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의 고르바초프
소비에트 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1931–2022)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러시아어: 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ёв, US: /-tʃɔːf, -tʃɛf/; 이 소리의 정보듣기 (도움말·정보), 문화어: 미하일 쎄르게예비치 고르바쵸브, 영어: Mikhail Sergeyevich Gorbachev, 1931년 3월 2일~2022년 8월 30일)는 러시아인이자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소련 8, 9대와 마지막 11대 소련 지도자였으며,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최고 소비에트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최고 소비에트의 의장을 지냈다. 권력을 박탈당한 그는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새로운 직위인 소련 대통령을 만들어 명목상으로 집권하였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집권기 초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했으나, 1990년대 초부터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고르바초프는 1931년 3월 2일 소련의 공화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스타브로폴 프리볼노예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리볼노예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거의 절반씩 차지하였다. 고르바초프의 친가는 러시아인이었고, 몇 세대 전에 보로네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외가는 우크라이나 혈통이었으며, 체르니히우에서 이곳으로 이주했었다. 그의 부모들은 처음에 그의 이름을 빅터(Victor)라고 지었지만 독실한 동방 정교회 신자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그는 비밀 세례를 받고 할아버지에게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 세르게이 안드레예비치 고르바초프와 사이가 좋았으나, 어머니 마리아 판텔레예프나 고르바초바(결혼 전 이름은 곱칼로)는 차갑고 징벌적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부모들은 가난했고, 농민이었다. 그의 부모는 십대에 결혼하여 지역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집인 벽돌집에서 살다가 자신의 집을 지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1931년 3월 2일 스타브로폴 프리볼노예의 가난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기 동안 성장하였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기 전 집단 농장에서 콤바인을 다루는 일을 하였으며, 그가 공산당에 가입할 당시 공산당 내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의 일반적인 해석에 따라 일당제로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1953년 동료 학생이었던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했고, 1955년에는 법학 학위를 받았다. 그가 콤소몰에서 일하다가 스타브로폴에서 일할 때, 스탈린이 사망한 후, 고르바초프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정책에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1970년 스타브로폴 제1서기가 되어 스타브로폴 대운하 건설을 감독하였다. 1978년 모스크바에서 중앙위원회의 서기가 된 후, 1979년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합류하였다. 소련의 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후, 3년 간 이어졌던 유리 안드로포프와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집권기를 지나 고르바초프는 1985년 정치국에게 사실상 정부수반인 총서기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