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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 그들이 말한 거짓
팩션(faction)형 사모펀드 투쟁기
6조8천억은 어디로 증발했나
제1회 - 선(善)하게 말고, 정(貞)하게 살라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
인생의 긴 여정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행복일 것이다. 행복의 가장 큰 저해요소는 예측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이다. 갑작스런 사고 위험에 직면했을 때, 가족 지인들의 불행한 소식,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기적 경제 불황에 따른 개인들의 강요된 희생 등 큰 틀에서 받는 두려움이다. 일상 생활 중 부딪히는 사건들도 이에 못지 않다. 예고없이 날아온 자동차 범칙금 통지서, 가벼운 접촉사고, 정전 또는 단수 사태, 폭염이 한창일 때 에어컨 같은 매일 사용하던 가전제품의 고장 등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런 불편함도 결국 스트레스의 원인이고, 예측가능하지 않은 데서 부과되는 고통이다. 각자 대처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는 피하기 어렵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르스는 아타락시아(ataraxia) 상태, 인생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근심없는 삶이 곧 행복을 증진할 수 있음을 얘기했다. 행복=성취/욕망이라는 도식으로 에피쿠로스 윤리학을 표현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욕망을 줄임으로서 성취감을 높이고 그 결과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다. 젊은 시절에야 성취욕이 높으니 욕망이 높은 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면 그게 곧 행복으로 귀결될 것이라 믿었지만, 나이가 먹어 가면서,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결국 성취감이 낮아지고 결국 평정심을 갖고 행복을 느끼기에는 백골난망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봄날의 비가 흩뿌리면서 대지를 적신다. 어젯 밤 꿈에서 아버지를 뵈었다. 꿈에 잘 나타나지 않으시다 어쩐 일인지 지팡이를 짚고 서서, ‘창석아, 쉬엄 쉬엄해라, 너도 이제 환갑인데, 건강도 챙겨야지, 힘들어도 지금처럼 잘 버텨라’ 꿈속의 아버지 말씀이 귀에 쟁쟁하고 그렇게 오랜만에 뵌 아버지, 반가우면서도, 의아하다. 요즘 사업도 큰 문제 없이 무난하게 잘 굴러가고 있어서 어느 때 보다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찜찜하다. 조만간 성묘를 다녀와야겠다. 환갑을 넘기면서 불가능한 욕망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제조업을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다. 가정생활도 잘 돌봐야 하지만 내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 수백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 하루 하루 전쟁같은 일정을 무난히 소화하기 위해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최창석 대표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식곤증을 물리칠 겨를도 없이, 사무실에서 밀린 결재서류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기업은행 유현주 팀장이다.
“대표님, 바쁘시죠, 통화가능하셔요?”
“네 괜찮아요. 웬일이신가”
“대표님 큰일 났네요,.......어떻하죠?”
갑자기 말을 끊고 뜸을 들인다. 평소 간결하고 정확한 사람이 오늘따라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네 왜 그래요, 유팀장 답지 않게, 무슨 일 있어요?”
“저기, 작년에 만기 연장된 글로벌채권펀드 있잖아요”
“아 그래요 그때 1년 후 돌려준다고 했던거, 나 그거 지금 그거 만기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문제없는 거지?”
“아..그게 ...아...그게 말이죠. 지난번에 본점에서 보내드린 안내문 못 받으셨어요?”
“아 모르겠는데...? 이대리 기업은행에서 우편물 온거 있었나?”
옆자리에 앉은 이경희 대리에게 물어 본다.
“대표님 자리에 놓아 드렸는데요. 몇일 전에...”
“어 여기 있구나. 그래요. 유팀장 지금 열어 볼게”
유현주 팀장은 보기 드물게 야무지고 똑똑해서 늘 배울 점이 많은 은행직원이다. 항상 고객을 챙기고 어려운 점을 사전에 미리 알아서 처리해주고 철두철미해서 항상 신뢰가 간다. 회사의 각종 세무문제나 공과금 처리, 직원들 급여계좌도 알아서 잘 관리해주니 항상 고맙다. 봉투를 뜯으면서, “이게 뭔데 일단 먼저 설명 좀 해줘요 내가 지금 자세하게 읽어 볼 시간이 없으니”
“아 대표님 죄송해서 어쩌죠, 그게 그 펀드가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손실이 심각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작년에 원금회수에 문제 없다고 했잖아”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미국 DLI 법정관리인이 손실 예측한게 약 80%가까이 된다고 하네요”
“안돼 그럼, 그거 유팀장도 잘 알잖아, 그거 이번에 또 새로 기계 들여놔야하는데 필요한 돈이야”
유팀장의 얘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썩 내려 앉는다. 이거 상황이 심각한데....
“대표님 일단 저도 더 알아보고 직접 찾아 뵙고 설명드릴게요”
“아냐 설명이고 뭐고 필요 없고, 일단 은행에서 약속했잖아 약속만 지켜주면 된다구”
기업은행 유팀장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최창석 대표는 불길한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창석 대표는 Y그룹 산하 명신전자의 협력업체 세영테크(주)를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로 연간 300억이상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이다. 2018. 10 기업은행 유팀장의 방문 요청으로 찾아 갔다가, 곧 도래할 만기상품을 6개월에 신탁상품을 계약한 것이다. “만기 6개월에 3% 이자를 받을 수 있어요. 걱정말고 가입하셔요”
“유팀장 이거 어떤 용도인지 알지? 회사 설비투자금이야, 조만간 일본에서 반도체 장비를 사야한다구”
“아, 예 알아요 대표님도 참, 지난번 가입한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걱정마셔요, 만기에 제대로 상환 받으셨잖아요”
“그래도 이거 돈이 묶이는건 곤란한데...”
“언제쯤 사용하실 것 같은데요”
“빠르면 3개월 후에도 써야할 거야”
“그럼 그때 이 상품 담보로 대출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건 미국에서 사장님처럼 신용이 든든한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서 채권수익금으로 돌려드리는 상품이예요. 요즘 미국시장이 초 호황기 인거 아시죠? ”
“그거야 나도 잘 알지, 그래도 굳이 이런 상품에 가입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그냥 안전한 저축 상품에 넣어 두는게 낫지 않을까?”
“참 대표님도, 여기 보셔요 여기 그래프 보이시죠? 이게 미국 서브프라임사태 때 채권 부실률 그래프예요. 여기 보시면 채권 부실이 최고였을 때가 2010. 2분기 잖아요. 서브프리임 사태가 2008년 터지고 2년이 지나서야 부실률이 크게 드러난거예요,”
“서브프라임 사태야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요. 부실률이 2년 후행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 상품은 6개월짜리라 결국 사고가 터져도 6개월 안에는 원금 상환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 예요”
“그래? 아무튼 내가 좀 생각 좀 해볼게”
여러차례 망설이다 가입한 상품이다. 평소, 기업은행과 대출 거래를 지속해야할 중소기업 대표로서 이런 거래를 거절하기란 쉽지가 않다. 대출자금이 필요할 때 을의 입장에서 한푼이라도 이자 혜택을 받으려면 이런 요구를 쉽게 물리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거래한 상품이 부실이 되어 손실을 떠 안아야 한다는 소식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는 기분이다.
2019. 1 펀드가 중단되기 전 반도체 장비를 구입하느라 유현주 팀장의 말대로, 펀드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으니 펀드가입자금 7억에 대출 3억원까지 총 10억의 손실을 보게 생겼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유동자금 10억은 크나큰 손실이다. 약속했던 이자는 커녕 대출이자 갚느라 부담이 늘었다.
최대표는 주식이나 펀드 같은 고위험 상품을 선호하지 않는 유형이다. 당장 사업자금이 부족한 판에 그런 위험한 곳에 투자를 했다가는 사업을 접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 도박을 할 수는 없다. 2015년 안산지역 대규모 부도사태 때 기업회생까지 갔던 아픈 기억이 있어 다시는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적지 않은 자금이 묶인지 1년 만에 대출까지 떠 안고, 잘못하면 다시 한번 유동성 자금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
그날 이후 내돈 찾느라, 길고 긴 수렁에 빠져들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은행을 믿었던 죄가 이토록 클 줄이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당장 은행에 가서 확인해야 겠다. 밀린 서류를 결재처리하고 나서 찬찬히 은행에서 보낸 안내문을 살펴 보았지만 도통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로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이번에는 좀 솔직히 손실이 난다는 내용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안내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기업은행을 그렇게 믿었건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인 기분이랄까.
2020년 3월 코로나 펜데믹으로 거리두기가 한창일때 사모펀드 문제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화제가 되던 시기였다. 기업은행 2019. 2. 13 디스커버리사모펀드 판매를 중단하고 4. 25환매 중단을 선언한 후 695억 219명의 법인과 개인들에게 피해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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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익 대표는 몇일 전부터 아내의 표정이 심상찮다고 느껴 왔다. 젊은 시절부터 고생해서 구로공단에서 금속 제조 가공 기술을 익히고, 어렵게 기업은행 창업자금을 받아서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키워 여기까지 왔다. 이제 연매출 250억의 비교적 튼튼한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 성장에 아내의 도움은 누구보다 컸다.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온 몸으로 경영을 책임질 때 경리 회계 총무 등 복잡한 모든 일을 도맡아 가면서, 회사를 키우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아내, 늘 일을 벌리고 확대하는 데만 정신없는 자신을 믿고 따라오면서 아이들 교육까지 잘 책임져준 아내가 고맙기만하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잠을 뒤척이는가 하면, 회사에서도 멍때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럴 때 먼저 물어보는 것은 아내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갱년기 우울증인가 싶어 걱정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려주면 아내는 늘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면서 고민거리를 풀어 놓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예전 같지 않다. 이제 아내도 나이를 먹는 건가.
지난주 일요일 거래처 대표들과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저녁 늦게 귀가한 후,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는 서류를 슬그머니 통장과 함께 내놓으면서, “직원들 퇴직금과 특별 상여금 준비를 위해 별도 관리하던 계좌인데, 그중에서 3억을 김미리 팀장이 2년전에 가입하라고 사무실까지 찾아와 요청해서 거절 하지 못하고 가입했어요. 그런데 그게 이제 와서 전부 손실이 났다고 하네요”
자초지종을 상세히 듣고 나서, 아내가 준 서류를 보니 이름도 생소하다.
“뭔 이름이 이 따위로 길다냐? <디스커버리us핀테크 글로벌 선순위채권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제12호> 난 이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 허허” 아내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 한말이다.
“미안해요, 내가 그때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나보다 더 원칙주의자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에 미안한 일 자체를 잘 안만드는 사람이다. 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 본게 언제 였던가. 공연히 1년간 마음 고생한 것 같아, 안쓰럽다. 그래서 혼자 끙끙앓고 있느라 수심이 가득했구나 싶었다.
“여보, 이제부터 이 일은 내일이니 당신을 이 일에서 손떼고 맘편히 있어요. 듣고 보니 이런 이상한 상품을 안전하다고 판 은행이 잘못했네 그려, 패밀리 기업이라고 버젓이 사무실 명판까지 붙여주고 이런 엉터리가 어디있어, 내가 알아보고 처리할테니 잘되든 안되는 까짓거 이젠 맘고생 그만 해요 알았지”아내를 안심시키고 싶어 던진 말이지만,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미안해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던 아내가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진다.
“그래 그래야 내 아내 박명화지, 당신이 어떤 사람인데, 걱정마요”
다음날 조순익 대표는 은행에 찾아가 사태의 원인을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은행 김미리PB 팀장도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 WM센터 사무실에서 받아든 간이 상품 설명서에 깨알같은 글씨는 도데체 알아 볼 수도 없었지만, 그나마 검은 색은 글씨요 흰색은 종이라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각종 영어단어와 금융전문 용어가 박혀있어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아 볼 수 없다. 금속 가공 용어는 누구보다 자신있지만, 이런 볼성 사나운 용어들은 처음 본다. ‘무슨 금융상품을 이따위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팔아 먹는담’ 설명을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김팀장이 친절하게 설명한다지만 아직 뭔소린지 도통 잘 모르겠다. 사모펀드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만 귀에 들어와서 “이게 그 조국 펀드인가 하는 그런 펀드인가요?”
“아니 그런 것 하고는 다른 종류예요”
“그럼 이건 어떤 건데요?”
“미국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줘서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나눠드리는 거에요”
“어쨋든 안전하다고 팔았으면 손실이 나면 안되지, 왜 처음 약속하고 다른 거죠?”
김팀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어요. 계속 만기 환급이 잘되길래 안전하다고 믿었는데, 그만....”
“아니 팀장님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집사람이나 나나,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여기 상품이름에는 사모펀드라고 쓰여 있지도 않고, 참 답답하네요”
“그래서 몇일 후 본점에서 부행장님하고 WM 사업부에서 내려와 투자자 몇 분하고 만나서 설명드린다고 하네요”
김팀장이 말했던 그날 스케쥴을 다 미뤄두고, 본점에서 내려온 임찬희 부행장 설명을 들어보려고 찾아 갔지만, WM 센터 직원은 사전에 예약된 고객이 아니라고 간담회 참석이 어렵단다.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아니 똑 같은 피해고객인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그렇게 차별해서야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사전에 그렇게 준비가 되어서”
혹시나 해서, 미리 준비한 현수막을 걸고, 급작스럽게 준비한 피켓을 들고 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부 공기업이 이래서는 안되는 일 아닌가,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부행장과 기업은행 사람들에게 직접 피해자의 심정을 전해주고 싶었다.
잠시 후 은행건물 관리인이 다가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집회신고도 하시지 않고...”
“이봐요 내가 혼자서 이렇게 추운날 여기 서있고 싶어 이러겠어요? 나도 이은행 고객이예요. 억울하게 돈을 못받아서 이러는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서 계시는 건 좀 ..”
“아니 이 양반이, 내가 여기 고객인데 오늘 안쪽에서 설명회 참석을 못하게 하니 이렇게 해서라도 억울한 사연을 전해야 할거 아닙니까? 내가 어딜 부수기를 했어요 아님 때리길 했습니까”
관리인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경찰에 신고한다고 반협박조로 나온다.
“당신 마음대로 하쇼. 난 이대로 얼어 죽더라도 해야겠으니”
완강하게 버티니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럼 여기 안쪽에 들어오시면 안됩니다”한풀 꺽인 듯 건넨 말이지만 그 말이 더 기분이 상한다. 내가 뭐 강도도 아니고, 기분은 몹시 나빴지만 대꾸하지 않고, 피켓만 들고 서 있자. 잠시 후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디론가 전화로 보고를 하는 눈치다.
한 시간 이상 추위를 견디며 서있자니 허리도 아프고, 몸이 으실으실하다. 그래도 이왕 결심하고 나온 마당에 결과를 봐야하지 않겠나. 그렇게 혼자 외로운 투쟁이 시작되었지만 언제 끝내야 할지 몰라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가 간담회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홀연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 중에, 사무실로 전화벨이 울린다.
“최창석이라고 합니다. 안산에서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는데, 저와 같은 피해자라고 들었습니다.”듣던 중 반가왔다.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요?”
“아까 피켓을 들고 서계시는 걸 보았습니다. 부행장과 면담을 끝내고 나서 내려가 보니 안계셔서 은행직원한테 연락처를 받았습니다.”첫 통화부터 친근하고 정중한 목소리에 경계심이 풀리고 오히려 같은 피해자라는 말에 동병상련의 감정이 밀려 온다.
“오늘 부행장과 면담은 성과도 없이 핑계만 듣고 끝났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안산에서 피해자 몇분이 만나서 대책을 세워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시간 되시면 함께 하시죠”당장 해결책이 나올지 의문이지만 피해자들끼리 함께 만난다는 것 만으로도 우군을 만난 듯 반갑고 답답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네, 꼭 가보겠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보내주셔요” 핸드폰 번호를 서로 교환한 후 그렇게 첫 통화를 마쳤다.
그게 디스커버리와 최창석 위원장과의 긴 인연이 시작이었다. 좋은 일로 시작되었어야 할 인연이 이렇게 아이러니한 운명과 겹치니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