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엔 귀찮은 나머지 ‘ 이미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막아버리곤 했다.
선교란 , 종교적인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설득을 통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뚜렷하다. 그래서 ‘방문 받는 사람’마저도 종교적견해가 확고한 경우, 견해들이 마주쳐 논쟁 때문에 피곤하고 불쾌해질 수도 있다.
요즈음엔 선교 대상과 논쟁을 피하라 교육을 철저히 받는지 아니면 나이가 많은 나에게 그들이 예의를 갖추느라 자기표현을 자제하는지 그들을 대할 때 마주침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들을 대하는 내 태도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상당히 너그러워진 것 같다.
물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 물질은 없지만 지식이 있으면 남을 깨우쳐 주는 것으로 , 물질도 지식도 없는 사람은 그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미소나 얼굴 표정만으로도 베풀 수 있다고 절집에서는 가르친다. 그러고 보면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란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열, 그리고 아는 바 지식 , 나아가 자기 나름대로의 마음의 평화를 보시하고 다니기 때문에 갸륵하고 훌륭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늦은 어느 가을 날 정원의 나무들을 돌보고 있을 때, 40대 후반 여성 두 분과 4-5살 정도 보이는 사내 아이와 30대 중반의 가정주부가 전도 팀을 이루어 찾아 왔다. 그래서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하고 정원의 감나무에서 홍시를 몇 개 따 씻어 내왔다.
방문 목적이 있다 보니, 감을 먹으면서도 그들은 대화를 기독교로 유도해갔다. 일행 중 가장 젊은 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책장에 있는 저 책은 성경인 것 같은데--- 기독교인 인가요 ?”
“ 반대 편 책장엔 불교 서적이 가득 차있는데--- 저 책들을 먼저 보셨다면 불교 신자로 추측하셨을 터인데--- ”
“ 그러게요. 그러면 불교 신자인가 요 ?”
“ 물이란 어느 한 모습에 고정되지 않지요. 그래서 병, 대야, 물잔, 주전자 등등 담는 그릇에 따라 순간, 순간 형태를 바꾸고 때로는 수증기나 얼음으로 변할 수도 있지요. 요즈음엔 바로 그 물의 성질이 참 좋아 닮아 보려 애씁니다. 특히 종교나 이념적인 면에선 그 물의 유연성을 바라지요. 그래서 마주하는 분들 혹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기를---- ”
“ 그러면 지금은 기독교인으로 말씀하시는 것 인가요 ? ”
“ 기독교인 입장에서 말할 지라도 , 성경에 대해 잘 모르니 배우는 입장이 되어야겠지요. ”
“ 저희들도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깊이 그리고 폭 넓게 알지는 못합니다. ”
“ 그래도 전도 활동을 하는 수준이라면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
“ -----------. ”
“ 평소 의아하게 여긴 내용이 조금 있는데요---. ”
“ 어떤 내용인지 말씀 해 보시지요. ”
“ 성경은 진리만이 들어있다고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가 대답을 했다.
“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모두 이루어지게 하리라 .’ 는 말뜻은 당연히 모든 내용을 진리로 받들어야한다는 뜻 아닐까 요 ?”
“ 일반 사회의 법이나 관습들은 상대적이라서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요. 과거엔 일부다처제도가 용인되었지만 현재 한국에선 사회악으로 비난을 받고, 반면에 중동에선 아직도 좋은 제도라고 간주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지요. . ”
“ --------. ”
“ 하지만 진리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지 막힘이 없어야하는데---시간상으로 현대, 공간상으론 한국이란 장벽을 초월하지 못하는 내용이 성경 속엔 없을까요 ?”
다시 젊은 여자가 말을 받았다.
“ 글쎄요. 혹시 성경 중에서 , 현대 한국사회에 사는 사람이 따라서는 안 될 대목이라도 발견 했나요 ?”
“ 가지고 계신 성경으로 민수기 31장 20절 이하를 한번 펼쳐서 읽어 보시겠어요 ? ”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꺼내어 해당되는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내 의견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 ----------. ”
“ 함께 읽어 본 내용에 의하면 ,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간인 포로 중 남자는 어른 , 노인 , 어린애를 구분 하지 아니하고 모두 죽였지요 ? 여자들 중에서도 사내와 자 본 적이 있는 여자는 모두 죽여 버리니, 그 많은 포로 중 살아남은 자는 겨우 숫처녀 32,000에 불과하게 되고요. ”
“ ------------. ”
“ 그 중 반절인 16, 000명은 일반 백성들에게 노예로 주면서 , 그 몫 가운데 50분의 1은 하나님 성전을 받드는 레위 사람들의 노예로 목숨을 유지 하지요. ”
“ ----------------.”
“ 나머지 반절인 16,000명의 운명은 더욱 비참해 보입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전리품으로 주어졌으니까요 . 그 몫에서 500분의 1에 해당되는 32명은 인간 고기로 하나님에게 제물이 된다는 것은 끔찍하기 조차 합니다. ”
“ ----------.”
“ 위 내용들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불필요한 살생이자 잔인함으로 국제 법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이 따르지 말아야 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이런 내용마저 진리로 주장한다면 혼란스럽지요. ”
“-----------. ”
그 동안 전도를 나온 사람들과 달리 어설픈 대답이나 반박을 자제하고 침묵을 지키는 그들이 의외로 느껴졌다.
“ 특히 인간을 제사용 고기로 사용하는 풍습은 너무 야만스러워 용인하기가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만---. 이왕 내친 김에 인간 고기로 제사를 지내는 다른 성경 부분도 함께 생각해 볼까요 ? ”
“ -----------. ”
“ 우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의해 아들인 이삭을 잡아 제사를 지내려한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아는 내용이니 굳이 성경까지 펼쳐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 ”
“ 아브라함이 믿고 따르는 크기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었지 정말로 아들(이삭)을 죽인 고기로 제사 지내기를 바란 것은 아니라는 하나님의 주장을 , 그리고 사람대신 양으로 제사를 지내게 허용한 점은 살인- 특히 친족 살인을 피하게 하락한 하나님의 관용이다 인정하겠습니다. 인간 편에서 보자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순간이지요. ”
“ -----------. ”
“ 하지만 , 생명의 고귀함에 있어서, 양이나 사람이나 똑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 이지요 . 살생이란 면에서 보자면 똑 같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생각의 흐름이 아니기에 논외로 하지요 .”
“ -------------.”
“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고맙게 여기지만 언제인가 주인을 위해 죽어야하는 돼지를 불쌍하게 여깁니다. 어쩐지 이삭의 몸과 생명이 그 돼지처럼 취급되는 것 같아 불쾌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좀 듣고 싶은 데요---. ”
모두 침묵을 지키다가 젊은 여자 분이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말했다.
“ 성경을 많이 읽고 분석을 치밀하게 하신 것 같은데--- , 그에 비해 저희들은 갑자기 질문을 받은 상황이라 바로 흡족한 대답을 드리기가 힘이 들어요. 들은 내용을 잘 간직했다가 다음 번 이곳에 올 때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
“ 대답을 강요하는 자리도 아니니까 일반인들이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는지 들어 보는 기회로만 생각하신다면 말을 계속 하겠습니다만--- ”
그 동안 한 마디의 말도 없었던 여자 분이 매우 신중하게 의견을 말했다.
“ 나는 특별한 문제를 못 느끼고 지나간 부분이었는데--- 지적하시는 내용을 듣고 , 저렇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구나 생각하고 새로운 흥미를 느낍니다. ”
“ 아들을 잡아 제사 지내는 것은 미수로 끝나 다행이었지만, 딸을 죽여 제사 지내는 살인행위는 불행히도 완성 되지요. 사사기 11장 29절을 함께 펼쳐 꼼꼼히 읽고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
그들이 그 부분을 펼치고 조용히 읽는 것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말을 이었다.
“입다는, ‘ 만약 전쟁에서 이기게만 해주면 , 승전하고 돌아 올 때 환영하고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집 대문을 맨 처음 나오는 사람을 잡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겠다. ’ 약속했고, 그는 전쟁에서 승리 했지요 ? ”
“ -------. ”
“ 대문을 제일 먼저 뛰어 나온 것은 무남독녀 외딸이었는데---. 만약 노예였더라면 크게 주저하지 아니하고 죽여 제사를 지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풍습이 그러 했으니까요 . ”
“ --------. ”
“ 하다못해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온 그의 아내가 나왔더라면 슬픔과 주저가 다소 작았을 런지 모릅니다. 하지만 외동딸이자 또한 나이가 어리기에 , 아비로써 그의 슬픔이 매우 컸겠지요. ”
“ -------. ”
“ 처녀로 죽는 것이 너무 원통하니 한 달 동안 산에 들어가 실컷 울 수 있도록 애걸한 딸의 심리 상태로 미루어, 제물로 바쳐지기 전 마지막 한 달 동안 그녀는 죽음의 공포 앞에 몸부림쳤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요. 그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지 안 나요 ? ”
“ ------------.”
“ 같은 인간으로써 서로 의지하며 오손 도손 사이좋게 지내온 이웃이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여호와의 축복을 더 받기 위해, 너를 잡아 제사를 지내겠다며 멱을 따려고 칼을 들고 덤비면---- 너무 두렵고 비참한 나머지 그냥 끔찍하다는 말 이외엔 신앙이고 뭐고 더 이상 할 말을 잃을 것 같습니다 ! ”
“ -------------.”
“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인가 입다 처럼 자녀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일이 발생했다면--- 검찰이나 경찰이 살인범으로 체포할 때 목사님들은 성경을 들고 막아야할 터인데---무사할 까요 ? ”
“ --------. ”
“ 이왕 나온 김에, 레위기 27장 1절 -7절에 나와 있는 인간 가격표를 함께 볼 까요 ? 이 가격표를 처음 보았을 때 저에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모릅니다. ”
그들은 내가 불러준 부분을 성경에서 찾아 읽었다.
“ ----------. ”
“ 우선 인간을 물건이나 짐승처럼 매매하기 위해 가격을 매기는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기에 싫고, 덤으로 여자는 남자 가격의 반절 정도로 다루는 남녀 불평등의 관점도 못 마땅합니다.”
“ --------. ”
“ 마지막으로 레위기 21장 17절 -23절까지 한 번 보아 주시겠습니까 ? ”
“ ----------. ”
“ 육체장애인들을 자세히 분류한 후 이들은 모두가 더러운 존재이므로 성전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선언으로 끝을 맺는 이 성경 내용이 매우 매정하게 울립니다. 요즈음 장애인 시설이나 병원을 세우려하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슬픔 그 이상이지요. ”
“ ----------. ”
“ 전도하는 사람 입장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지적된 성경 내용들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듣고 싶습니다만--. ”
“ 그렇게 질문하는 선생님은 그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
“ 그것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거 생활 습관, 풍습, 군사 작전, 정치, 외교에 관한 역사적 사실임엔 틀림없지만 우리가 따라야할 자비나 광명인 종교적 진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
“ ---------. ”
“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진리를 구분함이 없이 무조건 모든 성경 내용을 진리로 인정하고 따라야한다 주장하지요. 지혜가 없이 믿음만 강하면 광신 이지요 . 수많은 이교도가 죽는 이락 전쟁을 성스런 십자군 전쟁으로 여기는 부시의 잔인함도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라 불리 우는 광신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여 지고요-- ”
“ --------.”
“ 당근을 밭에서 막 뽑았을 때 , 열로 익히면 비타민이 파괴되기에 날 것으로 먹는 것이 좋다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흙이나 거름이 묻었는지 주의하지 아니하고 날로 먹으면 때에 따라선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기생충에 감염되어 모진 고생을 할지도 모르지요. ”
“ ---------. ”
“ 당근이 육체를 위한 것 이다 면, 종교 경전은 마음과 영혼을 위한 것이겠습니다. 그리고 유태인들의 정치, 군사, 풍습에 대한 성경 기록은 구약 성경에 묻어있는 진흙이나 퇴비에 비유할 수 있고요. 이 오물들을 털어내고 종교적 진리만을 성경에서 골라 읽지 않는다면----”
“ --------- .”
“ 읽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병을 주어 파멸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
어느 듯 가을 저녁 햇살이 창문에 가득했다. 그들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대화였는데--- 즐거웠습니다. 선생님 질문 하신 것에 대해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 보고 또 제 자신도 진지하게 생각했다가 말씀드리기 위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 끝-
* 구약 성경에 묻은 이 치명적인 오물들은 못 본체하고 , 사립 재단 비리 묵인 내지 보존을 위해 한나라당과 함께 열심히 뛰는 목사님들을 과연 존경해도 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