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스가랴서입니다. 스가랴는 다리오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개와 동시대에 사역했던 예언자이구요, 그리고 잇도의 손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잇도는 느12:1, 4절에서 스룹바벨, 여호수아와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으로 언급됩니다. 아마도 잇도는 귀환 공동체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잇도의 손자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서 귀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성전 재건과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키는 사역을 주로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인데요, 스가랴서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생각할 때, 스가랴의 이름과 스가랴서 전체의 메시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곤고하고 약한 이스라엘의 변화를 통해 온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를 전망하고 제시합니다.
스가랴 1장의 1-6절은 이어지는 환상 본문 전체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일반적인 배경과 관점을 제시하고, 7절 이하에서는 스가랴의 환상을 중심으로 더 구체적이고 특수한 내용들이 다루어집니다. 1장을 간단히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6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7-21절: 환상(1. 말들과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 환상/7-17절, 2. 네 뿔과 네 대장장이 환상/18-21절
1:1-6절은 성전 건축이라는 귀환 공동체의 당면 과제가 ‘여호와께 돌아감이라는 중심 주제’ 위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학개와 더불어 스가랴도 낙심하는 청중들, 손에 힘이 빠져 가는 동포들을 향해 이 사역을 행합니다. 성전 재건 공사의 시작과 함께 별다른 변화가 없는 현실에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여호와께 돌아감’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조상들의 문제는 크고 화려한 건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떠나 오히려 자신들의 길과 자신들의 행실 속에서 불순종했던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재건에 앞서, 단지 또 하나의 건물을 멋지게 짓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분의 말씀과 규례에 온전히 순종하여 살겠다는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7-17절은 말들과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 환상이 나옵니다. 여기서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는 ‘여호와의 천사’, 곧 하나님의 특별한 전갈을 전하기 위해 보내신 존재, 그리고 여러 말들과 그 탄 자달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영적 존재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온 땅에 보내진 이들이 갔다와서 온 땅은 차분하고 평화로웠다고 보고합니다(11절). 11-12절에서는 온 세상의 평안함(모든 반란을 효과적으로 완전히 진압한 페르시아 제국의 현실)과 예루살렘과 유다의 처참함이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본토로 귀환한 유대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현실의 어려움에 처한 시온의 모습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천사가 백성을 대신해 탄식하고 여호와께서 백성을 대신해 천사에게 답하시는데, 그 대답은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이었습니다(12-13절). 이 위로하는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크게 질투(여기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향해 품으시는 열심을 의미/김근주)하고, 안일한 여러 나라들에 대해 심히 진노(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물리치시겠다는 것) 입니다(14-15). 여기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는 긍정적인 질투인 듯합니다. 고통당하는 시온에게 무심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겠다는 것,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다는 것입니다(16-17절).
과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곳이었으나 불순종으로 인해 모두 황폐해졌지만, 이제 백성들의 돌이킴과(1:6절,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여호와의 돌아오심으로 인해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날 것이라고 합니다.
1:18-21절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 환상인데,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 네 뿔은 특정한 네 나라만이 아니라 이제껏 이스라엘을 짓밟고 유린한 모든 나라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장장이는 뿔로 상징되는 나라들을 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자들, 또는 나라들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유다를 위한 행하심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2장 1-5절은 세 번째 환상입니다. 세 번째 환상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보호자와 영광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6절부터의 내용은 이 환상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5: 세 번째 환상/예루살렘의 성곽이 되실 하나님
2:6-9: 도피하라, 피하라/열방에 행하실 하나님
2:10-12: 노래하고 기뻐하라/유다를 위해 행하실 하나님
2:13: 모든 육체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2장 4절에서 예루살렘은 ‘성곽 없는 성읍’이 될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곽이 없고 성문이 없다는 것이 황폐함의 상징이며 초라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곤궁이 아니라 풍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힘없고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서 성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가축이 너무 많을 뿐아니라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기에 어떤 성벽을 쌓더라도 비좁을 것이기에 예루살렘은 성벽 없는 성읍일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또한 5절에서 하나님 자신이 ‘불로 둘러싼 성곽’이요 영광이 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가장 견고하고 든든하며 안전한 성곽으로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보호자요, 영광이 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 곧 바벨론 가운데 같이 머물러 있으며 바벨론 살이, 바벨론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유다 백성에게 이제라도 그 삶에서 떠날 것을 촉구합니다(6-9절/‘도피하라’, ‘피하라’). 그러면서 시온과 세상을 회복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행하심이 드러나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10-12절). 하나님의 회복하심, 곧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머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방 백성도 ‘여호와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1절). 여호와의 백성은 핏줄이나 혈통에 달려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과 은혜로 하나님께 연합하는 이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13절), 하나님만이 세상과 이스라엘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실 분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3장은 네 번째 환상을 다룹니다.
1-2절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두고 벌어진 사탄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판단을 보여 줍니다. 그 결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정결한 관을 쓰게 됩니다(3-5절). 그런데 더러운 옷을 갈아입고 머리에 정결한 관이 씌워지는데 있어서, 여호수아가 하는 역할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정결케 됨에 있어서 사람이 공로는 전혀 없고,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사람으로 부름받기 위해 사람이 할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뭐, 내세울 거나, 자랑할 것이 전혀 없음). 오늘 우리가 주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오직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6절부터 마지막 10절까지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향한 여호와의 말씀이 천사를 통해 선포됩니다. 그래서 3장을 정리하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처한 위기를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회복하게 하셔서 오직 은혜 가운데 귀한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이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말씀을 통해 유다의 회복을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회복이 8-9절에서는 ‘싹’의 등장, 일곱 눈을 가진 돌, ‘죄악의 제거’, 10절에서는 ‘각각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는 삶’(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약속의 땅의 풍요로움과 비옥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재들임)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고, 더욱 알아가고,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나님의 사랑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여전히 부르시는 음성이 느껴집니다.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에 응답할때 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돌아오신다고 하였습니다. 포로기이던 귀환기이던 조상의 행실을 본받지 말고 주의 백성으로 응답하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나의 여건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자 되기를 원합니다.
다시 회복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영광으로 가득찬 거룩한 처소로 불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많은 나라로 흘러들어가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설 것입니다.(2:10-13)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통해 섭리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탄의 참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향한 사탄의 예리한 참소보다 하나님의 변호는 더욱 강력합니다.(3:1-5)
여호수아에게 그의 앞에 세운 돌을 보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현재의 고난중에서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하십니다. 사탄의 참소 정도가 아니라 그의 사망의 권세까지도 꺾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현재의 싸움은 승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한 사실을 확인하는 싸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개서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성전에만 있는 것 같지만, 스가랴서를 통해 성전 재건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심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사랑과 은혜의 토대위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