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여행을 가도 관심은 늘 커피에 있는지라 일본의 커피는 어떨까 궁금하였지요.
그러나 방문하는 지역이 소도시이고 패키지여행이라 사전 조사 없이 그냥 마주치게 되는 대로 경험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이동하는 버스에 탄 채로 길가에 보이던 여러 커피집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일본에는 커피집이 많다는 반증이 될 법도 합니다.
가는 날 8시 대한항공을 탔는데 기내에서 주는 커피는 향이 좋은 마일드 계통의 커피를 미디엄 정도로 볶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커피는 맛있게 뽑으려면 좀 어려운 편인데 고온의 물 온도, 충분한 커피 양, 약간 큰 분쇄 입자 등을 잘 맞추어야 하고 녹임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에 과잉추출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인지 약간의 아쉬운 좋은 향과 연한 물 맛이 섞인 시큼한 커피가 되었습니다. 종이 맛도 나고요. 종이 맛은 과잉추출이 원인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첫날은 일본의 맨 아래쪽 섬인 큐슈의 사세보라는 항구 도시에서 묵었습니다. 인구가 25만인가 하는 곳인데 미군기지와 해상자위대 기지가 있다고 합니다. 묵은 곳은 사세보시티호텔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관광호텔 수준이었습니다. 이곳 식당에는 슐라웨시 토라자 커피를 쓴다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커피 맛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결점은 마일드의 가벼운 꽃, 과일 향이 없다는 것 뿐이고 쓴맛 없이 균형 잡힌 좋은 맛이었습니다. 가장 궁금하였던 것은 추출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능 좋은 상업용 auto drip 머신이 아닐까 추측해 보면서 저도 그런 머신을 하나 구해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이 정도의 커피 맛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커피가게를 하나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식뷔페의 디저트로 이 정도의 훌륭한 커피를 내기는 가격 상 힘든 일인텐데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둘째 날 하우스텐보스에 갔는데 길 가의 매점에서 산 커피는 제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 커피의 맛이었습니다. 무거운 향이 강하고 진하고 씁쓸한 뒷맛이 오래가고... 두 모금이면 필요한 카페인 섭취 완료. 더 마시는 건 몸을 학대하고 싶을 때... 커피 자체의 신선도는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커피는 기본적으로 신선하다. 끝. 단 외국 브랜드는 제외.
사족 - 전형적인 일본커피라는 것은 저의 선입견으로 형성된 잘못된 이미지이어서 언젠가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호텔로 들어가다가다 '캬라반'이라는 커피전문점을 보고 나중에 시간 나면 들려야지 했는데 둘째 날 밤에 시간 내서 가보니 (일요일 9시 경이었는데) 문을 닫아서 들리지 못했습니다. 아쉬웠지요. 대신 그 시간까지 열고 있는 도토루, 시애틀즈베스트, 스타벅스를 들렸습니다. 맛은 도토루가 그중 가장 나았구요. 보통 그냥 마시는 커피 정도였습니다. 훌륭하지는 않고요.
시베스트와 스타벅스는 역시 원두에 문제가 있어 보였는데 신선한 향이 전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카페모카류의 달달한 메뉴로 승부를 내고 있더군요. 도토루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손님은 스타벅스에 많더군요. 스타벅스의 분위기가 손님을 끄는 것이겠지요.
세째 날은 고속도로 휴게소 커피 - 전형적인 일본커피.
네째 날은 벳부 스기노이호텔의 조식뷔페 커피로 시작 했습니다. 질이 한참 떨어지더군요. 한 모금 마시고 버렸습니다. 길가에 있는 커피집들은 집 앞에 UCC나 KEY COFFEE라는 브랜드를 붙여 놓았는데 그런 커피를 사용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비행장이 있는 후쿠오까로 가는 도중 다자이후라는 곳을 들렸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커피 볶는 집에 들릴 수 있었습니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 홀로 방문하였는데 100년 된 일본식 호텔 건물을 커피집으로 리모델링 한 곳이었습니다. 실내는 고풍스런 옛날 서양의 가구로 멋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BGM으로 오르골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실제로 큰 오르골(태엽을 감아주면 금속으로 된 소리판이 음악을 자동으로 연주하게된 기구)도 있어서 손님이 요구하니깐 태엽을 돌려 시연하더군요. 제가 마신 블렌드 커피의 잔은 웨지우드의 것을 사용하였고 종류가 다양하였습니다. 손님은 주로 50대 이상이고요 가격은 5000원 이상이었습니다.
관광지의 커피집이라 뜨내기 관광객이 들리는 집 같아 보였는데 장사는 무척 잘 되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니 쉴겸 해서 들어와 (손에는 기념상품 종이백 하나씩 들고) 커피 한 잔씩을 비운 후 힘을 내어 나가는 것 같아 보였지요. 제가 추측하기에 일본에서도 젊은 층은 스타벅스에 가고, 성장기에 커피집 문화를 커친 장년층은 이런 커피집에 들어와 옛날 메뉴판을 보고 - 아이스커피, 비엔나 커피 - 커피를 시키는 것이리라 하였습니다.
1킬로 짜리 후지로얄 직화식 볶음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연기가 실내에 체류하는지 공기에서 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오너인것 같은 제 또래의 남자가 종이휠터 드립으로 커피를 내렸구요. 에스프레소 머신은 없었습니다.
커피 맛은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이런 맛을 전에 본 적이 있었나 하고 기억하려 했지만 처음으로 느끼는 맛이었습니다. 단종 커피의 고유의 맛은 잘 잡히지 않았구요. 아마도...여러 종의 커피를 볶음도를 각기 달리 하여 블렌딩 한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상당히 특이하고 먹는 순간 아 돈 가치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요. 왜냐하면 밖에서 흔히 보는 커피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점이라면 가벼운 1그룹의 향이 없다는 것과 아주 약간의 종이 맛이 난다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너무 진하거나 강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쓴 맛은 가볍게 남는 듯한. (거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드립에서 과잉 추출하기가 참 쉬운데 그걸 피했더군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겠지요. 나한테도 알려줘요...
처음에는 그 맛에 약간 기가 죽었지만 뭐야 이거 쉽게 즐기는 커피가 아니고 괜히 어렵게 만든 것 아냐?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하게 만들다니! 하고 약간 평가 절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무시하기로...
이상입니다. 돌아오는 대한항공 비행기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느므 깜끔하몀서 미소가 나오는 여행기(?) 였습니다. 언젠간 저도 사진이 첨부된 기행문을 쓸 날이 오겠죠~ ㅎ
여행 축하드리고요 언제나 이런 맛을 알아낼수있을까 걱정아닌 시기심(?)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