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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B. 워필드 스크랩 워필드 벤자민 브렉켄리지(Warfield Benjamin Breckinride;1851-1921)
한아름 추천 0 조회 73 12.08.25 11: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워필드 벤자민 브렉켄리지(Warfield Benjamin Breckinride;1851-1921)

글쓴이: xian    07.11.03    http://cafe.daum.net/xingyuanxiaoqu/1ZNN/403

 

 

워필드 벤자민 브렉켄리지(Warfield Benjamin Breckinride;1851-1921)

 

 

 

 

 

 

 

* 찰스 하지의 제자
*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
* 성경 무오의 교리를 방어한 신학자

 

http://cafe.daum.net/hi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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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mokpojsk/130004103987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과학관
    - 찰스 핫지와 벤자민 워필드의 변증학를 중심으로 -


               최태연 박사(천안대학교 기독교철학 교수)


1. 들어가는 말: 신학과 과학의 관계설정을 위한 구프린스턴 변증학의 의미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유전자와 생명복제라는 용어가 일상화 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초전도체와 나노과학이라는 유행어가 다가오고 있다. 이렇듯 과학기술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기관이 된 오늘날 과학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통해 양자 사이의 관계를 바로 설정하는 일은 신학이 해명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개혁신학의 여러 전통과 학파들 가운데 구프린스턴 학파(the Old Princeton School)가 있다. 구프린스턴 학파란 1812년에 설립된 프린스턴 신학교가 1929년 행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재조직되기까지 지속되었던 신학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구프린스턴 학파의 신학적 전통은 그레샴 메이첸에 의해 새로이 설립된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 의해 이어졌다. 구프린스턴 신학은 창조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절대진리로 인정하는 개혁주의 진리관에 서 있다. 칼빈으로부터 출발한 개혁주의의 전통을 이어 구프린스턴 신학은 과학을 비롯한 그 시대의 학문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구프린스턴의 신학자들은 과학을 신학으로부터 배제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 과학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했던 것이다. 반면에 그들은 끊임없이 과학의 연구결과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의해 평가하면서 과학지식의 한계를 신학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구프린스턴 학파의 신학자들 가운데 조직신학과 변증학을 대표하는 두 신학자인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와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의 과학에 대한 기본입장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평가를 살펴봄으로써 과학과 신학의 관계설정에 대한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먼저 구프린스턴 학파의 기독교 변증학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 강조를 설명하고 이러한 양면성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과학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핫지와 워필드가 가졌던 과학에 대한 기본입장과 진화론에 대한 평가에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필자의 의도는 이러한 해석작업을 통해 신학이 과학에 접근할 때 얻는 결실과 더불어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구프린스턴 학파의 예를 통해 보이는데 있다. 신학이 과학과의 관계설정을 위해 노력할 때, 신학은 그 시대의 과학이나 학문과 함께 가면서 신학적 진리의 보편성을 보다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이 과학의 타당성과 한계를 어디에서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하는지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핫지와 워필드는 공통된 변증학의 입장에 서면서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은 복음주의권의 신학자와 과학자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비록 이 논문은 구프린스턴 학파의 변증학을 대표하는 핫지와 워필드의 방대한 저작들 가운데 극히 제한된 내용만을 제한적으로 다루지만, 21세기초의 한국의 개혁신학과 기독교학문에서 구프린스턴 변증학이 추구했던 신학과 과학의 관계설정에 대한 연구에 자극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2. 구프린스턴 변증학의 양면성

구프린스턴 변증학은 개혁주의 전통에 서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고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를 최종 권위를 가진 진리로 높이는 반면에,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산물인 근대학문의 진리발견 가능성 역시 높이 평가하고 가능한 한 신학과 조화 내지 상호 보완하려고 했다. 이러한 노력은 성경, 신앙, 과학, 도덕, 문명이 서로 공통된 기반인 하나님의 창조에서 출발한다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학문의 생명전개는 점차로 신학과 학문, 신앙과 문명 사이의 긴장을 점점 강화시켰으며, 구프린스턴의 신학자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진화론과 같은 첨예한 문제에 대한 내부적인 견해차를 드러내게 했다.

 

 

구프린스턴 변증학이 가진 양면성은 다음의 표현들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이 진리는 아니다". "신학은 학문과의 통일을 지향한다. 그러나 학문은 신학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이러한 양면성을 기꺼이 수용했던 이유는 '학문을 통합할 수 있는 신학 모델'(a model of the sicence integrating theology)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필자는 구프린스턴 변증학의 두 원리인 '신학과 학문의 통일성' 및 '학문의 한계와 신학의 우월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2.1 신학과 학문의 통일성

2.1.1 통일성의 근거: 사실(facts)과 상식(common sence)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에게 신학과 학문의 통일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적인 기반은 인간의 '감각'(sense)을 통해 주어지는 '사실'(facts)이었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감각기관(sense organ)을 통해 지각된(perceived) 사물이 그 사물의 실재(reality)와 틀림없다는 인식론적 입장에서 비롯된다.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이 입장을 장로교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성립된 '상식철학'(Common Sense Philosophy)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상식 실재론'(Common Sense Realism)이라고도 부르는 이 철학은 스코트랜드의 목사이며 철학자인 토마스 리드(Thomas Reid, 1710-1796)에 의해서 창시된 영국 경험론의 한 흐름이다.

 

 

리드는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된 세계는 세계의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관념(ideas) 또는 인상(impression)에 불과하다고 본 로크나 흄의 '경험비판'적인 인식론을 반대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감각경험을 통해 실재하는 세계를 직접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유하는 상식(common sense)에 의해 확인된다고 생각했다. 이 입장은 흄의 회의론이나 루소의 혁명적인 계몽주의 대신에 18세기와 19세기의 미국의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던 인식론적 입장이었다. 이러한 상식실재론에 입각하여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상식적인 감각경험을 통해 인정된 사실에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즉 모든 사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실이므로 그것이 어떤 학문에 의해 밝혀지든지, 신학적으로도 인정해야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undeniable truth)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의 공통경험에 의해 알려진 사실은 신학과 다른 학문 모두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다.

 


프린스턴의 설립자이며 첫 교수였던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1772- 1851)는 그의 변증학 강의안 "진리의 본성과 확실성"(Nature and Evidence of Truth)에서 "감각은 적합한 대상과 적합한 영역에서 일어날 때 분명하고 확실한 정보를 준다. 그리고 감각대상을 잘못 파악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어떤 감각작용의 결과를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추론하는데서 일어난다. 만일 어떤 판단이 정확하다면 그것은 이성의 빛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성만으로는 감각의 오류를 결코 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인식의 근거를 상식적인 감각에서 찾고 있다.

 


찰스 핫지는 알렉산더의 상식 실재론을 더욱 확장하여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신학을 성립시켜주는 '원리들'(principles)이 경험적인 사실로부터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학에서 처럼 신학에서도 원리들은 사실들로부터 파생되지, 사실들이 원리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속성, 운동법칙, 자기와 빛의 법칙 등은 정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원리들은 사고의 법칙들이 아니며 사실로부터 연역된 것이다. . . . 신학자들에게 가장 비학문적인 일은 이론을 덕과 죄와 자유와 도덕적 의무의 본성에 대한 원리로 설명하고 그 다음에 이 이론으로 성경의 사실을 해명하는 일이다. . . .사실에 의해 이론이 결정되며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학문과 신학의 근본원리이다. 귀납의 원리가 허용되고 충실하게 수행될 때 자연과학이 혼돈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신학도 동일한 원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사변으로 혼란스럽게 된다" 이처럼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신학과 학문의 통일성의 근거를 철저하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에서 얻는 사실로 인정했다.

 

 

 


2.1.2 신학과 철학의 통일성

모든 지식의 성립근거를 감각경험에서 출발하는 구프린스턴 변증학에서도 이성(reason)은 특권적 위치(the prerogative)를 가졌다. 구프린스턴의 조직신학을 체계화한 찰스 핫지는 성경에 근거한 신앙은 반드시 사실과 일치하는 확실성을 요구하는데 성경 계시(revelation)가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 역할을 철학적 이성이 맡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핫지는 계시를 "정신에 대한 진리의 커뮤니케이션"(the communication of truth to the mind)이라고 정의하면서 우리가 계시를 믿기 위해서는 계시의 내용에 대한 지성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영혼이 불멸한다든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의미를 받아들이는데, 그 단어들의 의미를 모른다면, 우리의 정신에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으며 아무것도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지식(knowledge)은 신앙(faith)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핫지에게 정당한 이성과 철학은 계시신학에 필수적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이성의 권리와 정당성을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 이성은 항상 사실(facts)에 근거한 내용을 참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확실하고 정당한 이성의 주장은 계시와 모순되지 않는다. 기독교가 거부하는 것은 건전하고 타당성 있는 이성 자체가 아니라, 이성을 무시하는 미신이나 사실을 왜곡하는 독단적 이성주의일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가장 특권적인 이성이 스스로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합리적인 피조물인 인간으로부터 비합리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식 없는 신앙을 요구하지도 않고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신앙이나 불확실한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미신과 [독단적] 이성주의와 동시에 대결한다. 전자는 타당한 확실성이 없는 신념이고 후자는 신앙을 갖기에 충분한 확실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으면 거절한다."

 


핫지는 신학과 철학은 이성의 정당성이라는 공통근거 위에서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진리를 통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신학과 철학의 공통점은 첫째, "두 학문이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 그리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가르치고 있고", 둘째 "두 학문의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며", 셋째, "두 학문의 방법은 각각 정당하다고 인정되며", 넷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본성과 만물의 창조자이므로 진리로 인정된 우리의 본성의 법칙이나 외부 세계의 사실은 어느 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대립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경험과 이성을 바로 사용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추론하여 만든 철학이 신학과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핫지의 낙관적 입장이 잘 드러난다. 따라서 핫지는 신학과 철학이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서 통일된 입장에 도달해야 한다는 기대를 강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인식의 원천[철학과 신학]은 각자의 타당한 가르침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 . 철학자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신학자는 학문의 가르침에 무지하지 말아야 한다."

 

 


2.1.3 신학과 과학의 통일성

철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창조세계의 '사실'을 밝혀내 주는 한, 과학은 신학이 제시하는 진리와 전적으로 조화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입장이었다. 그들은 경험적 사실을 부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경험을 근거로 하여 세운 과학이론들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고 동반자로 인정하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데에는 스코틀랜드 상식철학의 영향 이외에도 천동설을 끝까지 주장했던 로마가톨릭 교회의 오류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었던 것은 과학과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하는 일부 부흥운동이나 재세례파 계통의 개신교회의 편협한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에 의해 대변되는 근대과학과 산업혁명이 이루어 낸 19세기의 문명에 대한 분리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문명과의 조화 속에서 기독교의 복음과 건전한 교리를 지키고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핫지와 워필드는 신학과 과학과의 통일성을 더욱 강조한다. 핫지는 신학과 과학의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로 인정된 과학적 진리와 갈등에 빠지는 성경해석을 주장해서도 안되며 "신학자들은 성경이 이미 확립된 사실과 조화되도록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학과 과학의 친화성은 신학에 과학의 귀납적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그의 신학방법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자연이 과학자에게 주는 의미는 성경이 신학자에게 주는 의미와 같다. 즉 자연과 성경은 양자에게 사실의 백화점이다. . . .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확실하게 만드는 [신학의] 방법은 자연이 가르치는 바를 확실하게 채용하는 자연[과]학자와 같다"

 


워필드는 핫지의 귀납적(inductive) 신학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학문으로서의 신학(theology as science)을 모색한다. 이때의 학문은 좁은 의미의 자연과학(natural science)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을 통합한 상호연결체계'(a correlated system) 내지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하나의 체계'(one all-comprehending system)를 말한다. 워필드에게 지질학(Geology)은 지구에 관한 사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학문으로서 존중되지만, 생리학(physiology), 심리학(Psychology), 천문학(Astronomy) 같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실재세계에 대한 부분적인 사실을 제공할 뿐이다. 개별적인 자연과학의 연구결과에 대한 체계적으로 연결된 지식은 바른 합리적 추론을 통하여 얻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완전한 체계를 얻을 수 없고, 우주 전체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관계를 계시를 통해 제시하는 신학만이 하나님과 외부세계와 인간자신에 대해 체계화된 지식을 보장해 준다. "하나의 학문은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주체-물질(subject-matter)의 객관적 실재로부터 정의된다. 신학이 전제하는 실재는 자연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과 우주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2.2 학문의 한계와 신학의 우월성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철학과 과학을 비롯한 학문의 권리을 인정하고 신앙의 진리와 경험 및 이성의 진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들이 계시에 근거한 신학과 인간의 능력에 근거한 다른 학문을 궁극적으로 동등한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지, 합리적 이성이나 감각경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은 다른 학문과의 조화를 지향하면서도 성경적 신앙(biblical belief)과 경건(piety)의 강조하는 신학을 수립했다.

 


아치발드 알렉산더는 1812년의 교수취임강연(Inaugural Address)에서 성경의 최종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미래에 대한 구별되고 충분한 계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 . 미래 세계의 존재는 더 이상 불확실한 추론이나 개연적인 추측에 의해 모여진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진정한] 증거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나머지의 것에 확실한 근거를 줍니다. 이 [최종의] 진리를 위해 모든 사실과 복음의 가르침이 연결됩니다".

 


찰스 핫지 역시 철학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철학을 뛰어 넘는 권위를 성경 계시에서 찾는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철학은 진리에 대한 인간 지성의 결론인 반면에, 성경은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이다. 두 가지가 서로 대립이 되는 곳에서는 철학이 계시에 따라야만 한다". 핫지와 마찬가지로 워필드에게 학문에 대한 신학의 우위는 쓰여진 계시인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성에 기인한다. "따라서 신학은 삶에서 제공된 사실들에 대한 귀납적 연구가 아니라, 쓰여진 계시에 의해 제공된 사실에 대한 귀납적 연구인 한, 신학은 모든 다른 과학보다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다. 그러므로 신학은 모든 학문의 맏이이다."

 


워필드는 신학의 우월성을 두 가지 방향에서 확인한다. 첫째, 신학은 모든 학문의 지식을 종합한 완성된 체계이고 둘째,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상호 소통하는 경건의 학문이다. 워필드는 그의 조직신학과 변증학의 프로그램을 제시한 1894년의 논문 "조직신학의 이념"(The Idea of Systematic Theology)에서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강조한다. "신학 안에서만 다른 모든 학문들은 완성을 발견한다. . . 모든 다른 학문들은 신학에 보조적 역할을 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재료는 신학의 건축을 세우는데 사용된다. 신학은 하나님을 다루며 그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그 관계를 구성하는 사실들은 자연과 역사의 모든 사실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사실들을 과학적인, 즉 이해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역할은 다른 일반 학문들의 고유한 기능이다. 따라서 학문적 신학은 다른 신학 분과(성경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머리인 것처럼, 일반 학문들의 머리이다"

 


동시에 워필드는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론 자체에 있지 않고, 복음사역과 경건에 있다고 말한다: ". . . 조직신학자는 최선의 의미에서 복음의 설교자이다. 그의 사역의 절정은 분명히 그가 파악한 진리의 논리적 체계화에 있지 않고 사람을 움직여서 그들의 힘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들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의 구원자와 함께 그들의 삶을 결단하고 그 분을 귀하게 생각하고 모시며 그 분이 보내신 성령의 은혜로운 영향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신앙과 학문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근원적인 통일 속에 있다는 확신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이 가진 변증학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에게 계시는 한편으로는 인간이 발견한 사실과 모순될 수 없으므로 신학은 사실을 밝혀주는 학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학문을 뛰어넘어 계시에 근거한 신학만이 일반 학문들이 밝혀낸 진리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를 보장해주고 절대적인 헌신을 가능하게 한다.

 

 

 


3. 찰스 핫지의 과학관

3.1 성경과 과학의 상호성


앞에서 이미 살펴 본 대로 찰스 핫지에게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밝혀내는 학문작업이므로 신학과 근본적으로 반대되지 않았다. 그는『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권에서 '창조'(creation)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과학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성경이 하나님의 성경인 것처럼 성경의 가르침과 과학의 사실사이에는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신자들이 다투는 대상은 이론이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이론들 중 여러 가지가 때때로 언뜻 보기에 그렇거나 실제로 성경과 불일치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들은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었거나 적절하게 해석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교회는 계속 과학의 발견을 수용하는 성경해석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권위에 손상을 입히거나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핫지는 과학을 대하는 기본태도로서 사실과 이론의 차이를 전제한다. 창조의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사실들이 추론을 통해 하나의 이론으로 엮어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체계화된 과학이론은 해석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과 체계화된 이론 사이에서 신학은 이중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성경 계시의 빛 아래서 잘못된 이론의 오류를 지적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명백한 사실과 어긋나는 잘못된 성경해석을 교정해야 한다. 핫지는 이러한 신학의 태도가 어떠한 이론이든지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과학에게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의 작은 행성 중에 하나이고 별들이 우주 전체에 편만 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을 때, 신앙은 비록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곧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하게 성숙했다. 그리고 고대의 모든 책 중에 성경만이 유일하게 과학의 엄청난 발견과의 일치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리고 만일 창조가 셀 수 없이 장구한 시대를 통해 지속된 과정이고 성경이 유일하게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입증될 수 있다면, [예일의] 대나(Dana)교수의 말대로 인간존재의 근원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utterly incomprehensible) 차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처럼 핫지의 변증학적 입장은 이미 해결된 지동설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기원에 관한 문제 역시도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성경의 가르침과의 조화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는다. 즉 핫지는 성경의 사실들이 근대과학에 의해 충분히 밝혀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졌다.

 

 

 


3.2 『다윈주의란 무엇인가?』에 나타난 진화론 비판

1859년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이후,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진화론(the theory of evolution)의 문제에 대해 찰스 핫지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미 『종의 기원』출판 후 3년 만인 1962년에 최초의 짧은 논평을 썼고, 마침내 1874년 『다윈주의란 무엇인가?』(What is Darwinism?)이란 저술을 통해 진화론에 대한 그의 연구와 평가를 집약한다.
핫지는 다윈의 책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연구가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연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진화론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윈주의는 세 가지 구별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진화 또는 모든 식물과 동물의 유기체가 하나 또는 아주 적은 수의 원시균류(primordial living germs)로부터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가정, 둘째, 이 진화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또는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 셋째, 그의 이론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요소로서 자연선택이 [초자연적 지성의] 설계(design)없이 비지성적인 물리적 원인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의 진화론의 설명원리 가운데 핫지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원리는 바로 세 번째의 원리인 목적론을 거부하는 자연선택의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손에서 떨어뜨릴 때, 그것이 우연이었다고 말하면, 그는 그 사건이 원인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고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종이 우연한 생명전개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할 때, 바로 다윈의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전체는 목적론에 반대하는 논증이다". 핫지가 다윈의 자연선택에서 목적론적 설명이 배제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주의 창조와 섭리과정에서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면 하나님이 의도와 목적에 의해 창조를 이해하는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핫지는 다윈이 창조주(the Creator)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서 초자연적인 목적 개념을 부정한 이유까지 설명한다: "왜 그는 하나님의 지성에 의한 결과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하나님이 식물과 동물의 복잡한 기관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설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에 그것들을 만들었는지 진화의 과정을 따라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시키는 대신에 설계나 목적개념 없는 설명방식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핫지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개념이 초자연적 설계나 목적의 원리를 방법론적으로 배제할 때, 결국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신학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도달한다. "자연에서 설계의 부정이라는 전체 이론의 결론은 하나님의 부정일 수밖에 없다. 다윈씨의 이론은 자연의 설계를 부정한다". 따라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무신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진화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윈씨 자신이나 그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이 무신론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이론이 무신론적이고 자연으로부터 지성적 설계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의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핫지의 이러한 판단은 성경과 과학이 원칙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다윈의 진화론 같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providence)를 무시하는 자연주의(naturalism)를 이론의 방법으로 삼을 때,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4. 벤자민 워필드의 과학관

4.1 신학과 과학의 분열에 대한 저항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비교적 연속적이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찰스 핫지의 상황과는 달리, 그의 후계자 역할을 맡았던 벤자민 워필드는 점점 연속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는 20세기 초반의 신학과 과학 사이에서 프린스턴 변증학의 입장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러한 학문적 추세에 대한 위필드의 저항은 1911년에 발표된 "인류의 고대성과 통일성에 대하여"(On the Antiquity and Unity of the Human Race)이라는 글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 이후 인간의 기원을 인간 이외의 다른 종에서 찾게된 나머지 불확실하게 된 인류의 통일성을 방어하기 위해 과학자들과의 의도적인 논쟁을 벌인다. 그는 더 이상 신학과 과학의 통일성에 대해 낙관론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성경과 과학자들의 견해차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함께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성경의 진술과 과학자들의 발견사이에 갈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자의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양자사이의 대립은 인위적으로 조장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지나치게] 짧은 기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인류사를 짧게 해석하는 성경해석은 그 정당성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성경자료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반면에 과학도 지구상의 인간 생명의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기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생명의 역사를 지나치게 장기간으로 보는 해석의 타당성을 엄밀한 연구자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

 


워필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는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를 너무 오래지 않게 파악했던 그 당시의 중도적인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 화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성경과 과학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급진적인 진화론자들을 반박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과학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생명, 특히 지구상에 인간이 지속된 기간을 무제한적으로 생각하도록 요구하는 태도는 점차로 사라졌고 현재는 중도적 평가를 하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이는데,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지속된 기간에 대한 중도적 평가는 대체로 만년이나 이 만년 이상을 넘지 않는다". 위필드가 지구의 나이를 최고 4000만년까지 추측한 그 당시의 급진적 지질학자나 비록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상의 생명의 나이를 연장하려고 했던 진화론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온건한 입장을 택하는 이유는 그의 관심이 과학연구의 결과를 가능한 한 성경과 조화시키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그 당시 '생물학적 진화론'(biological Darwinism)과 함께 대두되었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잊지 않는다. "인류의 통일성에 대한 성경과 현대과학 사이의 이러한 동의에 대해 만족하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인종적인 이해관계에서 이러한 통일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경계시의 영향 밖에서는 인간의 통합성의 이념은 매우 약하거나 거의 무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워필드는 신학과 과학의 분열뿐만 아니라, 과학의 이름아래 인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인종적 편견에 대하여서도 신학적인 저항을 했던 것이다.

 

 

 


4.2 섭리의 진화론적 해석 가능성

워필드는 그의 스승인 찰스 핫지의 변증학에 충실하게 자신의 변증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모든 사실은 하나님의 사실이다"라는 핫지의 기본명제에 따라 신학과 과학의 통합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했고 새로운 과학연구의 결과를 신학을 정점으로 하는 지식체계 안에 일관되게 수용하고자 했다. 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실을 귀납적으로 탐구하는 과학이론들이 신학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해석(interpretation)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진화론의 경우, 이미 그의 전임자 A. A. 핫지가 진화론을 "과학적 작업가설"(a working hypothesis of science)과 (자연주의적) "철학"(a philosophy)으로 구분하고 신학이 거부해야 할 대상은 생명전개(evolution)의 가능성을 일반화시킨 철학이론인 진화론이지, 생명의 기원과 과정을 해명하기 위한 과학적 가설로서의 생명전개의 원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던 것처럼 워필드는 다윈 진화론이 함의하는 과학적 가설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잠정적인 과학의 성과에 대해 맹목적인 추종과 일방적인 거부 사이의 중간(moderate) 길을 가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핫지 못지 않게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고 진화론이 가져온 과학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위필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창조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그는 마침내 1915년에 집필된 그의 마지막 칼빈연구인 "칼빈의 창조교리"(Calvin's Doctrine of the Creation)에서 이러한 해석을 펼친다. 그는 칼빈이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에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개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처음 창조 이후 모든 사건의 중간원인에 해당하는 '제2원인(second causes)을 인정했다는데 주목한다. 워필드는 칼빈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로부터 최초의 물질을 만드신 사건뿐만 아니라, 최초로 창조된 근원물질로부터 다른 사물들이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과정까지도 포함시켰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이 모든 과정에 작용하기 때문에 창조는 무목적적인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진화론과는 다른 의미의 '생명전개' '(evolution)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로 이해했다면 칼빈의 창조교리를 인간의 영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명전개적인 성격(evolutionary one)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초의 '혼돈 상태의 물질'은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지만, 아직 아무 형체도 없이 무엇인가가 될 가능성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존재하게 된 모든 사물은 인간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최초의 물질인 이 세계질료(world-stuff)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원동력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개되어 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동력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칼빈은 우주의 존재와 운동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강력한 유신론자(a high theist), 즉 초자연주의자(supernaturalist)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궁극적 제일원인'(prima causa omnium)이며, 이 말은 세계질료의 창조에서처럼 모든 사물이 그 존재를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이 일차적인 세계질료의 변형조차 직접적인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일어났고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의지에 기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진화론이 아니라, 순수한 생명전개론(pure evolutionism)이다".

 


여기서 워필드는 이른바 개혁신학의 전통적 교리의 하나인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ta)의 교리를 생명전개의 의미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 위필드는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현대의 과학과 조화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확인하고 변증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창세기 해석은 이미 핫지 시대로부터 지지되었던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또는 '오랜지구 창조론 (old earth creationism)을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워필드는 칼빈을 생명전개의 원리를 인정한 신학자라고 까지 말한다: "의심할 나위 없이 칼빈은 진화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명전개의 교리(a doctrine of evolution)를 가르친다. 그는 무로부터의 직접적인 창조행위를 보전하는 이외에는 생명전개의 가르침을 반대하지 않는다. 무로부터 직접 창조되지 않은 모든 것은 연이어 전개되었다(evolved). . . . 이 가르침이 질서 지워진 세계의 산출양식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육일을 여섯 기간, 즉 세계의 성장의 여섯 시대로 늘려서 해석해야만 한다. 만일 칼빈이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현대적인 생명전개론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워필드가 현대적인 의미의 생물학적 진화론, 즉 다윈의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입증"(proved)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프린스턴 대학 학장 맥코쉬(McCosh)를 반대하면서 진화론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a working hyperthesis)로 보았다. "문제의 전모를 고려할 때, 우리가 진화론의 극단적 형태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와 생명전개론 사이에 필연적인 적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라는 것과 기적적인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이론도 기독교교리의 커다란 변형과 성경의 권위의 현저한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핫지가 다윈 진화론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가져온 무신론적 함의를 부각시킨데 반해, 워필드는 반대로 생명전개론을 통한 창조론과 섭리론의 해석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윈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적 이론체계로 보고 무조적인 수용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5. 나가는 말: 구프린스턴의 과학관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적 입장과 그에 근거한 과학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과학관은 일관된 신학적 입장, 특히 변증학적 입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에게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사실을 탐구하고 밝혀내는 작업이므로 신학과 근본적으로 대립되거나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과학은 계시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과학의 진리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 신학과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과학은 자신의 주장을 유보하고 신학의 최종권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구프린스턴의 변증학의 역사적 모습은 이러한 변증학적 원리에 대한 적용이 항상 일치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상호제약적인 기본입장에 충실한 두 사람의 신학자, 핫지와 워필드가 진화론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했던 사실은 구체적인 과학이론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신학과 과학의 차이점를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과학과 신학의 공통점을 더 강조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 주었다. 핫지는 다윈 진화론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과 성경적 창조론의 신적 작정과 섭리에 대한 교리가 결코 조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진화론을 거부했고 워필드는 진화론을 하나의 작업가설로 보면서 성경의 창조교리를 생명전개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놓았다. 그러나 워필드는 다윈의 진화론 모델을 생명역사의 사실들을 밝혀주는 하나의 가설로 인정한 것이지, 이미 확증된 사실에 대한 과학법칙이나 의심할 수 없는 진술로는 보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구프린스턴 신학자들의 변증학과 과학관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그 시대의 학문과 과학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통합적인 신학을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신학을 성경계시의 절대성과 경건한 신앙 위에 세우기를 애썼던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졌던 문제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19세기 미국의 지식인 사회가 가진 특정한 철학에 기초하여 일반 학문에 대한 상당한 낙관주의에 머무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경험과 이성을 사용하는 학문들의 연구를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기여하는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통합적인 신학의 태도를 추구하는 길이 구프린스톤 신학자들을 되돌아보면서 얻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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