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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7:6-7(1297) 오직 나는 주만 바라보리라 2024.1.7.
2024년도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도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크게 받아 은혜로운 생활을 누려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024년을 준비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신년도 교회 표어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여러 군데 말씀을 보면서 참 좋은 말씀과 어울리는 것들이 여러 개 구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으로 사용된 미가서 7:7절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 구절을 바탕으로 2024년도 교회 표어를 정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제가 작년 전반기 때에 부산성경신학원에서 강의하였던 성경이 미가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본문을 많이 연구하게 되었고, 특히 미가서 7:7절은 너무나 좋은 내용이 담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성도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말씀이어서 더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기준을 정함에 있어서, 이 기준을 옮기거나 또는 타협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면서 방향을 수정해야 될 하등의 이유가 전혀 없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면서 말씀드립니다.
성도는 어떤 장소에 머물더라도,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봄날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설령 내 인생이 아골 골짜기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암울하고 참담함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노련한 인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가다가 길을 잘못 인도하는 사람을 만나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큰 돈을 들여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여행가이드를 잘못 만났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면, 나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한번 살아가는 초보자 인생입니다. 그래서 실수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 미식축구에서 활동하였던 윌리 델퍼드 데이비스(William Delford Davis, 1934-2020)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두 번의 슈퍼볼 우승과 5번 챔피언을 누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선수로서 은퇴 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미식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자신을 최고의 선수로 키워준 코치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m, 1813-1970)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게 됩니다. 윌리는 수천Km 미국대륙을 비행기로 횡단해서 운명직전에 있는 코치를 만나기 위해 이동합니다. 가까스레 병실에 들어갔지만, 불과 2-3분간 얼굴만 보고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코치는 유명을 달리 합니다.
기자들이 윌리에게 인터뷰를 하면서‘시즌 중에 가장 바쁜 시기에 겨우 2-3분 보기 위해서 경기를 빠지면서 미국대륙을 횡단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윌리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빈스 코치는 언제나 내가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지도록 해주었고 오늘의 내가 설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고 만들어 주신 분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받은 바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태산 같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잊어 버리고 배은 망덕하는 사람은 받은 은혜 조차 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성도들을 ‘언제나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호해 주신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큰 목소리로 미가서 7:7절을 낭독해 보도록 합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2024년의 시간 속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기쁨과 환희속에 머물게 할지 모릅니다. 또한 어떤 안타까운 일들과 아픔이 발생해서 나를 눈물 속으로 이끌고 갈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어떠한 상황을 만났느냐? 어떠한 환경에 내가 처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내 행동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만 우러러 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생길에는 수많은 환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올 수도 있고, 사람을 통해서 올 수 있고, 자신의 잘못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본문에서 미가 선지자는 어려움을 당할 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할 것이라 고백합니다. 미가 선지자가 당한 충격적 상황이 어떤 상황일까요? 6절에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라는 무서운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충격적인 내용이 그러져 있습니다. 아들이 믿고 따라야 될 아버지를 멸시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존재 가치를 무시하고 아버지를 발가락 때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딸>은 어떨까요? 딸이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대적합니다. 여기서 대적한다는 말은 어머니를 없애야 될 적으로 삼고 어머니와 싸운다는 살벌한 말입니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가장 이해해 주어야 할 딸이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서스럼 없이 박아 버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합니다. 서로가 원수처럼 물고 뜯으면서 극렬하게 싸우는 모습입니다.
서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주어야 할 가족까리 치고 받고 싸우는 칼부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에 대해, 미가선지자는 6절하반절에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미가 선지자는 가장 끔찍한 상황을 말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지옥입니다. 서로가 보호해주고 의지하면서 지탱해 주어야할 버팀목의 가정이 아닙니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전쟁터와 같은 살벌함이 나오는 가정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살벌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자신은 누구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호와만 우러러보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해결책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만 우러러 보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지 말고 하나님만 앙망하면서 하나님에게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같이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하나님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1.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니 바라보아야 합니다.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고백 합니다.한글 성경에는 이어지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볼라치면, 이 부분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1)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 2)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본다’입니다.
이 구절에 NIV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I watch in hope for the LORD(나는 희망을 갖고 주를 바라 본다), I wait for God my Savior(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즉 7절의 이 말씀을 구어체로 표현하면,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를 바라 볼 것이며,(나의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립니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너무나 멋진 미가 선지자의 신앙고백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신가요? 7절에서 나타나는 미가선지자의 신앙고백은 이러한 모습입니다. “지금 나를 둘러싼 현실이 암울하고 절망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를 계속 바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내가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신앙고백을 흔들림 없이 고백하고 간직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작년 10월 7일(토)안식일 아침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합니다.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오토바이를 타고 습격하면서 단 몇 시간만에 이스라엘 민간인들 1,300여명을 죽여 버립니다. 대부분 민간인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살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테러집단인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는 명분아래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전투를 하면 사망자가 나오고 부상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작년 11월 한창 전투가 긴박하게 벌어질 때에,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을 모아 놓고 지휘관이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을 외신으로 보았습니다. 지휘관은 히브리어로 말했지만, 자막으로 나오는 것은 시편 3편이었습니다.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투를 앞둔 군인들만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아야 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앙망해야 되리라 믿습니다. 2024년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바라봄으로 구원하심의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바라 볼 때 기도가 응답됩니다.
7하반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내가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에게 매어달릴 때에,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라고 되어 있지만, 직역하면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실 것이다(my God woll hear me)’라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대해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들으신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희망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무리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내 신음하는 음성을 듣는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말을 무시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내 음성을 들어 주신다면, 나는 낙망하면서 인생을 포기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내 음성을 들어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내 음성을 들어 주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내 음성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원망하지 마세요. 수 십년 한평생을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내 음성을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내 문제를 하나님에게 모두 아뢰고 하나님이 구해 주시는 구원의 손길을 체험해야 되리 것입니다.
프레드릭 왓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라는 화가가 그린 ‘희망(Hope)’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지요. 아주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입니다.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서 비파를 연주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비파 줄은 본래 일곱 줄인데 여섯 줄이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더군다나 여성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다. 그런데 비파의 여섯 줄은 끊어졌지만, 이 여성은 남아 있는 한 줄을 가지고 비파를 계속해서 연주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남아 있는 한 줄이 바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팍팍하고 막막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인생에 희망의 줄 하나가 남아 있는 한 노래는 계속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희망이라는 말과 소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希望):어떤 일을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소망(所望):어떤 일을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에 22번 사용되었고, 소망이라는 단어는 개역개정판이 85번 사용되었습니다. 비록 희망과 소망으로 구분해서 번역했지만, 실제적으로 같은 말로서 바라고 희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희망이나 소망과 반대되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절망입니다. 절망(絶望)은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끊어짐’을 말합니다. 그래서 절망이란 단어가 추상하는 것은 소망이 없는 죽음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소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쉽게 절망합니다. 쉽게 절망하다가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나요? 자신의 인생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희망과 소망을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냥 사랑가는 청년들을 두고 ‘3포 세대’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라는 말입니다.
‘3포 세대’라는 말도 끔찍한 데, ‘5포 세대’라는 말도 만들어집니다. ‘연애, 결혼, 출산 호기의 세 가지에다가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 포기까지 합하여’5포 세대입니다. 그러자 7포 세대(꿈과 희망을 포기)가 등장했고, 이제는 더 나아가 숫자가 정해지지 않고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생겨 납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 나름대로 나이가 드신 분은 나이가 드신 나름대로 희망 없이 포기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2024년의 시간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N포기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희망을 가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믿음 안에서 기도로 하나님에게 다가서는 성도는 포기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오직 나는 주만 바라보리라’라는 신념으로 승리하는 2024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