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박병구
박 교수는 중국에 있는 선전대학과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중국 연구자인 그에게는 중국의 모든 것이 연구 대상이고 도서관이었기에 현지에 계속 남아 중국산업과 인문환경을 연구하고 싶었다. 고심 끝에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동관東莞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동관 외곽의 진鎭급 도시에는 중소기업들이 많았다. 박 교수가 거주하는 여관 바로 옆에도 컴퓨터 부품공장 등 여러 기업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관은 옆방 소리가 들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지만, TV와 에어컨·화장실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한 달 방값이 400위안 정도로 가성비가 좋았다.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 지역 동관에는 쥐·바퀴벌레 등 전염병을 일으키는 설치류와 해충이 사람과 함께 살아갔다. 낮에 공중방역을 하면 거리로 기어 나온 매미만 한 바퀴벌레 밟히는 소리가 툭툭 터졌다. 밤에는 재래시장 가판대 주위에 검은 쥐들이 떼로 몰려다니기도 했는데, 마치 오늘 밤은 누구 집을 털지 회의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여관 투숙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박 교수는 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뭘 뒤지는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재빨리 불을 켰지만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다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스위치 켜고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가서 유심히 살펴보는데, 갑자기 쥐 한 마리가 후다닥 튀어나오더니 창문 틈을 통해 달아났다. 그는 날이 밝자마자, 데스크로 내려가 여관 주인에게 방에 쥐가 들어온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주인은 오히려 큰소리로 화를 냈다.
“방에 먹을 게 있으니까 쥐가 들어오지. 과자부스러기 당장 치우세요!”
방에 있던 비스킷 등 과자를 모두 버렸는데도 밤낮으로 쥐는 천장으로 들락날락했다. 창문과 천장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 쥐가 벌어진 창틈으로 들어와 천장으로 올라가거나, 창틈에서 방으로 바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방에 있던 배추가 화근이었다. 낮에 주방에서 밥해 먹고 남은 배추를 탁자 위에 놔두었는데, 밤에 쥐가 들어와서 갉아먹은 것이다. 박 교수는 불을 켜자마자 달아나는 쥐를 향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쥐는 요리조리 조롱하듯 피하다 이내 창틈으로 도망갔다. 낡은 창문은 고장이 나서 닫아도 온전히 닫히지 않고 틈이 벌어진 상태였다. 창틈을 빈 생수병으로 꾸역꾸역 막았으나, 쥐는 생수병 사이 작은 틈으로 몸을 길게 쭉 늘여 미끄러지듯 달아났다.
“내 이놈의 쥐새끼 반드시 잡고야 말 거다!”
오기가 발동한 박 교수는 잡화상에서 쥐 잡는 끈끈이를 사 와서는 천장 위로 던져두었다. 또 방에는 과자 미끼도 흘려놓았다. 초저녁부터 쥐가 끈끈이 틀에 걸려들기만 기다렸다. 박 교수는 생쥐 제리를 잡는 고양이 톰이 되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천장에서 갑자기 푸드덕 몸부림치는 치는 소리와 함께 찍찍 소리가 들렸다. 만약 제대로 걸려들었다면 끈끈이에 쥐 껍질이 달라붙고 움직일수록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당하는 중일 것이었다. 박 교수는 쥐가 소리 지를 때마다 너무 통쾌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감히 내걸 뺏어 먹으려고? 하하하!”
그로부터 한동안 쥐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박 교수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쥐가 다시 천장 위를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끈끈이를 밟은 쥐가 죽지 않고 생환했거나, 또 다른 쥐가 바통 터치를 하고 내 방을 노리거나….
박 교수는 더는 쥐잡기를 포기하였다. 곧 중국 비자 기한이 만료되면 귀국해야 하는 터라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걱정뿐이었다.
‘한국 가면 뭘 해서 밥 먹고 살지?’
저녁마다 마을로 가로지르는 주강珠江 지류 둑을 거닐며 일자리 문제에 고심했다. 걱정이 태산인데 묘안은 없고 마치 큰 바윗덩이가 덮칠 듯이 굴러오는 압박감이 그를 괴롭혔다. 베이징에서 광둥성 선전으로, 선전에서 장쑤성 쩐장鎭江으로, 쩐장에서 다시 선전으로, 선전에서 동관으로. 가만 보니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국제노동자인 자신의 처지가, 먹고 살자고 밤낮으로 돌아다닌 그 쥐의 일생과도 어지간히 닮아 있었다.
《홀로와 더불어》 2022 겨울호 pp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