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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갈 때 즈음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교육 환경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재 세 아이를 고등, 중등, 초등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로서 앞으로 펼쳐질 그림은 오리무중이다. 전 정부에 기대가 컸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번 정부는 어떨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 교육의봄 3개 단체는 이주호 장관의 10대 교육개혁 정책을 평가하고 2월 20일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평가한 10개 정책, 22가지 세부항목 중 눈에 띄었던 것은 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해 내건 내신 절대평가였다.
고등학생들은 한 학기의 절반 이상을 내신 시험공부로 시달린다. 작년에 고1이었던 큰아이 담임은 한 달 전부터 학생들에게 학습 일정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다. 한 달 이상 시험 준비를 하게 된다. 3월 말이면 4월 중간고사 준비를 시작하고 7월 초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5월 중순부터 준비한다. 시험과 시험 사이 잠시 숨 돌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2~3주다. 매 순간 전심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긴장의 연속으로 산다. 큰아이는 내신 시험에 연연하기보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 활동에 빠져들었다. 부모로서 마음 한편 불안하면서도 적절한 테두리 안에서 자발적인 삶을 연습할 수 있는 시기라 믿고 응원하고 싶었다.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시험 결과는 명확한 등수로 나오고 그것이 누적돼 입시에 반영되니, 학교 내 다른 친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아마 나보다 아이가 받는 압박이 더 클 것이다. 최근 남편은 그 압박을 아이에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지치면 아이도 부모도 최종적으로 남는 수능에 기대게 된다. 내신 절대평가는 그나마 학교 안에서 첨예한 경쟁을 완화시킬 테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내신의 절대평가와 함께 내놓은 수능 상대평가는 내신 절대평가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예상하건대 사람들은 학교의 내신 결과와 수능 점수를 비교하며 학교의 수준을 재단하고, 학교 등급을 매길 것이다. 현재도 주변 고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수능 공부를 해도 제지하지 않고, 상위 30% 아이들 외에는 수업 시간에 자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은 EBS 수능특강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그저 시험 잘 보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이미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출제할 만한 문제는 다 나왔기 때문에 그 방대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푸는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의대에 진학할 실력이 충분한 학생도 문제 1개 맞고 틀리고에 따라 학교가 바뀐다며 N수를 하는 세상이다. 내신이 절대평가가 되더라도 수능 상대평가가 존재하는 한, 결국 단 한 문제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 공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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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능 1, 2등급은 N수생이 60%라는 기사를 보았다. 내 아이도 고3이 되면 N수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 N수생들은 점점 더 많으니 대학을 갈아타는 좋은 기회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N수가 개인의 문제일까? 스스로 내린 선택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적인 압박이 그런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 게 아닐까. 그마저도 N수는 가정 형편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능 상대평가 유지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소년을 생존 게임에 가둬 내몰리도록 방치한다. 부모인 나도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아이를 그런 경쟁에 밀어 넣을까 두렵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수능 폐지, 혹은 축소를 주장했다. 그도 이 시험이 국가적으로나 학생 개인의 삶으로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큰 시험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런 수능을 여전히 상대평가로 내버려 두는 우리나라 교육부 수장의 정책 행보를 보고 있자니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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