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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유성구리틀야구단 원문보기 글쓴이: 상혁애비
![]() 서울 신일고 최재호 감독(사진 가운데)과 야구부원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고교야구는 프로야구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고교야구의 활성화 없이 프로야구의 항구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한국 고교야구팀은 53개 팀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고교 53개 팀에서 프로 9개 구단에 선수를 수급하는 셈이다. 전국 4천28개(2010년 고시엔 대회 기준)의 고교야구팀이 프로 12개 구단에 선수 수급을 책임지는 일본을 상기하면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스포츠춘추>에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래의 꿈나무를 배출하려 노력하는 전국의 53개 고교 야구부를 소개하려 한다. 그들이 한국야구의 진정한 희망이자, 숨은 일꾼이라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간으로 서울 신일고를 찾았다.
부침(浮沈)은 ‘물 위에 떠올랐다 물 속에 잠긴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부침처럼 전성기와 암흑기가 있다. 개그맨 박명수는 말한다. “지금이 제8의 전성기”라고.
1975년 창단한 서울 신일고 야구부는 올해까지 35년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경험했다. 시쳇말로 잘 나갈 때도 있고, 못 나갈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 전성기는 4번 있었다. 제1의 전성기는 창단 2년 만에 황금사자기대회에서 당대 최고투수 최동원이 버틴 경남고와 김성한과 김용남이 이끄는 군산상고 그리고 이길환·신군식 막강 원투펀치를 자랑하는 선린상고를 차례로 꺾고 창단 이래 첫 우승을 차지한 1976년이었다.
당시 신일고는 고 김정수·양승호(롯데 감독)·박종훈(전 LG 감독)·김경훈(전 KIA 스카우트) 등 쟁쟁한 멤버가 포진해 있었다. 신일고는 1978년 황금사자기대회에서도 김경표·김정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우승컵을 안았다.
![]() 1991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신일고 학생선수들이 기뻐하는 장면. 사진 맨 왼쪽이 당시 MVP였던 설종진이다(사진=신일고) |
제2의 전성기는 1991년이었다. 신일고는 이해 봉황대기대회와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조성민은 봉황대기에서 혼자 6승을 거두며 ‘초고교급 투수’로 우뚝 섰다. 조성민은 황금사자기 결승에서도 박재홍이 이끈 광주일고를 무너트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두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건 다른 선수였다. 바로 설종진(현 넥센 매니저)이었다.
고1때 폐결핵을 앓았던 설종진은 특유의 성실함과 자기관리로 병마를 이겨냈고, 3학년이 돼서는 고교야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타자가 됐다. 이외에도 신일고엔 1학년생 김재현(전 SK)·조인성(현 SK), 2학년생 백재호(현 신일고 코치)·강혁이 버티고 있었다.
제3의 전성기는 1997년이었다. 봉중근·안치용·김광삼·강서현·현재윤이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며 이해 신일고는 청룡기대회, 황금사자기, 봉황대기에서 차례로 우승했다. 당시 고교야구계는 ‘한 마리 경주마만 달리는 경마대회를 보는 것 같다’며 신일고의 연전연승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4의 전성기는 2009년이었다. 2003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한 이후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던 신일고는 이해 좌완 박주환과 4번 타자 이제우, 신입생 하주석의 활약으로 청룡기에서 우승을 맛봤다.
달라진 야구환경, 달라진 신일고 야구부 신일고 최재호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우승 제조기’. 신일고 최재호(51) 감독의 별명이다. 최 감독은 초교서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교 감독을 차례로 경험한 지도자다. 초교 감독 때부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승컵을 안았다. 고교 무대에선 1995년 배재고에서 2008년 덕수상고에 있을 때까지 모두 7번의 전국대회 우승을 맛봤다.
19살 때부터 초교 감독을 맡았으니 지도자 경력만 따지자면 아마추어 야구 감독 가운데 최고 베테랑이다. 최 감독이 신일고에 부임한 건 2008년 10월이었다. 덕수상고 시절 ‘최고 고교야구 감독’으로 불린 그를 신일고에서 스카우트했다. 당시 신일고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최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훈련이 곧 성적’이라는 자신의 야구관을 선수들에게 주입했다. 그렇다고 훈련량이 많은 건 아니었다. 최 감독은 ‘생각 없이 감독이 시킨 데로 10시간을 훈련하는 것보다 어째서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선수들이 납득한 상태에서 2시간을 훈련하는 게 낫다’고 믿는 지도자다.
“고교야구는 체계적인 훈련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도자가 없어도 선수들이 알아서 훈련한다. 무엇보다 기본기 훈련이 필수다. 기본이 완성되지 않으면 고교에서 아무리 잘해도 프로에 가면 무용지물이다. 신일고를 맡으면서 선수들에게 ‘생각하는 야구’와 기본기 야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선수들은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빠르게 간파했다. 2009년 청룡기 우승 때 야구계가 “기본기 야구의 승리”라고 신일고를 평한 것도 선수들이 최 감독의 요구를 정확히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0년엔 전국대회 우승에 실패했다. 올 시즌도 신일고는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에서 8강에 올랐을 뿐이다. 침체기라면 침체기다. 하지만, 최 감독의 눈빛에서 낙담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적응기”로 표현했다.
“올 시즌부터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도입됐다. 그 바람에 전국대회 숫자가 확연히 감소했다. 특히나 지방 명문대회가 모두 사라졌다. 예전보다 우승에 도전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주말리그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선수들이나 지도자들나 전혀 다른 야구를 접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올 시즌을 주말리그 적응기로 삼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내년 시즌 신일고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한다.”
![]() 신일고 야구부 훈련 장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사실이다. 올 시즌 신일고는 전혀 다른 야구를 경험했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과 고교야구 선진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주말리그 시행으로, 훈련과 경기 스케줄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오전 수업만 하거나 대회가 있을 시엔 아침부터 모여 훈련을 했겠지만, 주말리그 도입 이후엔 야구부원 전체가 6교시까지 의무적으로 수업을 받는다. 토요일에도 4교시까지 수업에 참여하고, 대회를 앞두고도 학생선수들이 수업에 빠지는 일은 없다.
최 감독은 “학생선수들이 6교시까지 수업을 들어 평일 야구부 훈련시간이 오후 3시 30분부터”이라며 “해가 긴 여름이면 모를까, 겨울엔 오후 5시 30분이면 훈련을 접어야 한다”고 했다. 달리 말해 훈련 시간이 태부족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성적을 내야 하는 일선 지도자로선 훈련 부족이야말로 가장 큰 고민이다.
하지만, 최 감독은 주말리그 도입을 포함한 고교야구 정상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고교야구 정상화는 정부 시책이다. 공부와 야구를 병행한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올 시즌 드러난 몇몇 문제를 해결한다면 내년 시즌 고교야구 정상화는 더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올 시즌 신일고는 전국대회 우승만 하지 못했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전반기 서울권A 주말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다. 후반기 ‘광역 인터리그’에선 1위에 올랐다. 최 감독이 올 시즌을 적응기로 삼고, 내년 시즌 도약을 자신하는 것도 팀 전력이 괜찮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년 시즌 전망은 밝다. 내년 시즌 신일고 야구부 중심이 될 선수들과 백재호(사진 왼쪽부터), 신철인 코치 그리고 최 감독(사진 맨 오른쪽)(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고교야구계도 내년 시즌 신일고 밝게 전망한다. 우선 팀 전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하주석(한화) 졸업이 치명적이지만, 올 시즌 하주석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의미다.
최 감독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내년 시즌 신일고 마운드를 주목해달라”고 요청했다.
“3학년 사이드암 투수 최동현과 좌완 이윤학이 팀의 원투펀치로 뛸 예정이다. 두 투수는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출전해 경기 경험이 풍부하고, 구위도 매우 좋다. 여기다 2학년 좌완 이승헌도 빼놓을 수 없는 선발요원이다. 좌·우·사이드암 투수들이 골고루 배치됐기에 상황에 맞는 마운드 운용을 할 수 있게 됐다.”
타선도 마운드 못지않다. 올 시즌 고교무대에서 주목받는 3루수였던 김영환은 내년 시즌부터 유격수로 뛴다. ‘방망이는 하주석급’이란 평을 들었던 김영환은 타격 정확성과 주루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최 감독은 김영환이 하주석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리라 자신한다. 1루수 김남웅, 2루수 계정웅과 포수 김덕영도 팀 타선을 이끌 주포들이다. 타자들 역시 투수들처럼 저학년 때부터 실전에 투입돼 경기 경험이 풍부한 게 장점이다.
수비력이야말로 신일고의 최대 강점이다. 야구계가 꼽는 신일고의 장점도 탄탄한 수비다. ‘공격은 팀을 승리로 이끌뿐 우승은 수비가 이끈다’라고 믿는 최 감독은 훈련 시 수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백재호 코치는 “내년 시즌 주전이 예상되는 선수들이 하나같이 수비가 뛰어나다”며 “‘수비의 신일고’란 평판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자신했다.
학교의 변함없는 후원도 야구부엔 큰 힘이다. 신일고는 현재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운영 중이다. 많은 자사고가 법정부담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재단의 학교 운영비 지원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하지만, 신일고 재단은 해마다 16억 원씩을 전입금으로 내며 학교를 전국에서 재정이 가장 탄탄한 자립고로 이끌고 있다.
재단의 과감한 투자는 야구부 지원 때도 같다. 신일고의 1년 학비는 450만 원가량이다. 자사고라, 학비가 비싸다. 신일고는 야구부원들에게도 학비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학비를 내는 학생선수는 없다. 이세웅 이사장이 학생들의 학비를 대신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 학비만 합쳐도 한해 1억 5천만 원이 넘는다.
![]() 신일고 정경(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최 감독의 월급은 학교에서 나온다. 연봉 계약도 학교와 직접 한다. 학생선수들의 회비가 곧 월급인 다른 고교 감독과 큰 차이가 있다. 학부모들의 입김에서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최 감독은 “훈련비도 학교의 법인카드로 쓰기 때문에 불투명한 예산 전용은 있을 수가 없다”며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원체 야구를 좋아해, 학교 야구장도 야구부 전용구장으로만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고교가 주말이면 학교 야구장을 사회인야구팀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대여금은 학교 야구부 운영비로 충당된다. 몇몇 학교에선 감독과 교사가 대여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해 말썽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신일고 야구장은 사회인야구팀들이 쓸 수 없다. 학교 측에서 대여 자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신일고 야구장은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신일고 야구부의 회비는 20, 30만 원 선이다. 대회에 출전한다고 더 회비를 걷지 않는다. 학생선수들의 부담이 덜하다. 기숙사 운영도 하지 않는다. 학생선수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군대식 기숙 문화가 자칫 부적절한 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재 신일고 야구부장은 박천수 교사다. 박 교사는 1991년 신일고가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할 때 야구부 감독이었다. 오랫동안 감독을 역임해선지 누구보다 일선 지도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일체 현장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최 감독은 “박 부장님이 있어 야구부와 학교 그리고 학부모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다”며 “학생선수 진학상담도 부장이 맡아주는 까닭에 감독은 골치 아픈 업무를 뒤로 하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 신일고 야구부 숙소. 이 숙소는 방학 중 대회를 앞두고 잠시 사용될 뿐이다. 신일고는 합숙훈련을 자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내년 시즌 전망이 밝다지만, 그림자도 있다. 지난해를 끝으로 신일중 야구부가 해체했다. 이 바람에 신일고는 신입생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최 감독이 마당발이라, 올 시즌엔 우수 중학선수 영입에 어려움이 덜했다. 그러나 신일중이 있던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학생선수들의 훈련량이 줄어든 것도 고민이다. 줄어든 훈련량을 어떻게 해서든 보충해야 더 나은 성적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 감독은 “온종일 훈련에 매달리는 ‘과거’에 얽매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다. 대신 “시대가 변했으니 변한 시대에 맞게 새로운 야구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최 감독은 “올해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서울대에 지원한 고 3 야구부원이 있다”며 “공부와 야구 모두 잘하는 신일고 야구부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최 감독의 꿈이 이뤄질 때 신일고는 제5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다.
<신일고 스카우팅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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