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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CARNIVAL, 북미 시장이 '기아'를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 | |||||||||||||||||||||||||||
대한민국 대표 미니밴 기아 카니발이 다시 한 단계 진보했다. 스타일링과 인테리어를 두루 개선한 9인승 뉴 카니발은 미니밴 모범답안에 바싹 다가선 기아의 역작. 북미 소비자들이 망설임 없이 이 차를 혼다나 닛산 미니밴과 견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빠, 우리 다음에 차 바꿀 때 이거 사자." 1열에서 3열 시트까지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딸아이가 보채기 시작한다. 어른들이야 조심스레 움직여야 할 워크스루 통로지만, 유치원생 아이에게는 제법 뛰어다닐 공간인데다 가운데 시트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니 이만저만 재미있는 차가 아닐 게다. 어디 그 뿐인가. 차에서 내릴라 치면 유령이 열어주기라도 하듯 '스르륵' 열리는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는 아이를 몸서리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래봤자 달랑 세 명인데, 9인승 미니밴 사기는 좀 그렇지 않니?" 오너가 아닌 이상, 미니밴 운전석에 앉을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아주 간혹, 친구네 가족이랑 여럿이 여름 휴가를 떠날 때나 미니밴 렌터카를 이용할 정도일 뿐이다. 그래선지, 매달 어림잡아 너댓 대씩의 새차는 꼭꼭 타보는 자동차 전문기자일지라도 미니밴 운전석은 언제나 조금은 낯설고, 그래서 조금은 상쾌하다. 미니밴에 상쾌하다는 표현이 걸맞지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한 달 전 새로 선보인 기아 뉴 카니발과는 제법 어울린다. 기아는 지난해 여름, 스타일링을 완전히 바꾼 11인승짜리 3세대 카니발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그랜드 카니발'. 이전의 조금은 지루한 박스형 스타일링에서 벗어난 보디라인은 꽤나 리듬감이 있어 보였지만, 11인승은 너무 버거웠다. 물론, 세제상 혜택을 보기 위한 선택. 하지만, 휠베이스만 3미터를 넘긴 11인승 차체는 미니밴이라기보다 미니버스에 가까워 보였다. 좀더 밸런스를 맞춘 차체에 대한 시장의 기다림을 감지하기라도 했는지, 기아가 이번에 내놓은 뉴 카니발은 9인승으로 덩치를 조절했다. 달랑 2명 더 타고 덜 타고의 차이라지만, 눈으로 보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심지어, 시승 도중 마주친 어떤 사람은 "아니, 카니발이 왜 이래 작아 보이지"라며 유난을 떨었을 정도였으니. 뉴 카니발의 실제 길이는 11인승(5천130mm)보다 320mm 짧은 4천810mm. 현대 쏘나타와 비슷한 사이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 뉴 카니발의 가장 큰 변화는 프런트 뷰와 리어 뷰.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를 중심으로 한 프런트 뷰는 한결 정돈된 느낌으로 다듬어졌다. 끝단을 독특하게 처리한 헤드램프 디자인은 11인승 그랜드 카니발 시절에 비해 세련돼 보인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11인승 그랜드 카니발에 비해 평범해졌지만, 훨씬 잘 정리되었다. 11인승 그랜드 카니발에 비해 앞으로 길게 뽑아낸 보닛 라인은 기아의 주장대로 이 차에 SUV와의 크로스오버적 성향을 다소나마 심어주는 것 같다. 크로스오버 성향으로 옮겨가는 것은 미니밴 시장의 최근 추세. 완전히 버티컬 타입이던 테일램프도 볼륨감을 조금 더 키워 안정감을 더했다. 많은 곳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터치만으로도 전체적인 디자인 밸런스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뚜렷한 포인트가 드러난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세그먼트에서 개성보다 중요한 건 편안함이다. 가족용으로 많이 쓰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각적 편안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스타일링도 중요하지만, 미니밴 세그먼트의 승부는 결국 인테리어에서 판가름 나는 법. 뉴 카니발의 인테리어는 어지간히 깐깐하게 따지고 들더라도 큰 흠집을 들킬 일은 없어 보인다. 대시보드 마무리나 배치 상태에서는 이전 1~2세대를 거치며 다듬고 다듬어온 기아의 미니밴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속도계를 중심으로 무난하게 마무리한 계기판이나, 운전 중 시야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오디오를 맨 위에 배치한 센터페시아 배열에서는 '만인의 입맛'에 두루 맞추려는 기아의 심산이 드러난다. 계기판 디자인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효율적. 다만, 야간 운전 때의 컬러 조명을 좀더 심플하게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편안한 스타일에 비해 야간 조명이 필요 이상으로 화려해서다.
미니밴의 가장 큰 미덕인 수납공간은 충분한 편. 대시보드 오른쪽의 글러브박스 위에 또 하나의 수납박스를 만들어놓았고, 센터페시아 아래의 컵홀더와 서랍은 이전 그대로다. 도어 포켓의 대형 컵홀더(보틀 홀더라고 봐도 무방할 듯)나 2, 3열 시트의 수납공간 등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딱 필요할 만큼의 수납공간들이 마련되어있다.
오랜만에 탁 트인 미니밴 운전석에 올라 앉으니 숨통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시트 포지션이 높은지라 시야도 후련하게 확보되고 시트도 제법 편안한 편이다. 모처럼 붙잡아보는 '트럭 각도' 스티어링 휠이 어쩐지 새롭게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 그립감이나 사이즈는 딱 적당한 정도. 5단 자동기어를 센터페시아에 올려놓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간을 확보했다. 그 자리에는 접이식 시트 하나가 들어간다. 시트를 펼쳐놓으면 마치 벤치시트처럼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접어 올려두면 1열에서부터 2, 3열까지 워크스루 복도가 마련된다.
차체 좌우 양쪽에 마련한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는 뉴 카니발의 편리성을 부각시키는 요소. 운전석 천장에 달아놓은 버튼으로 여닫을 수도 있고, 리모컨 키의 스위치로도 조작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도 차에 다가서면서 도어를 스스륵 열 수 있게 됐단 말이다. 시승차인 뉴 카니발 리미티드 풀 옵션 버전은 말 그대로 전자동 투성이다. 심지어 3열 조각창까지도 전동식으로 열고 닫혀 '지나친 호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엔진은 4기통 2.9ℓ 170마력 커먼레일 디젤 유닛. 최고출력은 3천700rpm에서 나오고, 36.0kg·m의 최대토크는 2천~3천rpm에서 나온다. 저속에서부터 힘있게 밀어주는 주행성능. 크지도, 작지도 않게 손에 딱 잡히는 스티어링 휠 그립감이 운전에 더욱 집중하라며 등을 떠민다. 오랜만에 높다라니 올라 앉은 드라이빙 포지션 또한 운전재미를 더한다. 변속 포인트는 최고출력이 나오는 3천700rpm 언저리. 1단에서 시속 40km를 찍고 2단에서는 80km에 이른다. 이어 3단에서 120km에 도달하고 4단에서는 150km를 넘긴다. 내리막길에서 약간을 탄력을 받아가며 계속 가속하자 시속 180km에 이른다. 이 차의 제원상 최고시속은 186km. 커다란 사이드미러와 박스형 차체 스타일 탓에 시속 110km를 넘기면서 풍절음이 커지기 시작하고, 시속 150km를 넘어서면서부터 가속력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요즘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디젤 승용차에 비하면 엔진음도 비교적 큰 편. 이런저런 점을 다 따져보더라도, 미니밴임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속 토크가 풍부한 덕에 시내 주행에서의 추월가속력은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할 정도. 무엇보다 기운차게 치고 나가는 맛이 제법 듬직하다. 평균 연비는 10km/ℓ 정도로 무난한 편. 다소 부드러운 듯한 서스펜션도 차체를 비교적 잘 받쳐준다.
기아는 올해 초 3세대 카니발을 북미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온 현지 언론의 평가는 후한 편. 이전까지 곧잘 기아의 발목을 붙잡곤 하던 품질 관련 시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닛산 퀘스트나 혼다 오딧세이 같은 일본의 쟁쟁한 경쟁자들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고무적이다. 미니밴은 픽업, SUV와 더불어 미국인들이 '가장 미국적인 차'로 자신하는 세그먼트. 미국 최고의 자동차 잡지 <카앤드라이버>는 카니발을 가리켜 "미국 자동차 시장이 기아라는 브랜드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말하자면,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유수의 미니밴들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인정 받기 시작한 셈이다. 대부분의 국산차들이 그렇듯, 카니발도 이제 지금껏 그리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세세한 디테일만 좀더 다듬고 엔진 세련미만 높인다면 완성도 100%에 가까운 미니밴으로 세계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 듯하다. 기아는 적어도 미니밴에 있어서 만큼은 이미 목표점의 85% 선 이상을 넘어선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길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그 얼마 남지 않은 만큼을 충족시키기가 몇 곱절 더 고되고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기대감이 기아 엠블럼에 쏟아질 것이다. 자체적인 품질 개선과 더불어 점점 높아가는 시장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 그 모두를 차근차근 채워가며 '월드 넘버 원'에 도달하느냐, 제풀에 꺾여 '대한민국 미니밴'에 머무느냐. 체력을 보강하고 좀더 큰 링에 뛰어든 뉴 카니발에서 반드시 지켜봐야 할 관전 포인트다. 2.9 LIMITED
Verdict : 대한민국 대표 미니밴 카니발의 진보는 계속된다. 눈에 띄게 나아진 마무리와 본분에 충실한 쓰임새는 훌륭하다. 이제부터는 디테일을 꼼꼼히 챙겨야 할 때다 Price : 3,170만 원 Performance: 0→시속 100km 가속 n/a, 최고시속 186km, 연비 10.5km/ℓ Tech : 4기통 2902cc, 170마력, 36.0kg·m, FF 에어컨(O) 네비게이션(O) CD플레이어(O) 알루미늄 휠(O. 17) 가죽시트(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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