 문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보완, 변용, 확충하여 역사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문학이 지니고 있는 허구성이 늘 역사적 실제성에 잠식당하기 때문에 단지, 화자의 역사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을 뿐이라는 만만찮은 저항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사는 문학적, 허구적으로 현재화될 때 대중의 관심이 증폭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학작품들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역사적 사실 또는 일상의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허구성을 희석시킨다. 아울러 객관적 실증성, 정치의 이념성, 역사기술의 전통성에 집중한 나머지 역사서술에서 간과했던 일상적 보편성과 추상성을 보완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호르스트 슈타인메츠(Horst Steinmetz)는 역사문학의 개념과 변천과정을 정리한 문학과 역사(Literatur und Geschiche에서, “역사소설과 역사극은 과거의 삶을 ‘자연스런’ 이야기와 갈등들,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요컨대 인간적으로 구체화시켜 현재화함으로써 역사에 ‘관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진술한다. 독자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문학과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허구적으로 보완하는 서술기법과 극작기법과 같은 문학 장치를 고안해야 한다. 아울러, 과거의 현재화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실존적 위치를 성찰하게 하는 문학·역사가 지닌 고유 기능에도 부응해야 한다.
문학은 시·공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역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미학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역사에 대해 개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역사를 재현하고 재해석하고 방기된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거시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미시사의 복구에 일조하기도 한다.
역사적 리얼리티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거대한 해석의 틀과 계량성의 절대 의존에 의한 의문은 ‘놓쳐버린’ 또는 ‘가능성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 개인의 의식의 창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한 관계망을 복원하고자 하는 미시사 또는 미시문화사의 관점은 한국의 소설연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황진이’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페미니즘문화를 고찰하고, ‘심청이’를 통해 조선시대 장애인의 삶을, ‘애니깽’의 삶을 통해 식민지시대의 이주민사와 그 내용들을 고찰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역사’를 ‘이야기화’ 함으로써 그리고 미시사를 재구성하여 역사를 현재화하고 주변을 성찰하고자 하는 일련의 경향은 역사 또는 문학이 공유하고 있는 목표 즉, ‘진실성’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설의 현실은 ‘추상’ 즉, 계획된 현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현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에 호르스트 슈타인메츠(Horst Steinmetz)는 현실적인 역사를 ‘그럴듯한 상’으로만 나타내는 소설의 한계를 지적한다. 주요 역사과정은 역사 자체의 관점에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관점, 비역사적인 인물의 순전히 우연한 관점에서 포착되기에 독자들은 어쩔 수없이 인물들의 사적인 체험을 역사적 사건인 것처럼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역사의 주요 인물들은 단지 외곽에서만 등장하고 줄거리도 거의 역사적인 그러나 허구적으로 설정된 보조인물들의 영역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이우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등이 픽션과 논픽션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객관적 거리에서 역사의 진실성에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평가의 초점이 되곤 한다.
한국문학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문학적 소재로 활용한 예는 허다하다. 특히 이념적 좌표가 표류하고 권력의 날선 바람이 민중의 귓밥을 파고들 때마다 문학은 역사를 허구화하고 대상을 상징화 하는 교묘한 문학적 장치를 이용하여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여 왔다. 조선의 사설시조, 가전체문학, 식민지문학, 민중문학 등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역사소설은 정치권력과 이념의 폭력 속에서 내성을 갖춘 민초들의 허망한 삶과 그들의 의식을 반추함에 크게 기여해왔다. 또한 과거를 현재화 하는 문학의 대표 장르로 권력의 담론에 거리를 두고 역사의 진실성을 기록하는 의식 있는 작가들의 언어의 광장이기도 했다. 여전히 이념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상황이기는 하지만, 꽁꽁 동여맸던 이념의 끈을 풀어 권력의 담론에 묻혀있던 언어들을 풀어헤칠 수 있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에 제주도 4.3사건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는 현기영의 소설을 통해 문학의 역사성과 역사의 문학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Ⅱ. 치유할 수 없는 상처, 그 암울했던 순간의 기억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설령 안다할지라도, 이 비극적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을까? 제주 4.3 사건에 대한 제주도민과 미국인 그리고 한국의 위정자들이 바라보는 각각의 관점은 어떠할까? 이 사건에 대한 역사가와 문학인의 서술관점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까? 제주 4.3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마무리된 것일까? 아니면, 마무리해야 할 미완의 과제일까?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섰던 위정자들을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와 화해라는 미사어구로 비극의 한 곳간에 보관해야 할 것인가?
역사란 이와 같이 과거와 현재, 부분과 전체가 맞물린 총체성을 지닌 것이기에 이 같은 물음에 쉽게 답할 수는 없다. 다만, 당대의 정치적 이념과 권력 주체자의 의지에 의해 봉인되고 묵인된 역사적 사실들을 복원하여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는 영역이 역사라고 이야기 할 수는 있다.
문학에서, 작가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기술하는 것은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삶의 진실성’을 희원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하여 현실을 성찰하고 미래에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이 문학 또는 문학가의 주요한 임무라 할 때, 제주의 4.3사건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학의 소재였다. 그러나 한 때, 독재 권력의, 또는 남북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으로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제주의 4월을 노래하고 상기한다는 것은 혹독한 자기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00년 1월 12일에 제주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고 정부차원의 진상조사사업이 이루어짐으로써 제주의 4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여건 조성에 문학 또한 일조한 바 있는데,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 그 예이다. 제주 출신으로 4.3사건을 직접 체험한 작가가 이념의 명분 앞에 허물어지는 역사와 개인의 진실성을 찾고자 「순이 삼촌」을 비롯하여 「아버지」,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이야기」,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을 창작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 현길언의 「귀향」, 「우리들의 조부님」, 「먼 훗날」, 오성찬의 「하얀 달빛」, 「잃어버린 고향」, 고은주의 신들의 황혼 등의 소설도 동일한 노력의 작품들로 거론되고 있다. 역사와 문학의 상보성에 관심을 갖는 근래의 학문적 경향에 힘을 얻어, 이 글에서는 제주 4.3사건 또는 제주 4.3사건 문학의 대표성을 띠는 현기영의 소설을 중심으로 이념과 역사적 진실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작품으로, 금기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제주의 4.3사건을 소설화하여 사회적 관심을 모은 소설이다. 「순이 삼촌」은 1949년 1월 16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의 비극적 체험을 1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성장형소설이다.
8년 만에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가는 주인공에게 고향이란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 삼십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제주도에 도착한 주인공은 고향을 외면하며 살아 온 8년의 거리감이 제주도의 방언과 고향의 풍물로 사라지고 일체화됨을 경험하게 된다.
잿빛 바다 안으로 날카롭게 먹혀들어간 시커먼 현무암의 갑(岬), 저걸 사투리로 ‘코지’라고 했지. 바닷가 넓은 ‘돌빌레’(巖盤)에 높직이 쌓여 있는 저 고동색 해초더미는 ‘듬북눌’이겠고, 겨울바다에 포말처럼 둥둥 떠 있는 저것들은 해녀들의 ‘태왁’이다. 시커먼 현무암 바위 틈바구니에 붉게 타는 조짚불, 뭍에 오른 해녀들이 불을 쬐는 저곳을 ‘불턱’이라고 했지.
(「순이삼촌」, p.41.)
작가의 문체적 특징이기도 한 제주도 특유의 사투리와 방언들은 지역의 특수성과 자연성을 드러낸다. 육지에서 성장한 작가가 흉내 내기에는 많은 위험이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역사적 사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현기영의 자산이다. 즉, 작가의 고향이 제주라는, 그러기에 누구보다 사건기술이 신빙성을 지닐 것이라는, 그리고 금기시된 제주 4.3사건의 문제를 왜곡하지 않고 진실성을 담보했을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지평을 만족시킨다.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친족구성원들이 순이 삼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4.3사건의 비극성이 자연스럽게 현시된다.
나의 집에서 가사를 돌보던 순이삼촌은 여러 가지 기행(奇行)으로 나와 아내를 당혹하게 한다. 밥을 많이 먹는 식모라고 자기를 탓한다며 상심하고, 생선껍질이 눌어붙은 석쇠를 보이면서 밥상에 오른 구운 생선이 부스러진 이유를 해명하는 결벽증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은 소설에서 서촌으로 공간화 된, 북촌리 학살사건에 있음이 밝혀진다. 북촌리 양민학살사건은 마을 초입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두 명이 사살되자 군인 2개 소대병력이 마을에 진입하여 3백 여 동의 민가를 소각하고 수 백 명의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무분별한 이념의 맹신이 야기한 전형적인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경찰과 군인, 대동청년단원에 의해 군인, 경찰, 공무원가족을 제외한 마을주민들이 소개작전에 의해 일주도로변 옴팡진 밭에서 사살되고 마을이 소각된다. 그 비극의 현장에서 순이 삼촌은 살아남는다. 총살당하기 직전 기절하여 다행히 생존할 수 있었던 삼촌이지만 두 아이를 잃은 슬픔과 경찰에 대한 기피증, 그 기피증이 결벽증을 낳고, 환청이 생겨 고통 받게 된다. 결국, 순이삼촌은 자식이 묻힌 옴팡밭에서 흰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여년을 과부로 살다가 그날의 사건을 환청으로 듣게 되고 끝내는 음독자살하게 된다. 이는 이념의 폭력이 낳은 비극과 그 비극의 고통이 얼마나 끈적끈적하고 지긋지긋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화자는 삼촌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 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猶豫)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순이삼촌」, p.86.)
순이삼촌에게 세월은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옴팡밭의 비극은 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묶어 놓는 정신적 상흔이었다. 이는 이념의 폭력성이 제주와 제주양민을 타자화 함으로써 그들에게 정신적 상흔을 입히고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한 역사의 비극이었음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헤겔이나 사르트르가 사용한 ‘타자’라는 용어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대상의 타자화란 주인의식 또는 주체의식을 강화하고자 대상을 부정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이념의 편협성은 다른 이념을 가진 이들을 타자화 하여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고자 폭력을 동반한다. 제주의 4.3사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뭍사람들과 제주도사람들, 좌익과 우익, 토벌대와 빨치산이라는 대결양상이 제주도라는 특수공간에서 전개됨으로써 양자 공히 대상을 타자화 하려는 욕망에서 비극이 야기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비극적 사건의 단죄여부에 대한 입장은 상이하다.
“하여간에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우다. 아명해도 밝혀놔야 됩니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경종을 울리는 뜻에서라도 꼭 밝혀두어야 합니다. 그 학살이 상부의 작전명령이었는지 그 중대장의 독자적 행동이었는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하여간 밝혀내야 합니다.”
(「순이삼촌」, p.71.)
“거 무신 쓸데없는 소리고! 이름은 알아 무싱거(무엇) 허젠? 다 시국 탓이엔 생각하고 말지 공연시리 긁엉 부스럼 맹글 거 없져.”
(「순이삼촌」, p.71.)
“기쎄, 조캐, 지나간 걸 개지구 자꾸 들춰내선 멀하간? 전쟁이란 다 기런 거이 아니가서?”
(「순이삼촌」, p.72.)
길수에게, 제주 4.3사건은 당연히 진상조사를 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미완의 내용이다. 그러나 나이 든 큰당숙이나 당시 토벌군으로 활동했던 고모부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사회의 갈등을 방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하고, 가해자가 권력의 그늘에서 서식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은 제주 4.3사건을 더욱 미해결의 장으로 봉인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작가는 작중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제주 4.3사건의 발생 요인을 몇 가지로 설명한다. 작전명령의 오전(誤傳)에 따른 양민학살, 남로당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 경찰과 군인, 서청단원들의 과도한 진압작전, 도피자들을 빨치산으로 판단한 군경의 오해, 제주도민들에 대한 뭍사람들의 불신 등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문학 또는 언론에서 제주 4.3사건을 논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시기에 소설을 통하여 발화된 것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미완의 역사적 내용을 소설을 통하여 보완하고 위정가와 우리 또는 역사서술가가 지향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막막한 어둠으로 다가오는 작가의 고향인 함박이골을 중심으로 유년시절에 경험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즉,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적 정황과 제주의 풍물을 담론형식으로 기술한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강렬한 이미지의 파편들을 소제목으로 하여 옴니버스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제주 4.3사건의 발생요인과 정황들을 짐작하게 된다.
섬사람들에게 해방은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니었다. 왜정 때의 그 악명 높던 곡식 공출이 여전히 존속되어 부족한 식량을 수탈해 가는데 어찌 해방이며, 이민족들이 나라를 두 동강 내고 점령하고 있는데 어찌 해방이라고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그 이듬해인 1947년 3월 1일, 읍내에 2만 군중이 모여든 대시위는 이렇게 극한상황에 몰린 민생의 피맺힌 절규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슬픔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집회에 무차별 총격으로 응답했으니, 여섯 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p.34.)
3.1사건 이후 1년 동안, 육지부에서 파견된 경찰과 서청이 자행한 무자비한 탄압이 마침내 “앉아서 죽느니 일어나서 싸우자”라는 절망적 항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p.46.)
“민보단이라고, 왜 죽창들고 토벌대 뒤따라 다니는 민간인들 있었지 않은가. 토벌대가 산사람을 생포하면 직접 죽이지 않고 민보단에게 시킬 때가 종종 있었어. 왜 그런고 하니, 그게 다 상부의 지시인데, 섬 백성으로 하여금 제 동족을 죽이게 하여 공범자를 만들자는 책략이지. 하여간 총을 들이대고 죽창질하라고 위협하는데 안 할 도리가 있나.”
(「지상에 숟가락 하나」, p.65.)
저장 고구마가 품질에 따라 용도가 결정되듯이 수천의 귀순자들도 비슷한 절차를 밟아 처분되었다. 먼저 집단 처형으로서 수백 명이 용도 폐기되었다. 질이 나빠 새나라 건설에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이유였다. 사체들이 땅 속에 암매장되거나 바다 가운데 수장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정확한 숫자는 아직껏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집단 처형되고 남은 귀순자들은 노약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전쟁의 소모품 용도로 결정이 났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p.125.)
미군정의 제주도 정세에 대한 몰이해, 정권의 이념적 편협성, 뭍사람들의 제주도민에 대한 타자화가 결국 절망적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작가는 언술한다. 특히 공비토벌작전이 종료되고 귀순한 도피자들을 집단처형하고 전쟁의 소모품으로 이용한 것은 당시 정권의 비윤리적인 만행이었음을 고발하는 증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밖에 「도령마루의 까마귀」는 노형리 소개작전과 성담쌓기 울력에 동원된 아녀자들과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 도피자들의 생활과 죽음, 일본순사출신이 해방 후에도 경찰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역사상황 등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해룡이야기」에서는 소개작전, 뭍사람들의 섬사람들에 대한 차별 등을 고발하면서 유년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져 고통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작가는 작중인물인 문중호를 통해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라고 기억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가슴 아픈 문장을 드러낸다. 제주도는 작가에게 끊임없는 문학창작의 원향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이 묻힌 섬이며, 철저하게 타자화 된 원혼들을 만나 그들의 가슴 아픈 상흔을 전하고 고발하고 가해자를 단죄해야 하는 임무와 역할을 부여 받은 공간이다. 그러기에 제주도는 현기영에게 있어 끝임없이 변형, 반복하여 나타나는 문학의 원형이다.
Ⅲ. 진혼 굿, 그 마무리의 어려움
잠들 수 없는 섬 제주, 우리는 그 제주에 산재한 무수한 현무암이 화산작용으로 솟은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소개작전으로 불탄 자리에 남은 검은 재와 시신, 그리고 원혼이 까만 암석으로 남아 구멍 뚫린 가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는 한라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마냥 시원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화약과 죽음을 가득 실은 서늘함 속에서 우리는, 쫓고 쫓기는 생명체들의 절규하던 몸짓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우리 모두는 그들을 위한 한판 ‘진혼 굿’을 펼쳐야 한다. 제주 4.3특별법에 의해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상처받은 원혼들은 진혼 굿을 원하고 있다. 이미 그 굿판은 문학의 광장에서 크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굿판이 언제 만족할 만한 위무제가 되어 끝날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어쩌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하지 않는 먼 미래에나 마무리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작가가 「순이삼촌」을 발표한 후, 경찰에 연행되어 육체적 고문을 당하고 작품이 판금조치된 사실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또한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TV 방송사의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의 선정도서가 되기도 했지만 국방부의 금서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곧 여전히 진혼 굿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예증하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의 발발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으로 인한 긴장상황 조성, 경찰과 서청에 의한 과도한 검거, 남로당 제주도당의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킨 지서습격 등이 사건발생의 도화선이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이만 오천 내지 삼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으며 연좌제와 이념의 양극화, 치유될 수 없는 심리적 상처로 고통 받는 살아남은 자들을 남김으로써 여전히 현재화 되고 있다.
현기영은 역사가 기록할 수 없는 제주도 풍물과 그 풍물이 빚어내는 섬 특유의 정서, 그리고 제주도 작가로서 유년기에 체험한 4.3사건의 비극성을 소설을 통하여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속의 화자는 허구화 된 인물이기에 역사적 실존인물 자체는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언과 고발 또한 등장인물의 발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실적이지만 허구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러한 허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1인칭시점 또는 자전체 형식을 빌어 제주 4.3사건의 비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현기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는 그 누구보다도 역사의 현장에서 체험한 작가로서 진실성과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상적으로 사건에 접근하거나 정황을 묘사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역사의 진실성으로부터 그는 이미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현기영 스스로가 역사의 현장에 갇혀 버림으로써 주관성을 노출하는 단점도 보여주고 있음이 발견된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의 ‘~있으랴’, ‘~않았으리라’, ‘~던가’, ‘~인가’ 등의 서술체 문장이 그 예이다. 또한, ‘타자화 된 제주’라는 지배의식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함으로써 제주 남로당에 대한 평가를 문학이 아닌 역사에 위임하는 측면도 보인다.
문학이 역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역사 또한 문학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학의 역사화와 역사의 문학화라는 고유의 가치와 상보성을 인정하면서 역사를 바로세우는 중차대한 소임을 지닌 것이 문학 또는 역사이다. 이에 두 영역이 진실된 가치를 지향하면서 ‘진혼 굿’을 마무리하기를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