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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14일은 골로새서 개론을 한번 읽어 보시고 골로새서 전체를 읽는 것으로 큐티를 합니다.
17일부터 1장부터 깊이 있는 나눔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그냥 읽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기 원합니다.
말씀이 내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없는지 집중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궁금한 것은 댓글이나 문자로 남겨 주시면 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개론
1. 들어가는 말
골로새는 로마의 아시아 주의 남쪽 지역 혹은 서부 아나톨리아 (Anatolia= Aisa Minor= Modern Turkey)의 남쪽 지역. 골로새는 고대의 브루기아 (터키의 서부)의 리쿠스 (Lycus)강의 계곡에 위치한 도시다. 리쿠스 강의 비탈에서 자라난 양들에게서 취한 양털로 직조산업이 융성했다. 골로새라는 이름은 염색된 양모의 특정한 색깔을 일컫는 이름 (콜로시누스; colossinus)에서 기원했다. BC 4세기에는 크고 융성한 도시였다. 에베소와 사데에서 유브라테스로 가는 길목에 있었고 양모 산업이 번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초기부터 인근 히에라폴리스와 그 지방의 금융과 행정의 중심지가 된 라오디게아가 융성하는 바람에 골로새의 상업적 중요성은 퇴보되었다. 이 도시의 주요 구성원은 브루기아 토착민과 헬라인들이었는데, BC 2세기 초부터 유대인들이 정착했다. 안티오커스대왕 때(BC 223-187)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유대인 2000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아마 골로새에는 2-3000명의 유대인들이 거주. 여신 키벨레(Cybele) 숭배가 유행했는데 황홀경 속에서 진행되는 축하행사와 금욕주의(골 2:23)가 그 특성이다. 아마 골로새 도시는 유대주의, 헬라주의, 철학들, 신비주의 등이 혼합된 특성 (syncretism)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며, 바울은 골로새서를 보내기 이전에 골로새를 방문한 적도 없다(2:1). 바울이 브리기아 지방을 여행하기는 했어도 골로새가 있는 남서쪽으로는 내려가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오디게아와 히엘라폴리스에 있는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다(4:13; 1:7; 4:12). 1:7에 의하면 에바브라가 골로새에 복음을 전한 것은 바울의 위임에 의한 것이며 그래서 어떤 사본에선 에바브라를 가리켜 “우리를 대신하여 섬기는 그리스도의 실실한 일꾼”이라고 기록하였다.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62년경 골로새로 가는 두기고 편에 보낸 것이다. 에바브라는 자기로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로마까지 바울을 찾아갔다. 문제는 골로새 지방에 나타난 이단 사상이었다. 골로새서는 이 문제들에 관해서 써 보낸 서신이며 ‘에바브라’가 보다 흔한 이름인 ‘에바브로디도’의 약칭이기는 하지만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 나오는 ‘에바브라’가 빌립보서 4:18에 나오는 ‘에바브로디도’와 동일 인물은 아니다.
2. 골로새서의 저작성
저자: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많은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일부는 하나가 비-바울적 확장 혹은 다른 하나의 요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이 짧은 기간에 두 통의 편지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해서 따로 기록했을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썼다는 것보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썼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편지의 저자가 바울이었다는 결론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이른바 골로새 이단의 특징은 더 많은 논의를 요구한다. 보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모든 학자들이 동의할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단이 특히 영지주의적 특징을 지녔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학계는 신약 성경 가르침이 2세기에 발생한 종교적 사색의 주장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골로새 종교와 1세기 유대주의 분파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더 가능해 보이지만 현재로는 잠정적일 뿐이다. 바울의 언어가 1세기 유대주의 상황의 일부인 지나치게 율법적이며 금욕적인 국면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지 않는 대부준의 종교 체계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는 1장 15-20절의 기원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찬송으로 결정되었다. 이 구절을 제거할 수 없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 관해 말한 경고가 이 구절에도 적용된다.
수신자:
골로새 도시의 교인들(골 1:2). 골 4:15절을 근거로 해보면 골로새 안에 여러 개의 가정교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골 2:1에 보면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에바브라의 전도로 AD 50년대 중반에 세워진 것 같다(골 1:6-7). 이제 6-7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어린 교회였다. 골 4:12절에(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는 골로새 출신이라고 밝힌다. 아마도 바울이 이전에(52년 경) 선교 차 지나가 보았던 지역인 골로새에, 그의 선교의 절정기에 (아마도 에베소에서 선교하던 중; 행 19:10) 에바브라를 에베소에서 80마일 떨어진 비옥한 리쿠스 지방에 파송하여 히에라폴리스와 라오디게아 지방을 포함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을까? 골 2:11절과 3:11절에 할례가 언급된 사실은 유대인 성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골 2:16절의 안식일 준수 언급 및 2:8절의 ‘사람의 유전’은 ‘장로의 유전’일 가능성이 있기에 유대성도가 골로새교회의 구성원 중 일부임은 분명하다. 이런 유대주의적 성격을 가진 성도 중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3. 저작 장소
교회의 전통을 따라 바울의 저작을 전제했을 경우, 사도가 수감 중에 있다는 것(4:3,10,18)은 확실하나 수감 장소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어서 서신의 저작 장소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① 로마
이 가설은 바울의 수감, “자유로운 연금”(행28:16,30f), 바울을 대신하여 그의 교회들과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는 동역자들과의 활발한 접촉, 그리고 전 세계에 퍼지게 된 복음의 승리에 대한 저자의 확신과 기쁨(1:6,23)등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에 근거한다면, 저작 시기는 A.D 58-60년 어간이 된다. 그러나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와 에바브라의 방문은 확실히 로마보다는 골로새에서 멀지 않은 가이사랴나 에베소가 더욱 가능해 보인다.
② 에베소설
바울이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빌레몬서신에 처소를 준비하라는 요청(몬1:22)도 에베소일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그렇게 되면 저작 연대는 A.D 56-58년이 된다. 그가 에베소에서 서신을 루커스 계곡에 있는 소아시아 지방의 중심도시들이 속해 있는 가까운 골로새에 보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골로새서에 대한 마르시온(Marcion)의 서문에 “그러므로 이미 수감되어 있는 사도는 에베소에서 서신을 썼다”고 단언했었다. 그 이후 많은 학자들도 대체로 이 주장을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골로새서신 속에 누가와 마가의 이름이 발견되는데, 기록상 마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참가하지 않았었고, 누가는 그때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지도 않았다.(행15:37-39)
4. 저작 동기 및 시기
저자는 먼저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고 교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에 크게 감사해 하며 기뻐한다.(1:3; 2:5) 그러나 교회 안에 위험스런 교리가 만연되고 있다는 에바브라의 소식을 듣고는 상심해 있었다(2:8, 16-23). 골로새서를 읽다보면, 우리는 이 골로새교회가 골로새 지역에 퍼져 있었던 복잡한 혼합 종교들의 영향을 받고 또 그 영향에 의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는 것을 본문에서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골로새교회의 주된 구성원들은 누구였는가? 거의가 이방인이었다(1:12, 27; 2:13). 그렇다면 그들은 당연히 믿기 전에 그들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이방사상이나 또는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이방종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런 거짓 가르침에 쉽게 넘어갈 위험성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런 종교적인 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 안에 침투되었고, 또한 어떤 모습으로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왜 그리도 빨리 복음에서 떠나 혼합 종교의 위험에 빠지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언급했던 종교적인 전통을 가진 골로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를 에온 가운데 하나로, 아마 그 가운데서 좀 높은 에온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옛 종교 체계에 편입시키고, 그리고 기독교 예배의식도 과거 자기들의 종교의식과 혼합했다. 그 결과 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구원자로서의 유일성과 절대성' ,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로서의 유일성'을 위협받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 예배도 골로새의 토착적인 혼합 종교들의 광란적이거나 금욕주의적인 예배의식과 섞여 진정한 사도적 전통이 위협 받지 않았나 보여진다. 한마디로 헬레니즘 종교의 특징인 혼합종교의 정신! 그래서 어떤 것도 그 체계 안에 녹여 혼합 종교의 한 요소로 삼으려고 했는데, 바로 기독교의 복음도 지금 그러한 위험을 골로새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 바울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했는가?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절대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 혼합 종교로 기독교의 복음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투옥 중 (골 4:3, 10, 18). 빌레몬서와 골로새서에 언급된 사람이 비슷한데, 이것은 빌레몬서와 골로새서가 같은 감옥에서 기록된 옥중 서신임을 암시한다. 아마 로마 감옥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저작 시기는 AD 60년 혹은 50년대 말로 추정하고 있다.
바울은 혼합사상과 종교의 온상인 골로새교회를 위협하는 거짓교리에 대한 방어를 위해, 그리스도의 인격적 우월성을 강변한다(골 1:15-19). 골 2:8절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 금욕주의(2:23), 천사숭배(2:18)도 문제점이었다(골 2:8-23). 철학, 영적 능력, 의식 준수 그리고 절제 등은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비추어 보면 부차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여러 증거들이 지시하는 결론은 골로새서는 아마도 Justin 시대에도 사용되었을 것이고, 마르시온의 정경목록에도 들어있는바 바울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 나가는 말
골로새서는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이 헬라의 혼합 종교와 부딪쳐서 그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헬라의 혼합 종교의 체계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을 때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바울은 이런 혼합주의로부터 복음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유일성, 절대성,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확고히 하려고 했다. 이 문제는 기독교가 이방 세계에 전파된 이후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기독교 복음이 부딪쳐야 하는 문제였다. 아니 그때뿐만 아니라 소위 종교다원주의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부딪혔던 문제는 아주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다른 종교와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타종교와의 대화가 필수적이고.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선교지의 종교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종교의 체계에 익숙한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에온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는 것과 동일한 정말 위험한 가르침이다. 이런 모습은 선교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적지 않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만 유일한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 말하며. 기독교의 구원도 유일한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이런 위기에 처한 우리 한국교회에서 이 골로새서는 아주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런 위기를 바로 인식하고 바울이 했던 것과 똑같이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라는 그 믿음 안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전파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