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엔 퇴계원이 상업의 중심지였다. |
우리나라의 중부지방(서울, 경기)에 분포 전승되고 있는 탈놀음을 일명 산대놀이라 부르고 있다.퇴계원산대놀이는 1930년대까지 남양주시 퇴계원(당시 양주)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던 전통민속예술이다.조선시대 퇴계원은 교통의 중심지로 상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옛날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입지 조건에 따라 도시로 공급되는 숯, 장작, 건축재, 고기, 곡식, 채소, 연초 등 소비재가 이곳에 집하되었다. 당시 100여호의 객주와 역원이 왕숙천을 끼고 곳곳에 자리를 잡고 상업이 발달하여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벼 산대놀이 연희가 성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
>>'사람들이 모여드는' 민속예술, 산대놀이 뿌리찻기 |
그 후 일제 점령기에 산대놀이를 놀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므로 일제는 이를 꺼려 탈과 의상, 악기 등을 빼앗아 불태우는 등 민족탄압전책으로 흔적이 사라지다가 6.25한국전쟁으로 인해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였으나, 근래에 와서 그 뿌리를 찾는 작업이 일어나, 현재 12과장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여 활발한 전수작업과 공연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
>>The Origin |
Tal noreum,so called Sandaenori, was scattered and handed down in Jungbu area(seoul, Kyonggi) Toegaewon sandaenori was the traditional folk arts that found in Toegaewon(Yangju, then), in Namyangju city until 1930. During the Chson Dynasty, Toegaewon was a transport and business center. In relation to the key way to Hanyang, consumer products like charcoal, firewood, building materials, meat, grains, vegetables, tobacco had been gathered here. Then, there were about 100 of taverns and station houses following Wangsukch n, for the growth of business and many people passed by, it was a perfect condition available to perform sandaenori. Later, during the occupation, Japan banned this nori and burnt masks, costumes, instruments adopting the oppressive policy on nation because sandaenori caused people to gather around, so, it looked like disappeared from for a while, and during the Korean war, it`s almost vanished away, but in the recent tracing works, now all 12 case was almost restored. there have been in full activities of instruction and performa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