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01 07:32
조순 교수가 쓴 책, 정운찬·전성인·김영식 교수가 차례대로 동참… 시대 아우르는 '경제학 古典'으로
1974년 초판 2만부 넘게 팔려
"제대로 된 경제학 책 없어 집·여관방서 1년간 집필…
강호진·김승진·김중수 등 제자 '五秀才' 도움 받았죠"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등장
조순, 부총리로 학계 떠나고 정운찬이 서울대 총장 되자
후학들 동참하며 10판까지… "이 책엔 세대 단절이 없다"
老경제학자의 한마디
"요즘 중국선 海歸가 유행… 해외서 귀국한 청년들이 큰 회사보다 자기 회사 창업
우리 젊은이들이 배웠으면"
서울 봉천동 주택가에 있는 조순(趙淳·86) 서울대 명예교수 자택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큰길에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300m쯤 걸어 들어가니 연립주택들 사이에 수십년 된 소나무가 대문 위로 훌쩍 자라있는 단독주택이 보였다. 대문 안쪽엔 소나무 두 그루가 가을볕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 이사 온 1980년 직접 심은 나무입니다. 하나는 강원도, 또 하나는 전라도산(産)인데 서로 다른 운치를 갖고 있으니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조 교수는 1967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대 경제과 강의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74년 국내 경제학계에서 제대로 된 첫 번째 현대 경제학 교과서로 평가하는 '경제학원론'을 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 책 발간을 기점으로 국내 학계에 현대 경제학이 체계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순 경제학원론이 올해 발간 40주년을 맞았다. 우리 경제가 힘찬 뜀박질을 시작했을 때 경제 현상을 보는 기본 이론과 철학을 제공했던 기본서가 불혹(不惑)의 경륜을 갖게 된 것이다.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조순 교수의 제자들은 오는 7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경제학원론 발간 40주년 기념회'를 갖는다.
지난 28일 봉천동 자택에서 조순 교수를 만났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와 전성인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곳에 이사 온 1980년 직접 심은 나무입니다. 하나는 강원도, 또 하나는 전라도산(産)인데 서로 다른 운치를 갖고 있으니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조 교수는 1967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대 경제과 강의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74년 국내 경제학계에서 제대로 된 첫 번째 현대 경제학 교과서로 평가하는 '경제학원론'을 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 책 발간을 기점으로 국내 학계에 현대 경제학이 체계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순 경제학원론이 올해 발간 40주년을 맞았다. 우리 경제가 힘찬 뜀박질을 시작했을 때 경제 현상을 보는 기본 이론과 철학을 제공했던 기본서가 불혹(不惑)의 경륜을 갖게 된 것이다.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조순 교수의 제자들은 오는 7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경제학원론 발간 40주년 기념회'를 갖는다.
지난 28일 봉천동 자택에서 조순 교수를 만났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와 전성인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 지난 28일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울 봉천동 자택에서 ‘소천서사(少泉書舍·소천은 그의 호)’ 현판이 걸린 현관 앞에서 찾아온 기자를 맞고 있다. / 이덕훈 기자
◇"경제학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을"
조 교수는 거실에서 영문 경제지(紙) 파이낸셜타임스를 읽고 있었다. "이 신문을 30년째 매일 읽고 있다"고 했다.
―경제학원론이 나온 지 꼭 40년이 됐다. 당시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
"한마디로 학생들을 가르칠 제대로 된 경제학 교과서가 없었다. 영문 원서로 새뮤얼슨의 '경제학'이 있었지만 국어로 된 건 읽을 만한 게 없었던 거다. 한 권만 정성껏 공부하면 경제학 전반을 개관(槪觀)할 수 있는 책이 꼭 필요했다."
―서울대 상과대학에 경제학과를 만든 게 1946년이다. 제대로 된 경제학 책이 없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이 대부분이었다. 경제는 뭐다, 화폐는 뭐다 이런 걸 단순 번역하고 짜깁기하는 수준이었다고 할까. 논리적인 체계도 없었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마르크스 사상을 경제학의 핵심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 현대 경제학이 자리를 잡지 못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참고할 만한 자료나 저서도 마땅치 않았을 텐데.
"미국 버클리대 박사 학위를 받기도 전에 뉴햄프셔 주립대학에서 조교수 발령을 받았다. 성적 좋은 학생들을 모아놓은 우수반을 맡아 원론을 가르쳐달라 하더라. 잘 가르치려고 공부도,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 경험이 원론 쓸 때 큰 도움이 됐다."
―제7판 서문에 '경제원론은 경제학의 초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종착점이라고 봐야 한다'고 쓰셨다.
"원론은 경제학의 모든 기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원론을 확실히 알면 모든 경제문제에 대해 관점이 확립된다고 생각했다. 난 지금도 케인스 경제학을 중시하지만, 책에는 케인스 이론뿐 아니라 미시(微視)와 화폐금융, 국제무역 등을 모두 담아 균형을 잡았다."
조 교수는 꼬박 1년 동안 책쓰기에 매달렸다. 초기엔 집에서 작업하다 나중에는 서울 보문동 한 여관방에 틀어박혔다. 조 교수는 뛰어난 제자 다섯명, '오수재(五秀才)'의 도움을 받았다. 강호진 고대 명예교수, 김승진 전 한국외대 대학원장(서울캠퍼스), 김중수 전 한은총재, 박종안 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 이정우 경북대 교수 등이었다. 조 교수는 초판 서문에 "(이들의) 도움이 이 저작의 전 과정에 걸쳐 실로 막대했다"고 적었다.
―'오수재'는 어떤 인연으로 집필을 돕게 됐나.
"학부 학생 중 평소 눈여겨봤던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책 내용과 방향에 대해 모든 것을 토론하고 의견을 나눴다. 정말 굉장한 수재들이었다. 책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고, 책이 잘 팔리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해도 경제학 전반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책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초판은 2만부가 넘게 팔렸다. 경제에 대한 교양 지식을 갈구했던 젊은이들의 지적 호기심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경제학과 학생뿐 아니라 인문대·공대·자연대 학생들도 책장에 한 권쯤 꽂아둬야 할 책으로 각광을 받았다. 세로쓰기를 고집했던 기존 책들과 달리 가로쓰기를 도입한 것도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조순 교수의 ‘경제학원론’ 공동 저자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왼쪽부터).
◇"세대 간 단절이 없는 책"
조순의 경제학원론은 지난해 제10판이 나왔다. 특이한 점은 판(版)을 거듭하면서 조순 교수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저자(著者)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초판은 조순 교수의 단독 저서였지만 1990년 2월 출판된 5판부터 정운찬 교수가 참여했다. 제7판부턴 전성인 교수, 제8판부턴 김영식 서울대 교수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전성인 교수는 "40년에 걸쳐 제자나 후배가 추가로 동참해 집필하는 책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1988년 조순 교수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돼 학계를 떠나면서 이 책은 '보호자'를 잃었고, 2002년 제2 저자인 정운찬 교수가 서울대 총장이 되자 책을 전처럼 보살필 수 없었다. 그때마다 후학들이 뒤를 받쳤다.
정운찬 교수는 "조순 선생님이 부총리가 되신 후 '아이코, 이제는 책을 못 고치겠네. 자네가 좀 고쳐주게'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내용을 좀 보완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많이 고쳤는데 어떻게 내 이름으로 내나. 공저로 하세'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순 교수는 "정 교수의 공헌이 워낙 컸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 영입은 정운찬 교수가 주도했다. 정운찬 교수는 "서울대 총장이 된 후 선생님께 '이제 저 혼자로는 개정이 힘들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넣어야겠는데요. 전성인 교수 어떠세요'라고 추천했다. 선생님 반응은 '아 좋지'였다"고 말했다.
막내 김영식 교수는 '제 발로' 찾아왔다. 정운찬 교수는 "평소에 '이 책이 잘 돼야 하는데…' 라고 걱정했더니 어느 날 김 교수가 찾아왔다. '선생님 바쁘시면 제가 좀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하길래 '아 그래 주면 고맙지'라며 덥석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조순 교수는 "처음 이 책을 쓸 때 40년을 가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위기 때마다 제자와 후배들이 나타나 이 책에는 세대 간 단절이 없다"고 말했다.
―추가 저자 영입이 독특해 보인다.
"우리가 다 사제지간이다. 내가 정운찬 교수(66학번)를 가르쳤고, 유학에서 돌아온 정 교수가 처음 만난 학생들이 전성인 교수 학번(78학번)이었다. 서로 기본적인 생각과 사상이 어떤지 잘 알았다. 최신 경제문제나 학계 트렌드를 좀 더 알고 덜 아는 차이가 있었을 뿐…."
- 2013년 나온 경제학원론 제10판.
◇경제학의 위기
조순 교수는 요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몇 해 전부터 무릎이 안 좋아졌다. 집 현관에는 지팡이 10여개가 놓여 있었다. 조 교수는 "혈압도 당뇨도 없고 건강도 좋은데 다리가 약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좀 하는데 내년 초까지 학술원에 제출할 논문을 쓰느라고 약간 피곤하다"고 했다.
―요즘 경제학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생각하길 거부하니까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질 못한다. 자기가 속한 분야에만 파묻혀 다른 문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위기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심각하다. 경제 기초가 튼튼하지 않다. 난 재벌들 미워하는 거 하나도 없지만 그 사람들이 혁신을 잘 못한다."
―중소기업들도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건 마찬가지다.
"몇몇 잘하는 중소기업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창업도 많이 하고 도전하게 해야 한다. 삼성에서 신입 사원 뽑는다고 10만명씩 몰리는 거, 이래서는 안 된다. 요즘 중국에선 해귀(海歸)가 대유행이다. 해외에서 귀국한 젊은이들이 큰 회사를 선택하지 않고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달려드는데 그게 힘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런 정신이 없다."
그는 젊은 세대가 젊은이다운 기상을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회를 만드는 데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기자를 향해 조순 교수가 던진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앰비션(ambition·야망)을 버리면 안 돼요. 그래야 살아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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