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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증산교, 대순진리회 등 여러 명칭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들 종교에 대하여 명확하게 잘 알지를 못하고 오직 사이비로만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는 것이라고는 “도를 아십니까? 도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유명문구이다.
서울에 있는 영풍문고, 종로서적, 교보문고에서 “도, 불교, 참선 관련 서적” 앞에서 서성거리다보면
빼빼 마른 남자가 나타나 상기와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빙혼은 서울에 올라와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던 어느 해 가을, 토요일 오후에
교보문고에서 동학 관련 책자를 뒤적이고 있을 때 웬 남자가 나타나 도를 아느냐고 묻기에
“그러는 당신은 도를 좀 압니까?”라고 반문한 뒤 “어설프게 알면 사라지시고 제법 안다고 생각되면
나랑 2시간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하였더니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여 이 친구를 끌고
나와 세종로 길가 계단에 앉아 어스름이 저녁이 올 때까지 도를 이야기하다가 이 친구가 약속이
있다고 가 버려 그 뒤로 빙혼에게 도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좀 서운한 편이다.
도를 아느냐?
품질의 도를 아느냐?
술의 도를 아느냐?
남자의 도를 아느냐?
인생의 도를 아느냐?
노자의 도를 아느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없어 빙혼 인생이 좀 싱거워졌다.
모두가 현실 세계에서 돈 버느라 도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증산교 하면 강증산, 강증산하면 모악산, 모악산 하면 금산사, 금산사는 모악산 서쪽에 있고
모악산 동쪽에는 대원사, 수왕사, 동학사라는 절이 있고 는 김일성 할배 묘도 있다.
1970년대 가뭄이 너무 들었을 때 모악산에 있는 누군가의 묘 자리가 천기를 끊었다고 하여
인근 동네에 있는 아지매, 할매들이 괭이를 들고 묘자리를 가서 파헤쳤다고 하였는데
하여간 그 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던 기억들이 아직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국에 있는 산들은 자그마한데 하늘의 기가 모여 있는 산들이 몇 개가 있고
강화도 마니산, 충청도 계룡산, 전남/전북/경남 지리산, 김제 모악산, 진안 마이산 등이
지기(地氣)가 매우 강하다고 한다는데 도사들은 알아도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백두산도 일반인들이 등산을 하여 천지에 다다르면 그냥 와~하고 찰칵~ 사진을 찍으면 끝나지만
도사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천지의 기운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
이왕이면 명산을 갈 때는 가능한 도사들과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빙혼은 얼치기 도사가 아니기에 항상 혼자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각설하고
요즘 남아도는 것은 돈 대신에 시간과 병든 육신 밖에 없기에 항상 인터넷 탐험을 즐겨하며
지난 일요일에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글을 읽다가 증산교, 대순진리회 관련된 글 중에 몇 개를
골라 정리해 보고자 하는데 많은 분들이 증산도, 증산교, 대순진리회에 대한 너무나 편견이 심하고
이 종교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사이비로 몰아가기에 이왕이면 제대로 알고
말을 하였으면 바람이며 그래도 <증산교는 민족종교 일파>라는 것을 부인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자료 01>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 증산교(甑山敎)계통의 신종교.
1969년 증산교의 일파인 태극도(太極道)에서 분립했다.
교리는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和)·해원상생(解寃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종지(宗旨)로 한다.
성(誠)·경(敬)·신(信)의 삼법언(三法言)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안심(安心)과 안신(安身)의 이율령(二律領)으로 훈전(訓典)을 삼아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구제창생(救濟蒼生)·보국안민(報國安民)·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는 것이다.
주요행사는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姜甑山) 상제(上帝)와 태극도의 창시자인 조정산(趙鼎山)
도주(道主)의 강세일(降世日)과 화천일(化天日), 그리고 영대봉안일(靈臺奉安日)이 있다.
교단조직은 최고직책인 도전(都典) 산하에 협의기구인 중앙종의회가 있고, 그 아래에 육영사업부·
수강원(受講院)·감사원·종무원·정원(正院)·포정원(布政院)이 있다. 특히 종무원 산하에는 교리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대순종교문화연구소가 있다.
종단 계통의 교육기관으로 대진고등학교와 대진여자고등학교가 있고, 1992년 대진대학을 설립했다.
경전은 다른 증산교단처럼 〈대순전경 大巡典經〉을 사용하나 그것의 축약판인 〈전경 典經〉을
많이 사용하고, 정기간행물로는 계간인 〈대순회보 大巡會報〉와 〈생애와 사상〉이 있다.
전국에 소재한 교당은 약 140개이며 교직자는 약 1만 3,000명이다.
출처 : 다음
<자료 02>
대순진리회 (大巡眞理會)
증산교(甑山敎) 계통의 종단.
1958년 태극도(太極道) 도주(道主) 조철제(趙哲濟)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 영래(永來)와
제2대 도주 박한경(朴漢慶) 사이의 갈등 때문에 1969년 박한경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로 교단을 옮겨 명칭을 <대순진리회>로 바꾸었다.
그 뒤 적극적인 포교활동과 사회활동을 전개하여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으며, 현재 수십 개나 되는
증산교 계통의 종단 중에서 교세가 가장 크고 활동이 왕성하다. 조직의 운영은 도헌(道憲)에 따르며,
의결기관으로 중앙종의회, 집행기관으로 종무원이 있다. 대외 사업기관으로는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대순출판부·대진학원이 있으며, 감사원을 두어 도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안심(安心)·안신(安身)의 두 율령을 수행의 훈전(訓典)으로 삼아 무자기(無自欺)·지상신선실현·지상천국
건설을 목적으로 하며, 중심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 종지(宗旨)는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
人造化)·해원상생(解寃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이고, 성(誠)·경(敬)·신(信)을 수도의 요체(要諦)로 한다.
주요 연중행사로는 교조 강일순(姜一淳)의 강세(降世)와 화천, 조철제의 탄강(誕降)과 화천,
영대봉안(靈臺奉安)의 5가지 경우에 행해지는 치성이다.
경전은 《전경(典經)》이며, 신도들의 생활에 근본지침이 되고 있다.
<자료 03>
증산교 (甑山敎)
1. 의의: 증산교를 비롯한 증산계는 민족 종교이다. 일제시대에는 신흥 종교계를 주도하였으나
해방 후 침체하다가,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1901년 고부의 유생 강일순
(姜一淳)이 전주 모악산 밑에서 창도한 흠치(徘爬)교와 나중에 그의 부인 고씨가 창도한 태을교 등을
통틀어 이른다.
2. 교주와 사상: 교주 강일순(호, 道號)의 원래의 호는 증산이었다. 그는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란이 실패한 후, 팔도를 돌다가 모악산 대원사에서 대각하고, 동학처럼 후천 선계 개벽(後天仙界
開闢)을 주장하는 흠치교를 창설하였다. 그의 사상은 해원 상생 사상(解寃相生思想), 인존 사상(人尊
思想), 천지 공사(天地公事)로 집약되며, 이는 다시 운도(運度) 공사와 신도(神道) 공사로 구분된다.
그러나 교주가 죽자, 부인 고씨가 태을교를 만들어 재기를 노렸으나 많은 분파로 갈라졌다.
강일순은 자신을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대권을 가진 자로 주장하면서 천지 공사를 행하였다.
천지 공사란 구천 상제(九天上帝)인 강일순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계와 신명계의 모든 원한들을
해원(解寃)시키고 우주의 운행 질서인 천지 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쳐, 후천 선경(後天仙境)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3. 분열: 강일순 사망 후, 부인 고판례(高判禮)는 이종사촌 차경석과 1914년 강일순을 교조로,
자신을 교주로 선도교(仙道敎, 太乙敎)를 창립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차경석이 교권을 장악하여
1922년 교명을 보천교(普天敎)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별로 발전이 없었지만, 학계의 관심을 끌면서
증산 진법회, 대순진리회, 증산도 등이 등장하였다.
차경석의 보천교 교의는 인의(仁義)였고 강령은 경천, 애인, 정륜(正倫), 명덕(明德)이었다.
이들은 분열을 거듭하다가 나중에 동화교라는 종단을 만들었고 해방 후 증산교로 개칭하였다.
한편 조철제는 보천교에 입교하여 안면도에서 활동하다가,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정읍에다
1928년 무극 대도교를 세웠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이를 태극도로 개칭하였다.
4. 대순진리회와 사상: 그 후 증산교의 모든 교권은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교주인 박한경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며, 절대 복종의 전횡을 시작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간부들이 그의 부정행위를 고발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죄로 풀려났으며,
그 후 권한을 더욱 강화해 갔다. 이들의 신조는 음양 합덕, 강령은 안심(安心)과 안신(安身) 등이었다.
증산계는 이 밖에도 1973년 배용덕이 서울에서 창교한 증산 진법회(眞法會),
1978년 보천교의 신자 안세찬의 아들 안중건이 창교한 대법사 증산교 등이 있다.
증산교의 경전은 증산 천사 공사기, 대순 전경이 있고, 의식은 주문과 부서가 있다.
교리와 사상 중 이들이 믿는 신이란 인간이 죽은 다음 그 영체가 신계에 들어가 천상의 지위에
따라 활동하면서 만물과 만사를 주재하는 존재이다. 즉 인성의 전화(轉化)이며, 신격이란 인격의
꼴바꿈 정도이다. 따라서 이들의 신관은 의인관적 다신관적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에 연원을 둔,
한국의 전통적 신관이 그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천지 공사는 선천 시대의 불합리한 운행 질서, 이법(理法) 등을 타파하고,
후천 선경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법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원 상생의 이념은
사회의 긴장과 혼란을 제거하고, 이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이다. 또한 인종 사상이란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상호 존중되어야 함을 말한다(人乃天).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04>
증산교 甑山敎
1901년 고부(古阜) 출신의 유생 강일순(姜一淳, 1871~1909) 이 전주(全州) 모악산 아래에서
창도한 흠치교와, 나중에 그의 부인 고씨(高氏)가 창도한 태을교를 비롯하여 현재의 대순진리회에
이르기까지, 이 계열의 교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
교주 강일순(姜一淳)의 도호(道號)가 증산(甑山)이었으므로 증산교 또는 증산교단이라고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흠치교라고 하였다. 강일순은 24세에 동학(東學) 교도가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
동학혁명 때 봉기를 반대하고, 백성의 구제책을 찾는다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점(占)과 의술을
익혔다. 강일순은 전국을 떠돌다가 모악산 대원사(大願寺)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동학과 마찬가지인 ‘후천선계개벽(後天仙界開闢)’을 주장하는 흠치교를 창설하였다.
1900년(광무 4) 고향에 돌아와 유(儒) ·불(佛) ·선(仙)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신화일심(神化一心)
·의인상생(義仁相生) ·거병해원(去病解怨) ·수천선경(修天仙境)의 4대 강령 아래 포교를 시작하여
크게 교세를 떨쳤으나, 39세에 병사하였다. 그 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로 집약되며,
그것은 다시 운도공사(運度公事) ·신도공사(神道公事) ·인도공사(人道公事)로 구분된다.
그는 여러 가지 이적(異蹟)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죽은 후 교인들이 흩어지자 1911년
그의 부인이 태을교(太乙敎)를 만들어 교인들을 다시 모았으나, 그 후 보천교(普天敎) ·미륵불교
·모악교(母岳敎) ·용화교(龍華敎) ·증산대도 ·태극도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등 많은 파로 갈리었다.
<자료 05>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증산교(甑山敎) 계통의 민족종단 중 하나.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이 죽고 나자 증산교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때에 경상도 함안 출신의 조철제(趙哲濟;일명 鼎山)를 중심으로 하여 파생된 태극도(太極道)의
도주(道主)가 죽고 그 유명(遺命)대로 박한경이 제2세 도주가 되었는데, 조철제의 아들인
영래(永來)와의 사이에 알력이 심해졌다. 그 갈등이 노골화하자 박한경이 추종자들과 상경하여
성동구 중곡동(中谷洞)에 자리를 마련하고 '대순진리회'라는 간판 아래 포교를 시작하였다.
분파된 여러 갈래의 증산교 교파들 중에 가장 조직성을 갖춘 종교단체로서 능동적으로 현대화를
지향하며 활발하게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로 옮겨와 사회봉사 활동도 병행하며
교세가 급성장하자 1971년 종단 본부 건물인 도장을 짓고, 1987년에는 여주에 대규모의 수도장을
건립하였다. 교육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포천군 포천읍에 대진대학교을 설립, 운영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교단의 운영은 '도헌(道憲)'에 따라 운영되며 의결기관인 중앙종의회(中央宗議會)와 주요 집행기관인
종무원(宗務院)이 있는데, 종의회는 전국에 산재하는 교당·회관·회실·포덕소 등을 관리하는 자들 중
선감(宣監)·교감(敎監)·포정(布正)으로 구성되고, 종무원에는 기획·총무·교육·수도·교수부 등을 두어 각각
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그 밖에 대순종교문화연구소·대순출판부 등의 사업기관을 두고 있다.
중심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이고, 종지(宗旨)로는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造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 등의 실천목표와 윤리요강을 내세우고 있으며,
또 성(誠)·경(敬)·신(信)을 수도의 3대 요체(要諦)로, 안심(安心)·안신(安身)·경천(敬天)·수도(修道)를
4대 강령(綱領)으로 삼고 있다. 주요 경전은 교주 강일순의 언행과 행적들을 적어 놓은
《대순전경》으로서 이것이 곧 그 신자들의 신앙지침이자 생활의 표준이 된다.
<자료 06>
대순전경 大巡典經
증산교(甑山敎)의 기본 경전.
증산교 교주인 강일순(姜一淳)의 행적과 가르침을 적은 것으로,
1929년 이상호(李祥昊)·이정립(李正立) 형제가 편찬하였다. 이들 형제는 강일순이 죽자 그 제자인
차경석(車京錫)이 분파하여 세운 보천교(普天敎)의 간부로 있다가 탈퇴한 뒤, 현재의 증산교 교단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먼저 당시 구전되던 증산 강일순의 정확한 행적과 가르침을 증산 생전의 여러
제자들을 방문하면서 수집, 정리하여 1926년에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를 편찬하였다.
이를 다시 수정, 보완하여 1929년 상생사(相生社)에서 출판한 것이 바로《대순전경(大巡典經)》의
초판으로 모두 13장 499절 249면으로 되어 있다. 1947년 일제하에서 기록할 수 없었던 내용을
추가하고 체재를 전면 수정하여 총 9장 731절 362면으로 증편한 것이 제3판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증보하여 1979년에 총 9장 859절 431면으로 낸 것이 현재의 제8판 《대순전경》이다.
경전이 증보되면서 증산교 교단 내에서는 각 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초판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따르는 반면, 다른 이들은 제3판이나 혹은
제8판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증산교 본부를 비롯하여 여러 교파에서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8판을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은 ‘천사(天師)의 탄강(誕降)과 유소시대’로 증산의 탄생설화, 가족과 성장과정, 동학운동 때의
체험 등을 담고 있다.
제2장은 ‘천사의 성도(成道)와 기행이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그 이후 행했던 각종의
기적내용을 싣고 있다.
제3장은 ‘문도들의 추종과 훈회(訓誨)’로 주요추종자들의 추종동기와 그들에 대한 증산의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다.
제4장 ‘천지공사(天地公事)’는 증산이 자신의 권능으로 낡은 하늘과 땅의 운행법칙을 고쳐서 말세의
재앙을 없애고 후천세계(後天世界)를 열어 인간과 신명(神明)을 구제하였다는 증산교 교리의 핵심을
상세히 적고 있다.
제5장은 ‘개벽(開闢)과 선경(仙境)’으로 우주의 계절이 바뀐다는 소위 ‘개벽’과 그 이후에 다가올
후천세계의 지상선경, 그리고 장차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6장은 ‘법언(法言)’으로 증산의 인존(人尊)사상, 해원상생(解寃相生)사상, 그리고 민족주체사상과
관련된 설교 내용을 싣고 있다.
제7장은 ‘교범(敎範)’으로 증산이 구성한 교단조직과 각종 주문 및 선교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제8장은 ‘치병(治病)’으로 증산이 그의 권능과 영험으로 행했던 각종 치유의 기적을,
제9장은 ‘화천(化天)’으로 증산이 죽을 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자료 07>
증산도(甑山道)
증산도(甑山道)는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을 교조로 모시는 증산교 계열 신흥 종교 중
하나로, 보천교 신자였던 운산 안세찬(안운산)과 아들 안중건(안경전)이 1978년 대법사 증산교로
창교하였다. 2015년 현재 증산교 계열 종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표 교단으로 추정된다.
강증산을 천지만물의 주재자인 상제(上帝)로, 증산의 아내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정통 후계자인 수부(首婦)로 섬기며, 이 도맥(道脈)을 강일순의 제자 이치복과 안세찬의 아버지
안병욱을 거쳐 창교주인 안세찬 종도사와 2대 교주 안중건 종도사가 이은 것으로 믿는다.
증산을 본래 천상의 옥황상제로, 주요 종교의 성자들이 증언한 상제님, 천주님, 미륵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을 개벽기에 지상에 내려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상생(相生)의 세상을 여는 천지공사(天地
公事)를 행하였다. 20세기 이후의 역사는 증산의 천지공사 내용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고 한다.
증산도의 중심교리는 증산도는 증산의 천지공사를 인사(人事)로 집행하는 단체이며, 가을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할 의통구호대를 조직하고, 후천선경 문명을 연다고 하는 주장이며 증산도의 경전은
도전(道典)이며 증산의 행적과 천지공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자료 08>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는 대순진리교가 1996년 창교주 박한경 도전이 사망하면서
갈라진 분파이다.
대순진리교 역사
1909년 강증산이 화천하자, 1925년 정산(鼎山) 조철제가 무극도를 세웠으며,
해방 후에는 부산 감천에 태극도를 창도했다. 1958년 조철제가 죽자, 유명으로 종통을 이어 받아
총도전(總都典)으로 임명된 우당 박한경이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다.
1996년 1월 박한경이 뚜렷한 후계자를 내세우지 않고 죽자, 교단은 서로 정통성을 내세우며
분파하게 된다. 1999년 7월 16일 박한경의 처남인 경석규와 정대진 측이 여주 도장에서
이유종 세력을 몰아냈다. 이어 중곡 도장으로 밀려난 이유종 측은 이듬해 1월에 여주 도장을
물리적으로 되찾으려 하나 실패한다. 한편 여주 도장 내부에서도 2000년 10월에 폭력 사태가
일어나, 경석규 측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다.
2000년 8월 17일 경석규, 이유종, 정대진, 윤은도 등이 서로 대순진리회를 대표한다며 법원에서
소송을 벌였으나, 2006년 12월 21일 대법원은 판결에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어서, 2010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정재헌, 이순악, 주훈재를 공동으로 법률상 대표자인
임시 종무원장으로 선임했다.
서로 갈등하던 경석규와 이유종은 2010년 사망했으며, 여전히 갈등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박성구를 중심으로 하는 포항 상도방면과 2대 도전을 주장하는 김찬성 중심의
청주 용암 방면 용화대미륵선도 등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
대순진리교는 강증산 상제를 하늘상제 정산 조철제를 땅상제 박한경 도전을 인간상제라고 불렀다.
<자료 09>
대순진리회 vs 대진성주회
대순진리회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단체다.
하지만 대진성주회는 생소하다.
비슷한 곳이라는 의견도 있고,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대진성주회의 모체는 대순진리회다.
대순진리회에서 1999년에 갈라져 나온 단체다.
두 단체의 홈페이지를 보면 거의 흡사하다.
홈페이지는 각각 따로 있지만 창설유래, 취지, 교리개요, 훈회, 수칙, 신앙의 대상인 구천(九天),
응원(應元), 뇌성(雷聲), 보화(普化), 천존(天尊), 강성상제(姜聖上帝)모두 완전히 똑같다.
가장 중요한 경전도 두 단체가 같아 이름만 다를 뿐, 믿는 것은 동일한 단체로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단체의 도장과 산하단체다.
먼저 대순진리회는 여주본부도장,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포천수도장, 중곡도장, 제주 수련도장과
40여 곳의 회관이 있고,
대진성주회는 중원도장, 대구도장, 부산도장, 대진수련도장과 10여 곳의 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종단관련 기관으로는 대진대학교,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분당대진고등학교,
일산대진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 분당 제생병원, 동두천 제생병원,
고성 제생병원, 대진요양시설, 대진요양병원, 대진노인복지센터가 있다.
대진성주회는 중원대학교, 강원 종합박물관, 제인병원, 양주 대진요양원, 동해약천온천 실버타운,
동해 보양온천 컨벤션호텔, 가야호텔 등이 있다.
대진성주회 관계자는 대진성주회가 대순진리회의 ‘성주방면’이라며 대순진리회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방면이란 쉽게 표현하자면 지부, 지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대순진리회 측 입장은 조금 다르다.
대순진리회 한 관계자는 “대진성주회는 1999년 분규가 있어서 나간 곳이다”라며
“그쪽에서는 나름대로 정통을 이어받았다고 논리를 세울 수 있으나 대순진리회 입장에서는
정통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덧붙여 “대진성주회가 사용하는 1999년 이전의 도장은 재산상으로는 재단법인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는 두 단체 관계에 대해 다소 엇갈린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는 뿌리가 같고, 1999년에 갈라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동일한 교리를 믿는 단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대순진리회와 대진성주회|작성자 hantae0307
<자료 10>
증산도의 시작은 1871년 탄강하신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 강증산 상제님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서기 1871년을 도기 1년으로 하여 증산도의 역력이 시작합니다.
상제님의 아버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대범하고 총명한 상제님의 모습을 보시고 스승을 붙여
주시는데 상제님께서는 하늘천자와 땅지자만 따라 읽고시고는 책을 덮고 나가시며,
시간되면 놀다 가시라고 일러 줍니다. 그리고 상제님의 아버님께는 남의 심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시고, 그 뒤로 부터 스승을 모셔오려는 생각을 버리십니다.
상제님께서는 성수 31세 되시던 해까지 머슴, 산판군, 나무꾼, 훈장 등의 인간 세상에서의 온갖 일을
경험하시고 성수 27세 되시던 해 3년간 세상을 돌아다니시며 인정과 물정을 세세히 살피십니다.
그 전까지 처남 정남기의 집에서 유불선과 서교 및 음양참위의 모든 교서를 읽으시고 그중 쓸 것만
추리셨습니다.
강증산 상제님께서 스승을 두었다는 것은 어릴때 상제님의 아버님께서 훈장 노릇을 한 분을
한분 붙여준 사실은 있으나 그 이외의 것은 기독교인이 타 종교를 까기 위해 허위로 조작해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야 말로 이집트와 인도와 티벳으로 유학을 가셔서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오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는 것이 법화경과 신약전서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한 사람들이 밝혀내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강증산 상제님께서는 서기 1901~1909년까지 자연계와 신명계와 인간계의 삼계의 질서의 틀을
새로 짜는 9년 천지공사를 집행하셨고 1909년 6월 24일 어천하셨습니다.
이후 1911년 상제님의 종통계승자인 태모 고수부님께서 통합교단을 여시고 임시로 선도(仙道)라
하라 하셨는데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선도교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제님의 성도이자 종통계승자이신 태모 고수부님의 이종사촌인 차경석 성도의 야망으로
통합교단은 깨어지고 상제님의 성도들은 모두 흩어져 각기 교단을 차리게 됩니다. 또 상제님을 직접
따르지는 않았으나 풍설로 배운 사람들이 각지에서 나타나 따로 교를 세워 하나의 종교적 교단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이들은 좋은 일을 하며 성장한 단체도 있고, 나쁜 일을 하며 성장한 단체들도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상제님을 따르던 성도님들이 각기 교단을 차린 경우는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 이치복 성도의
제화교, 안내성 성도의 태을교, 김형렬 성도의 미륵불교, 문공신 성도의 교단 등입니다.
풍설로 강증산 상제님의 도법을 배워 한판을 차린 단체가 곧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원불교,
통일교, 영생교, 무극도, 태극도, 태극진리회-천인교-대순진리회(용화일심회, 청우일심회 등), 탕탕도,
풍류도 등 그 외에도 현재 한국에는 수백 개의 유, 불, 선, 서교의 직접 간접 영향을 받은 종교
단체가 군립중인데, 대부분 19세기 20세기 초의 동학과 강증산 상제님의 진리에 기인 받은데
큽니다. 이는 현재의 기독교와 불교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학은 창시자 최수운 대신사께서 상제님과의 49일간의 천상문답사건을 통해 받아 내리신
동경대전과 수운가사를 그 경전으로 하는데 이들 경전이 내용은 상제님 세상의 도래와 후천개벽을
극복하는 무극대운이 열려 좋은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최수운 대신사께서는 상제님 세상의 도래를 미리 알리는 전령의 사명을 띠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한국적인 냄새와 한국적인 취향 한국적인 신앙 문화의 원형은
일제시대 2천만 인구 중 여성간부를 제외한 남성 신도들만 셈한 700만명이 신앙했던
보천교(1916~1936)에서 상제님 신앙에 영향 받았던 바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제님의 도맥은 태모 고수부님(1880~1936년 선화하심)으로 이어졌고 다시 1945~1954년
100만 신도를 규합하여 전후 한국사회의 사상계의 통합을 주도하셨던 안운산 종도사님께서
이으셨으며, 1974년 이후 안운산 종도사님을 안경전 종정님께서 모시며 증산도 3변도운의
역사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래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혼란기에는 딴 뜻을 품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종통이
있어도 종통을 부정하여 새로운 판을 차려 이설을 만들고 진법을 어지럽히는 일이 흔히 나타납니다.
종통계승자는 이러한 난법을 진압하여 진법을 들추어내는 것이 본업인데, 이미 증산도는 1992년
상제님과 수부님의 천지공사 행적의 전모를 드러내는 도전을 간행한바 있고, 2004년 태모 고수부님
성탄치성때 전국 각지에 흩어진 증언을 추적해 증보판을 재간하여 1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도전을
6개 국어로 번역하여 프랑크푸르트 도서 전시회에 하느님의 진리를 선보인바 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그 전신이 천인교이고 천인교의 전신은 박한경이 만든 태극진리회입니다.
태극진리회의 전신은 태극도이며, 태극도는 일제시대 여러 지 이름으로 교명을 바꾸어 왔었는데,
처음에 태극도는 조철제에 의해 무극도라는 교명으로 세워졌습니다.
일제시대와 대한민국의 여러 신문기록을 보면, 무극도, 태극도, 천인교, 대순진리회 등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며 괴이한 일들(상습가정파괴, 약취, 유인, 신도살인)에 관한 기사를 잊을 만하면
올려놓았기 때문에 사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70%는 일제 시대의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표적 사이비 종교 백백교와 1967년 에 생성된 대순진리회 및 그 전신들에 의해서
형성되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1996년 박한경이 사망하면서 더욱 사분오열되어 현재는 전국으로 수십 개의 도장별로
독립한 상태입니다. 그중 연천 종교 살인사건의 주 단체였던 대순성도회는 대순진리회였던 분파가
이름을 바꾸어 일으킨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사실 140년 200년을 잡고 길게 얘기 합니다만,
실제 한국사회에 성결교, 예수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등이
들어 온 것은 이승만 박사의 친미국 정책에 의한 것으로 길어야 4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파와 대순진리회가 1970~90년대까지 한국 종교계에서 다수의 신도를 무리하게 부풀리는
방식으로 신도를 모으다가 많은 부작용이 일어났는데, 신도재물갈취와 가정파괴 종말론 유포 등이
대부분 이들 단체에 의해 일어났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분쟁과 갈등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지금 제가 쓴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들일 것이며,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고, 오늘날 대순진리회는 엄격히 말해, 종교적 틀은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리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제대로 된 경전도 없는 상태에서 증산도의
진리서적을 이용하면서 증산도 종정이 대순진리회를 신앙하다 나간 사람이라는 원색적인 비방까지
하는 실정이니 진법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어떤 웃지 못 할 일까지 있었는가 하면, 증산도 안운산 종도사님 댁까지 찾아와 "증산도에서
나왔습니다"하더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증산도 신도는 지도자 댁은 다 모른다고 해도 지도자
얼굴은 다 알거든요. 대순진리회가 1990년대 이후 전 사회적인 100만에 이르는 가정파괴의
주범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포교의 길이 막히게 되자 서점 및 가가방문 길거리에서 증산도 신도를
사칭하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증산도 진리서적의 겉장을 뜯어내어 자신들의
교리서로 쓰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순진리회는 그간의 행적으로 볼 때 정말 추악하게 잘 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간판을 쓰지 않고, 자신들의 단체명을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또 누군가 일이 발생할
것이라든지,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나 이는 사술입니다. 원래 진리는 사람의 정신을 깨우쳐
밝은 곳으로 인도하니 항상 자신을 환히 드러내는 것이 그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며, 의롭고, 명명백백한 것이 특징입니다.
종통이 아니면 이롭지 않고, 정의롭지 않으면 이롭지 않으며, 인정이 아니면 이롭지 않으니
바라건대 가까이 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말씀드립니다.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1>
대순진리회의 역사는 대순진리회의 뿌리인 조철제(趙哲濟, 1895~1958)가 만든 태극도에서
출발합니다. 조철제는 1895년 을미생으로 태어나 증산상제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는
15세의 소년이었습니다.
1917년에 조철제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보천교 신도 김혁을 만납니다. 그는 용인 사람으로
국내에 들어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러 다니다가 정읍에서 보천교를 만나 신앙하게 된 것이며,
조철제의 가족들에게도 증산상제님을 믿으라고 누차 권유하였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조철제는 부산 감천동으로 이주하여 태극도를 열었습니다.
1955년에 스스로를 옥황상제라 칭합니다. 그리고 1958년2월 23일 박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고
1958년 4월24일에 64세로 사망을 합니다.
이로 부터 조철제의 아들과 시봉원의 도전이었던 박한경이 10년동안 교권을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1969년에 박한경이 서울로 올라가 1972년에 세운 것이 대순진리회입니다
조철제의 무극도(1921년 구태인에서) -> 천인교 -> 무극대도교 -> 태극도(1943년 부산에서) ->
박한경의 태극진리회(1968년) -> 정신회 -> 대순진리회(1972년)
대순진리회는 태극도에서 분파되어 나온 박한경(1917~1996년)이 1969년에 서울시 성동구
(현 광진구)중곡동 143-1번지를 매입하여 본부도장을 짓고 교문을 연 후 오늘의 분열사태에
이르기 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놀라운 교단발전과 대진대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종합병원과
화려한 수도장을 여러 개 지었습니다.
1996년 교주 박한경이 태극도와 차별되는 대순진리회라는 새 판을 차린 지 27년 만에 사망하고,
다시 3년 뒤인 1999년부터 교단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상위 핵심 임원 및 그 휘하의 방면들이
생사를 건 싸움을 거듭하면서 이제 분열의 길을 가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역사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지금 대순진리회의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가장 큰 분파의 계보는
경석규파와 이유종파입니다.
<자료 12>
님이 가본 곳이 여주본부도장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경석규파입니다.
서울제주는 이유종파입니다. 이들은 파벌싸움으로 폭력사태로 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이나 여주나 다 같은 곳입니다 자기들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위에 추천한 대순진리회의
비극은 그들의 뿌리인 박한경 때부터 대순진리회의 비리는 계속 되었기 때문입니다.
10년전 박한경이 죽기 전까지 신도들의 가장을 파탄시키며 착복한 돈의 일부인 2480억원으로
인해 박한경 사후 대순진리회의 내부 분쟁심화로 은행에서 지급정지한 것을 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기사가 있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신도들의 돈을 착복한 돈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 합니다.
위의 2480억원은 10년전에 신도들의 가정을 유린하고 파탄으로 몰아가면서 무리하게
성금을 거둔 증거입니다 .
지금도 어마 어마한 규모인데 십년전의 액수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성금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순진리회는 강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도용하여 국민을 기만하는 사기단체입니다.
범법행위로 대사회에 큰 피해와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역사는 실로 파란만장한 범죄행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거절은 단호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대순진리회의 비극 책 속의 주인공이 되실 것입니다.
자식이나 남편, 부모를 위한일이 아니라 더욱 고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입니다.
속히 대순진리회를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더이상 대순진리회의 피해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은 단순 비방의 글이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실제 대순진리회로 인하여 가정파탄과 가정을
유린당한 대순진리회의 과거 피해자와 피해사례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3>
대순진리회 수도인입니다.
참 마음이 찹찹하시겠습니다.
대순진리회에 발을 디딘지 얼마 안 되어서 돈 문제로 고심을 하시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역시 5개의 도장이 있지만, 도전님 화천하신 후로 법을 제대로 집행을 하고 있는
도장은 여주도장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뿐이랍니다. 이 두 도장은 모두 여주도장에다
성금을 모시고 있답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시운치성(입도치성)을 모실 때 만큼은 금액이 정해져 있지를 않는 답니다.
자기 자신이 평생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형편대로 하시면 된답니다. 그 이유는 구천상제님과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평생에 단 한번 직접 치성을 모시면서 처음으로 술잔을 직접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 부터는 한 달에 한번 내는 정성금이 있는데, 그 정성금은 학생일 경우는 만원까지
이고, 성인들은 한 달에 한 가족당 10만원 이하로 모시면 된답니다. 더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는
것이 한 달에 한번 내는 월성금이랍니다. 이 돈은 조상님과의 혈통 줄을 잇는 것이므로
아주 중요하답니다.
그리고 도장에서는 일 년에 구천상제님 옥황상제님 도전님 탄강일과 화천일, 명절, 자손이 없는
조상님 9월 9일, 애기 때 죽은 조상님 5월 5일, 사립이지 등 일 년에 약 20회의 치성을 모신답니다.
그 때마다 6,000 ~13,000 명 정도의 도인들이 참석하는 데 소 몇 마리잡고 되지 이삼 십마리 잡고
떡, 전, 과일 등 푸짐하게 준비하여 치성을 모신 후 모두 나누어 잡수시게 된답니다.
그러므로 치성이 있을 때마다 성금을 내는 것이 아니고, 한 달에 한번 내는 것으로 정하였답니다.
다만 월 성금을 모실 때 조상님께 치성물(사과, 술, 닭, 배추나 무 같은 채소, 돼지와 같은 음식물)을
올리고 싶으신 분들에 한해서는 자발적으로 올릴 수가 있는데, 그것만은 받아 주기로 하여
지금까지 시행이 되고 있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돈이 수도를 하면서 들어 갈 곳이 있다면 연락소나 회관을 지을 때입니다.
회관을 지을 때 상급자들은 자기집 짓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내도 상관이 없지만 상급자가
아닌 분들에게 한해서는 일백만원까지 모실 수가 있는데, 다소 형편이 괜찮은 도인은 자발적인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 200만원까지는 내실 수가 있답니다.
귀하께서는 도문에 들어오자마자 회관을 짓는 방면에 들어 오셨으므로 그렇게 되어서 부담이
커지게 되셨는데, 형편이 어려우시면 월성금만 내시고 일체 그 밖의 돈은 내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뭐 형편이 되신다면야 조상님들께서 춤을 추시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돈을 얻어서 낸다든지
갚을 능력도 없는데 카드를 긁어서 한다든지, 남편 몰래 돈을 마련하여 올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상제님에 대한 덕화손상이 될 수 있으므로 강력히 금하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의 법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선각이 하라고 해서라는 말은 자멸입니다. 선각이 이러이러하니 좋다는 말씀은 전하시겠지만,
그렇다고 가정의 형편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의 화목이 첫째이면서 상제님을 신앙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사람들이 물질문명에 치우쳐있고, 세상에는 효가 끊어져서
질서가 무너져서 금수와 같은 시대가 되었으며, 인간들은 각종 무기와 핵을 만들고 있어서
급기야는 이 지구가 깨지게 생겼답니다. 그리하여 원시의 신성.불.보살들이 구천에 회집하여
상제가 아니면 삼계가 진멸하게 되었으므로 살려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어찌할 수 없이
이 세상에 강세 하시게 되었답니다.
그런 구천 상제님께서는 하늘도 병들고, 땅도 병들고 ,사람들도 병들어서, 천하가 모두 무도병이
들었다는 진단을 내리시고 이를 뜯어 고치시는 대 수술(천지공사)을 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처방약을
내려 주시면서 그 처방대로 잘 수도를 하고 있으면 천하의 병이 치유가 되고, 또 도통까지 할 수가
있으며,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성 괴질병이 돌 때 살 수 있도록 하셨으며,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 줄 수가 있는 구원자의 자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려주시게 된답니다.
그리고 괴질 병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후천 오만년간 새로운 세상의 인간 종자가 되고 시조가 되는
영광을 받으며, 병겁이 없는 세상에서 불로불사하며 살 수가 있게 된답니다. 구천상제님께서는
석가와 공자와 노자와 예수와 같은 성인들을 이 땅에 내려 보내신 분이셨으나 그 성인들은
사람의 수명이 옛날에는 천여세를 살던 것을 단 오십년도 못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구천상제님께서 이 땅에 직접 강세하시면서 여자와 남자의 평등 공사를 하여 주시고,
또 인간들의 수명도 대폭 늘려 주시었는데, 불과 일백년 사이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80세
이상으로 올려 주셨으니, 석가.공자.노자.예수와 비교가 확실히 된다는 것이니 열심히 신앙하여
성공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돈 문제는 어디까지나 귀하의 형편껏 하셔야하고, 무리를 하여 올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되오니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발전된 모습으로 도통마당에서 뵙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4>
저는 대순진리회에 15년째 몸담고 있는 31세의 남성입니다.
포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대순진리회는 5개의 큰 도장이 있습니다.
1. 서울 중곡도장
2. 여주도장
3. 강원도 속초 토성수련도장
4. 포천 도장 [대진대학교]
5. 제주도 수련도장
어느 게 진짜고 가짜고 하는 건 없습니다.
1969년도에 대순진리회가 창설되었는데,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박우당 도전님께서 1996년도에 화천[타계] 하신 후,
각 방면별로 나뉘어 졌고요, 각자 해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해나가다 보니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수도를 바르게 해 나간다면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욕심을 자제하지 못해 죄들을 짓는 경우가 많죠..
저는 원래 하동방면에 입도를 했었지요. 1994년 제나이 19에 말입니다.
그 이후 3년을 쉬었다가 1997년도에 포항에 있는 상도방면으로 오게 됐습니다.
박우당 도전님으로 종통을 이은 분, 즉 정통성을 가진 분이 포항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간추려 말하면, 여러 군데의 대순진리회가 있는데,
그중 한곳은 참이지만, 나머지는 전부 참이 아니라는 것,
그 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죠...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5>
대순진리회..
아마 인터넷 검색을 해보셨으면 안티대순등 대순진리회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많은 자료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 대순진리회라고 미리 밝히는 것을 꺼려합니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먼저 가져버린다면 그 후엔 어떤 이야기를 하여도 들리지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순진리회는 박한경 도전님이 후계자 지명 없이 화천하신 후로 여러 갈래로 갈라져있는
상태입니다
크게는 도전님의 말씀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행하는 방면과
반대로 고치고 바꾸어 자신의 생각대로 수도하는 방면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들으신 여주본부도장은 도전님의 말씀을 도전님의 화천 후에도 그대로 따르는 곳입니다.
즉 진법이 머무는 곳입니다.
대순진리회라 하면 잘 모르거나 사이비 아니냐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대순진리회는 우리나라 5대 종교입니다. 최대 민족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분당재생병원을 비롯한 3개 대형병원, 대진대학교를 비롯한 2개 대학,
대진고, 대진여고를 비롯한 6개고등학교, 기타양로원, 성금기부 등등..
사회적으로 많은 교육, 의료, 복지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단 시설로는(진법만) 여주본부도장, 속초토성도장의 2개 도장, 수많은 회관, 회실, 포덕소가
있습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 참가했던 세계의 종교지도자들은
위의 여주본부도장과 속초토성수련도장을 관람하고 그곳에서 회의를 가졌습니다.
또한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유네스코의원은 대순진리회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제의했을 정도로
대순진리회의 도장, 교리, 수도법방, 취지, 가르침, 경전 등은 기존 종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대순진리회가 알려지지 않거나 비판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생색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순진리회는 본래 수도하는 곳으로 아랫사람은 물론 운영을
맡고 있는 윗사람까지 모두 수도를 합니다. 단순히 믿는 신앙인이 아닌 자신을 닦는 수도인으로서
자신의 자랑은 하지 않습니다.
증산도의 비방에 한마디의 반박도 하지 않고 그런 것엔 관심도 없는 것이 대순진리회입니다.
일단 정성을 모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대순진리회에 대한 오해를 푸시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차차 들어 보십시요.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는 그때 결정해도 늦진 않습니다.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6>
정역사상은 역학자 이운규로 부터 주역을 배우다가 중국의 易을 한국적으로 해석하여
1885년 정역을 발행 후천개벽을 말한 김일부(본명:金恒,도심)에게 배운 몇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어
교주노릇을 하게 된 것인데 김일부는 종교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일순(호가 증산,자는 士玉,1871-1909)은 증산교를, 하상역은 대종교, 황대순은 大同敎,
성주탁은 정경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증산교도들은 김일부에게서 배운 게 아니라고 우기지만 이는 교주를 신격화하느라 그런 것이고
사실을 아니라하면 도리어 종교인의 거짓말이 되는 것이죠.
사상이란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의 사상인지 알게 됩니다.
정역의 근본사상은 중국의 역학 사상과는 반대로 선후천의 개념을 다시 설정하고
후천개벽 사상을 역리적 논리 형식으로 하여 천도의 일월개벽 사상으로는 윤변위정 원리를
주창하고, 인도의 신명개벽 사상으로는 패화위론의 원리를 내세워 역수 원리를 기본으로 한
우주사적 원리를 규명하려한 철학적 사상임.
이러한 사상은 동학의 최제우와 쌍벽을 이루었는데,
강일순은 음,양(주역에서 인용)조화의 이법에 따라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 運度이며
선후천이 교역함을 말했으나 이 운도는 상제(강교주 지칭)의 권능에 의해 바뀌어 질수 있다고 하여
상제는 천지공사를 행하여 말세를 구원하고 지상 선계를 이룩한다고 하였음.
이것이 바로 후천개벽이라는 것임.
이러한 시한부적 종말사상은 신흥종교 교주들이 공갈로 사용하여 신도들을 현혹하는 메세지임.
그러나 교주들도 이런 종말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원 교주들이 죽은 후는 더 많은 참모들이 하나씩 정통을 주장하며 권력다툼으로 갈라져 나가
분파를 만들어 증산계열은 50여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동학도 김연국의 천진교, 이상룡의 수운교 박성호 등이 생겼음.
강일순의 경우 정읍 이평면 출신으로 처음에는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갔는데 득도하여
천지 도술을 부린다고 하면서 옥황상제의 강림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음.
그의 추종자들은 병겁이 남아있다는 그의 위기설을 믿고 있었고 강교주가 의통을 전수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상제라는 자가 천제를 지내다가 세째 부인까지 둔 그가 39세로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강교주의 천지공사(신명공사)사상은 민간신앙의 혼합 사상으로 지방신, 문명신, 만고역신, 제신 등을
소집하여 통일신단을 결성하고 새로운 법을 규정하는 것을 천지공사라 하였으니
결국 자신이 모든 잡신의 우두머리인 상제라는 의미 입니다.
'대순경전'이나 그들의 사상을 보면 유,불,선,동학,서학 등 민산신앙까지 혼합합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분파인 보천교는 강씨의 고제인 차경석이 강씨가 죽은 후 둘째부인 고씨를 교주로
받들었으나 세력이 커지자 차씨가 등극하고 차씨가 죽은 후(1936년) 차씨를 교조로 받드는 파와,
강씨를 교조로, 차씨를 교주로 보는 파로 다시 갈라졌습니다.
태극도는 보천교 신도인 김혁에 의해 입교한 조철제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갔다가 26세에 귀국하여 강교주의 매씨인 선들 부인을 맞아 들여 인연을 맺고
'무극대도교'라고 했다가 '태극도'로 개명한 것임.
그는 신도들에게 '태을주'를 읽게 하여 전성기에는 10만 신도까지 되었다가 일제탄압에 약화되어
조씨가 별세 후, 부산의 조영래, 서울의 박한경 교단으로 다시 두 번 째로 갈라진 분파가 된 것이며
대순진리도 이에 속합니다.
보화교는 김환옥(호,청산)이 설립한 동학, 증산교의 혼합종파로 수운을 아버지로, 증산을 어머니로
하여 자신을 맏아들이라 하였는데 이를 수운과 증산의 신명이 계시한 것이라 하니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가?
김씨는 처음에 '무극대도'라는 이름으로 포교하다가 1953년 '보화교'로 개칭함.
김환옥이 58세에 죽자 남정선, 김재헌 등이 계승하고 김명환이 교무를 담당.
이들은 수운 증산에다가 단군(국조 단군이 아님)대성조라는 명칭도 사용하였음.
중개벽은 4320년, 대개벽은 6년만에 이루어진다 하였음.
이런한 유,불,선,민간신앙에 개벽사상을 주창하여 생긴 신흥종파는 사분오열 하여 수십개에 이름.
근래 대순진리도 지도자가 죽자 다시 권력싸움으로 분리 되었는데
다른 것은 이미 올려진 답변들을 참고할 것.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자료 17>
1. 양산도
양산도란 노래3절을 보면 제일 끝 부분에 [열놈이 꼬끄라져도 나는 이 줄을 못 놓겠네.
에~ ~ ~ 하고 즐거워 하는 노랫가락을 합니다.
그 뜻은 주위에 있던 열사람이 갑자기 꼬끄라져서 죽어 나갈 때가 있는데,
그 떼에 나는 죽지 않으므로 즐겁다. 란 뜻이랍니다.
왜 주위에 갑가기 모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본인은 살수있다면서
에~ ~ ~ 하고 즐거워 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뜻은 양산도에 있습니다.
양산도란 시루와 솥을 말하는데, 시루는 솥을 맞이하여야 떡을 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떡을 찌려면 솥에 불을 때야 하는 것인데, 그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이 뜨거워져서 불기운으로 변합니다. 그 불기운이 수증기인데, 떡을 익히고 다시 식으면
물이 됩니다. 이것은 물이 불이되고 불이 물이 되는 이치로 그동안 주역시대에서는
상극이었던 것이 상생이 되어 천하가 무이이화가 되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전라도 모악산 금산사에 미륵금불을 세우게 하시고 미륵불 아래에 큰 솥을 얹은 다음에
그 솥 위에 미륵불과 양쪽에 보호불을 세우게 하여, 한문으로 뫼 산(山)자처럼 되게 하셨답니다.
그렇게 되므로 솥은 시루가 필요하게 되고 시루는 솥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구천상제님께서는
그 이치로써 천하 창생을 먹여 살리리라 하셨으므로 그 이치를 계산해보면, 시루안에 오대양
육대주의 3색인종과 문명이기의 정수를 모두 한 시루에 넣고 물이 불이되고 불이 물이 되는
상생의 불로 푹 쪄서 내 놓으면 하나의 맛있는 떡으로 변하게 된다는 이치로 오셔서 천지공사를
하시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루증(甑) 자와 미륵불 모습의 산(山) 자와 합쳐서 구천상제님은 증산(甑山)이 되시고
시루는 솥(조왕신:살림은 조왕신이 한다. 부엌에 조왕신을 모신다)이 필요하므로 솥은 한문으로
솥정자(鼎)와 미륵불 모습의 뫼산(山)자와 합쳐서 정산(鼎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산(甑山)과 정산(鼎山)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고, 음양 중에 양과 음을 상징하며,
증산, 정산이라는 두개의 산이 되므로, 세속에 흘러 다니는 노래 양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산에서 정산으로 맥을 이어온 종교? 줄만 꽉 잡고 있으면 온 세계에 괴질병이 엄습하여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도 죽지를 않고 지상천국에서 살 수가 있기 때문에
양산도 3절 제일 끝 부분에 [열놈이 꼬끄라져도 나는 이줄을 못 놓겠네. 에~ ~ ~ 에~ ~ ~ 하고
즐겁다는 표현을 노래로써 하므로, 후대의 자손들아 증산과 정산이 양산이 되어 도를 증산에서
정산으로 이어져 나오게 하는 도가 있단다.
그 도가 나올 때는 지체 없이 들어가서 꼭 잡고 절대로 떨어지지 말아라.
그래야 살 수 있단다. 라는 바램과 함께 순식간에 모두 쓰러져 죽어나가는 괴질병이 전 우주를
휩쓸 것을 경고하며, 자손들에게 희망 반 걱정 반을 전하는 뜻을 담았답니다.
이는 대순진리회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있는 증산(甑山)이신 구천상제님과 대두목으로 오신
정산(鼎山)이신 도주님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도를 잘 닦아서 후천의 인간 종자가 되라는 뜻으로
양산도라는 노래를 만들어 전했던 것입니다.
2. 이 태백이 놀던 달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저기저기 저달 속에 계수나무 밖혔으니
은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천년만년 살고지고~~~
이 노래는 이 태백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하는데,
이 태백의 이 자는 = 이씨조선 오백년의 끝자락을 뜻합니다.
이 태백의 태 자는 = 태을주를 읽는 자들을 말 합니다.
이 태백의 백 자는 = 백의민족으로 흰 두루마기를 입고 도를 닦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는 그들이 은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천년 만년 살고진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은도끼는 동학의 창시자였던 수운(최제우)이 구천상제님의 강을 받아 새로운 세상을 열라고
하였으나 유교의 전헌을 넘어 진법을 들추어 내지 못하므로 그 기운을 거두어 들이므로써, 인간으로
태어나서 1등이 되지 못하고 1등 자리를 내어주게 되므로써, 대구 달성공원에서 목이 떨어지는
사형을 당하였던 것이 [은도끼로 찍어 내어 ㅡ 금 메달 다음이 은 메달. 은도끼 ]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금도끼는 주역에 보면 서쪽이 우주의 가을 세상이 되는데, 수리로는 4와 9 요 오행은
금(金)으로 흔히 사구금세상이라 한답니다. 그 4.9금세상은 후천을 말하는데, 그 후천에는 수명이
한없이 늘어나고 천지신명과 음양합덕이 되어 불로불사에 극락에 극락의 세상을 신선이 되어
원 없이 살다가게 되기 때문에 [은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천년만년 살고지고] 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은도끼로 찍어내어 = 최 수운이 사형 당할 때 남긴유언 [ 아사 8년후에 대선생이 갱생하라라.
도시 나는 믿지 말고 8년 후에 오실 한울님을 믿어서라. 아~!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 ]
최제우는 1860년에 구천상제님의 강을 받았으나 진법을 들추어 새로운 세상을 열지 못하므로,
구천상제님께서 1864년 갑자년에 그 기운을 거두시고 8년 후 신미년 양띠생으로 직접 이 세상에
강세 하시게 되었다.
금도끼로 다듬어서 = 금 도끼는 金과 도끼로서 金은 주역에 사구금 세상인 후천세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그 사구금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며 몸과 마음을 세기연질 하고 다듬고
또 다듬으며 도(도끼-도에도 끼가 있다. 악착같이 도를 닦는다)를 닦는 자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살고지고는 그런 도를 닦는 자들은 앞으로 후천세계에 넘어가서 지상천국에 살게 되는데,
그들은 천지신명과 음양합덕하여 병이 없는 세상에서 극락에 극락의 세상을 불로불사하며
천년만년을 살게된다 라는 뜻이랍니다.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께서는 인간의 복록과 수명을 다가오는 후천 오만년
동안을 맡으신 분의로써 여러분들에게 힌 두루마기를 입고 태을주를 읽으며 후천 오만년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수도하는 자들이 주위에 있으면 속히 그들속에 들어가서 열심히 수도하며
복록을 쌓으라는 뜻으로 선대의 선지자께서 노래로 만들어서 보급했던 것이랍니다.
3. 금강산 도라지
민요
도라지 도라지 "도" ~ 라지 심심산천에 "도" 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철철철 다넘치네......
소자 : 도라지! 도라지? 무슨 "도" 라지?
도문 : 그야 깊고 깊은 산속에 "도" ~ 라지니 마음속에서 찾아봐...
소자 : 깊고 깊은 산속에 도라지? 아! 알았다. 심심산천의 심심은 깊이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심심유오구나! 그리고 산천은 산하고 천이니까, 산은 증산 정산의 산이고, 천은 하늘 천하여
하늘에서 오신 양위 상제님으로부터 내려온 도를 말하는구나!
도문: 그럼 도라지 노래 2절끝에 "강원도라 금강산에 도라지" 하고 노래가 끝나는데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소자 : 음~ 그러니까 강원도라고 했으니까, 강원도의 강자는 시루 "증"자로 오신 강성상제님
즉 구천상제님을 뜻하구, 강원도의 "원"자는 근원"원"이므로 증산 정산의 상제님의 연원을 말하는
것 같은데...?
도문 : 그래 설명을 들으니까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 뭐 하나 빠진 것 같지는 않니?
소자 : 아! "강원도라 금강산에 도라지" 라고 했으니까, 가만 !금강산에 도가 있다는 것이네
그러니까 강원도 금강산 토성 수련도장에 도장이 있으니, 믿으라고 노래 한 것이네....!
도문 : 그러니까 더 자세하게 말하면, 아무 도나 ?는 것이 아니고 "산"자가 들어가는 즉 하느님이
증산 정산의 "산"자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 "산"자에서 내려오는 도를 믿으라는 것이지.
소자 : 네! 그렇군요.
도문 : 그런데 말아야, 도라지란 노래 3절은 아니?
소자 : 어머 3절도 있었나요? 저는 2절도 다 몰랐는데...!
도문 : 그랬어! 3절의 끝부분을 보면 "저기저산아래 도라지가 한들 한들" 하고 끝맺음 하는데
뭐, 느낀 게 없니?
소자 : 음~ 그러니까 저기 저산 아래 라고 했고, 또 도라지 노래 2절에는 금강산이라고 했으니까,
금강산 아래란 뜻까지는 알겠는데, 도라지가 한들한들은 잘 모르겠는데요...?
도문 : 그래, 좀 어려운 대목이지? 도라지가 한들한들하면 말이야. 한들한들은 도라지가 하나의
들판에서 한들한들 하고 있다. 라고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도라지를 도(道)닦는 사람으로 보고,
도 닦는 사람이 들판(들판날판: 들쑥날쑥 :왔다갔다)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고 말이야.
소자 : 아! 그렇네요. 그러니까 도라지가 한들한들 하는 것은 한나의 들판이므로, 한나의 경치라
하겠는데, 그 한나의 경치를 줄이면 "한경" 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네요?
(한나 둘 셋 넷! 한나 둘 셌 넷!)
도문 : 그래, 너 참 기특하구나!
소자 : 그러니까, 한경이란 단어는 대순진리회 도전님의 존휘잖아요? 금강산에 도전님께서도
닦을 수 있는 도장을 세우실 때, 들판 하나가득 도닦는 무리들이 따를 것이니 그때 후손들에게
따라가서 믿어야 산다고 예지를 했군요.
도문: 그렇단다. 그런데 전경에 보면 서울에서 경자 가지신 분이 [기동북이고수이서남이 교통]하는
곳에 도장을 짓고, 태을주 공부를 돌리면, 그 때부터 태을주의 기운을 사용할 수가 있고, 그 곳에서
창도하신 분이 성공을 하신다는 공사를 하시면서, 도의 가르침이 크니 이를 대학교라 하여,
경학에게 대학교를, 경수에게 수명소를, 경원에게 복록소를 정하시면서, 존휘에 경자를 가지신 분이
성공을 하신다는 공사를 보셨는데, 그 분이 바로 우리 도전(都典)님이시란다.
그리고 그 것을 증명하는 공사가 백의군왕 도수인데, 전경 행록 3장 51절 부터 64장까지란다.
백의군왕이란 백(白)은 주역에 서쪽을 말하고, 의(義)는 가을의 결실을 말하는 것으로써,
역시 주역으로는 서쪽이며 가을의 결실을 거두는 이치인데, 백의군왕이므로 역시 가을세상을
맡은 임금이란 뜻이 된단다.
이 공사가 이듬해 2월4일 경칩일에 끝이 나는데, 그 경칩일날 상제님께서 경무청의 옥문(옥추문을
여는 이치)을 열고 나오셨단다. 그러니까 경칩이란 땅 속에 들어갔던 개구리(開九理)가 뛰어
올라오는 날이므로, 천지가 개벽(開闢)하는 이치가 들어 있어서, 후천세상이 열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경칩일의 칩자는 삼계(천.지.인)의 진액을 모두 모은 칩으로써, 칩거한다. 은거 한다.
들어간다. 컴퓨터 칩이다. 등 핵심적인 것을 모두 다 모아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그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 땅속에 들어 가셔 칩거(대순진리회 도전님 화천)하시다가, 다시 이 세상의 문이
열릴 때, 즉 옥추문이 열릴 때 오실 군왕이시다. 라는 것으로써, 그 분의 존휘(이름)에 경자가
들어 있다는 것으로 그 분은 후천가을 세상을 맡으신 분으로 대순진리회의 도전(都典)님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소자 : 아! 답답하던 속이 다 확 풀리네요.
도문 : 그래,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 말이야, 도라지 노래 1 절에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철철철 넘친다고 했는데, 그 뜻은 아니?
소자 : 그야 대답을 하다 보니까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대바구니는 대바구~는 대박은 대두목으로
오신 박 도전님이시고, 또 대도를 뜻한 것 같구요, 또한 대바구니는 둥글므로, 원이 되니까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이 원이며 하였듯이, 대순진리회인 것 같구요. 또 대바구니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도전님이 죽산 박씨 잖아요. 그리고 상제님께서 대두목 공사를 대나무(죽산)로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글자 마디마디마다 다 딱 떨어져 맞네요?
도문 : 그것뿐이니?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철철철 넘친다잖니?
소자 : 음~~~ 그것은, 아! 우리가 조상님하고 같이 도를 닦잖아요. 나 하나만이라도 집안에서
도를 잘 닦으면 도통 받을 때, 우리 집 조상님 직선조와 외선조께서 다 오실텐데 그 숫자가
산도라지 100 뿌리 캐는 숫자보다는 많을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철철철 넘치겠지요.
도문 :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말야,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철철철 넘친다는 뜻은
또 하나 더 있지?
소자 : 음~ 그러니까 한두 뿌리는 도를 닦을 도인을 포덕을 하는데, 제대로 된 도인 한두 명만
일 꾼으로 만들어 놓아도 흡족 할 것이다. 란 뜻이군요?
도문 : 그래,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철철철의 철자는 철(절후와 옥황상제님의 일)을 알라는 뜻이
있고, 도주님을 알라는 뜻이 있단다. 그러는 반면에 도라지가 대바구니에 철철철 다 넘친다는 것은
금강산 도장을 짓고 나면, 도가 넘친 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뜻도 있는 것 같구나!
그러니 대순진리회의 도를 닦고 있는 우리들은 경거망동 하지 말고, 큰 자부심을 갖되, 자만심을
버려야 하고, 열심히 수도하고 정진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 하여야 도통 마당에서
도전님께 부끄럽지 않게 될거야, 그러니 우리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자구나!
도문 : 참! 한 가지 더 알려 줄 것이 있구나! 대순진리회 금강산 토성 수련도장이 금강산 제1봉인
신선봉 아래에 있잖니! 그런데 그 신선봉의 높이가 1204m 란다. 그런데 도주님의 탄강일이
12월 04일이므로, 금강산 높이와 같은 숫자가 된단다. 그러니까 12월 04일이니까 금강산의 높이인
1204 m 와 숫자가 같아지지!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은 도전님의 화천일이 또 12월 04일 이거든, 그래서 금강산 제1봉인 신선봉과
도주님, 도전님은 천부적으로 하늘에서 정해 놓고 오셨지 결코 우연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단다.
다시 말하면, 전경에 12월 26일 0 0 재생신 의 만도수 360 (1년:360 일,우주: 360도)일을
도주님께서는 양(탄강12월 04일)으로 채우시고, 도전님께서는 음(화천12월 04일)으로 채우셨단다,
그러니까 1년중에 12월 26일은 1년 중에 4일이 모자라는데, 그 4일을 음으로 양으로 채워 주시어
만도를 이루시는 분이 대순진리회의 도주님과 도전님이시란다.
그리고 후천의 돈은 눈을 뜬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새로 발행된 일만원권이 눈을 떴단다.
그 지폐에는 천문 관측기구, 은하계의 28별, 우리나라 지도와 태극과 팔쾌등이 그려져 있는데,
발행일도 역시 12월 04일로 만도수란다.
소자 : 아 ~ ! ! 그러니까, 도주님만 만도수를 채우신 것이 아니라, 도전님께서도 만도수를 채우고,
금강산 신선봉과 후천의 돈도 만도수를 채우셨군요!
도문 : 그렇지! 도전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화천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내가(도전님) 이렇게 천기로
가르쳐 주어야 너희들이 나를 알겠느냐? 하시면서, 앞으로 천자놀음 하지 말라시며 애통해 하시는
것과 같고, 도주님께서 유언 하시기를 [행하여 오던 대로 행해 나가라] 라고, 전 임원들 앞에서
유언을 남기셨단다.
도전님께서도 4개의 도장과 학교법인과 병원법인을 각각 원장이란 명칭으로 관리를 맡겨 놓으시고,
6개월쯤 되어서 전 임원들을 모아놓으시고, 그래 잘하고 있더구만, 그렇게만 하면 돼, 그렇게만 하면
된다.라고 하시며, 도전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변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는데, 이는 구천상제님께서
육임을 천지공사로써 정하신바와 같은 이치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본 단다.
우리 도인들이 그 말씀을 모르는 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 굳이 별 다른 유언을
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고, 자유 도수에 붙여서 도(道)에 넘친 자들을 골라내고 계시지 않겠느냐
는 생각을 해 본단다.
그러니까 결론을 내자면
"하늘에서 내린 법과 천명을 수도자(수임 선감과 도인 모두는 수도자다.)가 법과 제도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도" 가 될 수 없고, 이미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도를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다 도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제 무덤 제가 파는 격이므로, 안타까울 뿐이란다.
소자 : 네에~ 그러니까 수도자들의 생각과 깨달음이 각자가 다르므로, 이렇게 홈페이지를 통해서
라도, 서로 정보를 교환하여, 좋은 것은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자는 것이네요?
도문 : 그렇지! 그러므로 도전님께서 도인들은 자꾸 모여야 한다. 거기서 서로 배우라는 것이다.
라고 여러 번 강조를 하셨단다. 화합,단결, 화합,단결 하시면서 말이야. 그리고 여러 차례 들은
얘기지만 도인들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일사분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뜻은 여러 사람 모일 때는 여기저기서 들어서 배워 깨닫고, 흩어져서는 뒷말(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일게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이 밤 꿈도 좋은 꿈을 꾸기를 바란다. 안녕!
<자료 18>
다음은 대순진리회의 도전님에 대한 내용이오니 수도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올려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전님이 구천상제님이시죠?
대순진리회 하면 우선 민족종교이면서도 세계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것은 우리나라에서
2006년 9월 달에 세계종교지도자 대회를 개최하여, 세계 33개국의 종교지도자들께서 오시어,
여러 종교단체와 대순진리회의 여주도장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참관 하고, 또 구천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된 동기와 천지공사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으며, 앞으로 종교인들이 어떻게
하여야, 지상천국인 청화세계에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으며, 이에 또 모두들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합니다.
세계종교 지도자 대회에 참석했던, 여러나라에서 대순진리회의 상급임원들을 초청하였으며,
대순진리회의 진리와 교화자료, 체계질서에 따른 운영 방식 등을 내어 놓으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석 때는 프랑스 유네스코의 초청으로 세계종교지도자 대회에 가셔서, 구천상제님께서
내 놓으신, 해원과 보은의 양대원리인 해원상생(解寃相生)에 대한 이념과 실천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고, 이제 세계의 모든 종교와 언어도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역설하였답니다.
대순진리회에는 구천상제님께서 정하신 것을 도주님께서 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법은 아무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천부적으로 하늘에서 정해져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훈시를 내리실 때, [나의 임무는 전 도인들을 영도하는데 있다. ] 하셨으며, [여러분과 나와 차이가
있다면 도전(都典)이란게 다르다]고 말씀을 하시며, 도전은 총도전으로 總都典은 모두총, 거느릴총,
도읍도, 맡을도, 법전으로, 모두를 맡았으며, 거느릴 수가 있는 법이란 뜻으로 설명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주님과 도전님의 유지유법을 지켜야만이 도통(道通)을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이에 대해서 도전님께서는 모든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분과 나와의 차이가 있다면
도전(都典)이란게 다르다]고 말씀을 하시어, 나는 모든 것을 다 맡은 도전(都典)이고, 여러분들은
수도인인에 불과 하므로, 딴 맘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으며, 딴 맘(원위를 바꾸는 것)을 먹으면,
그것은 곧 대역죄인이라고 깨우쳐 주셨는데도, 각 수임선감 및 상급 임원들이 이 말 뜻을
알아듣지를 못했던 것이지요.
또 도전님께서는 [나의 법이란 것은 구천상제님께서 정하신 것을 도주님께서 법(法)으로 세우셨다.
그 것을 지키는 것이 나의 법(法)이다.] 라고 강조를 하시며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해 나가는 법방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순리회에서는 도전님께서 행하신
그대로 수도를 하여야 도통(道通)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도전님께서 박성구와 최해경이 석가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도전님을 모셔야 된다고 주장을
하게 되므로, 도전님께서 크게 역정을 내시며, [나도 영대에 손을 못 대는데, 감히 너희가 손을 대!]
라시며, 영대는 신성불가침이라 도전님께서도 함부로 손을 못 대신자고 하셨는데, 반면에 수도자인
너희들이 감히 손을 델 수가 있겠느냐, 그 이치를 잘 생각해 보아라. 하시는 뜻으로 깨우쳐
주셨으나, 오늘날에는 대순진리회의 법을 어기고 영대를 뜯어 고쳤으며 딴 맘들을 먹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또 도전님께서는 석가모니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겠다는 임원들의 주장에 답하여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인격으로 보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어!!]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은 여러분들이 나를 인격으로만 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
되므로, 여러분들이 나를 인격으로만 보지를 말고, 신격으로 보면 그렇지를 못 할 것이다.
즉 도전님을 신격으로 보면 영대의 구천상제님의 원위에 나의 원신(元神)이 모셔져 있으시다.란
뜻으로 말씀을 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도전(都典)님은 구천상제님의 후신이다. 라는
뜻이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전님께서는 [내가 있는 곳은 모두다 영대다]라고 말씀을 하셨으며, 도전님은 왜 주문에
없습니까 라는 어느 상급임원의 질문에 [나도 있느니라 잘 찾아보아라]고 답 하셨음을 상기하여
보십시요. 또 도전님께서는 [상제님의 원신(元神)을 영대에 모셨는데...]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제님의 원신을 영대에 모셨는데] 라고 하셨으므로, 도전(都典)님께서 상제님의 후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싶었으나, 이는 천기누설이므로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들은 상제님의 후신에 대해서 잘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하여 보자면, 증산상제님께서 화천을 하셔서, 천상에 오르시면, 구천의 요운전에
계셨던 구천상제님의 원신과 합덕이 되므로, 그 때부터는, 원신과 후신의 구별이 없어지고,
다시 원신(元神)이 되는 이치인데, 그 원신(元神)을 영대에 모셨다고, 도전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1901년부터 1909년 기유년까지 9 년간에 걸쳐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천상에 가서 빨리 일을 보고 다시 오겠노라고]말씀을 하셨으므로, 신명계의 일도 9 년간
보시고,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신다는 말씀대로, 삼초끝인 정사년에 구천상제님께서 오셨는데,
그 구천상제님이 바로 대순진리회의 도전님이시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렇게 되어야 만이 이 땅에 수원나그네로 오시겠다던 구천상제님이 누구시라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수원나그네란, 우리 만수도인들이 직접 보았던 용안으로
오시겠다는 뜻이며, 전혀 낯선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구천상제님을 모시던 분들은 모두다 서거하셨고, 도주님을 직접 모시던 분들도 몇 분
안 계시고, 대순진리회의 도전(都典)님은, 5곳의 도장을 지으시면서, 꾸준히 만수도인들이 직접 모셔
왔으므로, 구천상제님께서 재출진을 하시겠다는 분은 역시 대순진리회의 도전(都典)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대순진리회의 도전(都典)님께서는 구천상제님의 후신이 되는 것이며, 구천상제님께서
수원나그네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구천상제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전님의 원신(元神)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하고, 영대의 원위에 제1순위로 모셔져 계시므로, 다시 모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원신(元神) 따로, 후신(後神) 따로 모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님께서 [너희들이 나를 인격으로 보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어!!] 라시며, 인격으로만 보지 말고, 신격으로 본다면, 구천상제님의 위에 도전님의 원신(元神)이
모셔져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는 않으셨을까요? 여하튼 오실 분이 도전님이시라면, 도전님을
원위에 모실 수가 없는 것이며, 도전님을 원위에 모셔 버린다면, 도전님은 도통마당에 오시지
마시라는 뜻이 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구천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 정하신 진법(眞法)이 깨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에서 말씀하신 [내가 있는 곳은 모두다 영대다.] 라고 하셨음을 잘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옥황상제께서 구천상제님 안 계신 이발소에 가셔서 [내가 있는 곳은 모두다 영대다.]
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석가여래께서 구천상제님 안 계신 곳에 가셔서 [내가 있는 곳은
모두다 영대다.] 라고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천부당 만부당 하는 얘깁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왜 도전님께서 [내가 있는 곳은 모두다 영대다.]라고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의 후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씀이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전님께서는 [내정은 내가 있는 곳이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옥추문을 잡아당기시고 출세를 하여 오셨을 때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라고 보신다면,
도전님께서 다시 내정에 계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어디에 계셔야 할까요? 영대의 원위에 붙어서
벽상 공신들처럼 계셔야 할까요. 이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수원나그네는 도전(都典)님이시다.
수원나그네란,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이더라. 라는 뜻으로, 구천상제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시를
주셨는데, 수원나그네란 만수 도인이 보았던 용안 즉, 알고 있던 용안으로 오시겠다는 뜻이므로,
도전님이 오실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전님이 구천상제님의 후신이므로,
영대의 원위에 모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도전님께서 순감(巡監) 파석 치성을 모시고서 말씀을 하시기를 [다음에 내가 다시 불러서 30분만
가르치면 지금과 똑 같이 된다. 지금 나가면 옛 날처럼 아무 것도 모른다.]라고 말씀을 하셨음은,
도전님께서 때가 되면 다시 오시겠다는 암시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대의 용마루에 없는
용머리가 내정 지붕 위의 용마루에는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도전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 아닐까요?
* 파석치성
100일간 잠 안자며 120명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공부를 하여 모든 시험을 마치시고
그 기운을 거두어 두시는 치성
그 기간에 시료를 영적(신명)으로 보았는데, 색명은 눈을 뜨고, 곱추는 허리를 펴고, 간암 환자만도
3,000 명 이상을 고쳤으며, 단 5분이면, 미국과 중국에 있는 사람의 이름만 가르쳐 줘도 그 병을
고치는 경지까지 시험을 마치시고, 다음에 병겁이 돌 때 쓰시기 위하여, 파석치성으로 그 기운을
거두시고 접어 두셨음.
이랬든 저랬든 대순진리회의 법을 어기고서는 도통은 고사하고 죽음을 면치는 못할 것입니다.
왜 이윤의 도수가 있습니까? 자기의 행동이 잘못인줄을 모르며 옳은 줄만 알고 주장하고 살다가,
뒤늦은 어느 날 문득 깨우치게 되면, 다시 상제(도전)님의 일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으므로,
그 뜻을 헤아려 보자면, 신성불가침인 영대의 원위와 주문을 다시 바로 원위치 하여, 도전님의
일에 적극 협력 한다면, 후천마당에 다같이 참석을 하실 거라는 뜻으로, 이윤도수를 상제님께서
말씀을 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구천상제님을 신앙을 하시되 종통이 없는 곳에서, 그 곳이 옳다고 믿고
있다가, 대순진리회에 들어와서 내용을 알아보니, 그 동안 자신이 신앙하던 곳에서 속아서 수도를
하고 있었으므로, 자기 자신이 잘 못 되어 있음을 알았고, 또 그 곳에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려
준다고 해도 말을 들어줄 곳이 아니었으므로, 구천상제님의 종통이 있는 대순진리회에 들어오셔서,
상제님의 일을 열심히 하시어, 후천의 일꾼인 도통군자가 되는 것이 이윤의도수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각 방면의 수임들과 상급임원들께서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주도장에서는 대순진리회의 법방을 그대로 지키며 수도를
하고 있습니다. 영대와 원위를 고치게 되면 도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또 그렇게
되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여기기 때문에 몸을 사리지 않고, 영대의 원위와 수도의 법방을 지키려고
여주도장(1999년 7월 4일 인가요?)에 들어갔을 뿐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주도장 측이
절대적으로 여주 도장을 강제로 점령을 하였다거나 하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이시죠?
이 질문은 토성수련도장 공사하실 때 어느 상급임원 곁을 도전님께서 지나가실 때 하신 질문입니다.
그 때 도전님께서는 [너 방금 뭐라 했어? 너 여기 조금만 기다려 봐!] 하시고, 주위에 일하던
도인들에게 [야야 ! 모두들 빨리빨리 이리로 와봐 빨리빨리! ]라고 하시자, 일하던 도인들이 우르르
모여 들었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처음에 질문을 하셨던 상급임원에게 [야야! 아까 했던 말 그대로 해 봐!] 라고
하시자, 그 상급 임원은,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중복하여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이시죠? ]라고
물으시자, 도전님께서 안 들린다는 식으로 [뭐, 더 크게 말해봐! ]라고 하시자, 그 상급임원은,
좀 더 큰 소리로 목에 힘을 주어서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이시죠? ]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면서 빙그레 웃으시고 [야야 됐다됐다. 다들 빨리빨리 가서 하던 일들을 해라! ]라고 하시며, 하던 일들을 열심히 하라고 독려를 하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전님을 곁에서 모시며 공사를 받들었던 분들이 전하는 말로는, 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이 일을 할 때, 조그만 잘 못 하여도,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시며, 잘 못 된 일을 바로
잡으셨다고 하셨는데, 이 내용은 상제님을 신앙하는 모든 종단들이 알아야 할 최고의 정점인,
신앙의 대상에 대한 내용이었는데도, 도전님께서는 호통을 치시지도 않으셨으며, 오히려 빙그레
웃으셨다고 하시니, 이를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 까요.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의 후신이라는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도전님께서 구천상제님의 후신이라면 또 모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도전님을 영대에 따로 모시면, 후천 오만년간 진법(眞法)으로 정하여진 것이 깨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 것을 행하는 자는 대역죄인에 해당하고, 그들을 따르던 방면들의 모든 도인들도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상제님을 신앙하는 모든 타 종교 단체도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해 있아오니, 속히 대순진리회
여주도장에 성금을 모시는 방면으로 귀속을 하셔야, 그 것이 이윤의 도수가 되어, 여러분들의
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귀하 열심히 수도하여 도통마당에서 뵙도록 합시다.
<자료 19>
금산사 미륵전과 미륵불상
고대 삼국이후 우리 민족의 심성 깊숙한 곳으로부터 내려온 메시아사상이 있다.
바로 `미륵사상'이다.
미륵은 오래 전부터 정토세상을 가져올 차세대의 `구세주'로 한민족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왔다.
우리 한민족의 사상 저변에 뿌리 박아온 이 `미륵' 신앙은 단순히 불교에서 말하는
석가모니불 다음에 오는 미륵불의 의미가 아니다.
미륵신앙이 정통 불교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민중신앙으로 대중화된 것은
바로 1230년전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와 그의 모악산 금산사 미륵불상 창건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로 인해 이후 미륵신앙의 꽃은 한반도 곳곳으로 퍼져 나가게 됐던 것이다.
진표(眞表)율사(734- )는 1260년전인 통일신라시대 때 불교의 승려였다.
그는 12세때 전북 김제군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에 출가하였으며, 미륵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해
대도를 펴겠다는 큰 이상을 품는다.
29세 되던 신라 경덕왕 21년(762년)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희생시키며 행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수행법으로 자기 온 몸을 돌로 두들기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참회를 하며 3·7일(21일)간 구도하였다.
과거의 불법, 또는 기독교에도 진표율사 이상으로 이 법을 실행한 자가 없었다.
마침내 21일을 마치자 그는 도통을 하여 천안(天眼)이 열리게 되었으며,
도솔천 미륵존불로부터
“현세의 육신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이것이 인간이 미륵불, 즉 천주(天主)를 만나 계를 받은 역사상 최초의 `천상문답사건'이다).
한편, 진표율사가 도통을 해서 미래의 우주시간대를 보니 천수백년 후에 우주가 대개벽을 하는
것이 환히 보였다.
그래서 다시 미륵존불께 개벽기에 미륵불이 출세(미륵하강)한 이후 자신도 그 때 다시 태어나서
억조창생을 건지는 큰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하였다.
그러자 미륵존불로부터 당시 금산사내에 있는“사답(寺沓) 칠두락(마지기)” 정도 넓이의 연못인
용추못(龍沼)을 메우고 미륵존불 모양의 불상을 세우라고 계시를 다시 받는다.
그런데 불상을 세우기 위해 처음(762년 건립시작)에는 흙으로 못을 메웠는데,
이튿날 보면 다 파헤쳐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 때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숯(목탄)으로 메우라고 일러준다.
이에 진표율사는 도력(道力)을 써서 안질을 퍼뜨린 후 `누구든지 안질을 앓는 자는 금산사 용소에
숯을 한 짐 집어넣고 못물로 눈을 닦으면 낳는다.'는 소문을 낸다.
안질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숯을 집어넣으니 그제야 연못은 메워지게 되었다.
진표율사는 연못이 숯으로 메워지자 미륵불상을 받쳐 세우기 위해 연못 한 가운데에다
연꽃모양을 조각한 큰 바위 (석조 연화대 또는 석련대, 현재 보물 23호)를 세웠으나,
무슨 조화에서인지 석련대(石蓮臺)는밤 사이에 20여 미터나 떨어진 위치(현재 석련대가 있는 위치)로
옮겨져 버린다.
이 때 미륵이 꿈에 현몽하여
“야! 이 미련한 놈아. 돌이란 직접 불에 들어가면 튀는 법이니라”고 계시한다.
이에 다시 진표율사는 연못 중앙에다 밑이 없는 대형 무쇠시루(甑 증)를 걸고 그 위에다 우물
정(井)자 형태의 나무 받침목을 얹은 다음 철로 된 미륵불상을 세우게 된다(4년에 걸쳐 766년 완공).
지금도 금산사 미륵불상 밑에는 밑이 없는 거대한 시루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형태이며, 세계 최대의 미륵존불상이다.
지금 이 미륵존불상은 이를 모시고 있는 3층 미륵전과 함께 국보 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표율사는 금산사 미륵불상 외에도 금강산의 발연사와 속리산의 법주사에 모두 3개의 미륵도량을
세웠다. 진표율사는 미륵부처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진표율사와 금산사 미륵불상 건립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왜 연못위에다가 미륵불을 조성하게 하고 또한 숯을 넣어야만 연못이 메워졌는가?
못은 물(水)이고 흙은 토(土)이다. 숯은 수토의 중간에서 사기(邪氣)를 없애고 수토를 결합시켜
합덕(合德)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행상으로 보면, 수토가 결합한 것은 태극이다. 즉, 10무극인 미륵불이 태극을 깔고 있는
것이다. 무극은 현실적인 창조운동을 태극을 통해 하기 때문이다.
시루 위에 미륵불을 조성하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루란 모든 것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미륵불은 우주 여름철 내내 누적되어온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모두 시루 속에 넣고 찌듯이
익혀 내어 가을의 기운으로 이화(理化)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루 위에 올라 서 있는 것이다.
시루(甑)는 미륵불의 정신을 대표한다.
시루 위에다가 왜 우물 정(井)자로 받침목을 걸게 했을까?
미륵의 도가 앞으로 우물(井), 즉 물 위에서 개창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또한 우물 정(井)자는 진표율사의 성씨이므로, 미륵존불의 법이 후세에 펼쳐질 때 진표율사가
새로 지상에 태어나 그 법을 받들어 펼칠 것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진표율사의 진표(眞表)는 그의 이름이자 법명인데,
이것은 참 진(眞)자, 모범될 표(表)자로서 참 진리의 표상이라는 뜻인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또한 미륵불이 진표율사에게 “장차 대국왕으로 태어나리라”했으니 이미 태어나 있을 것이다.
이 대국왕은 석가모니가 얘기한 상카법왕,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태극
성제), 노스트라다무스가 언급한 구원의 앙골모와 대왕과 동일인물일 개연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土亭) 이지함,〈정감록〉, 격암 남사고등이 말세 도탄의 위기에서 사는
방법으로서 한결 같이 얘기한 석정(石井, 돌우물) 또는 사답칠두락(寺畓七斗落)이 무엇인지는
의문할 여지가 없이 자명해진다.
미륵존불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진표율사가 미륵불상을 세운 것은 전라북도 고부(곡부)근처이다.
이는 미래의 미륵불이 이곳 고부(곡부)에서 탄강하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당초 진표율사가 처음 세운 미륵불은 33척(尺)의 철불(鐵佛, 金佛)이었다.
그런데, 지금 있는 것은 39척의 석고불(土佛)이다. 그간 미륵불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불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다시 36척 짜리 목불(木佛)을 세웠다.
이목불은 다시1934년에 저절로 불이 나서 타버리고 1938년에 지금의 39척 석고불로 중건된 것이다.
이처럼 미륵불이 중건될 때마다 3수씩 늘어나고 있다(33→ 36→ 39).
석가부처는 미륵불이 `3회의 설법'으로 천하창생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3회에 걸쳐
석 자씩 더 크게 만들어진 것은 미륵님의 3회 설법,즉 3변성도(三變成道)에 의한 것이다.
처음의 금불이 목불로, 목불이 토불로 바뀐 것은 금극목(金克木)하고 목극토(木克土)하는
오행의 상극이치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천 인류의 상극의 발전법칙으로 인해 불상이 자꾸 겁기(劫氣)를 벗는 발전과정을 상징함과
동시에 미륵불(10무극 土) 도법의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대순진리회(대순진리교)에 대해서|작성자 hantae0307
<소감>
증산도, 증산교, 대순진리회, 대순성도회. 그밖에 태극도, 신선도, 무극도 등등
상기 자료를 읽고 정리하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종교는 ISO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ISO는 참으로 좋은 품질시스템인데 그리고 이것이 좋다고 인증기관이 품질보증을 하여
인증을 내주는 것인데 10년, 20년 인증을 받아도 기업들은 변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나
종교를 모태 신앙으로 가졌어도 사람들 나쁜 짓하는 것을 보면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교주들은 종교를 만들지 않아도 제자들이 종교를 만들어 백성들을 우려 먹고
세월이 지나면서 분파를 거듭하여 저기들끼리도 서로가 사이비라고 욕을 하는 것이나
ISO 인증기관도 나뉘고 또 나뉘어 수많은 인증기관이 난립하는 것과 99% 흡사하다.
비단 종교와 ISO 뿐만이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고 집안/족보도 마찬가지이고 다양한 모임들도 분파를 거듭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을 충족하기 위하여 이런 다양한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면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선거 끝나면 항상 밥그릇 싸움뿐이고
성직자들은 착하게 살자고 하면서 자기들은 가능한 착하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ISO도 기업의 시스템을 수립, 개선하자고 하면서 항상 기업의 짐만 되어왔듯이
이 세상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상대로 희롱하는 짓거리를 하고있는 웃기는 삶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