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v7RVLfSGA8컬렉팅한 작품만 150점! 아트 콜렉터 이소영 자기님! #highlight#유퀴즈온더블럭 | YOU QUIZ ON THE BLOCK EP.124
우연히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아트컬렉터 이소영씨 영상을 봤다.
20대 중반에 과외로 모은 500만원으로 다소 저렴한 판화 작품들을 구입하면서 그의 그림 수집이 시작됐다. 최초로 구입한 판화 작품은 13년이 지난 지금 200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졌지만, 그리 아쉽지 않단다. 자신이 그림을 좋아하고 행복했던 시간이 보상이라며.
이소영씨는 수입의 99%를 미술품에 투자한다.
특히 할머니들 작품을 좋아하는데, 어떤 할머니 작품은 구입가보다 6-7배 넘는 가격으로 팔면서 떠나보내고 관심 있는 다른 할머니 작품을 구입한다. 어떤 경우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라 작품을 살 수 없지만, 그 작가의 아내 작품은 수준이 비슷한데도 판매되지 않은 작품을 눈여겨보고 사기도 한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어떤 창문들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나를 돌아봤다.
나는 여기서 '세상' 을 자신과 타인, 외부적 환경이라고 정리했다. 아마도 이소영씨가 자신과 타인, 외부적 환경을 이해하는 창문으로 그림을 골랐다면,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은 다양하게 변화했다.
요즘은 ‘시’ 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해서 나와 타인, 외부 환경을 이해한다.
내 시의 밑바닥에는 당연히 여성주의라는 이론이자 신념이 장착되어 있다. 여기에 때로 심리학, 역사, 민주주의도 곁들이고, 일과 사람, 영화이야기도 가끔 등장한다. 이렇게 주루룩 나열하고 있는 나를 주목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이 많아야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무척 열심히 다른 학문, 사람, 모임에 기웃거린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도 있다. 반면 학문이나 사람, 모임이 아니다 싶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시 찾지 않는다. 꽤 다정한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틀어지면 쏘쿨을 넘어 서늘한 사람이다.
영상을 보는 동안 궁금증이 생겼다.
다양한 툴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한 가지 툴로 다양한 것을 해석하는 것이 나을지.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어느 게 더 좋다고 판단 내리기가 쉽지 않다. 내 경우는 다양한 도구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쉽고 잘 맞는다. 처음에는 영화가 나와 타인 및 외부를 이해하도록 도왔다. 두 번째는 심리학이었고, 세 번째는 여성주의와 꿈 분석, 네 번째는 글쓰기, 지금은 글쓰기 중 '시'라는 장르가 나와 타인, 외부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창문이다.
한동안 영어로 나와 타인, 외부를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써봤다.
정말 쉽지 않았다. 다른 언어의 장벽은 너무나 거대해서 끙끙거리다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포기 못하는 영역이다. 운동도 그 중의 하나다. 평생 몸과 대화하거나 몸을 수련하는 것과 상관없이 살았다. 먹는 것만 잘하지, 먹는 것을 소화시키고 몸을 움직이는 데는 젬병이다.
앉아서 하는 독서, 영화감상, 글쓰기는 편한데, 산책을 나가거나 빠르게 걷기, 달리기 등은 애써 노력해야 겨우 한다.
하루 종일 바깥 출입을 안 하고 불편함을 못 느낀다. 오늘도 집 밖으로 한 발짝을 안 나갔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혼자 하는 일도 재미있다.
또 하나, 나라는 사람은 가사 노동인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정리 정돈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이것들은 날을 잡고 시간을 따로 빼서 각 잡고 해야 할 중차대한 노동이다. 며칠 전에도 글쓰기 작업실에 오후엔 나가야지 했는데, 저녁 쯤 가게 된 이유도 가사 노동과 연관이 있다. 빨래 통에 수건과 파트너 양말이 가득 쌓여있는 걸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글쓰기냐 가사 노동이냐에서 가끔 가사 노동이 발목을 잡는다.
가사 노동을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인데, 하필 중요한 글쓰기를 빨리 마감해야 하면 스트레스가 고조된다. 아아악~~~ 다 때려치고 싶어. 소리를 냅다 지르고 도망치고 싶다. 내게 가사 노동은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신경을 긁고 괴롭히는 대상이자 함께 사는 파트너에게 가끔 따져 묻고 싶을 정도로 고달픈 존재다. 나아가 돌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여성들에게만 조성해온 유, 무형의 논리와 언어, 신념 체계 및 조직들을 깨부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