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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개요
소매물도는 면적 0.51km2, 해안선 길이 3.8km, 최고점은 망태봉으로 해발 152m이다. 바로 옆에 있는 형제섬 매물도는 면적 1.406km2, 해안선 길이 5.5km, 최고점은 장군봉으로 210m이다. 인구는 15가구 34명이다. 1870년경 김해 김씨가 “소매물도에 살면 해산물이 풍부하여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에 거제도에서 처음으로 입도하였다. 3월부터 6월까지 미역을 채취하여 말린 이 섬의 돌미역은 전국 최상품으로 꼽힌다. 소매물도는 외해에 속한 탓에 파도가 엄청나게 거세다. 파도에 시달린 미역은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더욱 더 진한 국물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 외 해녀들이 채취한 전복, 소라, 해삼, 멍게 등이 주수입원이다. 주변 해역은 고등어, 도미, 멸치 등 어족이 풍성하여 낚시 천국을 이루며, 출어하는 어선들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살만한 곳이다. 1973년도에 36가구 193명, 분교생 43명이 공부를 하였다. 이후 교통과 전기, 교육 등 생활이 열악하여 10가구 정도로 줄었다. 최근에는 소매물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본토인들과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펜션 등을 하면서 인구가 늘고 있다. 이곳은 평지가 거의 없고, 험한 산뿐이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보리밥나무 등 60여 종의 자생식물이 울창하게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침식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해식애와 해식동굴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소매물도 둘러보기
소매물도 여행은 간단하다. 선착장에 내리면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잘못 들어갈 일도 없다. 등대길 탐방 코스는 선착장~분교~전망대~망태봉~열목개~등대섬~열목개~남매바위~선착장 순서로 돌아보는데 3.1km 구간이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섬이라 급경사가 많아서 운동화를 신으면 발이 춤을 춘다. 소매물도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왼쪽 해안이 일품이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뾰족한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바위 절벽과 초지가 어우러진 섬 한가운데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바닷바람을 피해 만든 지붕 낮은 민가, 켜켜이 잘 쌓은 돌담, 부둣가 주변의 가파른 경사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어촌 풍경이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은 10여 가구 정도이다. 평생 동안 물질을 해온 해녀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 등 30명 남짓의 인구가 있다. 섬 토박이들은 많이 이사를 나갔지만 풍광이 너무 좋아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꽤 많다. 주민들의 대다수는 민박과 낚싯배를 운영해 그 수입에 의존한다. 선착장 여기저기 상업성을 느낄 수 있는 각종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 천막을 친 매점에 이어그 옆으로 가건물로 된 매점이 있다. 부둣가 주변엔 주민들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좌판도 여럿 있다. 왼쪽으로 안내소가 있다. ‘생태마을을 꿈꾸는 소매물도’라는 구호와 함께 버섯과 새 등의 조형물이 나란히 솟대처럼 꽂혀 있다.
소매물도 선착장
오르막길 가운데에 2층 건물이 있다. 왼쪽은 펜션들이 있는 공간을 통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입구 쪽에 이정표가 있다. ‘학교길’부터 시작해서 ‘갈담길’, ‘골목길’, ‘색담길’ 등을 표시했지만 방향은 똑같다. 여기서 등대까지는 2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쿠크다스 펜션을 지나면 본격적인 소매물도 마을이 나타난다. 그러나 집들은 거의 없다. 구불구불한좁은 산길이 이 섬에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산행로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안내판이 있고 뒤로는 천막을 친 채로 각종 의류 등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처음부터 돌계단길이다. 주변에 집들이 몇 채 보이나 대부분 폐가들이다. 마을 위쪽으로부터 등대섬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의 주변에는 수크령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어 5분 정도 올라가면 계단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타난다. 제법 가파른 길이다. 단순한 트레킹이 아닌 산행하는 기분이다. 몇 걸음 걷다 뒤를 돌아보면 바다와 어촌 그리고 작은 부두가 조화를 이룬 항구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삼거리 부근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등대섬(1.4km), 오른쪽은 망태봉(0.1km) 가는 길이다. 왼쪽 즉 북쪽으로 가면 슬픈 남매 이야기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남매바위’가 있다고 한다. 쌍둥이 남매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바위다.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에 있는 바위가 조금 크고 검다고 해서 ‘숫바위’, 아래에 있는 바위를 ‘암바위’라고 한다. 발길을 옮기자마자 왼쪽으로 학교터가 나온다. 입구에 교적비가 있다. ‘매물도초등학교 소매물도분교터’로 1961년에 개교하여 졸업생 131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에 폐교되었다는 내용이다. 36년 동안 배출한 졸업생이 131명이라서 한 학년에 4명이 채 안 되는 꼴이다. 이렇게 작은 섬에도 학교가 존재했다는 게 신기하다. 학교가 폐교될 당시에 섬 주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먼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섬마을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교 문은 철제로 되어 있다. 몇 년 전 정준 · 홍경인 · 여현수가 주연하고 박희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자 태어나다〉의 주 촬영지가 소매물도이고, 주 무대가 이곳 폐교로 알려지고 있다. 촌놈 3인방의 대입 도전기를 다룬 영화인데, 아름다운 소매물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하고서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방이 나무들로 가려진, 제법 넓은 잡초로 뒤덮인 운동장을 지나면 건물이 보인다. 폐교는 한동안 ‘힐 하우스’라는 이름의 민박으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오래 된 폐교가 쓸쓸한 모습으로 옛 추억에 잠겨 홀로 서 있다. 유리창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다. 교실은 책걸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소매물도 분교를 지나면 약간의 평지가 나타난다. 여기까진 섬인지 육지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 구간이다. 소매물도 안내도가 있고, 그 옆으로 복원사업을 시행하였다는 국립공원 표지석 뒤로 나무 쉼터를 만들어 두었다. 여기서 방향은 남서쪽으로 향한다. 아래로 가면 해안가에 이르게 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무너진 등대터에 닿게 된다. 기념관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세관으로 사용됐다고 하는데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는 의문이다. 통영에서는 유인등대가 있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밀수나 밀항을 감시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소매물도 관세 역사관
원형 건축물에 돔형 지붕을 한 기념관이 ‘매물도관세역사관’이다. 1978년에 개설되어 1987년에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채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관세기능을 한 곳이다. 원래 이곳은 일본의 대마도와 가까워서 해상 밀수가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인근 해상의 밀수선박을 단속하기 위해 감시초소(레이더 기지)를 운영하였다. 이후 밀수선 단속 기능이 없어지면서 건물이 방치되어 있었는데, 지난 2011년에 1층 역사관과 2층 전망대를 만들어 전시공간으로 단장하였다. 1층 역사관에는 소매물도 감시초소였던 그 당시의 물품과 밀수사건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규모가 작다보니 그다지 볼거리가 풍성한 것은 아니다. 한 바퀴 동선 따라 돌아보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따로 없다. 망원경 한 대가 있지만, 육안으로 사방을 둘러보면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대매물도가, 멀리는 통영의 최동남단 섬 홍도(鴻島)와 굴비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정작 바로 앞 등대섬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관 앞은 마당으로 깃대와 함께 철탑 그리고 동상이 있다. 세관원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주변에 동백나무가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제야 등대섬 전경이 보인다. 바다 쪽은 촛대 바위, 글씽이바위 같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은 전체가 시원한 잔디로 덮여 있다. 등대섬은 늘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대고 폭풍이나 태풍이 올 때면 집채만 한 높은 파도가 섬을 삼킬 듯이 덮치기 때문에 키 큰 나무들이 자랄 틈이 없다. 그래서 키 작은 넝쿨과 풀들이 자란다. 마치 푸르른 잔디밭처럼.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이어주는 열목개 소매물도의 최고의 모델은 등대섬이다. 분교를 지나 계단을 타고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망태봉(157m)이 나온다. 망태봉에서 용머리해안이 잘 보인다. 소매물도를 끌고 가는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용머리해안이라고 불린다. 망태봉에서 보면 등대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망태봉에서 본 등대섬
섬 전체를 온전하게 보려면 망태봉 아래에 있는 바위까지 가야 한다. 그 바위 방향 즉 계속 내려가면 열목개도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열목개는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를 이어주는 70m 길이의 잘룩한 몽돌길이다. 이곳은 날마다 밀물과 썰물에 의해 4시간씩 두 번 물길이 열린다. 이 길을 가려면 물때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천문조 현상에 의하여 나타나는 이곳은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신비한 곳이다. 바다물이 들어오면 열목개가 잠기고 사라졌다가, 물이 빠지면 길이 다시 열린다. 썰물 때만 두 섬을 이어주는 몽돌길은 소매물도와 등대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열목개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바닷길이 갈라지기 전에 찰랑거리는 몽돌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 스릴과 재미를 느낀다. 여름에는 헤엄을 쳐서 건너갈 수 있지만, 겨울에는 거센 파도 때문에 몽돌밭이 드러나도 건너갈 수는 다.
신이 빚은 최고의 걸작품 소매물도와 등대섬
소매물도의 등대섬은 생태의 섬으로, 다양한 새들의 고향이다. 등대섬에는 본래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없는데 등대선이 유류와 생필품을 싣고 오면 내려야 하기 때문에 간이 선착장이 만들어 놓았다. 간이 선착장이 튀어나온 바위에 덧대어져 있다. 필자는 등대호를 이곳에 대놓고 일행들과 등대섬 뒤편에 있는 절경들을 둘러보았다.
등대섬의 최고 경치는 ‘글쌩이 굴’이다. 옛날에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을 이곳까지 보냈다고 한다. 서불이 등대섬의 경치에 반해 동굴 천장 위에 자신이 다녀갔다는 표기 ‘서불과차(徐拂過此)’를 새겨두었다는 곳이다. 그 글씨가 연유되어 글쌩이 굴, 즉 글자가 쓰인 굴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굴의천장도 없고 아울러 서불이 썼다는 글의 흔적도 남아 있질 않다. 아마도 수천년 동안 거친 파도에 흔적없이 지워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굴 주위에는 용바위, 남매바위, 암수바위, 촛대바위라고 이름 지어진 절경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바위들마다 애절한 전설들이 하나씩 깃들어 있다. 이 굴 주위에는 물이 맑아서 남해안 최고의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는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몽돌 해안에서 등대가 있는 섬의 정상까지 경사가 조금 급하긴 하지만 1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나무로 된 계단길이 계속 이어진다. 등대까지 환경 친화 적인 계단이 잘 조성돼 있다. 몇 발짝 올라가면 계단길은 좌우로 나누어진다. 왼쪽은 등대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선착장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건물 한 채가 있는데 화장실이다. 여기서 맞은편으로 관사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관사는 모두 5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행객들이 머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옆 안내판에는 ‘쿠크다스의 섬’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쿠크다스’라는 과자의 CF가 촬영되었던 곳이라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등대 아래에는 건물 한 채가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해발 85m 절벽 위에 있는 하얀 등대가 나온다. 이 등대는 절벽 반대편의 완만한 경사의 초원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등대는 높이 16m의 하얀색 콘크리트 건물로, 일제강점기인 1917년 처음 점등됐다. 1959년에 신축한 등대는 밤이면 13초마다 명멸하며 1백여 리 이상을 비춘다.
등대(燈臺)
푸른 초원이 펼쳐진 언덕에 자리한 등대는 일제가 뱃길을 확보하기 위해 1917년 8월 5일 첫 불을 밝혔다. 1940년부터 등대지기들이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4명이 거주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역사를 안고 오늘까지도 남쪽바다의 고깃배들에게 불빛을 보내는 등대다. 등대지기 관사의 붉은색 지붕은 푸른 바다, 초록 섬 위에 빨간 점을 콕콕 찍은 듯해 생동감을 더한다. 등대섬 왼쪽으로도 오륙도처럼 보이는 몇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있고 그곳에도 등주가 세워져 있다. 아마도 소매물도 등대와 빛을 서로 주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이다. 어느 정도 내려가면 왼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합류한다. 산책로는 다양하게 이어진다. 길마다 옆으로 낮은 난간을 둘렀다. 산책로는 에스S자 형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 주변에도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돌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층을 이룬 곳도 있다. 사실 이런 넓이의 평지에 마을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기에 학교가 정상에 위치한 것이 아니겠는가. 남북의 마을 중심이 정상이다. 이어 안부에서 서남쪽으로 계속 가면 길이 좁아지며 내려가는 길이 이어진다. 계단길이다. 폭이 좁은 계곡 사이에 나무로 된 계단길을 조성해 두었다. 거기에다 상당히 경사져 있다. 한 사람이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는 너비다. 그래서 왕복하는 데는 다소 불편하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이어 계단을 타고 내려서면 자갈밭이 나타나고, 크고 작은 몽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몽돌해변의 길이는 700m, 폭은 5m 정도다.
조금 더 가면 자갈로 섬과 섬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평소에는 물길이 가로막고 있지만, 물이 빠지는 간조 때가 되면 두 섬이 연결된다. 하루 두번 바닷길이 열리면 70m 자갈길을 걸어 등대섬에 갈 수 있다. 썰물 때면 자갈밭 길로 이어지지만 밀물 때면 독립된 섬이 되는 이곳은 등대가 있어 ‘등대섬’이라고도 부른다. 오래 전부터 어부들은 그 섬을 ‘해금도(海金島)’라고 불러왔다. 그만큼 절경을 이룬다. 등대섬은 아주 작다.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서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을 이루어 곳곳에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온난한 기후로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며, 풍란이 자생한다. 등대섬은 해안절벽을 따라 생긴 수평 · 수직 절리가 기하학적 암석 경관을 이루고,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절벽과 해식동굴이 있어서 ‘통영 8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등대에서는 등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봐야 제 멋이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바다에서 바라봐야 진경이다. 등대 원형 조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주변의 풍경이 다 나온다. 소매물도 정상과 그 뒤로 보이는 대매물도, 그리고 사방으로 뻗은 섬들. 그러나 외해인 탓에 남동쪽 방향은 망망대해다.
소매물도를 떠나면서
우리나라 등대섬의 대명사 소매물도! 외도는 인공과 자연이 합쳐져서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가 되었지만 숙박 시설은 없다. 소매물도는 접근성이 열악하고, 물도 부족하다. 전기도 발전기를 돌리고, 자전거를 탈 만한 도로도 없다. 분교는 이미 문을 닫았고, 약국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민박을 구하기가 힘들고, 식당은 몰려오는 여행자들 때문에 당황해하기 일쑤이다. 아직도 여행지의 숙박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대섬이기에 그렇다. 1994년도에 방문했던 소매물도, 2013년도에는 일행들과 다시 직접 배를 타고 갔다. 등대섬에 대놓고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 소매물도를 마음껏 여행하였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7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물이 빠지는 썰물 때에는 자갈바닥이 드러나 건너가지만, 밀물이 들어오면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 물때가 맞지 않아서 꼭 등대섬에 상륙하려면 소매물도에서 배를 빌려 타고 오면 된다. 고래불바위와 너럭바위에서 바라보는 등대섬의 풍광도 말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너럭바위는 등대섬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지대로 사방에 초지가 펼쳐져 있다. 절벽에서 풀을 뜯던 흑염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소매물도 갯바위 낚시터
소매물도 여행 시에 쓰레기 문제로 주민들과의 마찰이 간혹 있다. 소매물도는 홍도나 거문도처럼 머무는 곳이 아니다. 관광객들이 시내에서 돈은 다 쓰고, 소매물도는 그냥 왔다가 구경만 한 다음 쓰레기만 남기고 떠나가기에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외도처럼 입장료를 받고 관광목적으로 운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소매물도를 방문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경하고 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단체로 숙박을 원한다면 소매물도보다는 매물도가 좋다. 소매물도는 등대섬 외에는 내놓을 것이 특별히 없다. 매물도는 섬이 크고 넓은 초지와 바다, 해품길과 장군봉 등이 그림처럼 잘 어울리고 여유가 있다. 또한 마을의 학교 밑에는 몽돌밭이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매물도에서 배를 빌리면 가까운 등대섬을 구경할 수도 있다. 환상의 섬 소매물도와 등대섬, 그리고 매물도! 그 섬에 또 가고 싶다. 이생진 시인은 등대섬에 반해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산 하나 넘어서 / 물이 길을 내주면 / 맨발 벗고 가는 길 / 엉겅퀴 민들레 진달래 / 모두 빠져 죽는 것들의 넋 / 왜 이곳에서 피느냐 했더니 / '살아서 등대를 좋아한 탓'이라며 / 쓸쓸히 웃는다 / 그 '탓', / 나도 그 탓 때문에 등대로 가는 거다.’
소매물도의 관광명소암수바위의 전설
1백90여 년 전 ‘허씨 부부’가 돛단배를 타고 매물도를 지나다 풍랑에 떠밀려 결국 매물도의 입도조로 정착했다. 적막한 섬에서 남매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 둘 가운데 하나의 명이 짧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허씨 부부는 딸을 소매물도에 갖다 버린다. 그 뒤 아들이 20대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허씨 부부는 아들에게 ‘작은 섬(소매물도)’에는 절대 건너가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일렀다. 그 까닭을 모른 채 부모의 말만 따라온 아들이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갔다가 작은 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부모의 엄명이 떠오르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그날 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헤엄쳐 건너가 같은 또래의 뭉실뭉실 피어나는 처녀를 만났다. 두 젊은 남녀는 곧 열정에 빠졌다. 청년은 큰 섬에 돌아갈 일마저 잊고 둘이 깊은 정을 맺기에 이르렀는데 그 순간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벼락이 떨어져 두 남녀는 ‘암수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등대가 있는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여객선터미널본건물 리모델링공사중 - 임시건물에서 업무
비진내항 경유
선상일출
비진외항 경유
소매물도 전경
산행시작 ~
남매바위쪽 좌로 ~
남매바위
대매물도
바위 전망대
옛 소매물도 분교터
망태봉 방향 ~ 우측
망태봉(매물도관세역사관)
고래등바위
등대섬 전경
열목개
열목개
신비의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 뒤돌아 갑니다.
등대섬 댕겨서 한장
준공 안된듯 소매물도 여객선 터미널
비진외항 경유
통영항 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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