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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동화
제목: 우리는 알아요
1.‘민주주의’ 라는 게임
2.진공청소기
3.할아버지의 중절모
4.영원히 스무 두 살
5.반장 vs 대의회 의장
6.너희가 민주주의의 기둥이란다
7.우리는 알아요!
8.두 가지 바램
1.‘민주주의’라는 게임
서울 중심가 아파트 단지는 오늘따라 더 햇살이 눈부시다. 몇 년전만해도 미세먼지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요즈음은 자주 앞동 우리창에서 빛이 반사 돼 우리집 마당 화초에 닫았다. 우리집은 아파트 사이에 유일하게 있는 단독주책이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화초에 물을 주고 계셨다. 화단에는 여러 종류의 화초들이 봄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허허! 요녀석들 잘도 자라 주었네. 장하다.”
치자나무의 싱싱한 잎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시는 나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일 아끼시던 나무이기도 하다.
“잘 자라 열매를 튼실하게 맺거라. 할멈 제사상 전부쳐야하니까.”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는지 손차양을 했다.
“할아버지, 화초하고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오늘은 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우리 앞동 아파트에 사는 친구 찬희네 가서 놀다 왔다. 요즈음 친구들 사이 유행하는 ‘민주주의’라는 인기 게임을 했다. 깨기 힘든 어려운 게임인데도 찬희는 무척 잘했다.
“범생이 넌 공부만하니 이런 게임도 못하지. 게임도 할 줄 알아야 현대이시대를 살아가는 이 나라의 어린이가 되는 거야. 안 그러냐?”
나는 게임을 잘하는 찬희가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주말마다 한 시간씩 게임 알려 해 줄게. 대신 글쓰기 숙제 도와 줘. 난 글쓰기라면 딱 질색이거든.”
찬희의 제안에 무척 반가워 얼른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민주주의?’ 그러한 게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배우는데 푹 빠졌다. 배꼽시계가 울려서야 집에 왔다.
“와와!”
거실에 들어섰더니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할아버지도 따라 들어오셨다. 나는 할아버지 휠체어를 밀어드렸다.
<1960년 4월19일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전국방방곳곳에서 경무대(청와대)로 몰려왔습니다.>
‘어? 저것은 찬이 게임 배경 화면이잖아.’
텔레비전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오래 된 흑백사진이 화면에 꽉 차 있었다. 앨범에서 할아버지 학생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형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남자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무명옷을 입고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한쪽 손에는 피켓을 들었고, 다른 쪽 손에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분노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하양 무명치마는 앞을 걷어 허리에 맸다. 머릿수건까지 쓰고 소매는 걷어 올렸다.
“독재 대통령은 물러나라! 민주주의 만세! 부정선거를 중단하라!”
‘민주주의? 찬희네서 한 게임이잖아?’
그 게임 캐릭터들이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과 흡사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왜 저래요? 농부들 같은데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것은 농부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다 원하는 거란다.”
“할아버지. 저 영상은 오래 된 것 같아요. 65주년이니까 지금이 2025년…….”
나는 몇 년도 인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음성으로 물었다.
“4.19민주 운동이 몇 년도 인지 말해 줄래?”
“1960년도!”
“할아버지 1960년도래요.”
“허허, 참 편리한 세상이여. 그려, 저 시위자들의 희생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데 씨앗이 되었제. 그때 뿌린 그 씨앗이 65년이나 되었는데도 열매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잖아요.”
“아직도 민주주의가 똑바로 서지 못해서 그려는 겨. 츠츠쯧!”
나는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이고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며 살고 있다.
“왜 민주주의가 바로서지 않았어요?”
“참, 근우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고 했지?”
“네, 할아버지.”
“반장 선출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당연히 후보를 뽑아 반 아이들이 투표로 선출했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야. 저 학생들과 시민들은 똑바로 투표해서 대통령을 뽑아야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고.”
텔레비전 화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독재를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하늘을 찔렀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
총소리가 날 때마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차가 한번 지나갈 때마다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꼭 찬희가 하는 게임의 한
4.19동화
제목: 우리는 알아요!
1.‘민주주의’ 라는 게임
2.진공청소기
3.할아버지의 중절모
4.영원히 스무 두 살
5.반장 vs 대의회 의장
6.너희가 민주주의의 기둥이란다
7.우리는 알아요!
8.두 가지 바램
1.‘민주주의’라는 게임
서울 중심가 아파트 단지는 오늘따라 더 햇살이 눈부시다. 몇 년전만해도 미세먼지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요즈음은 자주 앞동 우리창에서 빛이 반사 돼 우리집 마당 화초에 닫았다. 우리집은 아파트 사이에 유일하게 있는 단독주책이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화초에 물을 주고 계셨다. 화단에는 여러 종류의 화초들이 봄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허허! 요녀석들 잘도 자라 주었네. 장하다.”
치자나무의 싱싱한 잎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시는 나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일 아끼시던 나무이기도 하다.
“잘 자라 열매를 튼실하게 맺거라. 할멈 제사상 전부쳐야하니까.”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는지 손차양을 했다.
“할아버지, 화초하고 또 이야기 하시는 거에요?”
2025년, 4.19혁명이 일어 난지 65주년 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우리 앞동 아파트에 사는 친구 찬희네 가서 놀다 왔다. 요즈음 친구들 사이 유행하는 ‘민주주의’라는 인기 게임을 했다. 깨기 힘든 어려운 게임인데도 찬희는 무척 잘했다.
“범생이 넌 공부만하니 이런 게임도 못하지. 게임도 할 줄 알아야 현대를 살아가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는 거야. 안 그러냐?”
나는 게임을 잘하는 찬희가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주말마다 한 시간씩 게임 레슨 해 줄게. 대신 글짓기 숙제 도와 줘. 난 글짓기라면 딱 질색이거든.”
찬희의 제안에 무척 반가워 얼른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민주주의?’ 그러한 게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배우는데 푹 빠졌다. 배꼽시계가 울려서야 집에 왔다.
“와와!”
거실에 들어섰더니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할아버지도 따라 들어오셨다. 나는 할아버지 휠체어를 밀어드렸다.
<1960년 4월19일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전국방방곳곳에서 경무대(청와대)로 몰려왔습니다.>
‘어? 저것은 찬이 게임 배경 화면이잖아.’
텔레비전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오래 된 흑백사진이 화면에 꽉 차 있었다. 앨범에서 할아버지 학생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형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남자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무명옷을 입고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한쪽 손에는 피켓을 들었고, 다른 쪽 손에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분노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하양 무명치마는 앞을 걷어 허리에 맸다. 머릿수건까지 쓰고 소매는 걷어 올렸다.
“독재 대통령은 물러나라! 민주주의 만세! 부정선거를 중단하라!”
‘민주주의? 찬희네서 한 게임이잖아?’
그 게임 캐릭터들이 지금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흡사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왜 저래요? 농부들 같은데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것은 농부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다 원하는 거란다.”
“할아버지. 저 영상은 오래 된 것 같아요. 65주년이니까 지금이 2025년…….”
나는 몇 년도 인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음성으로 물었다.
“4.19민주 운동이 몇 년도 인지 말해 줄래?”
“1960년도!”
“할아버지 1960년도래요.”
“허허, 참 편리한 세상이여. 그려, 저 시위자들의 희생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데 씨앗이 되었제. 그때 뿌린 그 씨앗이 65년이나 되었는데도 열매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잖아요.”
“아직도 민주주의가 똑바로 서지 못해서 그려는 겨. 츠츠쯧!”
나는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이고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며 살고 있다.
“왜 민주주의가 바로서지 않았어요?”
“참, 근우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고 했지?”
“네, 할아버지.”
“반장 선출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당연히 후보를 뽑아 반 아이들이 투표로 선출했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야. 저 학생들과 시민들은 똑바로 투표해서 대통령을 뽑아야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고.”
텔레비전 화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독재를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하늘을 찔렀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
총소리가 날 때마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차가 한번 지나갈 때마다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꼭 찬희가 하는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저, 저런 죽일 놈들, 애맨 시민들을 다 죽이네. 저, 저 어린 학생들을…….”
할아버지는 TV를 보시다가 분노해서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서려다가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 할아버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괜찮다!”
할아버지는 분노해서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TV를 보던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다리가 불편한 줄도 잠깐 잊으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 왜 화가 났어요? 저 사람들이 잘못 한건가요? 저렇게 사람들이 항의하면 경찰이나 군인들이 잡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게임에서는 로봇 경찰들이 다 잡아 가던데요.”
“친구들이 의견을 내면 반장인 근우는 다수결에 따라야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씀을 했다.
“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인데, 저 학생들은 그 민주주의를 저버린 대통령을 향해 항의하는 거란다. 그 항의를 막기 위해 경찰과 군인, 심지어는 청년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정치깡패들을 모집한 거지. 그 사람들이 바로 탱크나 트럭위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질을 하는 거고. 자기네들 뜻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서 말이다. 바로 그게 독재라는 거야.”
아나운서 멘트가 계속 나왔다.
<1960년 3월15일 마산에서 시작된 학생 및 시민운동은 서울로 도화선이 되어 S대, K대, Y대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들의 희생으로 독재 대통령은 하야되었고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사는 것은 저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다음 영상은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내는 모습입니다.>
화면에 할아버지가 연단에 섰다.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연단을 둘러싸고 소리를 질렀다. TV화면은 65년 전의 영상이라 굵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빗금이 쳐졌다. 그때에도 저렇게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화면은 소리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이승만은 물러나라!”
대통령할아버지는 연설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2.진공청소기
‘저 화면도 로봇으로 게임에 나왔는데…….’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이승만 대통령이에요? 엄청 좋은 분 같아요. 불쌍해요.”
“한 개인으로서는 다 좋은 사람이지.”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이 말씀하셨다.
“근우야, 반장선거를 투표로 선출했다고 했지?”
“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야. 저 학생들과 시민들은 잘못된 민주주의를 바로 잡고자하는 사람들이고.”
할아버지 설명을 듣고 나니까 반장 선거하던 생각이 났다. 우리 반에서는 세 명의 후보가 추천 받았다.
4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을 했던 최욱이는 1번으로, 다음은 찬희가 나를 추천했다. 작년에 최욱과 한 표차로 떨어진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꼭 반장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다음은 현정이가 추천 받았다. 현정이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공부도 잘하고 소신이 있으며 착한아이다. 하지만, 현정이는 반장을 기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최욱과 내가 대결을 붙게 되었다. 우리 반은 모두 25명이다. 작년에 같은 반을 했던 몇몇 아이들이 최욱이 후보 추천이 되자 야유를 했다. 그때 최욱은 자신을 찍어 준 아이들과 똘똘 뭉쳐 나를 찍은 아이들을 왕따 시켰기 때문이었다.
“우! 최욱 추천하지 마!”
아이들의 목소리가 반장 선거 끝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생생했다. 그때를 생각하느라 눈을 감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3번씩이나 대통령을 하고도 모자라 또 출마를 한 거지. 그런데 상대방 후보가 갑자기 숨지는 바람에 투표 없이 자동으로 대통령이 된 거여.”
“근데 왜 부정 선거예요?”
“부통령을 자기편에서 당선시키려고 온갖 부정을 저지른 거였어. 서민들한테 고무신과 밀가루나 귀한 설탕을 나눠 주며 자기당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를 한 거였지. 없는 사람들은 그 귀한 것을 준다는데 안 찍을 수야 없었제. 그게 부정 선거라는 것을 국민들이 안 거여. 그걸 바로잡기 위해 데모를 한 거란다.”
“부통령도 국민투표로 뽑는 거예요? 반장선거는 차점자가 자동으로 부반장이 되는데요.”
“그려. 지금은 부통령제가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랬단다.”
“근우야, 이런 말 들어 봤나?”
“무슨 말 요?”
“백 번 잘하다가 한번 잘 못하면 그 한 번 잘못한 것만 드러나는 법이지. 저 대통령할아버지처럼 말이야. 나라를 건국하고 미국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저렇게 국민들한테 환영을 못 받는 거지.”
“아, 네. 부정선거로요?”
“그려. 물론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건 높이 살만 하긴 혀.”
‘부정선거?’
그렇다면 최욱이 반장선거 때 한 행동이 분명 부정 선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욱은 집이 부자다. 그래서 선거 공약할 때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프렌차이즈 햄버거가게에서 간식을 쏘기도 했다. 선거전날 찬희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말했다.
“근우야, 욱이가 자기편 아이들을 몰고 요 앞 햄버거가게에서 쏘고 있어. 너도 가만있으면 안 되잖아. 그리고 선물도 준다던데.”
“그러라지 뭐. 그런다고 찍어주나. 찍어주면 할 수 없고. 나는 그런 용돈도 없지만, 있어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봐! 공약이라도 그럴 듯하게 내든지.”
찬희가 안달이 났다.
“공약이야 나도 근사하게 낼 수 있지. 그렇지만 실천을 해야지 공약만 근사하면 뭐 해?”
나는 곰곰 생각해 봤다. 공약?
‘맞아! 이거야.’
반장 선거 날이 되었다. 욱이는 자기를 지지하는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아침부터 왁자지껄했다. 여자아이들은 욱이한테서 립밤을 선물 받아 입술에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수다를 떨었다.
“와! 예쁘다. 이렇게 예쁜 걸 어디서 구했지. 역시 보는 눈이 달라.”
남자아이들은 게임 카드를 받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아양을 떨었다. 최욱이 반장이라도 된 듯이 야단들이었다. 최욱은 이승만대통령할아버지처럼 이번이 세 번째 반장후보로 독재를 하려고 했다.
“자, 공정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게 아니라, 어느 후보가 우리 반을 위해서, 우리 학교를 위해서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고 후보들의 공약을 자세히 경청해요. 아주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민주주의국가를 세워 나갈 거니까요. 후보들 나와서 멋지게 발표 해봐요.”
선생님이 반장 선거 룰에 대해 말씀하셨다.
먼저 1번 최욱이 나가서 후보 연설을 했다. 최욱이 앞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최욱! 최욱!”
“친구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한명만 빼고 모두 내 친구 맞지요?”
“네!”
교실이 떠나갈 듯이 아이들이 합창을 했다.
“그 한명은 누구지?”
“바보야 그것도 몰라? 근우지. 근우 안 됐다. 욱이한테 왕따 당하면 한 학기 동안 힘들 텐데. 반장이 되면 상황은 반전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근우가 반장이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우니까.”
몇몇 아이들의 반응소리가 들렸다.
“나는 만약 반장이 되면 한 달에 한번은 내 용돈을 털어서 햄버거를 쏘겠습니다.”
“와와! 역시 통 큰 최욱이야.”.
“반장은 최욱! 최욱!”
최욱은 환호를 받으며 우쭐거리며 연단을 내려왔다.
나는 약간 걱정이 되긴 되었다. 아직도 물질에 약한 아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찬희가 먼저 나가서 나를 띄우기 위해 익살을 부리며 게 춤을 추었다.
“짝짝짝!”
찬희의 게 춤에 맞춰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췄다. 찬희 이마에는 ‘기호 2번 허근우’라는 로고 스티커도 부치고 말이다. 아이들이 배꼽을 잡았다.
“허근우! 허근우!”
몇몇 아이들이 나를 연호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먼저 연단에 올라 아이들을 쭈욱 둘러보며 눈을 맞췄다. 갑자기 떠들던 아이들의 소리가 멈추었다. 거의 1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근우! 안하고 뭘 해?’
찬희가 손나발을 하고 재촉했다. 나는 쉼 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반장 후보 기호 2번 허근우입니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지만, 나는 벌써 여러분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습니다. 지금 최욱이가 나만 빼고 다 친구라고 했는데 친구들 이름을 다 아는 지 물어보십시오. 전 번호와 이름을 다 알고 있어요,”
나는 1번부터 25번까지 번호와 이름을 붙여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했다.
“와, 근우 최고다.”
“이럴 수가! 그쯤은 최욱이 너도 당연히 알지? 근우 코를 납작하게 해줘라.”
아이들 몰이를 하며 최욱을 지지하는 소영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이들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름은 알아도 번호까지 매치 시킨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욱이한테 재촉했다. 욱이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이름과 번호를 말했다. 겨우 다섯 명만이 이름과 번호가 맞았다. 몇몇 아이들은 이름조차도 몰랐다.
“우! 친구가 이름도 몰라?”
“최욱! 나 이름 몰라? 서운하다. 흥! 너 안 찍어. 나 오늘부터 친 허근우 쪽으로 갈아탔다.”
곳곳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자자, 이름은 차츰 외워도 됩니다. 하지만 공약은 지켜야합니다. 나 허근우는
“첫째,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력 있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모든 일을 빠르고 깨끗하게 진공청소기처럼 처리하겠다는 뜻입니다.”
“와, 근사하다. 근우! 근우!”
“둘째, 비밀 박스를 만들겠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반의 불편 상황이나 건의 상황을 익명으로 쪽지를 적어 넣는 겁니다. 반장인 나는 그것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허근우에 동그라미를 정확하게 그려 주십시오. 이번에 제가 반장이 되면 전교 어린이 부회장 후보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전교 부회장까지 된다면 그 비밀 박스를 전교생한테 적용하겠습니다.”
“와와와! 허.근.우! 허.근.우!”
아이들의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개표를 시작했다. 초반부에 최욱이 앞서는 것 같았다.
3.할아버지의 중절모
“독재자 이승만은 하야하라! 독재자는 물러가라!”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영상이 클로즈업 되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다쳤는데 구급차도 안 와요?”
나는 반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 팔소매를 잡았다. 게임에서는 쓰러진 캐릭터들을 구급차에 옮겨 실었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된 겨?”
초반 접전을 벌이던 반장선거에서 다섯 표 차이로 압도적으로 내가 반장이 되었다. 전교 어린이 부회장까지.
“근우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란 저렇게 피를 흘려서 찾은 거란다. 그렇게 찾은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엉뚱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원, 츳츳!”
할아버지는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할아버지가 혀를 차실 때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신호다.
그 때 아나운서의 멘트가 다시 나왔다.
<재선거와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당황한 제1공화국정부는 오후 3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경찰서에서 무기고를 탈취한 시위대들은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오후 6시 40분경 소방차와 트럭에 나눠 탄 시위대가 종로 3가를 지나 동대문 경찰서 앞을 지날 무렵 계엄령 군대와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길바닥에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며 지나갔다.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는 도중에도 시위대가 차를 타고 이동하며 서울운동장 앞에서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었겠어요.”
“그려!”
할아버지 목소리가 젖어 짧게 대답했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냥 평소처럼 살면 되지 저렇게 싸워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게 필요해요?”
“다수를 존중하되 소수를 배려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것이 깨지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란다.”
“그러면 하야가 뭐에요? 왜 대통령을 하야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민주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아나운서 멘트가 또 나왔다.
<이승만대통령은 4월 23일 시위진압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의 사망소식을 전달받고 병원을 찾아 위문한 뒤, 방송에서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유혈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유당 총재직 사임선언을 했습니다. 1960년 4월 26일 오후 1시에 이승만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자리에서 하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하야가 무엇인지 이해하겠니?”
TV화면에는 대통령할아버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연단에 서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네, 할아버지. 근데 대통령할아버지가 그렇게 잘못하신 거예요?”
“근우가 지난번에 학급 비밀 박스를 만들어 학생들의 건의 쪽지를 받아 선생님께 전달하고 해결했다고 했지? 장애우의 건의라고 했던가?”
“네.”
“만약 그때 이사회에서 반대한 게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반대해서 장애시설을 못하게 되었다면 너희들이 항의를 했을 것 아니냐. 물론 이사회에서 반대하는 것을 교장선생님이 설득해서 장애시설이 만들어졌지만 그 반대라고 생각해 봐.”
“맞아요. 이사회에서 반대 할 때 내 친구 찬희가 이사회를 해체시키라고 했어요. 그때 장애인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앞장서고 저와 찬희가 휠체어를 밀고, 전교어린이 회장과 저를 지지하는 몇몇이서 교무실 앞까지 갔어요. 교무실 앞에서 반대하는 아이들과 만나 몸싸움을 할 뻔했지 뭐예요.”
“만약 그때 친구 중 누군가가 다쳤다면, 아마 교장선생님은 반대학생들의 성화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을 거야.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은 국민들의 압박에 의해 자진해서 물러나는 걸 말하는 거란다.”
“아, 네 할아버지. 그렇다면 대통령할아버지가 잘못한 게 아니라 경찰이나 시위진압대가 잘못해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다치고 죽은 것을 책임지고 물러 난거네요. 그렇다면 대통령할아버지 착한 거 아니에요?”
“그, 글쎄다.”
나는 지금 TV에서 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우리 반 아이들 때문에 인자하시고 좋은 교장선생님이 그만 둘 뻔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렵게 탄생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저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TV에서 대통령할아버지가 계속 연설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을 그만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설명했다.
대통령 할아버지의 연설문에는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가 한 가지 부탁하고자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삼팔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 바라는 바이다.>”
곧이어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할아버지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공원)를 떠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눈물이 나 휴지로 코를 풀었다. 나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참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대통령할아버지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시골이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는 장면도 나왔다.
대통령할아버지는 미국에서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땄다고 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살다가 미국여자랑 결혼했다. 대통령할아버지가 굉장히 똑똑하고 멋져보였다. 미국 국회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화면도 나왔다.
“와, 대통령할아버지 정말 멋지세요.”
“니도 그리 뵈나? 그때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무조건 이기고 민주주의가 되는 줄 알고 모두 들고 일어나고 이 할애비도 앞장섰는데…….”
할아버지는 말씀을 하다가 멈추었다.
“그럼, 지금은 다르다는 뜻이에요?”
“우리나라를 일제에서 되찾아오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대통령이 아니냐.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줄만 알았지. 그렇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도 할 수 있었는데. 민주주의 대가를 너무 많이 치룬 거지. 이 할애비가 4·19 당시 산증인으로서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에 찬성한단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많이 우울해 보였다.
“할아버지 왜 기분이 다운되었어요? 대통령할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란다. 친구가 보고 싶어 그려.”
“친구요?”
할아버지는 TV 화면에서 대통령할아버지가 완전히 보이지 않자 TV를 끄고 휠체어에 올라 앉으셨다, 그리고 벽장에서 중절모를 꺼내 썼다. 할아버지가 중절모를 쓰면 중요한 외출을 하신다는 뜻이다.
4.영원히 스무 두 살
“할아버지, 중요한 약속이 있으세요?”
“친구 보러 갈란다. 근우도 할아버지 따라 갈 겨?”
“그래도 되어요? 따라갈게요.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주차장으로 갔다.
“네 애비가 효자야.”
할아버지는 불편함 없이 주차장까지 가서 차를 타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휠체어를 자동 리프트 고리에 걸었다. 할아버지가 앉은 상태로 휠체어가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운전은 손으로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 차는 AI 개발 박사인 아빠가 할아버지를 위해 설계해서 직접 제작하고 만드신 것이다. 장애인들이 아빠가 설계한 이 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근우는 뒤에 타거라. 앞자리는 위험하단다.”
“괜찮아요. 저 앞에 탈래요.”
“허허! 안된대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뒷문을 열고 탔다.
“안전벨트 단단히 메고.”
“네, 할아버지”
“찰칵!”
안전벨트 클리프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너를 지켜 줄 거란다.’ 하는 듯이 말이다.
여든 다섯이 된 할아버지는 운전도 능숙하게 하셨다. 다리도 불편하신분이 이렇게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완전자동 시스템 AI 자동차 덕분이라고 할아버지는 아빠를 극찬했다.
우리는 강변도로를 달렸다. 이미 한강변 벚꽃나무들은 꽃잎을 다 떨구었고, 푸른 잎이 나와 있었다. 게을러 늦장을 부린 꽃들만이 간간히 피어있었다. 대신 한강변은 알록달록한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한강의 물빛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한강변에는 임시공휴일이라 봄나들이 나온 인파로 붐볐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할아버지, 임시공휴일이라 그런지 차도 많고 강변에 사람이 엄청 많아요. 오늘 같은 날 엄마 아빠도 출근하지 말지…….”
나는 엄마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따분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찬희이가 요즈음 완전 깨부순 게임 ‘민주주의’나 배우며 놀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가 속력을 조금 냈다. 나는 들고 나온 책을 읽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속도를 낮추었다. 자연스럽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입구 표지판에는 <국립4.19민주묘지>라고 쓰여 있었다. 하얀 기념 철탑이 좌우 다섯 개씩 기둥처럼 서 있었다. 산책로에 활짝 피어 있는 꽃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참 아름다웠다. 꼭 공원에 온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먼저 마트에 들러서 막걸리 한 병과 종이컵과 과자 한 봉지와 그리고 꽃 한 묶음을 샀다. 입구에<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신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돌탑이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잠깐 묵례를 했다. 나도 따라했다.
“할아버지, 여기는 4.19민주묘지잖아요. 여기 친구가 있어요? 친구가 죽은 거예요?”
“그려, 그 친구가 여기 있단다.
엄청난 수의 묘비가 종대로 서 있었다. 유족이 다녀갔는지 대부분의 묘비 앞에는 꽃과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비석에는 아까 TV 시위대에서 본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과 모자를 쓰고 왼쪽 가슴에는 명찰을 단 사진이 있었다. 할아버지 휠체어가 어느 묘비 앞에서 멈추었다.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묘비에는 꽃이 꽂혀있었다. 할아버지가 멈춰선 그 묘비이름은 ‘K대 2학년 허향수’라고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랑 이름이 똑 같아요.”
“그려, 친구는 우연히도 이 할애비와 이름이 똑 같단다.”
“그 친구 이름도 허향수란 말이에요?”
“신문에 난 그 친구 이름은 보고 집안 어르신과 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난리가 나셨단다. 이 할애비가 죽은 거로 오해 하셨던 게지.”
할아버지 말씀은 할아버지가 대의회 의장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앞장서서 맨 먼저 죽을 거라며 할아버지의 엄마아빠는 극구 말리셨다고 했다. 그날 당연히 할아버지는 맨 앞장을 서야했단다. 그런데 그날 할아버지는 학생의회사무실에서 많은 서류를 정리해야하기에 바빠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내가 지켜 주어야했는데…….”
“가, 가만요. 할아버지. ‘허향수’ 저 사진이 찬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게임에도 나왔어요.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이었지만, 할아버지 이름하고 같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런 게임도 있었나? 그 게임을 아이들이 하며 민주주의가 왜곡되지나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대학생교복을 입은 형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꼭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에는 왼쪽 가슴에 하얀 네모 명찰에 까만 글씨로 ‘허향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할아버지 친구 분은 할아버지가 다니신 S대가 아니네요. 근데 할아버지 친구가 왜 이렇게 어려요?”
“그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뜻을 품은 동지이지. 그리고 이 친구는 영원히 스무 두 살이란다.”
“네?”
할아버지는 가지고 온 꽃을 화병에 꽂고, 막걸리 병을 따서 술잔에 부었다. 과자도 봉지를 뜯어놓았다. 그리고 그 친구 분 사진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친구, 잘 있었는가? 우리 오랜만에 한잔하세. 자네는 막걸리 좋아했지.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 술을 가르치느라 무진 애썼지. 살다 보니 술이 필요할 때가 있더이다. 자주 와보지 못해 미안하이. 자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 내리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네. 아직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진 못했지만 말일세.”
할아버지 두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눈물을 훔쳐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절을 했다. 나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었다.
“니도 절 하거라. 할애비 친구면 니한테도 할아버지가 되는 거란다.”
“네!”
나는 무릎을 꿇어 엎드려 절을 두 번하고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묵례를 했다.
“다리가 이 모양이라 엎디어 절하지 못해 미안하이. 곧 자네를 보러 갈 거라네. 그때 우리 만나세.”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곧 만나러 가신다니요?”
“허허!”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나는 눈물이 나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할아버지, 나 두고 절대 죽으면 안 되어요. 엉엉!”
“울긴. 그려, 내가 우리 근우를 울렸구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법이란다. 이 친구는 이렇게 젊을 때 죽었는데, 이 할애비는 이 친구보다 65년을 더 살았으니 친구한테 미안하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애비 우리 근우 나두고 금세 안 죽을 테니까.”
“저랑 약속해요.”
할아버지랑 손가락을 걸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할아버지가 휠체어 사물함에서 작은 돗자리를 꺼내 주며 바닥에 깔고 앉으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복술이라며 음복을 하시고 나에게는 과자를 건넸다. 꼭 소풍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 친구 분이 꼭 형 같아요. 아니면 삼촌요.”
“허허, 그러냐? 저 사진이 학생 때라서 그리 느낄게다. 이 친구에게는 저사진이 제일 나이 든 사진일 테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준 과자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할아버지! 이 과자는 처음 보는 과자예요.”
“그려, 이것은 옛날에 우리가 좋아하던 과자야. 요즈음 옛것 찾기 운동하느라 오래전 것들이 많이 재탄생되고 있지.”
“아삭! 아삭!”
고소하고 맛있었다. 할아버지가 건네준 과자를 씹었다. 참 고소하고 맛있어 손이 자꾸만 갔다.
이곳저곳에 유족들이 성묘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며 슬프게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할아버지 친구 분 같이 젊은 나이에 죽은 이들을 애통해 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하늘로 하늘로 퍼져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와 보았지만,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여기 민주묘지에는 비석이 몇 개나 되나요?”
“자유 민주 정의를 꽃피운 아름다운 청춘 412명의 묘지란다.”
“그렇게나 많아요?”
당시에 186명이 사망했는데, 1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부상자들이 사망해 여기에 묻혔다고 했다.
“할아버지 다리도 그때 다치신 거죠? 그렇다면 부상자 숫자 중에 할아버지도 포함되어 있겠네요.”
“그렇단다.”
나는 휠체어에 힘없이 올려 져 있는 할아버지 다리를 어루만졌다.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는 기라.”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할아버지는 4.19민주묘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한 획을 그은 희생자들이 묻힌 안식처로 자유, 민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그분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신성한 장소라고 했다.
나는 자꾸만 뒤돌아보며 4.19민주묘지를 뒤로 하고 나왔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붉은 노을이 묘지 산책로에 평화롭게 깔려있었다.
5.반장 vs 대의회 의장
나는 할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 차를 타고 4.19민주묘지를 나오면서 할아버지께 말했다.
“할아버지가 S대 나오셨는데, 전 할아버지같이 S대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훌륭한 사람이 못될 것 같아요.”
“근우야, 꼭 그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자신에게 일이 주어졌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훌륭한 사람인 게야. 그리고 이 세상에는 꼭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지. 저기를 보렴. 저분들이 없다고 생각해봐. 이 묘지의 꽃은 누가 가꿀 것이며, 거리의 청소는 누가하니? 세상은 이러저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더불어 살아가는 게 사회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할아버지 말씀을 다는 이해 못하지만, 그래도 그쯤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렇게 열심히 청소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많은 사람이 다녀간 공원에는 구석구석에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공휴일에 쉬지 못하고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었다. 그 분들이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졌다. 그 분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저분들이 훌륭한 분들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할아버지, 최고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공부 안하고 데모를 했던 거예요?”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데는 학교간판이 무슨 소용이겠어. S대 학생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데 반대할 학생은 아무도 없어.”
“할아버지가 그 대학에서 대의회의장이 되신 거죠? 아빠가 말해줬어요.”
“네가 반장선거에 민주적으로 투표해서 반장이 된 것처럼 이 할애비도 문리과 대학생들이 민주적으로 투표해서 의장이 된 거지.”
“와, 할아버지 대단하세요. 나는 반장, 할아버지는 의장님!”
“하하, 녀석!”
6. 너희가 민주주의의 기둥이란다.
나는 힘없이 휠체어에 올려 져 있는 할아버지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 손으로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리는 왜 다치신 거예요?”
그 당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다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끝내고 청계천을 지날 때 경찰과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많은 학생이 희생되었다고 했다.
“다 뭉개버려!”
빨간 완장을 찬 반공청년단들이 소리를 지르며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단다. 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학생들을 끌어다 트럭에 실었고, 앞장서 있던 할아버지도 잡혀가 고문을 당해 다리를 다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분한 생각이 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리가 이렇게 아프신데 어떻게 방송국 기자를 하신 거예요?”
“젊었을 때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지. 조금 불편할 뿐이었단다. 늙으니 이리 안 됐나.”
“할아버지, 방송국은 장애시설이 잘 되어 있었나요?”
“지금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있긴 있었제. 하지만 그때는 그리 불편하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단다. 근우 반장이 되고 나니 어때?”
“속상할 때가 많아요. 특히 부반장이 된 최욱 녀석이 모든 일에 딴지를 걸어요. 지난번 장애인 시설만 해도 그래요.”
“반장이라고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최욱은 자주 깐죽거려 정말 속상했다. 자신이 반장이 되지 못한 것의 화풀이 같았다.
“그래서?”
“그러니까 너무 잘난 척하지 말란 말이야. 그 건의 사항을 왜 교장선생님 골치 아프시게 보고하려고 하는데? 어려운 것은 빼고 올리지 말아야지. 어차피 올려 봤자 시행되지도 못할 텐데.”
“그건 두고 볼일이지. 이 건으로 먼저 학급회의를 열고 통과되면, 전교학생회의에 건의할 거야.”
학급회의와 전교학생회의에서 통과되자 최욱은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교무실 앞 시위도 했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내고 최초로 풀 장애인시설을 갖추게 된 모범 사례학교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사회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그러한 시설이 갖추어지면 우리 학교가 장애인 학교가 되는 건 불 보듯이 뻔하지 않을까요?”
“주변 집값도 떨어진다는 것도 생각해 보셨나요?”
“겨우 한명의 장애학생을 위해 학교에 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예산낭비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조용하게 그 말들을 경청하고 난 다음 차근차근 설명했다.
“시설을 갖춰 놓으면 장애아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찌 하실 겁니까? 장애시설이 되어 있는 집과는 먼 거리로 전학을 시킬 겁니까? 지금 장애우 학생도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까?”
그 말에 이사회 임원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승낙을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학교 장애아 1호인 친구가 있다.
“우리 근우가 참 잘 하고 있구나. 너희들이 이 나라의 기둥인 기라.”
휴일 날 도로는 귀가하는 차량들로 붐벼 차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봄이라 미세먼지로 하늘이 부옇다. 답답한데도 차 문도 열지 못했다. 하늘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아우성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차창 문으로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근우야. 배고프지? 우리 맛있는 거 먹고 갈까?”
“네, 좋아요. 전 불고기 먹고 싶어요.”
우리는 묘지를 나와서 할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가려고 식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 매번 온 식구가 함께 외식을 했는데 할아버지와 둘이서만 식사를 하니 좀 허전했다.
“엄마아빠도 함께 왔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
“할애빈 근우와 둘이서만 밥 먹으니까 더 좋은데. 안 그러냐?”
“그렇긴 해도…….”
‘지글지글!’
그때 불고기 익는 소리가 맛있게 났다.
“와! 맛있겠어요. 할아버지!”
“다 익었다. 배고픈데 어서 먹자.”
“배고프니까 불고기가 더 맛있을 것 같아요.”
나는 불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먼저 할아버지 입에 넣어드렸다.
“어여 많이 먹어라.”
“네, 할아버지. 잘 먹겠습니다.”
“오냐!”
나는 인사를 하고 불고기를 집어 한 입 먹으며 말했다.
“와, 정말 맛있어요. 입에서 살살 녹아요.”
나는 젓가락을 쉬지 않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입맛이 없다며 별로 드시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 숟가락에 불고기를 얹어주며 다 먹을 때까지 수저를 놓지 않았다. 식당에서 할아버지 친구 분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할아버지랑 이름이 똑같다니. 허향수!’
참 신기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도 같은 이름이 있다는 게. 그 할아버지는 영원히 스무 두 살이란다. 늙지도 않는단다. 스무 두 살이 제일 많은 나이라고 했다. 그 말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니 목에 불고기가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이런데 할아버지는 더 슬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해!’
할아버지 친구 덕분에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니 그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희생된 모든 분들이 위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우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밥 먹다 말고.”
“네, 할아버지 친구 분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불쌍해요.”
눈물이 핑 돌았다.
“허허, 그래서 밥 먹다 말고 그러고 있었구나.”
우리는 겨우 집에 도착했다. 몸도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차가 밀리는 바람에 오래 운전해서 많이 피곤하실 거 같았다. 엄마 아빠는 아직 집에 오시지 않았다. 요즈음 AI 연구 땜에 매일 한 밤 중에 집에 오신다. 그러고 보니 식구 중에 내가 제일 편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많이 피곤하시죠? 엄마 아빠는 아직 안 오셨네요. 저녁 먹고 오기 참 잘했죠?”
“그려, 피곤하구나.”
할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소파로 옮겨 앉으시자 나는 휠체어를 한쪽에 밀어다 두었다.
“근우야, 텔레비전 한번 켜 봐라. 뉴스 할 시간인데.”
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뉴스보여 줄래?”
TV에서는 오전에 하던 뉴스를 계속하고 있었고.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특집으로 하루 종일 4.19혁명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김주열을 찾아내라! 살인경찰 잡아라!”
시위대를 향해 경찰들이 연기를 쏘니까 사람들이 눈과 코를 막고 피했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할아버지 김주열은 또 누구예요? 저 하얀 연기는 또 뭐예요?”
“최루탄이라는 건데 저걸 맡으면 눈이 따갑고 호흡을 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흩어져 피하기 때문에 시위 진압용으로 쓴단다. 살상무기가 되기도 하지.”
“꼭 데모를 해야 하는 거예요? 민주적으로 대통령께 건의를 하면 되잖아요. 우리 반에서는 제가 비밀함을 만들어 건의사항은 익명으로 쪽지를 써 넣는 것으로 공약을 해서 시행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1회 성과가 장애인 시설 이었고요.”
“우리 근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구나. 근데 말이야 학생들이 건의 한 걸 이사회에서 들어 주지 않을 때가 있잖아. 그러면 학생들은 불만이 생기겠지?”
“네, 당연히 우리 반에도 반대하는 아이들이 있었고요. 최욱 패거리가요.”
“그래, 그게 바로 데모를 하는 이유란다. 대통령이 독재를 하니까 민주시민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 대규모 시위가 된 거고. 그래서 강경 진압을 하다 보니 사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거지.”
“대화를 하면 되는데. 제가 교장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했어요. 그리고 이사회가 열릴 때 저와 그 장애인 친구와 함께 참석했고요. 그래서 통과 되었어요.”
“김주열을 살려라!
살인자 경찰 물러나라!”
“저 장면 찬희 게임에서도 나왔어요. 경찰과 학생들이 싸우는 장면 요.”
게임 개발자가 저 장면을 가져다 배경으로 쓴 것 같았다. 게임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한 장치 인 것 같았다. 배경은 그 시대 배경이고 캐릭터는 모두 로봇이었다.
“할아버지 김주열이라는 사람이 시위하다 죽은 거예요?”
시위학생뒤편에는 ‘마산역’이라는 역 간판이 보였다.
“할아버지, 저긴 할아버지 고향 마산이잖아요? 작년에 갔을 때 마산역이 참 크고 좋았는데 옛날에는 저렇게 작았어요?”
“그려, 참, 저 광장이 대단했는데…….”
역 광장에는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을 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할아버지는 김주열 열사에 대해 피곤함도 잊고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리니까 앞에서도 몇 번 말했듯이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지.”
“할머니, 우리 구경하고 올게요. 보내주세요. 네?”
“그려, 앞에 나서지 말고, 구경하고 온나.”
김주열의 이모할머니는 김주열과 형 광열이의 성화에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저렇게 위험한데요?”
“이모할머니는 그렇게 위험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셨던 게지. 그러다 말겠지 했을 거란다.”
김주열이와 형 김광열은 할머니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 맨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전진했다. 그때 경찰이 최루탄을 쏜 것이었다.
학생과 시민들은 매운 최루탄가스에 뿔뿔이 흩어졌다. 형 광열이는 동생을 부르며 사방을 찾았지만 시위현장은 아수라장되어 찾을 수가 없었다.
형 김광열은 시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지만 동생 주열은 돌아오지 않았다.
“와 동생은 안 오고 니만 오나?”
“이모할머니, 주열이가 없어졌어요. 많은 사람들 틈에 찾을 수 없어 그냥 왔어요. 나중에 오겠죠.”
하지만 김주열은 끝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김주열의 어머니는 남원에서 아들을 찾으러 마산으로 왔다. 사방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악질경찰에 살해당해 저수지에 버렸대요.”
“그 흉흉한 소문에 김주열 어머니는 저수지에 직접 들어가 확인까지 했단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지 못해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어머니가 내려 간 날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눈에는 처참하게 최루탄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근데 시신에는 밧줄이 꽁꽁 묶여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을 돌을 메달아 꽁꽁 묶어 마산 앞바다에 버렸던 것이었다. 27일 만에 밧줄이 풀리면서 시체가 떠올라 발견 된 것이다.
“아이고, 내가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야하는데. 아이고 이 할미가 니를 죽인 겨.”
할머니는 목 놓아 울었다. 이것을 본 마산시민들은 분노하여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것이 4.19혁명이 일어났던 날이었다. 그것이 민주주의운동으로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 되었다고 했다.
“김주열 열사 불쌍해요. 경찰은 시민을 지켜주는 게 임무 아닌가요?”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그때 시대는 그 경찰의 힘이 막강했단다. 그리고 부정선거를 하면서 경찰을 정부하수인으로 만든 게지.”
“그래서 부정 선거가 나쁘고 그 대통령할아버지가 하야했군요.”
“우리 근우 할애비 말 잘 알아듣네.”
“그럼 진짜 이승만 박사가 나쁜 대통령이었군요.”
“꼭 나쁘다기보다 그 당시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가는 과도기라고 보면 될게야. 어떤 나라든 큰일을 해내려면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거든. 너희의 그 조그만 학교에서도 작은 일 하나 통과시키는데도 힘든데 한 나라를 이끌려면 얼마나 일들이 많겠어.”
“네, 맞아요. 조그마한 시설 하나 하는데도 곤욕을 치뤘거든요.”
“우리 근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구나. 민주주의가 똑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잘 자라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되는 거여.”
7. 우리는 알아요
‘와와와!’
“와와와!”
나는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맨 앞장서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내가 선창을 하자 아이들이 피켓을 하늘높이 들고 따라 외쳤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4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높이 하늘로 올라갔다. 소리가 하늘에 닿자 갑자기 사방이 깜깜해졌다. 빛줄기 하나 없는 깜깜한 밤 같았다. 학교 탑의 야광 전광판 시계만이 낮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1960년 4월 19일 오후 2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놀라지 마! 우린 1960년대에 와있어.”
낯익은 목소리였다. 찬희였다. 찬희가 피켓을 들고 있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어? 너 찬희지?”
“그래 짜식! 이런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내게 말해야지. 이쯤 게임이야 내가 한방에 깨 주지.”
찬희도 내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야!”
사실 나는 무서웠는데 찬희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총을 든 트럭들이 우리 앞을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트럭 불빛과 총에서 품어내는 빛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찬희는 적군을 향해 건피스톨 소드를 휘두르며 마주보고 총을 난사했다. 찬이가 휘두른 건피스톨 소드에 트럭에 타고 있던 적군들이 픽픽 쓰러졌다. 가까이 있는 적들은 오래된 낡은 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피웅피웅!’
찬희는 역시 게임 왕이었다.
“나야, 피해 어서!”
나는 찬희 뒤에 슬며시 숨어 찬희가 하는 게임을 즐기듯이 보고 있었다.
“찬희야 더 빨리 쏴! 적군이 거의 다 쓰러졌어,”
나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한참동안 격전이 벌어졌다. 그때 총알 하나가 피웅 소리를 내고 날아오더니 한 아이가 픽 쓰러졌다.
“아이에게 총을 쏘다니? 맛 좀 봐라!”
찬희는 적군들과 난타전을 벌였다. 찬희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픽 쓰러졌다.
“찬, 찬희야! 엉엉엉! 일어 나!”
나는 울면서 찬희의 몸을 흔들었다. 찬희 몸은 피 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찬희가 쓰던 건피스톨 소드를 손에 들었다. 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는 적군을 향해 건피스톨을 쏘았다.
“피웅 피웅!”
총은 자동이라 겨누기만 하면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총알이 날아갔다. 이렇게 쉬운 게임을 여태 할 줄 몰랐다니. 내가 쏜 총에 적군들이 픽픽 쓰러졌다. 전멸 시켰다.
“와! 승리다 승리!”
“와와와!”
아이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찬희를 포함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적군의 총에 맞고 죽었다. 나는 더 화가 나고 슬펐다.
“으흐흐흑!”
나는 하늘을 향해 총알을 쏘아댔다.
‘자식! 그만 해!’
찬희가 손을 흔들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죽지 마, 찬희야!”
아이들이 서로 붙들고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때 트럭이 대학생 형들을 가득 싣고 달려왔다. 반대편 트럭에는 빨간 완장을 찬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차에서 대학생 교복을 입은 형들이 내렸다. 그 형들은 맨손으로 트럭으로 돌진했다. 기껏해야 몽둥이들을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들 앞으로 달려갔다.
“근우! 위험해!”
대학생 형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감싸 안았다. 그때 총알이 날아와 그 형의 등에 맞았다. 형이 쓰러질듯 하더니 일어섰다. 그런데 형 몸에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형 등을 만져 보았다.
“엇? 총에 맞았는데도 멀쩡하잖아요! 어? 형! 형은 우리 할아버지 친구 허향수형이죠? 아, 아니 할아버지.”
“그래, 위험하니 그만 집에 가 보아라. 할아버지는 잘 계시니?”
“네, 근데 형 등에 총을 맞았는데도 괜찮아요? 피도 안나요.”
그 형은 나를 달랑 안아서 아이들이 서 있는 뒤쪽으로 가서 내려놓았다.
“형 아니었으면 전 총에 맞았을 거예요. 형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우리 집으로 가요. 우리 할아버지가 엄청 반가워하실 거예요.”
그 형은 말없이 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형, 오늘 할아버지랑 형한테 갔었어요. 우리 할아버지 엄청 우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가요. 네!”
“그래, 다음에 갈게. 이제 너희들은 집에 가거라.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겠다.”
형은 손을 흔들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가지 마, 형! 으흐흑!”
“근우야, 뭘 그렇게 열심히 보니? 엄마 아빠가 오는 줄도 모르고. 아니, 할아버지 주무시는데 텔레비전 소리를 줄여야지…… 텔레비전 보며 울었구나?”
“엄마, 형이 불쌍해! 형이 나를 구해 줬어요. 내가 꼭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말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엄마는 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 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4.19 65주년이구나. 할아버지가 또 많이 슬퍼하셨겠구나. 그래서 근우도 저 텔레비전 뉴스보고 울었어?”
나는 목이 메여 계속 흐느꼈다.
“네, 오늘 할아버지랑 419민주모지에 갔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할아버지 피곤하신 모양이네. 텔레비전 끄고 이제 너도 씻고 자거라.”
“아, 찬, 찬희요. 찬희가 죽었어요. 나쁜 사람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저 찬희네 가봐야 해요. 엉엉엉!”
“무슨 말이니?”
“저랑 함께 민주주의 시위를 하다 찬희가 총에 맞아 죽었단 말이에요.”
그때 카톡! 카톡! 하고 카톡 전화가 울렸다. 얼른 전화기를 보았다. 찬희다!
“찬희야! 엉엉엉!”
우느라고 말을 못하자 엄마가 찬희에게 설명을 했다.
‘하하! 역시 넌 내 친구다.’
“너, 안 죽은 거 맞지? 정말이지? 아, 다행이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 멘트가 나왔다.
<이 사진은 6학년 어린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그 학교 어린이 백여 명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쓴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연소 4.19희생자는 사랑 초등학교 열 살 어린이입니다. 이 어린이는 형 누나들이 시위하는 맨 앞에 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활짝 웃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 사진도 나왔다. 그리고 사랑초등학교 어린이가 썼다는 시도 낭송했다.
‘중략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렀는지를
언니 오빠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서울 수송초등학교 강명희의 글 ’나는 알아요‘(4.19선언문 수록 6p)_출처 https://www.facebook.com/photo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다. 왜 할아버지 친구 허향수 할아버지가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언니 오빠들이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잘 지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거란다.’ 라고 할아버지가 말씀 하신 것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반장임무를 민주적으로 잘 해 나가겠다고 다짐도 했다.
8.두 가지 바램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용원고도 써서 방송국에 보낸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저도 할아버지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요?”
“글이란 말이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글로 써야하는 기라. 거짓을 쓰거나 과장되게 쓰면 안 되고 진실 되게 써야해. 거짓을 쓰거나 과장되게 쓰면 독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단다. 그러려면 체험을 많이 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기라.”
“그건 걱정 안 해도 되어요. 전 책 읽는 것이 참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일기를 매일 써야하는 거는 알고 있는 겨?”
“네, 쓰기 싫을 때도 있지만, 거의 매일 쓰는 편이에요. 근데 할아버지 무슨 신문 읽고 있어요?”
나는 할아버지 곁으로 바짝 다가앉아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 돋보기도 안 쓰고 이렇게 작은 글자가 보여요?”
“나가 안경을 안 쓰는 것은 할애비 닮아서 그런 겨.”
“헤헤, 그런가 봐요. 친구들은 게임을 많이 해서 눈이 나빠졌다며 이따 만큼 두꺼운 안경을 쓰는 애도 있어요.”
나는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려 원을 그리며 말했다.
“허허! 녀석!”
할아버지는 4.19묘지를 다녀오신 후, 내내 우울 해 하셨는데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웃으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할아버지가 읽고 있는 신문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4.19혁명이 남긴 과제 두 가지”
“할아버지, 이 칼럼 할아버지가 쓰신 거죠? 그런데 두 가지 과제가 뭐예요?”
“그건…….”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끊임없는 개혁과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4·19혁명 65주년을 맞는 첫째 과제란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4·19혁명 정신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돼 있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평화적 남북통일이 실현될 경우 북한은 두말할 필요 없이 김일성을 국부로 세우자고 우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 대한민국은 이대로 가면 국부로 내세울 사람이 없게 된다. 김일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가 훨씬 적은 건국 대통령이 있는데도 말이다. 4·19혁명 정신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돼 있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과제를 반드시 승화·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중앙일보 2023.4.18 오피니언 시론 발췌
“할아버지, 저 기억나요. 대통령할아버지가 국민들의 뜻에 따라 물러나면서 하신 말씀 요.”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 근우 제법인데. 너희들이 있어 이 나라 민주주의가 똑 바로 설게야. 허허!”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찬희의 게임 마지막 장면은 남북한이 민주통일이 되는 배경이었다.(149.4매)
나는 임시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찬희네 가서 요즈음 친구들 사이 유행하는 ‘민주주의’라는 인기 게임을 하고 놀다왔다. 깨기 힘든 어려운 게임인데도 찬희는 무척 잘했다.
“범생이 넌 공부만하니 이런 게임도 못하지. 게임도 할 줄 알아야 현대를( 지금) 쉬운 말로 바꾸기) 살아가는 새 이 나라의 어린이가 되는 거야. 안 그러냐? 주말마다 한 시간씩 게임 레슨 해 (알려) 줄게. 대신 글짓기 숙제 도와 줘. 난 글짓기라면 딱 질색이거든.”
찬희의 핀잔에 나는 얼른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자신이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하긴 했다. ‘민주주의?’ 그러한 게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와와!”
<1960년 4월19일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전국방방곳곳에서 경무대(청와대)로 몰려왔습니다.>
‘어? 저것은 찬이 게임 배경 화면과 똑 같잖아!
집에 돌아오니 할아버지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텔레비전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오래 된 흑백사진이 화면에 꽉 차 있었다. 앨범에서 할아버지 학생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가끔 보는 영화에서는 교복을 입은 형들의 학생 모자에는 학교 로고가 금색으로 박혀있어 멋있었다. 모자의 그 로고가 명문 학교 인지 그렇지 않은 학교 인지 구별한다고 했다,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란 듯이 모자를 반듯하게 쓰고 다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다닌다고 할아버지가 전에 ( 할아버지가 반복해서 나오니 없어도 될 듯요)말씀해 주신 기억이 나 여쭈었다.
“할아버지는 S대 나오셨으니까 ( 학교를 꼭 발혀야 할런지요. 그냥 명문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요)명문고 다니셨겠네요?”
“허허 녀석!”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형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지 궁금해서 할아버지 옆에 바싹 다가가 앉았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남자어른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한쪽 손에는 피켓을 들었다. 다른 쪽 손에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분노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하양 무명치마는 앞을 걷어 허리에 맸다. 머릿수건까지 쓰고 소매는 걷어 올렸다. 사람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독재 대통령은 물러나라! 민주주의 만세! 독재반대! 부정선거를 중단하라!”
‘민주주의? 찬희네서 한 게임이잖아?’
그 게임 캐릭터들이 지금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흡사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왜 저래요? 농부들 같은데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것은 농부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다 원하는 거란다.”
“할아버지. 저 영상은 오래 된 것 같아요. 오래된 거잖아요. 분명 아나운서가 65주년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이 2025년이니까…….”
나는 몇 년도 인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음성으로 AI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물었는지요?)
“4.19민주 운동이 몇 년도 인지 말해 줄래?”
“1960년도!”
“할아버지 1960년도래요.”
“허허, 참 편리한 세상이여. 그려, 저 시위자들의 희생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데 씨앗이 되었제. 그때 뿌린 그 씨앗이 65년이나 되었는데도 열매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잖아요.”
“아직도 민주주의가 똑바로 서지 못해서 그려(러)는 겨. 츠츠쯧!”
나는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 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대국으로 선진국이고, 온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 인줄 알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왜 민주주의가 바로서지 않았어요?”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참, 근우 이번에 반장이 되었다고 했지?”
“네, 할아버지.”
“반장 선출은(선거는) 어떤 방식으로 했나?”
“당연히 후보를 뽑아 추천받아 반 아이들이 투표로 선출했죠.”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야. 저 학생들과 시민들은 똑바로 투표해서 대통령을 뽑아야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고.”
텔레비전 화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독재를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하늘을 찔렀다. 잠시 후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
총소리가 날 때마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특히 맨 앞에 있는 사람들이 총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바닥에 픽픽 쓰러졌고, 차가 트럭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꼭 찬희가 하는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속 한 장면 같았다.
“저, 저런 죽일 놈들, 애맨 시민들을 다 죽이네. 저, 저 어린 학생들을까지…….”
할아버지는 TV를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분노해서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서려다가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 할아버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괜찮다!”
할아버지는 분노해서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신다. TV를 보던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다리가 불편한 줄도 잠깐 잊으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왜 다리가 불편하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지를 조금은 언급해 줘야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복선을 깔아야지 않을까요? 근우는 할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는 이유를 알고 있지 앟을까요? 함께 사는 할아버지이니까요.
“할아버지, 왜 화가 났어요? 저 사람들이 잘못 한건가요? 저렇게 사람들이 항의하면 경찰이나 군인들이 잡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게임에서는 로봇 경찰들이 다 잡아 가던데요.”
“친구들이 의견을 내면 반장인 근우는 다수결에 따라야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씀을 했다.
“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인데, 저 학생들은 그 민주주의를 저버린 대통령을 향해 항의하는 거란다. 그 항의를 막기 위해 경찰과 군인, 심지어는 청년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정치깡패들을 모집한 거지. 그 사람들이 바로 탱크나 트럭위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질을 하는 거고. 자기네들 뜻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서 말이다. 바로 그게 독재라는 거야.”( 문장이 넘 길어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언어를 다듬어야 될 거 같아요)
나는 할아버지와 텔레비전을 계속 봤다. 아나운서 멘트가 계속 나왔다.
<1960년 3월15일 마산에서 시작된 학생 및 시민운동은 서울로 도화선이 되어 S대, K대, Y대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들의 희생으로 독재 대통령은 하야되었고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사는 것은 저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다음 영상은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내는 모습입니다.>
화면에 대통령 할아버지가 연단에 섰다.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연단을 둘러싸고 소리를 질렀다. TV( 텔레비전으로 통일하기요) 화면은 65년 전의 영상이라 굵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빗금이 쳐졌다. 그때에도 저렇게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화면은 소리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이승만은 물러나라!”
대통령 할아버지는 연설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 이승만 할아버지) ( 대통령할아버지) (대통령) 중 하나의 명칭으로 통일해 써야 될 거 같아요)
2.진공청소기
‘저 화면도 찬희가 친구들이랑 하는 로봇으로 게임에 나왔는데…….’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이승만 대통령이에요? 엄청 좋은 분 같아요. 불쌍해요.”
“한 개인으로서는 다 좋은 사람이지.”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이 말씀하셨다.
“근우야, 반장선거를을 투표로 선출했다고 했지?”
“네!”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는 거야. 저 학생들과 시민들은 잘못된 민주주의를 바로 잡고자하는 사람들이고.”
할아버지 설명을 듣고 나니까 반장 선거하던 생각이 났다. 날이 생각났다. 우리 반에서는 세 명의 후보가 추천 받았다.
4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을 했던 최욱이는 1번으로, 다음은 찬희가 나를 추천했다. 작년에 최욱과 한 표차로 떨어진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꼭 반장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다음은 현정이가 추천 받았다. 현정이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공부도 잘하고 소신이 있으며 착한아이다. 하지만, 현정이는 반장을 기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최욱과 내가 대결을 붙게 하게 되었다. 우리 반은 모두 25명이다. 작년에 같은 반을 했던 몇몇 아이들이 최욱이 후보 추천이 되자 야유를 했다. 그때 최욱은 자신을 찍어 준 아이들과 똘똘 뭉쳐 나를 찍은 아이들을 왕따 시켰기 때문이었다.
“우! 최욱 추천하지 마!”
아이들의 목소리가 반장 선거 끝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생생했다. 그때를 생각하느라 그때가 생각나서 눈을 감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3번씩이나 대통령을 하고도 모자라 또 출마를 한 거지. 그런데 상대방 후보가 갑자기 숨지는 바람에 투표 없이 자동으로 대통령이 된 거여.”
“근데 왜 그게 부정 선거예요?”
“부통령을 자기편에서 당선시키려고 온갖 부정을 저지른 거였어. 서민들한테 고무신과 밀가루나 귀한 설탕을 나눠 주며 자기당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를 한 거였지. 없는 사람들은 그 귀한 것을 준다는데 안 찍을 수야 없었제. 그게 부정 선거라는 것을 국민들이 안 거여. 그걸 바로잡기 위해 데모를 한 거란다.”
“부통령도 국민투표로 뽑는 거예요? 반장선거는 차점자가 자동으로 부반장이 되는데요.”
“그려. 지금은 부통령제가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랬단다.”
“근우야, 이런 말 들어 봤나?”
“무슨 말 요?”
“백 번 잘하다가 한번 잘 못하면 그 한 번 잘못한 것만 드러나는 법이지. 저 대통령할아버지처럼 말이야. 나라를 건국하고 미국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저렇게 국민들한테 환영을 못 받는 거지.”
“아, 네. 부정선거로요?”
“그려. 물론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건 높이 살만 하긴 혀.”
‘부정선거?’
그렇다면 최욱이 반장선거 때 한 행동이 분명 부정 선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욱은 집이 부자다. 그래서 선거 공약할 때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프렌차이즈 햄버거가게에서 간식을 쏘기도 했다. 선거전날 찬희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말했다.
“근우야, 욱이가 자기편 아이들을 몰고 요 앞 햄버거가게에서 쏘고 있어. 너도 가만있으면 안 되잖아. 그리고 선물도 준다던데.”
“그러라지 뭐. 그런다고 찍어주나. 찍어주면 할 수 없고. 나는 그런 용돈도 없지만, 있어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봐! 공약이라도 그럴 듯하게 내든지.”
찬희가 안달이 났다.
“공약이야 나도 근사하게 낼 수 있지. 그렇지만 실천을 해야지 공약만 근사하면 뭐 해?”
나는 곰곰 생각해 봤다. 공약?
‘맞아! 이거야.’
반장 선거 날이 되었다. 욱이는 자기를 지지하는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아침부터 왁자지껄했다. 여자아이들은 욱이한테서 립밤을 선물 받아 입술에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수다를 떨었다.
“와! 예쁘다. 이렇게 예쁜 걸 어디서 구했지. 역시 보는 눈이 달라.”
남자아이들은 게임 카드를 받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아양을 떨었다. 최욱이 반장이라도 된 듯이 야단들이었다. 최욱은 이승만대통령 할아버지처럼 이번이 세 번째 반장후보로 독재를 하려고 했다.
“자, 공정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게 아니라, 어느 후보가 우리 반을 위해서, 우리 학교를 위해서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고 후보들의 공약을 자세히 경청해요. 아주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민주주의국가를 세워 나갈 거니까요. 후보들 나와서 멋지게 발표 해봐요.”
선생님이 반장 선거 룰에 대해 말씀하셨다.
먼저 1번 후보인 최욱이 나가서 후보 연설을 했다. 최욱이 앞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최욱! 최욱!”
“친구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한명만 빼고 모두 내 친구 맞지요?”
“네!”
교실이 떠나갈 듯이 아이들이 합창을 했다.
“그 한명은 누구지?”
“바보야 그것도 몰라? 근우지. 근우 안 됐다. 욱이한테 왕따 당하면 한 학기 동안 힘들 텐데. 반장이 되면 상황은 반전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근우가 반장이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까우니까.”
몇몇 아이들의 반응소리가 들렸다.
“나는 만약 반장이 되면 한 달에 한번은 내 용돈을 털어서 햄버거를 쏘겠습니다.”
“와와! 역시 통 큰 최욱이야.”.
“반장은 최욱! 최욱!”
최욱은 환호를 받으며 우쭐거리며 연단을 내려왔다.
나는 약간 걱정이 되긴 되었다. 아직도 물질에 약한 아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찬희가 먼저 나가서 나를 띄우기 위해 익살을 부리며 게 춤을 추었다.
“짝짝짝!”
찬희의 게 춤에 맞춰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췄다. 찬희 이마에는 ‘기호 2번 허근우’라는 로고 스티커도 부치고 말이다. 아이들이 배꼽을 잡았다.
“허근우! 허근우!”
몇몇 아이들이 나를 연호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먼저 연단에 올라 아이들을 쭈욱 둘러보며 눈을 맞췄다. 갑자기 떠들던 아이들의 소리가 멈추었다. 거의 1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근우! 안하고 뭘 해?’
찬희가 손나발을 하고 재촉했다. 나는 쉼 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반장 후보 기호 2번 허근우입니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지만, 나는 벌써 여러분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습니다. 지금 최욱이가 나만 빼고 다 친구라고 했는데 친구들 이름을 다 아는 지 물어보십시오. 전 번호와 이름을 다 알고 있어요,”
나는 1번부터 25번까지 번호와 이름을 붙여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했다.
“와, 근우 최고다.”
“이럴 수가! 그쯤은 최욱이 너도 당연히 알지? 근우 코를 납작하게 해줘라.”
아이들 몰이를 하며 최욱을 지지하는 소영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이들도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름은 알아도 번호까지 매치 시킨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욱이한테 재촉했다. 욱이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이름과 번호를 말했다. 겨우 다섯 명만이 이름과 번호가 맞았다. 몇몇 아이들은 이름조차도 몰랐다.
“우! 친구가 친구라면서 이름도 몰라?”
“최욱! 나 이름 몰라? 서운하다. 흥! 너 안 찍어. 나 오늘부터 친 허근우 쪽으로 갈아탔다.”
곳곳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자자, 이름은 차츰 외워도 됩니다. 하지만 공약은 지켜야합니다. 나 허근우는
“첫째,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력 있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모든 일을 빠르고 깨끗하게 진공청소기처럼 처리하겠다는 뜻입니다.”
“와, 근사하다. 근우! 근우!”
“둘째, 비밀 박스를 만들겠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반의 불편 상황이나 건의 상황을 익명으로 쪽지를 적어 넣는 겁니다. 반장인 나는 그것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허근우에 동그라미를 정확하게 그려 주십시오. 이번에 제가 반장이 되면 전교 어린이 부회장 후보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전교 부회장까지 된다면 그 비밀 박스를 전교생한테 적용하겠습니다.”
“와와와! 허.근.우! 허.근.우!”
아이들의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개표를 시작했다. 초반부에 최욱이 앞서는 것 같았다. 결과는 다섯 표 차이로 압도적으로 내가 반장이 되었다. 나는 결국 전교 어린이 부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3.할아버지의 중절모
“독재자 이승만은 하야하라! 독재자는 물러가라!”
다시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영상이 클로즈업 되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다쳤는데 구급차도 안 와요?”
나는 반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 팔소매를 잡았다. 게임에서는 쓰러진 캐릭터들을 구급차에 옮겨 실었었다.
“근우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란 저렇게 피를 흘려서 찾은 거란다. 그렇게 찾은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엉뚱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원, 츳츳!”
할아버지는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할아버지가 혀를 차실 때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신호다.
그 때 아나운서의 멘트가 다시 나왔다.
<재선거와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당황한 제1공화국정부는 오후 3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경찰서에서 무기고를 탈취한 시위대들은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오후 6시 40분경 소방차와 트럭에 나눠 탄 시위대가 종로 3가를 지나 동대문 경찰서 앞을 지날 무렵 계엄령 군대와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길바닥에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며 지나갔다.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는 도중에도 시위대가 차를 타고 이동하며 서울운동장 앞에서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었겠어요.”
“그려!”
할아버지 목소리가 젖어 짧게 대답했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냥 평소처럼 살면 되지 저렇게 싸워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게 필요해요?”
“다수를 존중하되 소수를 배려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것이 깨지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란다.”
“그러면 하야가 뭐에요? 왜 대통령을 하야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민주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아나운서 멘트가 또 나왔다.
<이승만대통령은 4월 23일 시위진압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의 사망소식을 전달받고 병원을 찾아 위문한 뒤, 방송에서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유혈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유당 총재직 사임선언을 했습니다. 1960년 4월 26일 오후 1시에 이승만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자리에서 하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하야가 무엇인지 이해하겠니?”
TV텔레비전 화면에는 대통령할아버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연단에 서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네, 할아버지. 근데 대통령할아버지가 그렇게 잘못하신 거예요?”(다른 말로 바꾸면 좋겠어요) 근우가 이쯤에서는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어요. 위에서 할아버지가 서민들한테 고무신과 밀가루나 귀한 설탕을 나눠 주며 자기당 후보를 찍으라고 강요를 한 거라고 말해줬으니까요.
“근우가 지난번에 학급 비밀 박스를 만들어 학생들의 건의 쪽지를 받아 선생님께 전달하고 해결했다고 했지? 장애우의 건의라고 했던가?”
“네.”
“만약 그때 이사회에서 반대한 게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반대해서 장애시설을 못하게 되었다면 너희들이 항의를 했을 것 아니냐. 물론 이사회에서 반대하는 것을 교장선생님이 설득해서 장애시설이 만들어졌지만 그 반대라고 생각해 봐.”
“맞아요. 이사회에서 반대 할 때 내 친구 찬희가 이사회를 해체시키라고 했어요. 그때 장애인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앞장서고 저와 찬희가 휠체어를 밀고, 전교어린이 회장과 저를 지지하는 몇몇이서 교무실 앞까지 갔어요. 교무실 앞에서 반대하는 아이들과 만나 몸싸움을 할 뻔했지 뭐예요.”
“만약 그때 친구 중 누군가가 다쳤다면, 아마 교장선생님은 반대학생들의 성화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을 거야.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은 국민들의 압박에 의해 자진해서 물러나는 걸 말하는 거란다.”
“아, 네 할아버지. 그렇다면 대통령할아버지가 잘못한 게 아니라 경찰이나 시위진압대가 잘못해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다치고 죽은 것을 책임지고 물러 난거네요. 그렇다면 대통령할아버지 착한 거 아니에요?”
“그, 글쎄다.”
나는 지금 TV에서 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우리 반 아이들 때문에 인자하시고 좋은 교장선생님이 그만 둘 뻔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렵게 탄생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저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TV에서 대통령할아버지가 계속 연설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을 그만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설명했다.
대통령 할아버지의 연설문에는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가 한 가지 부탁하고자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삼팔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 바라는 바이다.>”
곧이어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대통령 할아버지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공원)를 떠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눈물이 나 휴지로 코를 풀었다. 나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참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대통령할아버지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시골이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는 장면도 나왔다.
대통령할아버지는 미국에서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땄다고 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살다가 미국여자랑 결혼했다. 대통령할아버지가 굉장히 똑똑하고 멋져보였다. 미국 국회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화면도 나왔다.
“와, 대통령할아버지 정말 멋지세요.”
“니도 그리 뵈나? 그때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무조건 이기고 민주주의가 되는 줄 알고 모두 들고 일어나고 이 할애비도 앞장섰는데…….”
할아버지는 말씀을 하다가 멈추었다.
“그럼, 지금은 다르다는 뜻이에요?”
“우리나라를 일제에서 되찾아오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대통령이 아니냐.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줄만 알았지. 그렇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도 할 수 있었는데. 민주주의 대가를 너무 많이 치룬 거지. 이 할애비가 4·19 당시 산증인으로서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에 찬성한단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많이 우울해 보였다.
“할아버지 왜 기분이 다운되었어요? 대통령할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란다. 친구가 보고 싶어 그려.”
“친구요?”
너무 학교 이사진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에 너무 깊이 들어감으로 인해 지루함을 줍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다루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정보를 이야기하다 보면 주제가 산만해지고 동화라는 장르에서 벗어나려 하니까요. 소제목처럼 <할아버지의 중절모.> 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있었음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나오는 4단락과 연결성이 있게요.
할아버지는 TV 화면에서 대통령할아버지가 완전히 보이지 않자 TV를 끄고 휠체어에 올라 앉으셨다, 그리고 벽장에서 중절모를 꺼내 썼다. 할아버지가 중절모를 쓰면 중요한 외출을 하신다는 뜻이다.
4.영원히 스무 두 살( 영원한 스물 두 살)
고학년인 근우가 할아버지에 대해 많이 알거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설정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할아버지랑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해마다 4월이 오면 할아버지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중절모를 쓰고 나섰다. 근우는 할아버지가 가는 곳에 따라 가고 싶어졌다.
“ 할아버지 저도 따라 가고 싶어요.” 이런 식으로 나와야 되지 않는지요
“할아버지, 중요한 약속이 있으세요?” 근우는 계속 물음표를 던지는 식으로 묻고 있어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취재 기자같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되니까요 다른 말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친구 보러 갈란다. 근우도 할아버지 따라 갈 겨?”
“그래도 되어요? 따라갈게요.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주차장으로 갔다.
“네 애비가 효자야.”
할아버지는 불편함 없이 주차장까지 가서 차를 타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휠체어를 자동 리프트 고리에 걸었다. 할아버지가 앉은 상태로 휠체어가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운전은 손으로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 차는 AI 개발 박사인 아빠가 할아버지를 위해 설계해서 직접 제작하고 만드신 것이다. 장애인들이 아빠가 설계한 이 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빠가 할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설계했다. 할아버지는 그 어떤 차보다 편리하고 안전하다며 자주 이용했다.
“근우는 뒤에 타거라. 앞자리는 위험하단다.”
“괜찮아요. 저 앞에 탈래요.”
“허허! 안된대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뒷문을 열고 탔다.
“안전벨트 단단히 메고.”
“네, 할아버지”
“찰칵!”
안전벨트 클리프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너를 지켜 줄 거란다.’ 하는 듯이 말이다.
여든 다섯이 된 할아버지는 운전도 능숙하게 하셨다. 다리도 불편하신분이 이렇게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완전자동 시스템 AI 자동차 덕분이라고 할아버지는 아빠를 극찬했다.
우리는 강변도로를 달렸다. 이미 한강변 벚꽃나무들은 꽃잎을 다 떨구었고, 푸른 잎이 나와 있었다. 게을러 늦장을 부린 꽃들만이 간간히 피어있었다. 대신 한강변은 알록달록한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한강의 물빛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드라이브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한강변에는 임시공휴일이라 봄나들이 나온 인파로 붐볐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할아버지, 임시공휴일이라 그런지 차도 많고 강변에 사람이 엄청 많아요. 오늘 같은 날 엄마 아빠도 출근하지 말지…….”
나는 엄마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따분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찬희이가 요즈음 완전 깨부순 게임 ‘민주주의’나 배우며 놀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가 속력을 조금 냈다. 나는 들고 나온 책을 읽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속도를 낮추었다. 자연스럽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입구 표지판에는 <국립4.19민주묘지>라고 쓰여 있었다. 하얀 기념 철탑이 좌우 다섯 개씩 기둥처럼 서 있었다. 산책로에 활짝 피어 있는 꽃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참 아름다웠다. 꼭 공원에 온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먼저 마트에 들러서 막걸리 한 병과 종이컵과 과자 한 봉지와 그리고 꽃 한 묶음을 샀다. 입구에<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신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돌탑이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잠깐 묵례를 했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했다.
“할아버지, 여기는 4.19민주묘지잖아요. 여기 친구가 있어요? 친구가 죽은 거예요?”
“그려, 그 친구가 여기 있단다.
엄청난 수의 묘비가 종대로 서 있었다. 유족이 다녀갔는지 대부분의 묘비 앞에는 꽃과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비석에는 아까 TV 시위대에서 본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과 모자를 쓰고 왼쪽 가슴에는 명찰을 단 사진이 있었다. 할아버지 휠체어가 어느 묘비 앞에서 멈추었다.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묘비에는 묘비 앞 화병에는 꽃이 꽂혀있었다. 할아버지가 멈춰선 그 묘비이름은 ‘K대 2학년 허향수’라고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랑 이름이 똑 같아요.”
“그려, 친구는 우연히도 이 할애비와 이름이 똑 같단다.”
“그 친구 이름도 허향수란 말이에요?”
“신문에 난 그 친구 이름은 보고 집안 어르신과 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난리가 나셨단다. 이 할애비가 죽은 거로 오해 하셨던 게지.”
할아버지 말씀은 할아버지가 대의회 의장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앞장서서 맨 먼저 죽을 거라며 할아버지의 엄마아빠는 극구 말리셨다고 했다. 그날 당연히 할아버지는 맨 앞장을 서야했단다. 그런데 그날 할아버지는 학생의회사무실에서 많은 서류를 정리해야하기에 바빠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내가 지켜 주어야했는데…….”
“가, 가만요. 할아버지. ‘허향수’ 저 사진이 찬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게임에도 나왔어요.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이었지만, 할아버지 이름하고 같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런 게임도 있었나? 그 게임을 아이들이 하며 민주주의가 왜곡되지나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대학생교복을 입은 형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꼭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에는 왼쪽 가슴에 하얀 네모 명찰에 까만 글씨로 ‘허향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할아버지 친구 분은 할아버지가 다니신 S대가 아니네요. 근데 할아버지 친구가 왜 이렇게 어려요?”
“그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뜻을 품은 동지이지. 그리고 이 친구는 영원히 스무 두 살이란다.”
“네?”
할아버지는 가지고 온 꽃을 화병에 꽂고, 막걸리 병을 따서 술잔에 부었다. 제 생각입니다.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근우의 역할이 없어요. 근우가 꽃을 준비해 오는 설정이라면 좋겠어요.
과자도 봉지를 뜯어놓았다. 그리고 그 친구 분 사진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친구, 잘 있었는가? 우리 오랜만에 한잔하세. 자네는 막걸리 좋아했지. 술을 못 마시는 나에게 술을 가르치느라 무진 애썼지. 살다 보니 술이 필요할 때가 있더이다. 자주 와보지 못해 미안하이. 자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 내리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네. 아직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진 못했지만 말일세.”
할아버지 두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눈물을 훔쳐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절을 했다. 나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었다.
“니도 절 하거라. 할애비 친구면 니한테도 할아버지가 되는 거란다.”
“네!”
나는 무릎을 꿇어 엎드려 절을 두 번하고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묵례를 했다.
“다리가 이 모양이라 엎디어 절하지 못해 미안하이. 곧 자네를 보러 갈 거라네. 그때 우리 만나세.”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곧 만나러 가신다니요?”
“허허!”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나는 눈물이 나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할아버지, 나 두고 절대 죽으면 안 되어요. 엉엉!” 근우가 고학년인데 엉엉 울까요? 속울음으로 울던지 훌쩍거리겠지요
“울긴. 그려, 내가 우리 근우를 울렸구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법이란다. 이 친구는 이렇게 젊을 때 죽었는데, 이 할애비는 이 친구보다 65년을 더 살았으니 친구한테 미안하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애비 우리 근우 나두고 금세 안 죽을 테니까.”
“저랑 약속해요.”
할아버지랑 손가락을 걸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할아버지가 휠체어 사물함에서 작은 돗자리를 꺼내 주며 바닥에 깔고 앉으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복술이라며 음복을 하시고 나에게는 과자를 건넸다. 꼭 소풍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 친구 분이 꼭 형 같아요. 아니면 삼촌요.”
“허허, 그러냐? 저 사진이 학생 때라서 그리 느낄게다. 이 친구에게는 저사진이 제일 나이 든 사진일 테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준 과자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할아버지! 이 과자는 처음 보는 과자예요.”
“그려, 이것은 옛날에 우리가 좋아하던 과자야. 요즈음 옛것 찾기 운동하느라 오래전 것들이 많이 재탄생되고 있지.”
“아삭! 아삭!”
고소하고 맛있었다. 할아버지가 건네준 과자를 씹었다. 참 고소하고 맛있어 손이 자꾸만 갔다.
이곳저곳에 유족들이 성묘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부르며 슬프게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할아버지 친구 분 같이 젊은 나이에 죽은 이들을 애통해 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하늘로 하늘로 퍼져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 와 보았지만,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여기 민주묘지에는 비석이 몇 개나 되나요?”
“자유 민주 정의를 꽃피운 아름다운 청춘 412명의 묘지란다.”
“그렇게나 많아요?”
당시에 186명이 사망했는데, 1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부상자들이 사망해 여기에 묻혔다고 했다.
“할아버지 다리도 그때 다치신 거죠? 그렇다면 부상자 숫자 중에 할아버지도 포함되어 있겠네요.”
“그렇단다.”
나는 휠체어에 힘없이 올려 져 있는 할아버지 다리를 어루만졌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다쳤는지 그 과정과 장애인 할아버지를 둔 가족의 애환이 어느 단락에라도 구체적으로 들어간다면 더 감동적일 거 같습니다.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는 기라.”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할아버지는 4.19민주묘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한 획을 그은 희생자들이 묻힌 안식처로 자유, 민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그분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신성한 장소라고 했다.
나는 자꾸만 뒤돌아보며 4.19민주묘지를 뒤로 하고 나왔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붉은 노을이 묘지 산책로에 평화롭게 깔려있었다.
5.반장 vs 대의회 의장
나는 할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 차를 타고 4.19민주묘지를 나오면서 할아버지께 말했다.
“할아버지가 S대 나오셨는데, ( 작품에서는 굳이 S대라 쓰는 것보다 성적이 좋아야 가는 대학이라고 하는 게 다층 독자에게 좋겠지요.)전 할아버지같이 S대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훌륭한 사람이 못될 것 같아요.”
“근우야, 꼭 그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자신에게 일이 주어졌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훌륭한 사람인 게야. 그리고 이 세상에는 꼭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지. 저기를 보렴. 저분들이 없다고 생각해봐. 이 묘지의 꽃은 누가 가꿀 것이며, 거리의 청소는 누가하니? 세상은 이러저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더불어 살아가는 게 사회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ㅡ할아버지 말씀이 간결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말씀을 다는 이해 못하지만, 그래도 그쯤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렇게 열심히 청소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근우도 간결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많은 사람이 다녀간 공원에는 구석구석에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공휴일에 쉬지 못하고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었다. 그 분들이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졌다. 그 분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저분들이 훌륭한 분들일지도 모르겠다.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할아버지, 최고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공부 안하고 데모를 했던 거예요?”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데는 학교간판이 무슨 소용이겠어. S대 학생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데 반대할 학생은 아무도 없어.”
“할아버지가 그 대학에서 대의회의장이 되신 거죠? 아빠가 말해줬어요.”
“네가 반장선거에 민주적으로 투표해서 반장이 된 것처럼 이 할애비도 문리과 대학생들이 민주적으로 투표해서 의장이 된 거지.”
“와, 할아버지 대단하세요. 나는 반장, 할아버지는 의장님!”
“하하, 녀석!” ( 위와 같은 대화는 4.19 정신에서 벗어나는 대회 같아요. 그리고 지금 마무리 단계로 가는데 저런 대화는 금물이겠지요 4.19 정신과 s대학 보다는 그 외 사람들의 외침을 생각해야 될 거 같아요. )
6. 너희가 민주주의의 기둥이란다.
나는 힘없이 휠체어에 올려 져 있는 할아버지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 손으로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리는 왜 다치신 거예요?”( 어찌 같은 집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왜 닫쳤는지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근우는 반장이 될 정도로 똘똘한 아이니데 이제 물어본다는 건 ....... 차라리 앞 부분에서 물어 봤어야지요.
그 당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다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끝내고 청계천을 지날 때 경찰과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으로 많은 학생이 희생되었다고 했다.
“다 뭉개버려!”
빨간 완장을 찬 반공청년단들이 소리를 지르며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단다. 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학생들을 끌어다 트럭에 실었고, 앞장서 있던 할아버지도 잡혀가 고문을 당해 다리를 다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분한 생각이 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리가 이렇게 아프신데 어떻게 방송국 기자를 하신 거예요?”
“젊었을 때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지. 조금 불편할 뿐이었단다. 늙으니 이리 안 됐나.”
“할아버지, 방송국은 장애시설이 잘 되어 있었나요?”
“지금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있긴 있었제. 하지만 그때는 그리 불편하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단다. 근우 반장이 되고 나니 어때?”
“속상할 때가 많아요. 특히 부반장이 된 최욱 녀석이 모든 일에 딴지를 걸어요. 지난번 장애인 시설만 해도 그래요.”
“반장이라고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최욱은 자주 깐죽거려 정말 속상했다. 자신이 반장이 되지 못한 것의 화풀이 같았다.
“그래서?”
“그러니까 너무 잘난 척하지 말란 말이야. 그 건의 사항을 왜 교장선생님 골치 아프시게 보고하려고 하는데? 어려운 것은 빼고 올리지 말아야지. 어차피 올려 봤자 시행되지도 못할 텐데.”
“그건 두고 볼일이지. 이 건으로 먼저 학급회의를 열고 통과되면, 전교학생회의에 건의할 거야.”
학급회의와 전교학생회의에서 통과되자 최욱은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교무실 앞 시위도 했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내고 최초로 풀 장애인시설을 갖추게 된 모범 사례학교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사회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그러한 시설이 갖추어지면 우리 학교가 장애인 학교가 되는 건 불 보듯이 뻔하지 않을까요?”
“주변 집값도 떨어진다는 것도 생각해 보셨나요?”
“겨우 한명의 장애학생을 위해 학교에 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예산낭비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조용하게 그 말들을 경청하고 난 다음 차근차근 설명했다.
“시설을 갖춰 놓으면 장애아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찌 하실 겁니까? 장애시설이 되어 있는 집과는 먼 거리로 전학을 시킬 겁니까? 지금 장애우 학생도 불의의 사고가 아닙니까?”
그 말에 이사회 임원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승낙을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학교 장애아 1호인 친구가 있다.
“우리 근우가 참 잘 하고 있구나. 너희들이 이 나라의 기둥인 기라.”
위 문장은 간단하게 어찌어찌 해결되었는지 설명체로 간단히 넣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우와 할아버지로 집중되면서 4.19정신으로 결말이 가야 되지 않을가 해서요
휴일 날 도로는 귀가하는 차량들로 붐벼 차들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봄이라 미세먼지로 하늘이 부옇다. 답답한데도 차 문도 열지 못했다. 하늘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아우성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차창 문으로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근우야. 배고프지? 우리 맛있는 거 먹고 갈까?”
“네, 좋아요. 전 불고기 먹고 싶어요.”
우리는 묘지를 나와서 할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가려고 식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 매번 온 식구가 함께 외식을 했는데 할아버지와 둘이서만 식사를 하니 좀 허전했다.
“엄마아빠도 함께 왔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
“할애빈 근우와 둘이서만 밥 먹으니까 더 좋은데. 안 그러냐?”
“그렇긴 해도…….”
‘지글지글!’
근우는 할아버가 존경스럽고 4.19 사건에 감동 받았는데 할아버지와 단둘이 식사하는 게 허전하다는 표현은 아닌 거 같아요. 모르는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거 같은 근우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게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그때 불고기 익는 소리가 맛있게 났다.
“와! 맛있겠어요. 할아버지!”
“다 익었다. 배고픈데 어서 먹자.”
“배고프니까 불고기가 더 맛있을 것 같아요.”
나는 불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먼저 할아버지 입에 넣어드렸다.
“어여 많이 먹어라.”
“네, 할아버지. 잘 먹겠습니다.”
“오냐!”
나는 인사를 하고 불고기를 집어 한 입 먹으며 말했다.
“와, 정말 맛있어요. 입에서 살살 녹아요.”
나는 젓가락을 쉬지 않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입맛이 없다며 별로 드시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 숟가락에 불고기를 얹어주며 다 먹을 때까지 수저를 놓지 않았다. 식당에서 할아버지 친구 분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할아버지랑 이름이 똑같다니. 허향수 할아버지!’
참 신기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도 같은 이름이 있다는 게. 그 할아버지는 영원히 스무 두 살이란다. 늙지도 않는단다. 스무 두 살이 제일 많은 나이라고 했다. 그 말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니 목에 불고기가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이런데 할아버지는 더 슬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해!’ 불쌍하다는 표현은 좀 그래요. ‘허향수 할아버지, 해마다 저도 올게요’
할아버지 친구 덕분에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니 그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희생된 모든 분들이 위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우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밥 먹다 말고.”
“네, 할아버지 친구 분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불쌍해요.
눈물이 핑 돌았다.
“허허, 그래서 밥 먹다 말고 그러고 있었구나.”
우리는 겨우 집에 도착했다. 몸도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차가 밀리는 바람에 오래 운전해서 많이 피곤하실 거 같았다. 엄마 아빠는 아직 집에 오시지 않았다. 요즈음 AI 연구 땜에 매일 한 밤 중에 집에 오신다. 그러고 보니 식구 중에 내가 제일 편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많이 피곤하시죠? 엄마 아빠는 아직 안 오셨네요. 저녁 먹고 오기 참 잘했죠?”
“그려, 피곤하구나.”
할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소파로 옮겨 앉으시자 옮겨 앉으시는 걸 도와드렸다. 그리고 나는 휠체어를 한쪽에 밀어다 두었다.
“근우야, 텔레비전 한번 켜 봐라. 뉴스 할 시간인데.”
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뉴스보여 줄래?”
TV에서는 오전에 하던 뉴스를 계속하고 있었고.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특집으로 하루 종일 4.19혁명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김주열을 찾아내라! 살인경찰 잡아라!”
시위대를 향해 경찰들이 연기를 쏘니까 사람들이 눈과 코를 막고 피했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할아버지 김주열은 또 누구예요? 저 하얀 연기는 또 뭐예요?”
“최루탄이라는 건데 저걸 맡으면 눈이 따갑고 호흡을 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흩어져 피하기 때문에 시위 진압용으로 쓴단다. 살상무기가 되기도 하지.”
“꼭 데모를 해야 하는 거예요? 민주적으로 대통령께 건의를 하면 되잖아요. 우리 반에서는 제가 비밀함을 만들어 건의사항은 익명으로 쪽지를 써 넣는 것으로 공약을 해서 시행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1회 성과가 장애인 시설 이었고요.”
“우리 근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구나. 근데 말이야 학생들이 건의 한 걸 이사회에서 들어 주지 않을 때가 있잖아. 그러면 학생들은 불만이 생기겠지?”
“네, 당연히 우리 반에도 반대하는 아이들이 있었고요. 최욱 패거리가요.”
“그래, 그게 바로 데모를 하는 이유란다. 대통령이 독재를 하니까 민주시민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 대규모 시위가 된 거고. 그래서 강경 진압을 하다 보니 사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거지.”
“대화를 하면 되는데. 제가 교장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했어요. 그리고 이사회가 열릴 때 저와 그 장애인 친구와 함께 참석했고요. 그래서 통과 되었어요.”
“김주열을 살려라!
살인자 경찰 물러나라!”
“저 장면 찬희 게임에서도 나왔어요. 경찰과 학생들이 싸우는 장면 요.”
게임 개발자가 저 장면을 가져다 배경으로 쓴 것 같았다. 게임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한 장치 인 것 같았다. 배경은 그 시대 배경이고 캐릭터는 모두 로봇이었다.
“할아버지 김주열이라는 사람이 시위하다 죽은 거예요?”
시위학생뒤편에는 ‘마산역’이라는 역 간판이 보였다.
“할아버지, 저긴 할아버지 고향 마산이잖아요? 작년에 갔을 때 마산역이 참 크고 좋았는데 옛날에는 저렇게 작았어요?”
“그려, 참, 저 광장이 대단했는데…….”
역 광장에는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참 생각을 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할아버지는 김주열 열사에 대해 피곤함도 잊고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리니까 앞에서도 몇 번 말했듯이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지.”
“할머니, 우리 구경하고 올게요. 보내주세요. 네?”
“그려, 앞에 나서지 말고, 구경하고 온나.”
김주열의 이모할머니는 김주열과 형 광열이의 성화에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저렇게 위험한데요?”
“이모할머니는 그렇게 위험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셨던 게지. 그러다 말겠지 했을 거란다.”
김주열이와 형 김광열은 할머니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 맨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전진했다. 그때 경찰이 최루탄을 쏜 것이었다.
학생과 시민들은 매운 최루탄가스에 뿔뿔이 흩어졌다. 형 광열이는 동생을 부르며 사방을 찾았지만 시위현장은 아수라장되어 찾을 수가 없었다.
형 김광열은 시위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지만 동생 주열은 돌아오지 않았다.
“와 동생은 안 오고 니만 오나?”
“이모할머니, 주열이가 없어졌어요. 많은 사람들 틈에 찾을 수 없어 그냥 왔어요. 나중에 오겠죠.”
하지만 김주열은 끝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김주열의 어머니는 남원에서 아들을 찾으러 마산으로 왔다. 사방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악질경찰에 살해당해 저수지에 버렸대요.”
“그 흉흉한 소문에 김주열 어머니는 저수지에 직접 들어가 확인까지 했단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지 못해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어머니가 내려 간 날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눈에는 처참하게 최루탄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근데 시신에는 밧줄이 꽁꽁 묶여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을 돌을 메달아 꽁꽁 묶어 마산 앞바다에 버렸던 것이었다. 27일 만에 밧줄이 풀리면서 시체가 떠올라 발견 된 것이다.
“아이고, 내가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야하는데. 아이고 이 할미가 니를 죽인 겨.”
할머니는 목 놓아 울었다. 이것을 본 마산시민들은 분노하여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것이 4.19혁명이 일어났던 날이었다. 그것이 민주주의운동으로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 되었다고 했다.
“김주열 열사 불쌍해요. 경찰은 시민을 지켜주는 게 임무 아닌가요?”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그때 시대는 그 경찰의 힘이 막강했단다. 그리고 부정선거를 하면서 경찰을 정부하수인으로 만든 게지.”
“그래서 부정 선거가 나쁘고 그 대통령할아버지가 하야했군요.”
“우리 근우 할애비 말 잘 알아듣네.”
“그럼 진짜 이승만 박사가 나쁜 대통령이었군요.”
“꼭 나쁘다기보다 그 당시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가는 과도기라고 보면 될게야. 어떤 나라든 큰일을 해내려면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거든. 너희의 그 조그만 학교에서도 작은 일 하나 통과시키는데도 힘든데 한 나라를 이끌려면 얼마나 일들이 많겠어.”
“네, 맞아요. 조그마한 시설 하나 하는데도 곤욕을 치뤘거든요.”
“우리 근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구나. 민주주의가 똑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잘 자라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되는 거여.”
중편에 너무 많은 사건이 나오는 거 같습니다. 제 생각엔 할아버지와 연결되는 ‘ 허향수 할아버지 이야기’ 가 디테일하게 좀 더 나오면 좋겠어요. 갑자기 김주열열사가 사건이 나오고 이승만이 나쁘다는 대화가 다시 나오니까 어수선한 작품이 되어버리네요. 김주열 열사까지 다루려면 중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가야할 거 같아요
7. 우리는 알아요
‘와와와!’
“와와와!”
나는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맨 앞장서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나는 왜 피켓을 들었는지 ... 현실인지 아님 가상체험인지. 환상체험인지 ... 갑작스런 문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내가 선창을 하자 아이들이 피켓을 하늘높이 들고 따라 외쳤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4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높이 하늘로 올라갔다. 소리가 하늘에 닿자 갑자기 사방이 깜깜해졌다. 빛줄기 하나 없는 깜깜한 밤 같았다. 학교 탑의 야광 시계만이 낮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오후 2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
깜깜한 어둠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 찬희지?”
“그래 짜식! 이런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내게 말해야지. 이쯤 게임이야 내가 한방에 깨 주지.”
찬희도 내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야!”
사실 나는 무서웠는데 찬희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총을 든 트럭들이 우리 앞을 지나가며 총을 난사했다. 트럭 불빛과 총에서 품어내는 빛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찬희는 적군을 향해 건피스톨 소드를 휘두르며 마주보고 총을 난사했다. 찬이가 휘두른 건피스톨 소드에 트럭에 타고 있던 적군들이 픽픽 쓰러졌다. 가까이 있는 적들은 오래된 낡은 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피웅피웅!’
찬희는 역시 게임 왕이었다.
“나야, 피해 어서!”
나는 찬희 뒤에 슬며시 숨어 찬희가 하는 게임을 즐기듯이 보고 있었다.
“찬희야 더 빨리 쏴! 적군이 거의 다 쓰러졌어,”
나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한참동안 격전이 벌어졌다. 그때 총알 하나가 피웅 소리를 내고 날아오더니 한 아이가 픽 쓰러졌다.
“아이에게 총을 쏘다니? 맛 좀 봐라!”
찬희는 적군들과 난타전을 벌였다. 찬희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픽 쓰러졌다.
“찬, 찬희야!흐흐흑 엉엉엉! 일어 나!”
나는 울면서 찬희의 몸을 흔들었다. 찬희 몸은 피 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찬희가 쓰던 건피스톨 소드를 손에 들었다. 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는 적군을 향해 건피스톨을 쏘았다.
“피웅 피웅!”
총은 자동이라 겨누기만 하면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총알이 날아갔다. 이렇게 쉬운 게임을 여태 할 줄 몰랐다니. 내가 쏜 총에 적군들이 픽픽 쓰러졌다. 전멸 시켰다.
“와! 승리다 승리!”
“와와와!”
아이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찬희를 포함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적군의 총에 맞고 죽었다. 나는 더 화가 나고 슬펐다.
“으흐흐흑!”
나는 하늘을 향해 총알을 쏘아댔다.
‘자식! 그만 해!’
찬희가 손을 흔들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가지 마, 찬희야!”
아이들이 서로 붙들고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때 트럭이 대학생 형들을 가득 싣고 달려왔다. 반대편 트럭에는 빨간 완장을 찬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차에서 대학생 교복을 입은 형들이 내렸다. 그 형들은 맨손으로 트럭으로 돌진했다. 기껏해야 몽둥이들을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들 앞으로 달려갔다.
“근우! 위험해!”
대학생 형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감싸 안았다. 그때 총알이 날아와 그 형의 등에 맞았다. 형이 쓰러질듯 하더니 일어섰다. 그런데 형 몸에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형 등을 만져 보았다.
“엇? 총에 맞았는데도 멀쩡하잖아요! 어? 형! 형은 우리 할아버지 친구 허향수형이죠? 아, 아니 할아버지.”
“그래, 위험하니 그만 집에 가 보아라. 할아버지는 잘 계시니?”
“네, 근데 형 등에 총을 맞았는데도 괜찮아요? 피도 안나요.”
그 형은 나를 달랑 안아서 아이들이 서 있는 뒤쪽으로 가서 내려놓았다.
“형 아니었으면 전 총에 맞았을 거예요. 형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우리 집으로 가요. 우리 할아버지가 엄청 반가워하실 거예요.”
그 형은 말없이 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형, 오늘 할아버지랑 형한테 갔었어요. 우리 할아버지 엄청 우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가요. 네!”
“그래, 다음에 갈게. 이제 너희들은 집에 가거라.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겠다.”
형은 손을 흔들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가지 마, 형! 으흐흑!”
“근우야, 뭘 그렇게 열심히 보니? 엄마 아빠가 오는 줄도 모르고. 아니, 할아버지 주무시는데 텔레비전 소리를 줄여야지…… 텔레비전 보며 울었구나?”
“엄마, 형이 불쌍해! 형이 나를 구해 줬어요. 내가 꼭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말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엄마는 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 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4.19 65주년이구나. 할아버지가 또 많이 슬퍼하셨겠구나. 그래서 근우도 저 텔레비전 뉴스보고 울었어?”
나는 목이 메여 계속 흐느꼈다.
“네, 오늘 할아버지랑 419민주모지에 갔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할아버지 피곤하신 모양이네. 텔레비전 끄고 이제 너도 씻고 자거라.”
“아, 찬, 찬희요. 찬희가 죽었어요. 나쁜 사람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저 찬희네 가봐야 해요. 엉엉엉!”
“무슨 말이니?”
“저랑 함께 민주주의 시위를 하다 찬희가 총에 맞아 죽었단 말이에요.”
그때 카톡! 카톡! 하고 카톡 전화가 울렸다. 얼른 전화기를 보았다. 찬희다!
“찬희야! 엉엉엉!”
우느라고 말을 못하자 엄마가 찬희에게 설명을 했다.
‘하하! 역시 넌 내 친구다.’
“너, 안 죽은 거 맞지? 정말이지? 아, 다행이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 멘트가 나왔다.
<이 사진은 6학년 어린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그 학교 어린이 백여 명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쓴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연소 4.19희생자는 사랑 초등학교 열 살 어린이입니다. 이 어린이는 형 누나들이 시위하는 맨 앞에 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활짝 웃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 사진도 나왔다. 그리고 사랑초등학교 어린이가 썼다는 시도 낭송했다.
‘중략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렀는지를
언니 오빠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서울 수송초등학교 강명희의 글 ’나는 알아요‘(4.19선언문 수록 6p)_출처 https://www.facebook.com/photo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다. 왜 할아버지 친구 허향수 할아버지가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언니 오빠들이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잘 지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거란다.’ 라고 할아버지가 말씀 하신 것을 되새겨 보았다. 나는 반장임무를 민주적으로 잘 해 나가겠다고 다짐도 했다.
7챕은 앞부분에서 독자가 이해를 할 수 있게 설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갑자기 가상체험 같은 엉뚱한 내용과 장면으로 혼돈이 됩니다. 다른 챕 문체하고도 다르고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고 있어서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좋지만 연결성과 통일감이 있었으면 해서요.
8.두 가지 바램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용원고도 써서 방송국에 보낸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저도 할아버지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요?”
“글이란 말이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글로 써야하는 기라. 거짓을 쓰거나 과장되게 쓰면 안 되고 진실 되게 써야해. 거짓을 쓰거나 과장되게 쓰면 독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단다. 그러려면 체험을 많이 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기라.”
“그건 걱정 안 해도 되어요. 전 책 읽는 것이 참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일기를 매일 써야하는 거는 알고 있는 겨?”
“네, 쓰기 싫을 때도 있지만, 거의 매일 쓰는 편이에요. 근데 할아버지 무슨 신문 읽고 있어요?”
나는 할아버지 곁으로 바짝 다가앉아서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 돋보기도 안 쓰고 이렇게 작은 글자가 보여요?”
“나가 안경을 안 쓰는 것은 할애비 닮아서 그런 겨.”
“헤헤, 그런가 봐요. 친구들은 게임을 많이 해서 눈이 나빠졌다며 이따 만큼 두꺼운 안경을 쓰는 애도 있어요.”
나는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려 원을 그리며 말했다.
“허허! 녀석!”
할아버지는 4.19묘지를 다녀오신 후, 내내 우울 해 하셨는데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웃으셨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할아버지가 읽고 있는 신문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4.19혁명이 남긴 과제 두 가지”
“할아버지, 이 칼럼 할아버지가 쓰신 거죠? 그런데 두 가지 과제가 뭐예요?”
“그건…….”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끊임없는 개혁과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4·19혁명 65주년을 맞는 첫째 과제란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4·19혁명 정신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돼 있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평화적 남북통일이 실현될 경우 북한은 두말할 필요 없이 김일성을 국부로 세우자고 우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 대한민국은 이대로 가면 국부로 내세울 사람이 없게 된다. 김일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가 훨씬 적은 건국 대통령이 있는데도 말이다. 4·19혁명 정신이 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돼 있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과제를 반드시 승화·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중앙일보 2023.4.18 오피니언 시론 발췌
“할아버지, 저 기억나요. 대통령할아버지가 국민들의 뜻에 따라 물러나면서 하신 말씀 요.”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 근우 제법인데. 너희들이 있어 이 나라 민주주의가 똑 바로 설게야. 허허!”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찬희의 게임 마지막 장면은 남북한이 민주통일이 되는 배경이었다.(149.4매)
찬희가 아니라 근우의 시점이니까 근우의 감정선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찬희의 게임에서 본 거처럼 나의 바람도 할아버지가 그리 바라는 남북이 하나가 되어 등등... 나는 허향수 할아버지나 우리 할아버지처럼 ..... 어찌하겠다는 결의를 보였으면 합니다. 또한 4.19 정신을 이어받아 반장으로서 최욱(과 협조해서)을 감싸고 어떻게 하겠다는 등.... 이런 마무리면 좋겠어요.
톡톡 튀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읽으면서 이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달아 봤습니다. 중편 작품에서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연결성이 자연스러운지 점검해 주시길 바람니다. 1인칭 주인공 근우의 시선이나 할아버지 시선으로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데 < 게임 >이 중간중간에 나오니까 집중력이 흩어지니 자연스럽게 연결짓기를 바람니다. <민주주의 지키기 게임> 소재는 다른 유형의 작품 즉 sf나 스릴러 같은 공포가 있는 판타지적 작품의 소재로 쓰면 좋겠다는 사적인 생각도 하게 되네요. 참, 물음표 사용이 너무 빈번해서 걸립니다. 살펴주길 바람니다.
할아버지가 겪은 4.19 체험과 그로 인한 가족이 겪은 아픔. 허향수 할아버지 4.19사건과 반장 선거를 나간 근우의 선거를 통하여 느끼는 감정선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중절모.> < 영원한 스물 두 살>란 제목 하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소재로 다뤄도 현실감이 있고 감동적인 4.19 동화가 될 거란 생각을 했어요즉 4월이 오면 묘역을 찾는 할아버지와 중절모를 사랑하는 이유.... 장애가 된 과정과 현재 방송 칼럼 쓰는 할아버지를 소재로 특별 설계한 자동차 아버지의 배려. 나의 반장선거... 4.19에 대해 관심없던 내가 반장선거를 통해 민주적인 것이 무언지 관심을 보임.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4.19묘역에서 만난 허향수 할아버지 이야기. 할아버지를 존경하게 된 나. 반장선거를 하면서 어색해진 친구들과 민주적으로 화해함 등등으로 ....
하지만 4.19를 다각도로 접근하여 작품을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정하셔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몇 번 읽으면서 제 사견을 두런두런 나열해 봤는데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작가로 인해 어린이 눈높이에서 4.19 정신이 탄생되길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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