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우리 경제에 닥친 불황은 충격이 컸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는 곧 회복됐고, 1980년대 후반 우리 경제는 이른바 '3저(低) 호황'을 맞았다.
'3저'란 국제금리, 유가, 원화시세가 낮았던 당시 여건을 말한다. 3저 여건이 어떻게 호황을 만드는가?
첫째, 저금리. 금리가 낮으면 기업이 사업 자금을 융통할 때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 때문에 비교적 쉽사리, 적극적으로 투자와 생산을 늘릴 수 있다.
둘째, 저유가. 석유는 공산품 제조에 널리 쓰이는 필수 원료이므로 유가가 싸지면 각종 공산품 제조 비용이 줄어든다. 그만큼 기업은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으므로 같은 값에 제품을 팔아도 전보다 이익을 늘릴 수 있다. 이 같은 비용 여건 변화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을 더 활발하게 유도하기 쉽다.
셋째, '원 저'. 원 저란 원화 시세가 외국 돈 시세보다 낮은 상태다. 원 저 때는 우리나라에 본거지를 둔 기업이 수출로 돈벌이를 하기에 유리하다.
원 시세가 미 달러당 1000월 할 때를 가정해보자. 국내 기업이 900원 들여 만든 상품을 1달러에 수출하고 대금을 환전하면 1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비용 900원을 빼먄 100원이 이익으로 남는다. 그런데 원 시세가 달러당 1100원으로 변했다고 해보자. 전에는 1달러를 구하려면 1000운이 필요했지만 이제 1100원이 필요하다. 원화 시세가 달러당 100원 싸진 셈이다. 이 상태에서 국내 기업이 900원 들여 만든 상품을 1달러에 수출하고 대금을 환전하면 11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비용 900원을 빼면 200원이 이익으로 남으니 전보다 이익이 커진다.
이런 이치로, 원 시세가 싸지면 우리나라 수출기업은 같은 물량을 수출해도 전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판매가를 조금 낮추면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도 쉽사리 늘릴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우리 경제는 3저 여건을 디딤돌 삼아 생산과 투자를 확대하고 수출을 대폭 늘려 1960년대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3저 여건 중에서도 특히 '원 저' 덕을 많이 봤는데, 당시 엔 시세가 폭등한 상황에도 큰 도움이 됐다.
1985년 엔화 평균 시세는 미 달러당 240엔 정도였는데, 1988년 120엔대가 됐다. 1달러를 구하는 데 전에는 240엔이 들었는데 이제 120엔만 주면 되니 엔 시세가 갑절 뛴 셈이다.
엔 시세가 뛰면 일본산 제품은 수출이 불리해진다. 달러당 240엔 할때 200엔을 들여 상품을 만들고 1달러에 수출한다 치자. 수출 대금을 환전하면 40엔이 이익이다. 그런데 엔 시세가 달러당 120엔이 되면 수출 대금 환전액이 120엔밖에 되지 않는다. 200엔 들여 만든 제품을 수출해 80엔을 손해보는 셈이니 수출로 돈 벌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당시 엔 시세가 급등하면서 일본 기업 수출은 일대 타격을 입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아시아 국가와 글로벌 수출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일본이 '엔 고(엔 시세 상승)'로 수출에 타격을 입을 때 우리나라와 동남아 각국은 반대로 통화 시세가 싸져서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