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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때 이기풍 선교사님 선교영화를 보고 강력한 성령의 불을 체험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어 3대째가 되었고 산 두개를 넘어서 혼자서도 교회를 다니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서 잠도자고 성탄절때 강단에서 성극도 하고 성경암송도하고...
19세에 큰 오빠가 준 성경을 선물로 받고 큰 오빠가 좋은 조언을 했는데 잔소리로여겨 오빠가 준 성경책을 다 찢고 있는데
찬송가를 찢고 있을때 정신이 번쩍들면서 지금 내가 뭘하고 있지 하고 스톱을 하고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고등학교때도 성가대를 하고 친구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자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
밤이면 부엌 창문에 십자가 불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나가고 싶어 2층에 있는 교회를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내 손으로 성경책을 찢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직접 성경책을 사서 기도하면서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했고
기도하면 눈물과 콧물이 줄줄 나왔습니다.
수원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를 해 장로교통합측에서 새벽에배 매일 밤9시혼자서기도 공식예배를 빠질 수 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불어 기도하게 하셨고 밤9시 기도하다 성전에서 예언, 방언이 터져나왔고 권사 집사들이 저를 데리고
병원에도 가정에도 심방을 다니고 예언 기도를 받았습니다.
91년 23살에 성미부장도하고 기도부장도 했습니다. (별명이 기도대장이였다.)
91년 이사를 하게되어 23살에 개척교회 4년을 물질과, 강단꽃꽂이, 사택에 성미쌀 다대고, 목사님 이발비 등 교회청소
열심히 섬겼습니다.
24살에 집사임명을 받을때 헌금봉투에 순금목걸이5돈을 하나님께 드리며 교회 차를 달라고 헌금을 드렸는데 그 건물 주인이
삼, 사개월 뒤에 금요철야시간에 6백만원을 가져와 교회 봉고차를 사라고 헌금을 하고 권찰이 150만원을 또 헌금했습니다.
그레이스 봉고차를 목사님 사모님께서 마지막 사러 가실때 우리집에서 축복기도를 하고 가셨다.
그래서인지 제가 전도사로 가는 곳마다 교회서 담임목사님에게 좋은 차를 바꿔주고 아직도 나에게 차의 복을 주십니다.
2010년9월4일 설립한 은혜기도원에 강대상과 의자 헌금탁자를 드린 고물상 장로님에게 9월에 태풍이 와서 트럭 새거, 1억5천만원짜리 찝게차를 하나님께서 주셨고 2010년 7월 10일 정현기씨가 머리아픈것 기도받고 나았고 교회전기세 3개월치를 내고 축복안수를 받았는데 10월 5일 1억짜리 지게차를 하나님께서 우여곡절끝에 자기보다 돈을 더 주고 산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경매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셨다고 성전에서 간증을 하고 십일조를 드리면서 저번에처럼 잘되게 해달라고 무사고를 위해 축복안수기도를 받고갔다.
지금 은혜기도원 바로 아랫층이 차 광택내는 곳이며 내 차를 다 관리하게 하신다.
어린나이에 하나님께 교회를 위해 차를 달라고 순금5돈을 드렸는데 지금까지 천국갈때까지 나와 관계된 모든 분들에게도
차의 복을 주시는 기적을 베풀고 계십니다.
개척교회를 열심히 섬기자 담임목사님께서 어느날 책을 한보다리 사오셔서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신발이 찢어졌어도 신발을 안사고 주일날 감사헌금을 빠뜨리지 않고 드렸다.
장로교에서하는 총회교육부 성경통신대학교를 성경1독 필사 2년 양재동 횃불회관에서 1995년 2월 졸업을하고
주교 교사대학을 2년 1997년 2월에 4년졸업을 하고 1997년도에 인천신학교(별명 성경박사였다.) 4년을 마치고
2002년 사당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3년 (양지에서) NSM 성령의 불을 붙이는 동아리에서
찬양인도를 뜨겁게 하자 부회장이되어 3학년 때까지 영성을 쌓기위해 산기도를 쉬지 않았다.
인천신학교 3학년때부터 세계적인부흥사로 대학원에서도 불렀다.
2004년 대학원3학년때도 달밤에 기숙사 산꼭대기에 서너명이서 새벽 1시 2시까지 산기도를 했다. 그때 면목동 남북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를 맡았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서울대병원 제일 잘한다는 의사에게 간 수술을 했는데 잘못해 3번을 수술하셔서 온몸이 황달로 노랗게 되었어 눈동자까지 눈에 실핏출은 피처럼 빨갛게 되었다. 오전 설교도 못하셔서 노회에서 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했고 나는 집사님이 숙소를 잠아줘서 자면서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설교를 했다.
토요일 교역자회를을 마친뒤 단둘이 있을때 담임목사님께 20세때부터 신유은사있어서 예언과 기도가 100%맡았다고 했더니 중이 제머리못 깍는다고 기도를 해달라고 해서 손을 얹고 기도를 했는데 간경화가 아니고 간에 염증이 있으니 절대 수술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목사님께서 내 말을 안믿어서 5번을 말했다. 앞으로 20년을 목회해야한다고 했더니 얼굴에 화색을 띄면서 김전도사말대로되면 한턱을 낸다고 하셨다.
다음날 목사님 큰 아들이 온몸이 아프다고 나에게 기도해달라고 왔는데 괜찮다고 기도받고 갔다 목사님께서 가족들에게 기도받은 얘기를 하신것같았다.
월요일날 사모님과 병원입원해서 간에 하얀게보여서 의사들이 조직세포 떼어서 다시 검사했는데 간경화가 아니라고 나왔다.
목사님은 점점 좋아져서 그 다음봄에 봄심방도 다니시고 지금도 목회를 잘하고 계신다.
신학만 11년을 공부하였다. 목사님께서 자동차면허를 따라해서1994년11월17일 합격, 피아노를주셔서 피아노를배워 섬기는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봉사, 찬양단, 성가대(소프라노), 주일학교교사,구역강사, 여전도회회장, 강단꽃꽂이 ,주일학교교사,
중고등부교사, 교회 성미쌀을 80키로씩 섬겼다. 개척교회 목사님이 찾아와 문짝이 필요하다고 팔라 했는데 그냥드렸으며 교회에 갔다가 추석무렵 사모는 울며기도하고있고 목사님은 쌀이 떨어져 쌀구하러 갔다는 소리에 주머니에 있는돈을 다주며 쌀사라고 반찬거리랑 주고 왔다.
집사때부터 교회일을 안해본 파트가 없다. 정신없이 열심히 헌신하게 하셨으며 20세부터 성령께서 끌고 다니셔서 산기도를 했고.
봉천동, 안산상록수역 등 혼자서 노방전도를 다녔고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 전도 목욕탕을 가서 아줌마들전도등 전도를 쉬지않고 하게 하셨다.
전도 나가기전에 그 다음날 만날 사람을 꿈으로 보여주셨다. 얼굴을 보면 예수 믿는지 안믿는지 알게 하셨다.
1997년부터 첫 사역3년을 하나님께 무보수로 사역하기를 서원하고 첫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맡아 놀랍도록 부흥을 시켰다.
교회음악 지휘자전공 부전공 성악 음악단기대학을졸업, 이애라 찬양율동신학원을 다니며 일본 4번(노방전도, 축귀치유,
찬양율동, 중국(영적전쟁 집회기도외),
태국(공항에서 비행기가 8시간 지체하자 영어로15개국 사람들을 전도), 터키, 이스라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몸찬양, 전도사역, 파키스탄 5번(치유사역) , 필리핀(선교사역)등 다수의 국가에서 전도와 치유사역을 하였다.
1997년 30세부터 인천기도원에 밤12시 영시 집회강사 전도사로 사역하고 반석기도원에 2004년 단독강사로 2005년 1월 신년축복성회강사로 반석기도원에 3일 집회를 갔다.
2007년까지 장로교 합동측에서 목동 방주교회에서 전도사및 전임전도사로 부목사두분보다도 설교를 잘한다고 강단에서 똑같이 설교를 했고 사례비도부목사보다 더 주셨다. 목사3분과 전도사였던 나 넷이서 설교를 했다.
영아부에서 노인대학까지 안해본 파트가 없다. 목동에서는 새신자 관리를 부목사 두분과 똑같이 구역을 맡았는데
2007년 3개월만에 86명이 등록을 했다.
2000년 인천에 중고등부를 맡았을 때도 학생들이 부흥하자 중고등부부장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2001년 광명 목양교회에서 중고등부48명 청년부57명 두 파트를 맡았는데 중고등부반에서
학교에서 전체장학생이 나오고 성적이 좋고 우등생들이 많이 나왔다.
2001년 12월5일 양지에 있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시험을 치루고 선배들 기숙사에 앉아 있는데 처음본 학생이 얼굴에 안색이 안좋아서 왜 그러냐고 뭍자 올해 시험을 9년째 봤는데 도 떨어질까봐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다고 하자 내 입에서
이번에 합격이다.그랬더니 눈이 똥그래지면서 나에게 진짜냐고 하자 진짜니까 합격하면 통닭 한마라 사와라 그랬더니 열마라라도 사준다고 했다.
진짜합격해서 동계어학강좌 히브리어 , 헬라어 어학때 도서관에 전기통닭 두마리를 사와서 학우들과 먹었고 이분은 3년동안 나를 받들어 섬겼다.
1997년 7월 3일부터 한얼산 기도원에 부흥강사 시중을 3년간 봉사를 했다. 신년축복성회, 여름산상집회,
집회가 다 마치면 새벽1-2시까지 이천석목사님 무덤앞에서 산기도를 하고
그당시 3천명 5천명 모였다. 우리나라 열 손가락에 꼽는 강사님들께 목요일이면 4분에게 안수를 받고 축복기도를 다 받았다.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도 성도들을 기도해주고 2004년 봄 화곡동 서일교회에서 전임사역을 하는데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집사님 얼굴이 심각해 보여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위가 너무 아파서 위암인지 걱정이되 조직검사하려고 한다고 했다. 손을 줘봐라 만졌더니 위에 염증이 났네요 그랬더니 집사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그랬다.
2008년 은평 장로교회에서 마지막 전임 사역을 하는데 교회밑에 최집사님이 작은 식당을 했다. 수요일 허리가 너무 많이 아파서 예배 못갔다고 기도해달라고해서 손을 얹었는데 내 입에서 쇠박았네요 소리를 하자 옆에 있던 집사님 아들이 엄마쇠안박았잖아 그러자 최집사님이 박았어야 수술할때 그랬다. 그 뒤부터 최집사는 나를 신령하게 여겨 받들어섬겼다. 다른 집사들이 나에게 기도를 받으러 왔다. 주일날 목을 못 움직이며 나를 따라 다녔다 기도해 달라고 나는 피해서 도망다니다가 목을 만졌는데 풍이 왔으니 빨리 한의원가서 침맞으라고 했다. 집사가 깜짝놀랐다 딸 혼수장만하느라 신경썼더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보험하는 집사님도 허리를 기도해달라고 해서 몸이 두부같이 되었으니 허리 보호대를 꼭착용하라고 했더니 병원에서 의사가 보호대하라고 한걸 안한다고 했다. 꼭착용하세요 말했더니 순종했다. 오른쪽팔이 아프다고 기도받으러온 집사님은 3개월 고생하셔야 겠네요 그랬더니 팔 수술후3개월간 어깨에 보호대를 착용하라고 병원에서 그랬다했다.
여름 수련회가서는 기도회를 해달라고 성도들이 그러자 일일 부흥회를 하고 기도받을사람기도받으라고 했더니 6분이 기도를 받았다. 하도 많아 낱낱이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2007년 1월 10일 딸 우림이가 천국을 가자 4월-6월 두달을 파키스탄에 가 있었다 한달은 쉬고 한달동안 주야로 성경만 읽었는데
16독을 하였다. 16독을 하고 나니 성경의맥이 뚫렸다. 구약과 신약이 하나였다. 성경 신구약을 꽉짜면 예수님의 피가 흐른다.
구약은 예수님의 그림자고 신약은 예수님의 현현 즉 나타나심이다.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령에 감동하여 책 이름을 주셔서 다 기록을 하였다.
할머니 한분이 애기가 병원에서 죽는다 했다고 걱정을 하자 이름이 뭐냐고 뭍자 파트마 4개월인데 머리에 물이 차서 한달 병원에서 입원했는데 못한다고 집에와 있다고 했다. 어디있냐고 데려와라 했더니 뒷집 가까운곳에 산다고 해서 같이 갔는데 눈코입만 내놓고 다 덮어왔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하루4번 수픈으로 우유를 떠먹여줬다고 했다.
덮어놓은걸 다 걷고 예수이름으로 안수를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자 실신해서 눈도 안깜박거리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이커지면서 흰동공이 튀어나올정도로 커졌다. 엄마에게 아이눈을 보라고 했다. 마귀도 들어가 있었다. 머리엔 열이 펄펄 나고 입술과 혀는 새까맣게타고 다 갈라져있었다.
엄마에게 우유병가져와라 했더니 한번도 빨아본적이 없다고 , 우유먹을 시간이 안됐다고 네번째 가져와라하니 작은우유병을 가져왔는데 엄마가 젖병을 입술에 대도 빨지 않았다. 아이를 달라고 하고 이름을 부르며 먹으라 했더니 빨다 쉬다 빨 기운이 없었다. 처음으로 젖병을 빨자 외할머니가 인살라 하더니 나보고 내일도 와 달라고 했다.
머리를 절대 덮지 말라고 하고 아이를 눕혀놓지만 말고 안아주고 말도시키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아빠 엄마에게 일러주고 그 다음날 또 찾아갔다.
아이 눈동자에 힘이 생겼다.
두꺼운 손수건 하나를 아이 이마에 올려놓아서 그것을 치우며 깐디마마(나쁜엄마)라고 하면서 이것도 올려놓지 말라고 했다. 아이 머리에 물이 차서 머리가 엄청크고 전신은 뼈만 남아 있었고 아이 머리가 울퉁불퉁 이티처럼 무섭게 생겨서 엄마가 덮으려고 한것이다.
우유를 가져와라 했더니 또 안빤다고해서 직접 아이를 안고 젖병을 입에대자 아이입술이 빨려들어갈 정도로 힘이 생겼다. 머리에 열도 다 내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이 머리에 손을 대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돌아와 전화를 했다 건강하게 다 낳았고 지금도 살아있다. 병원에서 3개월동안 입원해 손과 발에 주사바늘을 얼마나 많이 꽂았는지 아이 손발이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딸아이가 태어난지 40일 만에 천국에 가서 파키스탄에 쉬러 갔는데 파키스탄에 있는 4개월짜치 파트마를 나를 통해 살리셨다. 갈때 비행기 안에서 밖을 봤는데 어딘지 장소는 모르지만 커다란 원통이 떡국을 위에서 만듯하게 자른것처럼 반듯한 원통들이 16개정도 모여 있었다 밑으로 쭉쭉뻗어 있었고 반듯하게 신기했다. 20여번 해외다녀 비행기를 탔지만 첨으로 보는 원통 구름기둥이였다. 그것을 보면서 파키스탄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구나 깨달았다.
파키스탄에 두달있는동안 산부인과원장 마음의 상처 안수해줬더니 한국돌아올때 편지와 선물을 주었다. 15명을 치유 안수 하였다. 무릎 아프신분 발목저는분 등등
20세부터 예언사역, 집사로 갖가지 주일학교교사, 중고등부교사, 성가대 소프라노, 찬양단, 강단꽃꽂이, 구역강사, 여전도회장, 성미부장, 기도부장, 1993년 개척교회첫성도로 4년간 물질및 봉사, 찬양율동 워쉽지도, 노방전도 및 심방.
1997년 통신성경통신대학 4년졸업후 인천신학1년때부터전도사사역 및 전임 서울역 중림교회, 목동 방주교회, 횃불교회, 방화동 로뎀교회, 공항동 벧엘교회, 은평장로교회에서 마지막 전임사역을 했다 2008년 장로교단합동측12년간전도사사역.
2009년 8월2일 화성자택37평에서 개척시작
2010년9월4일 은혜교회 기도원설립
2011년 6월 세계적인치유목사로 국민일보, 기독교신문, 크리스챤신문 광고나감
2013년 1월 16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평리 87번지(지원빌딩45평).
(13일 주일새벽 성전계약하는 꿈을 보여주시더니3일만에 들어서 옮겨주셨다. 20평에서 45평발안시내금싸라기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