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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2장1-17절 역사는 누가 주관하는가01 240911 원주희목사
2024.09.11 수 오전 10:16 ・ 26분 38초
이 말씀의 은혜와 이 말씀의 축복과 이 말씀에 나오는 믿음의 주인공들의 삶을 본받아 따라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고 소망합니다. 헤롯왕이 손을 들어서 교회 중에 몇 사람을 해하려 했다 했습니다. 그중에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이렇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헤롯은 왜 이렇게 사람을 지금 죽일까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민심이 이반될 때마다 희생양을 찾습니다. 민심이 이반될 때 희생양을 찾아서 자기의 정적이나 야당 지도자나 전임 정부나 핑계 댈 거리를 찾아 다 덮어 씌워가지고 희생양한테 다 집어 씌우는 겁니다.
본문의 헤롯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하면 글라우디오 총독 때 기근이 온 시대였습니다.
기근!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핍절해지면 그거 원성이 자자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대책은 없고 핑계대려고 하니까 백성들이야 우리가 로마에게 계속 수탈해 가니까 먹고 살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또 헤롯은 또 이 예루살렘만 통치하는 게 아니고 주변 나라들도 통치하거든요. 그러니까 유대에 나는 양식을 모압 등 다른 나라에 돌리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거 다 뺏어서 남들 저거 갖다 퍼주고 우리는 굶어 죽고 지금 아사자가 속출라는 마당에 누굴 지금 챙긴단 말이냐라고 하는 그런 비난 여론이 일어날 때 그때 정치를 하는 사람 통치자들은 다 내 잘못입니다. 이래 말하면 자기가 돌 맞아요. 밝히세요. 진실을 말하라고요. 진실을 말하면 조용히 물러나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그 책임은 니가 져야지 하면서 벌이 누구한테 오냐 헤롯한테 옵니다.
그래서 교활한 지도자 헤롯은 이 민심에 이반된 것들을 누구한테 돌리냐 야고보에게 교회에 돌렸습니다.
일본의 교토 대진이라고 큰 지진이 나서 동경 대지진이 났을 때 그때 그 지진 나서 원성이 자자한데 그 자연재해인 지진에 대해서 사람들의 분노가 막 끌어오를 때 분노를 딴 데 돌립니다. 조센징이노 우물에다 독을 풀었다. 애꿎은 그들의 분노를 조선 사람한테 풀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경 대지진 때 많이 죽었습니다. 그게 정치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분노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들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서 로마에게 대항할 수도 없고 책임을 로마에 돌릴 수도 없고 자기한테 돌아와도 안 되고 그리고 자기가 이 12장뒷부분에 보면 다른 나라에 대한 곡식 줬거든요. 그 어려운 시대에 그거 원조해준 그 나라에다가 원성을 풀 수도 없습니다. 왜 양쪽 다 안고 가야 되는 게 지도자의 몫이에요.
제가 보니까 정황상 이런 배경인 것 같습니다. 그 희생양으로 야고보를 칼로 죽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야고보가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 분노를 야고보에게 쏟아내는 졸지에 야고보는 그냥 죄 지은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겁니다.
로마의 네로왕이 로마시가 불이 타고 네로가 질렀는지 뭐 그냥 자연재해인지는 몰라요. 불이 타고서 많은 사람들이 막 원성이 자자한데 그 분노를 표출할 데가 없습니다.
그럴 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수 같은 그 본능 분노성들을 풀어내기 위해서 한 게 뭐냐 하면 카타콤에 있는 크리스찬인들을 끌어내다가 원형 경지장에서 사자 먹이 주는 거 잔인하게 사자들 속에 그냥 죽어가는 저 사람들 그리스도인들 때문이다.
또는 검투사들을 막 서로 세워서 그 전장 안에서 원형 경기장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 전투 현장 살아남기 위해서 동료를 죽여 나가는 그런 모습들 속에서 대리만족을 시키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권투나 또 지금 이종 격투기 이런 것들은 사실은 그런 거 하면 안 돼요.
그거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술들입니다. 두들기 맞다가 죽어요. 근데 거기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느냐 사람 안에 있는 본능적인 살인 본능들, 분노들 그런 것들을 대대적으로 이제 풀어내게 하는 수단들입니다. 스포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그거 하나 보고 있으면 잊어버리거든요. 근데 인간의 죄를 집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헤롯이 야고보에게 칼을 대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더 다른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모든 십자가 앞에 정직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피묻든 십자가 앞에 정직할 때 그때 하나님이 제3의 길을 열어나가시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분노가 가득 차 있어요.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대로 배운 사람은 배운 사람대로 못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대로 자기들 내면의 분노가 이렇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들 괜찮아요. 근데 집단으로 부딪치면요.
만나면 여당과 야당이 국회의원들, 국회에서 개처럼 싸운다고 해서 국개의원들 그러는데 국회만 그런 게 아니고, 집단과 집단이 싸우면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요.
우리 사회 안에 분노들이 있는 겁니다. 이 분노들을 헤롯은 처리하는 방법으로 민심 이반이 될 것을 우려해서 유대인들이 특히 유대 지도자들이 신종 기독교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서 야고보를 그의 권한으로 칼로 죽였습니다. 그것으로 했는데 유대인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교회의 또 다른 지도자인 베드로를 잡았다 했습니다.
베드로를 잡고서 무교절 전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무교절 기간에 잡혔잖아요. 사람들이 모여서 유월절 동안에 민심이 확 이리 막 그럴 때 입술을 다른 데 돌리려고 야고보는 죽였고, 베드로는 옥에 가둬두고 지금 유월절 지나면 처형한단다 어쩐단다 하는 그런 상황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서는요.
하나님이 요한과 야고보, 그의 어머니가 살로메가 내 아들 둘이 우정승 좌정승 예수님 우편에 좌편에 세워주세요라고 할 때 주님이 내가 받는 잔을 받을 수 있느냐 주님의 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잔는 십자가 순교의 자리에요. 그래서 야고보는 초대교회에 지도자 중에서는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제일 첫 순교자는 스테반이지만은 12 사도 중에서는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어요.
베드로는요. 베드로는 하나님이 너 늙어서 두 팔을 벌리리니라고 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삽니다.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데 여기에 누가 역사하고 있습니까?
잡히고 옥에 갇혀 있는데 유월절 지나고 이제 죽이려고 합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뭐 하더라 기도하더라 이랬습니다. 교회가 이 위기를 지나가는 방법입니다.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고, 스네반의 순교 때문에 이방 땅에 교회가 흩어지면서 교회가 힘을 과시하던 것도 이제 지났고 그리고 지금 또 야고보는 죽었고 베드로는 갇혔고 하는 그런 상황에 그들도 목숨의 위협을 느낍니다. 그럴 때 도망가려고 숨고 또 우리는 안디옥으로 가면 살랑가 어떤가 뭐 사마리아로 갈란가 갈릴리로 내려가자 별소리 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본분을 따라서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뭐 하더라 기도하더라. 이 일의 결론을 모릅니다. 베드로가 순조를 당할는지 안 당할는지 잘 몰라요. 그저 하나님 앞에 이 문제 놓고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올려드릴 때 헤롯이 잡혀 있는 상황 잡아 있는 그 상황이에요. 호련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며 옥중에 광채가 빛나고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때우고 베드로는 이런 와중에 잠도 잘 자고 있어요. 잠이 옵니까?
낮에 고문당하고 옆에 나 쑤시고 아프고 내일 모레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예수님도 유월절날, 무교절날 잡히셔가지 유월절날 돌아가셨는데 나도 죽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위기 상황에 베드로는 잠도 잘 잡니다.
그리고 일어나라고 깨워서 세사들이 그의 손에서 벗겨지게 되더라는 겁니다.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옷 입고 제대로 허리띠 장가매고 그래 이제 옷도 풀고 신발도 벗고 이제 편안히 자던 베드로가 졸지에 모든 걸 다 갇혀 입고서 겉 옷을 입고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천사 따라가는데 베드로는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내가 지금 환상 중에 지금 이거 경험하는가 보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을 막 이게 때로는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영적 단계에 아마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환상인가 지금 생시로 가는 건가 그런 거 헷갈리면서 가는데 첫째 파스와 둘째 파스를 지나 시내를 통한 새 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더라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닫힌 문들은 열립니다. 할렐루야 이거 베드로가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까?
교회가 기도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까?
다예요. 하나님이 베드로를 살리기로 예수님을 통해서 예언적으로 약속해 주셨고 하나님의 주권이 있고 그리고 교회가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하나님 앞에 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사는 곧 떠나게 되었다. 이에 베드로가 환상이 아니고 생시구나 주께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고서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데라고 하는 여자 아이가 베드로의 목소리 듣고서 말하는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들도 안 믿었다는 거죠.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과목, 둘째 과목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헤롯에게 잡혀 들어갔으니 그 살아남고 싶지 않은 문제인데, 그의 천사가 왔을 거다.
이들도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본체가 온 게 아니고 영이 왔든지 그의 천사가 왔든지 어쨌든 뭐 환상 속에 영으로 지금 온 것 아니냐 이런 얘기입니다.
문 도둑이 그치지 아니하여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더라 이랬습니다.
베드로는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오에서 나오게 하던 일들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순교한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고, 지금 또 다른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더라 이랬습니다.
여러분 시대가 시대 고비고비 넘어갈 때마다 시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선한 주권 안에서 백성을 다스려 나가야 되는데,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들을 사용합니다.
그럴 때마다 억울한 희생양들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사람의 분노는 법으로 해결, 상식으로 해결 안 됩니다.
몰상식한 게 사람입니다.
몰상식을 풀어내는 다른 탈출구를 열어야 되는 게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의 그런 모습들입니다.
건전하게 풀어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두환은 군사 정부에 대한 핍박과 비난과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온 비난이 몰려올 때 그때 뭐 했냐 국풍 운동하면서 문화 운동 했습니다.
또 하나는 스포츠 프로야구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야구를 야구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야구장에서 와와 하면서 그 분노한 감정을 글로 풀어내도록 그게 지도자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행태입니다. 애고 나쁘다는 게 아니고 건전하게 풀어내야 되는데 헤롯은 잔인하게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야고보의 순교였습니다. 베드로도 순교당할 뻔한 고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정치하고 있던 일, 저 일 속에 얽히고설킨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그 순간들이 있습니다.
근데 그때에도 믿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비를 인내의 고비를 기도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하나님이 이상합니다.
내 안에 죄된 것들을 떨어내는 시간으로 사용할 때도 있고, 하나님이 내 믿음을 다시금 단련하는 그런 때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그리고는 그 고비를 지나보면요.
그 고비를 지나보면 이 찬송에 딱 나옵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일은 나의 능력 주 하나님 그 통과한 사람들은요 할 수 있다 하십니다.
나의 능력 좋아 하나님 그 찬송 부를 자격 생깁니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사랑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기도만이 기도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이렇게 해서 희생만이 희생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그 고비를 믿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끝에서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정말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는구나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남은 인생을 복으로 살아내는 은혜가 그렇게 주어집니다.
김진옥 목사님이 청계천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그리고 이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데모하는 사람도 한패가 되었습니다. 한패가 되어서 데모하는 사람도 유신 독재 타도 그거 하는데 같이 이렇게 데모하다가 잡혀 들어왔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데 교도소에 수감된 그 당시의 동기들이 많습니다.
근데 그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변절한 사람도 있고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자신의 민중 의식을 더욱더 고치시킨 분들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진옥 목사님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성령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불이 그 차가운 교도소 안에 확 도는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령 운동해야지 성령으로 이 나라를 고쳐야지 데모한다고 되나 그런 생각을 바꿨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일입니다.
그 뒤에 더 악랄한 정권, 전두환 정권 그런 거 있을 때도 김진옥 목사님은 그쪽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령 안에서 해야 될 일들에 초점을 두고 분노와 분노가 부딪히는 마이너스 에너지와 마이너스 에너지가 부딪히는 그 길로 가지 않고 성령 안에서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복음과 상황이라는 그런 잡지를 만들고 건전하게 이 시대를 섬겨나가는 그리스도인의 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풀어놓았습니다.
그때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김재웅 목사님에게서 길을 찾았습니다.
저도 그때 김준호 목사님을 만나서 그분의 책자들을 보면서 길을 찾았습니다.
근자에 그분이 너무 극으로 가서 그게 싫어서 그러지요.
네 문제는 지금 한 얘기가 뭐냐 하면 인생의 고비를 지나갈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음으로 붙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감정적으로 안 느껴질 수 있어요. 사역에 보람이 전혀 없을 수도 있어요.
사역에 열심히 수고했던 열매들이 막 이방 땅에 핍박을 당해 쫓겨나가고 막 그러고 함께 동력했던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위기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내 믿음 지키면서 일해 가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주권이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 경험 중입니다.
구약 성경에 다니엘서 보십시오. 다니엘은 여러분 페르시아 그다음에 바벨론, 헤르샤 나라가 넘어가는 과정에도 총리 대신으로 보냅니다.
지냅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 때 다니엘의 관천과 여러 사람들의 종반에서 이스라엘은 회복의 길을 가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큰 민족의 역사든지, 우리 작은 예난 제일교의 역사든지 우리 개인의 역사든지 우리 인생을 주관해 갈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으로 걸어간 그 여정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주 좁게는 우리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좀 넓게는 우리가 섬기는 사역지에 복을 주십니다.
그냥 내가 내 믿음으로 걸어갈 때에 이릅니다.
사역의 열매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광야 하나님이 주신 그 여정을 믿음으로 걸어간 자에게는 할 수 있다 하신 일은 부를 자격과 그 찬송해 주는 열매와 축복들이 그렇게 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핍박했던 헤롯 그다음에 죽었습니다. 이럴 땐 뒤졌다 하는 겁니다.
헤롯 그다음에는요. 그 양식 공개했던 들어온 사람들이 이건 신의 소리 연설을 너무 잘한다고 찬사를 돌리니까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지 않다가 죽었습니다.
길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는 역사의 주도 밖에서 그것을 이렇게 움직여가야.
근데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이 움직이는 속에 믿음으로 걸어간 사람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보고 인생과 삶의 자리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앞에 더 깊어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의 고비를 지나갈 때 떨어지면 두두두두 떨어져 나갑니다.
두두두두 떨어져 나갑니다.
그분들에게 왜 믿음이 떨어졌느냐, 이탈됐느냐 물어보면 이유가 한 바 한자락입니다.
위협과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연약함 때문에 별별 소리가 다 나와요.
하지만 이 고비에서 믿음을 지나간 사람들은 믿음으로 지나간 사람들은 계속 쓰임 받는 축복과 새로운 하나님의 시즌으로 가는 은혜의 역사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비고비 지나갑니다.
순간순간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주권이 움직이고 있음을 명기 기억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로, 사랑으로 그 여정을 이래 가다 보면 하나님이 길을 여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주권 안에서 풀어가시는 은혜들을 우리가 보게 되어집니다.
그 축복이 저와 여러분과 우리 교회 안에 우리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권속들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헤롯의 핍박과 이 핍박에 대한 교회의 대응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주님 오늘 시대의 기독교도 여러 가지 어려움들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창조론 얘기하다가 핍박받는 분이 있었습니다.
주님 이러저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는 저희들 되게 인도해 주시고 쫓게 내남면 지역에서 목사로서 교회로서의 본질을 지켜내며 교회 됨을 이루어내는 은혜가 있기에 하나님 역사해 주옵소서 주의 평강이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행12장1-17절 역사는 누가 주관하는가02 240912 원주희목사
2024.09.12 목 오전 6:25 ・ 23분 29초
클라우디오 총독 때에 크게 흉년이 들었고 그 흉년이 들었을 때 헤롯이 한 행동이 나옵니다.
헤롯은 뭣 했는가 이런 일을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두어와치던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했는데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글쎄 헤롯이 관할하는 지역은 갈릴리와 유대 지역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방 출신들 그쪽 지방에 나름대로 양식이 비옥하게 좀 난다고 하는 것들을 들어와 시돈 사람들에게 양식을 줬다 했던 것입니다.
양식은 왜 줘야 하느냐 하면 이게 로마의 법칙, 로마의 통치 규례거든요.
그러니까 양식이 많이 나는 데서 로마에다가 세금을 떼고 또 적게 나는 지방으로 극렬의 미를 보내야 하는 그런 로마 통치의 일환이기 때문에 헤롯이 로마의 명을 받아서 한 겁니다.
하지만 이게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냐 귀 근의 시대였습니다.
크게 흉년이 들어서 다 먹을 것이 부족한데 부족한 데서 떼가자고 들어와 시돈 사람들에게 떼어줬으니 유대 사람들의 원성은 자자해지고 우리가 왜 들어와 시던 사람까지 먹여 살려야 되노 우리가 지금 굶어 죽을 판인데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내부에 불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의 명을 따라서 들어와 시돈 사람들에게 양식을 준 겁니다.
아니면 들어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에게 뇌물을 줬든지 뭐 있겠죠.
어쨌든 양식을 반출 딴 데로 뺐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노여움이 극에 달하고 우리는 굶어 죽는데 들어와 주던 사람은 배탕탕 거리고 있더라.
이런 원성이 자자하니까 민심이 이반 되는 것들을 환심을 살려고 새롭게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일어난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데 야고보를 죽여서 대표적인 한 사람 희생양으로 삼아서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마저 죽이면 이제 민심이받은 해결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를 죽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에 야고보가 왜 죽었냐 표면적으로는 헤롯의 아주 폭정에 의해서 그런 죽임을 당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말씀하셨어.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 네가 받을 세례는 순교의 제물이 될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 야고보의 부르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최초의 순교자는 스테판이었지마는 사도 중에 최초의 순교자는 야고보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베드로는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이 늙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 들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사실은 헤롯이 사용되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헤롯이 그 일들 그 한 행동 자체는 악한 겁니다.
기근 때에 양식을 자기 백성들에게 먹이지 아니하고 실어 내는 것도 문제였고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민심 돌아서니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서 민심을 잡으려고 하는 것도 잘못이고 그리고는 그 악의 무엇은 악을 더합니까?
파수꾼을 죽였습니다. 로마의 법에는 파수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 파수꾼이 죽게 돼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건 지금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지금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참 이상하다.
그렇게 왜 문이 열렸지. 그리고 첫 번째 두 번째 파수가 열리고 그래 열렸으면 이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하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할렐루야 나한테 어떤 분노가 있든지 나한테 어떤 계획이 있든지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그때는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할렐루야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겸비하면 죄를 면하고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 기회들을 헤롯이 놓쳤어요. 놓치고 난 뒤에 그다음 일입니다.
들어 하시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헤롯이 대단히 노여워합니다.
들어와 지던 사람들은 헤롯에게 그 밉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은 양식을 먹는 것이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뇌물 줄 건 줬고 말이야 뭐 이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두로와 시돈에게 양식을 주기 위해서 상당한 통치권의 위기를 지나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놀라워했다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노여워하니까 들어오시던 사람들이 이러다가는 해롯에게 잘못보여가지고는 국물도 없겠다.
잘못하면 위험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한마음으로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소도를 설득해서 화목하기를 청하였다 하였습니다.
한몫하기를 숙이기로 정했다. 숙이고 들어오기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헤롯이 나를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들 앞에 연설하는데 짜웅해야지요.
그냥 그냥 너무너무 잘한다고 지표를 세워야 되니까 백성이 크게 그러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라고 외쳐댔다는 것입니다.
근데 헤롯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지 않았다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으므로 주의 사자가 고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지라 이랬어요.
헤롯은 이방인이에요. 헤롯은 이방인이고 유대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출신의 에돔 사람이에요.
그의 아내는 유대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헤롯 왕가에서 솔로몬의 성전을 스루바벨의 성전이 쇠퇴되어진 것을 혈악한 것을 다시 보수해서 거의 새로 짓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걸 헤롯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을 세워주는 그런 일들을 했지만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신앙에 의해서인 것이 아니고 민심을 얻기 위해서 했던 것입니다.
그게 헤롯의 가문이었고 헤롯의 가문의 일들이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냐? 이방인인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이래 말했습니다.
헤롯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금 왕의 통치 그 연설이 하나님의 것이 정말 신의 소리다라고 칭송할 때 니가 신이다 이 말이거든요.
당신이 신이다 이럴 때 아니야 내 뒤에 하나님이 계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죄예요. 근데 헤롯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고 그 권위가 통치의 권위가 자기에게 하나님이 위임하신 것이라라고 하는 것들을 잊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헤롯은 자신의 통치를 가지고 와서 사람 죽이는 데 사용합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계속 사람들의 민심입니다.
모아베나 암몬 사람들이 나와서 그럴 때 헤롯도 그랬을 거예요.
이 사람들하고 너무 척지고 살 것 없다. 또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그래야 내가 줄 거 주고 받을 것 받고 인맥 관리 차원에서 그냥 이 화해하기를 하고 표면적인 화해를 하고 그게 정치인들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헤롯은 정치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라는 것들을 겸비하게 보고 그 길을 걷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신문대로 거둔다고 하나님의 종을 순조의 제물로 그냥 한 칸에 날렸던 헤롯은 주의 사자가 곧 쳤다 하였습니다.
쳤더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 표면적으로는 벌레가 와서 물었는데 말벌이 물었는지 어쨌든 벌레에 의해서 그냥 공격을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죽게 되었지만은 하나님의 사자가 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역사가 통치자들에 의해서 역사에 힘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관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말 역사를 주관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교회도 마찬가지고 세상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주의해야 됩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내 위에 하나님 계시다. 통치하는 사람은 내 위에 하나님 계시다.
이거 믿어야 돼요. 통치 안에 있는 사람은요. 잘못된 권력 앞에 저항하고 싸우고 부딪히고 그 권력자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막 그렇게 권력자에게 그냥 부딪히고 싸움하고 씨름할 일이 아니에요.
예루살렘 교회는 어떻겠느냐? 따라서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 왜 헤롯이라는 권력을 누가 주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으니까 하나님 헤롯의 권력자가 우리를 헤알고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두고 우린 지금 이런 위험 속에 있나이다라고 자신들의 상황을 고백하며 올려드릴 때,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은 왕을 패하기도 하시고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목사를 패하기도 하시고 목사를 세우기도 하시고 사람을 세우기도 하시고 사람을 패하기도 하시고 사람을 보내기도 하시고 사람을 빼기도 하시고 그분이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주관하심 앞에 통치를 하는 사람도 겸비해야 되고요.
그분의 주관하심 앞에 그 통치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겸비해야 됩니다.
누구를 바라봐야 됩니까? 주만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통치는요. 그 핍박 중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24절이에요. 같이 읽어서 시작.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이상합니다.
그런 핍박과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교회가 권력의 아부야였습니까? 아니요. 교회가 권력에 저항했으며 그것도 아니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통치하심 이 땅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데요. 독일의 순교자로 불림받는 그리스트 보네퍼라는 분이 계십니다.
목사님이세요. 목사님이시고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신학자였고, 당대에 칼 바르트가 미국으로 초청해서 독일에 곧 전쟁할 것 같으니까 미국 와라 이랬던 분입니다.
좋은 책도 많이 썼던 분이고요. 근데 이분이 세계 2차 대전이 터지고 히틀러 독재자가 등장해서 독일이 다시 전쟁 국가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도 독일이 일으켰고 2차 대전도 독일이 일으켰습니다.
독일이 일으켰고 그 전쟁터에서 아우스비츠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나가고 그리고 유대인만 죽은 게 아니에요.
유사 인종들 온 히피들 막 아우스피스 다 죽어 나갔습니다.
전범 국가가 되고 이거 미친 운전소가 있다면 운전소를 끌어내려야 운전석에 타고 있는 버스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산다.
히틀러 암살 운동했습니다. 들쳐서 감옥에 계시다가 그냥 순교를 당하셨어요.
하나님 역사의 어떤 고비에서는 정말 교회가 레스당스 해야 될 수 있습니다.
저항해야 될 수 있습니다. 근데 기본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뭐냐?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이거 믿어야 돼.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할 것 하면서 주님이 총들과 싸지기라 하면 싸지기면 됩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니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겁니다.
올려드릴 때 헤롯이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지도자가 죽는 과정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할렐루야 흥망하여 더하더라.
또 그다음요 25절에 바울과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랬어요.
그라우디오 총독 때에 크게 윤이 들었을 그때 일어난 일들입니다.
헤롯은 헤롯대로 정치적으로 비건의 때에 어떤 자의 인심을 얻고 어떤 때는 굶어 죽든지 그냥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그 민심이 이반되니까 하나님의 종을 죽이고 베드로까지 죽이려 하다가 뭐 그런 일을 펼치고 그러저러 얽히고설킨 것 속에서 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의 위치를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이 충이 먹어서 죽여버렸습니다.
근데 그 비건의 때에 바울과 바나바와 사울은 푸조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세워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인생의 고비, 고비를 지날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 생각한 말씀 붙들고서 오늘 이 하루도 복되게 살아내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천직이다. 난 하나님의 청지기에 그리고 권력을 가졌다면 권력 안에서 선한 청지기로 써야 되고요.
은사를 가졌다면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정기로 사야 되고, 안디옥 교회에 축복해 주셔서 재정의 복을 주셨으니 재정을 주셨으니까 재정으로 겸손하게 구조하는 일을 나누.
그리고 그것도 저것도 없는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그럴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복 줄 자는 복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져서 예루살렘 교회에 풍성함이 있게 하시고, 사랑을 나누어서 안디옥교회는 심는 축복과 거두는 복교의 은혜가 부어지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을 하나님이 행하여 가시는 겁니다.
극복과 은혜가 우리 내 남자의 교회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백해야 됩니다. 우리는 종교 영역을 맡은 사람으로서의 선한 청지기에 재정의 영역을 맡은 선한 청지기가 있어요.
교회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재정으로 섬겨야 돼요.
종교 영역에 맡은 선한 청소기들은 기독교의 세계를 깊이 가야 그럴 때 그것으로 영혼을 섬기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들이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 복과 은혜가 오늘 이 하루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소망합니다.
이 나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위정자들이 권력을 맡은 자들이 권력 가지고 오욕 남용하지 아니하고 겸비하게 백성들을 바로 섬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그럴 때 그들도 사는 일이에요. 왜 역사는 누가 주관하시니까 하나님이 조언하십니까?
이 믿음 붙들고 오늘 이 하루 승리해 낼 수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가 참으로 주님이신 것을 고백합니다.
때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우리 양떼가 없고 포도나무 소출이 없는 과정을 지나갈 때 우리 낙심하고 지치고, 그러나 이것도 주님이 지나가게 하시는 과정인 줄 믿고 아버지 하나님 이 여정을 지나갑니다.
주님 믿음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들이 우리 내남자 교회 가운데 풍성하게 하옵소서 교회의 아버지 행정을 담당하는 귀한 장로님들을 축복해 주시고, 재정을 섬기는 수많은 주의 백성들의 헌신들과 헌금들을 축복해 주셔서 아버지 주의 풍성함이 머물게 역사하여 주옵시고 또 몸된 교회에는 영으로 주의 백성을 섬기는 자들이 있사오니 기도의 사람들을 일어나게 하셔서 영으로 주를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가는 각각 그 부르심대로 선한 청지기로 살아내는 은혜가 있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