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승 (三政丞)의 터
(財産의 절반을 주고 산 육영수 女史 生家)
忠北 옥천군 마성산은 마이산의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으로 山相이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으로 그 산세가 뻗어 내리다가 일단 쇠진(衰盡)하고 다시 살아나면서 一字 모양의 봉우리를 만들었다. 草書로 한 “-”자를 그으면 옆으로 힘차게 가다가 힘을 모아 멈추는 잠두(蠶頭)의 힘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 뻗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精氣가 다시 모인 아늑한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아 明堂이라는 소문이 오래도록 전해지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집이었다.
뒷밭의 과수원(果樹園)을 합치면 약8000여평에 垈地만 2000여평이다. 이 넓은 터전에 李朝時代의 典型的인 建築樣式을 보여주는 古家이다.
교동집은 三政丞의 집이라고 전해지며 1600년대 金政丞, 宋政丞, 閔政丞이 살던 집으로 육영수 여사 아버지 육종관씨는 閔政丞의 後孫 閔大監에게 27세의 나이로 1920년에 2만5백원을 주고 사들였다.
육종관씨는 400석 정도의 財産家이기도 했으나 논과밭의 절반을 주고 대 결단을 내리며 1921년 移徒를 하여 家庭을 이루었다. 육영수 女史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라났다.
박정희 大統領의 아버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면서 명당인 줄도 모르고 구미 상모동에 집을 지었지만 여기서 보이는 一字文星의 천생산에서 靑龍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집은 천생산의 主山이기도 한 여기서 태어나 대조적이기도 하다.
교동집의 主山은 一字文星이며 횡룡결혈(橫龍結穴)로 유혈(乳穴)에 속하며 左靑龍 끝이 案山으로 겸하여 本身案山의 形態이고 그 모양이 金星이며 貴한 婦人이 나올 터라는 옥녀단좌형(玉女丹粧形)이라 한다. 물이 東北方에서 흘러 들어와 西南方으로 돌아 나가는 生氣터 이기도 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운명을 가진다고 하지만 자라는 동안 그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性格이며 思考하고 인식하는 내면적형성은 山과 내면 주위환경의 잠재적(潛在的)인 능력과 진취적(進取的)인 그 기상이 말 없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영향을 받고 人格이 形成되어 지는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우리가 주장하는 음택(陰宅)보다 양택(陽宅)을 더 중요시 하며 硏究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어찌 사람의 운명이 한 곳에 있기나 한 것은 아니지만 陽宅. 陰宅. 四柱. 環境, 努力. 意志등의 集合體라고 보드라도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 - 자좌오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