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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총회와 함께 하는
CBS 크루즈 성지순례
2012년 4월 29일(주일)~ 5월 12일(토)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새소망교회 윤 성 화 목사
들어가는 말
목사가 오랫동안 교회를 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늘 망설여왔다. 그러던 중 백석교단 총회에서 주관하여 실시하는 CBS 크루즈 성지순례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현장과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의 발자취를 온몸으로 느끼고 돌아오는 기회였다. 성지순례의 은혜와 감격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하여 출발하면서부터 기행문을 쓰기로 했다.
막상 정해진 성지순례 일정을 따라 가보니 순례인원 50명당 1명의 가이드가 배정되어 그의 설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육상선수처럼 달려야 했고, 제대로 사진을 찍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메모한 후 저녁에 크루즈 내의 숙소에 돌아오면 노트북으로 정리를 했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말하는 크루즈 여행의 맛은 제대로 느낄 시간이 없었지만 결코 후회함이나 아쉬움 없이 나의 목회에 큰 도움이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 내가 찍은 몇 장의 사진과, 금번 성지순례에 함께 갔던 분들이 CBS Tour Web hard에 올린 사진을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이와 함께 금번 성지순례 기간 중 귀한 목사님과 성도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 더욱 즐겁고 유익한 성지순례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값진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성지순례에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도해 주신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12년 5월
새소망교회 윤 성 화 목사
백석총회와 함께 하는 CBS 성지순례 일정
NO | 일자 | 방문지역 | 세부 여행코스 |
1 | 4/29(주일) | 인천공항 | 집결 및 출국수속(21:00) 인천공항 출발(23:50) |
2 | 4/30(월) | 이스탄불 밀라노 사보나 | 이스탄불 도착 밀라노 도착 사보나에서 크루즈에 승선 |
3 | 5/1(화) | 바다 | 새벽예배, 선상부흥회 |
4 | 5/2(수) | 올림피아 (그리스) | 선상예배 올림피아 유적지, 고대 올림픽 경기장 방문 |
5 | 5/3(목) | 바다 | 선내 특강, 선상부흥회 |
6 | 5/4(금) | 베들레헴 예루살렘 (이스라엘) |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목자들의 들판, 예루살렘의 승천교회 눈물교회, 주기도문교회, 겟세마네교회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14처소, 통곡의 벽 성묘교회, 마가의 다락방, 다윗왕의 무덤 |
7 | 5/5(토) | 갈릴리 가나 나사렛 (이스라엘) | 오병이어 기념교회, 갈릴리 호수 베드로 수위권 교회, 팔복교회, 가버나움교회 가나 혼인잔치교회 나사렛 수태고지교회, 갈멜산 엘리야 기념교회 |
8 | 5/6(주일) | 바다 | 선상주일예배, 성만찬예식 |
9 | 5/7(월) | 에베소 (터키) | 사도요한 기념교회, 에베소 유적지 누가의 묘, 원형극장 마리아 기념교회, 셀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 아고라, 헤라클레스의 문 |
10 | 5/8(화) | 아테네 고린도 (그리스) | 파르테논 신전, 아레오바고 언덕 국회의사당, 올림픽경기장, 고린도운하 사도바울 재판터, 겐그리아 항구 |
11 | 5/9(수) | 바다 | 선내 특강, 성지순례 감사예배 |
12 | 5/10(목) | 로마 | 로마상징 콜롯세움 포로 로마노, 스페인광장, 트레비 분수 |
13 | 5/11(금) | 로마 이스탄불 | 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 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는 성당 바울참수터, 카타콤베 이스탄불 공항 도착 |
14 | 5/12(토) | 인천공항 | 이스탄불 출발 인천공항 도착(16:50) |
4월29일(주일), 출발하는 날
과부의 두 렙돈
4월29일 주일오전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와서 마지막 여장을 갖추었다. 몇몇 성도들께서 성지순례를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정성이 담긴 봉투를 전해 주신다. 저들의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도 못함을 잘 아는 터이므로 그분들이 주시는 봉투는 너무 귀하고 감사했다.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은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서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이는 것이리라. 예수님께서 성전의 연보궤 옆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칭찬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주여. 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구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리무진버스 마지막 차가 오후3시50분에 있다. 시간을 맞추어 나갔더니 아들 철민이와 이희정 집사, 김수진 자매, 한성수 선생이 배웅하기 위하여 나왔다. 참으로 감사하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인천공항을 향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봄의 신록이 완연하다. 봄을 화폭에 담을 때 주로 많이 쓰는 색상은 연두색과 초록색이다. 그런데 지금의 봄은 너무나 다양한 색깔을 입고 있어 물감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계절따라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신 솜씨를 찬양하였다. 우리가 귀국할 때쯤에는 산천의 색깔도 더 짙은 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국제공항으로
천안부근에서 약간의 정체가 있었을 뿐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사정은 대체로 양호하다. 주일 오후라서 상행선 고속도로가 정체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참으로 감사하다. 리무진 버스가 총길이 21.3km의 인천대교를 지날 때 해가 수평선 아래로 서서히 넘어가고, 섬과 배들은 어둠을 서서히 삼켜 검은색으로 채색되고 있다. 하나씩 둘씩 가로등이 켜지고 저녁 7시35분 리무진 버스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크루즈 성지순례를 인솔할 CBS 투어 직원과 약속된 시간이 저녁 9시이니까 도착한 이후에도 1시간 25분을 기다려야 하며, 비행기 탑승시간이 저녁 11시50분이니 공항에서 체류해야 하는 시간이 4시간이 넘는다. 그래도 약간은 들뜬 기분이다. 금번 성지순례의 전 여정에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이 있기를 기도하였다.
공항에 집결한 성지순례팀
크루즈 성지순례팀의 집결장소인 인천공항 G카운터에는 이미 CBS투어 직원과 몇 명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와 있었다. 아직은 거의 초면이고 서먹한 관계이지만, 성지순례 기간동안 서로를 잘 알아가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CBS 투어 직원에게 비행 소요시간을 물어보았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1차 기착지인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밀라노 공항에 도착하는 현지시간이 오전5시50분이며, 시차가 7시간이므로 편도에 소요되는 시간이 대략 13시간이나 된다. 허걱!!!!!
터키항공 비행기 탑승, 좌석 때문에 일어난 약간의 소동
드디어 출국수속을 마치고 좌석표를 받아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항공사는 터키항공이다. 탑승한 순간부터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목사님 부부가 함께 가는 것으로 신청하였는데 비행기 좌석은 부부가 같이 앉아갈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무려 13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하는 것은 피차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모두들 서로 자리를 바꾸느라 우왕좌왕했으며, 나도 여러 차례 좌석을 바꾸어 겨우 사모와 나란히 함께 앉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분들에게 피로의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오늘 주일 새벽기도부터 오전예배까지 인도하고 바로 이곳에 오셨을 것이다. 어떤 분은 자리에 앉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다. 좁은 좌석에 13시간의 긴 밤 비행으로 성지순례의 막은 열렸다.
그림의 떡, 모니터
비행기 좌석 앞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모니터를 통해 항로와 비행정보를 볼 수 있고, 음악이나 영화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동하는 방법도 모르고, 그나마 외국어로만 나오니 그림의 떡이다. 지금 비행기가 어디쯤 왔는지,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다. 앞으로 5시간 혹은 3시간이라는 것을 알면 덜 지루하였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체념하고 잠을 자든지, 날이 밝아지기를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다.
지옥이란 곳에서의 시간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지옥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남은 고통의 기간이 얼마인지 알 수 있으면 그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사실 끝이 없는 것이다) 알 수 없음이 더 큰 고통을 가중시킨다. 희망이 없는 곳, 응답과 자비와 위로가 없는 곳, 그 곳이 바로 지옥이다. 비행기 안에서 지옥을 생각하다니 내 상상의 나래는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웃음이 났다.
서로 말이 통한다는 것의 축복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외국 항공사(터키) 소속이어서 터키항공 승무원과 1명의 한국인 여자승무원이 있었다. 평소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터키 승무원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하고, 짧은 영어단어를 나열하며 의사전달을 해야 했다. 서로의 말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언어가 다를 때에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한 집에 살아도 부부 또는 부모와 자녀사이에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서로의 입장을 배려함이 없고,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이 귓가에만 맴돌 뿐 내 마음속으로 파고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정에서 대화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는 강단에서 수없이 많은 말씀을 쏟아낸다.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들의 영혼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성도들이 현실 속에서 당면하는 문제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이 있다. 그런데 목사가 저들의 형편을 알지 못하면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목사님의 말씀은 다 옳아. 그렇지만 그 말씀이 지금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고는 귀를 닫고, 마음도 닫아버릴 것이다.
솔로몬 왕은 말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27:23) 에스겔 선지자는 타락한 이스라엘 목자를 향해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겔34:2-4) 책망하였다. 양들을 잘 살피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다. 만약 내가 이 일에 대한 관심이 없고, 명예나 취미나 정치 등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이는 분명한 직무유기이며, 우리를 부르시고 목사로 세우신 하나님 앞에 책망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사람이 되자 = 성도다운 성도
비행기 안에 함께 탑승한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의 부주의한 행동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좁은 비행기 공간에서 13시간 앉아있기란 누구에게나 힘이 들 것이다. 그리고 애써 잠을 청하려고 하는 사람과 벌써 잠이 든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데 공연히 복도를 왔다갔다하거나, 아는 사람과 옆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또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하여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양해할 수 있지만, 토닥토닥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어깨와 배를 두드리는 소리는 귀에 거슬린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폐를 끼치는 소음이 될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은 귀한 것이다. 그런데 삶속에서 최소한의 예절과 질서를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욕을 먹는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가끔 식당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서 서로를 “권사님~ 집사님~”이라고 불러가면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 목사나 성도를 욕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한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의 경솔한 언행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되고, 전도의 문이 막히며, 교회가 욕을 먹는다. 이 땅에 완전한 사람이 없으며, 완전한 교회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정죄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고가야 할 우리의 십자가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며, 이 세상 사람들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모교의 정문 앞에는 이런 글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먼저 사람이 되자”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올바른 인간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비록 성경말씀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장로,권사,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자신의 직분을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과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위선’이라는 말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며 목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당신이나 잘 하세요~”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인들이 모이는 모임이나 세미나 등에 참석할 때 느끼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은혜받기 위하여 온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개인주의적 일탈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의 없음, 양보하지 않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없음, 주최 측의 지시에 따르지 않음” 등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어떤 선배 목사님의 하신 말이 기억난다. 자신은 교회에서 장로나 직분자를 세울 때 믿음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본다는 것이다. 직분자를 세울 때 믿음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믿음은 좋을 때가 있는가하면 침체되어 가라앉을 때도 있다. 믿음이 좀 떨어졌을지라도 인품이 좋으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데, 그렇지 못하면 교회를 분쟁과 다툼으로 몰아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직분자를 세울 때 교회의 평안을 원한다면 인품이 좋은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의 직분자를 세울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목사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전에 온갖 인생의 풍파를 다 겪은 사람이 많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쓴 뿌리가 있고, 모난 성격이 잠재하여 있다가 그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 때마다 성도들은 실망하고 상처받게 된다. 목회자의 삶은 마치 유리상자와 같아서 결코 감출 수가 없다. 교회 성도들이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목사님은 어떻게 사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목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지 감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깊은 마음과 생각까지 다 헤아리신다.
목사이기 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가 되기 전에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예배자로 강단에 나아가야 한다. 목사답게, 성도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러나 그곳에 하늘의 상급이 있다.
승무원 호출 버튼
비행기의 실내등은 잠을 자는 승객을 위해 모두 꺼져 캄캄하다. 좌석 앞에 모니터를 조작하는 리모컨이 있지만 어두워 버튼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을 마구 눌렀는데 갑자기 승무원이 와서 무엇을 도와드릴까? 묻는다. 알고 보니 리모컨의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비행기 안에도 버튼만 누르면 승무원이 즉시 와서 우리를 도와준다. 우리의 삶에도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나를 도와줄 하나님을 부르는 호출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은 바로 “기도”이다.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는 순간 하나님께서 즉시 찾아오시고, 응답하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이보다 더 확실하고 믿음직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기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 문제의 해결함을 받지 못하고 문제에 얽매어 살아가고 있다면 다음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무지하든지, 혹은 게으르든지”
기치(機癡)와 기치(祈癡)
나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기치(機癡)”이다. 집안에 전기가 나가도 제대로 응급처치 할 줄 모른다. 전자제품을 처음 구입할 때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제품을 구입할 때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긴 하지만, 동봉한 사용설명서를 읽고 다양한 사용방법을 익히는 것이 어렵다. 설명서에 기록된 전문용어가 생소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한 사용방법을 알고 이용한다면 그 제품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기도하는 법을 잘 모르면 그 사람은 “기치(祈癡)”이다. 올바른 기도는 먼저 기도하는 자와 하나님 사이에 말씀의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고,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마치 잡동사니 스팸(spam)으로 취급하실 것이며, 그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내게도 이런 기도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부터 성도들에게 올바른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한 사람도 기치(祈癡)가 없도록 해야겠다.
아는만큼 누린다
이스탄불 도착을 1시간 정도 앞두었을 때에야 비로소 모니터를 통하여 현재 비행기의 위치와 항로방향, 남은 시간, 현지 날씨 등을 지도와 함께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비행기는 인천에서 출발한 이후 중국과 몽고, 러시아 영공을 질러 이곳으로 온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동안 가졌던 궁금증과 답답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비밀을 몰라서 누리지 못한다면 그만큼 내가 손해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때엔 내가 몰랐어요”라는 변명이 통할까? 정상 참작이 될까? 우리가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법을 어기고 “나는 한국 사람인데 내가 이 나라의 법을 몰라서 그랬다” 하여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주셨으며, 그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올바른 삶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놓으셨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잘 몰라서, 무지해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다고 변명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단순하게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구석구석에 세밀하게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그분을 알아가야 한다. 내가 아는 만큼 신뢰하게 되고, 아는 만큼 체험하게 되고, 아는 만큼 찬양하게 되고, 아는 만큼 기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