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딸 1
“댕 댕 댕 댕 댕 댕 꽝 꽝 꽝.”
북과 징, 꽹과리, 장구 소리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첫째 강백과 어멍, 경순 아즈망은 일찌감치 심방무당 좌씨가 여는 굿판에 가서 제사상 차리는 일을 거들었다. 둘째 담백은 빨리 보러 가자는 막내 호백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굿판으로 달려갔다. 각종 기와 오방기가 걸려 있고, 제장(祭場)에는 굿에 쓰일 제물이 가득했다. 쌀점에 쓰일 쌀들도 가득 담겨 제사상에 놓여 있었다. 바당을 무대로 생활하는 심방, 잠녀, 어부, 선주들이 다 모였다. 호백이는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모인 굿판이 신기하기만 했다.
“성, 삼춘어른들이 영등할망, 영등할망 하는데 잘 모르겠어.”
담백은 차가운 몸을 불에 쬐고 덥히면서 휴식을 취하는 불턱에서 잠녀 삼춘들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호백이에게 들려주었다.
“탐라의 봄은 여신이 다녀간 자리에 피어난대. 영등할망이 섬에 들어오면 뱅뱅 탐라를 한 바퀴 돈다는 거야. 탐라를 한 바퀴 돌면서 바당에 뿌려주는 게 씨앗이야. 고둥 씨, 소라 씨, 감태 씨 등 잠녀 삼춘들이 잡아서 파는 해산물 씨앗들 있잖아. 영등할망이 섬을 떠나면서 바당에 뿌려준대. 바당 밭에 씨를 뿌리며 영등할망이 찾아오는 음력 2월은 더 추워. 청치마 입고 영등할망이 오면 날이 좋고, 누비옷 입고 오면 춥다는 잠녀 속담도 있어. 그럼, 우리 호백이 성아 말을 잘 들었는지 확인해볼까? 오늘 영등할망은 뭐 입고 왔게?“
“잠깐 기다려, 성. 영등할망이 청치마 입고 왔어! 오늘은 안 춥잖아.”
“와. 우리 호백이, 잘 들었네.”
심방 좌씨는 가장 아끼는 무지개색 한복을 꺼내 입었다. 보라색 겉옷의 몸통 부분은 검은 색 허리띠로 꽉 조이고,머리에는 붉은 띠를 묶었다. 좌용옥이란 이름의 심방 좌씨는 4대째 심방 집안에서 태어나 유일하게 탐라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다. 오늘 열리는 영등굿으로 심방 좌씨는 영등 할망을 달래며 종달리 땅과 바당의 풍년과 안전을 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위험한 물질을 하는 잠녀 삼춘들은 영등할망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고,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치며 여신을 맞이한다. 영등제 기간 동안 잠녀와 어부들은 일절 바당에 나가지 않고 정성을 들인다.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는 영등여신님은 우리 잠녀와 어부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아십니다. 특히 집안일에 농사에 물질까지 하는 잠녀들의 노고를 아시고 바당 밭에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영등여신님, 부디 많이 잡수시고 올해 종달리 땅과 바당을 풍요롭게 하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십시오. 바당 물건도 많이 나게 보살피시고, 전복과 소라를 딸 때도 무사하게 도와주십시오. 부디 이곳을 떠나실 때는 전복, 소라, 해삼 씨를 많이 뿌리고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녀는 열 시간의 굿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성을 기울였다. 이제 굿이 끝나고 영등 할망을 보낼 시간이 되었다. 영등굿의 마지막은 ‘지드림’으로, 제에 올린 제물을 바당에 뿌린다. 줄지어 바당가로 걸어가서 한지에 싼 음식을 바당에 던졌다.
“모든 건 용왕님의 것입니다. 정성을 받아주십시오.”
온 마음으로 한 해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했다.
“괴물이다!”
갑자기 뒤쪽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