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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107:15-22)
오늘 갑자기 제가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은 다른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이냐 하는 것도 그 나라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교회다운 교회이냐, 은혜가 넘치는 교회이냐 하는 것은 평소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특히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교인들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과 힘을 합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여 준다면 그것을 보고 더 잘 알게 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담임목사님이 단에 서지 못하신다는 것,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때 더욱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고, 사람들에게 용산교회는 뛰어난 교회, 반석 위에 서 있는 교회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용산교회는 달라!” “놀랬어!” 하는 소리를 듣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주일은 넷째 주일이어서 평소에 하는대로 십계명을 가지고 설교할 것입니다.
오늘은 시편 107편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시편에는 15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전체가 다섯 권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모세 5경을 본받아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시편 107편은 제5권의 첫 번째 시입니다.
시편 107편은 43절로 되어 있습니다.
시에서 한 단락을 ‘연'(聯)이라고 부르는데, 시편 107편은 네 개의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매 연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8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5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오늘의 본문 가운데 들어 있는 2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1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렇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어떤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했기에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렇게 거듭해서 노래하는 것일까?
그런데 시편 107편을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4절을 보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했고,
10절을 보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고,
오늘 본문에 들어 있는 18절을 보면 사망의 문에 이르렀고,
27절 이하를 보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올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애굽을 할 때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주어졌으나, 출바벨론을 할 때는, 바벨론에서 귀환할 때는 그런 기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느헤미야서를 비롯해서 귀환시대의 일들을 기록한 성경에는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그리고 돌아와서 주변민족들의 조롱과 모함과 방해가 심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인생에게 향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자”는 말을 거듭해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먼저 2021년, 올해를 돌아보며 그렇게 하자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올해, 2021년 365일 가운데 290일째 날입니다.
이번 주일은 52주일 가운데 마흔두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올해의 5분의 4 가까이를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길을 돌아보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과,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적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해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올해는 안 되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요!’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이 깊은 믿음이고, 감동적인 ᅟᅵᆮ음입니다.
“주여,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한 달 있으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 추수감사절 다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시편 107편에 ‘기적’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기적이라고 해서 너무 특별한 것을 바라다가는 실망하고, 실수하기 쉽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비상조치인데 비상조치가 많은 나라는 평안한 나라가 아닙니다.
1970년대에 비상조치 1호, 비상조치 2호, 계속해서 비상조치가 나오다가 10.26 사태를 만났지요.
순수한 믿음의 눈, 수준 높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평범한 일도 기적으로 여겨지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매일 해가 뜨는 것,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 가을이 되면 곡식이 익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내게도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삶이 진지해지고 경건해지며 활기 넘치고 풍성해집니다..
불신의 눈으로 보면 기적도 우연이 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그 때 우연히 썰물 시간이 된 것이야!” 이렇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서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해야합니다.
우리가 5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한 때 세계를 지배하다가 소리없이 사라진 민족들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은 “존속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존속의 기적”이 “존속에의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저 존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경제 강국, 반도체 강국, 자동차 생산 강국, 휴대폰 강국, 지하철 강국, 스포츠 강국, 문화 강국, 여러 분야에서 강국이 된 것도 기적입니다.
1988년 가을에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조그만 반도국가, 그 위에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이 있는데 이 두 올림픽을 다 개최한 나라는 열이 못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또 “우리 교회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해야 합니다.
용산교회가 4.19 전에 이 위에 있었던 절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 절의 주지가 권력 있는 분과 가까웠기 때문에 권력을 동원해서 교회를 들볶았습니다.
한 번은 교회로 올라오는 길을 판자로 막아서 저 옆 축대 쪽으로 비상계단을 설치해 놓고 올라와서 예배를 드린 일도 있습니다.
저는 그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읖 수 있나!’ 하며 식식거리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어려서 그 일을 겪은 분들도 있고, 그때 일을 들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거 교회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잘 견디었습니다.
저는 청장년 때 이 교회를 떠났다가 은퇴한 다음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풍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것도 잘 이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용산교회 성도들은 우리 교회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들,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을 발견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도 기적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사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에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는 지진과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나라 안 지진 소식도 가금 들리고 있습니다.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범죄는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시편 107편은 고통 가운데 지은 시입니다.
시편 107편에 ‘고통’이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 앞의 12절은 고통이 주는 유익 하나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겸손해지는 유익을 갖게 됩니다.
그동안은 코로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방역에만 정신없이 열중해 왔는데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행될 준비를 하고 있고 숨을 좀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코로나는 왜 우리를 찾아왔을까?’
‘이 코로나 사태 속에 담긴 교훈은 무엇일가?’ 생각해야 됩니다.
저는 ‘겸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너무 교만했습니다.
고통은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건짐을 받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시편 107편에 자주 나오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고통에서 부르짖고 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13절을 보세요.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9절을 보세요.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8절을 보세요,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건짐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기적, 가장 뜨겁게 찬송해야 할 기적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 민족이, 그리고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말씀을 보내주신 것,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미전도 종족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미전도국가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나라가 어떤 종교를 많이 믿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종교를 받아들여 빈곤과 무지에 시달리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었습니다.
용산교회가 네팔 선교에 힘쓰고 있는데 1986년에 우리나라에서 아시아올림픽대회를 할 때 올림픽위원회에서 작성한 자료집의 각국 소개에는 네팔과 부탄은 애니미즘이 주요종교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애니미즘은 정령숭배라고 번역되는데 모든 사물에 영혼과 같은 영적, 생명적인 것이 두루 퍼져 있으며, 삼라만상의 여러 가지 현상은 그것의 작용이라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까지 힌두교가 네팔의 국교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민족도 이교적인 풍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이 우리 나라처럼 강한 지역도 별로 없습니다.
유교는 발상국가인 중국에서 보다 한국에 와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음에 대해 옥토가 아니었는데. 복음의 나무들이 이렇게 뿌리를 잘 내리고 쑥쑥 자라서 기독교 강국, 선교강국이 된 것, 기적입니다.
내가 예수 믿게 된 것, 기적 가운데 기적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케더린 쿨만(Kathryn Kuhlman)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유의 기적을 많이 행한 분으로 유명한데요, 21년을 앞을 보지 못하던 분의 눈을 뜨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캐더린 쿨만 여사의 말입니다..
한 육체를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위대하신 사랑과
자비로 행하신 큰 기적이나, 모든 기적 중에서 가장 큰 기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은 심령을 살리시고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만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감화로 심령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며 높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신생시켜 귀하신 우리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인이 되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귀한 기적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사람이 예수 믿게된 것이 가장 큰 지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귀한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종종 “내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나?” 생각해 봅니다.
또 ‘내가 어떻게 해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기까지 왔나?‘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용산교회에 똑똑한 학생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를 떠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만나면 ‘나 예수 안 믿어, 나 보고 교회 다녔다는 이야기 하지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내가 어떻게 해서 목사가 되었지?’
생각해 보면 구체적인 계기와 사건들이 있습니다.
용산교회 담임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 강하게 저를 그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복잡하게 말하지 않고, 통틀어서 한 마디로 하라고 하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꾸밈도 없고 과장도 없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그랬고 2021년에도 많은 인자와 기적으로 우리 나라를, 우리 교회를, 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함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축복이 정지되거나 벌을 받습니다.
본문 밖의 33절과 34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고 겪었습니다.
바로가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이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지 않았습니다.
불평과 불신앙과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금송아지 숭배로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출 32:28)
그들이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졌습니다.(민 14:29)
전염병을 겪었습니다.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스무 살 이상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14:29)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여러 가지로 축복하며 인도해 주시는 것을 기적이라고 고백하며 감사하지 않을 때, 배신할 때,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릴 때 같은 일을 겪지 않을까 매우 두렵습니다.
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나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할 때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더 큰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이 청교도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미국에 간 청교도들은 농부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교사, 은행원 등으로 일하던, 이른바 화이트칼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 감사축제를 열었습니다.
본문 22절에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며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이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38절의 말씀대로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강대국이 건국되었습니다.
더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시편 107편이 그대로 여러분과 저의 신앙고백이 되어야겠습니다.
조금 성급한 말씀이지만 이제 2021년을 돌아보며 2022년 계획을 세울 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들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며 보낼 때 하나님께서는 2022년을 축복하십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나라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용산교회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나에게 행하신 기적들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기도>
저희를 많은 기적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기적을 기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불행, 불신앙을 물리쳐 주옵소서.
나에게 행하신 기적을 감사하는 민족, 감사하는 교회, 감사하는 가정, 감사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나가서 그것을 찬송하는 민족, 찬송하는 교회, 찬송하는 가정, 찬송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